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서상현) 아프리카 이야기

나미비아

africa club 2003. 2. 3. 08:37
나미비아 (Namibia)

면적 : 824,292Km2(한반도의3.7배)
수도 : 빈트훅(Windhoek) = 인구(15.8만명)
                          시차(7시간)
시차 : 그리니치 기준시(GMT)+2시간
기후 : 아열대, 사막성 건조기후 (우기:10~4월,건기:5~9월)
인구 : 148만명(93)
민족 : 오밤보족(50%), 카방고족(9%), 헤레로족(8%),다마라족(8%), 백인(7%),
       기타소수민족(18%)

=> 민족적으로 다수를 이루는 오밤보족의 대부분은 북부에 살고  있다. 백인 가운데 60%는 아프리카어를 사용하고 대다수가 빈트훅에 거주한다. 빈트훅에는  독일인의 거리도 있고 쾌적하고  아름다운 20세기초 양식의  독일인 집들도 있다.  1990년 독립 당시는 민족간의 대립이 예상되었으나  이것은 기우에 그쳤다. 나미비아는  복수민족이 서로 조화롭게 살고 있다. 흑인은 거의가 자급자족 농민이고 백인층은 부유한 생활로 생활의 차이가  심한 편이다. 나미비아는  대가족이 많고 흑인  여성은 평균 1인당 6.5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있다.인구증가율 : 3.4%

언어 : 영어(공용어), Afrikaans,

=> 도시에서는 영어로도 충분히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초, 중학교에서는 아직도 필수적으로 아프리카어를 교육시키는 곳도 있다.

종교 : 기독교(90%), 토착종교
통화단위 ; 나미비아 달러(Namibia Dollar : N$)
환율 : U$1=N$3.6473(9511.17현재)
문맹률 : 62%
실업률: 20%(94)
약사 ;
1883 독일식민지
1915 제 1차 대전 때 남아프리카 군이 침공하였다. 버새일스 조약으로 20년 남아프리카에 의한 국제연맹 위임 통치령이 됨. 제 2차 세계대전후 46년 국제연합이 신탁통치의 이행을 요청하였지만 남아프리카는 거부하고 49년 남아프리카령에 편입
1920 남아공 의임 통치      
1959 SWAPO결성      
1966 UN총회, 직접관할 결정
1967 독립까지의 행정을 담당하는 UN 남서아프리카 이사회(나미비아 이사회)를 설립하였다. UN 안보리는 78년 독립까지 수속을 정한 결의 435호를 채택    
1978.4 UN안보리, UNTAG설립결정(결의435)
1978 12월 급진파의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를 제외하고 일방적인 선거 실시
1979 UN안보리, 남아공의 나미비아 불법 통치 비난, UN감시하의 자유선거 실시결의안 385 채택
1980 7월 민주 탄하레동맹 중심의 자치정부가 탄생. 85년 6월 새로운 장정정권이 탄생. 남아프리카는 나미비아 독립의 조건으로 쿠바군의 앙골라 철수를 주장해 88년 4월 남아프리카, 앙골라, 쿠바의 평화 교섭을 개시    
1989.11 제헌의회 선거    
1990.3 독립(윌비스웨이 제외) 3월 21일 독립해 제헌의회가 국민의회로 변경 전국 13개의 지역의회 대표 2명씩으로 구성되는 국민평의회가 93년 2월에 소집되어 2원제 의회가 완성

역사

아프리카 남서부에 유럽인들이 몰려오기  전에는 코이코이족과 산족, 그리고  반투어를 쓰는 헤레르족이 살았다. 1480년대  말 포르투갈 해양 탐험가들이  케이프크로스·월비스베이·디아스포인트의 해안지대를 탐험하였다. 17,  18세기와 19세기초에는 네덜란드와 영국인들이 해안지대  및  내륙지대 일부를  탐험하였다. 이후 세계 각국의 어선들이 풍부한 바다표범 및 고래어장의 매력에  끌려 남서 아프리카 근해로 몰려들었다.

