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의 대표적 노예무역항 중 한 곳이었던 베넹의 Ouidah 해변이다. 야자수 출렁이는 황톳길, 불과 100여년 전까지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이 길을 걸었고, 대서양 너머로 팔려갔다. 16세기 무렵부터 포루투갈인에 의해 시작된 노예 무역은 17, 18세기를 거치면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유럽국가들이 그들의 식민지에 필요한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가세하여 그 절정에 달했다. 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사탕수수, 담배, 면화 재배를 통해 얻어지는 막대한 이익을 위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해안에 상륙한 상인들은 부족간의 전쟁을 일으키게 하여 생포된 노예를 총 등의 유럽에서 생산된 물건과 교환하였고, 이러한 교환은 더욱 많은 부족간의 전쟁을 불러왔다. 이렇게 팔려지는 노예를 통해 대서양을 가운데 둔 이른바 삼각 무역이 발전하게 되었다. 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노예들에 의해 생산되는 천연 원료가 유럽으로 들어가 가공을 거쳐 상품이 생산되었고, 이렇게 생산된 상품은 다시 아프리카로 건너가 노예들과 매매되었다. 일련의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삼각 무역이 수 세기동안이나 유지될 수 있었다. 플랜테이션 농장의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아메리카에 도착한 노예들의 수명은 매우 짧았으며, 따라서 아프리카 노예에 대한 수요는 지속될 수 밖에 없었다.
정확한 수치를 산출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대략 15세기 말부터 노예무역이 폐지된 1870년까지 적어도 20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무역을 통해 아메리카로 팔려갔다. 이 중 25%에서 50% 정도의 아프리카인이 대부분 운송 도중에 죽었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글에 의하면 수백명의 노예들이 갑판 아래 빽빽하게 수용되었으며, 물과 음식의 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이 배설해 내는 각종 오물위에 널브러진 채로 운송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절반 정도만이 생존해 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통계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노예무역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역사가들에게 있어 뜨거운 논란이 되어 왔고, 진실로 어느정도 인지는 알 수가 없다. 정확한 숫자가 얼마이든 노예무역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잔악한 행위이며 비인간적인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불어로 Route des Esclaves라는 이름의 4km 남짓한 이 길을 걸었다. 길이 끝이나면서 해변에 다다른다. 회색 시멘트의 추도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The Point of No Return',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이라고 새겨진 추도비는 찾아주는 이 그리 많지 않음에 더욱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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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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