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스와힐리어 문법

(Kiswahili Grammar)

 

1.

제 1 장


① 스와힐리어(Kiswahili)의 형성과 발전

 

<지도 1> 스와힐리어 사용지역1)

가. 1. 서 론

가)

아프리카 대륙의 종족 분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언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전형적인 예를 들어 ‘반투(Bantu)2)’라는 인종의 범위는 반투어계(語系)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부족의 총칭인 것과 같이, 언어의 분류가 인종이나 부족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록된 역사문서가 타대륙에 비해 적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어 아프리카인들의 사회, 문화, 종교, 철학 등을 연구하는데 언어의 연구가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아프리카 연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2034개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스와힐리어(Kiswahili)어는 흑아프리카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언어로서 세계 12대 언어 중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으며, 과학적이며 조직적인 체계를 지닌 아름다운 언어로 알려져 있다.3) 이러한 주장은 스와힐리어 시문학의 대가인 크나퍼르트(Jan Knappert) 교수가 ‘스와힐리어야말로 시를 위한 언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4)

스와힐리어는 동아프리카 10여 개국에서 국어 또는 공식어로서, 혹은 교통어(Lingua franca)로서 약 8000만 명 이상이 사용되고 있는 언어로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용 인구수, 사용나라, 보유 문학등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언어로서 인식되고 있다.5) 케냐, 탄자니아, 콩고민주공화국 동부는 스와힐리어를 국어(national language)로, 탄자니아에서는 공식어(official language)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고 이외에 소말리아(Somalia) 남부, 르완다(Rwanda), 부룬디(Brundi), 말라위(Malawi), 잠비아(Zambia)북부, 모잠비크(Mozambigue) 북부, 코모로(Comoro)군도,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북단에서 사용되고 있다.6) 특히 도시지역에서는 제 1 언어로서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화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7)

<지도 2> 아프리카의 언어의 계통분류8)

이러한 중요성을 반영하여 외국의 중요대학에서는 아프리카 연구에 있어 스와힐리어를 필수과목으로 취급하여 연구와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중요한 언어인 스와힐리어를 공부하는 것은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진출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수언어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지도 3> 고대 아자니아(Azania) 지역(탄자니아 국립박물관)

본고에서는 먼저 스와힐리어의 언어학적 지위와 그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아프리카제어에 대한 계통분류를 하고 스와힐리어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고찰한다.

 

 

나. 2. 아프리카제어의 계통분류

 

우선 2034개의 언어가 산재해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스와힐리어의 언어학적 지위와 그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아프리카 언어의 계통분류(genetic classification)를 고찰해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계통분류는 아프리카인들의 기원과 그들의 과거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아프리카언어의 계통분류는 1963년 그린버그(J. Greenberg)가 총 집대성하였는데 유형학적 방법과 역사비교언어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크게 4대 언어군으로 구별하였다.8)

