‘아프리카’ 하면 흔히 두 가지의 획일적이고도 상반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는 가난과 질병, 전쟁으로 얼룩진 대륙의 이미지이다. 검은 대륙이나  절망의 대륙으로 낙인찍으며 기아의 참상이라든가 에이즈나 풍토병의 공포, 끝없는 내전에 초점을 맞춘 미디어들의 보도에 접하다 보면 아프리카는 온통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전쟁으로 얼룩져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왔다.  

다른 하나는 동물의 천국으로 시작하여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 원시 그대로의 세계 같은 다소 환상적인 이미지이다. 흔히 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동물의 천국이고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연과 원시의 세계로 인식을 하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이런 환상적인 이미지 역시 아프리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아프리카 동부의 탄자니아 수도 다레살람에 도착했을 때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넓은 하늘이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차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넓은 하늘이 이상스러워 둘러보니 주위에 고층 건물이 없는 까닭이었다. 또한 시야를 욱박죄는 복잡한 차량의 대열이라든가 철근이나 시멘트 구조물이 적은 까닭이기도 했다.  
대신 길가에는 낙후한 건물들이 서있었고 좌판이 주를 이루는 장사치들과 손에 물건을 들고 다니는 행상들이 많이 보였다.

사람들의 피부색이 다르고 열대의 태양이 작열하는 전연 다른 풍토인데도 처음 보는 주위의 풍경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봤던 풍경과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적한 흙길을 걸어서 생울타리가 둘러 있는 마당이 넓은 단층집을 지나갈 때면 오래된 기억 속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웅덩이가 파여 흙탕물이 고인 길이라든가 그곳 사람들이 나에게 보이기 꺼린 누추한 집들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웠고 그 속에서 나는 딱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긴장과 피곤이 잠시 풀리고 편안한 느낌을 맛보았다.

사실 나에게 일종의 향수로 다가왔던 그 익숙한 풍경의 실체는 ‘가난’이고 소위 ‘전근대적’인 풍경이다. 탄자니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하다는 딱지가 붙은 나라답게 ‘가난 박멸’이 범국민적인 화두였고 강박관념이었다. 필자가 만난 그곳 각 분야의 엘리뜨들은 가난을 가장 큰 사회문제로 여겨서 개발과 가난 박멸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표정은 의외로 밝고 잘 웃어서인지 낙천적으로 보였다. 나무 그늘에 누워서 잠자는 사람, 길가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행상들, 활기에 넘치는 가리야쿠 시장(우리나라의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 해당). 어디에도 심각하게 얼굴을 찌푸린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아마 낙천적으로 보이는 인상은 추위가 없는 열대 기후와 강렬하고도 넉넉한 햇빛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말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악대들의 연주 소리와 결혼식 행렬은 신식으로 자리 잡은 결혼 풍습인데 결혼식에 들이는 비용이 너무 많아서 사회문제가 될 지경이었다. 결혼식을 비롯한 각가지 식도 많거니와 장례식을 제외한 모든 식에서 사람들은 웃고 춤추고 즐겼다. 춤추며 즐기는 기회가 우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었다. 웃음과 춤이 없이 엄숙하기만 식장이라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듯 했다.

탄자니아 여성들 또한 아름다움에 민감한 것은 세계 여느 여성들과 조금도 다름없었다. 영세한 수준이지만 곳곳에 널린 양장점과 미장원은 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렬한 관심을 말해 주고 있었다. 탄자니아 여성들은 특히 머리치장에 대단한 공을 들여 결혼식장에 가면 상상을 초월하는 기기묘묘한 헤어스타일이 난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편 길가에 즐비한 바에는 저녁이나 주말이면 사람들이 가득 앉아서 즐기는 모습이 보이고 학생들은 방과 후 과외공부를 하는 것이 예사인데 이는 우리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삶의 단면들이었다.

이상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아프리카가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진 재앙의 대륙만도 아니고 순수한 자연이 존재하는 곳만도 아니라는 점이다. 아프리카 역시 그곳 사람들이 희로애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귀중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거리에서 혹은 모임에서 탄자니아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에 기쁘고 무엇에 슬픈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생소하고 교류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 씩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일종의 생애사를 수집을 하게 되었다. 탄자니아 사회와 탄자니아 사람들을, 더 나아가서는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에서였다.

이곳에 실리게 될 생애사는 총 14편이다. 생애사의 수집 목적이 탄자니아인과 그 사회를 더 잘 이해하는 데에 있으므로 보다 많은 사례를 수집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무턱대고 그럴 수도 없는 일어어서 일정한 원칙을 세워야 했다.
탄자니아는 국토가 방대하고 무려 125여개의 부족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출신지역과 출신부족에 균형을 취하려고 노력하였다. 또 연령층은 60대 이상의 노년층에서 20대의 청년층까지 고루 포함시키려 하였고 남녀를 같은 비율로 넣으려고 하였다.

생애사를 들려준 나의 면담자들과 나는 대개 망고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곧잘 킬리만자로 맥주를 앞에 놓고 이야기 하곤 했다. 흰 눈덮힌 킬리만자로 봉우리가 그려진 순한 킬리만자로 맥주를 마시며 그들은 자신의 생을 돌아보고 기쁨과 슬픔과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 했다. ‘킬리만자로를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 탄자니아는?  

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탕가니카호수와 빅토리아 호수 동쪽으로는 인도양을 면하고 주위에 케냐 부룬디 루완다 우간다 콩고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8개국에 둘러싸인 나라이다.                  

아프리카에서 12번째로 큰 나라로 국토의 면적이 남북으로 약 1000 킬로 동서로 약 1000 킬로 로서 94.5만 여 평방 킬로 미터이며 한반도의 4.3배, 남한의 9배나 된다. 국토가 넓은 만큼 매우 다양한 지형을 지니고 있는데 해안지방의 저지대, 북쪽의 킬리만자로 산 및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서쪽으로 뻗어 있는 세렝게티 평원, 서쪽의 빅토리아 호수 와 탕가니카 호수, 남쪽의 고지대 등이 그것이다. 인구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어 현재 약 3천 3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탄자니아의 북부 올두바이 고지에서 인류 최초의 조상으로 생각되는 유인원의 화석이 발견되어 인류의 요람이라 불리운다. 이 일대에는 원래 북쪽에서 내려온 반투족과 나일롯족(Nilotes)이 정착해 살았다. 서기 8세기경부터 아랍인들이 해안지대에서 교역활동을 해왔으며, 15세기에는 포르투칼 상인들의 세력이 확장되었다. 1884년 독일이 해안지대를 식민지로 삼았고, 6년후 영국과 협정을 맺어 해안지대는 독일이, 그리고 잔지바르(Zanzibar) 섬은 영국이 지배하기로 결정하였다.

1차대전 이후 영국은 국제연맹의 위임형식으로 독일이 지배하던 지역을 물려받아, 그 이름을 탕가니카(Tanganyika)로 바꾸었다. 2차대전 이후 이 지역은 국제연합(UN)의 결정으로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61년 탕가니카가 독립했고, 2년 후에는 잔지바르가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였다. 그러나 잔지바르에서는 1964년 반란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졌다. 곧 이어 탕가니카와 잔지바르는 함께 연합하여  탄자니아공화국이 탄생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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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홍 2004.10.21 08:2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한번 꼭 가서 보고 싶네요.

  2. 진윤민 2005.09.17 22: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감사. 아프리카 꼭 가야지.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