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아프리카 역사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탐험과 항로의 개척

africa club 2018. 4. 6. 09:58


아프리카와 유럽의 상호작용의 역사는 1400년대 초반 포르투갈의 항해 왕자 헨리(Henry)의 후원을 받은 항해부터 시작되었다. 헨리 왕자는 북부 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아랍 지역을 우회하여 서부 아프리카의 주요 문명 지역들과 황금을 직접 교역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계획은 기술이 발달하여 포르투갈인들이 기니 남쪽을 탐험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1460, 무역선이 케이프 베르데(Cape Verde)에 당도하였고, 곧 이어 1471년에는 황금해안(Gold Coast), 1483년에는 콩고, 1488년에는 희망봉(Cape of Good Hope)에 도착했다


1497년에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양과 동부 아프리카에 있는 스와힐리 해안도시에 도착했고, 그 이후 인도에 도착하게 된다. 드디어 1500년 카브랄(Pedro Cabral)은 포르투갈을 출발하여 브라질에 기착한 후 케이프 타운을 돌아 동아프리카를 거쳐 인도로 가는 항로를 확고히 열고 포르투갈의 독점시대를 열었다. 이 지역에 백인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The Dutch East India Company)가 인도 항로의 중간 정박 기지인 기항지를 건설을 목적으로, 얀 판 리비어크(Jan van Riebeek)가 이끄는 3척의 배와, 130명의 남녀로 구성된 탐험대가 165264일 테이블 만에 도착하게 됨으로서 드디어 유럽인이 최초로 아프리카에 이주 정착하게 되었다.


매우 이익이 컸던 인도양 무역으로 인해 원래의 목적이었던 아프리카의 황금은 뒷전이 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은 황금해안의 엘미나(Elmina), 콩고, 앙골라, 모잠비크, 몸바사에 거주지를 만들고 제한된 무역을 했지만, 선박들은 대부분 아프리카를 우회하여 동방으로 향했다. 1500년 중반 네덜란드인, 영국인, 프랑스인들이 포르투갈 무역상을 대신하기 시작했지만, 아프리카는 유럽의 최종목적지인 극동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우회해야 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더 우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