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관

o 공식국명 : 수단공화국 (The Republic of the Sudan)

o 수 도 : 카르툼(KHARTOUM)

o 위 치 : 아프리카 대륙 동북부 이집트, 이디오피아,  챠드, 콩고, 우간다, 리비아, 에리트리
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케냐 등과 접경. (인접국 9개국)

o 기 후 : 북부 - 사막지대 (섭씨 40도이상 건조)  

중부 - 사바나지대 (우기와 건기구분, 일교차 심함)

남부 - 열대우림지대 (우기 8개월, 강우량 2천미리)

* 카르툼 지역 기후 - 최고 : 6월 (섭씨 26도 - 45도)

최저 : 1월 (섭씨 16도 - 32도)

4월 - 10월 : 모랫바람(Habub) 계절
  
수도 카르툼의 기후는 일년 내내 높은 편이고  대개 11월∼3월, 4월∼6월, 7월∼8월, 9월∼10월의 4가지로 나눠진다. 11월∼3월 사이에는 비교적 서늘하고, 연중 가장 참고 견디기  쉬운 시기로 비는 내리지 않고 공기는 건조하며 오히려 밤에는 춥게 느껴질 정도이다. 3월 하순에서 4월에 걸쳐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여 연중 가장 더운 계절이 되는데 이때 옥외의  기온은 섭씨 50℃ 이상에 달한다. 이  시기에 하부부(HABOOBS)라고 불리는 모래먼지폭풍이 시 하는데 5월∼6월이 가장 많고 7월∼8월까지  이어진다. 여러 종류의 하부부(HABOOBS)가 있는데 맹렬한 것은  그리 자주 오지는 않지만,  소규모의 하부부(HABOOBS)는 빈번한 편이다.

하부부(HABOOBS)가 습격해오고 있는 사이에는 모래먼지가 강풍으로 난무하고, 낮에도 어둠침침해지며 시계(視界)도 극도로 좁아진다. 물론 집은 거의 꼭 문을 닫아두어야 하고 워터쿨러는 정지시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실온은 더욱더 상승한다. 이렇게 문을 닫아두어도 모래먼지는 공기와 같이 실내로 들어오기 때문에 가장 불쾌한  시기가 된다. 그러나 하부부(HABOOBS) 후에는 비가 이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온도도 낮아지고 지내기 쉬워진다. 7월에서 8월은 우기이지만 내릴 때에는 스콜같이 내리는 편이라 우기라고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우 는 대개 9월 가량까지 이어지고 그후  9월부터 10월까지는 맑은 하늘이 이어지기 이전의 혹서시기이다. 현지인중에는 이 시기가 5월에서 7월 사이보다 더워서 불쾌하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북부에서는 하부부(HABOOBS)가 자주  발생하며, 남부의 大저습지대(사드)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우계가 8∼9개월간 이어진다.


o 면 적 : 2,505,813 평방 킬로미터 (한반도 면적의 11.3배,  아프리카 대륙의 8.3%로 아프리카 최대)  

작열하는 사막의 나라 수단은 아프리카 대륙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집트,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자이르, 중앙아프리카, 챠드 및 리비아의 근접한 8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총면적 2,505,813㎢의 아프리카  최대 나라로 한반도의 약  11.4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북위 4°에서 22°에 이르는 남북 약 2,250㎞, 동서 약  1,930㎞의 지역을 점유하며 그 지형은 대개 표고 50m 이하의 평탄한 지형이다. 1994년  1월 1일부로 전국을 25개의 주로 분할한 수단은 全국토의 약 12%가 농지이며 18%가 삼림이 차지하고 있다. 나라의 대부분은 대평원이고 서쪽은 나일강과 콩고강의 분수령까지, 동쪽은  홍해연안의 구릉지대까지 넓게 퍼져있다. 광대한 사막과 함께 지리상 가장 중요한 것은 수단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총길이 약 6,700㎞의 나일강이고, 우간다의 빅토리아호에서 출발한 백나일강과  에티오피아의 타나호에서 출발한 청나일강이 카르툼에서 합류하여  나일강의 본류가 되고, 이집트를 지나 먼 지중해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 지세  
수단은 우간다의 빅토리아호에서 출발하여 북상하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의 타나호를 출발하여 서북상하는 청나일의 양대강이 수단 중앙부의  카르툼에서 합류하고, 이집트의 국경까지 북상하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모든 국가기능이 발달하고 있다. 수단은 기후상 이집트와의 국경에서부터 카르툼까지의 북부 즉, 북위  22°에서 16°, 북위 16°에서 10°까지의  중부 및 북위 10° 이남의 남부지방으로 나눠진다. 북부는 주로 사막지역으로 되어 있고,  나일강 및 그 지류에 닿아 겨우 발달한 녹지대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다른 한편 카르툼 이남의 중앙부에서는 백·청 양나일강 사이의 삼각지대에 관개농업이 집중 발달하고 카르툼을 중심으로 수단에서 가장 진보한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  관개지대는 게지라 (섬이라는 뜻) 지역으로서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센나르 댐으로 관개(灌漑)하여 수단의 외화소득의 반정도를 점유하는 면화를 다량으로 생산하며  그 외에도 주된 농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남부는 광대한 늪지역과 아프리카 특 의 사반나 지대로 이뤄지며 동아프리카와 콩고에 보이는 것 같은 열대성 삼림이 있어 농경에는 적합하지만 아직 미개발단계이다.