독일은 1840년대에 라인강 선교와  파견을 계기로 이 지역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독일은 1860년대에 반발한 부족간의  전쟁을 기회로 자국의 선교사와  이주자들을 보호해 주는 조건부로 이  지역에 대한 영국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러한 독일의 제안을 거부했다.  1876년 마침내 케이프 식민지는 부족장들과 맺은 조약에  따라서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다. 영국 정부는 웰비스베이와  일부 인근 지역만을 합병한다는 데  동의했다. 1884년 독일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남서 아프리카에 대한 독일의  완전한 보호 통치안을 내놓았고 이는 결국 완전 합병으로 연결되었다. 1892년 처음으로 독일 농민들이 남서 아프리카에  정착했다. 이듬해 독일인과 코이코이족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는데 이것이 나중에 코이코이족의 봉기와  헤레족의 보기로 이어졌다.      독일은 이에 강경 대응으로 맞서서 봉기 당시 8만에 이르던 헤레족이 진압 후에는

1만 5,000명의 기아에 허덕이는 피난민으로 전락했다.  1908년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 이 지역의 유럽  인구는 1913년에 이르러 1만  5,000명으로 증가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아프리카 연방은 이곳에  군대를 파견했다. 독일군을 격퇴하고  남서아프리카를 점령했다. 전후 국제연맹은 남서아프리카에 대한 통치권을 남아프리카 연방에 위임했다. 처음에 이곳은 남아프리카 연방 식민지로  통치되었다. 1926년 남서 아프리카에 제한적이나마 국내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의회가 세워졌다.  국제연맹이 해체되자 남아프리카  연방은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받은  남서아프리카에 대한 통치권을 새로 구성된 UN에 양도하는 것을 거부했다. 1946년 남아프리카 연방은 남서 아프리카를 연방에 합병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여 UN에 그 정식 승인을 요청했다.  남아프리카는 남서아프리카들이 합병을 원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믿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UN은  결국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4년 UN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위임통치의 종료를  의결했고, 4년  후인 1968년에는 투표를 통해서  "이제부터 남서아프리카의  국명을 나미비아로 한다"는 안을 통과시켰다. UN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  사법재판소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의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했다.      1970년대 중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나미비아의 분할을 제안했으나 완전독립을 요구하는  혁명세력인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는  이를  거절했다.  1989년 SWAPO는 새로운  국민회의에서 다수당이 되었고 이  국민회의는 새 헌법을 재정했다. 1990년 나미비아는 SWAPO가 지배하는 정부하에 마침내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정치 : -정부형태 : 대통령중심제
       -국가원수 : 삼 누조마 대통령(임기5년, 94.12월 재선)
       -외교노선 : 친서방, 비동맹 외교노선
       -대외관계 : -비동맹 정책 추구(남남협력존중)
                   -국제기구 및 지역협력체 적극 가입으로 남부아프리카 지역에서 중심적 역할 수행 노력
                   (UN,비동맹, 영연방, OAU, IMF, SADC, PTA등 가입)
       -의회제도 : 양원제(상원: 26석, 하원: 72석)
       -주요정당 : SWAPO(53석), DTA(15석), UDF(2석), DCN(1석), MAG(1석)
       -전쟁, 혁명, 폭동등 경험 : 없음
군대 : 총병력 : 7500 (육군: 7400, 해군: 100)
       국방비(91) : 47,44백만불
영해 : 12해리 (경제수역 200해리)
예산 (92년): -세입 : 2,636.2백만 랜드
            -세출 : 2,791.6백만 랜드


보건/의료
백인들은 충분한 의료혜택을 누리고 있으나 흑인들은  가난한데다가 백인중심의 의료서비스제도 때문에 적절한 의료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흑인들의 경우 영양실조, 위장염 등 결핵 등과  같은 질병에 쉽게 걸리는 등 여러가지 보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UN에 의하면  흑인 영아의 사망율은  1984년에 1,000당 156명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평균치보다 높으며 백인 영아의 사망률보다 7배에 이르고 있다. 또한 어린이들의  결핵 발병률은 1,000당 40∼50명이다. 도시의 병원은 대부분 백인이 이용하고 있으며 보건서비스는  거의 전적으로 백인 어린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나미비아에는 실제로  흑인 의사가 없을 뿐더러  의료훈련센터도 없다.

