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아프리카 탐사단

바히르다르, 고잠

africa club 2013. 9. 14. 22:24


바히르다르, 고잠 - 한미진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은?’

 

여느 상식 퀴즈에서 흔히 나오는 이 질문은 흥미롭게도 2008년을 기점으로 다른 답을 갖는다.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라고 알려져 온 아프리카의 나일강보다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이 더 길다는 사실이 2008년 5월 리마 지리학회에서 확인된 것이다. 여기서 아마존 강에 대한 새로운 지리적 사실보다는, 역으로 왜 나일강이 그 동안 가장 긴 강이라고 간주되었는지를 생각해보자. 이는 구불구불하고 지류가 많은 아마존 강에 비해 굵직한 물줄기로 아프리카의 북동부를 관통하는 나일강이 측량도 수월하고 더 길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나일강이 이집트를 고대 문명의 시원으로 발전시켰고 이 문명을 아프리카 각지로 전파하는 교통로로 작용했으며, 제국주의 시대 유럽인들에게 많은 자연·문화적 정보를 제공한 원천이 되고, 이후 이집트의 근대화 작업의 대상이 되어 미국·소련과의 외교 관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역사적 배경, 즉 이러한 나일강에 대한 인간의 ‘인지적 작용’의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나일강이 수천 년 동안 인류 역사의 자연적 배경으로서 ‘거대한 강’이라는 인식이 자리매김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강의 원류는 어디일까? 수 천년동안 어디서 이 많은 양의 물이 공급되는 것일까? 일찍이 유럽의 탐험가들은 나일강을 따라 그 원류를 추적하고자 했다. 사실 ‘나일강’ 하면 이집트만 떠올리기 쉽지만 나일강은 이집트 외에도 에티오피아, 수단, 우간다를 거쳐 흐르기 때문에 그 원류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여기서 나일강의 두 지류 중 하나인 청나일강과 그 직접적 원류인 타나 호수가 위치하는 에티오피아의 바히르다르(Bahir Dar)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에티오피아 북서부의 중심, 바히르다르

 

바히르다르는 에티오피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암하라 주의 주도이다. 에티오피아의 행정 구역은 아디스아바바와 디레나와의 2개 특별시, 그리고 인종 구성에 따라 나뉜 9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다. 암하라족은 전체 인구의 26%를 차지하며 에티오피아의 정치적, 경제적 삶에서 전통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들의 언어인 암하릭은 에티오피아에서 아랍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로, 토착어 중에서는 가장 우세하다. 언어와 권력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암하라족이 에티오피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이에 암하라족의 중심지인 바히르다르 역시 예부터 에티오피아의 주요도시 중 하나였다. 바히르다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 군의 표적이 된 바 있으며 1988년 에티오피아 내전 당시에는 혁명군의 거점지이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바히르다르의 자연유산에도 어렴풋이 녹아 있다. 바히르다르는 가장 아름다운 폭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청나일폭포와 제주도의 두 배 크기인 타나호수가 인접해 있고 도시 구획이 아름다워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청나일강과 타나호수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장소 같지만, 사실 나일강 탐험 이야기와 그 주위의 수도원 이야기에는 인류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다. 대자연의 숭고함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해보고자 하는 노력, 즉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을 횡단하는 나일강을 탐험함으로써 문화적 지배력을 높이려는 서양인들의 욕망, 자연의 기를 통해 종교적 신앙심을 견고히 하려는 수도승들의 움직임에서 우리는 자연과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나일강 탐험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다

 

큰 하천이 문명의 발전 조건이 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강은 농경생활을 가능하게 해 인간의 미래에 대한 예측과 대비를 통한 생존 능력을 증진시킨다. 나아가 인류의 관심을 생존보다 고차원적인 방면으로 확장시켜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다. 여기서 나일강은 추가적으로 지속적인 범람을 통해 풍요로운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고 측량과 기하학이 발전하는 계기를 만드는 한편, 범람이 신의 행위라는 종교적 관념을 파라오 1인 체제와 결부 지어 이집트를 강력한 정주문명 국가로 만들어내었다. 이에 나일강이 범람하는 이유와 그 원천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궁극적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기원전 3세기 경 이집트의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군원정단은 청나일강을 탐험하고 범람의 이유를 에티오피아 고원의 폭우 때문이라고 결론짓기도 하였다.

