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버그의 게이, 레즈비언 축제

2003. 5. 23. 17:08
요하네스버그의 게이, 레즈비언 축제

남아공에서 최초의 게이, 레즈비언 축제(Gay and Lesebian Pride Festival)는 1990년 10월 10일에 실시되었다.  그러나 이 축제에는 약 8백명의 게이즈와 레즈비언들 만이 참여했으며 단지 2대의 가장행렬 차량만이 축제에 참여했을 정도로 그 규모는 적었다.  이 축제의 행진은 동성애자들이 그들에 대한 차별에 대항하는 항의의 한 형태였다.  남아공의 첫 번째 다인종선거가 실시된 1994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만델라 대통령은 게이의 권리도 인정하는 헌법 조항을 포함시켜 세계 최초의 게이의 헌법 보장을 인정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1995년부터 게이와 레즈비언의 항의성 행진은 축제로 바뀌게 되었다.

남아공의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인식은 남아공의 민주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남아공에서는 1990년대초 이래 많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정치, 경제적으로는 340여년간 지속된 흑백간의 인종차별법(Apartheid)이 종식하였고 사회 문화적으로도 흑인들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며 많은 분야에서 흑인들의 진출이 두더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장 괄목한 변화를 겪은 것은 게이와 레즈비언(Gay and Lesbian) 공동체문화이다.  현재 남아공의 경우 게이와 레즈비언을 헌법에서 보장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이다. 남아공 헌법에는 국가는 하나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종, 성, 성적 정체성 등으로 인해 부당한 차별을 받지않을 권리가 있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피해망상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의 보수주의적인 관점하에서 동성애 허용은 절대 불가의 입장이었다.  백인정권하의 소도미(Sodomy) 법에서는 동성애 행위는 기소되었고 처벌받았다.  게이 바(bar)들과 클럽(club)들이 주요 도시에 존재했으나 이곳은 종종 경찰들의 목표물이 되었고 급습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일반적으로 술집으로 위장하여 운영하였다.  심지어는 남자가 여장을 한다거나 여자가 남장을 하는 등 동성애적 분기위의 옷을 입는 것 조차 불법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케이프타운 인근의 유명한 누드 비치인 샌디 베이(Sandy Bay) 조차도 경찰의 급습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동성애들이 발견하면 즉시 처벌을 받는다.
1994년 남아공에서 최초의 다인종선거에 의한 민주주의 도래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사람들이 게이와 레즈비언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남아공의 정치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이 인물 중의 한 사람은 세실 아브라함(Cecil Abrahams)이다.  그는 요하네스버그의 사교계에서 아주 유명한 부유한 사람이다. 그는 백인이며서 인종차별이 실시되었던 백인정권하에서 만델라와 같은 흑인 정치지도자들을 도와주었으며 또한 남아공 공산당에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었다.  그는 만델라와는 아주 친한 사이로 남아공의 유명한 영한 ‘만델라와 동승한 사람’(The Man Who Drove With Mandela)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남아공에서는 게이와 레즈비언 평등을 위한 국민연합(The National Coalition for Gay and Lesbian Equality)이 게이 공동체의 법적 권리를 위한 싸움을 위해 1994년 설립되었다.  그리고 남아공의 새로운 헌법이 인종차별금지를 위한 이유로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도 금지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도록 성공적인 로비도 하였다.  현재 이 단체에는 남아공 전역에 있는 74개 게이, 레즈비언 그리고 양성(Bisexual) 단체들이 가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단체들은 그들의 권리를 위해 계속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1990년부터 요하네스바그에서 실시된 게이와 레즈비언의 거리행진 축제는 1996년에 1만명 이상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참여함으로써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40대의 가장행렬 차량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참가규모가 줄어들고 이 축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이는 기존의 흑백 동성애자들간의 공존에서 점차 그 한계성을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백인 게이들은 이 축제의 전통적인 행진 루터가 흑인들의 밀집지역인 힐브로(Hillbrow)를 통과하는 것에 대해 불만들이 있었다.  백인 게이들은 그곳은 언제나 위험한 지역이며 이 빈민가를 행진하는 동안 그들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흑인 게이들 또한 이 행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음악이 그들의 취향과 다르다고 말한다.  노래를 들려주는 DJ들은 흑인들이 그들의 취향에 맞는 알엔비(R&B) 그리고 하우스 엔 힙합(House and Hip Hop)을 신청하지만 춤추는 장소에서는 막상 백인들이 좋아하는 유럽풍의 음악들이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축제의 위원회들은 항상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설사 한두명의 흑인들이 위원회에 끼여있다고 해도 그들의 역할과 권한은 거의 없다고 믿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않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즉 흑인 게이와 레즈비언 사회에서는 그들이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축제에서 주변부로 여기고 있다.  사실 이 축제는 백인위주로 프로그램들이 짜여지고 있다.

