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를 하지 않으면 남자가 될 수 없다.

2004. 8. 3. 22:12
음경의 표피 전부 또는 일부를 자르는 행위로 이 의식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할례가 하나의 의식으로 여러 민족에 분포된 점과 금속 칼보다는 돌칼을 널리 사용한 점은 이것이 매우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암시한다.

할례(circumcision)를 전통의식으로 행하는 곳에서는 사춘기 전이나 사춘기 때 행하며, 이슬람교도들 중 어떤 이들은 결혼 직전에 행하고, 어떤 이들은 종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나 출생 뒤 곧바로 행한다. 유대인들이 남자아이를 낳은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일부 내용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유대교로 개종하는 모든 남자는 의무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되어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교회에 들어온 자에게 이러한 '모세의 법'을 의무조항으로 하지 말 것을 정했다(사도 15). 나이에 상관없이 행해졌으며, 일반적인 경우 할례를 받는 사람이 그가 속한 단체에 정식으로 가입함을 뜻하거나 그가 어떤 지위를 얻었음을 가리켰다. 따라서 할례를 통해 사회적 지위․권리․신분 등이 확정되었다. 세계 도처에 있는 여러 전통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유대인, 이슬람교도, 일부 그리스도교도들 가운데서도 이 행위는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의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리학적인 면에서 볼 때 음경의 표피를 제거하여 음경귀두를 드러내는 이 행위는 피지라고 불리는 치즈 모양의 악취를 풍기는 분비물이 쌓이는 것을 방지한다. 피지는 불쾌감을 주며,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다소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영어권 국가들, 특히 미국에서는 신생아들에게 의료상의 할례를 행하는 것(포경수술)이 관례로 되어 있다. 점점 많은 수의 외과의사들이 몇 가지 위생상의 이유로 포경수술을 관례적으로 행하는 일을 거절하고 있지만, 몇몇 부모들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할례를 받았다는 이유와 또는 이 의식이 그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아이들이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음경암의 발생률이 할례를 받은 남자들에게서는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위생의식이 높은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에게서도 그 발생률은 적게 나타난다.

성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것은 유년기로부터의 단절을 상징하고 극화하는 것이다. 이 행위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탯줄을 끊는 행위와 일치하는 현상이다. 할례 이전의 성기는 아이가 무지의 상태, 무활동의 상태, 잠재적인 불능의 상태(무성(無性)의 상태)에 종속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러한 예속의 관계가 단절되면 그 젊은이는 무지와 무활동의 상태로부터 풀려나 자유스럽게 된다. 그는 다른 상태, 곧 지식과 활동과 출산의 단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는 한 그는 결혼을 할 수도 없다. 아이를 낳거나 심지어 임신을 할 수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피를 땅에다 흘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땅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고, 그래서 땅에다 술을 부음으로서 비로소 그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살아있는 사자와 아이와의 신비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때 흘리는 피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피인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주고 그것을 견디어 내도록 격려하는 것은 이후에 살아갈 동안 부닥칠 곤란과 고통을 감내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은 일반적으로 무엇보다도 육체적인 고통이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덕이라고 생각한다.

마사이(Maasai)족은 젊은이들이 12살이나 16살 될 때까지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몇 차례 할례를 행한다. 그리고 함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일생 동안 지속되는 동년배집단을 구성하고 새로운 특별한 이름을 갖는다. 이 의례의 준비로 우선 모든 입후보자들은 흰색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채 함께 모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두 달 동안 여러 지방을 옮겨다닌다. 의례가 행해지는 전날이 되면 소년들은 찬물에다 온몸을 씻는다. 그것이 끝나면 할례를 행하는데,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황소가죽에 담아서 각 소년의 머리 위에다 붓는다. 그 다음에는 나흘 동안 이들을 격리해두었다가 나흘이 끝나면 여자 옷을 입고, 흰 진흙을 얼굴에 바르고, 타조 깃털로 손을 장식한다. 한두 주일 후에 할례 받은 성기가 치유가 되면 그들은 머리를 삭발한다. 새머리가 자라면서 그들은 비로소 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동부 아프리카의 키쿠유족의 경우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었다 할지라도 결코 성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루오족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할례를 받지 않고 있다. 따라서 키쿠유족의 세계관과 의식에 의하면 루오족 부족민들은 한낱 아이들의 세계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남자들에게 행해지는 할례는 현대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포경수술에 해당되기 때문에 방법상의 문제 - 예를 들어 무자격 의료인에 의한 시술이나 소독되지 않은 도구의 사용 같은- 만 종종 거론될 뿐 인권유린의 차원에서 부각된 적은 없다.

남부아프리카의 코사(Xhosa)족의 경우 현대에 들어와서 할레시술(ukoluka)로 인해 성기가 부패되고 절단되는 상황도 발생되고 있으며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동부 케이프(Eastern Cape)의 한 전통의사(ikankatha;할레 시술자)는 한 건의 시술당 약 R50(우리돈 6000원정도)와 한병의 브랜디를 받지만 이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전통의 일부로서 생각한다. 또한 할레에 대한 기술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도제제도에 의해 전수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숙련된 전통의가 사라져감에 따라 경험이 부족한 소위 “야메 의사(bush doctors)"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
할례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중요시되고 있으며 전통을 유지해가고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

통과의례를 거친 사람만 어른이 될 수 있다.

2004. 8. 3. 22:11
아프리카에서 통과의례는 젊은이들이 성숙한 인간으로서 또 책임 있는 존재로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동체의 특권과 의무를 갖게 되며 교육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들은 새로운 권리를 전수 받고 사회는 그들이 새로운 의무를 수행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성생활, 결혼, 자녀의 출산, 가족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한 일들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간동안 고통을 견디는 것을 배우고 서로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며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남녀관계의 비밀과 신비를 배운다.

통과의례에는 시련을 이겨나가는 것이 필수적인데, 새로운 영역으로의 편입을 의미하기 위해 때때로 문이 사용된다. 대개 몸의 일부를 변화시키거나(예를 들면 할례, 이 뽑기, 문신이나 상처내기, 머리장식 등) 특별한 의복과 장신구를 착용함으로써 새로운 지위를 나타낸다. 통과의례를 연구할 때는 주로 그 사회학적 기능을 고려해왔다. 사회체계는 순조로운 기능을 위해 일정한 정도의 균형을 요구한다. 개인 또는 집단의 변화는 이러한 균형을 위협하게 된다. 그러므로 통과의례의 주된 사회학적 기능은 이러한 변화 이후에 새로운 사회적 균형을 이루고 사회적 질서를 회복하여 조화된 부분들의 체계로서의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다. 개인이 새로운 질서로 편입되는 과정을 극화한 통과의례는 의례를 행한 개인에게 새로운 역할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통과의례는 또한 공동체가 그 구성원의 지지를 실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학적 기능 못지않게 중요한 통과의례의 심리학적 기능은 학문적인 관심을 덜 받아왔다. 일부 해석에 의하면, 이러한 의례는 인생의 중요한 단계들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며, 개인이 세계의 어떤 통제 불가능한 측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통과의례는 개인의 경험을 위해 예측 가능한 공동상황을 제공함으로써 변화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고통을 완화하는 심리치료적인 기능을 한다.

피상적으로 관찰해보면 이러한 통과의례의 수행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의식은 아직까지도 비밀리에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처녀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비밀하게 그 의례를 거치도록 한다. 또 부모들도 비록 딸의 통과의례를 공개적으로 시행할 만한 용기는 없다 할지라도 역시 비밀로 이 의례를 행한다. 사람들은 소녀가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음핵이 길게 자라고 가지가 뻗는다고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의 자녀들은 비정상적이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여인은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그 여인이 낳은 아이는 “어린아이의 아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정황을 염두에 둔다면 통과의례를 행하는 심리적인 중요성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의례를 행하지 않는 여인은 참으로 “그 어느 누구”일 수도 없고 “불완전한 인간”이며, 아직도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사는 협동적인 실존의 분위기 속에서는, 따라서 어떤 사람이 그러한 의례에 참여하는 것을 회피한다던가 피해 달아난다던가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한 여인은 조만간 그 가족이나 이웃의 조롱거리가 되고, 그녀에게 어떠한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되면 제의적 성숙의 “고리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통과의례를 모두 마치면 곧 소녀들은 결혼을 한다. 그들이 격리되어 있는 동안 집안에서는 남자 친구들의 집안과 결혼에 대하여 의논을 하고 혼인약속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례에 참여하지 않은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던가, 결혼을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아이를 잉태할 거라고 하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현대의 생활이 이러한 태도나 실천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다.

난디족의 할례 또한 성숙을 위한 의례라는 점, 그래서 어린아이임을 단절하고 어른에로 결합되는 것을 극화한 의례라는 접은 동일하다. 성기는 생명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성기를 상처 내는 것은 생명의 분출을 열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열어놓아야 비로소 막히지 않고 생명이 흘러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격리는 죽음의 상징이다. 그것은 마치 씨앗을 땅속에다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의례를 끝내는 것은 새롭고 책임 있는 생명으로의 부활, 곧 새싹의 돋아남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들의 통과의례를 통하여 그들이 속한 전체 종족의 협동적인 삶 자체가 다시 소생하게 된다. 그 공동체의 삶의 리듬에다 새로운 진동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그 공동체의 생명력이 되살아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례를 거절하는 사람이나 그 의례의 조화를 망치는 사람(처녀가 아니라든지 겁쟁이라든지 해서)은 전체 난디족의 사회에 심각한 반역을 범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여인은 공동체 전체를 멸망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보면 부끄러움을 당한 딸이나 누이의 부모들이나 가족이 자살을 하려 한다든지, 그 소녀를 전체의 공동체적 실존을 위하여 죽여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이 의례는 깊은 차원에서부터 솟아난 심원하게 거룩한 제의이다. 이 제의에 종족 전체의 사활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의례는 죽음과 와해의 극복 및 정복을 종교적으로 극화한 것이다.

성기를 단절하거나 뚫는 것, 머리를 깎는 것등은 모두 하나의 존재양태를 단절하고 다른 존재양태로 이입하는 것을 상징한다. 얼굴을 흰 진흙으로 얼룩지게 하는 것은 새로운 출생,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의례를 마치면 남자들은 하나의 전사로서의 생애를 시작하게 되고, 여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며, 때로는 그 의례가 끝나는 즉시 실제로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세대의 리듬은 극화되고 연출된다. 함께 통과의례를 겪은 사람들은 여생을 신비스러운, 그리고 제의 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사실상 그들은 한 몸이고, 한 집단이고, 한 공동체이며, 한 백성인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일을 서로 돕고 살아간다. 한 사람의 아내는 같은 연령집단의 다른 남자들의 아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집을 방문하면 그 집의 남자는 그 찾아온 사람에게 자기 아내와 동침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 남편이 집에 있든 없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이것은 집단의 연대성을 긍정하는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각 개인은 “나는 우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즉 우리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있는 것이다”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연대성은 안정감, 일체감, 협동적인 실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창조하고 제공한다.

은데벨레족은 형식화된 통과의례 대신에 성숙기의 변화를 표현하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의식을 행하고 있다. 남자아이의 경우를 보면 최초로 몽정을 한 다음 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일찍 일어나 벌거벗고 강에 가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와 가축의 우리에 이르는 출입구 가까이의 집 밖 모퉁이에 서 있는다. 그러면 그것을 본 다른 소년들이 몰려나와 장대로 그 아이를 때려준다. 그 소년은 숲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거기에서 2, 3일간 머문다. 그 동안 다른 소년들은 그를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그 며칠 동안 그 소년은 낮 동안에는 결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다만 밤에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서 전통적인 주의가 마련해준 약이 섞인 음식을 먹는데, 이 일은 하나의 의식으로 행해진다. 즉 주의가 장대 끝에다 옥수수로 된 음식을 놓고 이것을 그 소년의 입에다 틀어넣으면 그 아이는 그 막대를 입에 꼭 물고 그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잘 하면 주의는 그 막대를 가지고 그 아이를 세 번 혹은 네 번 내려친다. 이러한 매질은 그 아이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 일이 끝나면 그 아이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몰려와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그 아이에게 선물로 준다.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첫 번째 월경을 한 다음 오랫동안 찬물에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그녀의 부모들은 커다란 잔치를 베푸는데, 이 잔치가 끝나면 소녀들은 긴치마를 입기 시작한다. 긴치마를 입는 것은 이제 그 여자아이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며칠 동안을 수풀 속에서 보내는 것은 역시 “죽음과 부활”의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유년기를 단절하는 행위는 몸을 씻는 일로 극화된다. 이 제의 적인 목욕은 동시에 비생산적인 삶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보다 깊은 종교적 정화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의식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즉 결혼, 재산의 소유,  책임지는 행위(아이들은 “단단하게”하기 위하여 매를 때리는 일을 참고할 것)등의 준비를 극화한 것이다. “단단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인간이 이제는 모든 특권과 의무를 지고 보다 넓은 사회에 완전히 협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며, 그러한 자질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는 현대생활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년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개인의 삶이 지닌 전통적인 순환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곳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관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

조상을 잘 모시고 가문을 빛내야 한다.

2004. 8. 3. 22:11
씨족과 가계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집단들이다. 씨족과 가계는 개인보다는 결국 이러한 조직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법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법인집단(corporate groups)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개인들이 토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씨족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게 땅을 처분할 권리는 제한된다.

씨족의 전설과 신화는 역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씨족 조상들은 현재 살아있는 구성원들의 일상의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영혼의 신, 살아있는 사자(living dead)로서 존재할 것이다. 씨족 조상들은 현존하는 사람들에게 사후에도 중요한 존재로서 실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씨족 구성원들은 위기나 필요한 의식에서 서로 돕는다. 결국 씨족은 궁극적인 관련 집단으로 개인의 정체성, 명성, 그리고 자부심이다. 한 아프리카인은 “만약 내가 매우 오랜 길을 걸어서 지쳐 더 걸을 수 없다면 나는 지쳐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씨족의 이름을 말한다면 나는 일어나 걸을 것이다”라고 개인에 대한 씨족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그의 씨족이 그의 피곤함보다 더 중요하고 그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며 그의 씨족에 대한 기억이 그를 지탱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즉 씨족은 개인에게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은 친족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아프리카 생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친족관계는 혈연관계와 결혼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친족관계는 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어하며 결혼관습과 규례도 이 친족관계가 다스린다. 또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이 친족관계가 결정한다. 사실 이 친족감은 ‘부족’의 전체 삶을 한데 묶어 놓는 것일 뿐만 아니라 ‘토템(totem)'의 체계를 통하여 동물, 식물, 생명 없는 물건들에게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씨족은 대체로 토템을 통하여 구별한다. 즉 각 씨족은 동물이나 식물, 돌이나 광물 등의 어떤 것을 그 씨족의 토템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씨족의 구성원들은 자기들의 토템은 절대로 살해하거나 먹지 않는다. 토템은 일체성, 친족, 소속감, 연대감, 공동의 친화감을 가시적으로 나타낸 상징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와 관련된 거의 모든 개념들은 친족관계의 체계를 통해서 이해될 수도 있고 해석될 수도 있다. 친족관계는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의 행동과 사유 및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족체계는 죽은 사람과 장차 태어날 사람들을 포함하여 수직적으로 확대된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그들 가계의 족보(the genealogies of descent)를 공부하는 것이 전통적인 교육의 일부가 되고 있다. 족보는 심원한 역사적인 소속감,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이 족보를 계승 확대해야 하겠다는 거룩한 의무감을 가지도록 한다. 족보를 통하여 현재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과거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과 굳은 연계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족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그 존재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근거인 과거를 향하도록 하는 거룩한 수단이다. 족보를 통하여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과 현재에 있는 사람은 인간의 삶이 지니고 있는 무시간적인 리듬 속에서 ‘동시대적(同時代的)’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족보를 통하여 신화적인 ‘최초’의 인간, 혹은 국가적인 영웅에까지 소급해 올라감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긍지와 만족감을 지니게 하기도 한다.

연장자들이 죽으면 그들은 명예스러운 조상들로서 후손들에게 기억된다. 또 후손들은 그들의 살아있는 집합적인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의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조상숭배를 ‘ancestor worship'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worship'이라는 말은 아프리카인들과 조상들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조상숭배는 존경, 경외, 숭배 등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조상숭배는 현실의 일시적인 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 사회조직은 마을의 사회적 영역뿐 아니라 전임자들의 사회적 시간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조상들은 초연장자(super-elders)다. 그들은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축적된 모든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종류의 불사, 불멸을 얻었기 때문이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

여성들의 할례는 사라져야할 고통

2004. 8. 3. 22:10
여성의 할례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성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음핵절제술이라고도 불리는 여성의 할례(clitoridectomy)는 피를 뽑는 것에서부터 음부봉쇄(음핵, 소음순과 대음순의 2/3를 제거하고 대음순의 나머지 부분은 뒤의 작은 구멍과 연결되도록 함) 또는 여성생식기절단(FGM : Female Genitial Mutilation)을 말한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28개국, 아랍-이슬람 국가 중에는 이집트와 수단,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등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이들은 할례를 문화적 전통이며 종교적․윤리적 전통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으며 책임 있는 성인이 되는 필수적인 단계로 간주된다. 1994년 이집트의 빈민구역 이발소에서 10세 여야의 할례 시술 모습이 CNN을 통해 전세계인에게 방송되면서 여성 탄압과 인권 탄압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현재 아랍과 아프리카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1억 2천만~1억 3천만 명의 여성이 할례를 받았으며, 매년 200만 명의 소녀들이 할례시술을 받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1997년부터 여성할례를 법으로 금지하고 할례 근절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으나, 여전히 개발이 낙후된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수 여성들이 할례를 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성 할례 금지를 위한 아랍-아프리카 전문가회의"가 지난 2003년 6월 21일부터 3일간 아랍-아프리카 28개국 전문가들과 비정부기구(NGO)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개최됐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을 역임한 엠마 보니뇨 현 유럽의회 의원은 연설을 통해 ꡒ이번 회의는 여성 할례를 근절하기 위한 투쟁의 새로운 시작" 이라면서 여성의 할례 관행을 퇴치하기 위한 "전세계 모든 여성의 단결"을 촉구했다.

부족에 따라 음핵을 부분적으로 잘라 내거나 외음부 전체를 절단하는 등 조금씩 상이하며 할례를 행하는 시기도 생후 7일 만에 행하는 부족이 있는가 하면 사춘기 시기에 행하는 부족도 있다. 할례를 행하는 도구도 소독되지 않은 면도날이나 칼이 주로 쓰이고 봉합시에는 바늘이나 가시가 이용된다. 사춘기에 이르러 할례를 행하는 부족 사회는 할례를 받은 소녀를 소녀에서 여인으로, 미성숙한 개체에서 성숙한 인격체로, 불완전한 자에서 완전한 자로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부족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했다.

난디(Nandi)족의 할례의식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소녀들은 할례시술을 받기 위해 수술 받을 장소에 들어가 쐐기풀로 음핵을 찌른다. 이렇게 하면 음핵은 무감각해지고 부풀게 된다. 그들의 젖가슴도 쐐기풀을 대어 찌른다. 쐐기풀은 대단히 아픈 것이어서 소녀들은 울부짖기도 한다. 그 소리를 누르기 위해 부인들은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의식을 행한 집 둘레에 모여 약 50미터나 100미터쯤 떨어져 둥글게 둘러선다. 의식에 참여했던 부인들은 그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원형으로 서고, 가운데에다 수술을 할 때 사용할 걸상을 놓는다. 그리고 수술 집행자는 구부러진 칼을 들고 선다. 그런 다음에 부인들은 소녀들의 처녀성 여부를 조사한다. 처녀인 소녀는 수술을 받기 위해 걸상 위에 앉고 처녀가 아닌 사람은 맨땅 위에 앉는다. 수련자는 아랫도리를 벗고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하늘을 쳐다본다. 수술자는 왼손으로 음핵을 잡고 오른손으로 재빨리 그것을 잘라낸다. 소녀들은 이 단계에서는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쐐기풀 때문에 성기가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혈관이 잘 묶여지지 않은 경우(거의 그런 일은 없지만)를 제외하고는 별로 많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것이 끝나면 다시 종을 넓적다리에 단다. 구경꾼들은 재빨리 달려가 누가 겁쟁이였고 누가 처녀였으며, 누가 처녀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을 알린다.  

