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푸(Edfu, Idfu) ∙ 코옴보(Kom Ombo), 이집트 

 

이세정

 

 

이집트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 자체였던……

나일 강의 범람에서부터 키우던 고양이의 죽음까지 고대 이집트 인들에게 인간생활과 자연의 일체는 신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집트 인들에게 있어서 종교와 신이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도 생활 전반에 녹아 내린 것으로 그들에게는 삶이요, 그리고 곧 죽음이었다. 이집트 종교에는 여러 가지 성격이 겹친 복합 신들이 많이 등장하고 이집트인의 종교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로 많은 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 나라가 기본적으로 조그만 농업사회의 집합체였기 때문이다. 각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신들이 오랜 세월 속에서 통합되며 여러 신화가 만들어졌고 강한 세력이 주변을 통합하면서 신들도 정리되었다. 크게 보아 헤르모폴리스, 멤피스, 그리고 헬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그 중에서 현재 카이로 동남쪽 교외 지역인 헬리오폴리스의 신화에 따르면 태양신 아툼(혹은 라)이 슈(공기의 남신)와 테프누트(이슬의 여신)를 창조했고, 이 둘이 결합하여 게브(대지의 남신)와 누트(하늘의 여신)를 낳는다. 그 후 게브와 누트 사이에서 남신 오시리스와 세트, 여신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나오는데 이들 남매가 각각 짝을 지어 오시리스와 이시스, 세트와 네프티스가 부부가 된다. 이 아홉 신이 9주신으로 사람들에게 숭배되었다. 이 가운데 오시리스신은 이집트를 통치하며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존경을 받았지만, 이를 시기한 동생 세트의 모함에 빠져 죽게 된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관을 찾아내어 남편을 살려냈지만, 이를 안 세트가 오시리스를 14토막으로 잘라 이집트 방방곡곡에 버렸다. 이시스는 다시 조각들을 찾아서 결합시켰지만, 물고기에 먹혀 버린 남근만은 찾지 못했다. 이시스는 나일강의 진흙으로 그 부분을 보충한 후 생명을 불어넣어 오시리스를 살려내었고, 그와 결합해 아들 호루스를 낳게 된다. 호루스는 성장하여 작은아버지이자 아버지의 원수인 세트를 물리치고 왕위에 복귀한다. 그렇게 해서 호루스는 현세의 왕으로, 오시리스는 내세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호루스의 부인인 하토르는 사랑의 여신으로서 그리스인들은 하토르 여신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동일시했다.

 

 

오 나의 태양이시여 – 호루스와 에드푸의 신전

 

이른 아침 우리는 에드푸에 정박했다. 크루즈에서 내려 처음 바라 본 에드푸의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를 보듯 평범하고 고요하다. 거대한 건축물들과 길거리에 널려있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유적들 때문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 작고 조용하지만 작은 언덕 위에 나일 강을 바라보는 에드푸에서 여유와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드푸라고도 하는 이 도시는 룩소르 남쪽 110km 지점 나일 강의 서쪽지역 강 가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 지금은 작은 지방도시이지만 과거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아폴로노스폴리스메갈레 (Apollonospolis megale)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방의 행정수도가 위치했던 대도시 중 하나였다. 지금은 설탕과 도자기의 도시이며 사람들의 인심이 좋고 굉장히 친절하다. 크루즈 선에서 내려 선착장에 줄지어 서있는 마차를 타고 달리는데 뜨거운 햇살 속이지만 바람은 청량해 기분이 상쾌하다. 앞에 마차 위에 매달려 가는 아이는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얼굴은 천진난만이다. 번잡하지만 알록달록한 색들로 가득 찬 시내를 지나니 드디어 호루스 신전의 입구이다.

