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개요

수도: 야운데(Yaounde, 64만명)
인구: 약 1.350만명
면적: 475.422㎢, 우리나라의 약 2∼3배
주요도시: 두알라, 은콩삼바, 마루아, 가루아  
주요민족: Bantu,Semi­Bantu, kirdis족 등 200여 민족
주요 언어: 프랑스어= 67% 영어=33%
종교: 카톨릭 및 기독교가 55%,원시토착신앙이 25%, 회교가 20%


카메룬 개요

1960년 프랑스 통치령으로부터 독립, 외교 정책은 일단 비동맹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친 유럽적 경향이 강하며 유엔·아프리카통일기구·EC의 연합국이기도 하다. 땅은 매우 기름져 농업 발전의 잠재력이 있으며 목재·상아가 주요 산물이다.  주민은 약 반수가 반투계외 준 반투계 족이다.

위치

아프리카대륙 남동 끝, 서해안의 기니만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접경지역에 기네만을 끼고 세모꼴로 자리잡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나이지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북동쪽으로 차드, 동쪽으로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이  위치하구 있으며 남쪽으로는 콩고, 가봉, 적도 기니와 인접해 있다.


기후


지세
카메룬의 지리는 다음 4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남부지역
사나가강애서 남쪽 국경까지의 범위를 말하며 해안평야와 숲이 무성하고 평균 고도 600m를 약간 넘는 하나의 고원지대이다.

중부지역
사나가강에서 북쪽으로 베누에강 지의 범위를 말하며, 북쪽으로  가면서 점차 높아져 해발 고도가 어디에서나 900m이상이고 평균고도가 1.37m인 아다마와고원을 포함한다.

북부지역
사바나평원이 차드호 분지를 향해 분지를 향해 내리막 경사를 이루고 있다.

서부지역
서에서 북으로 나이지리아와 국경을 이루는 지역으로 기복이 심하며 화산봉우리인  카메룬산이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해발 4.085m까지 솟아있다. 카메룬에는 두 개의 큰 강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나가강으로  약 13만 5.000㎢면적의 땅을 배수하고  남서 방향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 며 다른하나는  베누에강으로 서쪽에 있는 나이지리아의  나이저강 유역으로 흐르는제 연중 몇 개월은 배가 다닐 수 없다.

남부는 고온다습한 전형적인 적도기후이며 북부는 고온다습한 사막기후를 보인다.  전형적인 열대 우림 지대인 남부에서 북은 차드 호반의 사막에 가까운 사바나지대에 이르고 있다. 우계는 남동부에서는 연 2회(4∼5월,  8∼10월 전 후)이나  서부에서는 연 1회(7∼9월)이다. 기온은 기니 만 해안에서는 2∼3월경이 가장 높아서 26∼27℃,  7∼8월이 가장 낮아서 23∼24℃이다. 북부의 마루아에서는 5월에 33∼34℃로 가장  높고 8월에는 26℃ 정도가 된다.  12∼1월에는 다시 26.5℃정도의 평균 기온으로 내려간다.


기온
국토 전체가 열대기후에 속해 있어 연중 고온이 계속되며 전국의 연평균 기온은 21∼28℃정도이다.

강우량
전체적인 강우량분포는 남에서 북으로 갈수록  줄어들며 해안지방의 경우 연평균  강우량이 약 3.800㎜에 달하고 중부고원 지방은  약 1.500㎜정도로 감소한다. 북부는 10∼5월,  남부는 12∼3월, 7∼9월 2회에 걸쳐 건기가 있다.

인구
공식적인 정부 지표에 의하면 1991년도 총인구는 13만명으로 집계되었으며 매년 2.9%의 인구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총인구중 56%가  20세 이하이며 평균수면은 남자가  54세, 여자가 57세로 조사되었다. 최근 10년간 도시인구는 매년 6%이상 증가하여  22만명에서 460만명으로 급증하였으며 전체인구의 약 36%가 도시오 집중되었다. 정부는 1989년 최초로 농촌지역으로부터 인구의 이탈을 막기위하여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1994년 회폐의 가치 하락으로  농부들의 구매력이 개선되어 농촌지역으로 인구를 끌이게 되었다.