첫 번째 어족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어족 / 阿亞語族(Afro-Asiatic Language Family)으로 주로 북아프리카지역에 분포되어있다. 이 어족에 속하는 중요언어는 모두 6가지 어군으로 세분화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린 ①고대 이집트어, 서북 아프리카 마그레브지역 사막에서 쓰이는 ②베르베르 (Berber)어군(알제리 남부, 니제르 사막에서 사용되는 투아레그(Tuareg)어), 소말리어, 및 갈라어로 대변되는 ③쿠쉬(Cushitic)어군, 아랍어 및 이디오피아어들을 포함하는 ④셈(Semitic)어군, 그리고 차드호수 인근의 하우사(Hausa)어 등으로 대변되는 ⑤차드(Chadic)어군, 마지막으로 오모강 유역의 ⑥오모(Omotic)어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 어족으로는 나이저 코르도판 어족(Niger-Kordofanian Language Family)으로 서아프리카 의 세네갈로부터 동부지역인 케냐와 탄자니아 그리고 남부지역의 남아공에 이르기까지 가장 방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흑아프리카어 대부분이 포함되며 주로 반투어로 분리되는 언어들이 포함된다. 수단의 코르도판 지역의 언어를 제외한 나머지 언어를 나이저-콩고어족이라 칭하고 이는 다시 6개의 하위 어군으로 분류된다. 대륙서쪽으로부터 차례로 열거해보면 월로프(Wolof), 플라니(Fula / Fulani)를 포함하는 ①西대서양(West-Atlantic)어군, 밤바라(Bambara), 수수(Susu) 등의 ②만데(Mande)어군, 모네(Mone), 구루마(Gurma), 도곤(Dogon), 카브레(Kabre)등의 ③볼타(Voltaic)어군(혹은 구르(Gur)어군), 네 번째로 가나, 나이지리아에서 사용되는 아산티(Ashanti), 아칸(Akan), 에베(Ewe), 요루바(Yoruba), 이보(Igbo) 등의 언어를 포함하는 ④꾸아(Kwa)어군, 중앙아프리카아의 참(Cham), 상고(Sango), 음바 (Mba), 잔데(Zande)어등으로 대변되는 ⑤아다마와 우방기(Adamawa-Ubangi)어군, 끝으로 두알라 (Duala), 루안다(Ruanda), 스와힐리(Swahili), 쇼나(Shona), 헤레로(Herero), 줄루(Zulu) 등 400여 반투어를 포함하는 ⑥베누에 콩고(Benue-Congo) 어군으로 이 어군만으로도 흑아프리카 중남부 전역을 차지하고 있다.

세 번째 어족으로 나일 사하라 어족 (Nile-Sahara; Nilotic Language Family)으로 사하라사막과 나일강 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어족은 송가이(Songhai), 마반(Mabaan)등 군소어군과 함께 방대한 언어를 포함한 샤리-나일어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샤리-나일어군은 모루(Moru), 마디(Madi), 망베투(Mangbetu) 등의 ①중부 수단어와 베르타(Berta), 쿠나마(Kunama)등을 포함하여 가장 큰 언어집단이 나일어군을 포함한 ②동부 수단어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칼렌진(Kalenjin), 루오(Luo), 마사이(Maasai) 등의 ③나일(Nilotic)어는 아프리카 동부 케냐등지에서 반투어와 인접해 있다.

<지도 4> 16세기 인도양 무역로9)

 

마지막으로, 코이산 어족(Khoisan, San Language Family)이 있으며 수렵 채집을 하며 인류문화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형태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산(San ; Bushman)10)족과 유목․목축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코이코이(Khoikhoi ; Hottentot)11)족이 포함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스와힐리(Swahili language)어는 나이저 코르도판 어족중 베누에 콩고(Benue-Congo)어군에 속하는 반투어라고 할 수 있다.

 

 

다. 3. 스와힐리어의 역사적 배경

 

Swahili란 말은 원래 아랍어의 ‘umani'방언 “sahil" (해안) 과 “sawahil” (해안사람)에서 유래된 것이다12). 스와힐리어가 언제부터 생성되어 사용되었는가는 정확하지 않으나 10C경 아랍인 지리학자이며 역사학자인 알 마수디(Al Masudi)가 동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고 “잔즈(Zenj)인들은 훌륭한 언어와 그 언어로 선교하는 성직자들을 갖고 있다”‘13)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스와힐리 문명은 초기 10C동안 반투 이주민들과 아랍 상인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14)

스와힐리란 오늘날 탄자니아 케냐의 인도양해안지방을 비롯한 그 내륙지방의 주민과 그들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문화양식, 그들의 언어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스와힐리문명은 10C를 전후하여 형성된 비교적 젊은 문명으로 ①해안지방에 발달한 상업도시, ②아랍과 페르시아계의 반투혼혈족, ③이슬람의 신봉, ④탈부족화, ⑤스와힐리어의 사용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속성은 내륙지방으로의 전개과정에서 많은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오늘날에는 스와힐리의 본래개념이 많이 변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15)현재는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스와힐리인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스와힐리문명의 특징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해안지방에 발달한 상업도시는 아랍으로부터 수입된 건축술과 조각을 사용하고 있었고 스와힐리인들의 복식은 남자는 모자인 코피아(kofia)를 쓰고 여자는 아랍식으로 몸과 머리를 감싸는 캉가(kanga)를 입었다.16)