의식주
의료품, 신발 등은  입힐 수 있다. 의료품에 대해서는 백화점, 부티크가 많고 여러 가지 종류의 의류를 팔고 있다. 또 어린이용은 비싼  편이다. 4월에서 8월까지는 꽤 추우므로 방한용이 필요하다. 물론 구입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야채, 고기, 조미료, 과일,  냉동식품은 구입할 수  있다. 또 고기, 소세지는 물량이 풍부하다. 조개류는 통조림, 냉동식품이 대부분이다. 중국산 장류, 라면 등도 구입할 수 있다. 독일산  수입식품인 향료 등도 있으나 수입품이므로 가격은 비싼 편이다. 독립후 외국인이 많이  입국했으므로 주택의 수요가  증가해서 곤란을 겪고  있다. 주택을 구하는 방법으로 신문에 개인적으로 광고를 내거나 부동산점포에 나가서 소개를 받는 경우의 2가지 방법이 있다. 집을 임대할 경우는 계약시에 1개월 분의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임대는 1개월에 2,500∼3,500랜드에 상당한다. 1, 2인용의 아파트도 있으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은 Luxury Hill, Pioneer Park, Olympia,  Klein Windhoek, Eros가 있다.  가구, 가전제품, 식기 등은 거의 입수 가능하다. 전기는 220V를 사용한다.
    
경제 : 국민총생산 : 2,129백만불(91)
       1인당GNP: 1,760불(91)
       주요 산업 : 광업- 다이아몬드, 연광, 동광
                   농업- 목축
                   어업- 멸치, 정어리, 전갱이
       경제개발계획: -시장경제 원칙 존중
                     -외국투자 적극유치
                     -비교적 우수한 사회간접자본 보유
                     -농업개발 및 국가주택건설계획 추진

무역(91년)

동향 : 나미비아는 GDP의  60%를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이며  원자재를 수출하고 에너지를 수입하는 무역형태를 이룬다. 1차 산품이 수출의 90%를 차지하며  국제가격 및 환율 변동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수입의 대부분은 기계 및 산업장치, 석유제품, 화학품 및 중간재 등이다. 나미비아 수출의 75%는 남부  아프리카 관세동맹의 권위로 수출되며 수입의 약  90%는 SACU지역에서 특히 남아공으로부터 수입된다.

90년 6%의 감소를 보인 수출은 91년도에  전년 대비 18%증가한 3.3십억R을 기록함으로써 수출 회복력을 보였다. 이 중 다이아몬드가 총 수출액의 1/3이상을 차지하여 1.2십억R을 기록, 44%의 증가율을 보였으나 우라늄생산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서 전체 광물 수출 비중은 90년  전체 수출의 65%에서 91년 61%로  다소 감소하였다. 다이아몬드 다음의 주요  수출품목으로는 어류이며  324백만 R의 수출실적을  올려 전체 수출의 약 10%를  차지하였다. 90년도에 다소  감소한 수입은 91년도에는  약 8% 증가한 3.4십억R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수입가격 상승, 완만한 소비지출 증가 및 중간재에 대한 수요 증가에서 기인되나 수입 증가율이 수출 증가율보다 다소 낮아 90년  대비 91년 무역적자는 396백만R에서 147백만R으로 감소하였다.          