민족
카메룬의 민족 구성은 매우 다양하여 100개 이상의 종족집단이 모여있으며 그 풍습 또한 서로 상이하다. 인구 150만으로 카메룬 전테의 약 1/5을 차지하는  바밀레케족과 티케족, 바우만적등이 서부지방에서 생활하며 북쪽에는 무슬립, 사다니, 폴베,  하샤, 쵸, 아랍족 등이 있다. 반투 라인 아래쪽으로 사네가강을 따라 에톤, 에완다, 보로우, 팡,  바싸족이 모여있는데, 그 중 팡족이 지배적이다. (반투 라인: 아프리카 남부에서 중부지방을 가로질러 사는 흑인종을 일컬어 반쿠인이라 하며 이들 지역을 일종의 구분선으로 설정한  것)두알라 주변 해안을 따라 두알라족과 바코코족 등이 살고있으며  남부 산림지대에는 소수의 피그미족들이  살고 있다.

언어
프랑스어와 영어가 공유어이나 원주민들의 방언이 여전히 쓰이고 있으며 국민의  80%가 프랑스어를 나며지 20%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종교
전체 국민의 약 60%정도가 종족 마다의 고유한 토속신앙을 믿으며 35%는 크리스챤으로 이중 20%는 로마 카톨릭 신자이다. 그외 약 5%정도가 회교를  믿고 있다.

카메룬의 역사

아프리카는 기원전부터 일류가 살아온  땅으로 알려저 있다. 기원전  6세기경에 북아프리카 상인들이 이곳에서 교역을 화였으며 카르타고의 향해사 하논이 카메룬산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다 8세기경 사오족이 카넴보노우 제국을 건설하였는데, 그 크기가 남북으로는 챠드호수에서 카매룬 중부 아다마우고원까지,  동서로는 바우치고원에서 나이지리아에 걸친 광범위한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11세기 호우메  황제때는 활발한 교역과 이슬람교가 전파되었으며 아드리스왕때 회교사원이 건설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아드리스  왕 이후에 쇠퇴하기 시작했다.

1472년 포루투칼 상인 페르난도 퓨가 보우리 가 보우리강 하구에 도착하여 두알라족과 노예 무역을 개시하였다. 1732년경 부터는 영국, 프랑스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노예뿐만 아니라 내륙의 야자유, 상아 등을 두알라와 보나베리일대를 중심으로 거래하였다. 하지만 1840년  6월 10일 두알라족과 영국은 "노예매매금지조약"을 체결하였으나 여전히  노예매매는 성행하였다.

1884년 7월 12일 노예매매를 둘러싼 각 부족의 추장들 간의 상호 대립이 있자 독일과 보호조약을 체결하게되고 이 조약으로 카메룬은 주권을 포함한 행정,사법권을 잃게 되었다. 카메룬에 진출하게된 독일은 1891년에는 야운데, 베노우에 등 내륙 깊숙히 진출하여 야자,  카카오, 천연고무농장을 만들었다. 이것을 만들기위해 그 곳 흑인들은 강제노역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1902년 독일은 총독부를 두알라에서  부애아로 옮기고 에세카―니콩삼바간 철도와 크리비항구를 건설하여 야자, 카카오, 고무 등을 독일로 옮겨갔다. 한편, 선교사들에 의한 기독교 전파와 서구식 교육 전수는 카메룬의 인재배출에  기여하였다. 1914년 2차 세계대전의 마감과 함께 독일이 물러나고,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앞다투어 카메룬에 진출하였다. 1916년 독일의 모라 요새의 함락으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카메룬의 통치권을  완전히 넘겨주게 되어 영국과 프랑스가 카메룬을 분활 점령하였다.  1918년 6월 베르사유 평화조약에서 양국간의 카메룬 분활이 확정되었으며 영국은 서부를 프랑스가 동부를 각각  통치하기 시작되었다.

카메룬의 독립...

