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의 에이즈(4) - 남아공 정부의 대책

2004. 7. 4. 19:02
제가 말씀드린 남아공의 에이즈 정책의 우수성은 여타 다른 아프리카지역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는 훌륭한 인프라 시스템, 아프리카 국가속에서 유럽국가라고 불리는 선진국형체제 등등에 대해 이야기 한 것입니다.

현재 남아공은 정치개혁을 필두로 사회-경제적인 개혁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부정부패와 정부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추진미흡등 남아공의 에이즈 정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아프리카속에서 그들의 위상에 걸맞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다음 내용을 읽어보시면 어떤 문제로 인해 남아공의 에이즈 정책이 문제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92년 10월, 남아공 정부는 흑백간의 정권이양을 앞두고 범 국가 차원의 회의를 통해  HIV/AIDS에 관련된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남아공 AIDS 조정 위원회”(NACOSA)를 결성했다. 이 정책의 골자는 각 정당과 노동조합 그리고 산업 분야, 시민 사회, 교회, 학계, 정부 등 각종 기관과 단체와의 교류를 통해 NACOSA는 집중적인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초안은 1993년에 나왔다. 내용은 HIV 감염과 사회적 충격 완화, AIDS에 대항하기 위한 지방, 국가, 국제적 자원의 활용 등을 골자로 하는 야심만만한 것이었다.

1994년 흑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NACOSA의 전략은 박차를 가해 NACOSA의 초안은 국가 AIDS 계획으로 이전되었고 예산과 기부금이 전년 대비 두 배 많이 할당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NACOSA는 AIDS를 단순히 개인적인 질병의 차원에서 접근을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신 정부가 안고 있는 현안 문제들, 예를 들어,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불균형을 재조정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형편에서 관료주의자들의 나태함은 NACOSA의 활동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중앙정부와 주정부 그리고 지역 정부간에 예산 할당을 놓고 벌이는 관료주의적 행태는 AIDS 개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NACOSA의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WHO의 “지구촌 AIDS 계획”(GPA)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NACOSA의 정책과는 또 다른 노선을 취하는 등 남아공의 AIDS 정책은 혼선을 거듭하게 된다. 정부차원에서의 야심에 찬 AIDS 계획이 2년째 벽에 부딪치면서 HIV 감염률은 1994년의 7.6%에서 1996년에는 무려 두 배에 가까운 14.2%로 뛰어 오르게 된다.

여기에 더해 각종 스캔들과 부정부패는 정부의 AIDS 계획의 신뢰성에 결정적으로 금이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중에게 AIDS에 대한 홍보를 하기 위해 만든 사라피나 II(Sarafina II)라는 오페라였다. 사라피나 II는 1천 4백 2십만 랜드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오페라였지만 예산 집행의 방만함과 부패로 인해 국가적인 실패로 돌아갔다.

HIV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AZT의 대체 의약으로 알려진 비로딘(Virodene PO58)에 대한 남아공 정부의 대응도 관료주의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잇권 다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비로딘은 AZT와 마찬가지로 항암제로 개발되었으나 부작용으로 인해 사용이 금지되어 오던 중 HIV와 같은 종양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개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특허권 문제를 둘러싸고 연구진과 정부 부처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연구 개발은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1999년에 그 동안 HIV에 상당한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판명된 AZT라는 약의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의 공포를 했다. 당연히 이에 따른 찬반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남아공의 보건부 장관 쥬마(Zuma)은 정부에서 AZT를 금하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값이 너무 비싸다. AZT는 미국의 Glaxo-wellcome이라는 회사가 특허를 가지고 있는 약으로 그 동안 약값이 지나치게 비싸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 3세계에서 AZT를 이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중재에 나서 Glaxo-Wellcome사는 남아공 정부에 약값의 70%를 할인해 제공할 의사를 비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공 정부는 AZT를 사들이는데 예산이 8천만 랜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둘째, AZT가 효과를 보았다는 실질적인 자료가 없다. 이 주장은 곧바로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집중 포화를 맞았다. 미국과 태국에서 행한 조사 결과 AZT는 산모-아이로 이어지는 HIV 전염 경로를 차단하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캐나다, 영국과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AZT를 이미 실용화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 10년간 남아공에서 AZT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AZT가 실질적인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셋째, AZT는 암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지 HIV와는 무관하다. AZT는 사실 1960년대에 암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AZT는 암을 치료하는데 실패해 사용을 거의 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AZT가 HIV를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실험결과가 나와 AZT가 상용화된 것이다. 만일 AZT가 안전하지 않다면 남아공 정부는 왜 지난 10년간 AZT의 사용을 방관했겠는가. 남아공 정부는 지나치게 AZT의 부작용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약에는 부작용의 위험이 따르는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경우 AZT가 산모-아이의 감염경로를 50-75% 정도 차단해 왔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남아공 정부, 정확히 말해서 남아공 보건부가 이처럼 AZT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배경에는 타보 음베키 대통령이 그 동안 서양 과학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AIDS 과학”에 전반적인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급기야 음베키는 대통령 직속으로 “아프리카의 HIV/AIDS에 관한 국제 과학자 분과”를 설치했다. 이 분과 위원회는 AIDS는 가난과 영양결핍 등과 같은 생활 패턴에서 비롯되는 질병이며 HIV는 AIDS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음베키는 서방 국가의 원수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아프리카의 AIDS는 “아프리카적 재해”이기 때문에 서양의 과학과 경험에 의존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덧붙여 남아공의 임무는 “HIV/AIDS에 관한 아프리카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남아공의 대주교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타보 음베키에게 HIV에 감염된 임산부에게 AZT를 투약할 것을 허락해 줄 것을 종용하는 요청에 대해서 음베키는 “남아공의 많은 사람들이 제약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일하기 위해 모든 지식을 희생하고 있는데 놀랐다”라고 응수하고 있다.