예를들면, 여전히 오늘날의 이 축제의 가장행렬에는 백합꽃들이 차량을 장식하며 대부분의 흑인들이 그들의 피부색이나 혹은 ‘부적절한 의상’이라는 이유로 인해 출입이 거절되는 경험을 한 유명한 게이 클럽들이 밀집되어 있는 ‘하트랜드 클럽들’(Heartland clubs)에서 ‘비너스’들이 선출되곤 한다.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은 오늘날에는 범죄행위로 처벌받지만 여전히 백인들의 밑바탕에는 인종차별의식이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게이와 레즈비언 사회에서는 더욱 실감을 느끼고 있다.  이와 같은 인종차별은 흑인 공통체에게는 큰 모욕을 주는 것이며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인종차별 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2001년 9월 29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연례 아프리카 프라이드 행진(African Pride Parade)은 이전과는 다른 아주 기억에 남을 축제였다.  수천명의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그리고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이 참여하여 요하네스버그 거리를 행진하였다.

2001년부터는 흑인 게이와 레즈비언 사회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전의 축제와는 다른 변화를 보였다.  과거의 백인음악 위주에서 흑인들이 즐겨듣는 Hip-hop, R&B, House 그리고 크와이토(Kwaito : 남아공 흑인 특유의 음악) 음악으로 대체되었다.  이 시기부터는 축제의 이름도 이전과는 다르게 ‘흑인들의 자긍심’이라는 의미로 ‘블랙프라이드’(BlackPride)로 불리고 있다.

거리행렬이 끝나면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요하네스버그 시내의 주요 게이, 레즈비언 클럽에서 그들의 축제 기분을 즐긴다.  약 5천명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요하네스버그 헨리 거리(Henri Street)에 있는 게이들의 중심지인 6개 클럽에서 분장을 하고 즐긴다.  그리고 1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요하네스버그 시내 중심의 호로르 카페(Horror Cafe)에서 ‘블랙프라이드’ 축제를 즐긴다.  그리고 이들 축제에서 남아공의 가장 흑인 여성다운 분장을 한 사람들이 그들의 분장을 뽐낸다.  이 행사는 이들 게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 중의 하나이며 이 분장을 통해 그들의 성취감을 얻기도 한다.

흑인들은 이 축제를 통해 그들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내세우기도 한다. 흑인들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벌이는 ‘차이니스프라이드’라든지 이탈리아인들이 벌이는 ‘이탈리아프라이드’도 남아공에서 행사를 할 수 있으며 이 게이와 레즈비언 축제가 이전의 백인들만의 축제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프라이드 축제의 주제>

1990: Unity In The Community
1991: Marching For Equality
1992: Marching For Our Rights
1993: Celebrate, Act and Be
1994: Celebrate Unity
1995: Gay by Nature, Proud by Choice
1996: Pride Beyond Boundaries
1997: African Pride
1998: Recognize Our Relationships
1999: Celebrate For Unity
2000: In The Name Of Love
2001: Out There, 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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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의 게이, 레즈비언 축제

2003. 5. 23. 17:07
케이프타운의 게이, 레즈비언 축제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은 게이와 레즈비언 여행가들에게 있어 가장 매력적인 도시 중의 한 곳으로 뽑혔다.  게이 여행가들의 ‘성서’로 알려지는 스파르타쿠스(SPARTACUS) 잡지는 최근 케이프타운을 전세계 게이들의 최종 방문지 중 5번째 도시로 인기있는 지역이라 소개하고 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에게 있어서도 관심지역이다.

특히, 케이프타운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동성애자들의 도시로 케이프타운에서 게이들이 가장 많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지역은 시그널 힐(Signal Hill)의 등사면에 위치한 드 바트칸트(De Waterkant)라고 알려진 게이 구역(Gay Quarter)과 워트프론터(Waterfront)이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예술가들이 모이고, 세계의 다인종들이 모여드는 케이프타운 지역에서는 가장 화려한 곳 중의 한 곳이다.  바트칸트 스트리트에 있는 카페 맨하탄(Manhattan)은 오후나 저녁이 되면 게이와 레즈비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바(bar) 이다.  또한 인근의 브론스 액션 바(Bronx Action Bar) 역시 게이와 레즈비언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다.
케이프타운은 연례적으로 게이, 레즈비언 축제를 벌인다.  요하네스버그와 마찬가지로 이 동성애들의 프라이드(Pride) 축제는 전세계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케이프타운의 축제는 전시, 쇼, 콘서트들, 파티들 그리고 세미나 등 잡다한 이벤트와 함께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거리를 행진하는 축제를 벌인다.  전세계 프라이드 축제의 전통에 따라 길거리 가장행렬 행진 이후 대규모 프라이드 파티가 벌어진다.  국제적으로 이름 난 유명한 DJ들과 음악인들이 이 파티에 참여한다.

