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 대한 정보

Ⅰ. 일반
1. 위치 : 북아프리카 중앙부, 지중해 연안
2. 기후 : 북부:지중해성 기후, 남부:사막성 기후
3. 면적 : 1,759,540㎢(한반도의 8배)
4. 인구 : 550만명(1997)
5. 수도 : 트리폴리(Tripoli 170만명)
6. 주요도시 : 벵가지(Benghazi 80만), 미수라타(Misurata 40만)
7. 주요민족 : 아랍(Arab)인, 베르베르(Berber)인
8. 주요언어 : 아랍어(영어, 이태리어도 통용)
9. 종교 : 회교(Islam, 97%)
10. 교육 : 의무교육 - 대학까지 무료교육, 문맹율 - 60%
11. 언론:
- 신문 : 알 파즈르 알 자디드(약 5만부);
- TV : 국영 테레비젼(1 및 2방송);
- 라디오 : 국영(1 및 2방송, 이슬람방송)

Ⅱ. 정치
1. 국가성립 : 2차대전중 영, 불에 의하여 분할점령, 51년 유엔결의로 왕국 탄생
2. 독립일 : 1951.12.24 국경일 : 9.1(혁명기념일)
3. 정체 : 사회주의 인민공화제
4. 원수 :  무아마르 알   가다피(Muammar Al-Qadhafi)  Leader of  the  Great First  of September Revolution
5. 의회 : 총인민회의
6. 수상 : Abdul Majeed Al Gaud
7. 외상 : Omar Mustafa Al Muntasser
8. 주요정당 : 없음
9. 국제기구가입   : UN(1955.12),   ILO,  FAO,   UNESCO, WHO,  IFC,   IDA,  IMF,  ICAO, UPU,OPEC, 비동맹
10. 영해 : 12해리
11. 국방 : 85,000(육군 55,000, 해군 8,000, 공군 22,000)

Ⅲ. 경제
1. 국민총생산량 : $332억(1995) (1인당 $5,650)
2. 계획및중점정책 : 6차 5개년개발계획, 농공업개발계획 추진
3. 화폐단위 : Dinar($1=0.36D, 1995.1)
4. 주요자원 : 석유(매장량:450억배럴,일산:139만배럴), 천연가스
5. 무역(1996) : 수출 $97억, 수입 $78억
6. 외채 : 약 49억불


리비아의 아랍(Arab)족

인구 : 5,200,000명 (리비아 인구의 97%이며 도시화율은 70%이다.)
언어 : 모든사람이 아랍어를 사용한다. 또한 20%정도의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
위치 : 아랍족은 리비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수 종족으로서 리비아 전역에  두루 거주한다. 다만 리비아는 해안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토가  사막(전 국토의 90% 이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로 해안지역인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몰려 살고 있다.
경제 : 이들의 전통적인 산업은 농업이었으나  1959년 석유가 개발되자 대규모의 이농현상이 빚어졌다. 1961년 석유수출이 개시됨에 따라 석유산업을  기반으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나 석유 일변도의 취약한 산업구조를 이루고 있다. 리비아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하지만 89년부터는 부분적인 자유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종교 : 수니 이슬람이 국교지만 세속화 경향이 강하다. 다른 종교의 포교는  불법이고 '이슬람 선교'를 위해 매년  상당한 액수의 예산을 세운다.  이슬람의 행사와 예배가 엄격히 지켜진다.
기독교 현황 : 기독교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무지하다. 선교에 대해서도 완전히  닫혀있고 매우 적대적이다. 알려진 그리스도인이나 사역단체 혹은 선교사는 없고, 해외 이주자를 위한 작은 교회와 로마 카톨릭 성당이 5개정도 있을 뿐이다.

리비아의 근대사

1912년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으나2차대전 후  영국,프랑스가 분할통치.  1951년 독립을 선언하며 왕국을 수립(아이르 이드리스 국왕). 1969년 9월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운 자유장교단이 무혈쿠데타에 성공, 리비아아랍공화국(LAR)을 탄생시키고 혁명평의회가 실권을  행사. 1975년 우라늄 매장지인 차드 북부 사하라를 합병했고 1977년 국명을 사회주의 인민 아랍공화국 (SPLAJ : Socialist People's Libyan Arab Jamahiriya) 으로 고치고 혁명평의회를 전인민회의로   개편.  혁명이후   국가  지도자인   무아마르   가다피는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을 혁명 공약으로 삼아 교육혁명과 농업혁명 등을 추진해 왔다.