- 동 카메룬의 독립 -
1948년 바사족의 렌벤 움 뇨베가 이른바 카메룬 국제연합(UPC)를  결성하고 카메룬의 완전독립을 주장하여며 프랑스에 대항하였다. 이단체는 카메룬의 노동자, 시민층에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1955년 5월 두알라, 바사 등지에서 반불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가 카메룬 국제연합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탄압하자 케메룬국제연합은  지하단체화라여 반익 반불좌익게릴라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6sis 카메룬은 프랑스의 허가 아래'입법회의(ALCAM)이 구성되었고 초대수사으로는 안드래 마리 미다가 선출되었다.  이후 미다의 뒤를 이어 아마도우 아히조가 수상으로 선출되었으며 아히조는 카메룬연합을  조직국가통합을 부르짖으며 프랑스와 함께 UPC의  게릴라 소탕을 전개하였다. 1958년 후반  UPC지도자 움베뇨가 피살되자 게릴라 활동은 와해되었다. 하지만 그 잔여  세력은 여전히 남아 1970년 말까지 좌익공산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였다.  결국 1960년 1월 1일을 기해 카메룬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 서 카메룬의 독립 -
영국은 서부 카메룬을 3개 지역으로  나누어 동부 나이지리아에 소속된 행정구역의  일부로 편입시켜 통치하였는대 동부 카메룬과는 달리 영국에 대항한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1954년 나이지리아의 자치지역으로 인정받았으며, 카메룬 통일을 기본을  기본목표로 존 규 폰차가 KNDP:( KAMERUN  NATIONAL DOMOCRATIC PARY)을 설립하여 자치정부 초대수상으로 선출되었다.  1960년 1월 1일 동부 카메룬이 독립하자 1961년 서부 카메룬은 독립문제오 인해 그 해  10월 1일 동서연합공화국이 탄생하였다.

독립 이후

연합국의 성립
1961년 10월 1일ㄹ 동서카메룬 통합이루 헌법에 따라 동서는 독자젃인 의회를 고성하고 국가의 중대사의 결정은 연합의회애서 처리하게  되었는데 연합정부 추대 대통령과  부통령은 아히조와 폰차가 각각선출되었다.



­카메룬의 통일­

1966년 6월 아히조가 창설한 카메룬국민연합당은  동서연방에 당세가 확장되었고 아히조를 반대한 UPC지도자 Ndongmo 주교와 Ernest  Ouandie가 1970년 체포되어 사실상 지하활동은 종식되었다. 이러한 정치상황으로 전국은 아히조의  실질적인 영향력하에 들게 되었으며 1972년 5월 20일 동서통일을 내용으로 하는 신헌법을 기처하여 국민투표에 붙인 결과 압도적인 지지로 통일 헌법을 제정하였다.


­아히조 대통령의 절대권력 장악­

통일후 아히조는 UNC를 지반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반대세력 구축을 저지하기위해 정적의 탄압, 각료급 인사의 계속적 이동  등으로 절대권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아히조는  이러한 정치수와을 활용, 정치적 안정과 농업개발을 위주로  경제개발을 위주로 착실한 경제개발을 이루었다.

­뽈 비아대통령의 집권­

1982년 11월 아히조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후임으로  헌법조항에 의거 뽈 비아 수상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국권을 이양받은 뽈 비아 대통령은 국민의 도덕화, 사회의 자유화, 정치의 민주화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워 22년간의 장기적에 염증을  느낀 카메룬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활기를 불어 넣었다.  

지금(98)의 카메룬 GNP 1,190불 국민 총생산=175억불
무역액(97)수출 125.2 억불  수입26.6 억불
대외부채 92.2억불

카메룬의 산림
사막화의 주요 한원으로 경작지의 이동과 농업조림을 바뀌었다. 매년 벌채비율이 크게 증가된 것으로 평가됬다. 반면 산림의 손실은 적으며, 주요 산림의 경작이 고려된다. 카메룬전부의 목적은 공원, 자연자원에서 카메룬 토지의 20%보존이나 현재는  4%에 머문다. 남아있는 요구의 효과로써 침식이 빠르다. 1988년도에 수확량 확보에 대한 산림경영 시스템에서 넓은 산림 지역의 조절은 없었다.  

산림지역
7번째로 큰 열대재 수출국이며,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목재수출국이며, 카메룬  목재산업 수출분야에서 네 번째로 큰 수출분야 이다. 연료 목재, 목탄은 사바나 지역에서 오며, 산업용 목재고산림에서 온다. 오랜 기간  정부의 계획은 통나무이고 기본 토대로  만들어졌다. 원목의 12.mil.cum는 1987-89년 사이에 생산되었다. 목재  수출은 생재 통나무가 약 62%이고 가공재가 38%이다. 카메룬 목재의 주요한 수입국은  벨기에,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그리스이다. 카메룬 목재의 수출품은 대부분 마호가니, 티크, 에보니아다.