게이 프라이드 위크(Gay Pride Week) 축제는 케이프타운의 국제적인 관광도시의 이미지를 십분활용한다.  케이프타운의 경우 보통 여름인 12월은 국내외적으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계절로 게이프라이드 위크 축제도 이 시기에 개최된다. 보통 케이프타운의 게이 레즈비언축제에는 1만여명의 게이들과 게이 친구들이 참여하며 케이프타운 정부에게는 수백만 랜드(rand)의 수입을 올려준다.  2001년의 경우 이 축제는 12월 15일에 개최되어 1주일간 지속되었다.  이 축제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마르디 그래스(Sydney Mardi Gras) 축제가 오스트레일리아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하듯이 케이프타운의 도시 재정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다.

이 축제 기간에는 매스컴들도 경쟁적인 취재를 한다.  남아공의 주요 라디오, 텔레비전 등 방송매체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뉴스 전문 텔레비전 방송사인 CNN까지 이 축제를 보도한다.  또한 종종 흑인 게이나 레즈비언들에 대해 편파적인 보도를 하지만, 남아공 국내 신문들도 이 축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다.
2002년 케이프타운의 이 축제는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는데 12월 10일부터 17일까지 개최되었다.  이번 축제는 케이프타운 관광청과의 협조하에 가장 대규모의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그리고 트랜스젠더들의 축제가 되었다.  그리고 케이프타운을 전세계 게이, 레즈비언들의 가장 관심있는 지역으로 만들려하고 있다.  케이프타운은 이 축제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홍보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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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샤 족(Falasha)의 축제

2001. 11. 23. 14:21
팔라샤(Falssha) 족은 아프리카의 시미엔(Simien) 산맥을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는 탁카즈(Takkazze) 강을, 그리고 남쪽으로 타나호수와 서쪽의 수단을 경계로 위치해 있다. 수세기 동안 이 이디오피아의 검은 유대인들은 아프리카의 지붕이라 불리는 건조하고 비탈진 불안정한 곳에 거주하고 있다.
팔라샤 족의 축제는 이디오피아인들과는 다르지만 유대인들과 유사한 태양력을 사용하였다. 일 년은 12달 30일이고 13달째는 5일 동안이다. 4년마다 윤년이 돌아오고 마지막 달은 6일 동안이다. 펜타토치에 설명된 축제들은 유대인들의 의해 행해졌으며 그 외에도 팔라샤 족 고유의 축제들이 있다.
이 축제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9번째 달의 마지막 날에 행해지는 식디(Sigd)라고 하는 축제이다. 이 축제는 에제라(Ezra)와 네헤미아(Nehemiah)가 이끄는 추방자들이 바빌로니아(Babylonia)에서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행해진다. 이날 사제들은 성서를 들고 높은 언덕의 정상에 원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등에 돌을 지고 언덕을 오른다. 정상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들고 온 죄로 비유되는 것들을 던져 버린다. 다른 관습 중의 하나는 새들에게 곡식 알갱이를 먹이는데, 알갱이들은 고인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습은 윰 키푸르(Yom Kippur) 라 불리는 속죄의 날에 행해진다.
팔라샤 족에게 있어서 돌은 중요하고 상징적인 존재이다. 어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각각의 적대자들은 돌을 집어 등에 놓는다. 그러고 나서 그 돌을 던져버리고 서로에게 키스를 하면 싸움은 해결된다.
팔라샤 족은 원뿔형의 초가 지붕으로 된 둥근 오두막들이 지어진 작은 마을에 산다. 이 마을들은 주로 언덕의 정상과 강 근처에 위치해 있다. 이 외에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오두막들이 있는데, 이곳은 저주의 또는 피의 오두막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생리 기간인 7일 동안 일도 하지 않고 감금되어 있어야 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여성들은 몸을 씻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이전에는 위에서 언급한 저주의 오두막 뿐만 아니라, 각 마을마다 출산을 위한 오두막이 있었다. 아들을 출생한 후 8일이 되는 날-포경 수술을 하는 시점-산모는 아이를 출산한 저주의 오두막을 나와 출산을 위한 오두막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내아이를 출산하면 40일 여자아이를 출산하면 80일 동안 산모는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옷을 세탁한다. 그리고 출산 장소로 쓰인 오두막은 불에 태워 없앤다.
청결하기로 소문난 팔라샤 족에게는 베를 짜는 솜씨가 좋은 직공, 도공, 대장장이들이 경제 생활의 주류를 이룬다. 이디오피아에 있는 다른 대장장이들처럼, 그들의 예술을 초자연적인 힘과 연관시키려는 믿음 때문에 그들은 멸시를 받기도 했다. 그들은 대장장이와 현인을 의미하는 타비브(Tabib)로 불리어졌다. 그러나 이 용어는 또한 마녀를 경멸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밤에는 하이에나로 변하여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졌다.
팔라샤 족은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지만 농지가 부족하여 궁핍한 생활을 한다. 대부분의 이디오피아인들 처럼 그들은 농지를 소유하지 않는다.
좋은 농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최근에 이들 중 일부는 수단과 이디오피아의 국경지대인 세티트-휴메라(Setit-Humera)로 이동하였다. 그곳의 토양은 비료가 필요 없는 검은 점토로 구성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면화, 참깨, 수수 등이 생산된다. 전통적인 팔라샤족의 홈랜드와 세티트-휴메라 지역의 차이는 엄청나다. 가파른 언덕과 이어진 암석으로 덮인 들판은 수평선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평지가 되었다. 산악지역에 내리는 소나기 대신 덥고 건조한 날씨와 거세게 퍼붓는 빗줄기로 인해 팔라샤 족은 그곳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팔라샤 족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살아갈 지는 의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선교 활동과 유대인들로 인해 그들의 터전은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다. 팔라ㅑ 족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알려진 이스라엘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원하고 있다.                  
100년 이상을 팔라샤 족들은 예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의식과 관습들을 과감히 버리도록 결정하였다. 팔라샤 족들에게 미치는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압력은 인구를 19세기에 250,000명에서 현재는 20,000명이 채 안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팔라샤 복지원은 의료와 교육 시설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세계 도처의 유대인들이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또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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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곤족의 탈춤 축제 - 말리