나일강의 동측에서 부분적으로 강이 유입되는 굴곡부를 따라 둘러싼 사막을 누비아  사막이라 부르며  서 은   리비아 사막이고 중앙사하라로   이어지고 있다. 서부의  산악지대에는 3,000M를 넘는 고산도 있지만 대부분은 표고 350∼500M의 모래언덕이고, 특별히 현저한 지형상의 특징은 없다. 또 우간다 및 에티오피아의 국경 가까이에 동물보호지역이 있 , 불충분한 설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구미에서의 사파리 여행자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수단에는 사자, 표범, 코끼리, 기린, 얼룩말, 하마, 침팬치 등의 야생동물과 수많은 종류의 영양이 살고 있으며 북위 12°이남지역에는 체체파리가 서식하고 있다. 백나일 직선화(直線化)때문에 죤글레이 운하의 사업은 1986년에 중지되었다. 오히려 이 운하의 완성에 따라 스토 평야 세계 최대의 늪지는 바싹 말라가고 야생동물은 절멸, 사막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이며 북부의 사막은 점점 중앙의 목초지와 남부의 열대 관목으로 바뀌고 있으며, 나일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 1985이후 1,500,000명이상이 전쟁 계획적인 대량학살, 기근으로 사망,5,000,000명이상의 남부수단인이 국내에서 거주지를 상실하고  난민이 되었으며, 다른 200,000명도 주변국가에서 남민으로  거주하고 있다. 대도시권은 1,676,000이지만 여기에 대략 2,800,000의 주로 남부 난민이 추가되었고 도시화는 30%

o 인 구 : 3.071만명(96년 EIU 자료, 평균수명 57세)  년 증가율 2.9%
  
수단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996년 추정인구는 3천만명이고 인구증가율은  2.9%, 인구밀도는 1㎢당 7.1명이다. 그러나 최근의 수단 주변의 국제정세의 악화 및 남부내전에 따른  다수의 난민이 유입하고, 또 시로의 인구집중이 현저해졌지만  인구의 실태 파악은 충분하지 않다. 1991년의 발표에 의하면 인구는  27,220,000명이며 인구증가율도 3.0%로 증가하였다. 북부와 중앙부에 사는 아랍화된 사람들이 약 40%이고, 소수파인  누비아민족(8%)은 북 의 나일강 유역에 집중하고 있다. 남부 수단에 사는 딩카, 훈지, 누에르, 실루크  등은 나일·사하라어를 말하고 대다수를 점유하는 북부의 아랍어족과는 관습도  꽤 틀리다. 10세 이하의 인구가 약 30%이상을 점유하고, 인구의 약 20%가 도시에  살고 다. 또 국민의 75%는 아랍계로 북부에 살고 있으며  그외 25%는 흑인계로 남부에  거주하고 있고 유목민 생활을  하는 국민이 200만명에 달하고 있다. 인구의 자연증가율이 높으며 전체인구의 2/5이상이 15세 이하일 정도로 평균연령이 낮다. 또 출생  , 사망률이 높은 반면 평균기대수명은 50세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o 주요도시 : Port Sudan(항구), Wad  Medani, Kassala, Juba,  Wau,  Malakal, El  Obeid,  El Fasher, Dongola

o 주요민족 : 아랍계(70%),  Dinka(12%), Bija(7%), 서부아프리카인(6%) 등  약 597개 부족 (주요종족 19)

인종은 아랍계가 약 75%를 차지하고 흑인계는 약 25%이다. 수단이라는 이름의 기원이기도 한 흑인계는 거의 남부에 집중하고 있지만 세분하면 약 500개의 부족으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다. 수단 중부의 코르도환주 누비아 산지에 사는 누비아족도 이러한 흑인 부족의 하나로서 아랍인의 노예사냥을 피해 사막에서 스스로 독립하여 누비아 산지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누비아족은 총 50만 정도이지만 이 부족자체에도 50 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도 이슬람 교도들이 서서히 침투하고 있지만 아직 전통적  종교의 힘이 강하다. 남성적인 이들의 부족특성이 이들의 생활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강한 남성이 존경받는다. 이 때문에 각종 투기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레슬링은 누비아족에게 있어서는 국기(國技)와 같다. 레슬링 시합의 승자는 부족 전원에게 상을 받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얻을 수 있다. 또 그 중에서 특히 유력한 것이 딩카족으로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인종중의  하나이다. 북 및 인구가 높은 달훌지역에서는 비아랍그룹이 몇개 있는데 이슬람식의 복장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혐오받기도 하고, 여러사람이 보는 앞에서 채찍질을 하는 형을 받기도 한다.인종은 아랍계가 약 75%를 차지하고 흑인계는 약  25%이다. 수단이라는 이름의 기원이기도 한 흑인계는 거의 남부에 집중하고 있지만 세분하면  약 500개의 부족으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다. 수단 중부의 코르도환주 누비아 산지에 사는 누비아족도  이러한 흑인 부족의 하나로서 아랍인의 노예사냥을 피해 사막에서 스스로  독립하여 누비아 산지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누비아족은 총 50만 정도이지만 이 부족자체에도 50 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도 이슬람 교도들이 서서히 침투하고 있지만 아직 전통적  종교의 힘이 강하다. 남성적인 이들의 부족특성이 이들의 생활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강한 남성이 존경받는다. 이 때문에 각종 투기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레슬링은 누비아족에게 있어서는 국기(國技)와 같다. 레슬링 시합의 승자는 부족 전원에게 상을 받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얻을 수 있다. 또 그 중에서 특히 유력한 것이 딩카족으로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인종중의  하나이다. 북 및 인구가 높은 달훌지역에서는 비아랍그룹이 몇개 있는데 이슬람식의 복장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혐오받기도 하고, 여러사람이 보는 앞에서 채찍질을 하는 형을 받기도 한다.


