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남아공, 남부아프리카 이야기

남아공의 백인과 언어 - 아프리카너(Afrikaner)와 아프리칸스(Afrikaans)어 -

africa club 2012. 7. 17. 22:03

 

 

남아공의 백인과 언어 - 아프리카너(Afrikaner)와 아프리칸스(Afrikaans)어 -

 

 

 

"아프리카너(Afrikaner)"또는 "아프리칸더(Afrikander)"라는 말은 혼용하여 사용되지만 아프리카너라는 표현이 좀더 현대적이며 상용되고 있다. 20세기 전에 ‘아프리카너(Afrikaner)'라는 말은 남아공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 “아프리카의 원주민(native of Africa)"이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이 말의 의미는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지칭하였다. 20세기초까지 아프리카너들은 주로 농부들로 도시화되지 못하였으나 1990년대 중반에는 전체 인구의 약 80%가 넘는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자주 농부라는 뜻을 가진 네덜란드어 “보어(Boer)", ”케이프 인(The Cape)", 또는 “케이프 네덜란드인(Cape Dutch)"로 불리어졌다. 이들은 주로 네덜란드의 후예들이며 독일과 프랑스의 자손들이 포함된다.

 

1830년대에 영국의 통치를 벗어나 대이주(Great Trek)를 하게 되는데 네덜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와 아프리칸스어의 발전이 이들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약 3년간(1899-1902)에 걸친 남아프리카 전쟁(The South African War)은 아프리카너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으며(예를 들어 Concentration Camp)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아프리카너 민족주의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8년 국민당의 정치적 집권을 계기로 아프리카너 민족주의는 60년대와 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990년 드 클레르크(F.W. de Klerk)는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하는 장기적 전략을 채택하여 아프리카너 정체성과 생존을 보존하고 모색하게 된다.

 

아프리칸스어는 계통상 게르만어에 속하며 약 200여년 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만들어진 젊은 언어다. 이 언어는 네덜란드어와 아주 유사하여 단어, 구 그리고 문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아프리칸스어가 19세기 후반까지 네덜란드어의 “크레올(creole)"로 간주되었으나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네덜란드어와는 다른 언어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언어인 것이 밝혀졌다. 잘 알려진 농담으로 네덜란드인들은 아프리칸스어를 ”어린아이 네덜란드어(a child's Dutch)"라고 불리어지며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네덜란드어를 “시대에 뒤진 오래된 아프리칸스어(an old Fogey's Afrikaans)"라고 한다.

 

 


아프리칸스어는 케이프(Cape)의 첫 번째 백인 정착자들의 언어인 네덜란드어로부터 발전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케이프에서 쓰여진 네덜란드어의 형태는 네덜란드어의 발음과 어형변화, 작은 범위와 구문과 어휘에서 차이점이 발전되었다.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이주한 정착자들도 얼마안가 곧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칸스어는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계 유럽인들의 언어의 혼합은 물론이고 노예들, 코이코이(KhoiKhoi)족, 반투 아프리카인 및 혼혈인 후예들뿐만 아니라 말레이(Malay)인종들과 포르투갈((Portuguese)인들의 언어가 복합적으로 혼합되어 만들어지게 되었다. 네덜란드어가 관료사회 언어로 남게된 반면 새로운 혼합어의 형태는 종종 ‘케이프 네덜란드(Cape Dutch)어, ’네덜란드 속어(slang Dutch)' 또는 ’부엌에서 사용되는 언어(kitchen Dutch)'로서 알려졌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별개의 분리된 언어로 발전되어 갔다. 그러나 이 때까지 아프리칸스어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언어이며 문학이나 문화적인 표현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아프리칸스어가 19세기 후반까지 네덜란드어의 “크레올(creole)"로 간주되었으나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네덜란드어와는 다른 언어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언어인 것이 밝혀졌다.

 

 

아프리칸스어로 출판된 첫 번째 책은 1856년에 나왔으나, 187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영국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문화적 표현을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었다. 케이프 타운 근교의 팔(Paarl)에 살고있었던 네덜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의 성직자인 두 또잇(S.J du Toit ; 1847-1911)은 Die Afrikaanse Patriot(1876)와 간결한 문법(1876), 역사(1877)를 출판하였는데 이 모든 것들은 말하여지는 언어로써 뿐 아니라  쓰여진 언어로써 아프리칸스어의 성장을 도와주는 공헌을 하였다

 

이 언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나미비아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남아공에서만 약 580만명(전체 인구의 약 14.3% ; 인종적 분류로 보면 백인은 10.9%로 약 450만, 칼라드는 8.9%로 약 360만이다.)이 제 1 언어인 모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주로 백인 아프리카너, 칼라드가 속한다. 현재 아프리칸스어는 문학, 과학기술, 그리고 상업분야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으나 과거의 문화적 전성기와는 달리 아프리칸스어의 지위는 하락하고 있다.

 

 

"본 게시글은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은 내용으로 무단복제를 하실 수 없습니다. 꼭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