정책 : 수출의 대부분이 광물로 인해서 국제시세에 따라 많이 좌우되고  있다. 남아공으로부터 수입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타 수입도  남아공 소재 수입상에 의해 중개되고 있다. 남부 아프리카 관세동맹 회원국으로 남아공 동SACU 회원국간에는 자유무역을 하고 있으며 남아공의 관세제도를 그대로 채택하고 있다. 독립 이후 쌍무협정을 체결하고 남아공에 의해 외환관리규제를  받고 있다. 최근 남아공  의존 경제를 탈피하기 위해서 미국, 일본, 독일등과  협정을 체결하여 교역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수출- 총액 : 1,184백만불
      주요상대국 : 스위스(37%), 남아공(25%), 독일(5%), 일본(4%)
      주요품목 : 다이아몬드(37%), 가공제픔(21%), 우라늄(10%), 어패류(9.9%)
수입- 총액 : 1,166백만불
      주요상대국 : 남아공(90%), 독일(2%), 일본(2%), 스위스(1%)
      주요품목 : 식음료(19%), 기계및 전기제품(16%), 수송기기(15%)

우리나라와의 관계
관계수립일 : 90.3.21
공관설치상황 : 상주 90.6.18일
협정체결현황 : 경제, 기술, 과학협력협정(94.4.15)
주요 인사교류 : 방문- 90.3 노재원 대통령 특사
                      93.6 이경훈 EXPO정부대표
                방한- 93.5 Nashandi외무부정,경 제1차관보
양국교역(93): 수출- 총액 : 506천불
                  품목 : 무기, 총포탄, 원자로, 보일러, 기계류, 철강, 비금속, 공구
             수입- 총액 : 153천불
                  품목 : 채유식물 비철광제품, 가구품
경제협력 : 무상기자재 공여 -90~93년 : 51만불
                           -94년 : 10만불
기술협력 : 기술연수생 초청 -91~93년 : 7명
                           -94년 : 1명
           정파의 파견 : 1명
           전문가 파견 : 93년 -1명

국경일
  -  1월  1일         신정
  -  3월 21일         독립기념일
  -  3월 29일         Good Friday
  -  4월  1일         Easter Monday
  -  5월  1일         노동절
  -  5월  4일         Casinga Day
  -  5월  9일         예수승천일
  -  5월 25일         Afriday Day
  -  8월 26일         Heroes Day
  - 10월  7일         국제친선의 날
  - 12월 10일         국제인권의 날
  - 12월 25일         크리스마스
  - 12월 26일         법정휴일


교통

1. 자동차

각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잘 구비되어 있다. 차는 좌측 통행이다. 렌트카는 Avis, Budget, Imperial 등의 회사가 주요 도시에 있으므로 세단, 사륜 구동,  캠핑카 등의 선호에 따라서 차종을 빌릴 수 있다.

2.철도

철도 총   연장은 2,341㎞이며  주선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빈트훅을 거쳐서 WalvisBay와     Tsumeb이다.    Keetmanshoop∼luderitz,     Windhoek∼Gobibis, Otijiwarongo∼Outjo, Otavi∼Grootfontein지선은 정기적으로  운행한다. 1988/89 회계년도에는 200만 톤의 화물, 35,000두의 가축, 480,000명의 승객을  운송했다. 디젤/전기기관차는  128대,  화차는  1,692대,  객차는  213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영 transnamib사는 화물수송을 돕기 위해 6×3m컨테이너  및 미니 컨테이너를 보유하고 있다.

3.도로

총 연장은 5만 5,088㎞이며 4,382㎞의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거의 모든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고 있다. 북부지방의 도로는 대부분이 비포장도로이다.  국토 면적이 넓고 기후 및 지리적 조건의 변화가 심해서 도로 건설비용이 많이 들며 대부분의 포장도로는 남아공의 군사 ·통치적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연간 수송량은 화물 18만톤, 여객 5만명 정도이다.