이 순간이 할례시술에 참여한 소녀를 가진 가정이나 친척들에게는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만약 어떤 소녀가 겁쟁이라든가 처녀가 아니라고 알려지면 그 부모와 형제들은 스스로 죽어버리든가 그 소녀를 살해할 만큼 심각한 치욕으로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말려야 겨우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할례 행위로 야기되는 부작용을 열거해 보면 골반염, 소독되지 않은 기구 사용으로 야기되는 파상풍, 각종 감염, 분만 합병증, 궤양, 불임증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 충격, 원만한 성생활 장애등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는 이러한 관습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고통의 무게는 형언하기 힘들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부작용이 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성인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할례 의식을 받고 나서는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의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여성 할례의 주요 목적은 여성의 성적 욕구를 억누르고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함인결함과 종교적 청정함과의 상관관계를 억지 결부시켜 생각하려는 발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케냐에서는 1982년 다니엘 아람 모이 대통령이 여성 할례를 금지시켰으나 여성 할례 금지령을 위반하여 법적 제재를 받은 예가 거의 없다. 케냐에서는 모든 부족 사회에서 할례가 실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마사이, 삼부루, 키시, 메루족 등의 부족 공동체 사회 속에서 뿌리깊게 남아 있다. 케냐 여성의 약 50%, 즉 절반 정도의 여성들이 아직도 할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할례가 이들의 의식 속에 얼마나 깊이 각인 되어 있는지 절감할 수 있다. 아프리카 전체적으로는 주로 중북부 아프리카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고 약 26여개 나라에서 1억에 이르는 여성들이 소녀에서 여인으로 것을 고려하면 남성에 의해서 강요된 순결의 신화임을 알 수 있다. 여자의 성기를 성적인 즐거움과 쾌락이 아닌 생산의 도구로서만 여기는 남성중심의 가치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인 측면과 결부 지어 설명하려는 시도도 결국은 강요된 순결로, 육체적 정 다시 태어나는 의식을 아직도 치르고 있다.

최근에는 할례 시술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거의 드물어 현재 할례를 행하고 있는 노년층이 물러나면 할례를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할례 전통 역시 수그러들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부족의 고유한 문화 및 가치가 희미해져 가고 있는 도시 지역보다는 인습과 전통을 고수하는 농촌 지역에서 할례가 많이 행해지고 있으며, 서구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여성 할례 자체를 미개하고 버려야 할 관습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여성 할례라는 오랜 전통이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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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2004. 8. 3. 22:09
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good man)"은 어떤 사람들일까? 물론 좋은 사람은 사회와 자연 사이의 섬세한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사람이며 다산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 도덕적 명령은 어른들은 존경하는 것이다. 특히 그들의 직계집단에서 이런 존경은 어릴 때부터 가르쳐졌다.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배웠다. 그들은 어른들에게 말 할 때 항상 정형화된 방법으로 말해야 했고 어른들이 얘기할 때 끼여 들면 안 되었고 그들에게 소리치면 안 되었다. 잘못 행동하는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린 동생은 형이나 누나를 존경해야만 했고 직계 집단의 구성원들을 존경해야 했다. 맥주 마시는 날이나 축제 때에는 다른 연배 집단과의 혼합은 없었다. 각각의 집단은 따로 앉고,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과 한 접시에서 먹지 않았다. 자리배열이 이런 것을 강화시켰다. 젊은이는 그의 머리가 윗사람보다 높게 보이는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존경에 대한 이런 강조는 가족에서부터 씨족에 이르는 모든 친족집단으로 요약되었고, 충성이나 혈족에 대한 상호원조와 관련이 있었다. 친족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은 도덕적 절대 원리로써 진실을 말하는 것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진실을 말함으로써 집단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거짓말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인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남자는 윗사람을 존경할 뿐 아니라 그의 친족집단에 충성하는 남자였다. 그는 또한 좋은 이웃이다. 이것은 그가 보호를 하고 아니면 보호받는 그와 관계없는 구성원과의 협력을 의미한다. 사실 이것은 어쩌면 가족의 재산을 노려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친족보다는 사욕 없는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이웃을 말한다. 이웃들은 들판에서 농사로 도와주고 아플 때 수확한 것을 집으로 가져다준다. 좋은 사람은 그의 시간에 관대하고 다른 사람의 곤경에 참여하고 그의 세상의 재산에 관대한 사람이다. 관대함은 최고의 미덕이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추장같이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 다시 순종을 책임지는 제재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은 도덕적으로 해야 하는 올바른 것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했다는 걸 알리는데서 오는 자기만족감의 달아오름 때문에 다른 이를 도와주었다. 그들은 만약 도와주지 않았다면 후에 자신의 도움을 거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어떤 특별한 지역에 속한 이웃에 대한 느낌은 강한 지역 충성심으로 그러나 가깝게 함께 사는 것은 또한 문제점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삶이나 농사에서 다른 수확성공으로 일어나는 질투의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 이웃은 우리가 뒤에 볼 이러한 긴장을 반영한 마법의 고발지역에 있었다. 좋은 사람이란 마법의 의심이 가장 적은 때 묻지 않은 그런 좋은 이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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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은 구전전통

2004. 8. 3. 22:09
모든 사회는 그들의 문화적 유산과 인간적 경험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아프리카 문화에서, 물려받은 인간적 경험의 집합체인 통찰력과 관습은 말을 통해 전달된다. 구전으로 전달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인 구전 텍스트들은 구전전통이라 부른다. 구전전통의 가장 특징적인 사항은 입을 통해 적어도 한 세대 이상 전해진다는 것이다. 구전전통 텍스트는 지난 사건과 관습을 배타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몇몇 동시대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그 주민들의 주요한 부분과 구전전통과의 관련성이나 타당성은 동시대의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쓰여진 역사적 증거보다 훨씬 더 높다.

역사가, 인류학자, 그리고 사회학자들은 그들의 작업을 편찬하기 위해 구전을 사용한다. 구전은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기록이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구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무쿨라(P. M. Mukula)는 구전이 없이는 아프리카의 사회에 대한 역사 기록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구전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한 국가의 역사와 미래세대의 참고자료로서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구전의 전승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망하기 전 구전을 채집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기록보존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게 구전을 전해주는 읽고 쓰는 방법은 몰랐지만 속담, 그림, 이야기, 노래 등과 같은 세심한 장치를 통해 부족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예술 장르들에 삶의 다양한 면면을 효과적으로 투사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정보의 전달과 보존은 구전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전을 정보를 보존하고 다음세대에 전달하는 기록관리자의 임무를 담당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록보관은 아프리카사회에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구전은 특정한 집단에 속하는 정보의 집합이다. 세대를 거쳐 구술로 전해진다. 무엇이 어떻게 전수되었는지는 집단정신이 무엇을 보존하고자 하는지에 달려있다. 전수의 수단도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구전은 집단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과거로부터 전해져 오며 미래의 세대에 전수할 의무를 지닌다. 전통의 창시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전은 항상 익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첫 번째 증인 혹은 창시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전의 중요한 역할은 과거의 집단적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지켜나가며 소속감을 향상시킨다. 재앙이 닥쳤을 때도 정체성은 집단의 재산이었다. 구전을 모두에게 유효한 공적 재산으로 여겼다

아프리카인들은 구전 문화와 전통에 그 뿌리를 둔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와 이야기꾼을 경외한다. 고대의 글쓰기 전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존재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로 구전인들이며 그들의 예술형태는 문헌적이라기보다는 구전형태이다. "쓰여진 문헌(written literature)"과는 반대로 케냐의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응구기 와 시옹고(Ngugi wa Thiongo)가 사용한 “구연(orature)"이라는 용어는 말로 만들어져 전해진 것으로 춤과 음악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말로서 공동체내에서 종종 만들어지고 행해진다. 아프리카의 구전예술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아프리카 문화의 초기부터 발전을 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꽃을 피우며 살아있는 전통으로서 전해내려오고 있다.

아프리카 ‘구전문화(oral culture)’의 개념은 구연문학(oral literature), 구전전통(oral tradition)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구연문학이란 입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개념의 구전문화는 그 초점이 생산물과 멀리 떨어져 변화한다. 다시 말해, 원문은 구전원문의 이야기가 행해지는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배경을 포함한다. 게다가 구전문화는 구연 의사소통 관습의 지속성을 위해 말하는 단어의 사용과 주의를 끄는 것과 관련된 모든 관습과 습관을 가리킨다. 공연(performance)은 구전 텍스트의 실질적인 행위인 반면에 구전문화의 다양한 생산물은 구연문학으로 불리어질 수 있다.  

특히 非문자사회라는 아프리카의 특성상 구전전통ㆍ구비전승(oral tradition)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구전은 풍부한 기억력과 상상력을 기초로 ‘입’에서 ‘입’을 통해 사실을 전승하는 방법론으로 문자체계가 없었던 사하라이남 반투 사회의 대표적인 역사전승 방식이었다. 함파테(HampâtâBé)가 ‘아프리카에서 나이 많은 이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 진다.’고 말한 내용은 역사적 자료로서 구전전통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전전통은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지니고 있는 보물단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부족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유산을 관리하는 사람들(the custodians of heritage)’로 불리어졌다. 이러한 사람들을 서부아프리카에서는 그리오(griots) 남부 아프리카의 코사족에서는 임봉기(imbongi)라고 불리어졌고 서부 아프리카보다는 자유로운 형태로 동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주로 연장자나 주술사등 사회의 전문가집단에 의해 전승되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들이 이와 같은 구전역사가들의 발화를 통해 나타난 신화, 전설, 찬양시, 속담, 이야기, 그리고 음악속에서 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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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시간개념

2004. 8. 3. 22:08
아프리카인들에게 시간은 이차원적인 현상이다. 즉 긴 ‘과거’와 ‘현재’만이 있을 뿐 실제적으로 미래가 없다. ‘실제적인 시간’이란 현재의 시간이며 과거의 시간이다. 일단 일어난 사건은 이제는 미래를 향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 속으로 전개해 나간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뒤로 움직이는 것이다. 반면에 ‘잠재적인 시간’이란 미래에 틀림없이 일어날 사건, 또는 자연현상의 불가피한 리듬 안에 있는 것을 가리키고 일어나지 않은 것, 혹은 곧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은 비시간(No-time)의 범주 안에 속한다. 미래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미래 속에 있는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며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도 그들의 마음을 미래의 사물에다 두고 있지 않고 이미 일어난 것에 두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의 일부를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하고 미래에 있는 것은 전혀 경험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음비티(J.S. Mbiti)의 주장처럼 아프리카인들은 대시간(Macro-Time)인 자마니(zamani ; 과거)와 소시간(Micro-Time)인 사사(sasa ; 현재)로 구분되고 미래라는 시간개념은 실제적인 시간의 너머로 생각된다. 사사라는 시간은 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사사기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스스로의 기억이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의 사사기간이 젊은 사람보다 길다.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아도 개인의 사사보다 좀더 중요하고 크다는 것일 뿐이지 자체적으로 사사기간이 있다. 사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존을 의식하는 시간의 영역이고 그 속에서 그들 스스로의 짧은 미래 속에, 그리고 주로 자마니라는 과거 속에다 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는 그것 자체로의 짧은 미래와 역동적인 현재와 경험된 과거를 함께 지닌 완전한 혹은 충분한 시간인 것이다. 자마니는 사사와 필연적인 관계이며 그것 자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지고 있다. 즉 사사는 ‘자마니에게 먹이를 준다.’든가 ‘자마니 안으로 사라져 들어간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자마니는 어떤 것도 그것을 넘어서서 더 갈 수 없는 그러한 기간이 된다. 자마니는 시간의 무덤이고 끝이며 모든 것이 휴지 점에 부닥치는 그러한 차원이다. 따라서 자마니는 모든 현상과 사건들을 모아놓는 마지막 창고이고 모든 사물이 이전도 이후도 없는 현실 속으로 흡수되는 시간의 바다이다.

자마니는 사사가 근거하고 있는 기초이며 또한 사사는 자마니에 의해 비로소 설명될 수 있고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마니는 소멸이 아니라 많은 일과 사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구전전통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듯이 신화와 전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관도 자마니를 지향하고 있지 지극히 짧은 시간안의 미래나 존재하지 않는 미래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인들의 신화와 전설은 그 어떤 것도 세상에 종말을 가져올 수 없으며 인간의 역사가 사사로부터 자마니로 움직이는 리듬 속에서 영원히 계속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떤 이는 역시 사건들을, 특히 사람들의 활동들에 대해, 그것들이 마쳐졌는지, 아직 진행 중인지, 혹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지 고려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마쳐지거나, 완벽히 마친 사건들이나 활동들은 다 마치지 못한 일들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아직 시작되어지지 못한 것들 보다는 훨씬 더욱 그렇다. 단순한 기술체계를 가지고 있고, 일시적인 흥미 거리가 사회 활동으로 집중되는(시계, 달력, 연대기, 그리고 자연 현상들이 아닌), 토착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과거가 미래보다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사회체계를 제공하는 것이 과거이고, 사회관계도 과거부터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전문화에서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본적 방향을 위해서 아직 진행 중인 어떤 것 보다는 과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들에게는, 역사는 미래의 골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은 세계의 기원, 인류의 창조, 인간의 역사와 전통, 혹은 그들의 사회로의 전개등과 같은, 사람들의 존재의 뿌리를 짚어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견해에 따르면, 미래는 비현실적이다. 그것은 아무런 사건도 포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종교적 혹은, 규범적인 중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 계절, 연령, 혹은 세대의 반복을 미래에 반영하고, 지금부터 이렇게 많은 단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야기 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만약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 끝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인들은 ‘진보에 대한 신념’ 곧 인간의 활동 및 업적의 발전은 낮은 데서부터 보다 높은 데로 나아간다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음비티의 주장은 에반스-프리차드(Evans-Pritchard)나 보해넌(Paul Bohannan)의 연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에반스-프리차드는 뉘르(Neur)족의 시간개념을 연구한 후 뉘르족은 시간을 세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하였다. 1년이 12개월의 단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뉘르족은 그것들을 한 단위의 단편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어느 달에 한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추상적인 숫자 기호에서 일어난 사건들 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완전한 시간의 단위보다 활동들이나 활동의 성과, 그리고 사회 구조와 구조적 차이들로서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  

보해넌이 티브(Tiv)족으로부터 시간이란 제각기 다른 활동을 수용하는 일련의 폐쇄된 방으로 이러한 시간의 방들은 옮길 수도 섞일 수도 없다고 밝힌 내용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티브족에게 시간은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현상들에 의해 다른 종류의 기간들로 분류되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종종 다른 논리적인 시리즈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의 분류를 서로 관련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티브족은 달을 시장이나 농업 활동, 혹은 계절과 연관시키지 않는다. 만약 누가 얼마나 많은 달이 1년에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10에서 18까지 매우 다양하다. 만약 누가 한 달에 있는 시장의 개수를 물으면, 그 대답은 3에서 8까지 다양하다. 또한 한 달에 있는 일의 수를 물으면, 10에서 15까지 다양하다.

아프리카의 시간 계산은 반복되는 자연현상을 전제로 한다.- 계절, 달의 차고 기움, 그리고 해의 움직임- 그리고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사회 활동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또한 개인과 사회의 전반적인 삶 속에서의 사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프리카인들이 시간을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경험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즉 아프리카인 들은 다른 사건들에 비해 구체적인 사건들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한 아프리카인이 ‘그 마을은 내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옮기지 않았어요.’ 혹은, ‘정부는 내가 정화의식을 한 후에, 그리고 결혼을 하기 전에 출범했다.’라고 표현한다.

‘하루’는 아프리카의 공동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맞추어 시간이 진행된다. 예를 들어 우간다의 앙코레(Ankore)족은 가축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축을 돌보는 일에 맞추어 시간이 나누어진다. ‘달’은 ‘뜨거운 달’, ‘첫 비가 오는 달’, ‘잡초를 뽑는 달’, ‘콩을 거두어들이는 달’, ‘사냥을 하는 달’등으로 나누어 계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구분되기 보다는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해’는 계절에 따른 활동들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 모두 ‘몇일이 한해인가’라고 세기 보다는 ‘건기와 우기가 몇 번이나 지나갔는가’로 계산된다. 이 또한 정확한 날짜로 계산되면 365일을 벗어나 340일이 될 수도 있으며 360일이 될 수도 있지만 계절이나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차이도 느낄 수 없다.

낮과 밤의 끊임없는 리듬처럼, 그리고 달의 차고 기울음처럼 한해가 왔다가는 가곤 하는 그런 세월을 사람들은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즉 그들은 우기가 오면 다음에는 파종의 계절이 오고, 그것이 지나면 수확의 계절이 오며, 그 다음에는 건기가 오고, 그것이 지나면 다음에 다시 우기가, 그리고 그 우기의 다음에는 또 다시 파종의 계절에 오는 이 같은 영원히 지속되는 일들을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해를 지내면서 과거라고 하는 시간의 차원이 차츰 더해져 간다. 그들에게 있어 ‘무한’이라든가 ‘영원’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다만 과거의 영역에 속해있는 어떤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시간은 양을 잴 수 없는 다른 사건들의 반복들과 세대나 연령층과 같은 사회 구조들로서 표현되기 때문에, 시간은 균일한 것, 지속적인 것, 혹은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어 지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관점에서는, 지금의 하루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시간은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따라서 양력과 그것을 다시 일정한 달, 일, 시, 분, 초로 나눈 것에 근거한 현대 서양 문명의 연대기와는 다르게 자세한 과정들의 세부사항부터, 현재 시간까지의 일시적인 과정의 측정을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균일하게 추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을 수학적인 계산으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과의 관련속에서 구체적이고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헤아린다. 즉 시간은 사건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날, 달, 해, 일생, 혹은 사람의 삶은 제각기 그것들이 지닌 특별한 사건에 의해서 모두 나뉘어지고 헤아려진다. 왜나하면 그러한 시간들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일 어떤 일을 하자’라는 약속은 정확히 몇 시에 하자는 의미보다는 ‘무엇을 한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엇을 한다.’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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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들이 무서워하는 ‘말’

2004. 8. 3. 22:07
아프리카인들은 말을 대상화하지 않고 지시체의 실재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들은 언어를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존재의 통합적 특성이 발화의 힘 속에 체현된 것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말은 단지 학습된 형식의 효과적인 정교화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발성되는 힘이었다. 그리하여 발화는 개인의 지위에 따라 상대적 무게를 가진다. 말의 힘은 세상에 적극적으로 행위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간주되어 저주, 주문, 기도와 같은 ‘위대한 말들’은 무기로 사용되었다. 이들의 문화에서 말하고 명명하는 것은 경험을 창조하는 것, 곧 실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체계는 구체에서 추상의, 사물에서 말의 명쾌한 분리에 실증적 지식이 있다고 보았던 19세기 유럽인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언어에도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다든지, 사회적인 위치나 공직에서의 직위가 높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속에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는 말속에는 “힘”이 들어 있다. 그래서 특별히 위기에 처한 경우에 발언되는 부모의 말은 행운을 “낳기도”하고, 저주, 성공, 평안, 슬픔, 혹은 축복을 “낳기도”한다. 또 주의의 말은 그가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는 그 약을 통해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병을 치유하거나 불운을 예방해주는 것은 약초보다도 사실은 그 주의의 말의 효험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저주”와 “축복”은 지극히 실제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다. 앞장에서 서술한 전문가들도 실은 개인적으로나 그들의 직책이나 직능으로 인해서 그와 같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재판을 할 때 저주를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본적인 원리는 다른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유죄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면 그를 저주함으로써 그 저주의 말에 의하여 악이 그에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 신념이다. 주로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저주할 수 있지, 그 역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저주는 부모나 아저씨, 아주머니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또 가장 고약한 저주는 임종시에 하는 저주이다. 일단 그 저주자가 죽으면 이를 취소할 방도가 실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참회를 하고 저주를 거두어주기를 원하면, 그 저주를 한 사람은 그 저주를 스스로 취소할 수도 있고, 또 그 저주가 심각한 것이었으면 제의를 통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부어진 저주가 이루어졌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약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죄가 없으면 저주는 기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공식적인 저주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마치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특별히 가족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관계를 저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프리카의 종교적 사고는 신화, 구전 전통 그리고 연장자들 그리고 세대간 논의를 통해서 표현된다. 또한 영적인 힘을 끌거나 그것의 자비를 얻기 위해서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포함하는 의식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이러한 의식이 많은 전통속에서 최고 존재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데 최고 존재는 이미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제물은 종종 야자 술, 기장맥주 그리고 물과 함께 바쳐지는 데 이는 말해진 것(단어)어의 힘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은 제주(술)와 말해진 언어의 힘을 포함하는 생명력을 풀어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의식의 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종종 참가자들은 희생양의 고기를 소비하고 술을 마신다. 따라서 이 모임은 그들의 기도자들을 향하여 일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 성직자와 영적 존재들이 결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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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예빈

    여기 내용에서 명명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리고 실재를 구성하는것이 무엇인가요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과 약속

2004. 8. 3. 22:07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어떨까?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케냐의 나이로비에 갔을 때 친분이 있는 나이로비 대학 교수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저녁 6시였는데 그는 7시 30분쯤에 나타났고 전혀 미안한 표정도, 왜 늦었는지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저녁은 우갈리과 차파티 그리고 수쿠마위키등 비교적 간단한 식사였는데 저녁 10시 30분에야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화가 너무 났었지만 나중에는 아주 지쳐서 화내는 것도 포기하였다. 결국 숙소에는 11시 30분에야 돌아왔다.

