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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 비즈니스 개관 (2013.09.29) 특별보고서

africa club 2015. 3. 14. 22:57

 

 

서아프리카 비즈니스 개관

 

 

 

 

 

 

 

                                        교과명 : 중급스와힐리어

                                        교수명 : 김광수 교수님

 

                                        학 과 : 정치외교학과

                                        학 번 : 2012100067

                                        이 름 : 서재원

 


서아프리카 비즈니스 개관


자유전공학부 정치외교학과 서재원

2012100067


I. 서론


 국제연합에서 정의하는 서아프리카(Western Africa) 국가는 가나,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나이지리아, 니제르, 라이베리아, 말리, 모리타니, 베냉, 부르키나파소, 세네갈, 시에라리온, 카보베르데, 코트디부아르, 토고의 16개 국가와 1개의 영국령 해외영토(세인트헬레나)로 나뉜다.1) 이 지역의 국가들은 모두 한 때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구 프랑스령이 9개국 (기니, 니제르, 말리, 모리타니, 베냉, 부르키나파소,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토고)으로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 구 영국령 국가가 4개국 (가나, 감비아,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으로 제일 많다. 


그 외에도 구 포르투갈령이 2개국 (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 구 미국령이 1개국 (라이베리아)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이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가 많은 수의 국가의 공용어로 채택되거나 공용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토착 언어로써 하우사(Hausa)어, 만딘카(Mandinka)어와 밤바라(Bambara)어와 같은 만데어파 언어들이 통용되고 있다. 이 지역의 1인당 국민총생산 및 인간 개발 지수는 낮거나 매우 낮은 축에 속하나, 세계 6위이자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이며 세계 7위의 인구수를 가지는 나이지리아와 다카르 랠리로 친숙한 세네갈이 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이 서아프리카 내륙지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이 지역의 대부분의 인구와 산업기반은 해안지대에 밀집해있다. 이러한 도시들은 한 때 유럽인들의 노예무역과 유럽열강간의 식민지 쟁탈을 위한 각축장이 되었으며, 서아프리카에 독립된 국가들이 들어선 뒤에는 그 못지않게 비극적인 내전과 갈등의 무대가 되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에 관한 자세한 정보와 최근의 소식을 종합해보면 서아프리카에도 기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II. 역사


1. 서아프리카의 고대 왕국들


 서아프리카 지역은 고대시대부터 지중해 및 아랍세계와 교역을 하며 문화를 꽃피웠다. 이 시기 서아프리카의 주요 수출품은 금을 비롯한 금속류였으며, 북아프리카의 소금, 직물 등과 교환되었다. 베르베르 유목민과 카르타고와의 무역을 통해 쌓은 부를 바탕으로 이 지역은 1세기 무렵부터 가나 제국이 들어섰고, 그 뒤를 이은 말리 제국, 송하이 제국 등과 같은 토착 세력에 의해 세워진 강력한 정권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기원후 7세기 예언자 무함마드에 의해 등장한 이슬람교는 무함마드 사후 빠른 속도로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이는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역로를 통해 서아프리카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13세기의 말리 제국의 황제인 만사 무사(Mansa Musa)는 재위기간에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젠네 모스크(Djenné Mosque)를 비롯한 많은 진흙 모스크(Mud-brick mosque)들이 건설되었고, 교역의 중심지였던 팀북투(Timbuktu)에 아프리카 최초의 대학이 설립되었다. 1324년에는 메카로 향하는 성지순례여행을 떠났는데, 그가 순례 길에 사람들에게 나눠준 금으로 인해 카이로, 메디나와 같은 주요 도시의 금값이 폭락하기도 하였으며, 그의 명성은 당시 유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2.유럽인들의 등장과 제국주의 시대