4.항구

현재 Walvis Bay와 Luderiz 2곳이 수출입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독일점령시대의 주요 항구였던   Swakopmund와 북부   연안에 새로운  항구를  개발할  예정이다. Walvis Bay항구는 부두관련  시설과 수리조건시설을  갖춘 매우  중요한 항구로서 Windhoek와 직접 연결된다. 총면적은  969㎢이다. 주요 시설은  부두 1,400m, 창고 3,500㎥이며 서남아프리카   대서양연안의 항구중에서   가장 훌륭한  자연항구로서 1878년 영국이 점령하였고 1977년 남아공이 Cape Province에 합병시켰다.이 항구의 화물처리 관련 통계는 남아공이 전략적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연간 약 1백만톤 이상이 처리되고 출입선박은 900여척인 것으 추정된다. Luderiz는 작은 항구로 연간 약 5만톤의 화물을 처리하고 100대 미만의 선박이 출입한다. 이 항구는 수심이 얕기 때문에 7m 이하의 선박만 접안이 가능하다.


위험분야별 평가

1. 정치사회 안정도

가. 권력 기반 안정도
-1920년 국제연맹에 의해 독일식민지에서 벗어나 남아공의  위임통치령이 되었으나 2차대전이후 남아공은 UN의 신탁통치령을 거부하고 자국과의 합병을 단행함.
-이후 삼 누조마를 중심으로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가 결성되어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이 전개되었으며, 78년UN은 동국의 독립을 결의한 바 있음.
-남아공의 강점이 계속된 후 89년 11월UN의 감시하에 실시된 제헌의회선거에서 전체의석 72석중 41석을 얻은 SWAPO의 누조마의장이 90년 2월 대통령으로 선출됨.
-94년 12월 실시된 대선에서 현 누조마 대통령이 투표자의 76%의 압도적 지지하에 재선됨으로서, 야당의 부정선거시비가 제기되고 있으나, 권력기반은 강화됨.

나. 정국운영 안정도
-94년 총선결과 여당인 SWAPO의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여 12석이 늘어난 53석을 차지한 반면, 제1야당인 DTA를  비롯한 대부분의 야당은 자금  및 조직력부족으로 의석수 감소를 경험함.
-SWAPO가 전체의석의 2/3가 넘는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야당을 배제한 일방적인 의회운영이 가능해졌으며, 현재 연임으로 제한된 대통령임기를 늘리는 헌법개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
-최대부족안 오밤보족 출신인 누조마 대통령은 대체로 고른 지지를 얻고 있으나 권위주의 및 일당독재체제로 변질될 경우 향후 정국이 여야간 긴장고조 및 부족간 대결로 변질도리 가능성도 있음.

다. 사회적 안정도
-교사 및 학교시설이 크게 부족하여 취학아동의 40%이상이  교육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문맹률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됨.
-실업률이 20%이상으로 추정되며, 고용인구의 40%가 무보수 자영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전문기술인력이 크게 부족하여 광업, 공공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최저생계수준에 못 미치는 연간 2백달러 미만의 보수를 받고 있음.
-흑,백인간 소득격차가 심하고 보건 의료시설이 수도와 백인 지역에 편중되어 있으며, 알콜중독 및 마약남용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음.

라. 내란, 폭동, 혁명 등의 발생 가능성
-UN, 영연방, OAU,SADC등 국제기구 및  지역체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인접국인 보츠와나, 앙골라, 남아공,  짐바브웨와의 관계개선이 외교의 최우선  과제임.
-보츠와나와 무역, 관광, 기타부문에 대한 협력중진을 위해 양국간 합동위원회가 설립된 바 있으나, 92년 카시킬리섬에 대한 영유권분쟁으로 양국군이 출동한 바 있으며, 현재까지 미해결 상태임.
-앙골라 내전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북부지역에 대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식량 및 의료품을 구하기  위한 앙골라 난민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국경봉쇄조치가 내려짐.
-남아공과는 94년 3월 윌비스  베이항 및 부속도서를 반환받고  만델라정권과 외채 협상을 통해 원만한 타결이 이루어짐에 따라 관계가 크게 개선됨.