아프리카에서 현지인들과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약속을 하면 제시간에 일이 시작되기보다는 언제나 늦게 시작되곤 한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히 시골지역으로 가면 정말 답답할 정도로 무슨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보다는 해시계와 달 시계가, 그리고 하루라는 시간이 더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정말 시간개념이 없는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늦었느냐?’, ‘약속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다’, ‘빨리 빨리 하자’등등 따지고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천천히 해도 간다(Pole Pole ndio mwendo)'라는 말을 하면서 오히려 한 수 가르치거나 핀잔을 준다. ‘좀 늦기는 했지만 결국 할 일은 하지 않는냐.’는 식이다. ‘만약 일을 그 날에 다 못 끝냈으면 내일 또 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다.

아프리카의 시간개념은 서구사회와 전통사회의 시계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정확한 시간개념을 추구하기 보다는 상황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늦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가기는 간다.’라는 말은 시간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미리 충고하지만 ‘늦다’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결코 아니라는 아프리카인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 마음 상하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서구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든가 공공기관 그리고 비즈니스분야에서는 비교적 시간을 잘 지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인관계 속에서는 시간과 약속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훌륭한 비즈니스를 하고자 한다면 공식적관계도 중요하지만 비공식적 관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공동체의식과 개인이 맺는 ‘관계’를 중시하는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비공식적 관계가 일을 아주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될 때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직선적인 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낯선 개념이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생산성과 떼어놓을 수 없다. 24시간의 시간은 생산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며 쪼개고 또 쪼개서 효율적으로 이용되어야 하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용된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은 시간의 노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의 시간은 언제나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 수 있는 개념으로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을 따지며 지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시, 분, 그리고 초까지도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는 일과 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날의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아무것도 못한’ 범주에 속한다.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자연현상을 중시하고 사람을 모든 활동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철학적 종교적 의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연을 거스르고 거부하며 바꿀 수 있다는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패턴에 따른다면 ‘우리의 시간개념과 아프리카인의 시간개념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이고 생산적이냐’라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전자라고 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것이 더 사람답게 사는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시간을 인간의 삶 속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우리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것일까? 시간은 고정불변의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집단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 구성요소로서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며 아울러 인간정신의 산물로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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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이미지와 역사․문화적 정체성

2004. 8. 3. 22:06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여전히 반쯤 벌거벗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알 수 없는 주술을 행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아프리카(Primitive Africa)로 인식되고 있거나 아니면 열대우림의 정글과 야생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야생의 아프리카(Wild Africa)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좀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발전되지 못하고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아, 가난, 질병, 내전, 구데타, 부정부패 등 아프리카는 희망이 없는 비관주의(Afro-Pessimism)를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들은 아프리카를 정확하게 보고 있지 못하고 일부분만 보는 것으로 아프리카 진출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꺾는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는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에 역사적으로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지배 통치하였던 국가들이 세계사 속에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정치적 경제적 역사문화적인 분석이 물론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우리에게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역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륙으로 53개국이라는 국가가 속해있으며 약 10억에 이르는 인구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원의 보고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울러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아프리카도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개방경제로의 전환을 채택하고 있어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편입이 가속화됨으로서 21세기에는 또 다른 위상을 갖게 될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외국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친구’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언제나 우월한 인종으로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일을 같이하면서 느낀 점은 이들은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오랜 기간동안 외국인들을 대하는 ‘노하우(?)’가 잘 준비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매사에 진정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정말로 어떤 계기가 없다면 외국인들은 ‘친구’라기 보다는 ‘이방인’ 또는 ‘침략자’ 등으로 생각한다. 또한 외국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검둥이’, ‘머리 나쁜 사람들‘ ’게으름뱅이‘ ’흑인들은 안돼!‘ 라는 의식을 저변에 깔고 대하기 때문에 좀처럼 ’차별‘이라는 벽을 넘기가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 역사와 문명이 존재했었는가에 관한 논란은 최근까지도 계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일부 인종차별주의와 문명 우월주의자들의 중요한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또한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역사는 백인이 도래한 이후부터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설사 그 이전에 어떠한 원주민의 사회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야만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역사학자 토인비(Anold Toynbee)로 인한 바 크다. 그는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이집트, 안데스, 중국문명 등 세계의 문명을 21개의 문명으로 분류하여 상호비교연구를 하는 가운데 아프리카의 문명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또 21개의 문명의 주체를 인종에 따라 분류할 때에도 “어느 문명에도 적극적으로 공헌하지 않는 것은 흑색인종뿐이다”라고 흑인의 문명을 부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일반적인 무지를 가져오게 된 이유는 아프리카의 '타자(他者 ; Others)화'되고 ‘주변부화(Marginalization)'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머피(E. Jefferson Murphy)교수의 말처럼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하고 백인들의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경멸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유럽’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타자를 필요로 했던 유럽인들은 非유럽 세계를 자신들의 타자로 상정하였다. 유럽은 ‘타자 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보편적 규범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우월한 인종으로 확인하였으며 어떤 면에서 유럽은 非유럽인들에게 부과한 인식론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유럽문명의 토대가 되는 백인과 非백인, 문명과 야만, 진보와 정체 등의 개념이 정립되고 담론이 형성되었으며 유럽 지식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근대를 보편적 근대로 상정하고 공간적․시간적 동질화를 추구하는 역사 인식을 낳았으며, ‘유럽의 현재’를 ‘非유럽인의 미래’로 투영함으로서 역사적 진보를 정의하였다. 유럽이 ‘근대’라면 非유럽은 ‘전근대’ 또는 ‘非근대’여야만 했다. 서양인들이 非서구세계에 대해 행한 차별하기의 가장 뚜렷한 양상은 끊임없이 진보하는 서양에 대조되게 非서구세계를 정체한 혹은 퇴락한 사회로 표상하는 것이었다. 유럽이 자유, 진보, 문명, 역동성을 의미한다면 非유럽세계는 예속, 정체, 야만, 무기력을 의미하였다.

오늘날 벌어지는 아프리카의 많은 갈등과 문제들은 유럽의 식민통치체제와 맞물린 경제, 환경, 정치, 사회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과 마찬가지로, 식민통치 이전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아프리카 역사의 일정한 양식과 정체성이 아프리카의 식민지 경험에도 영향을 미쳤고 식민지 이후의 아프리카를 형성하는 데에도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 대륙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아프리카인들이 역사적 도전에 처했을 때마다 반응했던 고도의 적응성과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인들은 자기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했고 또 지금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아프리카는 서구열강이 오랜 기간동안 식민지배와 침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처럼 완전히 서구문화에 동화되지 못했는가?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가 월등하고 우월하다면 당연히 아프리카라 문명권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서구인들의 지배와 침탈의 과정이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 비해 이익이 덜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은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나타난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을 살펴본다면 절대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인도등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서구열강으로부터 지배를 벗어나고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강력한 전통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아프리카에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문화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이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프리카인들이 그들 나름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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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는 나이 많으신 어른의 말씀이 곧 법이다.

2004. 8. 3. 22:06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이서열(age ranking)은 아주 중요하며 연령질서(age order)는 사회조직의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아프리카 언어들은 영어에서 발견될 수 없는 장자(eldest son), 차자(second son) 또는 장녀(eldest daughter)같은 단어들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가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아이들은 나이어린 아이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쿠랑코(Kuranko)족은 연장자가 나이어린 사람들을 ‘소유(owns)' 또는 ’통제(rule)'한다고 말한다. 나이지리아의 이보(Igbo)족은 가족 구성원들이 고기를 배분하는데 나이순으로 한다. 나이든 남자는 머리부분을, 다음의 연장자는 목 부분을 먹게 된다. 즉 동물의 몸이 상징적으로 나이계급에 따라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남자들이 회의하는 방(meeting house)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을 때도 나이순으로 하며 음식이나 음료수도 언제나 연장자가 우선이다.

이러한 노인정치, 장로정치 구조(gerontocratic structure)는 유사 이래로 인간의 계속성과 함께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유아, 아이, 배우자, 부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동해 간다. 사회적으로는 통과의례나 연령등급(age set), 그리고 비의결사(secret society)같은 단계를 거쳐 옮겨가게 된다. 질병으로 일찍 죽지 않고 많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길러낸 사람들은 연장자로서 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노인정치 사회에서는 연장자들의 회의에 상당한 권위가 있으나 그들의 통치는 서투르거나 압제적인 것이 아니다.

특히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연령등급은 사회조직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연령등급의 최고 단계에 연장자들이 위치하고 있다. 적절한 의식을 거행하면서 동아리 내의 일반적으로 연령차이와 동등한 간격으로 다음 나이 등급으로 옮겨간다. 이런 식으로 그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통과를 통하여 수많은 연령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몇몇 연령 등급은 그것과 연관된 분명한 책임감이나 특권을 갖는다. 따라서 개인에게 대개 그들의 동료들로 구성된 준거집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 연령등급체계는 사회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조직체를 구성한다.

관습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서부터 고유한 명칭을 갖는 일련의 단계들로 이루어진 연령집단의 일원이 된다. 단계마다 독자적인 지위나 사회적․정치적 역할이 주어지며, 이때 각 단계는 주로 나이로 등급이 매겨진다.

연령집단은 일반적으로 동․남부 아프리카의 목축사회에서 나타나며 서부아프리카에서 널리 퍼져있었고 전통적으로 사회구조의 가장 중요한 구조였다. 이것은 동시대성에 기초한 남자들의 단체이다. 청소년기로부터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을 시작으로 남자들은 나이에 따라 연령집단에 들어가며 평생동안 연령집단을 옮겨 다닌다. 구성원들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며 의무와 특권이 있다. 전형적으로 연령집단은 4가지 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훈련기간에 새로 가입된 남자들, 둘째로 방어를 전담하는 전사집단, 셋째로 통치에 관여하는 어른들, 넷째로 사회의 연장자들이 속한 등급이다.

재판에서 연장자의 저주를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본적인 원리는 어떤 사람이 유죄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면 그를 저주함으로써 그 저주의 말에 의하여 악이 그에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주로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저주할 수 있지, 그 역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저주는 연장자에 해당하는 부모나 아저씨, 아주머니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또 가장 고약한 저주는 임종시에 하는 저주이다. 일단 그 저주자가 죽으면 이를 취소할 방도가 실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참회를 하고 저주를 거두어주기를 원하면, 그 저주를 한 사람은 그 저주를 스스로 취소할 수도 있고, 또 그 저주가 심각한 것이었으면 제의를 통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주어진 저주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약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죄가 없으면 저주는 기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공식적인 저주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마치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특별히 가족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관계를 저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두 사람 사이에 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중재와 화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되었든지 많은 사람들이 되었든지 사건을 평결하기 위해 초대되어지는 방법을 취한다. 중재는 언제나 분쟁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족시켜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3자 개입은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법제도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중재자로 초빙된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연장자들로 어떤 사건을 다룰 때 추장의 고문으로 추대되기도 한다. 따라서 경험이 많은 연장자들이 중재를 한다면 평결의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건이 추장의 고문들에 의해 논의되어진 후 추장에게 맡겨졌을 때 사건의 결과는 다르게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건을 다루었던 고문관들이 같은 수준에서 결과에 영향을 이미 주었기 때문이다.

중재에서 평결이 내려질 때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분쟁에 관련된 사람들이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엄격하고 공명정대한 평결이 강조된다. 그러나 한쪽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낳은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사과시키는 것을 적절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중재에서의 벌금은 부담스럽지 않게 한다. 배심원의 구성원들이 벌금을 나누어 갖는다.

한 예로 북부 나이지리아의 베누에 강 연안에 살고 있는 티부(Tiv)족은 사법제도가 어떤 사회적 계층을 이룬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진다. 이들은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서 사법제도에 그 자체로서 제제나 상벌의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 계층은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연장자(Elders ; Vensen)와 명망 있는 사람들(Men of Prestige ; Shaba)이다. 이 두 집단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지위로 인해 아주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다. 연장자들은 언제나 사회에서 노인들이며 정치구조에서 연장자 정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모든 분쟁이나 다툼을 다룬다. 이들에게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이 주어졌다고 믿고 있다. 반면에 명망 있는 사람들은 부, 관대함,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 두 계층의 사람들은 상호보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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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어른을 공경한다.

2004. 8. 3. 22:05
아프리카에 처음 갔을 때 동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마타투(matatu)라는 버스를 타고 시골지역으로 연구차 들어가면서 겪었던 일은 나에게 지금까지도 ‘경험 많은 어른들’이 아프리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곤 한다. 마타투라는 버스는 우리나라의 봉고와 같은 승합차이며 아프리카인들의 주요한 교통수단이다.

마타투라는 말은 3을 의미하는데 차비가 과거에 우리 돈으로 3전하던 차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요즈음에는 “빨리 타”, “빨리 가”, 그리고 “빨리 죽어”라는 3가지의 별명을 가질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운송수단이다. 마타투는 외국의 관광객들이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차에 탔을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신기한 듯이, 그리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였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나는 ‘썰렁한’ 분위기를 애써 무마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는 달리 수다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말이 많던 현지인들은 말도 별로 하지 않았다. 시골길을 한참을 달리다가 문이 열리고 노인이 한 분 올라왔다.

그 노인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머리에는 코피아를 쓰고 있었으며 곳곳이 헤진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기품이 있어 보이는 어른이셨다. 마침 빈자리가 보이지 않아 나는 얼른 일어나 내 자리를 양보하며 “어르신 이쪽으로 앉으시지요(Mzee ukae hapa!)"라고 말했다. 그 노인은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나를 살펴보시며 ”자네는 어디에서 왔나?(Umetoka wapi?)"라고 물으셨고 나는 공손하게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Nimetoka Korea.)"라고 대답했다.

그 노인은 온화한 미소와 함께 ”여행 잘하시게(Safari njema!)"라고 하시고 내가 양보한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 후 그 마타투 안에서 나는 많은 사람을 친구로 만들 수 있었고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며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인간관계는 연령과 신분상의 위치에 따라 위계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신은 창조자이고, 모든 인류의 어버이이며,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호소와 청탁의 마지막 극점이 되고 있다. 그 신 밑에 여러 신적인 존재와 영(靈)이 있다.

이들은 인간보다 더 강한 자들이며, 여러 사회의 창시자나 선조이기도 하다.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인 살아 있는-사자(living-dead)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년식, 결혼, 자녀의 양육 등을 통하여 완성된 완전한 인간이다. 인간들의 계층은 위로부터 왕, 통치자, 우사(rain-maker), 사제, 점술사, 주술사, 각 가정의 가장, 연로한 어른, 부모, 손위 형과 누나, 그리고 끝으로 공동체의 가장 어린 구성원으로 위계가 이루어진다. 
 
실제로 이러한 위계 개념은 신으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사다리를 이루듯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경험이 많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은 아프리카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한 덕목이며 의무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이 드신 분이 분별없이 언행을 하지도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신과 인간의 세계가 촘촘한 하나의 그물처럼 서열화․계층화되어 있고 인간의 세계도 연장자와 아이에 이르기까지 위계가 있다. 이러한 사회의 모습은 다분히 종교적 사고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열화․계층화’는 그 권리와 의무가 명확하고 갈등이 아니라 화합과 조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연장자는 ‘살아있는 경험의 보고(寶庫)’로서 존중 되어진다. 그들의 ‘말’은 언제나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으며 이러한 연장자 중심의 사회는 사회의 순기능적인 입장에서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하거나 여행을 하려 한다면 반드시 오래사신 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하고 또 존경하는 마음 갖기를 바란다. 바라는 결과를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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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인의 철학과 사고체계 ] - 근대와 종교

2003. 9. 25. 19:53
2. 아프리카의 근대와 종교

2.1 단절의 경험과 아프리카의 근대

아프리카 종교 서술에서 특징적인 두 가지 축이 있다. 그 하나는 종교사의 서술에서 흔히 보이는 것으로 전통종교와 전래종교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 구분은 시기적 선후의 문제로서가 아니면 신관을 비롯한 종교내적 성격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다른 하나는 사회와 종교의 관계를 다룰 때, 특히 식민지배 이후 아프리카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에서 흔히 보인다. 여기에서는 아프리카인의 종교적 움직임을 피억압자의 종교라고 규정지으면서 식민지 침탈에 대한 저항의 양식으로 접근해 왔다.

전자의 구분에서 생기는 문제는 종교현상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 곧 고등종교와 저급한 신앙이라고 하는 판단을 함축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것과 공시적인 현상에 대한 서술을 통시적인 배열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그 의미를 손상시키는 데 있다. 후자의 구분의 경우 종교현상을 미리 규정해 놓은 사회적 요인으로 환원시켜버려 상호관계의 양상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종교현상은 전통종교와 전래종교의 서술에서 보이는 시기적 선후의 문제도 아니고 사회와 종교의 서술에서 나타나는 위계적 상하의 문제도 아니다. 이들 종교현상은 역사적 계기들이 마련하는 하나의 장 안에서의 변화의 흐름이며 이 흐름의 역동성의 문제이다.

서구 문화의 본격적 유입 이래로 아프리카는 전례 없이 격심한 문화적 변동을 겪었다. 서구사회에 있어 근대가 근대 이전의 사회에 대해 불연속성을 지닌다고 말해질 수 있다면 아프리카의 경우는 보다 더하게 단절을 경험했다. 이 변화는 선택가능한 것으로 던져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불가피한 흐름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보다 더한 단절로 있게 된다. 아프리카 문화를 서술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단절이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조건을 형성한 근본적인 것이라고 하는 점이다.

아프리카가 경험하고 있는 이 단절의 중요성은 곧바로 단절의 경험을 서술할 필요로 이어진다. 경험이란 삶의 조건지워진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면서 그에 대한 주체의 수용이다. 따라서 경험의 서술은 주체를 상실함이 없이, 곧 아프리카에 대해 서술하면서도 아프리카인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서술과는 달리, 그 내용을 담아낼 수가 있다. 또한 경험은 직접성과 구체성을 지님으로써 개념적 적합성이라고 하는, 타문화의 서술에 있어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의 우회로를 제공한다. 경험의 성격과 내용을 밝히는 것은 아프리카의 근대의 경험, 경험으로서의 근대의 특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2.2 경험의 특성

유럽의 팽창사 속에 편입되면서 아프리카에 밀어닥친 변화의 물결은 아프리카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환경의 지속성에 대한 확신과 그 안에서의 삶에 대한 안정감을 잃어버리게 했다. 이 상실은 단순히 변화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변화의 성격이 그 변화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아프리카인의 삶의 경험을 특징 지우는 무엇인가 하는 것은 변화가 갖는 성격과 그 변화를 겪는 이들의 경험의 내용을 동시에 밝힘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는 세 가지로 요약하고자 한다.

첫째, 아프리카에 전래해 온 고유한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과 새롭게 형성되는 삶의 방식이 갖는 이질성이다. 상이한 양식과의 만남과 그러한 양식으로의 변화는 아프리카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부닥친 상황이 어떠한 성격의 것인지 파악할 수 없게 함으로써 그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 상황에서 더 비극적인 결과를 낳게 한 것은 서로의 차이에 대한 몰이해였다.

한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아들의 친구를 살해했는데 그것은 그 친구가 성년식 동기가 의무적으로 갖는 형제의 역할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응분의 벌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식민법정은 사형을 구형하고 집행했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가족간 분쟁을 악화시켰고 법정에 대한 불신을 형성하게 했다. 아프리카인에게 혼란을 부른 다른 요소는 그 변화가 아무런 준비없이 급작스럽게 밀어닥쳤다고 하는 점과 여러 형태의 식민주의가 혼재함으로써 그 성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는 점도 있었다.