 그러나 15세기부터는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이 지역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에 교역거점을 설립한 유럽인들은 유럽의 무기, 제조 상품과 아프리카의 노예, 신대륙의 환금 산품을 교환하는 이른바 대서양 삼각무역을 시작한다. 이 때 유럽에서 유입된 무기를 바탕으로 아샨티 제국, 다호메이 제국과 같은 강력한 제국들이 등장했으며, 이 제국들은 활발한 정복활동을 바탕으로 피정복민들을 유럽인 노예상들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관계는 1807년, 영국이 노예무역을 법으로 금지하고 1870년대에 들어 특히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신제국주의가 대두, 경제적 수탈을 목표로 한 팽창주의적 대외노선이 채택되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발전된 기술과 효과적인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Quinine)의 발견을 바탕으로 1914년에 이르러서는 라이베리아와 에티오피아를 제외2)한 아프리카 전역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가 되기에 이른다. 그 중 가장 큰 식민지를 가졌던 영국과 프랑스 간의 식민지 확장 경쟁은 아프리카 쟁탈전(Scramble for Africa)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결과 서아프리카는 대체적으로 프랑스의 영향권에 속하게 된다.


 

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아프리카의 독립운동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은 유럽 국가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난다. 1957년 사하라이남 식민지 중 가나가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의 지도 아래 최초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 1960년 영국의 해롤드 맥밀란(Harold Macmillan) 수상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의회에서 “변화의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될 연설에서 식민 국가들의 독립을 용인할 의도가 있음을 밝혔고, 이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운동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1954년 촉발된 알제리 전쟁이 심화되면서 1958년에 독립한 기니를 제외한 서아프리카의 프랑스령 식민지들이 1960년에 일제히 독립을 선언하였고, 포르투갈도 1974년의 카네이션 혁명으로 살라자르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해외 식민지를 모두 포기한다. 그러나 신생 독립 국가들의 시작은 순탄치 못했으며, 많은 수의 국가들이 내전이나 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III. 사회


1. 사회 전반


 미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Polity IV 프로젝트는 그 보고서에서 서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민주주의 또는 권위주의와 민주주의가 혼합된 형태의 정치체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사회 안정의 측면에서도 2013년도 발표된 세계 평화 지수 순위에서 가나와 시에라리온의 경우 상위 40%에 속하는 각각 58위, 59위를 기록, BRICS 국가인 브라질(81위)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121위)보다도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2013년 현재 대한민국 외교부는 서아프리카 16개국 중 9개국의 전역 또는 일부지역에 대해 2에서 3단계 사이의 여행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그 중 나이지리아에서는 아프리카 최대의 유전지대인 니제르 삼각주(Niger Delta)를 둔 갈등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말리 북부, 시에라리온, 코트디부아르 등의 국가에서도 지난 3년 사이 내전이 발발하거나 내전의 위기가 닥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 정치체제


(1)정치체제 전반


 전반적으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국가 중에서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이원집정부제 실시 국가가 높은 수로 나타나는 것이 특기할만하다. (니제르, 말리, 부르키나파소, 세네갈) 대부분은 대통령중심제를 시행하나 의원내각제를 실시하는 국가(카보베르데)도 있다.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정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국내 민족/부족 간 갈등 구도이다. 이러한 갈등들은 역사적, 경제적 이유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으며 모든 서아프리카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그러나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원래 영국의 식민지로 독립 직후에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 의원내각제를 실시하였으나 부족 간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연방제를 도입, 현재는 비교적 높은 자치권을 가진 몇 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 모리타니와 같은 국가에서는 피부색이 비교적 밝은 편인 아랍계 무어인이 흑인들을 노예로 삼는 행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불과 6년 전인 2007년에 모리타니 의회에서 노예소유를 징역형에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새로 제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갈등이 정치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들이 작은 규모의 소요로 마치지 않고 내전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전 연구에 있어 권위 있는 기관인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웁살라 분쟁 데이터 프로그램(UCDP, Uppsala Conflict Data Program)은 내전을 분쟁 당사자의 하나 이상이 국가이고, 1년 사이에 25명 이상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무력 분쟁을 내전으로 분류하는데, 서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1975년 이래 이러한 부류의 분쟁이 없었던 국가는 베냉밖에 없다.



