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DIS ABABA - 에티오피아의 새로운 꽃, 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 이름이다. 암하라 어로 ‘새로운 꽃’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크게 이름값을 한다고 보긴 힘들다. 1980년대 에티오피아를 휩쓴 세계적인 가뭄으로 굶어 죽어가던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신문을 도배했다. 에티오피아는 역사적인 의미는 있을 것 같지만 엄청 더울 것 같고, 더러울 것 같고, 사람이 살기 힘든 삭막한 곳이라는 선입견이 우리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아디스아바바에 가서 직접 확인한 결과 이 중에서 기대(?)에 부응한 사실은 위생 수준 정도이다. 공항에 도착한 후부터 이동하는 동안 아디스아바바를 눈에 담아 볼까 하는 찰나에 코로 먼저 느끼게 되었다. 쾌쾌한 냄새와 탁한 공기. 실제로 온도가 더 올라가면 아이들이 메탄가스에 중독되어 자주 쓰러진다고도 한다.

 

아디스아바바의 별명 중 하나가 ‘회색도시’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인 것이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동차는 외국에서 싼값에 들여온 중고차이다. 이미 너무 낡고 오래되어서 외국에서는 폐차 상태까지 간 것이 대부분인데, 이 차들을 들여와서 이 곳 사람들이 쓰고 있다. 오래된 차인 만큼 그 차의 매연은 새 차의 것보다 심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산 지대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중고차들이 내뿜는 시커먼 연기들이 도시 상공 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생성된 먼지나 가스들이 수증기와 쉽게 응결해 곧잘 푸른 안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다음 눈에 담은 풍경은 쓰레기 가득한 길가, 끝없이 이어진 거적과 누더기와 판자로 이어진 집들이다. 사실 이런 느낌이 처음에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사실은 5분 정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 아닌가. 특유의 적응력으로 적응 하고나니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특히 시내에서 마주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는 뭔가가 신비로움이 있다. 백인도 아니면서, 또 전형적인 흑인도 아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묘한 결합이다. 실제로도 현재의 에티오피아인은 백인계 함족과 아랍계 셈족의 후예들이 원주민인 흑인과 혼혈을 이루면서 아프리카에서도 독특한 생김새와 문화를 형성했다.1)

 

그리고 생각만큼 덥지는 않았다. 아디스아바바 아침의 거리는 시원하고 상쾌하고 낮에도 습도가 높지 않아 땀을 흘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기에다 햇살은 마치 지중해 연안처럼 따사로워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여기가 적도 근처이지만 무덥지 않은 이유는 수도가 해발 2,300m 고원에 있기 때문이었다. 아디스아바바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곳에 들어선 수도이다.

 

 

 

 

황제 메넬리크 2세

 

 

악숨이나 곤다르, 하라르와 같이 오래된 도시를 두고 아디스아바바는 언제부터 왜 수도가 되었을까. 아디스아바바 직전의 수도는 엔토토라는 곳이었다. 엔토토는 군사적 요지로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지만, 높은 탁상지 위에 있어 몹시 춥고 땔감용 나무가 부족했기 때문에 수도로는 부적합했다. 황제 메넬리크 2세 (1889~1913 재위)2)의 부인 타이투 황후가 황제를 설득하여 탁상지의 기슭에 있는 온천 부근에 집을 한 채 짓고 그 지역의 땅을 귀족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 귀족들이 자신의 집을 지어가면서 아디스아바바가 시작된 것이다. 아디스아바바의 탄생은 이후 에티오피아의 근대화의 발판이 되었다.

 

이 역사를 말하려면 황제 ‘메넬리크 2세’와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선, 과거 악숨 왕국이 막을 내리던 때로 돌아가보자. 악숨 왕국이 힘을 잃게 되자 에티오피아의 다른 도시들도 발전을 일제히 멈추게 되었다. 사실 악숨 제국의 몰락 후 하라르와 곤다르가 짧은 시기 동안 번영하긴 했다. 이 같은 그들의 짧은 번영 시기는 그들이 발전적인 변화를 이룩해 내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에티오피아의 경제는 몰락해갔다. 사람들이 금,은,청동 화폐가 아닌 소금막대로 거래를 하기에 이르는 정도였다. 사회 전반이 혼란스러웠고 시민전쟁도 발발하였다. 또한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에 시달리며 퇴보의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메넬리크 2세가 아디스아바바가 세우면서 근대화를 위한 새로운 기반이 마련되면서 상황은 나아지게 되었다.