둘째, 새롭게 자리하는 사회구조에서 대개의 아프리카인들은 주변적인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식민시기 동안에 이뤄진 억압과 착취의 구조는 인종적 편견과 결합하여 심각한 양상을 낳았다. 식민지 구조가 발생시킨 토착적인 것에 대한 또는 그것과의 혼혈에 대한 거부의 논리는 독립 이후의 아프리카에서도 변형된 채로 지속되었다. 기본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를 가진 이러한 분리는 단순한 분리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로부터의 배제라고 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 배제의 공간적 실체를 우리는 남아프리카의 소웨토(흑인불법거류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새로운 질서 속에 던져졌으면서도 그 질서의 통제 메카니즘으로부터는 철저히 소외됨으로써 아프리카인들은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아프리카인의 경험의 조건을 이루면서 동시에 그 경험의 특성을 형성하는 세 번째 요소는 이 변화가 아프리카인들의 동의나 승인 없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제에는 필수적인 요소로 폭력이 수반되었다. 식민 초기 당국에 의해 이뤄진 빈번한 초토화 정책은 몇몇 부족을 멸족의 위기에 빠뜨렸고 제국주의 전쟁과 식민지 경영은 아프리카인들을 값싼 자원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이 변화를 견디게 힘들게 한 것은 변화가 삶을 꿰뚫고 있음에도 그것을 피해 볼 도리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곧 파악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음에도 불가피하게 직면해야하는 사황들과의 조우는 아프리카인들에게 혼란과 절망과 압박을 느끼게 했다. 결국 이것은 서구문화와의 만남이라는 역사적 계기가 가져 온 특별한 형태의 '고통'의 경험으로 귀결된다.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모잠비크 쵸피(Chopi)족에서 채록된 노동요의 한 구절이다.


괴로워, 정말, 오위-이야-에-에-
괴로워 정말 / 괴로움에 내 심장은 피를 흘리네
무슨 일이 있었지? / 괴로움에 내 심장은 피를 흘리네
(그 다음은 아내의 농장노동과 가난, 남편의 강제노역과 감옥살이가 노래된다.


변화가 결과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면서 아프리카인들의 고통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가족)공동체의 해체이다. 공동체의 해체는 도시로의 이주노동으로 인한 생활 공간의 분리와 변화의 급격함이 부른 세대 간 단절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시켜 온 가치체계의 와해를 동시에 포함했다. 공동체적 삶의 파괴가 수반한 것은 '영혼의 상실'로 표현된 정체감의 위기이다.


"나는 나의 영혼을 잃어버렸다. ... 나는 어딘가에 내팽겨쳐졌다. 나는 공허하다."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아프리카인이 경험한 변화의 특성에서 볼 때 이러한 위기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변화한 것이 쉽사리 수용되지 않는 마당에 기존의 토대가 허물어지자 아프리카인들은 '존재론적 근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존재론적 근심은 정치체제의 변화, 지배이데올로기의 변화, 생활수준의 저하 등을 통해서보다는 가장 구체적인 일상 생활의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 오랜 기간 친숙해져 온 생활 습관에서 갑작스럽게 주어진 작은 것들의 균열을 통해 그들은 맞서 싸우려는 염을 내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크기의 두려움을 맛보게 된다.


2.3 경험조건의 변화

아프리카에 새롭게 도입된 것들에 가장 중요하게 자리한 원리 중의 하나는 개별화또는 개인주의의 강화였다. 이것은 '아프리카의 혼돈을 문명으로 질서 지운다'고 하는 이념 속에 새겨진 원리이기도 했다. 유럽인이 가져 온 것들은 대가가 개인의 생성과 관련이 있었다. 공동체라는 집단성으로부터 개인을 구분해 내고 그리고 그 개인을 변화시켜 내는 일은 무엇보다 선교사들이 행한 교육과 전도활동 속에 새겨진 변함없는 문법이었다.


2.3.1 공간

공간구성과 그 인식의 변화는 표면적으로는 먹고 자는 공간의 위치 변화이지만 그 저변에 있어서는 생활을 둘러싼 주변 모든 것들과의 관계의 변화이며 좁게는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의 변화이지만 넓게는 문화전승체제의 변화를 뜻한다.

전통적인 공간개념은 크게는 마을(settlement)과 덤불(the wild)로 구분된다. 이들의 공간구성체계는 몇 가지의 구분원리를 갖는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중심과 주변, 남자와 여자, 왼편과 오른편의 구분으로 이들 원리는 서로 연합되어 있다. 남부 반투인의 경우, 그들의 주거공간은 주변부의 생활공간과 중심의 사회적 공간으로 구분된다. ∩ 형태의 부락 한 가운데 소 우리가 있고 농가의 중심에 가장의 오두막이 놓여진다.

이 두 곳, 소 우리와 가장의 오두막은 마을의 중심을 이루는 곳이면서 종교제의가 치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오두막은 대개 원형으로 지어지는데, 오두막에서 중심을 형성하는 곳은 화덕이다. 이 화덕의 바로 뒷 공간에 정령이 머문다. 이 공간은 또한 신생아의 목욕장소이기도 하고 귀중품의 보관소이기도 하다.
공간구성의 변화에서 일어난 가장 현저한 변화는 공간의 중심을 나타내는 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가옥구조에서 화덕이 치워지고 중심을 떠받치는 기둥이 사라지는 등의 변화의 기조는 기능중심의 분화였다. 요리하는 공간과 잠자는 공간의 분리,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분리, 세속적 공간과 종교적 공간의 분리 등은 사각형의 가옥 모양과 함께 공간인식에 있어 새로운 공간에 필요한 물품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다.

원형에서 선적인 것으로의 공간구도의 변화는 철도의 건설과 식민정부에 의해 추진된 산업화로 인해 덤불에 둘러싸여 공간인식의 중심을 이루던 마을을 확장된 공간 속에 던져 놓았다. 무엇보다 도시의 발달은 변화하는 마을과 함께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이원적 공간감각을 창출했다. 그들에게 도시는 백인의 나라, 악의 소굴, 통제 불가한 공간으로 인식되었고 그 대체물로 '고향'이 형성되었다. 특별히, 도시의 이주노동자들에게 고향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떠나온 마을을 가리키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곳, 이전 공동체적 삶의 은유적 공간이기도 했다.


2.3.2 교환체계

공간구성체계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형성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교환체계 역시 경제학적인 개념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축을 매개로 한 전통교환체계에는 교환의 원리 속에 구현되는 사회적 차원과 더불어 보다 중요한 존재론적인 차원이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사회에서 가축 특히 소는 교환의 중요한 매개였다. 가축이 갖는 경제적인 가치는 작은 것이 아니지만 교환의 매개로서 가축이 갖는 상징성은 실용성을 넘어, 개인을 사회에, 조상을 후손에, 자연을 인간에 묶는 고리였다.

가축만이 안정된 형식으로 가치를 응집시켜 저장하고 불려나갈 수 있게 하며 가축만이 개인의 정체성을 보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가축은 지위와 풍요와 지속에 대한 신뢰로서 역할 했다.

가축의 자리를 화폐가 대신하면서 이러한 교환체계는 그 성격을 달리하였다. 생활공간의 변화가 창출한 상품의 수요와 식민정부에 의한 과세에의 압력은 화폐 경제와 상품노동의 틀 속에 아프리카인들을 집어넣었다. 또한 쟁기의 사용은 가축과 함께 남자를 농경에 끌어들이는 한편 여자들의 활동공간을 제한시킴으로써 새로운 노동분업의 조건을 형성하였다. 쟁기의 사용으로 초과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빈부의 차가 생겨났다. 이로써 경제적 계급의 형성조건이 마련되었고 가축을 화폐로 바꾸어버린 빈농은 도시의 임금노동시장에 흡수되었다.

임금노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일이 갖는 전통적인 의미와 대조되었다. 전통의 일은 추상적 특성을 갖는 것이나 교환 가능한 것이 아니며 노동력이라는 양도 가능한 상품으로 존재할 수도 없다. 일은 인간의 존재에 내재해 있는 창조적 과정이며 일상의 삶의 과정에서 자아와 타자를 만들면서 표현된다. 그러나 노동(mmetreko : work for money)은 시장에서 사고 파는 상품으로 측정되며 시간으로 계산되고 돈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노동력은 양도가능한 인간의 부분이며 노동관에서는 근면하고 양순하고 감내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은 사장경제 하에서는 일을 한 결과 자아는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피폐해진다고 말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돈은 다리 없는 가축'이라 부르고 "돈이 가축을 잡아먹었다"고 말한다.


2.3.3 의미체계

문자의 도입은 계층적 차별과 이에 따른 하층의 소외를 유발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토착인들은 말을 대상화하지 않고 지시체의 실재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들은 언어를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존재의 통합적 특성이 발화의 힘 속에 체현된 것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말은 단지 학습된 형식의 효과적인 정교화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발성되는 힘이었다. 그리하여 발화는 개인의 지위에 따라 상대적 무게를 가진다. 말의 힘은 세상에 적극적으로 행위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간주되어 저주, 주문, 기도와 같은 '위대한 말들'은 무기로 사용되었다. 사회적 영역에서의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여자들은 공적인 논쟁, 시의 음송, 제의적 주문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이들의 문화에서 말하고 명명하는 것은 경험을 창조하는 것,  곧 실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체계는 구체에서 추상의, 사물에서 말의 명쾌한 분리에 실증적 지식이 있다고 보았던 19세기 유럽인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아프리카인들의 생각은 물활론적인 것으로 보였고 그리하여 선교사들을 필두로 토착어를 개념적이고 문법적으로 조직화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이들의 언어학적 성과를 통하여 새로운 정통 토착언어가 만들어졌고 이것은 원주민들에게 문명의 산물로 교회와 학교를 통해 가르쳐졌다. 여기에서 토착인의 의미체계는 말의 변형과 글의 도입이라는 두 가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말의 변형에서 일어난 변형과 굴절은 글의 도입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어휘와 문법의 전제는 화폐에서 결정적으로 보이는 교환의 법칙과 동일한 것으로, 말하는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분리와 불평등을 야기했다. 문자문화가 발생시킨 '문맹'은 새로운 형태의 소외를 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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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인의 철학과 사고체계 ] - 철학과 사고

2003. 9. 25. 19:49
1. 아프리카인의 철학과 사고

1.1 악(惡)의 기원과 본성

악의 기원에 관해서는 몇 가지 견해들이 있으나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는 범주론적인 입장에서, 신은 이른바 악한 것을 창조하지도 않았고, 신이 자기들에게 어떤 악을 행하지도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 일라(Ila)족 : 신은 언제나 올바르기 때문에 "그는 무례한 대접을 받을 수도 없고, 비난을 받을 수도 없으며, 그에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다. ..... 그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선을 행한다."라고 주장한다.

☞ 아샨티(Ashanti)족 : 한 사제는 "신은 이 세상에 있는 악의 가능성을 창조하였다. .... 신은 모든 인간이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가지도록 허락하였다"고 한다.


아프리카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신화속에서 신이 최초의 인간을 창조했을 때 신과 인간과의 관계는 조화와 가족적인 친밀감을 이루고 있었고, 그래서 최초의 인간들은 다만 선한 것만은 향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몇몇 사회에서는 악을 신이 아닌 다른 영적인 존재로부터, 혹은 그러한 존재와의 결합으로부터 생긴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악의 개념을 이루고 있는 부분적인 모습은 악 자체를 인격화하고 있는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부구수(Vugusu)족은 악신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악신을 본래 신이 선하게 창조하였지만 후에 신에게 반역을 하고 악을 행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악신은 악령들의 도움을 받고 있어, 모든 악은 이 악령의 무리들로부터 온다고 본다. 그래서 이 세상의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간에는 일종의 결투 상태가 존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죽음, 전염병, 메뚜기떼의 침해, 기타 재난들을 그것 자체로 신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신에 의하여 야기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거의 모든 아프리카 사회는 영혼을 악의 근원이거나 아니면 악의 대행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자(living-dead)인 영을 충동해서 "악"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은 역시 사람들이다.

신비스러운 힘은 그것 자체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개인에 의하여 그것이 악하게 사용되면 그것은 악으로 경험된다. 이러한 견해는 악을 독립된, 그리고 외적인 객체이게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이 스스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인간이나 영적인 대행자에 의하여 채용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공동체나 사회의 도덕적인 규범과 윤리를 정립하기 위한 많은 법과 관습, 행동의 규범, 규칙, 준수해야 할 사항, 금기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 중의 어떤 것을 사람들은 신성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신이나 민족 지도자에 의해서 창안되어 제도화된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본래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의 선조가 있는 쟈마니(zamani)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공동체의 관습이나 규례는 신성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 행동의 규범을 깨뜨리는 것은 어떠한 것이거나간에 악한 것, 잘못된 것, 못된 짓이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은 이미 받아들여진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동은 살아 있는 자와 이미 죽은 자들 양자의 협동적인 공동체에 의하여 징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신도 또한 이를 책벌하고 정의를 실현하다.

인간 관계에서는 연령과 신분상의 위치에 따라 위계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위계 개념은 신으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사다리를 이루듯 형성되어 있다.

신은 창조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어버이이며,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호소와 청탁의 마지막 극점이 되고 있다. 그 신 밑에 여러 신적인 존재와 영이 있다. 이들은 인간보다 더 강한 자들이며, 여러 사회의 창시자나 선조이기도 하다.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살아 있는-사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년식, 결혼, 자녀의 양육 등을 통하여 완성된 완전한 인간이다. 인간들의 계층은 위로부터 왕, 통치자, 우사, 사제, 점술사, 주의, 각 가정의 가장, 연로한 어른, 부모, 손위형과 누나, 그리고 끝으로 공동체의 가장 어린 구성원으로 위계가 이루어진다.  

어떤 사회는 개인은 물론 민족 전체가, 혹은 그 민족이 왕이나 추장을 통하여 신에게 범죄를 할 수 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바룬디(Barundi)족은 신이 간음죄를 범한 사람에게 크게 진노한다고 믿고 있고, 바츠와(Bachwa)족은 신이 도둑질을 한 사람, 연로한 부모를 공양치 않는 사람, 살인자. 간음한 자 등을 벌하다고 믿고 있으며, 바벤다(Bavenda)족은 만약 추장이 신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신은 종족에게 메뚜기의 패해, 홍수, 재앙 등으로 징벌한다고들 말한다.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신을 법률과 질서, 그리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규범의 마지막 수호자로 받아들이거나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질서의 파괴는 개인에 의하여 범해졌든 집단에 의하여 범해졌든 간에 궁극적으로는 사회협동체에 의한 범죄로 인정한다.    


☞ 기쿠유(Gikuyu)족 : 비가오게 해달라고 지내는 희생제의나 기도를 하기 전에 점술사나 예언자를 찾아가, 어째서 신이 그처럼 오랫동안 가뭄이 들게 했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때 바치는 희생제물은 - 동물로서 한가지 색을 가진 동물이어야만 한다. - 반드시 살인, 절도, 강간 등의 범죄를 하지 않았고, 독물(마법에 의한)이나 독물을 행사한 일과는 무관한 정직하고 신용 있는 사람의 소유물로부터 선택되어진다.


위의 경우로부터 살인, 절도 등이 신에 대한 범죄인 것을 알 수 있으며 한사람의 범죄는 가축이나 재산을 포함한 그의 전체 집안과 모두 관련된다.


☞ 뉘르(Nuer)족 : 사람이 자기의 가축이나 자녀가 많다고 해서 자랑을 하면 그것도 신에 대한 범죄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러한 자랑은 신으로 하여금 가축이나 자녀를 빼앗아가게 한다. 따라서 누에르 족의 경우 "신에 대한 가장 못된 범죄는 아기를 칭찬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이야기할 때 "이 나쁜 것"이라고 호칭한다.


아기를 찬양하면 그 아기는 죽을 수도 있다. 범죄자는 그 아기가 아니라 신 앞에서 그 아기를 자랑한 사람이다.

우연적으로나 고의적으로나 간에 어떤 규정을 어기면, 그 범죄로 인하여 범법자는 물론 그 범죄에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운이 닥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악이란 행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그 행위를 징벌하는 사실 안에 있다. 어떤 잘못을 범하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마저도 신의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정황에 몰아넣고 만다. 이처럼 결과가 나쁘기 때문에 결국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행위도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이 악한 까닭은 그것이 징벌을 받기 때문이다. 악하기 때문에 징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신에게는 범죄를 할 수도 없다고 느끼는 사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앙코레(Ankore)족은 신을 최종적인 질서의 원리라고 인정은 하지만 인간 개개인은 신에 대하여 범죄를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신에 대하여는 죄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아잔데(Azande)족, 아칸(Akan)족, 스와지(Swazi)족, 바냐르완다(Banyarwanda)족 등은 이를 달리 표현하여 신은 인간의 도덕적 가치에 대하여 아무런 영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공동체가 친족 관계와 다른 사회적 구조가 뒤엉킨 협동적 특성을 지나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도덕적인 악이든 자연적인 악이든 간에 개인이 당하는 악의 형태는 거의 모두가 마찬가지로 구성원에 의하여 야기되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범하는 도덕적인 범죄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그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 전체에 대한 범죄이다. 이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계 질서의 원리를 참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대체로 낮은 계층, 낮은 신분,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보다 높은 계층이나 연령의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른다. 또 동일한 신분의 사람들에게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높은 계층이나 신분의 사람은 낮은 신분의 사람에 대하여 범죄를 구성할 만한 일을 행하지 않는다. 악이라든가 범죄라고 생각되는 것은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에로 기능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만약 어떤 마법사가 작은 어린이에게 마법을 걸면 이 행위는 그녀를 어린이보다 낮은 위치에 두게 한다.

이것은 관계 상황 속에서 무엇이 악을 구성하는가 하는 데 대한 철학적 이해이다. 어떤 것을 악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의 내재적 본성이 악해서가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어떤 신분의 수준에서 그러한 일을 행하느냐 하는 데 따라서 악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불운이나 재난이 신으로부터 도래한 것이라고 느껴지면, 사람들은 이를 신의 범죄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말미암은 징벌이라고 해석한다.

범법 행위가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영역은 제의행위에서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아프리카 사회는 의식이나 의례의 집전에 대한 규정들을 가지고 있다. 그 규정을 어기면 때로는 제의적인 정화의 의식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2 배상과 처벌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 신이 그를 처벌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인은 인류의 도덕적 생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덕률을 귀하게 유지하고 떠받든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서 행한 잘못을 내세에서 징벌 받는다고 하는 신앙은 거의 없다. 처벌이 내린다면 그 처벌은 현세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불운은 그 불운을 당한 사람이 신이나 영이나 자기가 속한 사회의 장로나 다른 구성원에게 어떤 도덕적인 혹은 제의 적인 행위 규정을 범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 바냐르완다(Banyarwanda)족과 바룬디(Barundi)족은 신이 징벌하는 행위를 "신은 침묵 속에서 복수를 행한다"라고 하는 잠언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

☞ 뉘르(Nuer)족 : 질병을 환자가 그 질병을 앓기 전에 범한 과오와 연결시키고 신의 처벌이 그 환자에게 내리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을 바친다. 결국 이들은 질병에 대하여 두 가지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행위에 강조를 두고, 그러한 행위를 하면 어떠한 질병이 예상될 수 있다고 하는 태도이고, 또 하나는 질병 자체에 강조를 두어 그 질병을 야기하게 한 과오를 과거의 행위 속에서 되찾는 행위이다.


각개 공동체의 사회는 도덕적인 혹은 법률적인 범법 행위에 대한 제나름대로의 배상과 처벌 형식을 가지고 있다. 사술이나 마법을 행사하다든가, 살인이나 간음을 범했다든가 하면 사형에 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우연하게 동료를 다치게 했다든지, 이웃 사람의 밭에 자기네 양이 들어가 감자넝쿨을 먹어 버렸다든지 하면 소나 양이나 혹은 금전으로 대가를 지불하는데 이르기까지 보상과 처벌의 정도는 극히 다양하다. 관습이나 제의의 규범을 손상하거나 깨뜨리는 여러 형태의 위반을 통하여 야기되는 논쟁이나 위약은 일반적으로 그 지역의 연장자들이 취급한다. 물론 전통적인 추장이나 통치자가 있는 곳에서는 그들이 그 지방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또한 그 법을 집행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정부의 재판소가 있어 이를 맡고 있다. 그 중에 어떤 재판소들은 장로들의 협조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관습법과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다.