스와힐리문명의 기초가 된 이슬람문명은 아라비아반도로부터 전파되었으며 무력적인 방법 보다는 대부분 평화적인 방법으로 흡수․통합되었다.18) 스와힐리어의 생성도 아랍어와 반투어의 ‘혼 합’이라기 보다는 반투어를 기초로하여 아랍어의 어휘를 차용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증거로는 스와힐리어가 아랍어를 근간으로 하는 많은 어휘들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세련된 단어들이 많고 이에 반해서 기본적인 어휘에서는 차용어가 극히 드물며 또한 문법적인 구조에서도 아주 미세한 정도만 영향 받은 것으로 알 수 있다. 즉 반투족은 아랍의 언어와 문화를  자신의 언어와 문화에 융합시켜 새로운 스와힐리문화를 창조했던 것이다.19)

<지도 5> 19세기 동아프리카 내륙 무역로17)

결론적으로 스와힐리어는 역사적으로 이미 2000여 년 전부터 인도양 무역로를 통해 아랍인, 페르시아인, 인도인들의 동아프리카 해안과의 접촉으로 현지의 반투어를 사용하는 원주민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던 중 특히 아랍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발전하였다. 그 외에도 역사적 접촉을 계기로 페르시아어, 구지라티어, 힌디어, 포루투갈어, 영어등으로 부터 많은 외래차용어를 받아들였다.20)

아랍․스와힐리인들에 의한 내륙교역이 18C에 활발하게 진행된 것을 필두로 서구세력에 의한 식민통치기간동안 스와힐리어는 상업언어(trading language)이며 교통어(lingua franca)로서 그리고 효율적인 식민지배정책을 위한 언어로서 내륙으로 급속히 확장 전파되었다. 그로 인하여 이 지역에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 종교, 생활방식 또는 인종적 특성까지도 혼합된 형태의 스와힐리 문명이 창조되었다.21)

19세기 초에는 상아와 노예무역으로 빅토리아(Victoria), 탕가니카(Tanganyika), 그리고 냐샤(Nyasa)에 전파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는 티푸 팁(Tippu, Tip), 음겔렝구와(Mgelengwa : Msiri) 등이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까지 전파시켰다. 유럽인들은 주로 선교를 목적으로 스와힐리어를 사용하였으며 케냐에서는 몸바사에서 우간다의 캄팔라까지 철도건설을 하는 과정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동부지역의 교통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카탕가(Katanga) 지역의 구리광산에서 사용되었다. 스와힐리어가 멀리까지 전파 확산된 주요 원인은 아랍어 표기에서 로마자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스와힐리어는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방언이 발견되고 있다. 비반투어 사용자들이 제 1언어로 사용하는 스와힐리어와 반투어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는 현저히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리적 방언 (Geographical dialect)으로서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사용되는 키웅구아나(Kiunguana)어 라무(Lamu)에서 사용되는 키아무(Kiamu)어, 몸바사(Mombasa)에서 사용되는 키음비타(Kimvita)어, 잔지바르(Zanzibar)에서 사용되는 키웅구자(Kiunguja)어 등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차이점이 상당히 많다. 이밖에 사회적 방언(Social dialect)으로는 유럽인이나 아시아인 이민자들이 사용하는 피진 스와힐리어로 구별하여 설명할 수 있다. 표준 스와힐리(Standard Swahili)어는 잔지바르에서 사용되는 키웅구자(Kiunguja)어를 말하며 동부아프리카 지역의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고, 매스․미디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다.22)

흔히, 스와힐리어는 몇 개의 혼합언어이며 여러 가지 아프리카 방언과 아랍어의 혼합어라는 일반적인 잘못된 관념이 있는데, 그것은 스와힐리어가 많은 어휘를 아랍어에서 차용하고 있는데서 연유하고 있다. 사실상, 아랍어, 페르시아어 및 힌디어에서의 차용이 구어(spoken) 스와힐리어에서 20%이고, 문어 스와힐리어에 30%이며, 고전시가에 50%로 평가되고 있다. 동부아프리카 해안지역의 스와힐리어 사용지역의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오래전부터 아랍과 인도에서 온 상인들과의 접촉의 초점이 되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수세기에 걸쳐 스와힐리어는 자연스럽게 외래어를 차용하게 되었다. 아랍어로부터 차용된 스와힐리어 어휘들은 주로 종교, 무역, 상업, 항해 및 도시 생활에 관한 것들이 주로 포함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이에 속한다.