o 주요언어 : 아랍어(공용), 영어 등 115개 언어, 방언 사용중
수단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라비아어로서 공용어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부와 중부에서만 주요 언어로 쓰이고 있다. 남부에서는 1956년까지 영국통치의 잔재 때문에 영어가 주요 언어로 인정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도시부에 있어서는 영어를 쓰는  사람도 많다. 나일·사하 어(딩카語와 누에르語)와 병행하고 있으며 135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주요한 언어만도 30종을 넘는다. 그러나 남부에서는  딩카어, 누에르어, 실루크어 등이 사용되고 있고, 최근 아라비아어 교육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통용 지는 않고 있다. 북부의 나일강 유역에서는 소수부족이 지금도 누비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o 종 교  
종교에 대해서는 1973년 4월 발효한 항구헌법에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북부주민의 대부분은 이슬람교도 순니파(약 70% 이상)이고, 도시부와 누비아산지에는 약간의 크리스트교 교도가 있다. 남부에서는 90%가 크리스트 교도이고, 나머지는 전통적인  각 부족의 정령을 숭배하는 원시종교를 믿고 있다. 수단의 이슬람 교도는 안사르, 카도리아, 정통 카도리아, 베다위아, 사마니아, 샤도리아 또는 마크도비아, 이도리시아, 티가니아 등의 각파로 나눠지고 있지만 영웅 마하디를 중심으로 한  안사르파는 수단의 이슬람 사회에 있어서  막대한 세력을 자기고 있으며 특히 서부에 많고 일찍이 1969년 5월 군사혁명정권성립전까지는 운마당(黨)으로서 유력한 정치세력이었다. 현재에도 사딕·알·마하디 수상을 지도자로서 유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1972년 평화조약과 주로 기독교인과 전통주의자로 구성된 남부인 들의 극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1983년 회교 공화국임을 선포함.  회교도와 비 회교도에게 공히  적용하는 위압적인 회교법적용이 전쟁을 재발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임. 비 회교도들에 대한 경솔하고 강압적인 회교화 시도가 정치적 반란진압이라는 명목으로 은폐되었다.  온건주의 회교도 집단에 대한 압제 또한 심함.

회교70% 전통종교9.9% 무종교1.1% 기독교19%(개신교7% 카톨릭교12%)-수치는 추정치임

1) 수단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회교 혁명의 주도자들이었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 아랍의 소수집단은 이 사실을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강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했다. 회교 혁명으로 100만이 죽고  경제는 황폐화되었으며 나라는 분열되었다. 생활의 고통과 파괴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 수단 북부에는 강력한  기독교가 자리잡고 있었으나 8세기에서 15세기사이에 회교화 되었다. 현재 회교화는 비회교지역인 남부까지 확장되고 있다.

2) 남부지역 사람들과 온건한  회교도들의 고통은 외부세계에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엄청난 폭력사태가 벌어지는 지역으로부터 외국인들이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의 위기가 대중매체를 장악해 버렸다. 대부분은 국제 구제 기관들은 수천명을 죽음에서 구해내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애썼지만 심한 방해를 받거나 추방을 당했다.

3) 교회에 대한 핍박이 지난 40년간 있었는데 1985년 이후에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적인 시도가 극에 달했다. 주일 예배시에  폭탄을 던지고 교회와 기독교인이 있는 마을을 파괴하고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 대량학살이 자행됐다. 목사와 교회지도자를 죽이고 하르툼근처의 사막지역으로 추방당한 난민들이 개종하면 식량을 주겠다는 정책을 사용하기도 했다. 특별히  누바 산악지역에서 그 핍박은 심각했고 회교도들은 누바인들에 대해 지하드, 즉 성전을 선포했다. 전지역이 황폐화되었고 영토는 아랍인들에게 넘어갔다.

4) 교회가 고통가운데 성장해 왔다. 수단에  있는 카톨릭, 성공회 그리스도교회(누바지역)는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거대한 인국 이동이 관습과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사람들을 다양한 미전도 종족으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회교에 대한 반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명목상의 기독교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지만 누에르(장로교), 마바안, 우두크(수단내지교회), 딘카(감독교회), 토토샤, 아콜리(아프리카내지교회), 누바부족(수단그리스도교회)가운데 의미있는  회심집단이 있었다. 정치적 차이와 유혈사태는 부족의 노선을 따라 남부지역사람들을 심하게 분열시켰다.

5) 외국선교사들의 활동이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외국인  사역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964년 선교사들은 남부에서 추방당했으며, 하르툼지역과  누바지역 그리고 에티오피아난민거주지에서 제한된 사역만이 허락되었다. 1990년이후 추방되거나  비자 신청이 거절되는 일이 늘어났다.

o 정부형태 : 대통령제 연방 (26개 STATE, 66개 PROVINCE)

o 의 회 : 96. 3월 총선으로 연방의회 구성

o 독 립 일 : 1956. 1. 1.

o 유엔가입일 : 56. 11. 12

o 국 경 일 : 1. 1. 독립기념일 ,    6. 30. 혁명기념일

o 화폐단위 : 수단파운드 , 1$ = Ls. 2,572 (99.10.31현재, 단일변동 환율제임)

  수단디나르(Dinar), 1$   = SD.   257.2  (99.8.1부터  주재국  모든  은행의  화폐단위를 Dinar로 변경)
  * 현재는 일반 시중은 병용하고 있음.

o 회계 연도 : 1.1 부터 12.31까지

o 도량형 : 미터법 널리 사용

o 토지면적 : Feddan을 사용(1 Feddan = 1,270 평)

o 근무시간 : 정부기관( 카르툼) 토-목 08:00-14:00

   정부기관(기타기역) 토-목 07:30-14:00

  은행 토 -목 08:30 - 12:00

  상점 08:00-14:00,   18:00-20:00

o 국 기 : 수단국기는 1976년도에 새로 제정된 국기법에 의해 만들어 졌으며, 각 색깔의 의미는 아래와 같음.

