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축제와 의식

도곤족의 탈춤 축제 - 말리

africa club 2001. 10. 20. 11:31

아프리카의 축제는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른 점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음악과 춤을 근간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음악은 가사와 곡조로 되어 있는데, 가사는 매우 시적이기도 하고 신화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교훈적이거나 아니면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도 있다. 곡조를 소리낼 때는 사람의 입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여 낸다. 춤은 이런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몸의 모든 부분을 다 동원하여 정열적으로 춘다.
춤을 출 때는 여러 가지 '의장'(衣裝)과 분장을 하고 춤을 추는데, 이 의장은 풀잎이나 동물 가죽과 같은 자연적인 재료로 만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탈(mask)을 쓰고 나와 춤을 추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음악과 춤, 악기, 탈, 가사의 암송 등은 개별적인 의미보다는 상호 관계를 갖고 서로 조화되어 있어서 총체적으로 볼 때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음악이나 춤 각각에서는 그다지 큰 의의를 찾아볼 수 없고 상호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춤 없는 음악이나 음악 없는 춤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축제는 맹목적인 유흥이 아니라 깊은 의미와 뚜렷한 목적이 담겨 있다. 그들의 축제는 토속적인 종교 행위의 일종으로 축제를 벌이는 중에 희생을 통하여 나쁜 것을 제거하고 상실되어가는 힘을 갱생시킴으로써 일치와 조화와 안위와 평화를 기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나쁜 것을 그냥 내버려두면 그 나쁜 힘이 부족에게 커다란 악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축제를 통하여 이를 미리 막아버리려는 것이다. 이상한 모양의 탈과 의장을 입고 나오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나쁜 것의 힘을 안정시키고 흡수하여 부족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산 것이면 무엇이나 죽을 때는 힘을 방출하는데, 그 힘을 유도하여 전 부족의 이익을 위하여 재분배하도록 꾀한다. 또 생명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시간과 장소와 같은 비 생물적인 것까지도 그들의 힘을 상실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에 주기적으로 갱생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축제를 통하여 상실되어가는 그 힘을 갱생시키려는 것이다. 축제 중에 춤을 추는 이유는 힘의 초점이 되는 춤을 힘껏 추어 그 상실되어가는 힘을 다시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서부아프리카 말리 도곤족의 탈춤 축제는 시기상으로는 11월에서 다음 5월까지 이지만 그들 부족에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적 재앙이 닥치거나 혹은 한해의 농사가 풍작이 들었을 때 그들은 언제나 탈을 쓰고 그들의 축제를 벌인다.
도곤족은 인구 약 22만으로 언어적·문화적으로 볼타 제족(諸族)에 속하며, 복잡한 우주 발생론이나 추상적 개념을 지닌 독자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생업은 조·벼·수수를 중심으로 하는 곡물류 재배이고, 금속·가죽을 취급하는 기술자가 특수계급을 이루고 있다. 사회제도는 부계(父系)의 씨족외혼제(氏族外婚制)로 수개의 대가족이 모여 촌을 구성하며, 수개의 촌이 집합하여 지방을 형성하고 있어 ‘지방’이 가장 큰 규모의 정치조직이다.
각 지방에는 '호곤'이라 부르는 종교적 지도자가 있고, 그 위에 전체로서의 최고 ‘호곤’이 한 사람 있다. 이들은 창세신화와 전설을 비롯하여 60년에 1번씩 행해지는‘시기’라고 하는 대조상제사(大祖上祭祀)·의례(儀禮) 등을 거행함으로써 종교적 역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까지 하고 있다. 또한 선·악을 인격화하여 자연계의 대상을 유별화(類別化)하고, 전통적인 가면(假面)·조각·회화도 많이 전승하고 있다.
도곤족은 절벽에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13세기 모로코로부터 내려온 이슬람 세력에 밀려 이 곳 반디아가라 절벽 지대에까지 온 도곤족은 험한 지형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방어가 용이한 이 곳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현재 이 곳 반디아가라 절벽 지대에는 약 80개의 크고 작은 부락이 있고 말리 전역이 이슬람화되어 있지만 유독 도곤족만이 이슬람화되지 않은 채 그들 고유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에는 '오공'이라고 불리우는 추장이 여섯 명 있는데 각기 맡은바가 다르다. 대추장을 비롯하여 사냥 담당, 농사 담당, 예언 담당 등 자신의 분야에 대해 점을 치고 점괘를 서로 이야기하며 마을을 잘 이끌어 나간다.
오공들은 하루 종일 나뭇가지와 작은 돌멩이을 이용해 흙바닥에 여러 가지 표시를 해놓고 주변에 음식을 장만하여 놓고 여우를 유인한다. 밤새 여우가 돌아다니며 표지 위에 발자국을 남겨 놓으면 여섯 명의 오공들이 다음날 새벽에 모여서 그 발자국을 해석하게 된다. 해석은 여섯 명의 오공이 의논하여 만장 일치로 결정되어야 비로소 효력을 발하게 되는 아주 민주적인 방식으로 행해진다.
비가 올지 안 올지, 비가 오면 얼마나 올 지에 대해 의논하여 마을의 재난에 준비한다. 또한 동물들의 움직임에 대해 예언하여 사냥하기에 좋은 날을 결정하기도 한다.
결혼 풍습 또한 특이하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부모들끼리 정혼을 행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결혼할 때가 되면 신랑은 신부의 집으로 간다. 신부의 집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까지 키운 다음 그때서야 신랑이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신랑은 그 때부터 남자로서의 대접을 받게 된다.
바위 절벽에서의 어려운 생활 환경을 고려해 완전히 자란 성인만을 남자로 대우하는 그들의 풍습을 보면 그들 나름대로 환경을 이겨 나가는 방법이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도곤족은 신화에 뿌리내린 독자적인 종교관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이슬람교도도 꽤 있고 일부다처의 가정을 많이 볼 수 있다.
도곤족의 '탈 춤'에서 탈은 아주 특이한데 천지 창조와 음양의 조화 등의 사상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탈은 축제에 중요한 요소지만 음악이나 춤처럼 아프리카 전역에서 사용되지는 않고 지역과 전통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그러나 탈을 쓰는 의도는 서로 비슷하다.