2001. 10. 20. 11:31

아프리카의 축제는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른 점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음악과 춤을 근간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음악은 가사와 곡조로 되어 있는데, 가사는 매우 시적이기도 하고 신화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교훈적이거나 아니면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도 있다. 곡조를 소리낼 때는 사람의 입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여 낸다. 춤은 이런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몸의 모든 부분을 다 동원하여 정열적으로 춘다.
춤을 출 때는 여러 가지 '의장'(衣裝)과 분장을 하고 춤을 추는데, 이 의장은 풀잎이나 동물 가죽과 같은 자연적인 재료로 만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탈(mask)을 쓰고 나와 춤을 추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음악과 춤, 악기, 탈, 가사의 암송 등은 개별적인 의미보다는 상호 관계를 갖고 서로 조화되어 있어서 총체적으로 볼 때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음악이나 춤 각각에서는 그다지 큰 의의를 찾아볼 수 없고 상호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춤 없는 음악이나 음악 없는 춤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축제는 맹목적인 유흥이 아니라 깊은 의미와 뚜렷한 목적이 담겨 있다. 그들의 축제는 토속적인 종교 행위의 일종으로 축제를 벌이는 중에 희생을 통하여 나쁜 것을 제거하고 상실되어가는 힘을 갱생시킴으로써 일치와 조화와 안위와 평화를 기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나쁜 것을 그냥 내버려두면 그 나쁜 힘이 부족에게 커다란 악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축제를 통하여 이를 미리 막아버리려는 것이다. 이상한 모양의 탈과 의장을 입고 나오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나쁜 것의 힘을 안정시키고 흡수하여 부족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산 것이면 무엇이나 죽을 때는 힘을 방출하는데, 그 힘을 유도하여 전 부족의 이익을 위하여 재분배하도록 꾀한다. 또 생명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시간과 장소와 같은 비 생물적인 것까지도 그들의 힘을 상실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에 주기적으로 갱생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축제를 통하여 상실되어가는 그 힘을 갱생시키려는 것이다. 축제 중에 춤을 추는 이유는 힘의 초점이 되는 춤을 힘껏 추어 그 상실되어가는 힘을 다시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서부아프리카 말리 도곤족의 탈춤 축제는 시기상으로는 11월에서 다음 5월까지 이지만 그들 부족에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적 재앙이 닥치거나 혹은 한해의 농사가 풍작이 들었을 때 그들은 언제나 탈을 쓰고 그들의 축제를 벌인다.
도곤족은 인구 약 22만으로 언어적·문화적으로 볼타 제족(諸族)에 속하며, 복잡한 우주 발생론이나 추상적 개념을 지닌 독자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생업은 조·벼·수수를 중심으로 하는 곡물류 재배이고, 금속·가죽을 취급하는 기술자가 특수계급을 이루고 있다. 사회제도는 부계(父系)의 씨족외혼제(氏族外婚制)로 수개의 대가족이 모여 촌을 구성하며, 수개의 촌이 집합하여 지방을 형성하고 있어 ‘지방’이 가장 큰 규모의 정치조직이다.
각 지방에는 '호곤'이라 부르는 종교적 지도자가 있고, 그 위에 전체로서의 최고 ‘호곤’이 한 사람 있다. 이들은 창세신화와 전설을 비롯하여 60년에 1번씩 행해지는‘시기’라고 하는 대조상제사(大祖上祭祀)·의례(儀禮) 등을 거행함으로써 종교적 역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까지 하고 있다. 또한 선·악을 인격화하여 자연계의 대상을 유별화(類別化)하고, 전통적인 가면(假面)·조각·회화도 많이 전승하고 있다.
도곤족은 절벽에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13세기 모로코로부터 내려온 이슬람 세력에 밀려 이 곳 반디아가라 절벽 지대에까지 온 도곤족은 험한 지형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방어가 용이한 이 곳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현재 이 곳 반디아가라 절벽 지대에는 약 80개의 크고 작은 부락이 있고 말리 전역이 이슬람화되어 있지만 유독 도곤족만이 이슬람화되지 않은 채 그들 고유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에는 '오공'이라고 불리우는 추장이 여섯 명 있는데 각기 맡은바가 다르다. 대추장을 비롯하여 사냥 담당, 농사 담당, 예언 담당 등 자신의 분야에 대해 점을 치고 점괘를 서로 이야기하며 마을을 잘 이끌어 나간다.
