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김영희) 킬리만자로를 마시는 사람들

13. 헤미드 음넴와 3

africa club 2004. 1. 3. 21:06
나는 나의 교사직을 1978년부터 키고마에서 시작했다. 키고마는 아주 멀어서 기차를 타면 2박3일이 걸린다. 키고마에서는 잘 지냈는데 나는 아직 젊었고 그 지역은 여기보다 모든 물가가 쌌기 때문이다. 키고마 지역에는 와하 부족이 산다. 그들은 타지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잘 대하기 때문에 나는 아무 불편이 없었다. 거기서는 키와 말을 한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을 가르쳤는데 그 애들은 아직 스와힐리를 모르기 때문에 애를 먹었다. 나는 산수와 스와힐리와 지리를 가르쳤다.

내가 거기있을 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고 다레살람에 왔더니 아버지는 무힘빌리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얼마 후 돌아갔다.

지금 내가 있는 학교는 굉장히 크다. 학생수가 2천 5백명이다. 교사의 수는 54명인데 7명만 남자선생이고 나머지는 다 여교사이다. 나는 이 학교에 벌써 18년이나 근무를 해서 이제 다른데로 옮기고 싶다.
지금 내가 있는 초등학교에는 한 학급이 100명이다. 교실은 17개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이고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뉜다.

초임교사의 월급은 40000쉴링 정도(약 6만원)이고 정년은 60세이다. 은퇴 후에는 연금이 나온다.

내가 어려서 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와 학용품을 주고 급식을 했으나 지금은 그러는 아무데도 없다.
요즈음은 교과서가 너무나 부족하다. 가령 책방에 가서 교과서를 사려해도 6학년 산수교과서가 겨우 열권 밖에 안된다. 세 학급이면 한 반에 겨우 3권이 돌아가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책에 있는 문제를 몽땅 칠판에 베껴놓고 풀라고 한다. 전에는 둘이 앉는 책상 하나에 책 한권이 돌아왔는데 지금은 책상하나에 네명 여섯명이 앉고 그나마 어떤 교실은 책 걸상이 없어서 바닥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

나의 월급은 70000쉴링이다.(약 12만원)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에 월급은 충분하지가 않다. 한가족의 하루 생활비가 최소 2000쉴링 드는데 한달이면 그것만도 60000쉴링에 집세를 생각하면 월급이 모자란다.

더구나 큰 딸이 있어서 돈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그 애는 작년 중학교를 마쳤는데 시험성적이 별로 안좋아서 공립 고등학교에 뽑히지 못했다. 그러나 어떻든 그 애를 사립고등학교라도 보내려고 두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1년 학비가 매우 비싸다. (약 50만원) 아이 교육 시키는데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나는 지금 큰 딸이 하나니까 고등학교를 보내려고 하지만 아이가 여럿이면 보낼 수가 없다.

우리는 음췌조라는 것이 있다. 가령 6사람이서 한달에 25000 쉴링씩 돈을 내서 한 사람이 가져가는 제도이다. 나와 내 동생과 다른 교사 4명이 이 음췌조이다.      

월급이 너무 작기 때문에 과외를 안 할 수가 없다. 과외학생이 25명인데 교사 3명이 교대로 가르친다. 나는 이 수입으로 음췌조를 낸다.

다레살람에는 여교사가 훨씬 많은데 대개 여교사들은 그 남편들이 충분한 수입이 있기 때문에 과외를 잘 안한다. 남교사들이 많이 한다. 학생들은 그 부모과 과외비를 낼 수 있는 학생만 과외를 한다.

나는 매일 7시에 일어나서 세수를 한 다음 아침(티)을 먹는다. 그 다음 학교에 간다.  7시 반부터 수업을 시작해서 1시까지 끝내고

다음 집에 가서 우갈리를 먹고  3시부터 과외를 한다. 그 다음에는 친구들을 만나서 바에 가기도 한다. 저녁에는 다음날 수업을 약간 준비한 다음 잔다. 금요일에만 기도를 한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에는 금식을 한다.

나는 일주일에 맥주 한병 정도 마신다. 일주일에 하루정도 바에가서. 죵고와 술마시는데 어떨때는 그가 어떨때는 내가 돈이 있는대로 번갈아가며 낸다. 절대로 따로 계산하지 않는다.  맥주는 킬리만자로보다 필스나 아이스를 좋아한다. 찬 맥주가 좋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따뜻한 맥주를 좋아한다. 나는 폼배(전통술)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키고마에 있을 때 품베를 마셨다. 저녁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클럽에 가서 로컬 비어를 마신다.  

나는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 집을 짓고 싶다. 나는 키마라에 땅을 가지고 있다. 2년 전에 샀다. 그러나 저축을 할 수가 없다. 딸을 위해서 돈을 모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딸은 교육을 잘 시키고 싶다.

( 2000. 5. 24, 25  다레살람 민속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