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왜 발전하지 못하고 1세기 동안 정치적 불안정을 겪어야만 했는가?

2018. 4. 13. 15:53


1960년대 독립 전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주의의 흥기와 함께 탈식민화로 인한 해방을 맛보게 되어 아프리카의 낙관주의(Afro-optimism)가 예고되었으나, 국가체계의 구석구석에 묻어있는 과거 식민지 유산과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하여 서구에 대한 재의존과 냉전체제 속에서 내전 및 국가간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식민지 독립 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인위적으로 형성된 식민/제국주의의 조형물이었다. 아프리카국가들은 독립에 대해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독립 후 아프리카국가들은 민족집단의 통합과 국가의식을 함양하는데 최우선적인 목표를 두어야만 했다.


식민 통치로부터 자유를 얻은 초기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흥분과 희망이 가득했다. 곧바로 인종주의, 제국주의의 통치라는 명백한 짐이 사라진 것이었다. 정부 청사에는 새로운 깃발이 펄럭였고, 유럽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인이 정치 권력을 쥐었으며, 세계가 신생국들을 자치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독립의 흥분 뒤에는 정치 지도자들이 곧 대면할 수많은 문제들이 가려져 있었다.


시작부터, 독립 후의 지도자 자리를 기대하고 있던 당파들 사이에 내부 갈등이 빚어졌다. 민족주의 운동 단체로 이루어진 반식민주의 기구들은 민족, 지역, 이데올로기적 계통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독립을 이루자, 식민주의 압제에 대한 반대라는 공통적 유대가 약해지거나 사라지면서 당파간 또는 당파내 갈등이 생겨났다. 불화를 일으킨 이슈 중 가장 큰 것은 정부와 여당내 권력에 대한 접근이었다. 중앙 정부건 지역 정부건 간에 정부 내 직위는 영향력 있는 결정과 자원에 대한 지배력, 개인적 이익에 대한 접근을 의미했다.


탈식민화 시기의 선거로 국가 지도자가 된 반식민주의 지도자들은 깨지기 쉬운 국가적 화합에 직면했다. 식민주의자들이 통치한 지역은 다양한 문화와 언어 집단, 정치적 존재, 상업 지역이 해당되었다. 식민 통치기에는 식민지 내에서 사람들을 통합하거나 단결시키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통제 수단으로 민족 집단들이 서로 대립하게 하는 경우가 잦았다.


독립 이후 취약한 국가체제를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민족, 계층, 엘리트 집단과 같은 경쟁 세력 간의 갈등과 부와 고용의 창출, 교육, 및 국가 자원의 배분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프리카의 정치구조는 정쟁의 장이 되었고 그 뿌리가 허약했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 되었다.


독립초기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낙관주의가 팽배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정치적 식민주의는 끝났지만 경제적인 간접지배를 통해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 독립 이후 40여 년간 잘못된 통치와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낙후, 빈곤, 불평등 악화. 정치적 실패로 이어졌는데 이는 과거 식민시대의 정치형태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1970~1980년대에 국가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또한 정치행동을 조작하기 위한 도구로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데올로기를 채택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 이는 식민지배시기부터 이어온 외국인들의 착취를 없애고 식민지 이전 아프리카의 과거에 있었던 공동체적 평등주의 요소를 부활하자는 전략의 표출이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980년에 들어와 일당독재체제 또는 군사독재정권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정치인들의 폐쇄적인 정치행태와 개발독재를 정당화 하려는 욕심은 군사정부가 출현하게 하였다. 아프리카 특징적인 정치 형태는 공직자의 부정부패, 정부의 신뢰성 결핍, 그리고 인권침해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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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당시 왜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과정이 달랐을까?

2018. 4. 13. 15:52


독립의 과정은 식민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었다. 유럽인들이 이주하여 정착하고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다른 독립의 과정을 겪었다. 즉 백인 이주민들의 이익에 따라 독립의 방식도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지도> 식민지배국가와 아프리카의 독립년도



식민지 해방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벨기에가 독립을 내주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민 열강들이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해방시킨 과정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각각의 경우는 서로 달랐다. 어떤 경우, 식민지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그 지배자가 영국이건, 프랑스이건, 벨기에건, 포르투갈이건, 비슷한 모형을 따라야 했다


예를 들어, 알제리,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케냐, 나미비아, 자이레, 짐바브웨 등의 독립운동은 코트디부아르, 어퍼볼타(부르키나파소), 탄자니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지역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고 커다란 충격을 동반했다. 전자의 경우 유럽 이주민의 이익이 민족투쟁의 성질에 큰 영향을 미쳤고, 후자의 경우에는 이주민의 이익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성격과 조직 능력 역시 중요한 변수로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식민 열강에 의해 지배를 받았냐는 사실보다는 그 식민지에 유럽인 이주민이 살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식민 해방의 유형과 방법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주민이 없는 곳에서는 식민 열강도 아프리카인에 대한 자치를 허용하는 데 수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주민이 있는 경우에는 식민 해방의 과정에 아프리카인들과 유럽인들 간의 폭력적 갈등의 기간이 거의 특징적으로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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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왜 아프리카를 식민지배하였는가?

2018. 4. 6. 10:07


아프리카 식민지화의 핵심적 원인은 정치적, 경제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럽 각국은 민족주의적 경쟁과 힘의 균형, 그리고 국가주의적 시각에 따라 더욱 더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고자 경쟁하였다. 또한 제국주의적 시각에 따라 새로운 시장과 자원의 공급지로서 식민지를 확보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욕구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는 것이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경제적으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선교사들이나 해안가에 거점을 두고 이루어지는 소규모 무역상들에게 방치된 상태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유럽 국가들의 경쟁은 1870년대에 들어와 점점 치열해졌다.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과 그리고 독일에서는 개인과 집단들이 경쟁하고 있었고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조직한 국제아프리카회의(International African Association)같은 단체에 의해서도 경쟁이 유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비공식적인 무역 제국이 공식적인 식민제국으로 전환하는 것을 옹호하게 만들었다. ‘분할또는 쟁탈(scramble)’이라는 유럽인들의 표현에 맞는 거의 공황에 가까운 경쟁상태가 일어나게 되었고 188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쟁탈은 최고조에 이르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식민지배는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문화는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전통을 만들어 냈다. 일부 경우에 있어, 이러한 전통은 아프리카인들의 후진성과 미개함, 그리고 야만성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었다.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지배 방법이 다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는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체제, 즉 기술적으로 진보한 소수의 외국인이 다수의 원주민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강제로 지배한 체제였다. 식민주의자는 식민 지배를 하는 자신들은 우등한 쪽이고 식민 지배를 받는 아프리카인들은 열등하다는 이론을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아프리카의 점령과 식민화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배경의 대부분은 다윈(Darwin), 스펜서(Spencer), 모건(Morgan),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역사발전이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유럽인들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문명이 낮은 수준의 문명을 점령하여 세계의 곳곳에 번영과 진보를 가져오는 것이 옳은 일이고 심지어 자신들의 의무라고 주장한다. ‘백인의 십자가라는 문구로 표현되거나 프랑스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명의 의무라고 표현되는 이러한 주장들은 백인종의 생물학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인종차별적 이론을 더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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