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481

북아프리카 테러조직의 배경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5년부터 2016년 초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프랑스와 벨기에서 발생한 테러일 것이다.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테러에 이어 발생한 11월의 파리 테러(Paris’s Attack)와 2016년 3월의 브뤼셀 테러는 전 세계인을 경악케 하기에 충분했다. 전 세계인은 ‘이슬람 국가’(IS)의 테러로 규정짓고, 이후 유럽과 미국은 IS와의 전쟁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후에도 벌어진 아프리카의 말리 호텔 테러(2015.11)와 튀니지 경호 차량 테러(2015.11), 부르키나파소 호텔 테러(2016.01) 등까지 IS의 테러인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결국 말리나 부르키나파소 테러는 알카에다 계열의 알무라비툰(al-Murābiṭūn)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나이지리아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나라이다.

2015년 대통령에 당선된 무하마두 부하리(Buhari, Muhammadu ; 1942 -)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1983년 12월부터 1985년 8월 사이에 나이지리아의 군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셰후 샤가리(Shehu Shagari)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권력을 잡았다. 그 당시 부하리 장군은 최고 군사 위원회(Supreme Military Council)의 의장과 군 사령관직을 동시에 맡았다. 나이지리아의 심각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와중에 1985년 군 총사령관인 이브라힘 바다노시 바방기다(Babangida, Ibrahim Badanosi ; 1941-)가 쿠데타를 주도하였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여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15년 선거는 문민..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문화를 생산하는 국가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축구에 아주 열광적이다. 나이지리아 출신 선수들이 유럽팀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축구는 나이지리아인들을 종족에 관계없이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슈퍼 이글스’라고 불리는 축구국가대표팀은 아프리카의 네이션스 컵에서 여러 번 우승과 준우승을 하였고 1994년부터는 월드컵에도 계속 진출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대표팀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축구 우승을 차지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조직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체력이 아주 좋아 앞으로 아프리카의 축구를 대표하는 나라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화산업의 메카로 놀리우드(Nollywood)라고 불린다. 나이지리아의 놀리우드 영화산업은 미국의 헐리우드, 인도의 볼리우두(Bollywood)와 ..

나이지리아는 국가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나이지리아는 장기간에 걸친 쿠데타와 정치적 불안정을 겪다가 1999년 요루바족 출신인 오바산조 대통령의 민선정부가 출범함으로써 정치적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부하리 대통령은 부패를 척결하고 국민화합을 통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구조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다. 나이지리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의 정착이며 지역·종족·종교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북부의 하우사-플라니, 서부의 요루바, 동부의 이보 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갈등을 조율하고 국가를 통합하는 것이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북부의 하우사-플라니족이 독립 이후 정치권력을 잡았지만 지만 남부의 요루바족과 이보족은 배제되었다. 1960년 독립이후부터 무슬림인 북부 지역의 하우사족이 군부를 장..

김광수. “츠와나인의 문화사에 대하여”, 한국아프리카 학회지, 제 9집, 1997년 12월, pp. 95-138.

츠와나인의 문화사에 대하여 1. 서언 토인비교수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양강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후 세계사의 현시점에 이르기까지 21세기의 상이한 문명패턴을 그의 역저 ‘역사의 연구’ 제 4권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대륙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그와같이 아프리카대륙을 무역사적 객체로 취급한 것은 비단 토인비교수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향은 유럽의 지적 장르에 팽배되어 있던 하나의 사실이었다. 유럽의 저명한 학자인 셀리그만(Charles G. Seligman)이나 쿠우프랜드(Reginald Coupland) 같은 사학자나 인류학자들도 검은 아프리카대륙의 무역사성을 지적하는데 주저치않고 있다. 또한 쿠우프란드는 자기의 저서 ‘동부 아프리카역사’(Ea..

연구성과 2018.05.22

나이지리아는 전략적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

나이지리아는 서아프리카 기니 만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로써 정치·경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국가 중 인구가 가장 많고 중요한 산유국으로 아프리카연합(AU)에서도 영향력이 크다. 2015년 야당출신인 부하리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과거에 비해 발전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있으며 경제적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최대의 시장이며 글로벌 신흥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나이지리아에 대한 진출이 반드시 필요하며 지역적, 국가적 특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준비가 필요하다. 나이지리아의 정치상황과 보코하람, 니제르델타의 문제는 우리의 진출전략 수립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제1의 경제대국이다

나이지리아의 산업은 석유와 가스, 농업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2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평균 경제성장률 6%대로 2015년 명목 GDP가 4765억 달러로 남아공을 제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2015년 기준 1인당 GDP는 6천 달러로 1만 3천 달러인 남아공에 비해 절반 수준이나 풍부한 천연자원과 발전가능성을 고려하면 제1의 경제대국의 위상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의 90%이상을 석유에 의존하고 있으며, 환금작물로는 남부의 코코아·팜유·고무와 북부의 땅콩·면화가 중요한 생산품이다. 나이지리아는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지만 석유산업위주 정책으로 농업기술이 낙후하고 생산성이 떨어져서 ..

나이지리아는 한 나라로 만들면 안 되는 나라였다. 나이지리아는 원래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나이지리아는 북부의 이슬람인 하우사 플라니족, 남부의 기독교도인 서부의 요르바족, 동부의 이보족으로 나누어져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는 영국이 식민지배 당시 북부와 남부를 통합하여 하나의 국가로 만든 것이 가장 큰 원이이었다. 나이지리아의 식민지화 과정(AF Nations & Civilization, 282) 역사적으로 보면 북부 지역은 14세기 하우사 도시국가가, 16세기에 카넴-보르누왕국이, 19세기에 소코토 제국이 출현했다. 나이저 강 하류 지역은 11세기에 요루바, 이페 왕국이, 14세기에 하우사, 베넹 왕국이, 17세기에 오요 왕국 등이 강력한 세력을 보였다. 영국은 1850년대부터 노예무역항인 라고스를 통해 식민지배를 넓혀갔다. 1893년 북부 및 남부 나이지리아 보호령으로 식민지를 확대..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 종식은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의 정착이 관건이다.

[세계의 분쟁지역]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지금 현재 동부 지역은 과거에 비해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동맹민주군(Allied Democratic Forces : ADF)이 무장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이 조직은 우간다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으로 수단의 지원을 받는 우간다 무슬림이 중심이 되어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지역과 우간다 국경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마에서 작전중인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군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c/FARDC_and_MONUSCO_reinforce_their_presence_in_and_around_Goma_following_a_second_day_%2..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자원 때문에 계속되고 있다.

[세계의 분쟁지역]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아프리카 지역분쟁이며 자원이 있는 한 계속될 수 있다. 왜 콩고민주공화국은 내전에 고통을 받고 있으며 저발전의 상태에 머물고 있을까? 필자가 만난 킨샤사 국립대학교의 한 교수는 ‘서구 국가들은 결코 콩고민주공화국의 안정을 바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구 국가들은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의 민주주의와 정치적 안정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을 비롯한 수단,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앙골라 등은 풍부한 자원으로 인해 오랫동안 전쟁을 겪어야 했으며 오히려 ‘자원의 저주’가 되었다. 이들 국가에서는 다이아몬드뿐만 아니라 금, 주석, 콜탄(coltan), 목재 및 다양한 광물이 정부와 반군의 무기를 사는데 사용되거나 개인적 축재로 이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