정치상황
1977년 3월 통치기구를 개혁해 전인민회의 서기국(5인으로 구성)이 실권기관이 되어 가다피가 서기장으로 취임. 77년 3월 인민주권확립(신헌법)채택, 인민의 직접 통치체제를 확립하고 인민위원회(내각) 창설,  카다피는 3월 전인민회의  서기직을사임했으나 `9월혁명 지도자'라는 호칭으로 국가원수직 보유. 아랍사회주의연합이 유일 합법정당.

대외관계
아랍사회주의를 제창하며 `아랍통합의 기수'로 자처하는  가다피는 아랍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반시오니즘을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음. 86년 1월 미국은 가다피의 국제테러행위지원에 대한 보복조치로 미국인과 미국기업의 여행금지  및 거래중단 등 경제제재를 발표한데 이어, 4월 트리폴리 등지에  공습을 감행, 100여명의 사상자를 냄.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또 88년 270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 팬암기 폭파사건의 용의자로 리비아인 2명을 지목, 인도를 요청했고 리비아  정부는 이들의 인도를 거부함에따라 미국과  영국 등은 리비아에 경제제재를 가함으로써 사태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음. 92년 3월 31일 유엔 안보리가 항공기 운항금지, 무기금수 등 제재결의. 95년 4월 19일 이를 무시하고 리비아기의 사우디 운항을 강행.

리비아 경제
세계 4위의 석유생산국으로 OPEC에서 강경입장. 석유  무기화를 제창하며 생산제한, 금수,  가격인하 등의  문제에 선봉에 섬. 매장량 211억 배럴(세계 8위).

리비아의 사회문화
문맹률은 61%, 초등교육은 의무제, 대학까지 무상교육.  문화혁명을 추진, 각종 표시에서 외국어 일소. 아랍어 사용 철저. 신문 3개는 모두 정보, 문화성에서 발행하며 라디오와 텔레비젼 방송국 2개 모두 국영. 국영 자마히리야(JANA)통신이 있음.

대한(對韓)관계
남,북 동시수교. 한국과는 80년 12월, 북한과는 74년  1월 각각 외교관계 수립. 대한수입 1억 3973만달러, 대한수출 739만달러 (92년  11월). 동아건설이 리비아대수로 1,2단계공사를 수주하여 완료중이며 3,4단계 수주예상.


동아건설의 대수로 공사 개요

▲ 총 5단계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리비아 대수로공사는 리비아 동남부 및 서남부 내륙지역 지하에.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수자원(추정 매장량  35조톤 : 나일  강의 200년 유수량)을 취수, 리비아 북부지역  지중해 연안과 수로 인근의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그리고 공업지역의 공업용수를 공급하여 사하라 사막 북부를 옥토로 바꾼다는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 대수로 공사는 녹색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사업으로 리비아 정부는 특별법까지 제정하여 대수로공사를 국가 최우선 사업으로 지정하고, 이 공사를 방해하는 경우  중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이 만들어져 있기도 합니다.

▲ 현 리비아정부는 혁명집권 후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라는 기치 아래  산업 및 사회복지 향상을 위한 종합계획을.수립하고 각 분야에 걸쳐 정책적으로  혁명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국기도 그린(Green) 단일색으로 변경(녹색혁명은 전국토의 옥토화 내지는 초원화를 의미함) 했습니다.

▲ 방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대수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추진 하기  위해 공사 발주 당시 이미 기금을 확보하였으며. 특별법상 GMR Tax를 신설, 자금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 `리비아 대수로공사'는 국가지도자인 가다피의 혁명공약사업으로 545만 리비아인들은 한정된 원유고갈 시대를.대비하고 강대국들로부터 식량을 미끼로 한 간섭을 배제하며, 식량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아랍인(1억8천만)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식량생산국이 됨으로서 아랍통일 꿈을 실현시키는데 주도권을 잡고, 다시는 외세에 짓밟히지 말자는 국민감정에 기반을 둔 사업입니다.


대수로 공사 효과

▲ 1단계 통수식에 이어, 2단계공사의 통수식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됨으로써 `녹색혁명'을 꿈꾸는 리비아 국민의 열망이 더욱 가시화 됐습니다.

