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을 다섯 두었다. 딸이 둘, 아들이 셋이다. 나의 부모님 경우와 똑같다. 애들 중 어떤 놈은 아주 머리가 좋고 어떤 놈은 좀 쳐지고 그렇다.

나의 큰 애는 1948년에 태어났고 그 후 3년 터울로 아이들이 태어났다. 송게아에서는 관습이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다. 연년생은 좋지 않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태어나도록 했다. 그런데 요새 젊은이들은 성급해서 그런 간격을 지키지 않는다.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는데 우리 때는 그런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노인들이 아이가 세 살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음 아이를 낳으라고 가르쳤다. 윗 아이가 좀 커야 갓난아기가 태어나도 수월하니까. 그러나 아이들 수에는 제한이 없었다. 한없이 많이 둘 수가 있었다. 딸이건 아들이건 상관하지 않는다.  

큰애는 이제 50이 넘었는데 그 애는 결혼을 잘 못해서 이혼을 했다. 탕가 출신 여자애와 결혼했는데 우리와는 다른 족이라 다우리를 현금으로 지불했었다. 그 애 역시 아이를 다섯 두었다. 어쨌건 제 집이 있고 터밭도 있고 잘 꾸려간다.  

둘째가 큰 딸인데 큰 딸이 아주 공부를 많이 했다. 송게아 고향에서 중등학교를 마친 후 다레살람에 와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까지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바로 탄자니아 은행에 취직이 되었다. 그러더니 좀 후 석사를 하겠다고 본인이 결정을 내렸다. 유럽으로 석사과정을 하러 가기 전에 결혼을 했다. 대학에서부터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남자아이도 역시 우리 고향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만족스럽다. 딸애가 직접 사귀고 나서 나에게 소개를 시켰다. 좋은 사람이라고 결혼하겠다고 하길래 내가 직접 송게아에 가서 그 남자아이의 집을 찾아가 확인을 해봤다. 그리고 나서 결혼을 허락했다. 결혼 후 아이를 하나 낳고 딸은 석사를 하러 미국으로 가서 2년을 지냈다.  지금은 CRBD라는 은행은 director 이다.  아이를 사내만 둘 두었다. 큰 애는 대학에 다닌다. 둘째애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둘째딸은 다레살람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비서 학원를 다녔다. 그러고는 곧 정부기관에 취직이 되었다. 지금은 결혼을 해서 벌써 제 집을 지었다.

그런데 그 아래는 중학교를 마치고 나서 (finacial studies in home economy)경영을 공부하더니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다 어떤 남자애를 만나서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 아래 아들은 중학교를 마치고 유럽으로 가더니 5년동안 아무 소식도 없이 있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호텔(작은 여관정도) 지배인으로 여기저기서 일한다.  

아이들에게 돈이 많이 든 편이어서 때로는 직장에서 가불을 해야했다.  몸바사에 있었을 때 큰아이를 송게아로 보내니까 크리스마스에 왔다갔다 하는 비용 등이 비쌌다. 교육비 자체는 그리 많지 않은데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 공립학교여서 학비는 내지않았지만 교복, 학용품, 학교에 가지고 가는 호미니 농기구들, 용돈등에 돈이 들었다. 중학교에 입학이 허가되면 학교에서 입학식 때  가지고 올 지참물 리스트를 내준다. 도서구입비로 1000쉴링을 내야하는 등 소소히 들어가는 돈이 많은데 학교에 세명이 동시에 다니면 상당히 부담이 되는 액수이다. 또 학교에서 하는 급식이 형편없기 때문에 용돈을 주어서 더 사먹도록 해야 한다.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애들의 책을 들여다보고 공부를 잘하나 점검해보곤 했다. 성적이 모자라면 과외를 시켰다. 위로 셋, 그중에 특히 둘을 아주 공부를 잘했고 학교 교사들도 지금 같지 않고 잘 가르쳐서 과외가 필요 없었는데 다만 끝의 두 아이는 과외를 시켜야 했다. 위의 세명은 미션스쿨을 다녀서 학교에서 아주 잘 가르쳤다. 숙제도 많이 내주어 아이들이 늘 저녁 늦게까지 숙제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요새는 누구나 다 과외를 시켜야 한다. 내 손자들을 보면, 둘째딸에게서 난 아이가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데 늘 과외를 시킨다. 교사들이 제시간에 교실에 안 나타나고 잡무가 많아서 제대로 수업을 안 하기때문에 공부를 시키려면 과외를 해야 한다.