 

사실 아디스아바바 건립 초기에는 메넬리크 2세가 1896년 이탈리아의 침략을 무찌르는 아두와 전쟁3)에서 군사적 요지로 이용하였다. 메넬리크 2세는 부족 간의 대립으로 분열되었던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 이 아두와 전쟁에서 이탈리아의 침략을 물리쳐 독립을 확보하였다.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이 전쟁의 승리 이후 에티오피아는 지금의 규모로 팽창했으며4), 아디스아바바와 지부티 사이에 철도가 생기고 수도는 신식 학교와 병원으로 근대화 되었다. 막 생겨난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부흥으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이로써 아디스아바바는 아랍, 인도,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정말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용광로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다양한 국제기구들의 본부가 총집합 되어 있는 도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통일기구5)가 아디스아바바의 아프리카 회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기구를 세운 황제가 ‘하일레 셀라시에 1세’6)이다. 그는 메넬리크 황제 이후 40여년동안 에티오피아를 지배했던 마지막 황제이자, 하일레 셀라시에는 메넬리크의 근대화 개혁을 착실히 이어받아 에티오피아가 또 한 번의 발전을 이룩하게 한 장본인이다. 특히 아프리카 통일기구를 세우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 정치의 본류로 끌어들이며 에티오피아를 국제연맹과 국제연합(UN)에 가입시키기도 했다.

 

이후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에티오피아의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도 확장되었다. 에티오피아는 아디스아바바의 건립을 발판으로 삼아 세계의 과학적 혁명들의 수혜를 받기 시작했다. 비록 악숨이나 곤다르, 하라르와 같은 도시에 비해 역사가 짧지만 에티오피아 전역에 기술을 전파하는 역할을 해냄으로써 중요한 도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디스아바바 시내에는 아디스아바바대학교와 여러 개의 사범학교 및 기술학교도 있다. 또한 대학 부속의 에티오피아 연구소박물관, 국립음악학교, 국립도서관 겸 공문서보관소, 역대 황제들의 궁전, 그리고 정부청사 등이 있다.

 

이렇게 아디스아바바는 에티오피아의 문화적, 정치적, 사법적 그리고 상업적 중심인 도시가 되었다. 위생, 환경적인 문제들이 하루빨리 극복되어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꽃’으로 피어났으면 한다.

 

 

 


참고문헌

에티오피아 13월의 태양이 뜨는 나라, 이해용

‘ADDIS ABABA IN THE PAST AND ITS PROSPECTS IN THE NEW MILLENNIUM’ Published by: the Addis Ababa Millennium Secretariat

 

 

사이트

http://blog.daum.net/sirius2375/215

http://cafe.naver.com/yogigajo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12&

http://blog.yahoo.com/_SUDAEJ6TL4I6MRQOWVW2EHG2S4/articles/706303 : 악숨 제국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0hyundai&logNo=100137283712&categoryNo=45&parentCategoryNo=0&viewDate=&currentPage=5&postListTopCurrentPage=1&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10&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5  : 회색도시

www.addisababacity.gov.et/ : 아디스아바바 시청 홈페이지

 

 


철도 시찰을 나온 메넬리크를 묘사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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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노아의 후손이라고 알려진 햄족으로 피부만 검을 뿐 혈통 상으로는 백인에 속한다. 흔히 에티오피아 하면 보통 아프리카 흑인들의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잘못된 상식. 거리를 걷다 현지인들을 관찰하면 이들의 얼굴과 행동이 어딘가 백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도!


2) 본명이 살레 마르얌(Sahle Maryam)인 메넬리크 2세(ምኒልክ,1844.8.17~1913.12.12)는 에티오피아의 황제. 에티오피아의 영토를 거의 오늘날의 수준까지 넓히고 이탈리아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근대화 개혁을 추진해 에티오피아를 강국으로 발전시켰다.

메넬리크 2세가 있다면 메넬리크 1세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메넬리크 1세는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의 인물이자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다.

 

 


아두와의 위치

 


3) 이탈리아군이 2만 명인데 비해 에티오피아군은 8만 명에 달했고, 이탈리아군은 에티오피아를 얕잡아본 탓인지 장비를 충분히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이탈리아는 대패하고 말았고, 같은 해에 에티오피아와 아디스아바바 조약을 체결해 에티오피아를 독립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두와 전투는 남아프리카의 줄루 왕국이 영국군을 격파한 이산들와나 전투와 함께 아프리카인이 유럽인에게 거둔 대표적인 승리로 기억되고 있다.

 

 

메넬리크의 영토확장. 아두와 전투에서 승리한 메넬리크는 위의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에티오피아의 영토를 꾸준히 늘려, 거의 오늘날의 것과 같은 영토를 만들었다.
 
4)


5) OAU (Organization of African Unity)


6)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1930년에 즉위. 하일레 셀라시에 시대의 에티오피아는 잠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착실한 근대화 사업으로 1960년대까지 1인당 국민 소득 3,000$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는 최빈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00$를 넘지 못했을 시대이다.

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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