 


(꼭지)

호루스 (Horus, Hr, Hru, Ώρος, Hōros)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서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이다. 고분 벽화에서는 호루스가 매의 머리를 쓰고 있는 그림을 자주 볼 수 있다. 호루스는 이집트의 신들 중에서 다양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보통 매의 머리를 한 남성으로 표현되나, 호루미오스라고 불릴때에는 사자의 외관을 취하며, 하르마키스라고 불릴때에는 스핑크스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후대에는 유아신(幼児神)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시스는 오시리스를 살해한 세트의 위협을 피하며, 토트의 도움을 빌려 호루스를 몰래 출산한다. 그리하여 어머니인 이시스의 무릎 위에 놓인 아기(하포크라테스)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로마 시대에는 병사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성 게오르기우스의 원형이 되기도 한다. 호루스는 대기와 불을 상징하며, 그 색은 일반적으로 흑, 적, 백을 의미한다. 부친 오시리스의 복수를 완료한 호루스는 현세의 통치자가 된다. 따라서 파라오는 호루스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역대의 왕들도 그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다. 호루스는 태양신 라와 결합하여 라-호라크티를 시작으로, 여러 신들과 융합하여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를 상징하는 모양으로서 유명한 우제트의 눈이란 바로 호루스의 눈을 뜻하기도 한다. 이집트 항공의 항공기의 수직꼬리에는, 비행의 안전을 바라는 의미로 호루스의 심볼이 그려져 있다.

 

 

 

 


 

이 신전은 BC 237년 프톨레미 3세때에 공사가 시작된 이후 180여년 동안 여러명의 파라오들에 의하여 공사가 계속되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집트 관광청이 펴낸 관광안내 팸플릿에는 이 신전은 2004년초에 보수공사와 관광객 편의시설을 갖추고 2.300년만에 다시 오픈한 것이라고 써있다.  에드푸 신전은 이집트에 남아있는 신전 중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드푸 사원에도 탑문이 있고 열주(列柱)가 있고 그 중심축에 본실을 두었으며 많은 조상(彫像)과 부조로 장식한 점은 신왕국시대의 다른 신전들과 마찬가지이지만 이 시대 특유의 주두(柱頭)를 가진 둥근기둥들이 채용된 것이 이채롭다.

 

그리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에드푸 신전은 전적으로 호루스 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그래서 신전 곳곳에 호루스 신의 조각상이 서 있다. 입구 양쪽에도 있고 제1열주실의 전면에도 두 개의 호루스 신의 석상이 서 있다. 매는 호루스의 살아있는 상징이다. 이집트인들은 하토르 여신이 새해 첫날에 남편이 있는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으로 외출한다고 믿었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호루스 신은 태생이 두 가지였다. 헬리오폴리스 사람들은 호루스신을 오시리스와 이시스 사이에서 난 아들로 여겼지만, 멤피스 신화에서는 오시리스와 형제였다. 이 둘을 구별하기 위해서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신을 ‘연하의 호루스’, 오시리스와 형제인 호루스신을 ‘연상의 호루스’라고 불렀다. 에드푸에 있는 호루스 신전은 연상의 호루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연하의 호루스를 나타내는 상징들도 보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신전 앞에 세워진 독수리 모습의 신인데, 이것은 숙부인 세트에게 복수한 연하의 호루스 신을 의미한다.

 

 