적 : 투쟁, 혁명
흑 : 검은대륙의 국가
백 : 평화
녹 : 농업

o 국가 : 수단 국가는 독립년도인 1956년에 만들어짐.

   - 곡명 : 국가 찬양

   - 가사 내용 : 우리는  신의병사, 국가의 병사  국가을 위해  이목숨 바치리 고난속에서 죽음을 무릎쓰고 모든 것을 다바쳐 영광을 챙취하리  이땅은 우리의땅 영원히 번영하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영토를 수호하리

   - 주재국 약사

BC2150 - AD350 : PHARAOH 전국시대(이집트화)

AD 350 - 1504 : NUBIA 기독교 왕조시대

1504 - 1821 : FUNJ  SULTAN국

1821 - 1885 : 이집트를 정복한 오토만 터키계의 MUHAMMAD  ALI의 정복으로 이집트의 1개주로 전락하여 OTTOMAN 제국의 이집트총독치하에 들어감.

1885 : MUHAMMAD AHMED ABDULLA 는 스스로를 MAHDI (회교 구세주)라 선언, 오토만터키에 반대하고 이슬람의 개혁투쟁세력을 규합 종교적 폭동을 일으킴.

1889 : 이집트를 정복한 영국의 이집트군과 함께 수단정벌 영-이집트간 수단 공동통치 협정을 맺고 실질적으로 영국식민치하에 들어감.

1924 : 영국 식민통치하에 반대하는 수단인과 수단에 대한  이집트 지배권을 주장하는 이집트 민족주의자의 반발로 수단총독 살해사건이 발생.  영국은 저항운동이 극심한 북부수단에 대해서는 NATIVE   ADMINISTRATION제를 도입.   남부수단에 대해서는  SOUTHERN POLICY를 채택하여 영어, 토착어 장려 및 기독교포교를  강화함으로써 남북부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반관계를 단절시켜 상호 괴리를 심화.

1956. 1. 1 : 영국과 이집트 승인하에 수단 독립성취, 그러나 영국 식민정책 결과로 남북부간 지역대립 및 다수 정당 난립으로 혼란계속.

1958.11.17 : IBRAHIM ABBOUD 장군 무혈 쿠테타로 군사 정권수립. 군부내 마찰 및 분열로 정국불안.

1969. 5.25 : GAAFAR MUHAMMED NIMEIRI 군사혁명 신정부는 수단 사회주의 선언, 국호를 수단 민주공화국으로 개칭, 구정치인 및 반대파에 대한 대숙청 단행, 외국인  자산은행을 국유화하고 경제원조 및 군사원조의 대공산권 의존도를 급속히 높임.

1972. 1 : 공산주의 세력을 타도하고 (좌익 장교단 쿠테타음모 분쇄) 총선에서 니메이리대통령 취임, 수단 사회주의연맹(SSU) 창립 및 단일정당제채택.

1985. 4. 6 : 니메이리 미국방문중 소수 군사령관에 의한 군사 쿠테타 성공,   니메이리 대통령 축출, 과도 군사위원회 설치

1986. 5. 6 : SADIG AL MAHDI 민간연립정부 수립

1989. 6. 30 : AL BASHIR 준장에 의한 군사 쿠테타 성공 (헌법정지, 국회 및 정당의 해산, 언론통제)

1991. 1. 1 : 회교율법 SHARIA LAW 실시 (남부 3개주는 제외)

1993. 8.18 : 미국정부, 수단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 양국관계 극도로 악화

1993.10.16 : 혁명위원회 해체, OMER HASSAN AL BASHIR 혁명위원장겸  수상을 수단공화국 대통령으로 임명

1994. 1.13 : 행정구역 9개주를 26개 주로 재분할

1994. 2.14 : 남부출신 기독교인 GEORGE KONGOR AROP을  제2부통령으로 임명.

1994.  3.17 ; 수단남부문제 관련 IGAD 주선 제1차 나이로비회담(남부지역 난민구조 소위원회설치 및 SAFE HAVEN 지역선포 합의)

1994. 5.14 : 남부문제해결을 위한 평화분위기 조성목적으로 JUBA 평화회의 개최

1994. 5.16 : 수단남부문제 관련 제2차 나이로비회담(합의실패)

1994. 7.19 : 수단남부문제 관련 제3차 나이로비회담(합의실패)

1994. 9.27 : 대화분위기 조성을 위한 전담기구인 HIGH COUNCIL FOR PEACE 창설

1994. 10. 8 : 국제민간친선평의회주최 국제종교회의 개최(30개국참가)

1995. 3.30-4.2 : 제3차 민간 아랍. 이스람 회의 개최 (85개국 참가)

1995. 6.26 : 무바락  에집트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아디스아바바) 발생으로 수단과 이집트 및 이디오피아간의 관계 악화

1996. 1.31 : UN안보리 수단 규탄 결의 (1044호) 채택 (UN과 OAU헌장에 따라  테러지원활동 중지 등)

1996. 3.6-17 : 대통령 , 국회의원 선거(3.20. 당선자 공포)

1996.  4.26 : UN안보리 결의 1054호 채택 (외교공관 및 영사관 인원축소 및 여행제한, 수단정부 고위관리 및 수단군 요원에 대한 입국 또는 통과 제한)