오공들은 하루 종일 나뭇가지와 작은 돌멩이을 이용해 흙바닥에 여러 가지 표시를 해놓고 주변에 음식을 장만하여 놓고 여우를 유인한다. 밤새 여우가 돌아다니며 표지 위에 발자국을 남겨 놓으면 여섯 명의 오공들이 다음날 새벽에 모여서 그 발자국을 해석하게 된다. 해석은 여섯 명의 오공이 의논하여 만장 일치로 결정되어야 비로소 효력을 발하게 되는 아주 민주적인 방식으로 행해진다.
비가 올지 안 올지, 비가 오면 얼마나 올 지에 대해 의논하여 마을의 재난에 준비한다. 또한 동물들의 움직임에 대해 예언하여 사냥하기에 좋은 날을 결정하기도 한다.
결혼 풍습 또한 특이하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부모들끼리 정혼을 행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결혼할 때가 되면 신랑은 신부의 집으로 간다. 신부의 집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까지 키운 다음 그때서야 신랑이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신랑은 그 때부터 남자로서의 대접을 받게 된다.
바위 절벽에서의 어려운 생활 환경을 고려해 완전히 자란 성인만을 남자로 대우하는 그들의 풍습을 보면 그들 나름대로 환경을 이겨 나가는 방법이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도곤족은 신화에 뿌리내린 독자적인 종교관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이슬람교도도 꽤 있고 일부다처의 가정을 많이 볼 수 있다.
도곤족의 '탈 춤'에서 탈은 아주 특이한데 천지 창조와 음양의 조화 등의 사상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탈은 축제에 중요한 요소지만 음악이나 춤처럼 아프리카 전역에서 사용되지는 않고 지역과 전통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그러나 탈을 쓰는 의도는 서로 비슷하다.
이들은 탈을 쓰고 탐탐 북소리에 맞추어 기묘한 소리를 내며 펄쩍펄쩍 뛰는 등 아주 힘차게 춤을 춘다. 십자가처럼 생긴 탈은 천지 창조를 뜻한다. 나무로 깎아 만든 탈은 각기 다른 뜻이 있는데, 위로 뻗은 뿔은 하늘을 상징하며 아래로 뻗은 두 개는 땅을 상징한다. 이는 하늘과 땅이 만나 천지가 창조되고 만물이 생성함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또한 그들은 탈에 천지 창조가 담겨 있다고 믿고 있다. 춤을 추면서 땅에 선을 긋는 모습은 하늘이 땅에 비를 내려 풍성한 작물을 수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동작이다. 바위 지형에 사는 이들에게 비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 춤에서도 알 수 있다.
라틴어로 인간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는데 이는 연예인들이 쓰는 인조(人造) 얼굴, 다시 말해서 탈을 말한다. 이렇게 서구인들은 인간을 바로 탈이라고 본 것이다.
어떤 근거로 인간을 탈이라고 보았는지 증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인간을 제 모습이 아닌 인위적인 얼굴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같은 말이 형성된 듯하다. 어쩌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탈을 만들어 자기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춤을 추기 시작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인간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버리고 여러 모양의 탈을 뒤집어쓴 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 이상, 또는 인간 이하가 되어 인간이란 국한된 입장에서 벗어나 불가사의한 신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표현이며, 현재라는 제한적 차원을 떠나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 보려는 잠재 의식을 표현하려는 행위로 보인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생과 사, 선과 악 같은 대립에서 떠나 제삼자적인 입장에서 인간과 우주 만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완전한 진리를 찾고자 한 것이다.