바. 종합의견
-UN의 독립결의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의 강점이 계속된 후 90년3월에  독립한 동국은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삼  누조마 대돝령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94년 대선에서 재선되고, 특히 여당인  남서아프리카인민기구(SWAPO)가 개헌에 필요한 전체 의석의 2/3을 확보함으로서 정치적 안정이 강화됨.
-빈곤퇴치, 교육, 보건 등 사회간접시설 확충, 높은 실업률 해소와 범죄방지등 당면한 경제, 사회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고 현재 진행중인 경제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향후 정세 안정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평가됨.
-신생독립국으로서 인접국과의 관계개선에 노력하고  있고, 소원하였던 남아공과의 관계가 영토반환및 외채협상타결로 크게 개선되었으나 봋와나의 영유권분쟁 지속과 앙골라 내전에 따른 북부지역의 경계강화 등 불안요인이 잔존하고 있음.


2. 대내 경제 안정도

가. 재정건전도
-재정수지/GDP : 92년-9.5% 93년-5.2% 94년-4.0%
-독립초기 외채상환부담과 교육, 보건,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지출증가로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하였으며, 외국의 원조에 의해 적자를 보전함.
-경제, 사회여건의 급속한 개선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따라  주택, 수도보급 등을 비롯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지출증가가 예상되며, 균형재정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됨.

나. 성장잠재력
-농업과 광업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갖고 있어 제조업  육성과 전문기술 인력양상이 시급한 실정임
-원유 및 석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나, 수력발전시설 확충 및 천연가스 탐사가 진행중임
-풍부한 광물과 연안어장의 어자원을 바탕으로 사하라사막 이남  국가중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국가중 하나임.

다. 종합의견
-광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특히 다이아몬드의 생산량  및 국제가격변동에 따라 경제성장률과 수출액이 민감한 영향을 받음.  93년 다이아몬드 생산량 감소와  가뭄의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으나 94년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
-동국통화와 남아공의 Rand화간에 1:1 태환협정을 맺고 있고, 수입의 약 90%를 의존하고 있어 남아공의 경기변동은 동국의 인플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
-독립후 연안어장에 대한 200마일 전관경제수역 선포와 외국선박의  과도한 남획을 규제함에 따라 어자원이 크게 증가하여 최근 수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

3. 대외경제신인도

가. 경상수지 건전도
-수출이 GDP의 55%를 차지하고 있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며, 미가공 1차산품이 전체수출의 80%를 점하고 있어 국제가격 및  환율변동에 따라 수출액이 크게 영향을 받음.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다이아몬드, 우라늄  등의 광물자원의 바중이 감소하고 수산물의 육류가공품을 비롯한 제조업수출이 크게 신장되는  등 수출상픔 다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
-선박부족으로 인한 운임비 및 용선료 지출증가로 무역외수지 적자가크게 발생하고 있으나 무역수지 흑자 및 외국원조에 따라 경상수지는  독립이래 1~2억달러의 소폭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

나. 외채현황
-독립당시 외채의  대부분은 80년대  식민지배국인 남아공  정권이  도입한 것으로 GDP의 13%에 달하였으나 92년 남아공이 자국이 보증한 외채에 대해 리스케줄링을 실시함에 따라 외채부담이 현저히 감소함.(D.S.R : 90년 5.4% ---> 92년 2.2%)
-더욱이 94년 12월 독립이전 동국에 귀속된 채무전적에  대한 상황의무를 남아공이 부담키로 합의함에 따라 94년말 현재  2.9억달러로 추정되는 외채잔액은 향후  약15백만달러로 크게 감소할 전망임.

다. 외환보유고현황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92년 0.5억달러에 불과하던 대외지급준비자산이 94년 2억달러로 증가하였으나  아직까지 상당히  부족한 실정임.(수입개월수  :92년0.3개월 --> 94년1.5개월)
-남아공과의 외채협상으로 외채상환부담이 대폭 완화될 전망이며  당분간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지속될 전망이어서 대외지급준비자산은 향후 개선될 것으로 전망됨.

