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김영희) 킬리만자로를 마시는 사람들

18.‘나의 현재 가장 큰 관심은 나의 학원이 번창하는 것이다.’ - 야하야 키오비야 1 (남, 39세)

africa club 2004. 3. 12. 18:36
‘나의 현재 가장 큰 관심은 나의 학원이 번창하는 것이다. 번창해서 고용을 창출하고 싶고 내 자신 더 공부하고 싶다.’

  
내 이름은 “야하야 키오비아”이고 카게라 지역에서 1962년에 태어났다. 하지만 내 부모님이 다레살람에서 일하고 있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레살람에서 자랐다. 있었다. 여기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secondary)를 다녔고, ordinary level(중등학교)을 마쳤을 때 내가 태어난 부코바 지역에 있는 이흥고 고등학교에 다니도록 뽑혔다. 이것의 나에 대한 간략한 역사다. 지금은 외국인들한테 키스와힐리어를 가르친다.

아버지가 아내를 셋 두어서 가족이 매우 크다. 어머니는 나와 누나, 여동생(sisters), 이렇게 셋을 두셨지만  누이들이 다 죽어서 나 혼자만 남았다. 한명은 1979년에 죽었다 - 어렸을 때 죽었다. 내 누나는 아직도 공부 하고 있는 동안에 임신하였다. 부모님이 아실까봐 유산을 하려고 했는데 잘못 되어 감염이 되었다. 부모님이 아셨을 때는 너무 늦어서 죽었다. 여동생은 1988년에 죽었다. 에이즈 때문에 죽었다.  

나의 아버지의 연세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70대쯤 되신 것 같고 지금도 살아계신다. 나의 아버지는 테크니션으로 탄자니아 부두조합(하버 오소리티) 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은퇴해서  고향인 부코바로 돌아갔다. 그는 부코바에서 미셔너리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자리를 찾아서 다레살람으로 왔다. 퇴직할 때까지 하버 오소리티에서 일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경제적 형편이 좋았다. 적어도 그의 모든 자녀를 학교에 보낼만큼 넉넉하게 지냈다. 우리 형제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단 하나 험이라면 여러 아내를 둔 것이다. 그는 무슬림이기 때문에 아내를 셋 둔 것은 전연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의 어머니는 둘째 아내이다. 그는 나처럼 키가 크고 건강하다. 그는 지금은 부코바에서 농사를 짓는다. 그는 다레살람에서 일했지만 할아버지로부터 큰 농토를 물려받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갈 때 땅을 아버지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부코바에 넓은 농지가 있는데 커피와 바나나 옥수수 등을 기르고 있다. 그는 또 시멘트 블록에 함석(양철) 지붕으로 된 크고 좋은 집을 갖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잘사는 편이다. 오래전 돌아가신 친할아버지는 족장이어서 아내가 아주 많았다. 아마 열이나 열다섯 정도 될 것이다. 그래서 아이도 많았다. 나의 아버지 형제는 아주 많다.

나의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어머니는 부코바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무완자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는 나의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다레살람으로 왔다. 다레살람으로 와서는 국립 제분회사에 속한 병원에서 퇴직할 때까지 일했다. 은퇴하기 전에 아버지와 이혼했다. 아마 나의 아버지가 셋째 아내를 얻고 싶어했는데 어머니가 반대했기 때문에 이혼을 한 것 같다.

어머니 역시 은퇴한 후 부코바로 돌아가셨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아들 넷 딸 셋이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현재 부코바에서 외할머니와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 연세가 아마 100세쯤 되실거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어머니는 내가 있는 다레살람으로 도로 올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태어났을 당시에는 정확히 숫자 세는 개념이 없어서 그들의 나이를 정확히 알기 힘들다. 그러나 세 세대는 그렇지 않다.  “새 새대”는 50년대 이후부터를 가리킨다. 우리 전통에 상대의 나이를 묻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부코바에 가서 친척들과 아버지를 만난다. 내가 너무 바빠서 못갈 때는 안부편지를 쓰지만 일년에 한번은 꼭 시골에 가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