(1)

(2) Mfano)

(3) mtakitifu(거룩한 사람), nabii(예언자), kitabu(책), kalamu(팬, 연필), fariju(위로), dau(다우(dhow)선), dirisha(창문) mshahara(봉급), forodha(세관), hesabu(계산, 수학), tarehe(날자), rasilmali(자본, 자산).

 

유럽언어도 또한 스와힐리어의 어휘에 추가되었다. 서기 1500년과 1700년사이에 연안무역을 지배했고, 주요지역에 주둔했던 포르투갈도 카드놀이에 사용되던 많은 언어를 추가하였다. 흥미 있는 차용언어는 ‘감옥(jail ; 최근에는 jela를 대체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영어 차용어를 쓰고 있는 것임)’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gereza란 말이다. 어원상, gereza는 포르투갈어의 igreja(교회)와 같은 어원인데, ‘교회’에서 ‘감옥’으로의 의미의 변화는 포르투갈사람들이 교회와 감옥을 그들의 주둔지에 함께 둔데 연유한다. 이 밖의 또 다른 말들은 포르투갈사람들이 동부아프리카에 전래시킨 물품의 이름에서 차용되었다. 이에 해당하는 단어들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4) Mfano) foronya(베갯잇), bendera(깃발), mvinyo(술, 포도주), mpira(공), bomba(물펌프, 관).

 

그 후 19세기 중엽부터 영국이 동부아프리카에 진출하여 식민지화함에 따라 스와힐리어는 영어에서 많은 단어가 차용되었다. 이러한 차용어들은 산업혁명 이래 서구문화를 특징짓는 것들, 실용품, 의류, 시설물, 과학기술에 관한 단어들이다.

 

 

Mfano)

motoka(자동차), baisikeli(자전거), mashini(기계), petroli(가솔린), soksi(양말), tai(넥타이), fulana(속옷, 내의), benki(은행), faini(벌금), roketi(로케트), eropleni(비행기), jela(감옥), gavana(통치자), kampuni(회사), dereva(운전사), daktari(의사), demokrasi(민주주의), penesileni(페니실린).

<지도 6> 1886-1890, 잔지바르와 동아프리카 상황23)

그런 광범한 차용어에도 불구하고 스와힐리어는 그의 기본 구조와 핵심어휘에 있어서 반투어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차용어들은 새로운 상황과 환경에서의 스와힐리어의 문화적 유연성과 적응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동부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국어나 공용어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대학에서 가르치는 국제적 명성을 스와힐리어가 얻게 된 요소이다. 스와힐리어는 시장의 거래에서부터 국회에 이르기까지, 대중가요에서부터 시(poem)에 이르기까지 동부아프리카에서 사회각계와 문화층에서 가능하고 있는 현대 언어이다.

스와힐리어의 체계화와 보급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은 19C 이 지역에 들어왔던 독일의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효율적인 포교를 위해 성경의 스와힐리어 번역작업 및 스와힐리어 교육을 위한 스와힐리어 문법서 발간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독일의 반투어학자 칼 마인호프(Karl Meinhof)는 스와힐리어 철자법 및 표준어를 정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선교사인 크라프(Ludwing Krapf ; 1850)는 몸바사에서 성경번역 및 스와힐리어 사전을 편찬함으로서 스와힐리어 연구에 초석을 마련하였다. 이후 영국의 스티어(E. Steere ; 1908) 박사가 Swahili Exercises라는 문법서를 발간하면서 시작된 스와힐리어 연구는 Handbook of the Swahili Language라는 책을 펴냄으로서 로마자 표기가 확고한 지위를 얻기 시작했다. 그뒤 프랑스의 사클라우스(Sacleaux ; 1090), 영국의 애쉬톤(Ashton ; 1944), 패럿(Perrot) ; 1951), 그리고 미국의 롱맨(Loogman ; 1965)을 통하여 소위 학교문법(School grammar)의 형태로 대학에서 교수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 구조주의 언어학이 널리 알려지면서 보다 전문적인 문법기술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텍사스 대학의 폴로메(Polomé ; 1967)에 의해 이루어 졌다. 변형생성문법의 등장과 함께 통사론이 비탈레(A. Vitale ; 1981)에 의해 기술됨으로서 스와힐리어 연구에 보다 전문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24)

