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르

 


지옥만큼 어둡고 죽을 만큼 강하며 사랑만큼 달콤하다. 이것은 터키의 속담으로 숨겨져 있는 주어는 바로 커피이다. 이런 속담을 만들어낼 정도의 커피라면 어떤 맛일까? 그 주인공은 바로 하라르 커피이다. 하라르는 아마 에티오피아의 도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이유는 해발 2000m에 달하는 하라르에서 생산되는 커피 때문이다. 하라르에서 나오는 커피들은 알갱이가 다른 지역 커피보다 매우 작은 편으로 오직 하라르에서만 재배된다고 한다. 하라르에서는 아직까지도 커피농사를 따로 짓는 것이 아니라 야생의 열매를 따서 전통적인 세가지 커피 생산 방법으로 만들고 있다. 이르가체프(수세건조)와 시다모(자연+수세), 그리고 모카하라(자연건조)가 바로 그 세가지이다.

 

이 세가지 방법 중 자연건조를 시키는 모카하라가 바로 우리가 커피 전문점에 가서 즐겨 마시는 모카커피인 것이다. 그래서 모카커피는 다른 말로 하라르커피라고 한다. 이 하라르커피는 직접 끓여마셔보면 와인 맛 혹은 블루베리 맛이 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잘 느끼지 못했다. 비루한 내 입맛....또한 하라르지역 전통커피인 버터커피도 있다. 버터커피란 버터와 체리채 말린 커피를 같이 끓여내는 것으로 맛이 정말 독특해서 계속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뗄레깜이라는 향초를 커피와 같이 마시는데 향초와 같이 마시는 커피 또한 처음이라 정말 신기했다. 귀한 손님이 오시면 이런 커피들을 직접 집에서 볶아 대접하는 커피세레모니라는 것을 한다. 이렇게 풍부한 양의 커피 덕분에 하라르를 돌아다니면서 양질의 커피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쉽게 마실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가히 커피의 천국이라 부를 만 했다.

 

그러나 하라르에 머무는 공기에는 커피향 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하라르는 이슬람 4대 성지 중 한 장소로써 나라 전체가 기독교인 에티오피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이슬람 요새도시로써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또한 이 지역은 아프리카 대륙의 동부 뿔 지역(위에 뿔지역 사진 첨부)에 위치하면서 처음 건설된 7~11세기에서 10~16세기까지 에티오피아의 주요한 교역로이자 종교의 중심지 역할까지 겸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그 이후 1875년부터 10여 년간 이집트의 지배를 받다가 1887년 메넬리크 2세 황제에 의해 에티오피아 영토로 통합되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프리카 뿔 지역 전체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를 잇는 교역의 중심지로써 상업도시로 번영을 누렸으나 1902년 아디스아바바와 지부티를 연결하는 철도가 디레다와를 지나감으로써 쇠퇴하게 되었고 현재는 커피가 주 생산품목이 되었다. 1535년에는 악숨을 침략해 시온의 성 메리 교회를 파괴한 '왼손잡이'라는 별명의 이슬람 지도자 아흐마드 그란이 하라르에서 이슬람 성전을 외치며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이곳에서 에티오피아의 전(前)황제 하일레셀라시에 1세가 태어나고 성장하였다. 랭보하우스라는 주요 관광지가 있다. 이곳은 랭보라는 천재시인이 살다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집이다.

 


처음 하라르로 들어가는 길! 첫눈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성벽과 하나의 성문이었다. 이 성문은 주골(Jugol)이라고 불린다. 이 주골은 하라의 통치자 누르 이븐 무자히드(Nur ibn Mujahid, ?~1567)에 의해 13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오로모 부족 등과 같은 그리스도교도의 추격을 막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이는 4m 높이의 거대한 성벽과 오직 5개의 성문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라르라는 도시를 철통과 같은 성곽도시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 5개의 성문 중 정문인 메인게이트로 들어갔다.

 

이곳은 하라르의 관문으로 불린다. 알고 보니 이 성문은 1970년에 파괴되어 블록과 시멘트로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이 성벽이 만들어진 이후 성벽 안에서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 화폐 등을 가지며 도시국가로써 자체적으로 발달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역에는 상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는 하레르인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복장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독특하면서 아름다웠다. 이 주골과 그 내부는 2006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역사방어지구로 지정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및 유네스코 주요 관리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2004년에는 좁은 공간에서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특별한 갈등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높이 평가하여 유네스코에서 평화의 도시로 지정하기도 했다.

 

 

우리는 성벽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들어갔다. 하라르 입구에 들어서자 우리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말을 타고 근엄하게 행진하고 있는 군인의 동상이었다. 이 동상은 하라르 초대 총독이자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의 아버지인 라스 마콘넨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상을 보느라 올라갔던 시선을 내려보니 성벽의 밖과 안은 정말 현저히 다른 모습이었다. 밖은 마치 우리나라의 시골 농촌의 모습 같아보였지만,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마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빈부격차의 실사판을 보는 것만 같았다. 성벽 안의 길을 지나다닐 때 참 색이 단조롭게 느껴졌다.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 교회, 일반 집들도 대문과 지붕까지 흰색과 파란색으로 도배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나다니는 택시들까지도 차체는 다 파랑색에 지붕만 흰색이다. 또 사원과 자잘한 성벽들이 자주 보였다. 현재 성벽을 비롯한 82개의 모스크(mosque, 이슬람 예배지)와 102개의 사원 및 건물들이 남아있다. 성벽은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모스크들은 10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고 별다른 손상 없이 잘 보존되어있는 이 유적들에는 과거 아프리카와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주택들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온 하라 지역의 독창적인 문화가 잘 드러난다. 다른 인근 지역 거주지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내부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의 전체적인 설계와 도로망 등의 구조도 매우 깊은 인상을 줬다.

 

 

하라르는 150년 전 영국의 탐험가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이 방문하기까지는 이슬람교도가 아닌 외국인에게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금단의 도시였다는 것을 들었다. 리처드 버튼은 1855년 하라르의 성곽 안으로 들어갔다 살아 돌아온 최초의 외부인인 셈이다. 하라르에는 "기독교인이 성곽 안으로 들어오면 도시가 멸망할 것"이라는 미신 같은 계시가 있었기 때문에 이교도의 출입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으며, 몰래 들어오는 경우에는 처형을 했다고 한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순례자로 변장해 아라비아반도 메카에 잠입하기도 했던 영국의 동인도군 장교였던 리처드 버튼은 이번에는 아랍상인으로 위장해 영국령 소말릴 랜드의 제일라 항구에서 출발해 하라르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나니 비록 나는 비기독교인이지만 우리가가 하라르에 들어왔다는 것이 왠지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슬람교도가 아니라면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 몇몇 장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자미 모스크(Jami mosque)는 성자 Gragn을 추도하기 위한 모스크로써 13세기 만들어졌고 여전히 이슬람교도 아니면 접근을 불허한다. 기독교 교회와 가톨릭 성당에는 지붕 위에 십자가가 달린 것과는 다르게, 이슬람 사원은 지붕 위에 초승달 모양의 상징만이 달려있었다. 이슬람 성인의 무덤과 신사라는 곳에는 초승달 모양 위에 추가적으로 별모양의 상징이 함께 달려있었다. 이슬람의 사원과 무덤은 보기에 매우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별모양의 상징의 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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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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