탈은 초자연적인 신의 모습이나 악령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간에게 은혜를 주는 자연의 신비를 나타내기도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탈을 씀으로써 군인의 용맹성을 북돋워 주기도 하므로 그들의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가정이나 부족 전체에 어떤 비극적인 위험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신과 직접 통하는 탈을 찾는다. 그 탈을 통하여 분쟁과 알력을 해결하고 다가올 재앙을 없애고 악령을 물리쳐서 질서를 회복하고 평화를 찾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탈은 대체로 인간, 신, 악령, 동물 모양과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모양을 한 것 등 다섯 가지로 대별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탈을 쓰고 우주 만물을 창조한 선하고 지혜로운 신령의 모습으로 춤을 추어 그 신을 끌어들여 대화하고 그에게 호소하기도 하며, 때로는 악령의 모습으로 된 탈을 쓰고 나와 악령이 악인으로 발현하여 악행을 유도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이때 인간의 모습은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그런 모습으로 바뀐다. 또 어떤 때는 동물이나 귀신 형태의 탈을 쓰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 본연의 이성을 잃으면 동물이나 귀신처럼 된다고 믿기에 이런 동물과 악령의 모습으로 탈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한국의 양반 탈춤처럼 양반탈을 쓰고 양반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탈의 모습을 바로 자기의 모습으로 완전히 바꿔 버린다.
보르키나파소의 보보(Bobo)족과 말리의 도곤(Dogon)족이 풀로 만든 탈을 쓰게 된 것은 그들의 청결 예절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들은 자연은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농사일을 하다가 자연에 잘못을 저지르면 그들은 그 대가를 자연에게 지불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죄를 어떤 방법으로 속죄한다 하더라도 자연의 벌로부터 인간을 구해낼 수가 없다고 믿기에 그 땅을 해친 인간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땅에게 많은 죄를 짓고 죽었을 때는 그 죽은 이의 생전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한 뜻에서 이런 탈을 쓰고 장례식을 올린다. 장례 예절이 청결 예절과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탈과 죽음과 청결 예절은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큰 죄를 짓게 되면 하늘을 두려워하며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찾게 된다. 인간은 저지른 잘못에 대한 가장 큰 형벌을 죽음이라고 보는가 하면, 또 죽음을 인간의 과오에 대한 형벌을 감소시키는 어떤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보보족이 나뭇잎으로 만든 탈을 쓰는 이유는 그 부락에 떠돌아다니는 악령을 홀리기 위함이고, 또 도곤족은 풀잎으로 만든 치마를 두르는데 그것은 근친상간하는 늑대를 상징하는 것이며, 인간이 저지른 무수한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독특한 상상력에서 발상한 이런 풍습들은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인간의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피카소는 상상력을 이용하여 자기의 그림이나 조각품을 괴상망측한 모양으로 표현하여 독창적이고도 특이한 예술품을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그의 상상에 비치는 이미지를 독특한 수법으로 예술화한 것이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의 독창적인 탈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마음에 비친 어떤 이미지를 탈로 만들어 낸 것으로 뿔이 돋친 것은 사람의 마음이 동물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표현한 데서 피카소의 것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예술품에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눈이 한 쌍이 아니고 두 쌍인 것은 지혜를 나타낸다 인간은 한 쌍의 눈을 가졌지만 그것으로는 자연의 신비를 볼 수가 없다. 따라서 한 쌍을 더하여 두 쌍의 눈으로 보아야만 우주 만상의 비밀을 보는 지혜를 갖게 된다는 그런 기묘한 발상에서 그같은 모양의 탈이 탄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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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밀칠(Imilchil)축제 - 모로코