카메룬의 정치

Biya대통령의 평화적 정권승계 및 장기집권
- 82.11. 전임 Ahidjo대통령의 사임에 따라 Biya 수상,  대통령직 승계 이후84, 87 및 92년 대선에서 당선

95,12, 헌법 개정
-대통령 임기를 기존의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되 1회만 재선(총 14년)가능
-양원재 도입(상원: 총 100명)
-지방분권화(10개의 지방자치 지역 신설)

96.1 지방의회 선거실시(336개 지역중 집권당(RDPC)219지역 차지)

97.5 국회의원 선거 실시(주요 야당  SDF:43석, UNDP: 13석,UDC: 5석,군소정당(MDR,UPC등): 10석

97.10 대통령 성거 실시 (주요 야당 SDF, UNDP, UDC선거 불참)
-Paul Biya대통령 당선(92.6%)

97.11 폴비야 대통령 취임(임기 종료:2004년)


정세평가
-82년 처음 대통령직에 오른 폴 비야대통령은 97.11.7년 임기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22년간 장기 집권의 길에 들어섬.
-대통령 선거 후 최대 야당인 SDF등 정파에 의한 정치, 사회 불안 조성이 예상되나 경재 사정의 점진적인 호전으로 정국이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음
-집권당 RDPC는 야당과의 정치적  갈등 해소를 위해 98.2  주요 야당 SDF 및 UNDP와 국정 운영 협상 진행중인 바, 지역간 반목, 차별금지, 빈곤 타파 및 지속적 경제 성장, 미주화 추진 성공등이 자이집권에 따른 국민의 염증을 해소, 현 정권의 안정을 위한 관건이 될 것으로 정망됨

경제정세
94.1. 단행됨 cfa프랑 평가절하 imf의 권고에 따른 정부의 긴축  정책에 힘입어 수출이 증대되고 95/96년간 5%경제성장 달성
국가 주요산업인 바나나, 전기, 고무 국영회사의 만영화와 차드(도바)-카메룬(크리비)파이프 라인 프로잭트( 총공사 금액 30억불, 2000년 착공)에 힘입어 국내 경기가 활성화 되고 있음. 그러나 대외 부채(약 87억불) 상환불능으로 인한 외자 유치난, 정부의 비능률적 경제운용등으로 80년대 중반부터 누적되어온 경제난 극복에 상당 기간 소요 예상.


대외관계

1. 경제·실리외교 정책
㉠ 구종주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와의 전통적인 정치·경재 유대관개 강화 정책 추진
㉡ 90년대에 들어 지나친 대불 의종도 탈피를 위해 외교 다변화를 모색.  미국,영국, 독일등과의 관계 증진
㉢ 95.11. Commonwealth 가입등을 통한 영어권 국가들 과의 정치·경제 교류강화
㉣ 경재적 실리 측면에서 주요 원조 국가인 일본, 중국와의 관개 강화

2.아프리카 역내관계
㉠ 중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여 중부아 관세경제동맹 및 중부아 경재공동체등에 주도적으로 참여
㉡ 나이지리아와는 국경 분쟁등으로 불편한 관계
      - 94.2. 국경지역인 BAKASSI반도에서 무력 충돌
      - UN, OAU, ICJ등을 통해 수차례 협상시도를 하였으나 현재 ICJ에 계류 중.


의료상황

의사 수급 상황
의과대학 수: 1개, 1년 졸업생수: 8명
전문의 수련병원의 수와 수련 현황: 2곳. 실제적으로 오해부터는 1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임상실습이 전혀 채계적으로 되어 지고있지 않다.

의료기관의 수준

⑴ 일반병원

①대학병원: 병상규모는 500석정도로 크고 기자재를 많이 받아 일부과는 시설이 양호한 곳이 더러 있느나 전반적인 활동의 저하로(모든 의사가  공무이므로) 수련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기존의 전문의들이 교육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전문의를 잘 배출시키지 못하고 있다.