1996. 8.16 : UN안보리 결의 1070호 채택 (안보리 결의 1044호 및 1054호 이행치 않을 경우
수단항공의 국제선 운항 금지)

1996. 12.10 : Sadiq Al Mahdi 전수상, 에리트리아로 피신

1997. 4.21 : Khartoum 평화협정 서명 (수단헌법체제, 법적권리와 자유보장,  국민투표가 실시될 때까지 4년간 과도기간 설정)

1997.  6.10 : 전야당 DUP 사무총장이며 반정부 인사인 Al Hindi (전의장)귀국

1997. 7.8-9 : 케냐 IGAD 정상회담에서 94년 원칙선언을 토의, 기초를 채택

1997.  8.30 : 남아공  평화회담, Mandela 남아공  대통령 주선으로 Al  Bashir 수단대통령, Mugabe 짐바브웨 대통령, Museveni 우간다 대통령 등 4자회담 개최, 수단-우간다 관계 및 수단남부문제 토의 (Garang불참)  

1997.10.29-11.11 : 나이로비 평화회담 : SPLM/A는 연방국 (Confederation) 및 2년간 과도기간 설정을 제의한 반면 수단정부는 연방제 (Federation)을 제의하였으나, 98.4월 재회담키로하고 회담 종결

1999.1.1 : 헌법개정과 정치 결사법 실시로 복수정당 등록 개시 및 총선을 통한 새 민주국회 계획 발표.

1999. 5.22 : Gaafar Muhammed Nimeiri 전  대통령 귀국, 인민노동세력동맹이라는 정당 결성.

1999.7.19-24 : 나이로비 평화회담. 사무국 설치등에 합의함. 성과없이 종료.

1999. 8.5 수단 정부, 반군측에 대해 99. 10.15까지 일방적 휴전 선언.


- 아국과의 관계

1976.  4.21 : 영사관계 수립, 아국 총영사관 개설

1977.  4.13 :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대사관으로 승격

1990. 11 : 서울 상주 수단 대사관 개설

1998. 9 : 채수동 대사(8대) 부임


- 협정체결 현황

무역 및 경제기술협력 협정 : 78. 6.27 발효

문화 협정 : 79. 10.14 발효

항공 협정 : 81년 가서명, 91년 재차 가서명



2. 역사


고대와 중세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당시 수단에 구석기시대 사람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 역사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오늘날의 수단 북부는 누비아라고 불렸고 이 지방은 고 이집트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기원전 750년경 쿠슈인의 왕국이 누비아에서 번영하여 나바타, 메로에 등을 중심도시로서 한때는 이집트, 시리아를 정복하고 기원전  340년경까지 통치하였다. 그러나 쿠슈왕국도 세력이 쇠퇴함에 따라 그 판도는 남 함과 동시에 수도를 나바타에서 메로에로 옮기게 되었다. 쿠슈 왕조는  기원전 350년경 에티오피아 중부를 거점으로 한 크리스트 왕국인 아크삼의 침입에 의해 멸망하였다.

그후 누비아에 3개의 왕국이 성립하게 되었고, 543년 테오도라  여왕의 보호 하에 이집트에서 크리스트교가 이 지역으로 도입되었다. 639년 이슬람교도가 이집트에 침입하였지만, 누비아왕국은 그들과 협정을 체결하여 그후 6세기간 이슬람  교도의 침입을 방지하도록 하였다. 1250년경, 이집트에 바하리, 아무르크 제왕이 일어나고 북방의 누비아 왕국은 이슬람 교도의 침입과 잡혼(雜婚)에 의해 쇠미하였다. 1504년까지 이어졌던 남방의 왕국도『훈지』라고 불리는 흑인세력에 의해 붕괴하였다. 이 훈지세력은  침입하였던 아랍세력을 구축하였으며 센나르 거점으로 중부 및 북부 수단으로 세력을 뻗었지만,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쇠망하고, 이 영역은 소왕국 난립의 상태가 되었다.



근세

1820년 이집트의 지배자 무하마드 알리가 수단에 군대를 파견하고, 1821년에는 센나르와 오베이도를 점령, 카르툼에 수도(首都)를 두었다. 이렇게 시작된 무하마드 알리의 침입으로 인해 수단은 1874년 이집트에 병합되었다. 이후 1885년까지 이집트의 지배하에서 수단의 무역은 이집트인이 장악하고 상아와 흑인노예의 무역이 성하게 이뤄졌다. 1881년 무하마드 아하마드가 자신을 마하디(이슬람교의 구세주)라고 자칭하고 이집트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오베이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증대한 이들은 1883년말 히쿠스 파샤 지배하의 이집트 군을 전멸시키고 수단 전국토 지배권을 얻었다.  그러나 이집트를 그 세력 하에  넣은 영국은 1885년 마하디군 진압을 위하여 영국의 고든 장군이 파견하였으나, 장군은 카르툼에서 10개월 남짓 포위된 후 전사하였다. 수단의 독립은 마하디의 후계자 압둘라에  의해 영국과 이집트 지배에 저항하여 1898년까지 이어졌지만, 영국의 원조를 받은 이집트가  이 지역의 지배권을 만회하였으며 1899년 영국·이집트 협정성립에 따라 수단은 양국의 공동지배하에 놓여졌다.