2001. 10. 20. 11:29

모로코의 모든 종교 축제 중에 매년 9월 말에 열리는 축제가 이밀칠(Imilchil)이다. 이밀칠 축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 중의 하나이다. 이밀칠은 모로코 마을의 지명으로 이 마을 자체는 다른 마을들과 비교하여 별다른 특이성은 없지만 축제로 인해 이 마을은 유명해졌다. 이밀칠은 모로코의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밀칠 축제 기간에 결혼을 목적으로 소년과 소녀들이 일부 성인들의 통제하에 만남을 가진다. 이 마을의 전통 결혼인 모셈(Moussems)은 여자가 축제기간 동안 남자를 골라 결혼을 하는 것으로 그래서 이밀칠 축제를 결혼 축제라고도 불린다.
이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티스렛(Tislet)이라는 여자와 이슬리(Isli)라는 남자는 서로 사랑한 사이였다. 그러나 두 가문은 서로 원수지간 이어서 이들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심을 했고 그들은 슬픈 언약식을 마친 후 근처의 두 호수에 자살을 하였다. 운명은 그들이 사망한 후에도 합쳐지지 못했다. 두 시신 사이에는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 같은 전설로 이 마을의 사람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자신의 짝을 고르게 하는 행사를 가졌고 이 행사가 축제로 변했다.
소규모 인구를 가지고 있는 많은 마을들이 씨족집단을 이루고 있듯이 이 마을에서도 씨족부락으로 다른 마을 사람들과 이 축제기간에 모임을 가짐으로써 근친 결혼을 막을 수 있다는 것과 wk식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하는 것이 이 축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이 축제는 가장 유명한 결혼축제 전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9월은 수확의 시기로 곡식의 수확에 맞춰 이 산악지대의 호수 주변에서 축제가 본격적으로 벌어진다.
이밀칠 축제 기간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어 이밀칠 마을에 많은 재정적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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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칼 축제 - 이디오피아

2001. 10. 20. 11:27

이디오피아의 마스칼 축제는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때부터 1670년간 이어져 내려오는데 마스칼(Maskal)이란 십자가를 뜻하기도 한다. 즉 마스칼은 이디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의 북쪽 438킬로미터 떨어져 위치한 기센 마리암(Gishen Mariam )수도원에 있는 진실 십자가(True Cross)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수도원 안에는 제라 야콥(Zera Yacob : 1434-1468) 집권시기에 그 십자가를 얻게된 동기를 기록한 테푸트(Tefut)라고 불리는 대규모 서적이 비치되어있다.
중세시대에 이디오피아의 기독교 왕국은 곱틱 소수민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박해하는 세력들에 대항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그들의 전쟁에 대한 보상은 일반적으로 금을 받았으나 황제 다윗(Dawit)은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에게 진실 십자가의 조각을 요구하였다. 그는 이것을 마스칼에서 받았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마스칼 광장에서 축제가 시작되었다. 또한 마스칼의 다른 뜻은 이 시기에 산과 들판에 만발하는 데이지 꽃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디오피아의 계절은 6월 중순에서 9월까지의 우기(雨期)와 10월에서 3월까지의 건기(乾期)로 나뉘어진다. 우기가 시작되는 9-10월에는 신록이 아름답고 국화(國花)인 '마스칼 데이지'의 꽃이 한창피는 가장 좋은 계절이다. 에티오피아의 정월과 마스칼 축제도 이 시기에 있다.
마스칼 축제는 해질 무렵 성직자들의 행렬로 시작해서 마스칼 광장에서 데이지 꽃으로 장식된 피라미드형 나무더미에 불을 피우며 돌면서 새벽녘까지 춤과 음악으로 한판의 축제마당을 벌인다. 나무더미가 불에 타 무너지는 것이 봄의 시작을 상징한다. 이는 옛날 켈트족들 사이에 벌어졌던 메이폴 축제와 그 성격이 비슷하다고 하겠다.
마스칼 축제의 기원은 326년 3월 19일에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9월 27일에 벌어지고 있다. 이 축제를 통해 많은 의식들을 관찰할 수 있는데 직접적으로 여왕 헬리나(Helina)의 전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축제 전날 밤 데이지 꽃다발을 노란 제단 위에 바친다. 밤 동안 이 꽃다발은 제단 앞에 쌓여져 불을 피우게 된다. 이것은 헬리나 여왕이 향에 불을 피우고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하는 행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헬리나 여왕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땅을 파서 십자가 세 개를 찾아야 했다. 그 십자가 중의 하나는 진실 십자가(True Cross)라고 불리는데 이 십자가는 많은 기적을 불러일으킨다.
축제의 시기 동안 북부 고원지대와 산악지역에는 마스칼 데이지 꽃이 노랗게 핀다. 축제 기간에는 춤을 추고 모닥불을 피워 주위를 환하게 비춘다. 심지어는 예포를 발사하며 축제의 흥을 돋군다. 이 축제는 축제 전날 마을 광장이나 시장에 초록색 잎을 가진 나무를 심는 것에서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참가자 모두는 막대기 하나씩을 가져와 피라미드 형태의 제단을 만들며 저녁이 되면 이곳을 불을 붙여 축제를 벌인다. 치보(Chibo)라 불리는 유칼립투스 가지의 횃불은 데메라(Demera)라고 불리는 제단 나무 더미에 불을 붙이는데 이용된다.
아디스 아바바에서는 이 축제를 오후 일찍부터 시작한다. 큰 행렬을 이룬 사람들이 여러 방향에서 마스칼 광장으로 횃불을 들고 모인다. 이 군중들 중에는 명망있는 성직자들과 학생들, 브라스 밴드(brass band)들 그리고 무장을 한 군인들과 큰 십자가를 나르는 사람들이 참가한다. 광장에 모인 수 천명의 군중들은 츠데이(Tseday)라 불리는 황금색 햇빛과 꽃들의 계절이 찾아옴을 환영한다. 저녁에는 불꽃이 어둠을 밝힌다. 피라미드 제단은 새벽까지 불타오른다. 이 축제 기간 동안 각 가정은 비축해 둔 음식과 술들을 낯선 이방인들에게도 대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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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로 족의 짝짓기 축제 (니제르)