▲ 한편, 지중해 연안의 주요 거점도시인 벵가지와 서트, 트리폴리 지역의 사막지대의 옥토화가 가속화 됨으로써 리비아의 경제는 더욱 안정적인 발전을 기약할 수 있게 돼 리비아 국민의 삶의 질을 한층 높일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그동안 불모의 땅으로만 생각하던 리비아 사막이 한국의 동아건설에 의해 곡창지대로  탈바꿈 함에 따라 자급자족을 향한 리비아 정부의 원대한 목표가 하나, 둘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리비아 양국간의 경제적인 협력관계가 . 이를 계기로 더욱 공고해  질 것으로 보이며 양국간의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의 교류도 , 또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이 공사를 통해 우리 한국이 얻은 경제적 이점은 외화가득,  고용창출, 기술축적 효과, 그리고 그에 따른 자신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 향후 공사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가 약  300억달러에 이르는, 문자 그대로의 초대형공사인 만큼 외화가득 효과는 막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2천 6백만명에 이르는 연인원 (한국인 1,250만, 3국인 1,346만)에서 보듯이 여기서 얻는 고용창출 효과 또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 아울러 이 공사는 한국의 동아건설이 유수의 외국건설업체를 하청업체로 거느리고 참여해,신기술을 개발하고, 노하우를 축적함에  따라 우리 건설업체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원청건설사로서 완벽하게 공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효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 특히 이 공사를  계기로 한국의 건설산업은 종래의  노동집약적 건설수출에서 벗어나 기술집약형 건설수출을 하게 됐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소득 중 하나입니다.


공사현황

▲ 리비아대수로 1단계 공사 내용
리비아 동부의 아즈다비아(Ajdabiya) 남방  약 400Km 지점인 사리르(Sarir)  우물지역과 약 670Km 지점인 타저보(Tazerbo) 우물지역의 지하수를  개발해 북부 지중해 연안의  아즈다비아를 경유, 서트(Sirt)와 벵가지(Benghazi) 지역까지 1일 200만톤의 지하수를 송수하기 위한 공사로 총 연장 1874Km의 길이에 관을 생산, 운송, 매설 공사

▲ 리비아대수로 2단계 공사 내용
리비아 서부의 트리폴리(Tripoli) 남방  약 620Km 지점인 Jabal  Hasouna 지역의 지하수를 개발, 수도인  트리폴리지역까지 1일  200만톤의 지하수를   송수하기 위한 공사로  총연장 1755km의 길이에 관을 생산, 운송, 매설하는공사

▲ 리비아대수로 2단계 추가공사 내용
2단계 공사의  북쪽 끝인  타루나/제파라(Tarhunah/Jeffara)지역에서  서방쪽 아부지안(Abu Ziyyan)에 1일 80만톤을 송수하는 관로 공사(83Km)와, 트리폴리 부근에서 서쪽 비어알가남(Beer Al-Ghanam) 지역에 1일 100만톤을  송수하기 위한 관로 공사(68Km),  그리고 2단계 우물지역의 1일 200만톤 취수 능력을 250만톤으로 확장하기  위한 취수관로(185Km)와 신규 우물 개발(116개) 공사

▲ 리비아대수로 3단계 공사 내용
3단계 공사는 1단계 공사의 송수량을 증대하기 위한 공사로  다음의 3개 지역 송수관 건설공사로 총연장 1300여km

1) 1단계 송수시설의 서쪽 끝인 서트지역에서 2단계 공사구간까지 연결하는 알 가르다비아/아스다다(Al-Gardabiya/Assdada)구간의 송수관 건설공사로 총 연장 190km (3단계 1차분 공사)

2) 리비아 동남쪽 쿠프라(Kufra) 지역의 취수장  개발과 사리르 남부지점(1단계 공사구간)까지의 송수관 건설공사

3) 1단계 지역인 아즈다비아에서 리비아 북동쪽  토브룩(Tobruk)까지 연결되는 송수관 건설 공사


화폐단위

리비아의 화폐 단위는 '디나(D/L)'인데, 정부 공시환율로 100달러  정도를 환전하면 33디나 정도로 바꿀 수가 있으나 암시장에서는 그 열배인 330디나 정도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그런일은 드무나 거래를 하다가 적발되면 구속되는  수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식적으로 리비아내에서는 달러를 소지할 수 없게 되어있다.


인삿말 및 생활언어

리비아는 아랍 베르베르족의 혈통에 유럽 민족(특히 이태리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인지 기존의 아랍어에 베르베르어와 이태리 방언등이 섞여 있다.  이태리어의  영향을 들자면 음식의 경우 '만자리야'이며 아기가 '밤비노'인 경우등을 들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표준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며 부수적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언어 습관을 들여다 본다면 할 말은 다 하고 살 수 있는곳이 리비아라고 생각한다.