현대

1911년 달훌에 반란이 어나 1917년에 진압된 이외에는 1899년부터 1924년까지 비교적  평온한 시기로 이어졌고, 근대국가로의 기초확립을 위해 각 방면에서 점진적 진보가 보였다.  영국의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수단인과 수단에 대한 이집트 지배권을 주장하는 이집트 민 주의자의 반발로 1924년 수단총독 리·스톡이 카이로에서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 이후 1952년까지는 수단에 대한  주권을 둘러싼 영국, 이집트  양국간의 항쟁이 이어졌으며 행정기관에 대한 수단인의 진출이 보였다. 또 이 시기에는 1929년의 나일강 협정에 따라 이집트의 나일 수리(水利)권이 확인되고, 1936년의 영국·이집트 공동조약에 따라 이집트의 공동통치의 존속과 그 주목적이 수단인의 복지증진에 있다는 것이 재확인되었다. 그렇지만, 그후 이집트 측의 수단에 대한 영유권의 주장은 점차 강해져서 1945년부터  동맹조약개정교섭을 행하여 온 이집트는 51년 10월 공동통치협정 및 영국·이집트 공동조약의 파기를 선언하였다.

한편 영국은 이같은 일방적인 파기에 반대하고, 이들 조약은 유효하다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1952년 이집트에 혁명이 일어나고,  나기브 정권은 前정권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차 영국과 교섭하여 1953년 2월『수단의 자치 및 민족자결에 관한 영국·이집트협정』이 체결되고, 이것에 의해 수단은 구체적으로 독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 협정에 의해 수단은 3년 이내에 스스로 수단의 장래를 결정하게 되었고 인도인위원을 의장으로 하고 수단, 이집트,  영국, 미국의 위원으로 이뤄진 국제위원회의 감독 하에 1953년  11월 제 1회 의원선거가 이뤄졌고, 이 선거에서 이집트와의 통합을 목표로 한 아즈하리가 이끄는 국민통일당이 승리하였다. 1954년 1월 1일에 소집된 의회에서 아즈하리가 수상으로 선출되었고, 1월 9일 조각이 완료하여 3월 10일 의회가 개원되었다. 영국, 이집트 양국 군은 1955년 11월 15일까지  철수하고, 이윽고 아즈하리는 이집트와의 통합주장을 버리고 1955년 12월 19일 수단의회는 수단을 공화국으로서의 독립을 선언하고 1956년 1월 1일 수단공화국이 탄생하였다.


독립이후의 역사

독립후의 정당정치는 대이집트관계를 둘러싼 정당간의 항쟁이  격화하고, 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어 결국 1958년 11월 아부드 군사정권의 성립을 야기시켰으며 의회 및 정당은 해산되었다. 아부드 정권은 친이집트정책에 의해 경제 개발에도 어느 정도 성공하였으나 독립이래 남부 3주(洲) 약 3,000만의 비이슬람교도의 자치 또는 분리독립을 구하는 운동은 점차 증가하였다. 이들은 게릴라전을 전개하여 정부의 이슬람교화정책에  강하게 반발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인근제국에 약 100만명에 달하는 다수의 이민이  이뤄지기에 이르렀다. 이 남부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1964년 10월 카르툼에서의 대학생을 선두로 하는 광범위한 반군사독재운동이 발발하여 아부드의 군사정권은 붕괴하였다. 이  군사정권 타도의 쿠데타는 아프리카에서는 예외적인 민간인에 의한 쿠데타였다.

1965년 4월 제헌의회의 총선거가 행해지고, 운마당 및 국민통일당이 대세를 차지하고, 제  1차 마하쥬브독립내각이 성립하였다. 1967년 6월의 중동전쟁에 즈음해서는 수단의 제 2차 마하쥬브 내각이 전후의 아랍수뇌회의를 주하는 등 외교 면에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였지만, 내정적으로는 정당간의 이합집산과 지도권  다툼, 남부문제, 항구헌법제정을 둘러싼  여야당의 대립으로 정당정치는 재차 위기에 봉착하였다.


니메이리 정치

1969년 5월 25일 니메이리 중좌를 중심으로 하는 육군 중견장교에 의한 무혈쿠데타가 일어나 다시 군사정권이 등장하였다. 니메이리를 의장으로 하는 혁명평의회는 전권을  장악하고, 잠정헌법을 정지, 의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국명을 수단공화국에서 수단민주공화국으로 개칭하였다. 新정권 최대의 과제는 역대정권이 완수하지 못했던 국민통일 달성과 헌법의 제정이었다. 국민통일에 대해서 니메이리 정권은 1969년 6월 남부자치의 원칙을 선언하고,  1972년 3월 에티오피아 황제 하이레·세라셰의 중개에 따라 남부 방세력대표와의 사이에  아지스아베베협정을 체결함으로써 17년간에 걸친 내전에 종지부를 찍고 남부 3개 주의 지방자치권을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남부와 북부의 문화, 사회의 차이에 따라 야기될 긴장감은  일시적으로 완화되었다.

헌법 제정에 있어서 니메이리 의장은 1971년 9월의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다수의 표를 차지하여 대통령에 선출되고 10월 12일 수단 초대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정치기구의 정비에  착수하였고 1971년 10월 혁명평의회를 해산하고 유일한 정치조직으로서  SSU(수단사회주의연합)을 창설하였다. 1972년 1월 SSU입헌국민의회를 소집하고  국민행동헌장, SSU강령, 헌법기본원칙을 채택하고, 또 8월 인민의회설치법 공포, 9월 인민의회가 발족되었으며 1973년  4월 헌법 제정에 성공하였다. 당초에는 용공적인 색채가 짙었던  니메이리 정권은 당면한 적대세력이었던 보수, 종교세력을 1970년 3월 이마무·마하디의  본거지인 아바섬을 공략하여 소토함과 동시에 대공산권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차차 니메이리 의장 등의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와의 반목이 높아졌으며 1970년 11월  공산당 신파로 보였던 누르중장 등 3명의 평의원이 추방되었다. 또 마하쥬브 공산당 서기장도 체포되었으며 1971년 2월에는 공산당의 정치활동은 금지되었다.