이들은 탈을 쓰고 탐탐 북소리에 맞추어 기묘한 소리를 내며 펄쩍펄쩍 뛰는 등 아주 힘차게 춤을 춘다. 십자가처럼 생긴 탈은 천지 창조를 뜻한다. 나무로 깎아 만든 탈은 각기 다른 뜻이 있는데, 위로 뻗은 뿔은 하늘을 상징하며 아래로 뻗은 두 개는 땅을 상징한다. 이는 하늘과 땅이 만나 천지가 창조되고 만물이 생성함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또한 그들은 탈에 천지 창조가 담겨 있다고 믿고 있다. 춤을 추면서 땅에 선을 긋는 모습은 하늘이 땅에 비를 내려 풍성한 작물을 수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동작이다. 바위 지형에 사는 이들에게 비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 춤에서도 알 수 있다.
라틴어로 인간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는데 이는 연예인들이 쓰는 인조(人造) 얼굴, 다시 말해서 탈을 말한다. 이렇게 서구인들은 인간을 바로 탈이라고 본 것이다.
어떤 근거로 인간을 탈이라고 보았는지 증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인간을 제 모습이 아닌 인위적인 얼굴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같은 말이 형성된 듯하다. 어쩌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탈을 만들어 자기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춤을 추기 시작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인간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버리고 여러 모양의 탈을 뒤집어쓴 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 이상, 또는 인간 이하가 되어 인간이란 국한된 입장에서 벗어나 불가사의한 신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표현이며, 현재라는 제한적 차원을 떠나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 보려는 잠재 의식을 표현하려는 행위로 보인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생과 사, 선과 악 같은 대립에서 떠나 제삼자적인 입장에서 인간과 우주 만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완전한 진리를 찾고자 한 것이다.
탈은 초자연적인 신의 모습이나 악령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간에게 은혜를 주는 자연의 신비를 나타내기도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탈을 씀으로써 군인의 용맹성을 북돋워 주기도 하므로 그들의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가정이나 부족 전체에 어떤 비극적인 위험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신과 직접 통하는 탈을 찾는다. 그 탈을 통하여 분쟁과 알력을 해결하고 다가올 재앙을 없애고 악령을 물리쳐서 질서를 회복하고 평화를 찾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탈은 대체로 인간, 신, 악령, 동물 모양과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모양을 한 것 등 다섯 가지로 대별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탈을 쓰고 우주 만물을 창조한 선하고 지혜로운 신령의 모습으로 춤을 추어 그 신을 끌어들여 대화하고 그에게 호소하기도 하며, 때로는 악령의 모습으로 된 탈을 쓰고 나와 악령이 악인으로 발현하여 악행을 유도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이때 인간의 모습은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그런 모습으로 바뀐다. 또 어떤 때는 동물이나 귀신 형태의 탈을 쓰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 본연의 이성을 잃으면 동물이나 귀신처럼 된다고 믿기에 이런 동물과 악령의 모습으로 탈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한국의 양반 탈춤처럼 양반탈을 쓰고 양반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탈의 모습을 바로 자기의 모습으로 완전히 바꿔 버린다.
보르키나파소의 보보(Bobo)족과 말리의 도곤(Dogon)족이 풀로 만든 탈을 쓰게 된 것은 그들의 청결 예절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들은 자연은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농사일을 하다가 자연에 잘못을 저지르면 그들은 그 대가를 자연에게 지불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죄를 어떤 방법으로 속죄한다 하더라도 자연의 벌로부터 인간을 구해낼 수가 없다고 믿기에 그 땅을 해친 인간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땅에게 많은 죄를 짓고 죽었을 때는 그 죽은 이의 생전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한 뜻에서 이런 탈을 쓰고 장례식을 올린다. 장례 예절이 청결 예절과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탈과 죽음과 청결 예절은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큰 죄를 짓게 되면 하늘을 두려워하며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찾게 된다. 인간은 저지른 잘못에 대한 가장 큰 형벌을 죽음이라고 보는가 하면, 또 죽음을 인간의 과오에 대한 형벌을 감소시키는 어떤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보보족이 나뭇잎으로 만든 탈을 쓰는 이유는 그 부락에 떠돌아다니는 악령을 홀리기 위함이고, 또 도곤족은 풀잎으로 만든 치마를 두르는데 그것은 근친상간하는 늑대를 상징하는 것이며, 인간이 저지른 무수한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독특한 상상력에서 발상한 이런 풍습들은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인간의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피카소는 상상력을 이용하여 자기의 그림이나 조각품을 괴상망측한 모양으로 표현하여 독창적이고도 특이한 예술품을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그의 상상에 비치는 이미지를 독특한 수법으로 예술화한 것이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의 독창적인 탈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마음에 비친 어떤 이미지를 탈로 만들어 낸 것으로 뿔이 돋친 것은 사람의 마음이 동물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표현한 데서 피카소의 것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예술품에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눈이 한 쌍이 아니고 두 쌍인 것은 지혜를 나타낸다 인간은 한 쌍의 눈을 가졌지만 그것으로는 자연의 신비를 볼 수가 없다. 따라서 한 쌍을 더하여 두 쌍의 눈으로 보아야만 우주 만상의 비밀을 보는 지혜를 갖게 된다는 그런 기묘한 발상에서 그같은 모양의 탈이 탄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