 

본격적인 나일강 탐사가 이루어진 것은 15~16세기 제국주의 시대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진출 이후이다. 여기에는 대항해시대 특유의 개척정신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진화론1)적 시각에서 세계의 주인인 유럽인들이 자신보다 열등한 유색인종을 지배하기 위한 기반을 닦고자 하는 의도도 배제할 수 없다. 의도치 않은 결과라 할지라도, 지식과 권력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아프리카 문명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일 강을 유럽인들이 탐사하고 그 온상을 밝혀냈다는 것은 이미 오리엔탈리즘2)이 반영된 결과이다. 나일강 탐험의 역사를 세계관과 인류를 변화시킨 위대한 도전정신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에 의해 미개한 지역을 개척하고 지배의 기반을 증축하겠다는 제국주의적 움직임으로 볼 것인지는 분명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어쨌든, 나일강이 유럽인들의 탐사로 인해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게 된 것은 사실이다.  1613년 프란시스코 알바레스와 페드로 파에스가 더 짧고 단순한 청나일강을 탐험했고, 1770년 제임스 브루스가 타나호수까지 탐험하여 그것이 나일 강의 원류임을 확인하였다. 청나일강은 청나일은 고대부터 이집트에서는 촐로에 팔루스, 그리스에서는 프세보에라고 불렸고, 현재는 아랍어로 바르알아즈라크, 혹은 아바이강이라고 한다.

 

청나일강은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많은 양의 유기물을 실어 와 이집트 하류에 비옥한 점토층을 만들어 주어 농업발달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이집트 고대문명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청나일강을 창세기(2:10-14)에 나오는 네 개의 낙원 강 가운데 하나인 ‘기혼 강’과 동일시하고 있다. 청나일강은 에티오피아의 타나호수에서 흘러나와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백나일강과 합류하게 된다. 백나일강의 물이 회백색인 데 비하여 이 강물은 맑은 청색이기 때문에 청나일강이라고 한다. 청나일강은 타나호 근처에서 수력발전에 이용되고 있다. 사실 습지와 사막지대를 지나 대부분 증발되는 백나일강과 달리 유량이 풍부한 청나일강은 나일강을 둘러싼 아프리카 수자원 분쟁의 핵심이다.

 

 

 

 

그림 1 나일강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타나 호에서 동남쪽으로 30여km를 흐르던 청나일강이 마을 근처 높은 낭떠러지에서 계곡으로 엄청난 수량의 강물을 쏟아 내리는 지점이 바로 청나일폭포이다. 청나일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 10위 중 하나로 손꼽히며, 에티오피아 최고의 관광명소이다. 현지에서는 ‘연기나는 물’을 뜻하는 티스 아바이(Tis Abay)라고 불린다. 우기인 7월부터 8월 동안에는 타나 호에서 유입되는 막대한 수량이 4백 미터의 폭을 가진 이 청나일폭포에서 45미터 아래로 수직 낙하하는데, 1km의 거리에서도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청나일강의 수원을 이루는 타나호수는 평방 3,600km의 넓이를 가진 에티오피아 최고 호수로 그 저수량이 엄청나다. 2006년 여름 에티오피아에서 626명이 사망했던 대홍수 시기 타나호수 근처에서 이재민이 급속도로 증가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었다. 타나호수가 해발 2000미터 첩첩산중의 고산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저수량을 가늠해보기 쉽지 않다.

 

호상에는 37개의 섬이 위치하는데 파피루스 배를 타고 이 섬과 주변의 아름다운 마을, 교회와 수도원을 투어한다. 현지인들이 탕크와(tankwa)라 부르는 이 배는 갈대 줄기를 엮어 만든 것으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애용해 왔고 여전히 공예품과 땔감, 심지어 황소까지 실어 나르는 중요한 해상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맑고 검푸른 타나 호수 위 약 20개의 섬에는 중세 시대에 지어진 주요한 교회와 수도원들이 있다. 엔토스 이야수 수도원은 화려한 벽화와 성화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파티샤’라는 기도하는 동굴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아름답고 경건한 곳 중 하나로 유명한 케브란 가브리엘 수도원은 여성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데, 옛 에티오피아 왕들의 왕관과 의복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금은보화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만의 종교적 해석을 담고 있는 오래된 성경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 수도원도 있다.

 

 

사실 고립된 섬의 숲속에 수도원이 생긴 이유는 슬픈 순교의 역사에 있다. 17세기 에티오피아 왕조는 남쪽 오로모족의 정치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주민들에게 가톨릭 개종을 요구하며 예수회 수도자들(the Jesuits)의 도움을 받고자 했다. 예수회 수도자들은 강력한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에티오피아 정교회 수도자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 수도원으로 와 3만 2000명의 순교자가 발생했었다고 한다. 바히르다르에 오는 길에 있던 데브레 리바노스 수도원 역시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를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점령했던 1930년대 후반, 반(反) 이탈리아 저항운동의 본거지였던 이 수도원은 무솔리니의 측근이었던 그라치아니 총독의 암살미수 사건 이후 유례없는 학살을 당했다. 지금은 에티오피아의 관광 명소가 되었지만 이 수도원들은 세계사의 변두리로 더욱 내몰리게 된 약소국 에티오피아의 설움을 보여주는 심리적 유산이 되었다.