음베키의 정확한 의도가 그가 주창하는 아프리카 르네상스에서 비롯된 “아프리카의 문제는 아프리카인의 손으로”라는 슬로건을 실천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단지 AIDS에 관한 서양의 지배력에 저항하기 위해서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남아공 정부가 HIV/AIDS문제를 놓고 혼선을 거듭하고 있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AIDS로 죽어가고 HIV에 새로 감염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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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에이즈(3) - 에이즈 대사 은코시 존스

2004. 7. 4. 19:01
HIV는 지역에 따라 다른 유형의 감염 경로를 보여준다. 대체로 서양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두 개의 감염 경로를 정리할 수 있는데 첫 번째 유형은 주로 동성애를 통해 감염되는 경로로 서방국가에서 흔히 발견되는 형태이다. 남성 동성연애자가 주를 이루며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호주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밖에도 주사 바늘을 통한 감염도 포함되어 있는데, 역시 마약 사용이 빈번한 서방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이성간의 성 접촉으로 감염이 되는 것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인도 등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감염 경로이다. 이성간의 성 접촉에 의한 감염이라 남녀간의 감염비율은 동등하다. 이 형태는 그 범위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형편이며 더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감염자를 통한 간접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모-태아로 HIV 바이러스가 옮겨가는 수직 감염이 그 대표적인 형태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특히 높은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은코시 존슨은 1989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에이즈에 감연된체(산모-태아감염형태)로 태어났으며 생모에 의해 2살 때 버림받았다. 그는 1997년 12살의 나이로 죽을때까지 에이즈 퇴치를 위해 노력했다. 특히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에이즈 감염자라는 것을 밝히고 입학하였으며 2000년 7월 더반에서 열린 제 13차 국제에이즈회의에서 “에이즈 환자와 HIV 감염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정상인들로 대해달라”며 에이즈 환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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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에이즈(2) - 에이즈에 대한 인식

2004. 7. 4. 19:01
남아공 사람들도 다른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에이즈에 관련해 수치심을 느끼고 부인한다. 또한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한다. 또한 에이즈는 가까이 가거나 접촉만 해도 옮길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도 커다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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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에이즈(1) - 에이즈 치료약

2004. 7. 4. 19:00
우리는 흔히 “AIDS에 걸려 죽는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사실과는 일정 거리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AIDS는 질병이나 병원균이 아니라 하나의 ‘증후군’(Syndrome)일 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AIDS를 불러일으키는 병원균은 지금까지는 HIV라고 부르는 병원균이다. 다시 말해, AIDS는 HIV 병원균에 감염 된 사람이 체내 저항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생기는 면역 결핍증을 일컫는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AIDS의 직접적인 원인은 HIV라는 병원균이다.  