1971년 7월 19일 반격을 계획하였던 아타소좌 등 우익군인의 쿠데타로 인하여 니메이리 의장은 일시 정권에서 쫓겨났으나 리비아 등의 개입으로 인해 3일후 역(逆)쿠데타에 성공하여 즉시 공산주의자에 대한『피의 숙청』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니메이리 정권은 좌우의 적대세력을 극복 고 또 1972년 2월 아바스  국방장관, 3월 아우다라 부통령, 제이드 SSU서기장 등을 해임시킴으로써 정권내부의 권력투쟁을 이겨냈다. 또  니메이리 정권은 1967년 단교하였던 미국과의 수교를 1972년 7월 복교하였으며 여기에 동반하여 대이집트 관계가 악화되었고, 9월 우간다의 아민 정권 지원에 대한 리비아 공군기의 카르툼 공항 강제착륙사건,  1973년 3월의 팔레스티나·게릴라『검은 구월단』이 미국 대사들을 살해하였던『카르툼  사건』과 그 처리문제, 국내적으로도 국민경제의 핍박, 부부흥문제, 9월 카르툼대학소요사건 등 여러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그러나 내전체결과 헌법제정이라고 하는 2대 실적에 따라 대개 안전하게 추이하였다. 또 1980년 5월 에티오피아의 멩기스트 원수의 내방, 11월의 니메이리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공식방문 등 수단·에티오피아 양국관계는 진전하였다.

1983년 4월 니메이리는 대통령에 3선되었으며 이해 6월 남부 3주를 분할하고, 9월에는 샤리아법(이슬람법)을 도입하는 등 이슬람색을 강화하였지만, 이에 반발하는 남부의 반정부 력인 유력흑인부족 딩카족(크리스트 교도)을 주체로 하는 인민해방군(SPLA)의 게릴라 활동은 확대되었다. 1984년 4월 29일 니메이리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데모·집회 등을  금지하고 오지 등의 사회부정 단속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남부에서는 수단인민해방전선(SPLA)이라고 자칭하고,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쟈에서 2번에 걸쳐 개최하였던 평화회담도 실패하게 되었다. 또 1984년에는 가뭄과 에티오피아 난민의 유입으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로 타격을 받게 되었다.

1985년 3월 니메이리 대통령은 민간 최대의 지지 모체인 무슬림 동포단의 세력대두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同 동포단과의 결별을 계획하고 약 200명의 동포단원의 체포를 단행하였다. 이렇게 해서 지지모체를 잃은 가운데 니메이리 대통령은 1985년 3월 23 재정 재건의 일환으로서 빵 가격의 대폭 인상을 발표하였다. 이때까지 경제적  피폐에 허덕이던 국민의 불만은 빵가격의 인상을 계기로 한층 높아지고, 27일 니메이리 대통령의 방미 직후 이들 불만이 단숨에 폭발하여 반정부 데모 등의 국민에 의 소요, 의사. 변호사 등 인텔리 층의 총동맹파업 등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런 사태 수습을 위해 1985년 4월 6일 다하프 장군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 니메이리 정권은 붕괴하였다.


마하디 정치

니메이리 정권 붕괴후 정권을 장악한 다하프 장군을 의장으로 하는 잠정군사평의회는  1985년 4월 남부분할법폐기선언,  1985년 5월 샤리아법정폐쇄선언  등의 新정책을 펼치고,  다음 1985년 12월 국명을 現국명인 수단공화국으로 개칭하였다.

그후 1986년 4월부터 5월에 거쳐 민정이관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고, 1986년 5월 15일 총선거의 결과 상위를  차지하였던 운마당(UP)과  민주통일당(DUP)연립의 사딕·알·마하디 운마당 당수를 수반으로 하는 정권이 발족하고, 여기에 군사정권에서 민정으로의 이관이 실현되었다. 이 정권은 남부문제의 평화적  해결, 경제 문제의 해결  및 新샤리아(이슬람법)의 제정 등을 국내정책의 중요과제로서 걸었지만, 정당간의 알력, 각내 불통일 등에 의한  1987년 5월 마하디 수상은 내각 개조를 행하고, 6월 제 2차 마하디 정권이 발족하였다.제 2차 정권도 성립직후, 교육용 교재부족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항의데모, 또 이 데모와 동시에  니메이리 복귀를 부르짖는 니메이리  잔당의 암약, 비상사태선언의 포고  등에서 정권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어 1987년 7월 주권평의회 의원의  인선문제를 계기로, 연립정권제일당(第一黨)인 운마당(UP)과 제 2당인 민주통일당(DUP)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주장이 일어나자, 1987년 8월 22일에 이르러 마하디 수상은 운마당과 민주통일당의 연립을 해소한다는 뜻을 언명하였다. 계속해서 운마당을 중심으로 민주통일당(DUP), 이슬람국민전선(NIF)등  주요정당의 사이에서 이후의 정국운영에 대한 의논이 행해졌으며, 1988년 4월 이들 주요 정당간에 국민화해헌장을 작성, 서명하였다. 이 결과 동년 5월 15일  제 3차 마하디 정권이 탄생하였는데, 이 정권의 최대 특색은 이때까지  제일야당이었던 이슬람국민전선(NIF)이 여당으로 입각하였으며 역으로 이때까지 여당이었던 남부출신정당은 정당 내에 분열이 생겼기 때문에  일부정당 야당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바시르 정권

