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독립 전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주의의 흥기와 함께 탈식민화로 인한 해방을 맛보게 되어 아프리카의 낙관주의(Afro-optimism)가 예고되었으나, 국가체계의 구석구석에 묻어있는 과거 식민지 유산과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하여 서구에 대한 재의존과 냉전체제 속에서 내전 및 국가간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식민지 독립 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인위적으로 형성된 식민/제국주의의 조형물이었다. 아프리카국가들은 독립에 대해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독립 후 아프리카국가들은 민족집단의 통합과 국가의식을 함양하는데 최우선적인 목표를 두어야만 했다.


식민 통치로부터 자유를 얻은 초기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흥분과 희망이 가득했다. 곧바로 인종주의, 제국주의의 통치라는 명백한 짐이 사라진 것이었다. 정부 청사에는 새로운 깃발이 펄럭였고, 유럽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인이 정치 권력을 쥐었으며, 세계가 신생국들을 자치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독립의 흥분 뒤에는 정치 지도자들이 곧 대면할 수많은 문제들이 가려져 있었다.


시작부터, 독립 후의 지도자 자리를 기대하고 있던 당파들 사이에 내부 갈등이 빚어졌다. 민족주의 운동 단체로 이루어진 반식민주의 기구들은 민족, 지역, 이데올로기적 계통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독립을 이루자, 식민주의 압제에 대한 반대라는 공통적 유대가 약해지거나 사라지면서 당파간 또는 당파내 갈등이 생겨났다. 불화를 일으킨 이슈 중 가장 큰 것은 정부와 여당내 권력에 대한 접근이었다. 중앙 정부건 지역 정부건 간에 정부 내 직위는 영향력 있는 결정과 자원에 대한 지배력, 개인적 이익에 대한 접근을 의미했다.


탈식민화 시기의 선거로 국가 지도자가 된 반식민주의 지도자들은 깨지기 쉬운 국가적 화합에 직면했다. 식민주의자들이 통치한 지역은 다양한 문화와 언어 집단, 정치적 존재, 상업 지역이 해당되었다. 식민 통치기에는 식민지 내에서 사람들을 통합하거나 단결시키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통제 수단으로 민족 집단들이 서로 대립하게 하는 경우가 잦았다.


독립 이후 취약한 국가체제를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 계층, 엘리트 집단과 같은 경쟁 세력 간의 갈등과 부와 고용의 창출, 교육, 및 국가 자원의 배분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프리카의 정치구조는 정쟁의 장이 되었고 그 뿌리가 허약했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 되었다.


독립초기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낙관주의가 팽배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정치적 식민주의는 끝났지만 경제적인 간접지배를 통해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 독립 이후 40여 년간 잘못된 통치와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낙후, 빈곤, 불평등 악화. 정치적 실패로 이어졌는데 이는 과거 식민시대의 정치형태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1970~1980년대에 국가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또한 정치행동을 조작하기 위한 도구로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데올로기를 채택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 이는 식민지배시기부터 이어온 외국인들의 착취를 없애고 식민지 이전 아프리카의 과거에 있었던 공동체적 평등주의 요소를 부활하자는 전략의 표출이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980년에 들어와 일당독재체제 또는 군사독재정권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정치인들의 폐쇄적인 정치행태와 개발독재를 정당화 하려는 욕심은 군사정부가 출현하게 하였다. 아프리카 특징적인 정치 형태는 공직자의 부정부패, 정부의 신뢰성 결핍, 그리고 인권침해로 나타났다

Posted by 올아프리카 africa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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