재판을 할 때 저주를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본적인 원리는 다른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유죄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면 그를 저주함으로써 그 저주의 말에 의하여 악이 그에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 신념이다. 주로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저주할 수 있지, 그 역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저주는 부모나 아저씨, 아주머니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또 가장 고약한 저주는 임종시에 하는 저주이다. 일단 그 저주자가 죽으면 이를 취소할 방도가 실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참회를 하고 저주를 거두어주기를 원하면, 그 저주를 한 사람은 그 저주를 스스로 취소할 수도 있고, 또 그 저주가 심각한 것이었으면 제의를 통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부어진 저주가 이루어졌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약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죄가 없으면 저주는 기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공식적인 저주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마치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특별히 가족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관계를 저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좋은 인간 관계를 이루고 유지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으로는 공식적인 서약이 이용되고 있다. 신비스럽게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서약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정확한 서술은 아니지만, "피로써 맺어진 형제(blood brother and sister)"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혈연 관계가 없는 두 사람이 서로의 피를 조금 바꾸어 마시거나, 그 피를 상대방의 몸에 바르는 의례를 통하여 서약을 하는 것이다. 이 의례를 지내고 나면 그들은 정말 "혈연"의 형제나 자매와 같이 살아간다. 그들 양편의 가족들도 모두 이 "형제가 되는"서약에 참여한다. 그래서 예를 들면 그들의 자녀는 서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 이 서약은 서약 당사자들에게 커다란 도덕적인, 그리고 신비스러운 의무감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이 계약을 깨뜨리면 불행이 닥치리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이른바 "비의사회"에 가입할 때, 즉 통과의례를 거쳐 성년이 되는 집단 혹은 점술사와 같은 어떤 직업 사회에 들어갈 때 행하는 서약들도 있고, 비밀한 정보를 이야기하거나 어떤 지식이나 비밀을 지키려고 할 때 행하는 서약도 있다. 부모가 임종 전에 자녀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특별한 지시나 요청을 지키고 준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서약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서약은 그 진지성에 있어서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어떤 서약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이런 저런 형태의 고통이나 불행을 야기할 수도 있다. 서약의 배후에 있는 신앙은 신이나 혹은 개인보다 우위에 있는 어떤 힘이, 서약이나 계약의 요청을 깨뜨리는 사람을 벌할 것이라고 하는 신념이다. 저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서약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많은 서약들은 비용을 많이 들이면서 제의적으로 행해진다.

요루바족의 도덕적인 가치는 신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신을 "순수한 왕", "완전한 왕", 흰 옷을 입고 위에서 사는 분", "본질적으로 흰 대상, 양태가 없는(완전히 흰) 흰 물질"이라고 생각한다. 요루바족의 원리의 본질은 품성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바로 이 품성에 달려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드러운 품성은 생명의 줄을 사람의 손에서 끓어지지 않게 한다"라든가,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은 좋은 성품이다"라고 말한다.

훌륭한 품성이란 결혼 전의 순결, 결혼 기간 동안의 신실성, 정중한 예절, 이기심과 반대되는 너그러움, 친절, 정의로움, 진실, 본질적인 덕으로서의 방정함, 도둑질하지 않는 일, 약속을 지키고 어리석음을 피하는 일,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지켜주고 특별히 여자를 보호하는 일, 노인을 찬양하고 존경하는 일, 위선적이지 않는 것 등이다. "도덕적인 악"은 인간이 자기 동류인 인간에게 행한 것과 연결된 것이다. 이것은 모두 훌륭한 품성의 덕을 계발하고 드러내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들이다.

결국 도덕적인 "선"이나 "악"의 개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회나 공동체 안에서 궁극적으로 개인 간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관계의 본성이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은밀한 죄"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인간이거나간에 그가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에 의하여 그것, 혹은 그는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판단된다.

마법, 악한 주술, 사술 등을 행하는 사람은 도덕적인 악의 화신이다. 그들은 본래부터 인간 관계를 파괴하고, 사회의 도덕적 완전성을 붕괴시키며, 관습이 요청하는 행위를 거역하여 행동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은 또한 자연적인 악의 도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이 적어도 그 자연적인 악과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고라든가, 질병이라든가, 불행 등이 닥치면 사람들은 즉각 자기들에게 그러한 악 주술을 행한 악의 대행자나 마법사나 사술사나 이웃이나 친척이 과연 누구인가를 찾는다. 우리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신을 도덕적 질서의 궁극적인 수호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이 그 도덕적 질서의 수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도덕성을 매일 지켜주고 감시하는 것은 족장이나 살아 있는-사자나 장로, 사제, 혹은 신적인 존재나 영들이다. 도덕적인 본성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인 규제이다. 그런데 이 규제는 개인과 개인간의 직접적인 접촉, 인간과 살아 있는-사자와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영들과의 관계 등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해야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의 항목은 너무 많고 세밀한 것이어서, 인간은 결국 일생 동안 한없는 도덕적인 요청과 끝없이 부닥친다. 특히 개인이 스스로를, "나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자의식을 가지는 환경 속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더 심각하다. 또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친족 관계가 개인을 완전히 "노출"시켜버리는 아프리카적인 공동체에서는 이러한 여러 도덕적인 요청들이 누구나에 의해서 거의 불편할 정도로 자세히 살펴지기 때문에, 이를 준행하며 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주목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도덕성의 본질은 "영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이다. 그것은 "존재"의 도덕이라기보다는 "행위"의 도덕이다. 이는 "정태적인 윤리"라기보다는 "역동적인 윤리"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윤리는 그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는 그 인간이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을 명백히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을 바로 그러그러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 행하는 바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가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행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친절은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한 도덕적인 덕목일 수가 없다. 살인도 공동체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해할 때까지는 악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을 그가 무엇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거나 하기 전에는 "선도 "나쁜 것"(악)도 아니다. 이 점이 아프리카의 도덕과 윤리 개념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마법, 주술, 사술 등에 대한 신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우리가 "자연적인 악"이라고 구분 지은 악의 두 번째 형태와 연결이 된다. "자연적인 악"이란 인간의 삶에서 부닥치는 고통, 불행, 질병, 재난, 사고, 갖은 형태의 아픔 등에 대한 경험을 지칭한다. 이들 대부분의 현상은 자연적인 "원인"을 통하여 설명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사고"나 "우연"으로 인해서 어떤 슬픈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어떤 대리자(인간이나 영이나 간에)에 의하여서만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러한 악을 "일으킨" 대행자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회에서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가 규범을 어겼기 때문에 신이나 영이 그 범법자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경우에는 그 사람 자신이 사실상 자기 고통의 원인이다. 즉 그는 먼저 자기의 고통의 원인을 외면화했다가 다시 그 다음에 이를 내면화하는 것(안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형태의 고통은 거의 절대적으로 마법사, 사술사, 악한 주술을 행하는 사람 등, 인간인 행위자들에 의하여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들은 사회적으로 악의 화신이다. 이런 부도덕한 행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악"이 존재하는 것이다.


1. 3 아프리카인들의 의식과 사고체계

서구의 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신념이나 믿음은 지적인 것이 아니며 어떤 수준에서 보면 모든 문화들이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서구인들은 기술적 지식이 세계를 통제하고 이끌어 갈 수 있으며 모든 사회는 그것들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자세는 '현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인의 사고체계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역사학자들은 다른 시대에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지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언어, 사회조직, 역사, 그리고 아프리카의 환경들이 우리 자신의 것들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더욱더 복잡한 걸림돌이 되었다. 이런 차이점들은 널리 퍼져 있는 다른 문화들에 대한 삐뚤어지고 잘못된 자세 때문에 강화되어져 왔다.

언급했다시피 아프리카의 믿음과 사고체계에 대하여 일반화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세계에서 보이고 있는 가장 높은 이혼율과 가장 낮은 이혼율이 아프리카에서 함께 나타나고 있다. 수렵채집 집단에서 보여주는 지도력의 비공식적인 양식과 성스러운 왕과 행정국가에 이르기까지 정치조직과 기구가 다양하다. 탄자니아만 해도 80여개의 다른 언어들이 존재한다. 아프리카 인들의 삶의 방식은 수렵, 채집으로부터 관계농업을 하는 복잡한 농업체계, 또는 아주 고도화된 공예산업을 가지고 있는 부족들도 있다. 만약 그러한 다양성이 언어, 정치, 사회조직, 삶의 방식들이 객관적인 환경에서 발견되어지고 관찰되어 질 수 있다면 아프리카 인들이 그들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을 발전시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서구사회의 사고와 생각들이 최근의 서구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지적특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어떻게 어떤 것들이 움직이는가에 관한 지식은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능력을 넘어서 변화시킬 수 있는 특별한 힘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있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사고체계와 서구의 사고체계를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문가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통제하기 어려운 때, 불행이 기대와 희망을 흔들어 놓았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할 점은 비록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널리 퍼져있는 서구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문화의 차이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이 언제나 나오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각각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과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인의 사고체계는 과학적이다.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가 수단 아잔데(Azande)족의 주술과 주술사를 연구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즉 우리가 사실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 아잔데족들에서 볼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과 같다는 것이다.

아잔데족 사람들이 어떤 불운의 원인을 찾아내는 프로세스는 과학 연구실에서 원인을 발견하는 서구적인 프로세스와 일맥상통한다. 1926년에서 1930년 사이 아잔데족을 연구한 인류학자, 에반스-프리차드(E. E. Evans-Pritchard)는 아잔데족 사람들이 질병과 병에서부터 공예 작업 중에 생기는 재난에 이르는 불운의 원인에 대한 가설들을 시험하는 데 있어 매우 예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잔데족 사람들은 신탁(信託)을 통해 불운의 원인에 대한 가설을 검증했는데, 신탁은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사건들의 원인을 알 수 있는 신비로운 것이다.

그러한 것들 중 하나는 독물 신탁으로, 닭에게 독물을 먹이고 이를 테면 우리 아이가 계속해서 아픈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개가 아이에게 마법을 걸고 있기 때문인가?와 같은 질문을 붙인다. 닭이 죽으면 답은 그렇다가 되는 것이고, 닭이 살면 답은 아니다가 되는 것이다. 질문을 하기 전에 오늘 내가 하늘을 날게 될까? 같은 엉터리 질문을 독물 신탁에 물었다. 아잔데족 사람들은 사람은 스스로 하늘을 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답이 그렇다가 되면 그 독물이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고등 과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여기서 가설 검증을 떠올릴 것이다. 아잔데족 사람들이 독물에 대해 한 것이 바로 가설 검증이었다. 우리가 화학 약품이나 의약품이 오래되거나 오염되어 더 이상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아잔데족 사람들은 이 과정을 통해 독물이 오염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잔데족 사람들이나 과학자나 마찬가지로 보통 오염된 물질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 아프리카인들의 사고 체계에 대한 에반스-프리차드의 선구적 연구의 결론은, 아잔데족과 서구인들 사이의 차이는 논리나 사고력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잔데족을 비롯한 아프리카인들의 판단력은 다른 곳의 사람들과 같다. 그들도 의심하고 믿으며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그들 사회의 전문가들, 의사들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의존적인 믿음과 갈등을 똑같이 갖고 있다.

서구의 사고체계와 아프리카의 사고체계는 어떻게 다르며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차이점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서구의 전문가들과 아프리카인들 사이에 그 동안 해왔던 비교들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었고 최근에야 모든 체제가 비교되기 시작했다. 둘째로, 마법사, 주술사, 영적 소유 같은 아프리카의 사고체계는 전과정으로서 또는 어떻게 사람들이 느꼈고 그들의 불행에 대처했는지를 연구하지 않았다.

셋째로 서구사고체계를 아프리카의 것과 같이 동일하고 정밀한 음미와 검사를 거치지 않았다. 즉 서구체계는 우리에게 너무나 평범하고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사고는 서구의 관찰자들에게 특별하고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체계와 너무나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서구사회에서, 많은 사상자를 가져온 질병 같은 인간의 재난에 대한 숨겨진 이유를 알기 위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은 더 이상 고려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서구의 의사들은 환자에게 치료를 해주고 편안하게 하며 또한 필요한 경우 설명을 할 뿐이며, 아프리카의 의사와 비교해볼 때 역할이 한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은 강조의 문제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불행의 문제는 종종, 또는 언제나 개인적인 환경과 관련되어 있으며 '기회'나 "우연"같은 비개인적인 요소는 적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프리카인들이 초기의 방문자들과 관찰자들에 의해 평가되어 왔던 것처럼 자연적 원인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아잔데인들의 좋은 예를 살펴보자. 에반스-프리차드는 아잔데족 사람들이 훌륭한 도공들로, 정교한 도자기를 만들기로 유명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잔데의 도공이 자신의 가마에서 굽는 동안 도자기들이 깨진 것을 발견하면, 기술적인 프로세스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을 한다. 예를 들어 점토에 돌이 섞였을 수도 있다. 아무런 자연적인 원인도 쉽게 밝혀지지 않을 경우에만 그 도공은 마법의 작용 같은 초자연적인고 개인적인 원인을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적인 원인이 없는 불운을 '우연'이나 '운이 나빴다'는 등의 비개인적인 원인으로 돌리지만 아잔데족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부터(악의를 가진 인간, 악마에 사로잡힌 인간)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아잔데족 사람들은, 이들 악의를 지닌 사람들은 탐욕에 의해서 동기가 유발되고 망구(mangu)라는 마법 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망구로 인해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잔데인들에게 있어 모든 죽음은 마법사나 주술사의 행동에 의한 것이다. 아잔데인들은 이들 악마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행동에 대해여 존재하고 있는 치료법을 발견하기 위하여 신탁을 행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모든 사회가 마법에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행에 대한 다른 개인적 원인들은 다른 시대에 다른 아프리카인의 문화 속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다.

인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또한 마녀와 주술사, 영혼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조상과 자연의 영같은 아프리카문화의 보이지 않는 세계의 한 부분인 초자연적인 현상의 다양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러한 것들이 다른 사람과 관련되어져 있고 또 어떻게 아프리카인들이 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그들의 경험을 해석하고 있는지 설명하고자 시도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때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동부아프리카의 유목민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커다란 도시에 살면서 신성한 왕을 가진 복잡한 형태의 정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서부 아프리카의 유목민족인 요루바족에게 똑같이 적용시킬 수는 없다.  

또 다른 중요한 반대는 서구의 사고체계는 기술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역사에서, 강력한 기술력에 대한 믿음은 서구의 낙관주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진보에 대한 사고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아프리카의 사고체계는 환경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통제에 그 중점을 두고 있다. 세계를 사고함에 있어 아프리카인들은 개인적 자질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는 이것은 "삶에 있어서 실제적인 관심이었지 이러한 믿음들을 나오게 한 학술적인 관심(형이상학)은 아니었다."라고 아프리카인들을 평가하였다.

아프리카인들은 기술적 변화를 통한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서 그들의 삶의 조건을 바꾸기를 기대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환경이 야기할 수 있는 효과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의 의식과 믿음은 자연의 힘에 대한 상상력으로 가득차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인들의 신성한 왕들은 자연적 과정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 수단의 실루크(Shilluk)족은 만약 그가 부적절하거나 고령이라면 그들의 왕이 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실루크족은 그들의 왕을 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고있는 사람이 없지만, 그들은 왕의 잘못된 건강이 가장 불행한 방법으로 자연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세상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자연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기술에 대한 태도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아프리카의 사고체계에 대한 두가지 중요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첫째는 사람에 대한 환경의 효과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세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영아 사망률은 약 50%에 이르고 있다. 케냐의 이테소(Iteso)족은 유아가 사망한 이후에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작명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어린아이들은 특별한 의식을 행하는데 그들은 생활을 방해하는 동물과 이테소족들의 집을 침략하고 그들의 작물과 가축들을 파괴하는 숲과 평원의 식물들 뒤에 이름을 짓는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은 "에티앙(etyang ; 동물)", "에모토(emoto ;  하이에나)" 또는 "에모도(emodo ; 뿌리채 뽑히지도 않고 곡식을 망치는 잡초. 이 잡초는 제거하기에 불가능하며 경작지를 파괴한다.)"라고 이름이 지어진다. 그들은 다른 아이들을 죽게 만들고 자신들의 삶과 생명을 위협하는 그 파괴적인 힘을 피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태소나 다른 아프리카인들이 자연 그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환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특별한 생명들에 대한 환경의  영향이 악마, 주술사, 그리고 마법사들 같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의하여 조건 지워질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인들은 통제에 대한 실패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을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런 통제는 다른 사람들의 의도와 처분을 알아내기 위한 시도와 관련되어 있다.

둘째,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중요한 관점은 운명에 대한 질문이며, '(하필이면) 왜 나인가?(Why me?)'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의 사고체계는 어떻게 그들의 세계에서 경험을 하였고, 이러한 경험들을 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또 통제하려고 했는가를 살펴봄으로서 가능하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아프리카인의 사고체계는 이론적이기도 하고 실제적이기도 하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발견되고 있는 지식과 사고체계는 매일의 일상생활과 유리된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인의 지식은 상식으로서 매도할 수준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프리카의 사고체계는 사색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행동에 대한 방법을 제공하고 또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생활단위를 벗어난 삶으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프리카의 대학과, 교회, 도시, 그리고 시골의 의식을 행하는 단체들은 아프리카인들은 현재 그들의 위치와 미래의 상태를 결정짓고 있다. 물론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사고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또 서구인들이 전해준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그들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 구전 전통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 사회의 연장자 같은 개인은 언제나 지식의 보고이며 아프리카의 사고체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새로운 이물들, 소설가, 학자, 그리고 정치지도자들도 이러한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자각의식을 가진 집단으로서 아프리카의 사고체계를 만들어가고 또 변화시키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도 아프리카 사고체계의 중요한 변화는 아프리카인들과 서구인들이 계속해서 교류와 대화를 어느 정도까지 해나가느냐에 그 폭이 결정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1. 4 우주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생각

삶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특별한 생각과 사고 없이 살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개인에 의해 발전된 어떤 생각들이 궁극적으로는 그 사회가 용인하고 있는 방법(예를 들어 대화, 예술적인 표현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나간다.

세상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아프리카인들에게서도 보여지고 있다. 그러한 모든 생각들은 여기서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것들은 신화, 전설, 속담, 의식, 상징, 신념과 믿음, 그리고 격언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우주에 대한 공식화되고 체계화된 견해들은 없지만 이러한 다양한 생각들이 함께 나타나고 있으며 하나의 그림처럼 나타나고 있다.


1.4.1 창조된 우주

일반적으로 모든 아프리카인들은 우주는 창조되어졌다고 믿고 있으며 우주의 창조자는 신이라고 믿고 있다. 우주의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일치하지 않는다. 신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루고 있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설명' 그 자체이다. 예로 많은 아프리카 언어에서 신의 이름은 창조자(creator)를 의미한다.

신에 대한 믿음은 아프리카의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사람들이 우주를 신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설명할 때, 그들은 자연적으로 종교적인 대상으로서 우주를 바라본다. 그러므로 우주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시각은 심오하게 종교적이다.

아프리리카인들의 의식에 따르면 인간은 창조된 우주의 중심에 있다. 모든 창조된 것들 중에서 인간은 가장 중요하고 또 특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아프리카인들은 신이 처음에 하늘을 창조하고 그 위에 자신이 살면서 땅을 창조했다고 한다. 또 어떤 아프리카인들은 단 한번의 행동으로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한다. 또한 아프리카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생각은 신은 계속해서 창조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주의 창조는 결코 끝나지 않는 진행형으로 생각하고 있다.


1.4.2 우주의 본성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우주는 분할되는 두 개의 세계로 생각하고 있다. 즉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하늘과 땅의 개념이다. 어떤 사회는 세 개의 세계로 분할하기도 한다. 하늘, 땅, 그리고 지하의 세계이다.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인들은 이들 세계들이 따로 분리하여 존재하지 않고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늘은 별, 태양, 달, 운석, 하늘, 바람과 비, 천둥과 번개, 폭풍, 일식과 월식이 있는 곳이다. 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신은 '하늘에서(in the sky, in heaven)', '저 구름너머에(beyond the clouds)'에 살고 있으며 인간처럼 땅에서 살지 않는다. 인간은 신과 같이 살수 없다. 신은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는데 이들은 신을 보좌하고 도와주는 존재일수도 있고 또 신의 아이일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아프리카인들은 신은 완전히 혼자이며 그 자신이 모든 것이라고 믿기도 하는데 신이 모든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땅은 창조된 것들로 가득차 있다고 믿고 있다. 어떤 아프리카인들은 땅을 살아있는 존재로서 간주하며 땅을 '어머니와 같은 땅(Mother Earth)', '여신의 땅(the goddess earth)' 또는 '땅의 신(the divinity of the earth)'라고 부른다. 상징적으로 하늘을 아버지로 보고 있는데 반해 땅을 우주의 어머니로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잠비아에서는 비가 내릴 때 며칠동안은 경작하는 것을 금지한다. 아프리카의 어떤 지역에서는 지진과 같은 재난이 닥쳤을 때 희생제물들이 땅의 신들에게 바쳐질 수도 있다. 땅에 존재하는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모든 것들이 종교적 이유로서 존중되어진다. 예를 들어 산, 폭포, 바위, 숲과 나무, 새, 동물과 곤충들이 그렇다.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다. 그는 또한 창조자인 신과 우주를 연결하는 우주의 사제이다. 그는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우주와 조화를 꾀할 수도 있다. 인간은 신성한 대상으로서 우주의 한 부분이며 희생물과 헌납을 위해 다른 것들을 사용할 수 있다.

