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은 독재와 부정부패로 역사적으로 실패국가(failed state)였다!
[세계의 분쟁지역]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식민지 시기 이전에는 콩고왕국(Kongo Kingdom)이었으나 4번의 국명을 바꾸고 나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여러 개의 국명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콩고민주공화국이 순탄치 않은 역사를 갖게 되었으며 현재의 상황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지도 > 콩고민주공화국 국명
(http://www.bbc.com/news/magazine-24396390)
콩고지역에는 콩고왕국이 있었으나, 19세기말 서방 제국주의 세력의 침입에 의해 콩고강을 중심으로 분리되어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서부지역은 프랑스가, 내륙의 탕가니카호(湖)를 끼고 있는 동부지역은 영국이 각각 점령하였다. 1885년 콩고조약에 의해 동쪽은 벨기에령이 되고, 서쪽은 프랑스령이 되어 1960년 독립을 성취할 때까지 각각 식민통치를 당했다.
1960년 서부지역은 콩고공화국(브라자빌 콩고라고 부르기도 함)으로 동부지역은 콩고 민주공화국(킨샤샤 콩고, 1971년부터 1997년까지는 자이레로 불림)으로 각각 독립하여, 냉전시기에는 콩고공화국이 구소련에, 콩고민주공화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콩고민주공화국은 75년간 레오폴 2세와 벨기에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독립과 함께 5년 동안 내전을 치렀다. 벨기에령 콩고는 독립 당시 카사부부(Joseph Kasavubu)가 이끄는 바콩고협회( Alliance of Bakongo)와 패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가 이끄는 콩고국민운동(Cologolese National Movement : MNC)이 정치 세력으로 활동했다.
카사부부는 레오폴드빌(현재의 킨샤사)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연방주의를 주장하였고, 루뭄바는 스탠리빌(Stanleyville, 현재의 Kisangani) 지역에 지지 기반을 두고 가나의 지도자 응크루마(Nkrumah)의 범아프리카주의에 호응하여 즉각적인 독립과 반식민주의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60년 6월 콩고민주공화국이 독립하였으며 카사부부는 대통령에 루뭄바는 총리에 각각 선출되었다.
그런데 독립과 동시에 광물자원이 풍부한 남부 카탕가(Katanga) 지역에서 벨기에의 지원을 받은 모이스 촘베(Moise Tshombe)가 독립을 선포하며 반란을 일으켜 내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으나, 내전상태가 지속되자, 루뭄바는 가나와 구소련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 때문에 루뭄바는 친소주의자 및 공산주의자로 알려지게 되어 서방권 국가들로부터 기피인물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카사부부가 루뭄바를 총리직에서 해임시키자, 루뭄바는 이에 불응하고 의회를 동원하여 카사부부를 하야시키려 하여,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정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때 미국의 지원을 받은 모부투(Mobutu Sese Seko)가 자신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한 루뭄바를 체포하여 카탕가 반군에게 넘겨 루뭄바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모부투의 도움으로 정권을 되찾은 카사부부는 촘베를 총리에 임명하는 등 일시적으로 정권을 안정시켰으나, 1965년 11월 모부투가 재차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였다. 이후 약 30여 년간 모부투의 장기집권이 지속되게 된다. 자이레로 국명을 바꾼 모부투는 독재와 부정축재로 콩고민주공화국을 ‘실패국가’로 만들었다.
1997년 5월 모부투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롤랑 카빌라(Laurent Désiré Kabila)는 권위적인 통치체제를 유지했으나 패트리스 루뭄바의 민족주의를 추종했다. 그는 부정부패를 몰아내고 다수당체제를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필자가 킨샤사에서 한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 시기에 콩고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뇌물을 주고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정부로부터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2001년 대통령 경호원에 의한 모부투의 암살로 콩고민주공화국은 강력한 지배체제를 만들지도 못했고 내전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도 못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아들인 조셉 카빌라(Joseph Kabila)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롤랑 카빌라가 주장한 콩고민주공화국의 민족주의 정책이 기득권을 가진 세력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암살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이야기다. 중세의 왕권국가도 아니고 정치적 경험이 없는 그의 아들이 대통령이 된 것은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젊은 카빌라는 취임 이후 좋은 통치(good governance)를 통한 국가발전보다는 자신의 정권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또 다시 콩고민주공화국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