2001. 10. 19. 13:32

보로로 족은 플라니 족 흑인과 아랍계 백인들의 혼혈 인종이다. 어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들의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사막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보로로 족은 정해진 거주지 없이 주로 물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사는 유목인이기 때문에 이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밤이 깊어 가면 보로로 족은 모여들기 시작한다. 남자들은 노래를 부르며 낙타를 타고 오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걷거나 당나귀를 타고 모여든다. 이리저리 둘러보면 화장하는 남자들이 보인다. 식물에서 뽑아낸 천연 염료에 곱게 빻은 흙을 개서 나름대로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신중하고 진지한 모습들이다.

준비가 거의 끝나가면 춤판이 벌어진다. 신나는 춤판에 이상하게 악기가 없다. 단지 노래와 박수를 치며 신나게 논다. 오로지 목소리와 박수로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점점 밤이 깊어 가면서 보로로 족은 추운 사막의 밤을 보낸다. 항상 노숙을 하는 보로로 족은 담요 한 장으로 얼음이 얼듯한 밤의 추위를 이겨낸다. 해가 떠오르자 간밤의 추위에서 금세 더위로 바뀌고 총각들은 터번과 가운을벗어 던지고 짝짓기 축제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행사를 위해 남자들은 다시 화장을 한다. 수염을 깎고 흰색, 노란색, 검은색, 물감으로 눈썹도 그리고 입술도 칠하고, 점들을 찍거나 무늬를 그려넣고 그들은 온 정성을 다하여 얼굴을 꾸미고 특별한 옷을 입고 머리 모양을 멋있게 꾸민다.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곱게 차린 남자를 여자가 보고 선택하는 것이다. 화장품이 없는 그들은 흰색은 우유 가루에서, 검은색은 건전지 속의 탄소 가루에서 얻어 물에 개어 쓴다. 조그만 거울을 보면서 마무리 치장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마치 파티에 가기 전 여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춤이 시작되고 한껏 멋을 낸 남자들이 일렬로 서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악기도 없이 흥을 돋우는 나이든 할아버지의 고함소리와 그들의 노래, 박수가 고작이지만 시간이 가면서 흥은 점점 고조되어 간다. 상대적으로 이 춤을 구경하려는 여자들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검은 옷에 검은 보자기, 얼굴의 문신과 커다란 귀걸이가 여자들의 치장한 모습이다. 춤이 끝나자 남자들은 눈동자를 입을 벌려 여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한다. 보로로 족은 이렇게 눈을 크게 뜨면 뜰수록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믿고 있다. 남자들이 한껏 폼을 잡으면 여자들 다가간다. 마음에 드는 남자의 손을 잡는 것으로 짝짓기는 끝난다. 짝을 짓지 못한 이들은 다음 축제를 기다리게 되고 마지막 행사로 남자들의 낙타 경주가 시작된다. 힘차게 달리는 낙타와 늠름한 보로로 족 남자들의 모습에서 여자를 찾기 위해 공들여 화장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차라리 사막을 유랑하는 유목민의 힘찬 기상으로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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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루족의 축제

2001. 10. 1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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