라.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신인도
-신생독립국으로서 경제발전에 필요한 외자도입을 선진국들의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민간 상업은행을 통한 차관도입이 극히 미비하여 동국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신인도는 낮은 것으로 평가됨.

마. 종합의견
-전체수출의 절반이상을 다이아몬드, 우라늄 등 광물자원에  의존하고 있으나, 최근 수산물 및 육류가공품의 수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수출상품의 다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무역수지흑자, 및 외국원조에  힘입어 소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
-독립당시 외채상환에 어려움을 격었으나 92년 남아공이 자국이  보증한 외채에 대해 리스케줄링을 실시하여  외채부담이 크게 완화되었으며,  더욱이 94년말  만델라 정권과 외채탕감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향후 외채잔액이 대폭적으로 축소될 전망임.



4. 투자환경건전도

가. 외국인투자유치정책 및 유치실적
-낙후된 경제개발에필요한 자본도입 및 고용확대수단으로서 외국인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90년 12월 [외국인투자법]제정을 통해 조세 및 기타유인제도를 통한 투자환경 조성에 힘쓰고 있음.
-93년 4월부터  제조업분야의 투자촉진을  위해 법인세를  기업설립후 최초   5년간 50%, 이후 10년간 5%를 감면하고 잇으며 외국인  투자자에 대해 100% 지분보유와 기업활동시 내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고 있음.
-특히 N$50만(약14만달러)이상을 투자하고 고용 및 자원활용 증대, 수출진흥 등 경제개발 목표에 공헌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확인서(SIC)를 부여하고 , 이윤, 배당, 로열티 등의 과실금 송금시 우선적으로 경화결제를 보장하고 있음.
-94년 3월부터 Walvis Bay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함.

나. 생산환경 및 판매환경
-교육 및 직업훈련시설이 크게 부족하고 광업과 소규모  가공업을 제외한 제조업시설이 빈약하여 원부자재 조달 및 숙련된 노동력 확보가 매우 어려운 실정임.
-인구가 1.5백만명으로 자체시장이 매우 협소하고 흑,백간  소득격차가 심하여 대다수의 흑인들은 생계유지가 곤란한 저임금을 받고 있으므로 구매력이 낮음.

다. 투자원금회수 및 과실송금보장여부
-투자자산의 수용몰수 는 헌법규정과 일치할 때에 한하며  지체없이 경화로 보상토록 규정하고 있고, 현재까지 민간기업에 대한 몰수사례는 발생하지 않고 있음.
-SIC기업에 대해서는 과실금의  송금을 보장하고 있으나  외환부족시 외환할당  및 이로 인한 과실금의 송금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음.

라. 사회간접자본
-도로의 총연장은 54.5천Km, 철도는 2.3천Km로서 광산 및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수송망이 발달되어 있으나, 지역간 심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고 도로포장률이 7.5%에 불과하며 철도의 시설노후화가 심한 상태임.
-전화보급률(18명당 1대)이 아프리카 국가기준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며 통신서비스 개선 및 전화회선 확충을 위해 적극 투자중임.

마. 종합의견
-경제개발을 위해 필요한 자본도입과  고용확대를 위한 수단으로서  외국인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에  대해 내국민 대우와 조세감면,  과실금 송금보장 등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에 노력하고 있음.
-그러나 숙련된 노동력 확보 및 제조업 시설에 필요한 원,부자재 조달 곤란과 시장협소 및 낮은 구매력에 따른 생산환경과 판매환경이  열악한 상태이므로 광업을 제외하고 기타분야에 대한 대규모의 외국인 투자유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



참고 : 외무부자료.
      수출공사의 자료.
      http://info.hanatour.co.kr/tour/africa/namibia
      http://www.centerworld.com/univ/country/africa/namibia.htm
      Europa in south Africa.-Nami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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