1989년 6월 30일  바시르 준장이 민족이슬람전선(NIF)과  제휴하여 무혈쿠데타를 일으키고 혁명위원회를 설치하여 비상사태를 선언, 자신들이 국가원수, 혁명위원회 의장, 수상,  국 장관, 군최고사령관에 취임하였다. 바시르 의장은 헌법정지, 정당, 의회, 노동조합의 해산을 실시하였으며 군기관지를 제외한 全紙의 발행을 일시 정지하고, 前  수상들 약 50인의 정치가를 체포하였다. 바시르 정권은 NIF의 주장에 따라 이슬람화를  진, 원리주의의 이란과 관계를 심화하였다. 1991년 3월에는 크리스트교 교도가 다수파의 남부 3주를 제외하고 이슬람법에 기초한 新형법을 시행하였고 1992년 2월 잠정국민의회를 소집하였다.

1989년 쿠데타이래, 최고기관이었던 혁명위원회는  1993년 10월 민정이관에 의해  해산하고, 이 권한은 내각에 이양함으로써 바시르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89년 후반부터 남부에서 이슬람 교도가 주도하는 바시르 정권과 SPLA과의 출동이 격화되었다.  나이지리아의 중개에 따라 평화교섭으로 1992년 6월 정부와 SPLA는 내전종결을 강조하였던 초기의 공동성명에는 조인하였지만, SPLA의 분열이 일어나고 남부의 전투가 확대되자 평화교섭은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바시르 정권의 내정 기조는 남부문제의 평화적 해결, 경제재건(특히 대외누적채무문제 해결), 신샤리아법 제정, 니메이리 前정권의  잔재 배제 등에 두고 있다. 독립이후 북부의 아랍계 주민과 남부의 흑인계 주민 사이의 대립은 중대한 국내문제였지만 이후 정부와 반정부세력과의 사이에서 화해가 성립하고 있다.


3. 정치 /군사

정치 : 1899-1956년까지 이집트와 영국의 지배를 받음.  1956년 독립이후 겨우 7년 간 문민 통치가 있었다. 1955-1972년에 걸쳐 북부 아랍인과 남부 분리주의자 간에 혹독한 전쟁이 벌어짐. 12년 간의 불안한 평화이후 남부에 다소의 자율권이  주어졌으나 1983년에 전쟁이 재발함. 회교 극단주의 집단이 부상하면서 1991년에 모든 국민에  대한 회교법의 적용을 강요함. 이란은 수단을 기지로 삼아 남부는 군사력으로 그리고  이집트를 비롯한 모든 북아프리카국가는 전복으로 근본주의 혁명을 확산하려 하고 있다.

군사력 : 육군 119,500명, 해군 1,500명, 공군 3,000명 (별도 민병대 70,000명 추정)수단  남부와의 민족, 종교 전쟁으로 매년 징집.


4. 경제

경제: 풍부한 농업과 광물자원. 소수회교집단이 경제의 통제권을 쥐고 회교 개혁을 강요했으며 나라전체를 경제적인 파산으로 몰고 가는 남부의 비 회교 지역에도 이러한 개혁을 강요하고자 했다. 리비아와 이란의 대량 원조로 정부가 유지되고 있다. 1992년에는 가뭄과  전쟁으로 인한 기근으로 전 인구의 약 60%가 영양실조와 기아로 고통받았으며, 정부가 그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하여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원조를 하지 않아  상황은 더 악화됨.

1인당 외채 $328 1인당소득 $420

* 물질적인 필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르툼, 주바(남부의 수도) 그리고 주변지역과 숲속에 피난해 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너무 많지만 전해지는 구호품은 거의 없다.  풍토병으로 진료가 필요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약이 거의 없다.


5. 사회/문화

가. 주재국 언론 매체


- T.V. : 국영 수단 T.V. (아랍어 및 컬러방송)

- Radio : 국영 수단 Radio (중파 및 아랍어 방송)


- 주요신문 (아랍어)

Sudan News : 관영통신, 6,250부, 일간

Al Anbaa News : 정부통제하 발간, 800부,  일간 (Al Sudan Hadith 는 97.5.19  폐간, 상기 신문으로 발간)

AL WAN(일간), AKHBAR AL youm(일간), AL RAI ALAKHAR (일간),  AL SHARI AL SIYASSI(일간)

- 주요신문 (영어)

Sudan News Agency(SUNA) : 관영통신, 일간

A1 Anbaa(주간)

Sudan Now : 정부통제하 발간, 격월간

- 위성방송 청취가능 : 주재국 방송국에 위성방송(유선) 신청즉시 설치해 줌 (CNN, BBC와 다수 아랍어 방송 청취 가능)


나. 종교활동


○ 주재국은 회교국이나, 타종교 신앙 제약 없음.

- 신도수 30여명의 한인교회가 한군데 있음.

- 미국목사가 담임인 외국인 교회 한군데와 이태리 신부들이 사역하는 카톨릭 교회가 몇군데 있음.


다. TIP 제도 : 짐 운반등에 0.5불 정도임

라. 미용 및 이발

- 자가 이발이 바람직하나, 부득이 한 경우 호텔 이발소 이용

- 외국인이 사용 가능한 미용원은 1개소 있음.

마. 기타 추가 사항

- 모랫바람으로 인해 청소가 수시로 필요함으로 현지인 고용 필요, 인건비 저렴

- 가정부, 운전수, 경비원 등 2-3명 고용 (인건비는 월 각50불 정도)

6. 교민현황

체류자 : 약 130명 정도

수도 카르툼 지역 거주 : 1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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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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