(2)내전: 서사하라


 서론에서 본 조사의 대상을 정리하면서 서사하라는 괄호를 쳐서 언급하였는데, 이는 이 지역이 일부 국가들에 의해서만 독립된 국가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본래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서사하라의 문제는 1975년 스페인과 모로코, 모리타니 간에 마드리드 조약을 체결, 서사하라의 주권은 스페인에 종속시키되 행정관할권은 모로코와 모리타니가 나눠 갖는 것으로 하면서 촉발되었다. 원래 이 지역에 살던 살라위족(Sahrawi族)은 스페인과 주변국 간에 일방적으로 체결된 결정에 반발, 살라위족의 자치국가 수립을 목적으로 폴리사리오 인민해방전선(POLISARIO Front)을 조직, 지금까지도 투쟁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1991년 국제연합의 중재로 내전은 종식되었으나, 80년대에 모로코 군이 축조한 장벽이 지금도 국토를 양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폴리사리오 인민해방전선은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The Sahrawi Arab Democratic Republic)이라는 이름으로 자치 정권을 수립하였다.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은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의 정회원국이자,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수교되어있다. 반면 서사하라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모로코가 속해있는 아랍 연맹(The Arab League)은 그와 반대로 모로코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UN은 마드리드조약에 따라 서사하라를 모로코가 실효 지배하는 스페인 속령으로 간주하고 있다.


 서사하라의 주요 경제기반시설이 위치한 해안지대는 현재 모로코가 실효지배하고 있으며, 폴리사리오 인민해방전선은 국토의 3분의 1가량인 내륙의 불모지를 지배하고 있다. 이 까닭에 실질적으로 서사하라의 정치 경제적 주도권은 모로코가 가지고 있는 상태이고, 폴리사리오 인민해방전선은 알제리에 위치한 망명정부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3)내전: 시에라리온


 시에라리온 내전은 1991년 혁명통일전선(RUF, Revolutionary United Front)이 시에라리온의 집권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촉발시킨 전쟁으로 개전 11년 뒤인 2002년에 종식되었다. 시에라리온 내전에는 시에라리온 외부의 세력이 개입하였는데 그로 인해 혼란스러운 양상을 띠고 있다.


 시에라리온은 1970년대부터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며 조셉 모모(Joseph Momoh)대통령의 통치 하에 권위주의적 정권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이에 혁명연합전선(RUF, Revolutionary United Front)가 라이베리아를 거점으로 반란, 시에라리온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지인 코노(Kono) 구역을 포함한 국경지대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 와중인 1992년 군부 쿠데타로 인해 모모 대통령이 축출되고 군부정권과 RUF간 휴전과 재개전을 반복하다가 1999년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 2002년도에 이르러 완전히 종식된다. RUF 세력의 주요 지도층이 반인륜죄로 시에라리온 특별법정에 불려가 형을 언도받는 중에도 RUF는 정당으로 그 모습을 바꿔 활동하는 등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이것은 RUF가 다이아몬드가 산지를 장악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 접경국인 라이베리아는 현지인 크란족(Krahn族) 출신의 새뮤얼 도(Samuel Doe)대통령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고, 이로 인해 현지인 위주의 국정운영이 지속되면서 기득권 계층이자 미국에서 이주한 해방노예의 후손들인 아메리코-라이베리안(Americo-Liberian)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이에 훗날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이 되는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와 엘렌 존슨 설리프(Ellen Johnson Sirleaf)의 주도로 라이베리아 애국전선(NPFL, National Patriotic Front of Liberia)이 조직되고 도 정권을 전복시키게 된다. 찰스 테일러는 이 시기 RUF에 무기와 군사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 죄를 묻기 위해 2006년에 체포,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해 구금되어있다. 현재 시에라리온 내전은 종식되었지만 내전 과정에서 5만여 명이 사망하고 수천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지가 절단되는 등 그 상처는 아직까지 아물지 않고 남아있다.