우주는 시간상으로 공간상으로 끝이 없다(The world will never end). 아프리카인들의 시간에 대한 개념은 주로 현재와 과거에 집중되어 있으며 미래에 대해서는 아주 약간의 생각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끝이 없다. 사건은 크고 작은 리듬을 형성하여 오고 간다. 작은 리듬(minor rhythm)은 인간, 동물, 그리고 식물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종족을 보전하고 그리고 사망으로 이르는 땅에 살아있는 삶 속에서 발견되어 진다. 이러한 리듬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삶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중요한 리듬(major rhythm)은 낮과 밤, 건기와 우기, 큰 주기를 가지고 오고가는 자연적인 사건들(어떤 나무의 꽃이 피고, 어떤 새와 곤충들의 이동, 기근 하늘의 현상)이 해당된다. 시간에 대한 이러한 리듬들은 우주가 변화는 할지언정 결코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많은 장소에서 원은 우주의 영원과 계속성의 상징으로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원은 의식, 예술, 암벽화, 또는 도구의 장식으로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또 어떤 다른 곳에서는 끝이 없음을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거나 그림으로 그려져 나타나기도 한다(탄자니아의 마콘데 조각, 우자마 조각). 같은 개념들이 삶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을 나타내는 의식에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것은 소규모의 변화보다는 대규모의 계속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또한 모든 우주는 갑자기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없게 한다. 따라서 우주는 영원하고, 궁극적이고, 끝이 없다.

아프리카인의 눈으로 본다면 우주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두 개의 세계로 나누어질수 있으며 끝이 없는 무한한 것이다. 신에 의해 창조된 우주는 결국 계속성이 그에게 달려 있다. 신은 지속자이고 지킴이이며 우주의 지배자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1.4.3 우주의 힘과 질서

우주는 질서 있게 움직이며 여러 단계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첫째로, 자연의 법과 질서가 있다. 이러한 기능은 모든 지역에서 우주의 확실성과 안전성을 부여한다. 만약 예측할 수 없고 무작위로 변화한다면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할 것이며 삶과 우주는 위험에 빠질 것이다.
둘째로, 사람들 사이에는 도덕질서가 있다. 신은 사람들에게 도덕률을 주고 그럼으로써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수 있는 것이다. 이런 도덕률을 통하여 개인의 삶과 그가 속한 공동체를 보호하는 관습과 제도들이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도덕률은 사람들에게 문제를 해결하게 하고 어떤 것이 선하고 악한지, 잘되고 잘못되었는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리고 아름답고 추한지, 사람들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각각의 사회는 우주의 도덕률 때문에 그 가치를 공식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들 가치들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들, 사람과 신, 그리고 영들과의 관계, 자연세계와 사람들의 관계를 다룬다.

셋째로, 우주에는 종교적인 질서가 있다.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되고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삶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해석한다. 자연의 법칙은 신에 의해 직접적으로 또는 전달자(예를 들어 '하인' 또는 영들)을 통해 통제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사회의 도덕과 제도들은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그에 의해 궁극적으로 제한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 도덕들의 파괴는 신에게 반대하는 것이며, 가족의 사자(돌아가신 조상들)를 공격하는 것이므로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도덕과 종교적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강력한 금기가 있다. 삶의 모습, 말, 음식, 옷, 사람들의 관계, 결혼, 장례, 사회적 추방, 불행과 죽음에 관한 것들이다. 만약 사람들이 범법자를 처벌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를 처벌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에는 종교적 질서가 있다는 생각과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넷째로, 우주를 통치하는 신비한 질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질서에 대한 믿음은 전통약재, 주술, 주술사, 그리고 마법에 대한 자세에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힘은 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숨겨져 있는 신비한 것이다. 이러한 힘은 특별한 사람이나 영을 통해서 사용되어질 수 있다. 그러한 것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때는 죽은 사람을 볼 때, 환상, 육체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할 때, 다가오는 사건에 대한 예감, 그것들이 일어나기 전 어떤 것들에 대한 예언,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대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는 일등을 할 수 있다. 병자의 치료, 비를 오게 하는 것, 문제나 불행의 원인에 대한 추적, 도둑을 가려내는 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일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1.4.4 우주의 중심은 인간

아프리카인들의 창조신화에서 인간은 그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에 있는 존재로서 그 자신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망하며(한 발 떨어진 모습으로)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즉 모든 세계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인들은 우주를 인간에게 유용한 것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세상은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상을 이용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우주에 대한 이러한 생각과 자세는 아프리카 인들에게 아주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동물들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로 구분하고 있다. 식물들도 먹을 수 있는 것과 치료에 사용되는 것, 건물을 짓는 것과 땔감용으로 분류한다. 즉 어떤 것들은 물질적으로 자연의 것을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종교적 이유(의식, 상징 등으로)로 사용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주술적 목적이나 치료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인간은 우주를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살려고 노력한다. 우주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물질적, 주술적, 종교적 수단을 통하여 인간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우주의 주인이 아니다. 그는 단지 우주의 중심이며 친구이며 사용자일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자연의 법에 복종하고 도덕과 신비한 질서에 적응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잘못된다면 가장 피해를 크게 받는 대상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프리카 인들은 관찰, 사고, 그리고 오랜 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1. 5 아프리카인의 종교에 대한 개념

아프리카의 종교관에 대한 초기 연구들은 종교적 진화론이라는 설명으로 특징 지워졌다. 이 안에서 전통적인 아프리카인들은 종교적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 생활을 영위해 가는 단순화된 집단으로 분석이 되고 있다.

초기에 쓰여진 아프리카 종교관에 대한 연구서 들은 복음전파 보다는 문명화(civilizations)라는 사명을 품고 식민지 개척 세력들과의 긴밀한 유대속에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레오폴드 세다르 센고르(Leopold Seder Senghor)는 그의 학설에서 서구인들의 사고 방식과 경험이 체계화된 합리적 분석에 의해 환경에 반응하는 반면, 아프리카인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경험은 단지 모든 것을 정서적 반응을 통해서 이해한다는 측면에 "종합적(synthetic)"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자신 앞에 놓인 어떤 사물을 눈여겨볼 때, 그 사물에 대해 그들이 그것을 추상화 시켜서 이론화하는 것을 꺼려한다. 즉 사물과 인식의 주체인 자신이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보통 자신 앞에 놓인 사물을 만져보고 느껴봄으로서 그것이 자신의 일부분이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그것에 대해 어떤 명확한 진술을 하곤 한다. 예를 들면 바나나가 맛이 좋다는 것을 그들이 인식하기 위해 그들은 그것을 맛보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플레시드 템풀(Placide Tempels)은 자이레의 발루바(Baluba)족의 여러 가지 전통적인 생활상들을 관찰하고 나서, 자신의 관찰한 내용을 분석하여 기술하였는데, 그 후 그는 자신의 저술을 마무리지으면서 반투어를 말하는 모든 이들의 관념에는 "생명력(Vital- force)"을 가지고 있다는 더욱 확장되고 일반화된 주장을 하게 되었다.

John. S. Mbiti는 아프리카인들의 가지고 있는 모든 종교적, 철학적인 토대 밑에 항상 깔려 있는 근본적인 관념은 아프리카인의 '시간관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미래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들은 단지 과거와 현재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J. Jahn은 "존재(Being)"에 대한 4가지의 중요한 범주를 채택했다. 첫째로 "Muntu"의 범주는 신을 포함한 지성을 지닌 모든 존재들 예를 들어 영혼들과 친구, 이웃, 친척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존하고 있는 사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 "Kintu"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는 없으나 Muntu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식물, 동물, 광물과 같은 존재를 포함하고 있는 범주이다. 세 번째, "Hantu"는 시간과 공간의 존재를 포함하고 있는 범주이며, 넷째, "Kantu/Kuntu"의 범주는 미, 희비와 같은 양식의 존재를 포함한다.
힘과 존재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이해와 경험에 관한 템플의 관점을 정리하면 존재라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전제되어 졌으며 인식되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인식은 아프리카인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또한 아프리카인들은 우주에서의 신의 위력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의 그러한 인식은 그들의 종교적 믿음과 기대의 성취와 같은 행동들을 유발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의 종교적 철학 세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존재에 관해 철학적인 의문을 표시한다. 첫째,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이 경험한 것을 믿는다는 점, 둘째, 그 경험으로부터의 복잡한 문제들이 그들로 하여금 선하게 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게 한다는 점, 셋째, 그들이 환경에서 경험한 힘과 건전하거나 원활한 관계를 지닌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인의 신관은 존재나 생명을 주관하는 힘, 우주적인 작용 또는 시간의 개념보다는 이러한 관심사에 직접적으로 연루된다. 관계는 정말이지 생각과 표현, 아프리카인들의 종교, 철학 그리고 사회조직에 관한 근본적인 관심사 속에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

아프리카의 자연 및 지리적 환경

2003. 9. 25. 17:58
1. 아프리카의 다양성과 복잡성

아프리카대륙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나 편견 그리고 무지는 수세기 동안 유럽인의 사고의 특징을 이루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지도를 그릴 때 정보가 정확하지 않거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동물의 사진이나 아프리카의 자연경관으로 채워 넣었다.

60년대와 70년대의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는 미래에 대한 장미빛 청사진과 함께 낙관주의가 두드러졌으며 이국적인 정서, 야생의 자연, 그리고 낭만으로 대비되었다. 80년대 이후부터는 정치적 부패, 경제적 낙후, 환경문제등으로 기아와 빈곤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프리카는 극명한 대조와 다양성을 보이고 있는 대륙이다. 미국의 3.5배 크기로 아시아 대륙에 이어 두 번째로 큰대륙이지만 인구규모는 8억정도에 불과하다. 언어로 본다면 4개의 어족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으며 지구상에 알려진 1/3이 넘는 약 1000여개의 언어가 아프리카에서 사용되고 있다. 도농간 격차, 경제적 생활환경, 그리고 종교 같은 사회문화적인 다양성뿐만 아니라 식민주의, 민족주의 등으로 인하여 폭넓은 계층이 형성되어 있다. 반면에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민족들 사이에 강력한 보편적 공유요소, 즉 공통의 문화적 정체성이 존재하고 있다.


2. 아프리카 개발의 지리적 패턴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은 세계에서 최빈국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개발되지 않은 대륙으로 남아있다. 지난 20여년간 마이너스 성장, 지역간의 개발격차, 도시중심의 인구집중과 제반 문제의 발생 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발전 패턴은 저개발이라는 망망대해로 둘러싸인 "경제 섬", "개발 섬"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 지역들은 해안을 따라 형성된 극소수의 지역, 내륙의 일부 천연자원개발지역, 그리고 동부 아프리카의 고지대인 환금작물재배지역으로 제한된다. 주요상품생산 지역은 전체의 약 4%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지역에 거의 모든 도시인구가 집중되어 있고,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아프리카 상품의 3/4이상이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이는 다시 말해 경제적 자원의 분포와 인적자원의 분포에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아프리카의 철도운송망이 인구집중지역과 상품생산지역에 동일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으로서 잘 설명되어진다.  


3. 자연 및 지리적 환경

약 200만년 전에 팡게아(Pangaea)라는 대륙이 180만년전 라우라시아(Laurasia : 북아메리카와 아시아로 구성됨)와 곤드와나랜드(Gondwanaland : 남 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그리고 호주로 구성)로 분리되어 지금의 아프리카가 생성되었다. 적도가 거의 그 중앙을 지나고 있어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 지역이 열대성 기후대에 속하며, 대륙 북쪽으로는 북회귀선이, 남쪽으로는 남회귀선이 지난다. 서아프리카가 불쑥 튀어나온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은 적도 아랫부분보다는 윗부분의 면적이 더 넓다. 그러나 적도를 놓고 상하가 거의 대칭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나의 아크라에서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는 아프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본초 자오선(경도 0°)이 지나고 있다.

아프리카 지형 중 가장 특색 있는 지형의 하나는 동아프리카 지구대(Great Rift Vally ; Afroarabian Rift Valley)로 동경 30-40°에 걸쳐 있다. 이 거대한 지구대(그 폭이 30-80km 정도)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동쪽 끝에서 시작되어 남쪽으로 에티오피아의 홍해 해안에서 잠베지 강 유역까지 뻗어 있다. 이 지역은 물이 풍부하여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동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호수지역을 대호수지역(Great Lake areas ; 우간다, 루안다, 부룬디, 케냐, 탄자니아, 그리고 말라위가 이지역에 속함)라고 부른다.

아프리카는 지리적으로 안정육괴의 탁상지로서 광대한 고원지역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파른 해안은 만이나 항구발달을 미약하게 했으며 해안평야 발달이 미약하다. 대륙 전체가 좁고 기다란 해안지대 위로 가파르게 솟아올라 있으며 고대에 형성된 결정체의 바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고원과 같다. 대륙의 크기에 비해 고지의 산악지대와 저지의 평원지대가 작다.

고원은 크게 남동부 고원지대와 북서부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마그리브라고 알려진 북아프리카 지역과 사하라 사막을 포함하고 있는 북서부 고원지대에는 2개의 산악지대, 즉 아프리카 북서부의 아틀라스 산맥(투브칼 4165m)과 사하라의 아하가르(호가르) 산맥이 있다. 남동부 고원지대에는 에티오피아 고원과 동아프리카 고원이 있으며, 남아프리카 동부의 고원이 급경사를 이루며 하강하는 곳에 드라켄즈버그 산맥(타바나엔틀렌야나 3482m)이 있다.  아프리카의 평균고도는 670m의 고원지대로 중부는 초원지대 서부는 저지대를 이루고 있다. 고지대로 대표적인 것은 기니의 푸타 잘론(Fouta-Djalon), 나이지리아의 조스평원(Jos-Plateau), 그리고 카메룬의 아다마와(Adamawa) 고원 그리고 비헤 평원(Bihe Plateau)등이 있다.

아프리카의 지질구조는 변성암과 관련된 풍부한 금속원광에 비해 퇴적암과 관련 있는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매장량이 상대적으로 소량. 지형구조상 수자원을 이용할 수력발전은 용이함. 즉 시장의 부재라는 매우 기본적인 경제적 이유로 인해 실제로는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불균형한 개발은 물리적 환경과 천연자원의 분포결과에 기인한다고 주장되어 왔으나 현재의 아프리카의 저개발에 대한 이유로 물리적 환경이 중요하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발전을 가로막은 원인을 자연 및 지리적 환경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단조로운 해안선으로 인한 자연적 항구의 미발달과 강의 하구는 작은 늪과 습지가 존재하여 유럽인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지 않았다. 둘째, 고원구조는 강의 유속을 빠르게 하여 선박에 의한 내륙운송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예를 들어 나일강은 수단분지를 통과하여 흐르는데 이 지역에는 수드(sudd)라 불리는 부유식물이 넓게 퍼져있어 항해를 어렵게 했다. 셋째, 광활한 사하라 사막 같은 지형은 교류를 방해하는 분명한 장애물이었다. 넷째, 이러한 지형구조는 강우에 영향을 주었다. 강우는 사실 아프리카 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조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 요소에 해당한다. 게다가 강우는 계절 강우와 1년간의 강우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강우는 계절적으로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데, 이는 온대의 여름과 겨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대륙의 여러 지역에서 우기의 5, 6개월 사이에 실제 유용한 모든 비가 내리는 반면, 건기에는 거의 내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농업 생산, 가축 방목, 일반적인 인간 활동 등을 심각하게 제한한다.

남북 양회귀선간의 열대수렴대(Intertropical Convergence Zone : ITCZ)은 6월부터 1월까지 현저하게 이동. 이 이동은 거의 모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강우 현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역에 건기와 우기를 가져온다. ITCZ이 북쪽 지점에 머무르는 6월에는 북부아프리카는 우기가 되고 남부아프리카는 건기가 된다. ITCZ이 남쪽으로 이동하면 남부는 우기가 되고 북부는 건기가 된다.
약 1,170만 평방 마일의 전체 면적 중 9백만 평방 마일 이상이 북위 23°30′과 남위 23°30′사이의 열대 지역에 위치해 있다. 가장 열대적인 대륙으로서의 특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는 열대 우림 지역이 상대적으로 적고, 사바나가 열대 아프리카의 1/3을 구성하고 있으며, 대륙의 3/5 또는 열대 아프리카의 2/5가 사막이나 스텝이다

경제활동은 환경에 따라 기후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지만 인간과 가축 모두에게 전염병을 옮기는 체체파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이 지역에서는 말이나 소와 같은 가축을 기를 수 없으며 따라서 우유, 노동력, 그리고 퇴비등 많은 부분에서 제약적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인간에 의한 과도한 식생의 파괴는 사막화를 가져온다. 1970년대 초반에 차드, 니제르, 말리, 부르키나파소, 세네갈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서부 아프리카의 사헬 지역의 기아발생, 1984년, 에티오피아의 가뭄으로 인한 기아와 굶주림, 1990년대 초에 아프리카 뿔(Horn of Africa)에서 가뭄과 기근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어야만 했다.

정치적 불안정도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벌어진 정치 투쟁과 지역 갈등이 또한 악화되는 기후 조건을 심화시켰으며, 문제의 규모를 확대했다. 사회적 경제적 제도와 관련된 기후의 불안정이 지역의 저개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4. 인구문제

많은 전문가들은 환경보다는 오히려 인구가 지속적인 가난의 가장 심각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특히 1차 생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국가들의 인구 성장이 경제 성장을 앞지르는 한 그들은 가난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대륙 전체의 보건 조건은 한결같이 열악하고, 유아 사망률과 발병률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세 이하의 어린이가 전체 인구의 45%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으며 국내외적인 다른 요인들과 복합되어 난민문제를 발생시킨다.


5. 환경요소와 보건

아프리카의 환경은 다음과 같은 풍토병으로 이해 더욱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① 말라리아(Malaria) ; 2억 5천 노출,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아노펠레스(Anopheles) 속의 모기(학질모기)에 의해서 전파되며 감염된 환자의 피를 수혈했을 때도 감염된다. 주요 증상은 발열, 빈혈 및 비장이 붓고 갑자기 오한, 전율을 수반하는 체온상승이 시작되며 구토 심한 두통, 근육통, 발열이 있고 체온이 39-41도로 상승한다. 예방이 최선이며 말라리아 예방약(팔루드린, 키니네, 그리고 라리암 등등)을 체질에 맞게 선택한다. 매일 복용하는 것과 일주일에 한번 복용하는 것이 있다.

② 황열(Yellow Fever) : 가장 치명적, 세계보건기구에서 지정한 법정 전염병으로 예방주사를 맞고 국제공인예방접종증명서(일명 Yellow Card)도 발급해주며 10년간 유효, 병원체 바이러스는 여러동물(원숭이, 쥐, 기니팩)과 모기체내에서 증식하며 열대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모기(Aedes aegypti 모기)가 사람을 물어서 감염된다. 심한 환자는 황달과 당뇨, 출혈등을 나타내는 질병으로 뎅기(dengue fever)열과 유사한 특징을 나타내며 고열, 요통, 현기증, 쇠약, 구토증상을 나타낸다.

③ 주혈흡충증(Bilharzia, Schistosomiasis) : 대변 혹은 소변을 통해 밖으로 나온 충란(흡혈 디스토마;blood fluke)은 물속에서 부화하여 중간숙주인 우렁이(달팽이)에 침입하여 발육한 후 물 속으로 나와 종숙주인 사람의 피부를 뚫고 체내에 침입한다. 침입된 부분에 피부염 및 심한 소양증이 생기고 유충이 간이나 다른 기관에 침입하였을 때 점상출혈과 호산구 및 다핵백혈구의 침윤이 있다. 감염된 후 수일동안 독성 혹은 알러지성 발진이 있을 수 있다.

④ 아프리카 수면병(African Trypanosomiasis; sleeping sickness) : 쩨체파리(tsetse fly)의 흡혈로 전염되며 우기에서 건조기에 들어가는 시기에 하천 호수 웅덩이 주변에서 사람과 동물을 흡혈시 감염. 파리에 물린 피부가 붓고 퉁증 가려운 증상이 나타나며 임파선 종대, 전신쇄약, 무력감, 언어장애가 오며 혀, 손이 떨린다. 말기증상은 계속 잠을 자게 되며 결국 영양실조, 뇌염, 혼수로 사망하게 된다. 째체파리의 서식지에 DDT 5%의 유탁액을 살포하고 피부노출을 조심한다. 소 사육이 불가능(적도 서부, 및 중부는 소문화가 없음)하고 약 3500만명이 노출되어 있다.

⑤ 뎅귀열(Dengue Fever) : 모기(Aedes aegypti)가 전파하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성 열병으로 사람에게만 발생됨. 갑자기 오한과 함께 높은 열이나고 홍반성반점이 생기며 심한 두통과 전신의 근육통이 나며 관절통이 심하다.

