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I

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왜 탄자니아에 있는가?

africa club 2012. 7. 17. 21:49

 

 

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왜 탄자니아에 있는가?

 

 

 

세계지도를 보노라면 이상하게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이 그리기 쉽게 그리고 명료하게 직선으로 그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산과 하천 같은 자연을 경계로 국경이 그어진 반면 직선으로 그어져 있어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원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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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를 진보적이고 근대화를 위한 힘이었다고 종종 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식민주의는 사실 독재적이고 또한 거의 폭압적이었던 외국의 통치였다. 모순적이게도 아프리카 대륙의 점령과 분할이 일어난 시기는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 내부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들이 더욱 발전하던 시기였다.

 

1870년 무렵에는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점령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1884년에서 1885년 사이에 열린 베를린회의(Berlin Conference)가 역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1885년을 식민주의 시대가 개막된 해라고 할 수 있다. 베를린회의에서는 아프리카 쟁탈을 합법화했고, 유럽의 열강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하자고 공식적으로 비준했다. 이 조약에서는 유럽의 열강들이 식민지의 주권을 주장하기 전에 그 영토를 효과적으로 점령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유럽의 주도적인 군사적 산업적 국가였던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가치 있는 대부분의 식민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독일의 자극을 받은 프랑스도 1870~1871년에 벌어진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 프로이센의 지도 하에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정책이 충돌해 일어난 전쟁-역자주)에서 독일에게 잃은 알사스-로렌 지방을 보충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했다. 독일은 독일 동부 아프리카(German East Africa: 현재의 탄자니아-역자주), 남서 아프리카(South-West Africa: 현재의 나미비아-역자주), 토고(Togo), 카메룬(Cameroon) 등에 식민지를 세워 제국주의 열강이 되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함으로써 이 지역들을 모두 잃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해방자라고 칭했지만, 점령의 과정은 거의 폭력적이라 할 수 있었다. 점령은 주로 용병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들과 고용주들이 부유해지는 것 뿐이었다.

 

유럽과 아프리카간의 본질적인 관계는 노예무역의 폐지와 공산품 수출의 확산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은 비서구 세계와 교역을 강화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아프리카와 후진국으로 알려져 있던 다른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한 것은 주요 산업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 욕구 때문이었다.

 

 


유럽인들은 우세한 기술적 군사적 힘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점령할 수 있었는데, 식민화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정치적 경제적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민족주의적 경쟁과 힘의 균형, 그리고 국가의 영광을 위한 행보와 같은 정치적 요인들로 인해 식민지를 더욱 더 원하게 되었다. 또한 제국주의 역시 주요 산업 열강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장과 천연자원의 산지를 차지하여 지배하고 싶게 만들었다. 이런 지역들은 유럽인들이 경제적으로 낙후되었다고 생각하는 곳이었다. 많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아프리카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은 아프리카 제국을 차지하는 것보다는 아시아를 소유하여 유지하고 개발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제1봉인 킬리만자로 산도 이러한 식민주의의 잣대로 인해 운명을 달리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킬리만자로에 대해서 들었지만 산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지 않다. 헤밍웨이가 “킬리만자로의 눈(snows of Kilimanjaro)"이라는 작품에서 킬리만자로를 묘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정확하게 어느 곳에 눈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사람들은 킬리만자로가 아프리카에 있지만 정확히 케냐에 있는지 아니면 탄자니아에 있는지 잘 모른다. 물론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 있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또 왜 탄자니아에 속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킬리만자로는 수백 만 년 전 지질학적 융기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의 생성물이다. 그러나 탄자니아는 인간의 손에 의해 국경이 그어진 역사의 산물이다. 탄자니아의 국경은 빅토리아 호수에서 인도양을 향해 킬리만자로의 북쪽 경사면의 굽은 국경선을 제외하고는 거의 직선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국경선은 식민통치자들의 편의에 의해 그어진 것이다. 

 

킬리만자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빌헬름(Wilhelm)은 높고 큰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라고 언급하면서 그의 손자인 독일 황제에게 수여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역사책에서는 식민지 국가들이 국경선을 정하면서 얼마나 임의적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국경선을 그었는지 잘 설명해주는 실례로서 언급된다. 빅토리아 여왕과 빌헬름 황제의 이야기는 감상적이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1886년 킬리만자로의 운명이 정해질 때까지 빅토리아 여왕은 빌헬름 황제에게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았고 빌헬름 황제도 받지 않았다. 그 당시 황제는 그의 할아버지였고 그의 아버지 크라운 왕자(Crown Prince)는 황재권을 물려받기 위해 그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론은 간단하다. 탄자니아에 킬리만자로가 있게 된 자명한 사실을 독일인들은 최상의 카드를 이용하여 합법적 권한을 보장받고 싶었고 이에 대해 영국인들은 가장 현명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나중에 알고 있는 것처럼 필 수 불가결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탄자니아 국경선은 영국과 독일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그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협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동아프리카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독일과 영국은 부지불식간에 국경선을  1889년 10월 6일 독일인 지리학자 한스 메이어(Hans Meyer)는 킬리만자로 최고봉에 오른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으며 독일 깃발을 휘날렸다. 1961년 12월 9일 탄자니아 국기가 같은 장소에서 휘날림으로서 25년간의 독일의 통치와 40년간의 영국의 통치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독일의 지배기간동안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다. 1880년대에는 유럽국가들의 관심이 동아프리카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1878년의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는 단지 해안선만을 가진 지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내륙지방은 거의 개척되지 않았고 조사되어 있지도 않았다. 15세기 말에 아프리카는 포루투갈, 영국, 그리고 프랑스 순으로 항해를 통해  알려지고 있었다. 단지 네덜란드만이 희망봉에 도달했고 내류지역으로 그들의 세력을 확대시키고 있었다. ‘비공식적 제국(informal empire)'의 개념을 옹호하고 있던 영국은 정복이나 합병이 아니라 영국해군의 강력한 힘에 바탕을 둔 상업적 이익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880년에는 아프리카 어디에도 독일 식민지는 없었다. 그러나 독일은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지역에서, 특히 잔지바르(Zanzibar)에서 경제적으로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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