 시에라리온 내전이 악명 높은 또 다른 이유로는 내전 과정에서 정부군과 반군 모두에 의해 많은 수의 소년병이 징집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년병은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개념이지만 RUF는 1만여 명의 8에서 10세 사이의 어린이들로 구성된 소년 부대(SBU, Small Boys Unit)를 별도로 운용했는데, 1998년에 이르러서는 참전군인 중 미성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25%에 이를 정도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5세 미만의 유아가 징집된 사례도 있는데, 소년병들은 지휘관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마약에 중독되어 탈영하지 못하게 하고 환각상태에서 학살과 고문과 같은 반인륜죄를 저지르도록 강요받았다. 이러한 사례는 내전을 겪고 있는 다른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들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며, 2002년 코트디부아르 내전에서도 정부군과 반군 모두 소년병 부대를 운용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4)내전: 비아프라


 나이지리아의 경우 국토의 동남부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인구는 크게 하우사(Hausa), 요루바(Yoruba), 이보(Igbo)의 세 부족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이 중 하우사족은 척박한 내륙에, 요루바족과 이보족은 비교적 부유한 해안지대에 주로 거주한다. 그 중 석유가 생산되는 니제르 삼각주의 큰 부분이 전통적으로 이보족의 영향권에 속한다. 종교적으로도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이보족은 이슬람을 주로 신봉하는 하우사족과 개신교나 토착종교를 주로 신봉하는 요루바족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1967년 비아프라 공화국의 독립 선언으로 나이지리아 내전이 촉발되면서 절정에 이른다. 나이지리아 내전은 비아프라 공화국을 나이지리아가 다시 흡수하면서 나이지리아의 승리로 마무리 지어지나,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 그리고 비아프라 지역 봉쇄로 인해 촉발된 기아 등으로 전쟁이 진행된 약 30개월간의 기간에 1백만에서 3백만 명 정도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3. 언어


(1)프랑스어권


 서아프리카 16개국 중 그 절반인 8개국에서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모리타니에서는 공용어인 아랍어 다음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어는 서아프리카에 국한되지 않고 인접한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도 주요한 지위를 가진다. 프랑스어가 식자층과 사업자들 간의 비즈니스 언어로 통용되는 모로코 및 알제리와 같은 국가들이 위치한 마그레브 지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카메룬,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브라자빌, 콩고-킨샤사가 자리 잡은 중앙아프리카지역에서도 프랑스어가 널리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서아프리카 진출을 위해서는 프랑스어를 습득할 필요성이 높다.


(2)영어권


가나와 나이지리아와 같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현재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의 식민지였던 라이베리아도 영어를 사용한다. 미국식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영어권 국가들의 영어는 영국식 영어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아프리카 외의 다른 지역에서처럼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됨에 따라 근래에 들어 특히 미국식 영어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3)하우사어


 스와힐리어가 공용어의 지위를 가지는 동아프리카와는 달리 서아프리카에서는 토착 언어로써 하우사어(Hausa language)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우사어와 스와힐리어는 각각 아프로아시아어족 차드어군, 니제르콩고어족 반투어군에 속하기에 상호간 언어학적인 연관성은 낮다. 하우사어를 모국어로써 구사하는 사람이 약 3천 5백만 명으로 집계되나 스와힐리어와는 달리 하우사어는 아프리카연합의 공식 언어로는 채택되지 못했는데, 이는 교통어로 민족적 배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널리 사용되어온 스와힐리어와 달리 하우사-풀라니(Hausa-Fulani)족에 특정되어 사용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프리카 지역학을 가르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에서 서아프리카의 대표 언어로써 하우사어를 교수하는 등 그 지위는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 외에도 만데어파에 속하는 비슷한 언어들이 기니 만을 중심으로 분포되어있으며,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과 해당 지역의 언어가 섞인 크리올어들도 사용되고 있다.

 



IV. 경제


1.개관


 서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의 경제 구조나 기반 시설에는 제국주의 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 자원이나, 다이아몬드, 보크사이트, 금, 인산염과 같은 광물자원이 풍부한 일부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그 자원을 수출하여 부를 창출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서는 땅콩이나 캐슈넛, 또는 코코아나 커피와 같은 기호작물을 재배, 주로 유럽 국가들로 수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그 것에 근접한 수준의 급격한 경제성장을 보이는 추세를 따라 서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들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미국 CIA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서아프리카 국가 중 시에라리온(2위), 코트디부아르(11위), 라이베리아(16위), 부르키나파소(19위)의 4개 국가가 중국(20위)보다도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카보베르데(74위)는 90년대 후반 이래 꾸준히 성장하여 2007년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의 반열로 올랐다. 이러한 경우는 1994년 보츠와나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뒤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말리(199위)와 기니비사우(203위)와 같은 국가는 이미 최빈국으로 분류됨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등 같은 지역임에도 국가별로 차이가 크다.3)


