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9년스물세살 때 결혼을 했다. 부모가 나의 아내를 골라주었다. 그녀는 킬와 출신이다. 해안 지역에서는 아버지가 상대자를 골라주는 것이 관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가 골라주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 4년째 되던 해 이혼을 했다. 아침 열시 딸이 아파서 보러 학교에서 집으로 갔는데 아내가 집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학교에 가는데 가는 길에 아내가 다른 남자랑 같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따라갔다. 그랬더니 그들이 여관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타라카(이혼을 공표하는 서류)를 썼다. 아내는 나의 월급이 너무 적어서 다른 남자를 찾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이 타라카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몸을 팔든지 맘대로 하라고 했다. 그 후 소식을 듣고 장인이 왔는데 이야기를 듣더니 더 이상 함께 살라고 말하지를 못했다. 내가 이혼할 당시 나의 아내는 한 스무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때 스물 여섯이었다.

해안지방에서 타라카를 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 절차란 가령 예를 들어 내가 타라카를 써서 내 아내에게 주면 아내는 그 편지를 가지고 원래 자기 집으로 간다. 그러면 그녀의 아버지가 나의 집으로 와서 왜 타라카를 썼냐고 물어서 이유가 타당하면 이혼이 된다.

두 번째 결혼은 1997년 마흔 한 살에 했다. 어느날 친척집에 갔는데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결혼했냐고 물었더니 안했다고 해서 데이트를 했다. 맘에 들어서 결혼하자고 했더니 응락을 했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부모에게 결혼을 승낙해달라고 편지를 써서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지금 스물 일곱이다. 나는 장인에게 100000쉴링을 다우리로 지불했다.

아내는 젊고 공손하고 예뻐서 정말 사랑스럽다.  그녀는 자라모족 출신이다.
아내는 챠파티 툼부아(빵) 등을 만들어서 판다. 매일 1500 - 2000 쉴링 정도를 번다. 그래서 우체국에 30000 - 40000 쉴링 정도 저금을 한다. 아내는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 가족들을 돕는다. 아내의 어머니는 혼자 작년 6월 장인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나의 첫 번째 결혼 때는 식을 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가 식을 해줄만큼 돈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결혼때는 식을 했는데 나의 친척들이며 내 학교 동료 교사들이 많이 부조를 했고 또 나도 돈을 얼마간 보탤 수 있었다. 식은 무와냐마라(면담자가 사는 곳)에 있는 릴라 모텔에서 했다. 가족은 물론 친척들, 학교 동료교사들, 이웃들이 많이 왔다.

결혼식을 하려면 우선 친척들이 결혼위원회를 만들어서 소요경비를 책정하고 모든 아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내서 얼마내겠나 써넣게 하여 경비를 충당한다. 또 차를 빌려서 집에서 결혼식장인 빌라 모텔까지 타고 가고 타고 왔다. 빌라모텔은 모텔이자 바이자 여러 가지 식을 하는데로도 쓰인다. 결혼식 잔치에는 콜라니 판타 같은 음료수들과 밥 닭고기 소고기 등 음식이 풍성했다. 지금 결혼한 지 3년 되었다.  

첫 번 결혼에서 얻은 딸이 지금 19세이고 두 번째 결혼식에서는 아직 아이가 없다.  

나는 작은 아버지 셋에 숙모는 한사람이 있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 살기 때문에 어머니나 친척을 아주 자주 만나는 셈이다. 가령 어머니경우는 어머니가 날마다 우리집에 오든가 아니면 내가 어머니를 보러 간다. 동생이나 누나 등 형제들도 자주 만난다. 마치 아직 시골에서 사는 것 같다.

결혼식이나 누가 상을 당하면 친척들이 다 기부금을 내고 모인다. 가령 지난 일요일에는 콩고웨에 먼 형제뻘되는 이의 장례식이 있어서 갔다왔다. 그는 금요일날 말라리아에 걸려 토요일에 죽어서 일요일날 장례식이 있었다. 그 장례식에 나는 3천쉴링(사천 오백원 상당)을 기부했다. 다른 친척도 돈을 내고 이웃도 돈을 내고 해서 다 모아서 산다를 산다. 산다란 죽은이에게 입히는 옷이다.  
결혼식에는 대개 5000 쉴링에서 10000 쉴링 정도의 기부금을 낸다. 3개월 전에 나의 작은아버지의 딸 결혼식이 있었다.

나의 친구로는 죵고, 챨리스, 압둘 등 많은 친구가 있다. 다들 나와 나이가 같다. 이들은 다 나의 이웃들이다. 파올로라는 친구는 키감보니에 산다. 파올로는 학교(중학교)친구로 나와 같은 반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목수, 배관공, 장사하는 친구, 서기(clerk) 등이 있다.    
내 친구들의 교육정도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몇은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도 있다.

이웃친구들은 대부분 돈을 잘 버는 것 같지않다. 그저 나와 같은 정도일 것이다.
이웃 중 죵고와 압둘 두 친구는 날마다 만난다. 죵고는 배관공이고 압둘은 장사를 한다. 다 무슬림이다. 그들이 우리집으로 오기도 하고 내가 가기도 한다. 죵고는 날마다 맥주를 두병씩 마시고 압둘은 소다만 마신다. 파올로도 맥주를 마시고 나는 어쩌다 한번씩 맥주를 마신다. 우리를 늘 서로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웃과는 서로 돕고 잘 지낸다. 한번도 다툰적이 없다. 죵고는 루피지출신이고 압둘은 모로고로 출신이다. 탄자니아에는 이제 종족간의 차별이 없다. 누구나 다 스와힐리어로 통하고 다만 같은 부족을 만났을 때만 부족어를 쓴다.
죵고는 축구를 좋아한다. 영스 아프리칸 스포츠 클럽을 후원한다. 전에는 작은 팀에서 경기를 하기도 했다. 가끔 돈이 없으면 나한테 5천 쉴링이고 오백쉴링이고 꾸러온다. 내가 꾸어주면 나중에 갚는다. 나도 그에게 돈을 꿀 때가 있다.
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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