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완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부터 나일강의 상류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집트의 남쪽 끝 도시, 아스완이 보인다. 이집트의 큰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아스완도 나일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나일강의 동쪽 강가에 큰 도시가 들어서 있고, 서쪽해안으로는 사막이 보인다. 나일강이 얼마나 넓은지 그 위에 몇 개의 큼지막한 섬들이 있다. 섬들에는 문화유적은 물론이고, 수목원, 박물관, 독특한 누비아인 마을까지 볼거리도 각양각색이다. 나일강 위에는 낮잠을 즐기는 듯 물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전통배 펠루카들이 둥둥 떠다닌다. 수도와 먼 이집트의 끝부분이어서인지, 아스완은 북적북적대던 관광객들이 많이 줄어들어 한가한 느낌을 주는 도시이다.

 

수도와 멀고 한적해 보이는 이 도시는 얼핏 변두리 같다는 느낌을 주지만 사실 그렇게 밋밋한 도시는 아니다. 아스완은 그 역사가 이집트 고왕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도시이다. 이집트의 국경지역에 있기 때문에 고왕국 시절부터 군사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아스완은 남쪽의 이웃나라 누비아1)와 바로 인접하여 때로는 지배하고, 때로는 지배당하기도 하며 서로 문화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남쪽 나라에서 온 상인들에게 아스완은 이집트로 들어가는 입구도시였다. 그래서 아스완에는 예로부터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온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각종 물품이 거래되는 큰 시장이 발달했다. 아스완에서 상업이 얼마나 발달했었는지는 그 이름에 확실히 나타난다. 과거에 이집트에서는 아스완을 고대 이집트어로 ‘무역’이라는 의미의 스웨넷이라고 불렀고, 나중에 아랍어로 ‘시장’을 뜻하는 아수안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은 아스완이라고 불린다. 또한 아스완은 좋은 돌이 많이 났기 때문에 이집트의 거대 피라미드와 다양한 조각품들에 쓰이는 화강암을 공급하는 주요 도시이기도 했다.

 

아스완의 도심은 지금 대부분 나일강 동쪽 변에 위치하지만, 옛날 아스완에서 가장 발달했던 곳은 강변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옛날 아스완의 중심지는 나일강 위 가장 큰 섬인 엘레판티네섬이었다고 한다. 이 섬은 고대도시 ‘아부‘가 있었던 곳인데, 아부는 고대 이집트어로 코끼리와 상아 모두를 가리킨다고 한다. 섬 이름이 상아라니! 섬에서 상아시장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마치 제주도를 ’감귤‘이나 ’한라봉‘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집트의 끝이면서 입구이기도 했던 아스완에 있던 섬 도시 아부. 그 역사는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 나르메르가 지중해에서부터 아스완까지 아우르는 통일 이집트를 건설했던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로마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기원후 300년까지 약 3300년의 긴 세월동안 아부는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그리고 아부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할 때 밀려오는 물의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아부는 나일강의 근원이 되는 신인 크눔을 숭배하는 종교의 중심지였다.

 