경제적 통합의 측면에서도 모리타니를 제외한 모든 서아프리카 국가는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 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의 회원국이다. ECOWAS는 1975년 라고스 조약을 통해 출범되었으며 나이지리아의 수도인 아부자에 그 본부를 두고 있다. 회원국 중 감비아, 가나, 기니,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이 2000년 서아프리카 통화구역(WAMZ, West Africa Monetary Zone)이라는 이름의 통화동맹을 결성, 2015년까지 Eco라는 단일화폐를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상호 교섭을 이어가고 있는 한편,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7개국과 기니비사우는 이미 1945년부터 프랑스에 의해 도입되고 프랑스 재무부에서 보장하는 CFA 프랑을 사용하고 있다. WAMZ는 궁극적으로 CFA 프랑이 통용되는 국가에도 Eco를 보급, 서아프리카 지역의 경제를 통합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2.CFA 프랑


 기니비사우, 니제르, 말리, 베냉, 세네갈,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토고의 서아프리카 8개국은 공통적으로 CFA프랑(CFA Franc, Communauté Financière Africaine4) Franc)이라는 화폐를 사용한다. CFA프랑은 프랑스가 1945년에 기존에 사용하던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프랑(French West African Franc)을 대체하기 위해 도입한 화폐로 환율이 본래 프랑스 프랑화에 고정되었다가 프랑스가 유로화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유로화에 고정되었다. 이로 인하여 CFA프랑을 사용하는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통화 정책은 프랑스의 통화 정책과 나아가 유럽의 통화 정책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총 14차례 프랑화를 평가절하 했는데, 그 사이 CFA프랑과의 교환율은 1948년과 1994년 두 차례 변경되었다. 프랑스는 프랑화의 평가절하로 자국의 공업품을 전보다 많이 수출할 수 있었지만, 산업기반이 약한 서아프리카에서는 식품, 생필품 및 공산품 등을 수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비용이 상승되는 바람에 물가상승과 그에 따른 실업률 증가를 겪게 되었다. 유로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는 요즘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이는 역으로 이 국가들에 투자할 경우 유로화 약세가 지속되는 한 가격경쟁력이 높은 상품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CFA국가들과 BRICS국가들을 비교하였을 때 CFA국가들은 고용경직성이 높다. 2010년 기준 BRICS국가들의 고용난이도지수(Difficulty of Hiring Index)는 35.6인 반면 CFA국가들의 그 것은 53.6으로 집계되었으며, 근로 시간의 경직성 지수(Rigidity of Hours Index)도 BRICS의 34.6에 비해 38.6으로 집계되어, 평균적으로 BRICS 국가들에서보다 사람을 구하기 어렵고, 노동시간에 관한 제약이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5) 따라서 고용경직성을 낮추기 위한 정부의 규제 개혁 노력이 앞으로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3.경제 구조


 이 지역 국가들의 주요 수출품은 국가별로 차이가 크다. 가령 기니, 나이지리아, 니제르, 모리타니, 토고와 같은 국가에서는 각각 보크사이트, 원유, 우라늄, 철광석, 인산염과 같은 산업 자원이 생산되기에, 수출품의 대부분을 이러한 원재료들이 차지한다. 그러나 감비아, 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와 같이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국가들은 관광산업, 견과류 등의 기호식품재배, 서비스산업 등이 국가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기니비사우의 경우 1980년대 유럽에서 폐기물을 수입해 대신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도 있었다.


 이 지역 대부분의 국가가 아직 산업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공업품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업품 외에도 모리타니와 니제르와 같이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나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국내에서 생산되는 식량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사막화나 가뭄, 그리고 2004년에 있었던 것과 같은 메뚜기 습격 사태 등의 자연 재해로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못한다.