호루스 신전은 전형적인 이집트 신전의 형태를 갖춘 곳이라 할 수 있으면서도 단일 신전으로서 신전이 갖추어야 할 것들을 갖추고 있는 종교적인 의미의 신전에 가까운 신전이다. 신전 입구에서는 멀리 거대한 탑문이 보이며 그 옆 언덕에는 마을이 보인다. 발굴되기 전 호루스 신전은 흙으로 덮여 있었고 그 위로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 옆으로는 아직 흙으로 덮여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신전 부속 건물들로 발굴 후에는 이 호루스 신전이 더욱 거대한 위엄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신전의 탑문은 이집트의 많은 신전들 중에서 탑문의 원형이 가장 깨끗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탑문의 벽화는 후대의 신전의 특징인 신화적인 내용이 담겨있으며, 이 신전의 주인인 호루스 신과 파라오를 묘사한 벽화로 한 많은 곳에서 등장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신전 입구에는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 신의 석상이 감시자처럼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어있는 모습이 수 천년의 역사를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탑문을 들어서면 삼면이 원기둥 회랑으로 된 큰 안뜰을 만나게 되는데 원기둥들은 그리스 신전의 원기둥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많은 건물들이 기둥들로 둘러싸인 회랑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프로레마이오스 왕조시대 신전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큰 안뜰을 지나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위압적인 모습의 호루스신의 석상이 서있고 양쪽으로 ‘아침의 집’과 ‘책들의 집’이 있다. 탄생의 빛을 향한 첫 경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침이고 책들의 집에서 깨달음을 얻게 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파피루스로 만든 책은 없지만 이곳에서 저술들의 제목을 알리는 상형문자가 원기둥에 적혀 있다고 한다. 신전에 들어가게 되면 정면으로 하늘로 가는 나룻배가 보관된 방인 ‘성자 중의 성자’ 를 볼 수 있고 그 주위로 여러 방들과 신비의 복도를 볼 수 있다. ‘성자 중의 성자’에는 성스러운 배가 중앙에 있는데, 이집트는 나일강의 혜택을 사는 나라답게 나일강을 오가는 배를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벽화 또한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호루스 신의 탄생에서부터 그가 어둠의 힘들을 물리치고 거둔 승리에 이르기 까지 호루스 신화의 일화들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저마다 고유의 기능을 가진 여러방들이 이 ‘성자중의 성자’를 둘러싸고 있다.

 

 

수 천년의 세월 동안 나일 강을 바라보며 – 코옴보 신전

 

점심 식사 후 나일 강의 정취를 만끽하다 보니 어느 새 배는 나일 강의 서쪽 강안에 이르렀다. 코 옴보에 도착한 것이다. 꽤 큰 도시로 알려져있지만 그 풍경은 시골 마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 지역은 나일강 주변에서 농경지가 아주 많은 지역 중의 하나이다. 코옴보 신전은 나일 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코옴보 신전에 올라 나일 강가를 바라보니 햇살에 비치는 강물의 반짝임과 마을의 풍경이 어우러져 신전의 모습과도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이 신전은 원래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투트모트3세 때 건설되었는데 천년이 지난 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때인 BC332~395년에 완전히 새롭게 개축된 것이다.

 

코옴보 신전은 지진과 나일 강의 홍수에 의한 피해로 많이 망가졌었는데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된 이후 특히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우상숭배 금지령이 내려진 이후로는 기독교도(콥트 교도)들에 의한 파괴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우상숭배 금지령 이후 이 신전은 폐쇄되어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가 모래 속에 파묻혀 버렸다. 1893년에 발굴이 시작되어 신전의 지붕을 덮고 있던 모래를 걷어내면서 신전의 복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오늘 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세베크(Sebek), 또는 소베크(Sobek)는 악어가 신격화된 이집트 신으로, 나일 강에 의존하던 이집트에서 악어를 매우 두려워하던 것에서 기인하였다. 나일 강에서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이집트인들은 악어의 신 세베크에게 기도하여, 악어에게 공격 받지 않도록 그가 자신을 보호해주기를 소망하였다. 세베크는 악어, 또는 악어의 머리를 한 남자로 묘사되었으며, 강력한 공포의 신이었다. 일부 이집트 창조 신화에서는 세베크가 세상을 창조하는 혼돈의 물에서 처음으로 나왔다고 묘사한다. 때때로 창조신의 모습으로 태양신 레와 연결되기도 한다

 

 

 

