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아프리카 역사일반

스와힐리 문명 : 해안 무역

africa club 2002. 4. 2. 21:03
스와힐리 문명 : 해안 무역

무역풍
인도양의 기후는 아프리카와 근동(Near East) 사이의 무역 패턴을 결정지었다. 근동으로부터 온 무역업자들은 11월과 2월 사이 서부로 부는 바람이 불 때 아프리카 동부 해안으로 항해할 수 있었다.  3월과 4월 사이에는 바람의세기는 약하지만 상업을 할 기회로는 이용되었다.  4월까지 그 바람은 동부해안에 불었고 무역업자들은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수입품들과 수출품
이슬람의 도래 이전 아프리카 동부 해안 교역의 패턴에 대한 정보를 거의 없다.  가장 초기에 쓰여진 자료들 중에는 여행가들을 위한 안내서인 페리플러스(Periplus)였다.  페리플러스에는 상아, 코뿔소 뿔, 거북이 껍질 그리고 코코아 기름 등이 주요 거래 상품으로 기술되어 있다.
상아는 아주 선호된 상품이었다.  상아는 강하고 쉽게 조각이 되며 기능적으로나 장식용으로도 훌륭하였다. BC 322년에 알렉산드 대왕이 사망하고 그의 제국이 세 개로 분할된 후 아프리카로부터 상아의 수입은 증가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인도와의 무역 때문이었으며 이로 인해 높은 관세가 부과되기도 했다.
홍해의 아프리카 해안(북동부)은 상아의 배달과 탁송을 위한 구역이었다.  남부아프리카로부터 온 금은 근동이나 북아프리카에서 주로 선호하였다.  AD 3세기로 거슬로 올라가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에서 온 화폐들은 잔지바르와 탄자니아 북부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중동과 아프리카 사이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동아프리카의 무역 루트는 북부로 이어졌는데 예를 들면 악슘(Aksum) 제국 사람들은 금을 위해 동부 해안 사람들과 무역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6세기경 그리스 상인 코스마스(Cosmas)에 의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소와 소금 덩어리 그리고 철 등을 가지고 갔으며 그들이 인근에 도착하면 한 지점에 머물며 캠프를 설치하고 주위에는 가시로 된 큰 울타리를 주위에 쳐서 울타리를 만든다.
그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소를 도살하여 그것을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 가시 울타리 위에 올려놓는다.
수를 놓은 실크와 푸른 면직과 같은 값비싼 수입 면직물들 중에는 아주 비싼 값이 매겨지기도 한다.  푸른색으로 염색한 직물들은 동아프리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 색깔은 특별한 힘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푸른색이 선호되지 않았으며 주로 흰 색 옷감이 선호되었다.

노예
19세기에 동부 해안의 술탄들은 그들 스스로 노예들을 사고 팔고 하여 대단한 부를 축적하였다.  여기에는 포르투갈에 대항한 프랑스와 함께 사업을 했다.
1834년부터 포르투갈인들은 대서양 노예무역이 영국에 의해 중단하게 된 후 노예 매매에 아주 예민해 졌다.
포르투갈인들이 사업을 하는 주요 거래자들 중의 하나는 스와힐리 여행가들과 티푸 팁(Tippu Tip) 무역상들이었다.  그들은 동부 해안 지역에서 노예무역을 통해 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노예를 포획하기 위해 내륙으로 들어가 장기적이고 위험스럽지만 노예들을 잡아 해안에서 노예들을 팔았다.  이들은 노예 사업에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잔지바르 노예 시장은 1873년에 폐쇄되었다.
(BBC on 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