케이파 할락?(어떻게 지내?)
쉰 아크바락?(근황이 어때?)
쉬누 할(어때?)
보통 만나면 오른 손을 가슴에 얹었다 떼고 일분정도 같은뜻의 말을 계속 반복한다.
응답 - 꾸와이스 알 함두릴라!(남자일 때)
       꾸와이사 알 함두릴라(여자일 때)

Welcome - 아흘란 와 싸흘란
응답 - 아흘란 비크(남), 비키(여), 비쿠(복수)

Bye - 마앗 쌀라마, 일랄 리까.

And you? - 와 엔따(남자에게), 와 엔띠(여자에게)

How much does it cost? - 비 캄 , 캄 따만, 캄 풀루쓰?  깎을 때는 '낚쓰(부족하다)'
'캄'은 How many or How much의 뜻이다.
모두 얼마 입니까? - 마주무아 캄?  꿀루 캄?
비싸다 - 가알리,  싸다 - 라키쓰

Thank you - 슈크란

What is this? - 쉬누 하다(하디히) 쉬누'는 '무엇'이냐는 뜻이고 '하다(하디히)'는 '이것'이라는 뜻이다.

What's your name? - 쉬스막? 쉬누 아스막?

Where are you from? - 엔따(엔띠) 민웬?  민 씨르트 (씨르트에서 )'웬'은 Where의 뜻이고 '민'은 from 이다.

I'm from Korea - 아나 민 꾸리야(물론 쟈말리야이다. 샤말리야는 북한) 천천히,조금 - 슈웨이 슈웨이, 슈웨이야.   반 반 - 누쓰 누쓰

I'm sorry - 마알래쉬        뭐가 문제니? - 쉰 무쉬킬라?

No problem - 무쉬 무쉬킬라.  마피쉬 무위킬라.

Yes - 아이와 , 나암. No - 라(단호하고 강하게)

O.K - 마쉬, 하디르, 바-히

Sit down, Here you are - 타파딸
내일 - 부크라, 고두아 . 오늘 - 알욤.   어제 - 암쓰, 알바리하
가능합니까 - 뭄킨.   불가능합니다 - 무쉬 뭄킨

Finish, done.. - 칼라스
직진 - 알라 뚤
오른쪽 - 야민, 왼쪽 - 야사르, U턴 - 리프
버스 - 우뚜비스 , 하필라

Go away. Leave - 엠쉬(다소 명령조의 분위기), 마 쌀라마

Again, another - 마르라 따니(아띠니 푸르싸 마르라 따니 - 한번 더 기회를 줘)

Do you have ---? 안닼(남) 안딬(여)....?

Let's go(do) - 얄라 비나!  헤야 비나!

I want - 아나 누삐,        I hope, By(If) God's will - 인슈알라

I understand - 아나 페헴, I don't understand - 아나 무쉬 페헴

I know - 아나 아아리프 , 아나 아드리

I remember - 아나 페케르

Do you know...? - 엔따 타레프....?  할 타레프?

I want to see... - 누삐 아슈프

Please(부탁할 때) - 민파들랔(남) 민파들맄(여), 라우 사마흐트(남)  라우 사마흐티(여).

What do you want? - 엔따(띠) 쉰 투삐?

How old are you? 안닼 캄 싸나?

Just a moment - 캄싸 다끼끄. 바으다 슈웨이야 라우 사마하트(티)

Not yet - 마자알
축하할 때 - 마브루크

Happy new year - 꿀루 사나 와 엔뚬 꾸와이쓰!