⑥ 하천 실명증(River blindness, Onchoceriasis) : Simulium damnosum이라는 작은 파리에 의해 전염, 서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만 100만명 이상이 감염됨. 질병의 희생자는 신체가 심각하게 쇠약해지고 때로는 실명의 고통을 받는다. 20년전 서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감염이 많은 지역인 볼타(Volta) 분지 한 곳에서만 약 백만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진디등에(blackfly)에 의해 퍼지는 하천실명증은 서부 아프리카 하천 유역의 비옥한 지역에 인구 밀도가 낮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진디등에는 강과 가까운 지역에 서식하며, 대부분 강기슭이나 그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을 심각하게 감염시킨다.

⑦ 폐결핵(Tuberculosis), 척추성 소아마비(Poliomyelitis) : 영향결핍, 불결한 주거환경으로 도시 슬럼지역에서 만연됨

⑧ 에이즈(AIDS ; Acquired Immuno Deficiency Syndrome) :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가 있는 혈액에 의해 감염된다.

아프리카 인구 추이의 파악을 복잡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에이즈(AIDS)이다. 질병의 진행에 대한 연구는 놀라울 정도이다. 1990년 말,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구가 8백만에서 1천만 명이 된다고 추정했다. 세계인구의 10퍼센트에 불과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전체 에이즈 감염 인구의 25~50퍼센트가 살고 있다. 1994년 모로코 마라케시(Marrakech)에서 열린 제8회 아프리카 세계에이즈회의에서, WHO는 세계 에이즈감염자 예상인구를 1,500만으로 높였으며, 아프리카 총예상인구는 1천만으로 급등했다. 1999년 WHO는 HIV/AIDS 보균자가 3,400만이며, 이중 70퍼센트(2,400만 이상)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있다고 추정했다. 15~49세의 총 성인인구의 8.5퍼센트가 감염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린이와 여성 감염비율은 이보다도 훨씬 더 높다. 세계적으로 130만 명의 미성년 아동이 감염된 가운데, 그중 1백만 명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세계 에이즈 고아 대부분(90퍼센트 이상)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으며, 1990년 HIV 양성으로 태어나거나 혹은 어머니의 모유 수유로 감염된 50만 아동 중 거의 90퍼센트가 아프리카에 있었다. 남성 감염자 10명당 12명의 여성이 감염되어 있으므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감염되어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에이즈에 관련해 수치심을 느끼고 부인한다. 또한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한다. 또한 에이즈는 가까이 가거나 접촉만 해도 옮길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도 커다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HIV는 지역에 따라 다른 유형의 감염 경로를 보여준다. 대체로 서양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두 개의 감염 경로를 정리할 수 있는데 첫 번째 유형은 주로 동성애를 통해 감염되는 경로로 서방국가에서 흔히 발견되는 형태이다. 남성 동성연애자가 주를 이루며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호주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밖에도 주사 바늘을 통한 감염도 포함되어 있는데, 역시 마약 사용이 빈번한 서방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이성간의 성 접촉으로 감염이 되는 것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인도 등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감염 경로이다. 이성간의 성 접촉에 의한 감염이라 남녀간의 감염비율은 동등하다. 이 형태는 그 범위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형편이며 더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감염자를 통한 간접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모-태아로 HIV 바이러스가 옮겨가는 수직 감염이 그 대표적인 형태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특히 높은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6. 식민주의와 탈식민지 정책의 영향

현대 아프리카 지도는 여러 면에서 식민 시대 지도와 동일하다. 자연적인 분리(산, 강 등)나 공간에 대한 고유한 개념(민족 영역, 전통적인 왕국 등)과 거의 관계가 없는 기존의 국가 경계에서 이런 사실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 중심지와 운송 시스템은 식민지경영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아프리카 정부들은 독립이후 수입 대체 전략 및 수출 진흥이 탈식민지 개발 정책의 주요 골자였다. 그러나 지난 30년간의 기록은 일반적으로 실패로 간주되고 있다. 식민 제도의 많은 특징과 관행이 잔존하고 탈식민지 상황의 기본 요소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주요 수출품은 1960년대와 근본적으로 동일하고, 한두 가지의 1차 생산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즉 농업, 광물, 목재가 여전히 아프리카 외화 수입의 거의 90%를 차지한다.


7. 아프리카의 도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무한한 잠재성에 주목하면서 마지막 남은 대륙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을 효과적으로 연결시켜줄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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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알고 떠나자!

2003. 9. 25. 13:49
1.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와 편견

  타잔속의 아프리카, 부쉬맨, 정글, 사냥과 채집, 원시인, 현대문명생활과는 동떨어진 생활. 식인종과 식인풍습, 잔인한 종교와 의식, 난폭한 사람들 등등
  독특한 아프리카의 관습과 제도는 환경에 적응한 문화 ; 일부다처제, 신부값, 조상숭배의식, 주술사, 성년식, 할례 등등
  가뭄과 기아, 내전 등등 사람이 살수 없는 곳
  아프리카인들은 모두 흑인 ; 흑인이 다수이나 백인, 아시아인, 그리고 칼라드(Coloured)등 다양한 인종이 공존.
  아프리카에도 위성안테나, 핸드폰, 컴퓨터, 인터냇 카페가 있다.
  아프리카는 덥다? ; 이디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을 잇는 동남부 아프리카 지역은 소림과 장초가 우거진 사바나 기후로 고산기후지역이며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지는 4계절이 있다. 레소토의 산간지방에서는 약 2개월간 스키장이 열림.


2. 아프리카는 다양성의 대륙

  아프리카는 미국보다 3.5배나 크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으로 모두 53개국이 존재. 아프리카의 기후, 지형, 자연은 매우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형성.
  아프리카는 인류의 고향으로 채집과 사냥에서부터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수단이 존재.
  아프리카의 다양성은 주로 역사적 원인 ; 식민통치로 인한 언어 문화적 구분, 식민지 국가의 규범과 가치의 강조, 특정 부족집단을 고려하지 않은 국경선의 분할, 부족의 동일성을 정치화함으로서 발생되는 부족간 국가간 내전 또는 분쟁발생.


3. 아프리카에 대한 이해와 자리매김

  15세기말부터 리빙스턴에 이르기까지 백인탐험가들에 의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발견"이라는 서양의 시각과 사고가 너무나 지나티게 강조되었기 때문에 아프리카는 역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고 "검은 대륙"으로서 고립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게됨.
  아프리카는 항상 세계사 속에서 일정부분 자리메김을 하고 있었다.  ; 아프리카는 인류의 기원지, 인도양 무역을 통한 아라비아와 중국과 교류, 사하라 사막횡단무역을 통해 금과 기타산물의 교역.
  1500년부터 시작된 서구열강의 침입은 아프리카역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파괴적인 시기를 초래. 노예무역과 식민지 경영.
  식민지 지배시기뿐만 아니라 독립이후에도 일방적인 서구의 정치체제는 일당독재나 군사독재로 이어졌고 빠른 인구성장과 도시화는 새로운 문제로 불안정을 야기시킴.
  서구와 서구문명의 영향은 오늘날 아프리카를 변형시키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 1980년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등 국제금융시장의 "조건부 구조조정"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생활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 미국주도의 글로벌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는 추세.  


4. 아프리카에 대한 전망과 시각

  아프리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자들은 정치적 불안, 경제적 불황, 국제적 부진과 보건 및 생태학적 위기들이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
  아프리카 문제를 모두 서구열강의 책임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식민시대가 종식되고 지도자를 비롯한 아프리카인들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 훌륭한 지도자는 아프리카문제를 해소하고 발전을 가속화시킬 것이라 기대. 냉전의 붕괴로 인한 국제사회의 변화로 인해 아프리카의 민주화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
  아프리카는 현재 격심한 사회적 변화가 진행중인 '현재진행형'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독립한지 40년이 채 안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수세대가 걸릴 수 있으며 고통과 분열이 뒤따른 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함. 독립한지 이제 겨우 한세대가 지난 아프리카에 대해 아프리카문제에 대한 질문은 "대답하기 너무 빠른 질문".
  아프리카에 대한 이해는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적 구분보다는 상호의존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 도시생활자들은 도시환경에서 발생한 변화를 받아들였듯이 시골 생활로부터 영향받은 가치관, 사회관계, 후원저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인들은 권위를 상속받은 족장과 대중이 선출한 대표자의 중요성과 적법성을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경험은 상황, 선호도, 필요에 따라 통합되도 새로운 영향과 과거의 영향, 시골과 도시의 관념과 가치를 용해시키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의 적응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남. 아프리카인들의 문화적 생명력과 창의성은 아프리카인의 일상생활속에서 중요하게 발현되고 있으며 활력을 주고 있다.
  공통의 과거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미래의 목표에 대한 연대의식에서 비롯된 통합적인 힘과 공유경험이 아프리카국가간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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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들의 징벌과 '말'의 힘

2002. 10. 20. 13:53
아프리카인들의 징벌과 '말'의 힘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 신이 그를 처벌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인은 인류의 도덕적 생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덕률을 귀하게 유지하고 떠받든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서 행한 잘못을 내세에서 징벌 받는다고 하는 신앙은 거의 없다. 처벌이 내린다면 그 처벌은 현세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불운은 그 불운을 당한 사람이 신이나 영이나 자기가 속한 사회의 장로나 다른 구성원에게 어떤 도덕적인 혹은 제의 적인 행위 규정을 범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바냐르완다(Banyarwanda)족과 바룬디(Barundi)족은 신이 징벌하는 행위를 "신은 침묵 속에서 복수를 행한다"라고 하는 잠언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 또한 누에르(Nuer)족은 질병을 환자가 그 질병을 앓기 전에 범한 과오와 연결시키고 신의 처벌이 그 환자에게 내리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을 바친다. 결국 이들은 질병에 대하여 두 가지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행위에 강조를 두고, 그러한 행위를 하면 어떠한 질병이 예상될 수 있다고 하는 태도이고, 또 하나는 질병 자체에 강조를 두어 그 질병을 야기케 한 과오를 과거의 행위 속에서 되찾는 행위이다.

각개 공동체의 사회는 도덕적인 혹은 법률적인 범법 행위에 대한 제나름대로의 배상과 처벌 형식을 가지고 있다. 사술이나 마법을 행사하다든가, 살인이나 간음을 범했다든가 하면 사형에 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우연하게 동료를 다치게 했다든지, 이웃 사람의 밭에 자기네 양이 들어가 감자넝쿨을 먹어 버렸다든지 하면 소나 양이나 혹은 금전으로 대가를 지불하는데 이르기까지 보상과 처벌의 정도는 극히 다양하다. 관습이나 제의의 규범을 손상하거나 깨뜨리는 여러 형태의 위반을 통하여 야기되는 논쟁이나 위약은 일반적으로 그 지역의 연장자들이 취급한다. 물론 전통적인 추장이나 통치자가 있는 곳에서는 그들이 그 지방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또한 그 법을 집행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정부의 재판소가 있어 이를 맡고 있다. 그 중에 어떤 재판소들은 장로들의 협조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관습법과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다.

재판을 할 때 저주를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본적인 원리는 다른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유죄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면 그를 저주함으로써 그 저주의 말에 의하여 악이 그에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 신념이다. 주로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저주할 수 있지, 그 역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저주는 부모나 아저씨, 아주머니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또 가장 고약한 저주는 임종시에 하는 저주이다. 일단 그 저주자가 죽으면 이를 취소할 방도가 실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참회를 하고 저주를 거두어주기를 원하면, 그 저주를 한 사람은 그 저주를 스스로 취소할 수도 있고, 또 그 저주가 심각한 것이었으면 제의를 통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부어진 저주가 이루어졌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약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죄가 없으면 저주는 기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공식적인 저주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마치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특별히 가족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관계를 저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즉 아프리카 사람들은 말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다든지, 사회적인 위치나 공직에서의 직위가 높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속에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는 말속에는 "힘"이 들어 있다. 그래서 특별히 위기에 처한 경우에 발언되는 부모의 말은 행운을 "낳기도"하고, 저주, 성공, 평안, 슬픔, 혹은 축복을 "낳기도"한다. 또 주술사의 말은 그가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는 그 약을 통해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병을 치유하거나 불운을 예방해주는 것은 약초보다도 사실은 그 주술사의 말의 효험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저주"와 "축복"은 지극히 실제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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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주술과 마법의 힘

2002. 10. 20. 13:52
아프리카의 주술과 마법의 힘

전통적인 환경 속에서 자란 아프리카인이라면 누구나 신비스러운 힘이 주술이나 마법사를 통해서, 혹은 직접적인 과학적 설명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스러운 현상을 통하여  스스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또 직접 그러한 정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이거나간에 그러한 신비스러운 힘에 대한 신앙을 가지지 않은 아프리카 사회는 하나도 없다. 그러한 힘은 여러 모습으로 스스로를 나타내기도 하고, 또 그처럼 여러 양태로 직접 경험되기도 한다.

사람들을 불 위로 걸어가게 한다든지, 못들이 박혀 잇는 판자 위에 눕게 한다든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사람을 저주하고 해를 입히고 죽이기조차 할 수 있다든지, 사람을 동물로 화하게 한다든지(lycanthropy), 뱀에다 침을 뱉아 그 뱀이 갈라져 죽게 한다든지 하는 힘도 있고, 도둑을 얼이 빠지게 해서 그대로 범행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게 하는 힘도 있으며, 생명이 없는 사물을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것이 되게 하는 힘도 있고, 어떤 전문가들로 하여금 비밀이나 감추어진 정보나 미래를 볼 수 있게 하는 힘이라든가, 도둑이나 미결수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힘 등도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이같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같은 힘을 여러 모로 실제 생활에 적용하려고 애를 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부적을 달고 다니고, "약"을 먹기도 하고, 또 그 "약"을 몸에 바르기도 하며, 여러 전문가들, 특히 점술사와 주의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이 힘의 악 영향을 받지 않고 이에 대처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해야 그러한 힘이 강하게 "농축되어 있는"사물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의논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러한 힘에 정당하게 접근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재산을 희사하거나, 놀랄 만한 금액을 지불하기도 한다. 비록 하나같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그 힘을 두려워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실지로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서 그러한 힘과 부닥쳤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이 신비로운 힘은 결코 허구가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그것은 실재하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생활 속에서 그 힘을 그들의 생각으로부터 떼어낼 수가 없다. 아프리카인이면 특별히 주술이나 사술이나 마법을 통하여 나타나는 이 힘과 관련된 신앙과 행위에 의하여 좋든 그르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간에 이 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에 대하여 충분한 논의를 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주술, 사술, 마법에 관하여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보기로 한다.

주술은 일반적으로 "선한 주술"과 "악한 주술"로 나누어 생각한다. 선한 주술은 사회가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사회가 이를 존중하기도 한다. 이 신비스러운 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 공동체의 복지를 위하여 이 힘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로 전문가들, 특히 주의, 점술사, 우사 등이다. 또 이러한 "선한 주술"은 질병의 치유, 불행한 일에 대한 예방, 악한 "힘"이나 마법을 방지하고, 약화시키고, 혹은 파괴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점술사나 주의는 사람들을 위하여 부적, 주문, 가루, 넝마조각, 깃털, 어떤 것의 상, 특별한 주문, 몸에다 상처를 내는 일 등을 통하여 많은 신비로운 힘을 나타내도록 하고 있다. 이 모든 힘을 그는 식구들이나 가족, 들판의 곡식이나 가축 등 온갖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인들의 집 안에 들어가 보면, 여러 집들 한 가운데에 끝이 갈래가 진 장대가 세워져 있다든가, 어느 집 지붕 위에 항아리 조각을 올려놓고 있다든가, 집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문간을 넘어 몇 줄로 재가 뿌려져 있다든가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또 들판에 가면 땅에다 뿔을 박아놓은 것이라든가, 혹은 나무에다 낡은 호리병을 매달아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또 아기들을 보면 목이나 팔목에다 천을 둘둘 감아놓은 것이라든지, 온통 머리를 삭발을 하고는 한 군데만 머리 한 움큼을 남겨 두었다든지, 또 그 남은 머리 한다발을 땋았다든지 하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물건들이나 징표들이 있는데, 이들 모두는 신비한 힘에 대한 사람들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것은 재앙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행운이나 번영을 위한 것들도 있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자녀의 번영을 "칭송"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고 또 그러한 일을 두려워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신비한 힘으로 하여금, 그 칭송 받은 자녀들이나 그들의 번영을 해치거나 파괴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아프리카의 가정이나 들판이나 소유물이나, 심지어 그들의 몸에 지니고 있는 징표나 물건이나 장식품들의 의미를 보는 눈, 그것을 "읽는" 눈,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눈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재난을 방지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것은 자기들이 지니고 있거나 사용하는 이러한 물건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분명하게 믿고 있다. 이를 주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힘이 그 사물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솟아난 힘을 그 사물이 대표하고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 힘은 신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공급되기도 하고, 영이나 살아있는 사자를 통하여 직접 전달되기도 하며 우주안에 있는 자연의 보이지 않은 힘의 일부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물들이 어떻게 이해되든 상관없이 이러한 물건들은 그 효험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물건의 소유자는 그것을 버리고 새 것을 갖거나, 아니면 마치 자동차의 축전지처럼 그 낡은 물건이 다시 "힘"으로 채워지도록 충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 점에서 종교와 주술은 한데 융합되어진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은 없다. 몇 가지 점에서 주술이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막연한 몇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구별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들은 그들이 간청하고 사용하는 신비한 힘이 궁극적으로는 영의 중개를 통하여서나간에 신의 도움을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을 그들이 직능으로 삼고 있다. 결국 이 "힘"은 물질적인 수단을 통하여 기능하는 "영적"인 힘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악한 주술이 그 인간이나 그 인간의 소유를 해치기 위하여 사용된다고 하는 일종의 신앙을 지니고 있다. 흔히 주술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주술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신앙 때문에 이 악한 주술에는 여러 주술적인 행동 이외에 사술이 덧붙여 행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이러한 신념이 어떤 영적인 데서 기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의 부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려움, 의심, 질투, 모함 등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 옷, 기타 물건 등, 흔히 "적"이 사용해서 자기들에게 악한 주술을 행할 수 있는 자기와 직접 접촉이 있었던 주변의 것들을 남겨두지 않으려 한다.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은 태워버리거나 잘게 잘라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것들이 "해로운"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 머리카락이나 손톱의 주인이 해를 입게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적이 발자국을 가시로 찔러 그 발자국을 낸 사람을 해칠 거라고 생각하여 발자국을 남기는 것조차도 두려워한다. 이같은 현상을 프레이저(James Frazer)는 "감염주술"이라고 구분한 바 있다. 그가 법주화한 또 하나의 주술로는 "유사주술"이 있다. 이 유사 주술의 예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얼마든지 들 수가 있다. 이것은 비숫한 것은 비숫한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는 신념을 담고 있는 주술이다. 예를 들면 특정한 사람을 나타내는 인형을 만들어 이를 태워버리거나 찢어발김으로써 바로 그 인형으로 표현된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범주의 주술적인 신앙이나 행동은 선한 목적을 위해서나 악한 목적을 위해서나 모두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힘이 "검은 주술"이라든가 "악한 주술", 혹은 "사술"로 저주를 받는 것은 그 힘이 악의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전문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사술"은 어떤 사람의 음식이나 음료에 독물을 집어넣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것은 학문적인 입장에서의 규정이다. 아프리카인들의 경우에 사술은 신비한 힘을 반사회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술사들은 그들 공동체에서 가장 두렵고 미움을 받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 사술사들은 다른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이 재산을 해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다고 믿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사술사들이 자기들의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파리나 뱀이나 사자나 기타 동물들을 보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질병을 지니고 가게 한다든가, 침을 뱉고 비밀한 주문을 외어 그 침이 일정한 사람에게 흘러가 그를 해치도록 한다거나, 그러한 악한 주술을 행하는 데 사용하기 위하여 무덤을 파헤쳐 죽은 시체의 살이나 뼈를 뜯어간다거나, 영을 충동시켜 어떤 사람을 공격하거나 사로잡게 한다고 믿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이 부닥치거나 경험하는 여러 질병, 불운, 잘못된 일, 사고, 비극, 슬픔, 위험, 불가사의한 불행한 일 등을 사술사나 마녀, 혹은 마법사가 이 신비한 힘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믿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학질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학질모기가 그 아이를 물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을 당하다 죽었다고 하는 과학적인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가 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왜 그 모기가 다른 이의 아이를 물지 않고 자기 자식을 물었는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만족스러운 유일한 해답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사람"이 그 모기를 보냈다던가, 아니면 자기 자식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악한 주술을 누군가가 행사했다고 하는 설명이다. 이러한 해답은 물론 과학적인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프리카 인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대답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우리는 쉽게 모기의 해독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우연한 사고, 불임, 불운, 그리고 유쾌하지 못한 많은 경험들은 언제나 우리와 더불어 함께 있다. 이러한 모든 일이 아프리카 인들에게는 순수히 물질적인 혹은 육체적인 경험만일 수가 없다. 이 모든 일은 깊은 종교적 성격을 지닌 "신비한" 경험들이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과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이 무어라고 이야기하든 간에 이러한 일들을 거리낌없이 이야기한다. 그들은 그들의 현실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일어나는 재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직접적으로나 이 신비한 힘의 사용을 통하여 누군가에 의해서 "야기"된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 신비한 힘을 사용하는 경향이 바뀌어지고 잇는데, 그 예를 우리는 이른바 "돈을 배로 늘리는 사람들"의 경우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 소동은 서부 아프리카에서 많이 일어났던 일이다. "돈을 곱으로 늘리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지정된 장소에다 일정 액의 돈을 놓아두면 그 돈을 "기적적"인 주술적 방법을 통하여 "배로" 늘려주겠다고 말하고, 그렇게 되면 돈의 주인은 잠시 동안에 큰돈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속인다. 사람들이 그대로 하고 나서 다시 돈을 찾으러 가보면, 상자나 주머니는 텅 비어 있거나 아니면 돌, 모래, 나뭇잎, 혹은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교회 목사를 포함해서 교육받은 사람들조차도 이 "돈을 배로 늘리는 사람"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법이란 말은 더 일반적이고 넓은 의미에서는 주로 비밀한 방법으로 신비한 힘을 악하게 이용하는 모든 종류의 행동을 서술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마법"이라는 용어의 가장 일반적인 용법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지든 신비한 힘을 해를 끼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아무튼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하여 이 힘을 사용하는 것을 서술하여 "악 주술화"한다든가 "사술화"한다든가 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간단히 "마법을 걸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쉬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몇 가지 주요한 점만을 요약하고 이 장을 마치려 한다. 아프리카인들은 우주 안에 있는 신비한 힘을 지각하고 있다. 이 힘은 궁극적으로는 신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질적인 사물과 영적인 존재 안에 있든가, 그러한 것들을 통하여, 혹은 그러한 것들로부터 온다. 이는 우주가 정지되어 있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살아 있고", 강력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신비한 힘에의 접근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계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 힘을 절대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신이며, 영과 살아 있는-사자는 그 제어력의 일부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몇몇 사람만이 그 힘의 약간을 조종하고 사용하며 대처하는 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공동체는 이 세력이나 힘을 유용한 것으로 경험하면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여기고, 중성적이거나 해로운 것으로 경험하면 악한 것으로 여긴다. 유익한 면으로는 신비한 힘이 치유, 방어, 생산, 예방 등의 목적을 위하여 이용되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부적, 호신부, 기타 여러 가지 주물들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소유물에 넣어두거나, 가옥들 혹은 들판의 밭에다가 둔다. 이러한 "약"이나 힘을 사용하거나 만들거나 나누어주는 주된 취급자들은 주의와 점술사들이다. 부정적인 면으로는 그 힘이 희생자의 건강과 혼을 "먹어치우"든가, 사람들을 공격하든가, 불행을 야기하거나, 삶을 안락하지 못하게 하든가 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마법사(여자), 마술사(남자), 사술사, 악한 주술을 행하는 주술사, "사악한 눈길"을 지닌 자 등은 모두 이 힘을 반사회적이고 해를 끼치는 활동을 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때때로 각 공동체는 사술사와 마법사를 "냄새를 맡아" 찾아내거나 사냥하듯 뒤져내어 그들을 징벌하고, 그들의 머리를 "식혀주며", 그들을 취료해주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대응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그러한 "악의 행사자"들이 실재거나 그저 상상이거나간에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끊임없이 이들 악행자들이 사악한 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주술사가 우리역사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1905-7년까지 탕가니카(지금의 탄자니아)에서 독일 식민정책에 저항한 반란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마지마지(Maji Maji)반란이라고 한다. 이는 독일의 가혹한 식민통치에 반대하여 저항한 사건으로 물에 기장과 옥수수를 혼합한 액체를 몸에 바르면 총알이 피해간다는 일종의 믿음을 갖게 하였다. 마지라는 말은 스와힐리어로 '물'을 뜻하는 단어로 주술사의 주술이 포함된 것이었다. 이 행위는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 여러갈래도 갈라져 있던 단체들을 통합하였으며 아프리카인들에게 강력한 저항의지를 가져다 주었다.