크눔신은 초기 이집트 신들 중에 하나로, 양의 머리를 하고 있는 신이다. 처음에는 나일강의 근원이 되는 신이었으나 나중에는 생명을 창조하는 신으로 섬겨졌는데, 그 이유는 나일강의 물이 매년 범람하여 주위의 땅에 비옥한 흙을 실어다 주고, 건조한 땅을 적셔 생명을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신화에 따르면 크눔은 물레에서 진흙으로 아이들의 몸을 빚어 어머니의 자궁에 넣어놓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아이들을 점지해주시는 삼신할머니와 비슷한 일을 한다. 옛날 우리나라 여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부의 여인들도 크눔신에게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빌었을까. 크눔신을 믿는 종교의 세력은 아부의 역사와 함께하며 성장했고, 아직도 엘레판티네 섬에는 크눔신의 신전과 크눔신으로 여겨졌던 신성한 양들의 무덤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집트가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어 이집트에도 전파되면서, 고대 이집트 신들은 점점 버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크눔신을 섬기던 도시 아부도 쇠퇴하여 아스완의 중심은 동쪽 강변으로 옮겨가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엘레판티네 섬은 크고, 역사가 오래된 만큼 볼거리도 많다. 옛날 아부의 원형을 간직한 유적들과 멋진 아스완 박물관, 다채로운 누비안 마을은 아스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들이다. 먼저, 아스완 박물관은 엘레판티네 섬의 남쪽 끝에 위치해있다. 박물관의 입구로 들어가니 방 하나에 따로 전시되어 있는 양의 미라와 돌로 만든 관이 보인다. 이 양은 앞서 말한 크눔신과 관련된 신성한 양이라고 한다. 박물관의 중심부로 가면 아스완과 누비아 지역에서 발굴된 골동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옛날에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소품, 무기, 그릇, 수저 같은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물들은 유리진열장 안에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으며 설명까지 친절하게 되어있다.(비록 영어이지만.) 이제 박물관을 어느 정도 둘러보고 슬쩍 빠져나와 뒤에 있는 정원으로 향하기로 한다. 신기하게도 정원은 고대 아부 유적들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20세기 초에 tm위스와 독일에서 아부 유적들을 발굴하기위해 팀을 파견했고, 발굴팀은 기원전 3000년에서부터 기원후 14세기에 이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건물들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아스완의 도시 중심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아스완 댐이 있다. 이 댐은 외관이 썩 멋지지 않아 댐 애호가들에게서도 별로 사랑받지는 못하지만, 나일강을 통제하고 싶다는 이집트인들의 강한 바람이 담긴 의미심장한 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주변의 농경지에 농사를 지어 살아왔는데,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댐이 지어지기 전에 이집트인들은 매년 나일강의 범람에 의지하여 농사를 지어왔다. 그러나 나일강의 범람은 일정치 않아서 범람이 잘 된 해는 풍작이었지만 반대로 범람이 적었던 해는 손 쓸 도리없이 흉작이었다. 그리고 나일강이 범람하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어 세월이 지나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경지의 부족현상이 심해졌다. 건축기술이 발전하여 댐을 지을 수 있게 되자 이집트는 대규모의 댐건설에 착수했다. 1898년에 영국의 건축가 윌콕스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어 1902년에 완성된 것이 아스완 로우 댐이다. 그 후 한 차례의 증설 공사에도 불구하고 아스완 로우댐이 꽉 차자, 이집트에서는 7km 상류에 댐을 하나 더 짓기로 한다.

 

이리하여 지어진 것이 아스완 하이 댐이다. 기존의 로우댐과는 비교도 안되는 대규모의 공사였기 때문에 이집트는 자금조달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처음에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아스완 댐 건설을 위한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지만, 소련에게 무기를 조달받은 것을 계기로 지원이 끊긴다. 결국 이집트는 소련에게서 자금을 지원받아 하이댐 공사에 착수했고, 10여년의 공사 끝에 1970년 아스완 하이댐이 완공된다.  아스완 댐이 지어진 후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가 생겼는데, 이 호수의 이름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나세르’호가 되었다.

 


아스완 댐의 건설 후 나일강을 상당부분 통제할 수 있게 되어 농업용수 공급과 농경지 확장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수력발전도 가능케 하여 주변 도시의 전기공급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댐 건설 후에는 나일강에서 자연적으로 공급되던 풍부한 미네랄이 댐안에 쌓여있을 뿐 밖으로 나가지 않아 비옥하던 농경지가 점점 불모지로 변해가는 중이라고 한다. 또 바다에서는 어획량이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그뿐인가. 나세르호에 의해 원래 그 지역에 있던 문화 유적들은 이제 영영 가라앉아 버렸다.

 

아스완 댐의 건설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침수지역에 살고 있던 누비안인이었다. 그들의 마을이 호수 속에 잠겨버리자 그들은 북쪽으로 이주하여 아스완, 콤옴보 등지에 새로 마을을 지었다. 앞서 말한 엘레파티네 섬에 있는 누비안 마을도 그때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침수지역에 있던 문화유적들 중 아부심벨 같은 중요한 유적들은 유네스코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구해낼 수 있었던 다른 유물들은 아스완의 누비아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 아스완에서 누비안 마을을 구경하고, 누비안 인들이 만든 기념품을 살 수 있게 된 것도 아스완 댐 건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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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비아(Nubia)는 이집트 남부의 나일강 유역과 수단 북부에 있는 지역이다. 누비아 지역 대부분은 수단 영토에 있으며, 1/4 정도만 이집트에 속한다. 고대에 누비아는 독립 왕국이었다.

 

 

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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