Like this - 히끼

There is no... - 마피쉬



역사
리비아의 역사는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다. 지중해계 인종 리비아인과  아프리카계 인종 에티오 피아인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듯하다.  그후 BC 10세기에 이르러 트리리폴리타니아로 그리 스인이 와서 지중해 무역의 기지로 정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후 트리폴리타니아는 카르타고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번창했다.  BC 2세기에 카르타고가 몰락한 후에는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로마 지배 아래에서의 리비아는  무역활동의 기지로서 올리브, 포도, 보리, 밀 따위를 로 마에  공급하여, '로마 제국의 곡창'으로 불 리는 등 크게 번창하였다. 그러나 로마의  쇠퇴와 함께 반달족의 침공을  받아, 5세기에는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6세기에 비잔틴 제국의 회복돠 함께 일시적으로 번영을 되찾았으나,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여기에  아라비아인이 침입한 것은 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인데, 670년 우마이야 왕조가 튀니지의 카이루안에  마그레브 지방을 통치할 총독을 배치한 뒤로 이슬람화되기 시작하였고, 아라비아어가 보급되었다. 11세기 중엽 아라비아인들이 카이로의 파티마 왕조에게 추방당하여 리비아에 이주했다. 그 결과로  부족 간의 항쟁이 벌어져 국토가  황폐해지고 동시에 아라비아인과  베르베르인의 혼혈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6세기에 한때 스페인과 몰타의 기사단의 지배아래 놓이기도 했으나 1561년 오스 만투르크 제국의 지배권에 들어갔다. 그후  1911년 이탈리아에 지배당하기까지 오스만투르크 제 국이 세운  괴뢰정권의 통치아래 있었다.  1911년 오스만투르크가 발칸 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에 이탈리아가 트리폴리에 침공하고, 그 이듬해에는  발칸전쟁에서 패한 오스만투르크와 조 약을 맺어 리비아를 식만지로 삼았다. 그러나 세누시 파 교단을 중심으로 한 리비아인의 저항 때문에,  해안지대 이외의 식민지화는 좀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대두와 함께 1940년에는 완전히 식민지가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후 패전국 이탈리아의 식민지 처리를 유엔  총회의에서 논의한 결과 1951년 리비아는 트리폴리타니아, 키레나이카, 페잔 3개 주의 연방제에 의한 독립국으로 인정, 세누시 파 교단의 수장 모하메드 이드리사가  국왕이 되었 다. 1963년에는 헌법 개정에  의해 연방제가 폐지되고, 단일국가로서의 리비아 왕국이 탄  생했으나, 1969년 카다피에 의한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 군주제는 폐지되었다.


지리
북아프리카의 지중해안에 위치하고, 국경은 이집트,  수단, 차드, 니제르, 알제니,  튀니지와 닿아 있다. 지중해의 해안선은 2000킬로미터에 이른다. '리비아'란 말은 일찍이 북아프리카 일대의 사막을 가리키던 그리스어인데,  그 이름대로 해안지대를 제외한  국토의 약 90%가 사막지대이다. 국토 면적은 약 177만㎢로 동부의 키레나이카 지방, 서부  해안지대의 트리폴리타니아 지방, 그리고 서남부의 사막지대 페잔 지방 등 세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을 향해서 돌출한 표고 약 700미터의 자발 알 아흐다르 고원을 포함한 키레나이카 지방의 중심지는 벵가지이다. 트리폴리타니아 지방은 해안선에서부터 차츰 높아지는 단구가 알주프라 오아시스에 이르기 까지의 지역으로서 트리폴리가 그  중심이다. 이상의 북부 해안지방에 전인구의 90%가 집중되어 있다. 국토의 0.5%밖에 안되는 농업지대도 이곳에 있고, 주로 곡물이 재배되고 있다. 페잔지방은 사하라 사막이 연장된 곳인데, 세부하 등이 오아시스들이 군데군데 있다.


기후
대기후는 해안지방의 경우에 지중해성 기후로서, 연간  평균기온 20도 전후이고, 12월에 강우량이 가장 많아 150밀리미터 전후에 이른다. 봄, 초여름, 가을에는 때때로 기브리라고 불리는 건조한 연풍과 모래폭풍이 사막에서 엄습한다. 고온인데다가 모래먼지로  가득 찬 공기에 싸이면 매우 불쾌해지지만 2, 3일 만에 괜찮아지는 수가 많다. 내륙부는 사막기후로서 평균기온이 훨씬더 높고, 강우량은 연간  10밀리미터 이하로 매우 적다. 하계  4월 - 10월 : 6∼8월은 극도로 더움. 동계 11월 - 3월 : 온난하고 가끔 비가 옴.


사회 문화
정식국명은 'Socialist People's Libyan  Arab Jamahiriya'  이고, 총인구  약 374만명이다. 엄정한 이슬람주의에 입각해서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적인 국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나, 카다 피의 테러지원 행위 때문에 리비아는 시만 국제적 고립속에 있다.  국가 경제는 석유산업에 의존 하고 있다.  석유매장량은 세계 최대라는 쿠웨이트에  못지 않다고 한다. 때문에 정부는 석유 산업을 기간으로 하는 경제정팩을 중시한여 관광사업에는 별로 힘쓰지 않고, 특히 1987년 8월 이후로는 일반 외국인에게  좀체 입국 비자를 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문화유적, 아름 다운  해안선 등의 관광자원에 기초한  관광정책이 세워지면서 얼마 전에는 3500만 달러를 들여서  트리폴리의 붉은 요새에 자마히리 박물관을  세우는 등 몇몇 박물관을 새로이 세웠다. 또한 1989년 11월부터는 일반외국인 고나공객에의 비자 발급 제한도 완화되었다. 한국은 건설 수주 (대수로공사)를 주로 하여 연간 1억 500만 달러를 수출하고 2600만 달러 어치를 수입하여 약  1억 2400만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였다.(1989) 그러나 대수로공사  제2차 공사까지  동아건설에서 수주함에따라 리비아와의 교역은 더욱 증대될 전망이다.