나의 첫째 사위는 맘에 든다. 그 애는 송게아에서 학교를 나오고 다레살람 대학을 다니면서 나의 딸을 만났는데 나도 그의 부모를 잘 안다.

그러나 둘째 사위는 영 아니었다. 물론 둘째 딸에게 충고를 했지만 그때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너무 구식이라느니 요새는 다르다느니 하고 말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문제가 많았다. 현재 그 애들은 법정에서 이혼수속을 밟고 있는 중이다. 도시에서 남자를 고를 때는 신중해야 한다. 어디서 출신인지도 모르고 그 사람의 배경을 모르니까. ‘너희들은 그저 사무실에서 만나게 되지 않았니. 남자가 학위를 딴 덕에 사무실에 근무하는 모양이지만 학위가 배경이나 집안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니까 신중해야 한다.’ 하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 애는 자신도 그렇지만 학력이 높은 배우자를 원했다. 그래서 사위는 학력이 높기는 한데 전연 사람이 되어먹질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집에 오면 싸우기 일쑤였다. 월급째 다 술을 마셔버렸다.  

첫째 사위한테서는 다와리를 받았지만 둘째 사위는 속으로 올바른 사윗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와리를 받지 않았다. 다와리를 받으면 이혼할 때는 도로 돌려주어야 한다.

다레살람에서는 다와리를 대개 현금으로 지불한다. 가축으로 지불해도 기를 데가 없기 때문이다. 요새는 상대방이 어느 집안이냐에 따라서 다와리의 액수가 달라진다. 가령 킬리만자로 출신(챠가 족)을 택하면 아주 많은 돈을 지불해야한다. 역시 무소마 집안(수쿠마 족)도 돈을 많이 지불해야 한다. 또 어떨때는 전연 지불안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아버지에 달려있다.

어쨌건 도시에서 결혼을 하는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결혼식이며 샌드 오프 파티 (신부 보내는 식)에 돈이 많이 든다. 신부 보내는 식이란 신부측의 부모와 모든 친지가 다 참석해서 선물을 하는 식이다. 송게아에서는 재배한 작물을 준다. 즉 새출발에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다.

아들에게는 다만 선물만 한다. 신부측에서도 아들에게 선물을 주어야 한다.

결혼식을 하는 날은 접시를 두 개 준비하는데 하나는 신부 측, 하나는 신랑 측을 위한 접시로 거기에 모든 선물이나 돈을 놓는다. 이 돈은 신혼부부의 새출발을 위해 쓰인다.

나의 첫딸은 다레살람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이 너무 돈이 많이 드는 것을 보고 고향에서 결혼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하여 우리는 다 송게아에 가서 결혼식을 치르었다. 거기서도 역시 큰 결혼식이었지만 돈은 덜 든다.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큰 잔치를 벌인다.

둘째는 다레살람에서  역시 아주 큰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는 나도 돈이 있었고 딸도 일을 하고 아들들도 일을 했기 때문에 돈을 걷어서 아주 큰 잔치를 했다. 잔치에 친구들도 미리 돈을 낸다. 이틀간 파티를 했다. 하루는 집에서 하고 다음날은 빌린 홀에 가서 했다.
잔치에는 친구 친척들이 다오고 잔치를 위해 미리 돈을 낸다. 그래서 맥주며 소프트 드링크를 마음껏 마신다.

나의 아이들은 집에 못올 때는 전화를 해서 항상 안부를 묻고 무슨 일이 있으면 얼른 온다. 어쩌다 돈을 주는 수도 있지만 쌀도 가져오고 설탕도 가져오고 하는 식이다. 어쨌든 딸 둘은 공부를 많이 했고 다 자기 집을 지어서 살고 있다. 미국 가서 공부하고 온 큰 딸은 송게아에도 집이 하나 있고 여기에도 집이 있다. 우리 집에 오면 제 어머니를 돌본다.
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