②국립병원: 대학병워 2곳과 지방소재 몇군데 있음

③지방병원

1. 보건소: 의과대 졸업후 의무적으로 2년이상 근무하게 되어 있음. 지역 소재 보건소가 설치되어 있으나 물자 부족으로 운영이 잘 되어지지 못하고 있다.
2. 사립병원: 대도시에 사립병운들이 주로 백인 의사 병원이 몇 곳이 있는데, 신뢰를 현지인 병워보다 더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의 문제점과 전망

기존 의사들의 독점과 여느 나라와 같이 대도시의 인구 집중화로 인한 인구 과밀이 문제이다. 그리고 국외의 NGO의 지원을 매우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그 물자의 분배과정에서의 비리가 매우 많은 것 같다.


기독교 현황

1. 현지교회: 대형교회들도 몇군데 존재하고 있다.
2. 한인교회: 야운데(25명 정도), 두알라(20명 정도)
3. 선교역사와 가능성: 300년 정도의 개신교 역사를 잡고 있다. 파푸아 뉴기니 다음으로 언어종족이 많은 곳으로 SIL 본부가 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
4. 한국교회의 선교현황: 선교사 5분이 사역하고 계시며 가장 오래되신 분이 11년째를 맞으시고 성공적으로 선교를 하고 계신다. 현재 담임하는 야운데 교회 현지인 출석이 주일 대예배 참석인원이 300명이 넘을 정도이고, 신학교 사역을 1997년 10월부터 시작하셨다.
5. 현지 선교의 문제점: 현지인의 가난, 언어 소통의 문제점, 재정지원, 선교사간의 자리매김, 개신교회의 토속화 현상. 재자 훈련의 부족등의 어려움을 들 수 있겠다.



카메룬의 발전을 위한 것들

카메룬은 다른 국가에 비해 어느정도 좋은 여건에 있다.  하지만 국가의 주요 산업이 농·임업에 치중되어 있어 발전 속도나 국가 경쟁력이 월등히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카메룬이 속해 있는 경제협력기구인 ECOWAS가 제 기능을  하지못하고 있어 발전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모든 공통된 문제로써 국가의 단합이다. 각 부족과 국가의 언어가 프랑스 어와 영어, 두가지로 나누어저 있다. 우리 나라가 지금과 같은 단시일  내의 빠른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국민들의 의식과 공통된 언어가 크나 큰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카메룬을 포함한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이러한 국민들을 하나로 단결 시킬 수 있는 소재가 없다. 그래서 독재와 부정 부패가 만연하는 것 같다. 이러한 나라에 필요한 것은 우수한 리더의 양육과 탄생이 필요하다. 그 예로 우리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리더가 80년대를 우리나라 최고의 부흥기로 일구어  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아픔과 손실이 있었고 부정과 부패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연구에서 개발도상국의 비리(부정)도와 발전은 양의 관개를 띈다는  연구 결과와 같이 어느정도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이 따라야함은 사회가  더욱더 발전해 나가는 통로이며 지금의 상태에서는 예전과 같은 피와 살육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직국들의 NGO중심의 지원이 주(主)가 되어야 한다. 지난 선진국들의 경제 지원이나, 지원은 경제적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상술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금의  아프리카를 비롯한 과거의 쿠바, 지금의 동유럽의 분쟁과 사람들의  죽음이 생겨났으며 점차 더욱 더 그 강도가 더해만 가고 있다.

국가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만의 생존만을 고집할 수 없다. 이것은 다른 서방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며, 앞으로의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메룬이 이것만을 바라 보다가는 종속이론의 정통적인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리더의 양육에 필요한 국민의 교육을 넓게 확대하고 각 지방을 특성을 파악하고 각 지역의 특성을 발판으로 하는 특정 종목을 주력 발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선적으로 대도시의 인구를 분산시켜, 인구 밀집을 막을 수 있으며 국토의 효용적인 활용으로 인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테마 기행 I > 서상현) 아프리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말리아  (0) 2003.02.03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0) 2003.02.03
카메룬  (0) 2003.02.03
우간다  (0) 2003.02.03
콩고  (0) 2003.02.03
가봉  (0) 2003.02.03
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