그리스 계통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들이 콤 옴보 신전에 이 지역 토착신인 소베크 신과 함께 호루스의 변신인 하로에리스 신을 모시고 경배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장군에 의해 건국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계급은 이집트인들과 융화하는 정책을 펴서 자신들이 이집트에 완전히 동화하였음을 나타내려고 하였는데 세트를 처치하고 스스로 파라오가 된 호루스 신을 자신들의 신으로 경배함으로써 자신들이 파라오가 된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코 옴보 신전에 하로에리스 신과 소베크 신을 함께 모시게 된 것은 틀림없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이 신전을 크게 개축한 이후일 것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콤 옴보 신전은 소베크 신과 하로에리스 신의 두 신에게 바쳐진 이중적인 성격의 신전이다. 소베크 신은 이집트의 토착 신으로서의 의미가 강하고 하로에리스로 변신한 호루스 신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정통성을 보장하는 의미가 있는 신이라고 볼 때에 두 신간에 어느 신이 우월하거나 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코 옴보 신전은 철저하게 대칭구조를 유지하고 양쪽에 소베크 신과 하로에리스 신을 대등하게 모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둥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리스의 기둥모양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계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흔히 그레코로만 왕조라고 하는데 이 기둥들에서는 코 옴보사원을 증축하고 개축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그들의 건축에도 그리스 양식을 많이 도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예전부터 악어가 많아 악어의 머리를 가진 신 소벡(Sobek)과 매의 머리를 가진 신 호루스(Horus)를 같이 모셨다는 이 신전은 BC 2세기경의 벽화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여러 번의 홍수로 많이 깎이기도 하였으나, 오히려 그 닳음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해 난 이곳이 좀 더 살갑게 느껴졌다. 한산한 관광객들도 그러하고. 소박하다고 해야 하나. 나일 강가의 고지대 사탕수수밭 한가운데 위치한 장엄한 프톨레미 신전은 해질녘에 특히 경외심을 자아낸다. 훌륭한 의사였던 하로에리스 신과 악어의 신 소벡을 합배한 이 신전은 이중으로 된 입구, 홀, 지성소 등으로 유명하다. 부조가 새겨진 벽에는 고대의 수술 기구, 골 절단기 및 치과용 도구 등이 묘사되어 있다. 근처에서 발견된 세 마리의 악어 미라는 현재 하토르 예배당에서 보관 중이다.

 

나일강의 멀리서부터 거대한 탑문과 원기둥들이 보이는데 마치 나일강 뱃길을 감시하는 망루를 보는 듯하다. 탑문은 세베크를 위한 입구 하나와 호루스를 위한 입구 하나가 있는 거대한 문을 구성하고 있다. 호루스 신전의 탑문과 벽화들은 오랜 시간 흙에 묻혀 있었으며 그 훼손 정도가 다른 신전들에 비해 심하다. 신전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큰 우물이다.

 

이 우물은 악어로 상징되는 세베크 신이 들어오는 통로로 성장의 물이 나타나 에너지의 바다에서 직접 유입되는 세례용 액체를 제공했다고 한다. 코옴보 신전의 본 건물에 들어오면 바로 원기둥이 늘어선 홀이 보인다. 이 홀에는 정면에 문이 두개있고 호루스 앞에서 파라오가 호루스와 토트로부터 이중세례를 받는 것이 특징이다. 원기둥의 상태나 양식을 보면 그리스 건축풍이 많이 가미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건물의 원형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열주실의 원기둥들은 원형을 유지하면서 남아 있는 편이다. 그리고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벽화가 곳곳에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인 그리고 이집트를 부흥시키려고 노력했던 여걸. 그러나 그러한 고정된 몇몇 이미지들과 달리, 실제로 그녀는 대부분의 이집트 파라오들이 마케도니아 지방에 뿌리를 두고 그리스계로 그리스어만 했던 전통을 벗어나 직접 이집트어를 배우고 실생활에서 이집트인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첫 번째 파라오로 기억되고 있다. 프 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했단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도 흐려지는 벽화처럼 조금씩 역사 속으로 침식되는 듯해 난 또 다른 이집트의 여걸 핫셉수트와 함께 세월의 무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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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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