또한 가장 가까운 예로 2002 월드컵 개막전때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를 들 수 있다. 세네갈 팀은 주술사를 대표팀에 함께 데리고 와서 전날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루고 축구골대에 주술의 힘이 든 약을 발랐기 때문에 경기에 이길 수 있었다고....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

아프리카인들의 문제해결사 "주술사"

2002. 10. 20. 13:50
아프리카인들의 문제해결사 "주술사"

아프리카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주술사(주의, 주술의)이다. 주술사는 동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 문화권에서는 "음강가(mganga)", 남부아프리카의 코사족은 "잉기라(ingira)", 줄루족은 "이쌍고마(isangoma)", 그리고 소토족은 "응가카(ngaka)"로 불리어지며 그 의미는 "치료사", "약초인(전통 한의사와 같은 의미)", "점술가", "전통의"로 해석된다. 이들은 모든 크고 작은 공동체의 친근한 상담자가 되기도 하며 의료인이자 주술과 점술을 행하기도 한다. 즉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주술사를 찾아가서 상담한다.

주술사가 되는 방법은 일종의 신내림(불림)을 받아야 하며 훈련 자체가 완벽하게 형식화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훈련은 반드시 일종의 도제 적인 훈련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이 수업기간동안 여러 가지 약초, 나뭇잎, 뿌리, 열매, 나무껍질, 풀 광물, 죽은 곤충, 뼈 물질을 태운 연기, 동물과 곤충의 배설물, 조개, 알 등등이 가지는 의학적 치료효과와 그 사용법에 관한 지식을 터득하여 질병에 대한 치유방법을 습득한다. 동시에 주술과 점술을 읽혀 영혼과 살아있는 사자의 본성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주의가 지니고 있는 의무는 그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도 다양하다. 그리고 그들의 의무는 다른 전문가들의 의무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기리야마(Giriama)족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음강가에게 사랑의 묘약을 구하려고 한다. 사랑의 고민까지도 음강가와 상담하고 있으며 음강가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며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신비스러운 힘을 소유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음강가에게 사랑의 묘약을 빌어 써야 한다면

   나는 그리 하리다

   ........

   중략

   ........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니 묘약을 주오

   그녀가 나를 보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오! 음강가여 말을 해주오

   사랑하는 그대에게 사랑을 얻고파라

   킹옴베, 나는 그대의 사랑을 고뇌하고 있소.




은데벨레족의 주술사는 새로 지은 가옥의 출입문을 세우는데 사용하는 약물을 칠한 나무못을 마련한다. 그리고 마법이나 주술에 의해서 가해지는 영향을 막기 위해 싸움을 하고, 그 효과가 오히려 그러한 행동을 한 주인공에게 되돌아가게 한다. 그리고 아잔데족의 주술사는 환자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임박한 재난에 대한 경고를 하기도 한다. 그는 또 사냥이 잘 되게 하기도 하고 농사가 잘 되게 하기도 한다.

위의 사례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주의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질병이나 불행한 일에 그들이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전통 의학에서는 병을 유발하는 문제를 현상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이 아닌 병의 원인에 대한 영적 측면과 육체적 측면을 통합해서 보려고 한다. 따라서 전통 의학에서 주술사는 단순히 병의 치유자로서 뿐만 아니라 부족 사회의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역할도 수행한다. 병의 원인이 정령이나 조상신들의 분노에 의한 것일 경우에는 제례의식으로 치유하고, 육체적인 질서와 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병이 생겼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여러 가지 약초를 이용해서 치료하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주술사는 굳이 우리의 예와 비유하면 무속과 한의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이러한 질병이나 불행한 일이 대체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품고 있는 악의나 그에게 행한 악행 때문에 야기된다고 믿고 있다. 즉 사술이나 마법을 통하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의는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야 하고 누가 그러한 질병을 유발케 했는지 그 범인을 밝혀내야 하며, 병을 진단하여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하고, 재난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책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질병이나 불행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주의는 심리적인 방법과 육체적인 방법을 함께 쓰고 있다. 즉 주의는 육체적 방법과 "영적"(혹은 심리적) 방법을 다 적용하여 고통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괜찮다는, 혹은 모든 일이 잘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사실상 주의는 환자에게 의사이면서 동시에 마치 교구 목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질병이나 재난을 종교적인 것으로 경험한다. 따라서 그러한 사실들을 종교적으로 접근할 것을 사회는 요청하고 있다. 주의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종교적(혹은 종교 비슷한) 태도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 그러한 노력은 순수하게 종교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릇된 종교적인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양자의 혼합물이 될 수도 있다. 질병이나 재난을 다루는 어떤 태도를 보면 그것은 분명히 아무런 명백한 가치를 찾을 수 없는 행위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라 할 지라도 그것은 심리적인 활력을 지니고 있음에는 틀림없고, 환자를 치유하거나 고통을 받는 사람을 도와주는 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어떤 사람이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하자. 그러면 사람들은 그에게 마라리아균을 가진 모기가 그를 물었기 때문에 학질을 앓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환자는 이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다. 어째서 다른 사람은 물지 않고 하필이면 그 학질모기가 자기를 물었는가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물음이 제기되었을 때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어떤 사람이 그 모기로 하여금 특정한 사람을 물도록 주술적인 작용을 통하여 "시켰다"(혹은 "보냈다")고 하는 설명이다.

사람들이 질병이나 재난을 "종교적"인 경험으로 인식하는 한 전통적인 주의는 계속 존재할 뿐만 아니라 더욱 번창해질 것이다. 현대의 병원이 질병의 육체적 측면을 치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질병과 재난에는 현대의 의학이 다룰 수 없는 고통의 종교적 차원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 환자들은 병원에도 가고 동시에 주의에게도 찾아간다.

둘째, 주의의 또 다른 임무는 예방의 조치를 취하는 일이다. 대체로 이러한 대응조치는 주문을 외운다던가 부적을 가지게 한다던가, 필요한 집이나 들판에서 제의를 행한다던가, 약을 먹거나 몸에 바르게 한다던가 하는 일들이다.

주의는 또 출산력을 증가시키거나 어떤 일이 좋은 결과를 초래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셋째, 사술사를 몰아내거나 마법사를 찾아내거나, 저주를 물리치고 영과 살아 있는-사자(living-dead)를 통어하는 것도 역시 주의의 임무에 속한다. 그들은 대중들이 알지 못하거나 거의 무지한 여러 형태의 힘이나 자연의 힘에 근접할 수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주의는 사회가 지니고 있는 희망, 곧 건강에 대한 희망,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방어와 안전에 대한 희망, 번영과 행운에 대한 희망, 손상이나 부정이 일어났을 때 이를 제의적으로 정화하려는 희망 등을 상징한다. 이 주의들은 그들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결코 바보들이 아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지성을 갖추고 있고, 자기들의 일에 스스로를 봉헌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직업인들이 그렇듯이 자기 직무에 충실할 뿐 부유하게 되지 말아야겠다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어떤 나라에나 또 어떤 직종에나 이득을 얻기 위해서, 혹은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기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프리카 주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또 순수한 주의가 자기들의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손해를 끼치는 일을 행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주의의 활동 중에서 어떤 직무의 남용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일 때문에 주의의 직무 자체를 저주하는 것은 극히 정당하지 못한 일이다.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마을에서나 공동체에서 주의는 그들의 친구가 되고, 목회자의 구실을 하며, 정신분석학자이고 의사인 것이다.

현대화된 오늘날의 도시에서조차 주의 중의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직업 자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번영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도시생활의 긴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필요를 요청하는 정황에 빠지게 한다. 이때 주의들은 전통적인 방법을 가지고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도시에 사는 주의보다는 시골에 있는 주의가 더 신뢰할 만하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비인격적 생활 때문에 그러한 인상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정직한 방법이든 부정직한 방법이든 간에 재빠르게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도시의 화폐경제 탓이기도 한 것 같다. 주의는 앞으로도 아프리카 사회에서 여러 세대 동안 끊임없이 지속할 직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의의 필요는 현대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사람들의 요청이 증가한 이래로, 그리고 그러한 결핍의 충족이 집중되어 있는 도시생활이 늘어난 이래로 더 절실해지고 있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적인 정치인들도 주의와 더불어 그들의 문제를 상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한결같이 주의를 상당히 높은 위치에 두고 있고, 그러한 태도로 인하여 주의라고 하는 직종은 그 지속이 보장되는 것이다. 케냐에서는 길거리에서 쉽게 주술사들이 내건 광고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빈민가나 소외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주요 고객들은 하층 민중들이다. 온갖 질병에서부터 인생의 고민, 사업운, 불임상담, 정력부족, 미래의 삶에 대한 예언등 그들이 다루고 있는 분야는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모든 문제를 포괄할 만큼 광범위하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

아프리카인들의 남자들은 결혼하려면 신부값이 있어야 한다.

2002. 10. 20. 13:48
아프리카인들의 남자들은 결혼하려면 신부값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결혼은 자유로운 결혼일까? 아니면 매매혼일까? 쉬운 말로 보통 평범한 결혼커플들은 남자는 살집을 마련하고 여자는 그 집에 필요한 가재도구를 사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삐툴어진 사람들의 결혼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어떤 물질적 보상 비슷한 경제적 지원을 받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결혼은 팔고 사는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인들은 돈이나 재화의 형식으로 신부값(bride-price, bride-wealth ; lobola, lobolo)을 지불함으로서 신랑은 신부와 결혼할 권리 및 신부가 낳은 아이에 대한 권리를 허락 받게 된다. 즉 결혼에는 재화와 노력봉사(신부값으로, 신부값 대신으로 또는 신부값을 줄이기 위해) 등의 물질적인 보상이 뒤따르고 이것이 새로 이루어지는 결연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뒷받침이 된다. 즉 일종의 "결혼계약서"이며 "서약서"라고 할 수 있다.

생각에 따라 이 신부값이 결혼을 할때 신부를 사고 파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으나 이 제도는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독특한 것으로서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신부값은 첫째로 결혼으로 인한 한 사람의 일손을 잃게 되는 신부집에 대한 물질적인 보상이다. 둘째로 이 신부값은 장차 며느리를 볼 때 지불해야 하는 신부값으로 충당되기도 한다. 셋째, 이렇게 신부값을 받음으로서 신부는 그 자신과 그 가족의 위세를 얻기도 한다. 넷째 신부값은 결혼생활을 보장하는 기능도 있다.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 신부값의 양과 결정방법은 종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은구니(Nguni)족은 신부값은 협상과 타협에 의해 조정(예를 들어 할인)이 가능하였고 종종 할부에 의한 분할납부가 가능했다. 그러나 소토(Sotho)족에게는 모든 신부값이 결혼 전에 전달되었다. 할인이나 할부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용납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케냐 나이로비의 택시기사 : 신부값은 결혼해서도 형편이 닿는대로 계속 갚아나가고 있다.

신부값의 근본적인 역할은 여자에 대한 남편의 권리라고 설명할 수 있다. 남부 반투족들은 특히 여자가 낳은 아이에 대한 권리를 강조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죽는다던가,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경우(불임)에는 신부값으로 지불한 소를 반환하든지 아니면 아내를 대신할 또 다른 신부감을 제공해야 한다. 아이에 대한 권리는 영원하다. 이혼이나 기타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아내의 친족들이 아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더구나 남편이 사망한 후 형사취수(兄死娶嫂 ; levirate) 또는 씨받이(seed-raising)에 의해 태어난 아이라 할 지라도 죽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른다.

지불되는 품목에 있어서도 화폐, 소, 돼지, 말등의 가축, 음식, 담요등 사회에 따라서 다양하고 그 규모에 있어서도 차이가 많다. 또 그 지불방법도 혼인 이전에 끝내야 하는 사회가 많지만 또 어떤 사회에서는 혼인하고 나서 수년 내로 지불을 마쳐야 할 것이 요구되기도 한다.

신부값은 두 집안간의 유대를 확고히 하는 것으로서 사회적으로 가치가 인정된 것으로서 이루어지는데 아프리카 사회의 약 80%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다른 10%는 신부가족에게 봉사(예를 들어 우리의 데릴사위제도)를 수행하는 것과 같은 변형된 형태로 이루어진다.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를 살펴보면 신부값을 지불하는 방법도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첫 번째 아내는 아버지가 신부값을 지불한다. 적어도 각각의 아내들에게서 난 장자 또는 모든 아들들의 첫 번째 아내의 신부값은 아버지가 지불한다. 둘째, 자매가 있는 경우 자매가 결혼하면서 받은 신부값으로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주로 두 번째 아내를 얻는데 이용된다. 이런 경우는 자매와의 관계가 공고하다.

남부 아프리카의 소토 벤다(Sotho-Venda ; Lovedu, Kgaga)족 : 벤다족들은 형제자매간에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 여자형제의 결혼을 통해 받은 신부값은 남자형제의 아내를 얻는데 사용된다. 이 의미는 형제자매가 상호보완적으로 동등하게 자리메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장손은 확대가족의 수장으로서 그의 아버지를 이어받고 여자장녀는 그녀의 아버지의 여자형제를 이어받아 가족의 종교적 수장으로서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현상은 부족한 소에 기인하고 있다. 즉 똑같은 소가 신부값이라는 고리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셋째, 비록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자력으로 신부값을 지불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19세기 이후 이주 노동자가 생겨나면서 보편화 되었다. 넷째, 츠와나(Tswana)족은 삼촌(어머니의 남자형제)이 주로 신부값을 부담한다. 결과적으로 삼촌은 조카딸의 신부값을 취한다.

다섯째, 친척이 아닌 경우에도 신부값을 부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반대급부로 신부값을 부담한 집의 첫 번째 딸의 결혼시에 받는 신부값에 대한 권리가 생긴다.

남부 아프리카의 부족들을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의 가정에서 아내의 위계는 그들에게 지불된 신부값의 가치에 근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지불한 신부값을 받은 아내는 지위가 높고, 자매의 신부값으로 신부값을 치루고 얻은 아내의 지위는 낮다. 결과적으로 처음 결혼한 아내의 지위가 높아 소위 '대부인(Great wife)'이 된다.

전통적으로 신부값은 신부의 부모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부가 결혼할 때까지 잘 길러주신 데 대한 보은의 표시로서 신랑이 신부의 부모에게 바치는 신부값의 전통적 의미와 가치가 왜곡되고 배금주의에 물들어 버렸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정으로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감사와 보은의 표시로서 신부값은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고양시켜 주었음은 물론 두 가족 사이의 결합을 공고히 해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아프리카 전통사회에서 결혼이 두 남녀간의 단순한 결합이 아닌 그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온 가족 구성원들 간의 결합이기도 하다. 신부값은 공동체 사회의 유대와 소속감을 강화시켜 주는 그런 역할을 수행해 왔다. 남아공의 경우 도시에 사는 흑인들에게 신부값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여러사람들이 이 제도를 폐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만델라 대통령의 딸인 Zinzi를 위시한 많은 사람들은 전통의 한 부분으로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이 신부값 제도는 부정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신부값이 과다하게 요구되어 결혼식에 참석하는 신랑이 줄행랑을 치는 경우도 있다. 요즘 짐바브웨의 경우 Z$ 100,000(한화 약 300만원정도)가 요구되고 있어 결혼은 부유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나서서 신부값을 제한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신부값이 인권을 무시하고 마치 상품화되어 팔려 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남아공의 전통관습에 따르면 한 남자가 사랑에 빠지면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납치하여 그 여자가 결혼을 승낙할때가지 붙잡아 두는 ukuthwala라는 전통관습이 있다. 그런데 Eastern Cape의 한 부유한 남자가 가난한 집의 부모에게 비밀리에 신부값을 지불하고 ukuthwala란 관습을 빌미삼아 14세된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납치하여 폭행을 한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남아공의 더반(Durban)에서는 줄루족의 10세된 소녀가 부모에 의해 단지 R140(한화 28,000)와 두 마리의 소 그리고 약간의 양에 의해 63세나 된 노인에게 팔려 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 소녀는 할아버지와 사는 것이 싫다는 의사표현을 계속해서 하였지만 부모에 의해 강압적으로 결혼하도록 강요당하였으며 또 성적 폭력을 당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전통관습을 악용하여 생긴 결과라 할 수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