 


다시 나일 강 탐험 이야기로 돌아와, 청나일강에 비해 훨씬 알려진 바가 없었던 백나일강의 탐사 기록을 살펴보자. 사실 19세기 유럽인들의 나일강 탐사의 핵심은 ‘검은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백나일강에 있었기 때문에, 백나일강 탐험은 유럽인의 미지의 세계 개척에 가장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유럽인에 의한 본격적인 탐사는 1830년 이집트 탐험대가 그 때까지 백나일강의 상류라고 여겨져 왔던 나이저 강이 별개의 큰 강임을 확인한 이후 이루어졌다.

 

빅토리아 호수가 유럽인들에 의해 처음 발견된 것은 1858년 영국인 스피크와 버튼이 이를 나일 강의 수원이라고 추정, 탐사에 성공했을 때이다. 스피크는 이 광활한 호수에 영국 여왕의 이름을 붙여주었으나, 버튼과의 협의 없이 성급히 발표하는 바람에 당장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1870년대 영국의 군인 C.G.고든과 그 부하들이 나일강의 지도를 작성하고, 이어서 M.스탠리가 빅토리아 호수를 주항한 이후 스피크의 발견은 인정받게 되었다. 스탠리가 백나일강의 원류지대를 상세히 밝힌 것이 계기가 되어 런던의 왕립지리학협회가 아프리카 내륙 탐험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나일 강은 이집트, 에티오피아, 수단, 우간다 등을 모두 관통하는 세계 제 2의 강이다. 특히 나일 강의 탐사 기록에 있어서 유럽인들과 에티오피아인, 수단인들과의 접촉은 하나의 세계사를 간직하고 있는 부분이다. 쉽게 가치판단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유럽인들의 나일강 탐사의 역사는 근대 이후 현대까지 아프리카의 세계 속 위치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탐험’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을 무릎쓰고 어떤 곳을 찾아가서 살펴보고 조사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발달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당대 유럽이 베일에 가려져있던 나일강의 수원, 온상을 밝혀낸 것은 분명 탐험의 역사이다. 하지만 나일강 탐험이 다른 아프리카 내륙 지역으로 유럽인을 끌어들이고 결국 그 지역 사람들을 지배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이는 ‘탐험’이라기보다는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모르는 세계를 ‘발견’했다는 의미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 내륙에 있는 큰 호수의 이름이 왜 아프리카 지역의 토착 고유명사가 아니라 ‘빅토리아 호수’이고 지금까지 이렇게 불리어오고 있는지, 나일강 탐험의 역사를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대자연의 풍경 속에서 인류의 무수한 역사적 흔적을 느끼고 간다.

 

 

* 참고자료

 

 1. 인터넷 자료 및 블로그

  네이버 백과사전(http://100.naver.com/100.nhn?docid=34258)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Nile)

  길에대한애정, 「에티오피아 북부 여행의 시작 Bahir Dar」(http://caminodesol.blog.me/ 150101738343)

  예담, 「나일강의 수원을 찾아서 - 탐험의 역사」(http://yedamco.blog.me/87936315)

  환상다반사, 「타나호수 수도원 탐사」(http://blog.naver.com/softgore?Redirect=Log& logNo=10114896884)

 

 2. 뉴스

  강덕치, 「데브레 리바노스 수도원의 학살 사건」, 크리스천투데이, 2009. 11. 11.

  강덕치, 「청나일 강의 수원 타나 호를 찾아」, 크리스천투데이,  2009. 11. 18.

  김성호, 「“여성 출입 금지”, 도대체 어떤 수도원이기에?」, 오마이뉴스, 2007.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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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펜서(H. Spencer)가 사회발전을 설명하는 데 있어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른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대입시켜 만들어낸 개념이다. 사회도 생물계와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동질적인 것에서 복잡하고 이질적인 것으로 발전해 간다며, 단선적이고 낙관적인 사회의 발전을 상정하였다. 이는 인간의 능력을 긍정하고 역사의 발전을 인정하는 한편, ‘문명사회’인 서양이 ‘야만사회’인 동양을 지배해야 마땅하다며 제국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2) 일반적으로는 낭만주의의 한 경향인 ‘이국적인 정서(동방세계에 대한 동경)’을 의미한다.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라고 정의하고, ‘동양이 서양보다 열등하다’는 사고방식의 유럽 중심적 편견과 제국주의적 음모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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