 

 

라. 4. 스와힐리 문명의 정체성

 

서양 사학자들은 세계사 서술에서 아프리카 대륙 대부분의 역사를 빼놓고 설명한다. 식민지 사관을 따르는 역사학자들은 동아프리카는 유럽인들의 정착 이전에는 역사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유럽인이 도래하기 전부터 몇 천 년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식민 사관은 스와힐리 해안 지역의 석조 건축물과 진보된 문화유산이 아랍, 시라즈(페르시아), 또는 인도와 같은 외부 세력에 영향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스와힐리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비록 외부 영향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의 문화는 아프리카 자체적인 문화적 발전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핵심 논의 중의 하나는 동아프리카 해안 사회가 내향적이었는지 외향적이었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몇 십 년 동안, 그리고 오늘날도 식민 사관(그리고 몇 십 년 전의 오만-잔지바르(Omani-Zanzibari) 엘리트 사관)은 동아프리카를 전적으로 외향적이었다고, 또 아라비아나 인도양 문명에 뿌리를 두고 대륙 내의 현실로부터 단절되었다고 보고 있다. 식민 사관에 대한 대응으로,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항한 대륙적인 투쟁이 50~60년대의 아프리카 국가의 정치적 독립을 이끌어 내면서, 민족주의 그리고 반 헤게모니적 사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학계와 공적인 기록 내에서 그 위치를 다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스와힐리와 다른 해안 사회의 내향적 (대륙적) 가능성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고, 이 해안 지방 사람들은 "아프리카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문화, 국가, 그리고 문명의 주변부였다고 보고 있다. 즉, 해안 동아프리카 문명이 아라비아나 인도양 국가의 주변부였고 아프리카 내부로부터 단절되어 있었다는 식민주의 / 서구의 주장은 공식적으로 부정되었고, 사실 그들은 최소한 2000년 전부터 대륙 내부의 문명과 사람의 일부, 또는 주변부였다는 사실을 보였다.

스와힐리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유럽인들이 동부 아프리카에 관심을 보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6세기 이후 이 지역을 방문했던 유럽인들은 해안에 형성되어 있던 화려한 도시 문명에 놀라워 했다. 하지만 외부 세계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없던 유럽인들은 야만인이라고 생각했던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런 빼어난 문명을 이룩할 수 없다는 인종차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스와힐리 문명의 이슬람적 외형에 빠져 스와힐리 문명은 곧 아랍 문명 또는 아랍 문명의 변종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동부 아프리카 해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조차 자신들을 페르시아의 쉬라즈(Shiraz)에서 이주해온 아랍인들의 후예라는 점을 강조해 스와힐리 문명의 아랍 기원설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이후 스와힐리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주로 근원주의적 관점에서 진행되었다. 즉 이슬람 문명이 스와힐리 문명의 모태라는 주장은 스와힐리 문명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슬람적 요소들, 특히 아랍화된 스와힐리어 철자법(orthography)과 주거 형태 등의 문화적 요소, 이슬람 종교와 인종적 차이 등을 부각시켜 스와힐리 문명을 아랍 문명의 한 부류 내지는 변형정도로 이해해왔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발로 스와힐리 문명의 아프리카 모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랍 학자들과 유럽 학자들의 주장이 객관적인 사료보다는 인종적 우월주의와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편견에 휩싸인 감정적 분석이라고 맞섰다. 이들은 이슬람 문명이 스와힐리 문명 형성에 영향을 미친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스와힐리 문명의 중심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유럽 학자들이 초점을 맞췄던 스와힐리 문명은 이슬람적 요소가 강하게 스며든 해안 도시 중심의 엘리트 계층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반투 문명의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스와힐리 대중의 삶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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