HIV는 병원균이기는 하지만 사람에게 직접적인 치명타를 가하는 병원균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HIV에 감염된 사람을 HIV 양성 반응자(hiv+)라고 부른다. HIV는 종양 바이러스(retrovirus)로 체내에서 병원균의 침임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를 생산해 내는 T4라는 세포를 공격해 이를 파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일단 T4 세포가 파괴되면 이는 외부의 병원균에 대항할 항체를 생산해 낼 능력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단 HIV 병원균이 체내에 들어오게 되면 체내의 저항능력이 급속히 떨어지기 때문에 감기와 같은 가벼운 질병에도 인체가 저항을 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신체가 약한 사람, 영양상태가 좋지 못한 사람, 그리고 주변 환경이 청결하지 못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HIV 병원균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짐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체내 면역성이 떨어지게 되면 지역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질병이 HIV 양성자에게는 치명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남아공의 경우 AIDS 환자의 60%가 결핵(TB)으로 인한 사망자이며, 이밖에 위장염과 다양한 피부염과 구강염과 결합된 대상 포진(帶狀疱疹) 등은 HIV/AIDS와 관련된 대표적인 질병이다.

일단 HIV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은 치료 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미국 Glaxo-wellcome사의 AZT (Azidothymidine)라는 약은 AIDS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할 뿐 완치를 할 효력은 없다. 더군다나 AZT는 사회적으로 선택된 사람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약이다. HIV 병원균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약을 섞어 먹는 칵테일이 가장 효과적인데, 문제는 약값이 빈곤층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사실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 중 칵테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약 800-900랜드(약 12-4만원)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것은 남아공의 경우 일반적인 흑인 가정의 월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더군다나 HIV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치료법을 사용하려면 월 수 천 랜드(수 십 만원이상)을 투자해야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대다수의 흑인들에게는 불가능한 금액이다. 남아공에서 이런 치료법을 받고 있는 사람은 만 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4백만 명이 넘어선 HIV 보균자 중 1%도 안 되는 사람만이 HIV 억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HIV 보균자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대다수의 HIV 환자는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할 나이에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 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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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드(Coloured)

2003. 9. 25. 13:06
칼라드(Coloured)

칼라드(Coloured)라는 의미는 '혼혈인'이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하지만 다른 국가와 구분이 모호하고 이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하나의 인종 집단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칼라드'라고 기술된다.

칼라드는 케이프 반도 주변과 내륙에 집중되어 있으면서 주로 서부 케이프와 북부 케이프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들은 전통적으로 남아프리카 사회의 '의붓자식(stepchildren)'이었다. 그들의 조상은 말레이(Malays)계 노예들과 코이코이(Khoikhoi) 노동자들, 산(San)족 또는 반투족 아프리카인들과 백인들 사이에서 불법적인 결합으로 태어난 후손들로 구성된다.

19세기 후반에 '칼라드(coloured)'라는 용어는 주로 모든 비유럽인들을 의미했다. 칼라드라는 의미의 재구성과 다른 비유럽인들과 구별된 인종집단으로서의 칼러드라는 말은 20세기로 전환되는 시기에 나타났다.

1950년에 만들어진 인구등록법(Population Registration Act)은 아프리카인도 백인도 아닌 모든 사람들을 칼라드로 정의했다. 칼라드로 불리어진 혼혈 종족그룹은 중국인, 일본인, 인도인, 나머지 아시아인들, 말레이인, 그라쿠아(Griquas)인, 산(San)족과 코이코이족들, 다른 종족들과 혼혈이 일어난 남아프리카인과 다른 인종과 결혼한 유럽인들로 구성되었다.

칼라드는 다민족, 다문화적 집단이었다. 인도인과 나머지 아시아인들은 후에 그들 자신의 인구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일본인은 명목상 백인으로 취급되었고, 중국인은 백인으로 재분류되어졌다.

칼라드는 역사적으로 정치적, 경제적인 힘을 갖지 못했다.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도시 혹은 시골의 노동자 계급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하에서의 법령은 그들을 백인들의 권력중심에서 유리시켰다. 또한 많은 칼러드들이 케이프 부대(Cape Corps)로 편성되어 개척자 전쟁, 보어전쟁, 그리고 제 1, 2 차 세계대전등에서 전투에 참가하였지만 1950년 국민당은 칼러드들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결국 1966년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케이프 타운의 컬러드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 6 지구(District Six)를 백인 지역으로 선언하고 강제이주를 시키게 된다.