 

4.자원의 저주: 나이지리아 유전


 서아프리카 지역의 자원개발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이다. 자원의 저주는 특히 광물이나 에너지 자원과 같이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국가들이 그렇지 않은 국가들보다 낮은 경제적 수준을 보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1)산업 구조가 자원 채굴 및 수출 중심이 되어 자국화 평가인상을 초래, 다른 산업이 자라기 힘들게 되기 때문에, (2)국제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원의 가격이 영향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혹은 (3)자원 판매로 쉽게 얻은 수익을 정부가 제대로 분배하지 못하거나 부정부패로 인해 사라지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니제르 삼각주 지역의 유정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나이지리아 경제는 점점 석유 개발에 의지하게 되어 2008년도에 이르러서는 국가총생산의 60%를 석유 수출로 벌어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오일쇼크로 인해 정점을 찍었던 원유 값이 정상수준으로 돌아가자 나이지리아는 갑자기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도 석유로 창출된 부의 절반가량이 연방정부의 몫으로 묶여있고, 석유 개발이 가속화됨에 따라 환경오염이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의 생활수준은 지속적으로 낮아짐에 따라 1990년대 이후 이조(Ijaw)족 위주의 반군세력이 중심이 되어 유전 시설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경제적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도 번져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니제르 삼각주에서 생산된 석유가 수출되는 나이지리아 앞바다에서 해적행위가 빈번히 발생되고 있는데, 그 수가 소말리아 앞바다인 아프리카의 뿔 지역 다음으로 많다.


 

V. 종교


 이슬람교는 외래 종교로써 서아프리카에 유입된 첫 번째 종교였다. 북아프리카로 빠르게 전파된 이슬람교는 사하라 대상들의 교역로를 따라 서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전파된 이슬람교는 앞에서 서술한 말리 제국과 같은 강력한 이슬람 제국들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으며, 이들 정권들은 이 지역의 이슬람이 꽃피게 하였다.


 기독교는 유럽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전파되었고, 유럽 열강들의 식민쟁탈전이 본격화되며 전략적으로 전파되었다. 프랑스는 천주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고, 영국은 개신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는데, 나이지리아의 경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가톨릭 사제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이슬람과 기독교의 전파에도 불구하고 토착 종교의 세력이 위협받은 것은 아니었다. 부두교(Vodou敎)나 요루바교(Yoruba敎)와 같은 토착 종교는 이슬람의 전파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신봉되었으며, 서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끌려간 노예들의 후손들에 의해 아이티 부두교(Haitian Vodou敎)등으로도 발전되었다. 베냉의 경우 프랑스의 식민지배와 15년간의 공산주의 정권 통치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인구의 17% 가량이 부두교 신자로 나타나고 있다.

 


VI. 결론


 서아프리카는 아직까지는 혼란스럽고 사업가들이 다가가기에 어려운 지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오랜 교류를 가지는 동시에 강한 고유의 지방색을 가지고 있고,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나라가 많지만 반대로 생활 조건과 환경이 척박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이 많지 않고, 사업을 하기에도 몇몇 다른 국가들만큼 좋은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선이나 문화적 갈등 등 제국주의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러한 갈등들은 국가에 따라 내전으로 확대되어왔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지난 10년 사이 아프리카의 발전과 발 맞춰 근 몇 년 사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들로 떠올랐으며 가능성도 그에 비례하여 상승하고 있다. 내부 규제 완화와 같은 현지 정부들의 노력과, 꼼꼼한 시장조사, 그리고 사업가의 개척정신이 바탕이 된다면 서아프리카 또한 기회의 땅일 수 있을 것이다.



1) 학자에 따라서는 전통적으로 마그레브(Maghreb) 지방으로도 분류되는 모로코, (서사하라), 알제리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보이나, 본 조사는 국제연합의 기준에 따른 16개 국가를 중점적으로 조사하도록 한다.

2) 이 중 라이베리아는 1822년 미국에서 건너간 해방노예의 후손들이 건국한 국가로, 한때 미국의 식민지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독립 국가는 에티오피아에 한정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3) CIA. (2012). The World Factbook. Central Intelligence Agency. Washington D.C

4) 아프리카 금융 공동체

5) N. Moyo & V. Songwe. (2011). The Eurozone Crisis Dividend an Opportunity for Africa’s CFA Franc Zone. Brookings Institution. Washington 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