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김영희) 킬리만자로를 마시는 사람들

20. 아하야 키오비야 3

africa club 2004. 3. 12. 18:46
내 친구들은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다. 우리는 전 학원에서 같이 일했기 때문에 서로 잘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학원에서 매일 만나고 주말 같은 때는 펍 같은데서 만나 한잔하기도 한다.

우리는 학원 강습, 방문 학습, 그룹 혹은 개인 교수 등 매우 융통성 있게 스와힐리어를 가르친다. 나는 나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다. 나의 교육 배경으로 보아 지금과 같은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을 구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직장을 다닌다면 월급이 아주 작을 것이다. 그러나 이 스와힐리 강습을 통해 나는 농토도 사고 집도 짓고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풍족한 생활이란 가령 나의 아이가 아프면 좋은 병원에 갈 수 있고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공무원이 되었거나 다른 직장에 다닌다면 지금 내 형편은 지금보다 훨씬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와 나의 아내를 포함한 네 명의 동료가 학원을 서로 공동 소유로 하여 그 중에서 원장을 뽑고 내가 부원장이고 내 아내가 총무를 맡고 있고 또 한 교사는 강의 일정을 담당하고 있다. 이 학원을 만든 것은 4년전이다.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다. 허가를 내야하고 등록도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뇌물을 주어야 했다.

우리가 속해 있던 전 학원에서는 물론 우리가 독립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그 학원은 수입을 많이 올리는 반면 우리에게 주는 월급이 너무 적어서 우리를 착취하는 셈이었다.
우리는 학원을 늘리려고 생각하고 있다. 광고도 많이 하고 가르치는 수준도 더 높이고 교사 양성도 하여 다른 지방까지 확충하려고 한다.

나의 아내를 만난 것은 전 학원에서 같이 일할 때였다. 그래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나의 아내는 72년 생이니 나보다 열 살 어리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결혼한지 4년 된다.  

나는 아내를 하나 이상 둘 생각은 없다. 나의 아버지는 아내가 셋이었는데 그것은 큰 실수였다. 다른 아내를 얻기 위해서 이혼을 하면 아이들에게 큰 지장이 있다. 우리는 대가족(먼 친척까지 돌보는 제도)제여서 가족들이 다같이 아이들을 돌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장이 큰 것은 사실이다. 여러 아내를 거느린다는 것은 반대다.

나의 아내는 키고마 지역 족속에 속한다. 그러나 다레살람에서 낳고 자라서 키고마에 가본 일이 없다. 그녀의 아버지는 타누(독립 직전의 정당)의 설립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아주 많다. 아내의 어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고 장인은 다른 아내와 살고 있다. 그도 역시 아내가 셋이다.  

나는 아직 아이가 하나 뿐이다. 두 살 반 된 아들이다. 우리는 아이를 셋 두려고 한다.

결혼식은 다레살람에서 했는데 여러 가지 섞인 의식이었다. 첫 번 식은 아내의 집에서 있었다. 세르(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와서 결혼식을 공인했다. 이는 낮에 행해지는데 일종의 종교적인 의식이다. 많은 질문을 한다. 가령 아내와 결혼을 원하는가 등등.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모여있고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쉐르가 먼저 나에게 묻고 그 다음 아내가 있는 장소로 가서 묻는다. 이러한 의식이 끝나고 나서 잔치와 춤을 출 때는 같이 있는다.

이 공식 결혼식 다음에 아내 집안 친척들이 시내에서 장소를 빌려 샌드오프 (신부 집안 주최 잔치)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나서 나의 집안에서 장소를 빌려 결혼 잔치를 또 했다.

나는 절반 무슬림인데 아버지가 이슬람이고 나의 어머니는 기독교인이다. 아내의 집안은 이슬람 집안이다. 종교의식 때는 칸수(흰 긴 아랍식 옷)를 입었다. 그러나 나는 칸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옷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제리아나 가나는 그들의 고유 옷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 우리도 그런 옷이 있으면 좋겠다. 샌드오프 파티와 웨딩에서는 양복을 입었다. 아내는 서양식 드레스를 입었다.

우리는 신랑 신부가 예물을 교환하는 풍습은 없고 하객들이 우리에게 결혼선물을 준다. 물론 나는 신부값을 냈다. 신부값을 치르지 않고는 결혼식을 할 수 없다. 나는 150000(약 25만원)쉴링을 냈다. 그러나 이 신부값 제도는 다음 세대에는 사라질 것 같다. 여자를 값을 치르고 사 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