이 지역은 종종 '케이프 타운의 정신(the soul of Cape Town)'으로 불리어지는데 약 55,000명의 칼러드들이 케이프 플랫에 있는 미첼스 플레인(Mitchell's Plain)으로 강제이주 되었다. 위와 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칼라드들의 적개심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아프리카너 정부로부터 칼러드는 격리되었다. 칼라드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억압된 흑인 다수들과 같이 투쟁노선을 취하였다.

칼라드 사회에서는 사회계층사이에서 역동적인 계급투쟁이 존재한다. 칼라드 공동체는 3가지의 계급체제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상위계층의 가족들은 아이를 거의 갖지 않으며 하위계층의 가족들은 많은 자녀들을 가지고 있다. 젊은 칼라드 여성들 사이에는 아이를 가능한 한 적게 낳으려고 한다.

상위부류와 하위부류에서 남녀의 교육수준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높은 교육 수준에 있는 상위부류 전문인은 영어를 사용한다. 많은 칼라드 여성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은 백인 중간계급 사회의 여성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엘리트의 부류로 들어가는 방법은 아름다운 자태와 유럽인의 외모를 소유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흑인의 외모를 닮은 칼라드들은 낮은 부류로 취급되는 반면에, 유럽인의 피부와 더 많이 닮았다면 더 상위의 사회적, 경제적 부류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백인 아프리카너 계급에 속하지 못하였고 흑인정권이후에는 과거의 특권으로 인해 흑인들에게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였으나 1999년 선거에서 보여주었다시피 칼러드들은 이제 정치적으로 캐스팅 보드를 쥐고 있다. 오늘날 칼러드들은 과거 케이프 역사에서 맞이했던 그 어떤 시대보다 희망적인 변화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인종이라는 울타리에서 좀더 자유로운 이들은 양극단에 치우쳐있는 백인들과 흑인들보다 객관적인 중간자적 입장에서 남아공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정책과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며 화해와 협력을 주도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이끄는 새로운 집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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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2003. 9. 25. 13:03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란 용어는 분리(segregation)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이념에 의하면 모든 종족은 그들 나름의 독특한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 기여할 문화적 공헌을 갖고 있으므로 이에 따라, 각각 다른 인종들은 종족별로 분리되어져야 하며, 그들 노선에 따라 발전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그들의 부족간, 인종간 분리에 따른 발전을 구체화시킨 것이 남아공의 홈랜드 정책(Homeland project)이다. 이 정책에 의하여 흑인들은 그들이 살던 원래의 지역을 떠나 국가에서 정한 새로운 거주지로 이동하여야 했고, 여러 사회, 경제적 제약과 차별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법규들이 남아공의 백인들에게 정당화되어 법제화될 수 있었던 이념적 근거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첫째, 백인의 타인종에 대한 우월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백인우월인종론에 기초한 것으로 바스캅(Baaskap)이란 용어로 대표될 수 있다. 그들은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며 정치, 경제 등의 여러 측면에서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둘째, 성경에 근거한 종족간 분리를 들 수 있다. 이는 남아공 백인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프카너들이 신봉하는 화란 개혁교회의 캘비니즘(Calvinism)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다. 그들은 인종의 다양화·영토분할이라는 신의 계율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구약성서와 신양성서의 몇구절을 사용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신명기 32장 8절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대로 민족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또, 신약의 사도행전 17장 26절에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들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등을 인용,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성서적 배경에 때라 1959년 화란 개혁교회는 모든 민족과 인종이 분리되는 것은 "신의 뜻(Will of God)"이라고 천명했으며 아파르트헤이트정책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지지 표명하였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는 지역에 따라 그 정치문화적 특수성에서 인종차별정책이 완전히 불식되고 있지 않으며, 아직도 인도주의적인 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곳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을 실정법으로 하여 운용한 나라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이 유일무이한 경우라 하겠다.

특히 1949년에 제정된 혼합결혼금지법(The Prohibition of Mixed Marriage Act)은 백인과 유색인종간의 혼인을 불법화시킨 것이며 1950년에 제정된 부도덕법(Immorality Act)은 더 나아가 백인과 유색인종간의 결혼은 물론, 교제나 성행위까지를 포함한 모든 행위를 금지시킨 것이다. 또한 1953년 제시설분리법 (Reservation of Separate Amenities Act)은 사용하는 모든 시설물을 인종에 따라 구분하였다.