인종, 언어
인구는 약 500만명이다.  주로 아라비아인과 베르베르인으로  구성되어 있다.키레나이카 및 트리 폴리타니아에는 아라비 아인이  많고 남부의 페잔 지방에서는  아라비아, 베르베르, 흑인의 혼혈이 보인다. 남서부에는 투아레그 유목민이 있다. 이밖에 아랍 각국에서 온 노동자. 동유럽, 인도, 파키스탄, 미국, 영국,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한국등의 사업관계자 등이 약 30만 명 있다. 공용 어는 아라비아어  이다. 입국카드 등도 아라비아어만으로 쓰며, 시내의 표지등에도 외국어는 쓰지 않고 있다. 그나마 약간 통용되는 외국어는 영어이다.


종교
종교는 대부분이 수니 파 이슬람교이다. 그리고 카톨릭교와 유대교도 조금 있다. 보도기관은 모두 국영이다.



유럽에 유화 제스처

리비아는 유엔이 자국에 부과하고 있는 경제 제재조치의  해제를 위해 도움을 제공하는 일부 유럽국가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유럽국가에 주재하고  있는 자국 대사들을 통해 현재 계획중인 주요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조심스럽게 제공하고 있다. ‘아프리끄’지에 따르면 리비아는 현재 45억달러 규모의 원유, 가스산업 관련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사업전망 조사 및 연구, 유전  확장, 3개 정유소의 현대화, 쎄브하 지역의 제 4 정유소 건설이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이다.

또한 리비아는 튀니지의 경계선과 이집트의 경계선을 연결하는  선로(線路)와 북부의 지중해 해안과 남부의 페잔을 연결하는 선로(線路)를 건설하기 위해 4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3천km의 철도망,  96개의 역사(驛舍), 544개의 선교(線橋)를 건설하고 244개의 기관차를 구입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와  함께 리비아는 재래식 항공기를 교체하기 위해 25기의  유럽산(産) 항공기를 구입하는데 25억달러의 경비를 지출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흘리고 있다.

한편 유럽 주재 리비아 대사들에게 보낸 기밀 서류에 따르면, 리비아는 봉쇄조치가 해제될 때를 대비해 트리폴리,  벵가지, 쎄브하 공항과 같은  주요 기간산업 프로젝트에 많은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보들이 사실인 경우  위에 언급된 프로젝트에 약 1백10억달러의 경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동시에 리비아가 과연 이러한 경비를 충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랍 연맹은 경제 제재조치로 리비아는 2백35억달러의 손실을 입었으며 유가하락은 리비아의  수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한다. 게다가 리비아는 지난 6월에 개최된 제2차 OPEC 정상회의 결정안에 따라 원유생산을 일일 13만배럴씩 감축해야 한다.  최근들어 세계 주요 원유생산회사들이 리비아에서 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정했으나 1998년의 원유생산은 봉쇄조치에 의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재  조치로 인해 유전지대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장비의 사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비아 전문가는 리비아정부가 재정감축을 실행하기 위한 1998년  초의 계획에 따라 1.3% 이상 소비를 줄여야한다고 말한다.  실질적으로  리비아가 역점을  두고  있는 대수로  공사(the  Great Man-Made River)를 포함한 모든 계획들에 대한 예산삭감이 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지출예산을 줄임에 따라 이러한 프로젝트의 완성 시기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예산이 삭감되고 GDP 성장률이 -1%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리비아가 과연 새로운 프로젝트에 소요될 1백10억달러에 달하는 경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시되고 있다.


●OPEC(석유수출국기구) : 주요 석유수출국의 모임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베네수엘라, 쿠웨이트, 이라크 등 5개국이  석유수입의 안정적인 확보를 목표로  1960년에 결성했다. OPEC는 가격카르텔뿐 아니라 생산카르텔의 색체도 띠고 있다. 현재 회원국은 알제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리비아, 아랍에미레이트연방, 이란,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이라크, 카타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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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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