이러한 인종차별법들은 결국 1959년에 제정된 반투자치촉진법(Promotion of Bantu Self-Government Act)으로 결론지어진다. 흑인의 종족별 단위에 기초한 개별국가의 건설은 백인사회와 흑인사회의 완전 분리를 전제로 하여 그 분리발전(separate development)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그 궁극적인 목적은 남아공화국의 흑인을 그 종족에 따라 개별적인 홈랜드에 귀속케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남아공의 국적을 잃게 만들어 흑인으로 하여금 자기 조국에서 외국인의 신분이 되게 하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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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

2003. 9. 25. 10:42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주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을 가지고 있는 다인종·다문화사회다. 전체인구는 2000년 현재 약 4천 4백만 정도이며 크게 흑인(76.4%), 백인(10.9%), 칼라드(Coloured ; 8.6%), 그리고 인도인 및 아시아인(2.4%) 등 4개의 인종집단으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지만 이들 각 문화집단들도 서로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문화집단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치적, 역사적,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이해관계를 달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은 아프리카 전 국가중 남아공에 가장 많은 백인들이 이주하였고 또 가장 최근까지 지배집단으로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인종차별정책을 실시하며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종집단을 지배·통치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인들은 아프리칸스를 모어로 사용하는 화자들과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화자들로 나누어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는 기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 뚜렷한 구분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계 백인들의 지배를 거부하고 아프리칸스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너(Afrikaner)들은 1830년대 케이프타운에서 내륙지방으로 대이주(Great Trek)를 하여 트랜스발 공화국(Transvaal)과 오랜지 자유 공화국(Orange Free State)을 건설하였고 결국 그들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남아프리카 전쟁(Anglo-Boer War ; 1899-1902)을 치루었다.

1948년 아프리카너가 중심이 된 국민당(National Party)이 집권한 후 제도화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아프리카너 백인들을 비롯한 각 인종집단의 정체성을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집단으로 인해 공식어도 1994년 이전에 공식어였던 아프리칸스어와 영어를 비롯하여 줄루어, 코사, 츠와나어, 벤다어, 쏭가어, 페디어, 소토어, 은데벨레어, 스와지어등 11개의 공식어를 가지고 있다. 수도는 3개로 분리되어 있는데 행정수도인 프레토리아(Pretoria), 입법수도인 케이프 타운(Cape Town), 그리고 사법수도인 불름폰테인(Blemfontein)으로 지역적으로 안배되어 있다. 주요도시로는 상업의 중심지로서 마치 수도처럼 인식되고 있는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 약 500만), 희망봉이 위치한 케이프 타운(약 220만), 그리고 우리의 부산과 같은 더반(Durban ; 약 110만)를 들 수 있다.

주요 산업 및 상업지역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데 특히 PWV(프레토리아, 비트바터르스란트(Witwatersrand), 페르니어너헝(Vereeniging))지역에 약 1천만 정도가 집중되고 있다. 그 외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고 있는 케이프 반도지역, 더반, 파인타운(Pinetown), 피터마리츠버그(Pietermaritzburg)지역, 포트 엘리자베스(Port Elizabeth)지역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동부지역에서 페르니어너헝에 이르는 지역에 남아공의 인구의 2/3가 모여 살고 있으며 금세기 말에는 남아공 면적의 총 4%에 이르는 위의 4개지역에 전체인구의 약 50%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종적 특징을 살펴보면 케이프 타운 도시지역에서는 칼라드가 더반 도시지역에서는 인도인이 많이 살고 있다. 흑인중 최대 종족은 줄루족으로 전체 흑인의 약 36%정도이며 정치적으로는 IFP가 정치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전체 흑인의 약 16%를 점하고 있는 코사족으로 현 집권당 ANC를 대표하고 있다. 백인들은 크게 아프리카스어화자와 영어화자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역사적 문화적 차이로 상호대립적이다. 인도인은 1860년경부터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Natal지방에 들어왔으며 아시아인으로는 최대민족이다.      

1999년 총선에서 보인 남아공의 정당들은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 African National Congress), 신국민당(New National Party), 잉카타 자유당(IFP ; Inkatha Freedom Party), 자유전선(FF ; Freedom Front), 민주당(DP ; Democratic Party), 범아프리카회의(PAC; Pan Africanist Congress), 아프리카 기독민주당(ACDP; African Christian Democratic Party) 연합민주운동(United Democratic Movement), 아자니안민족기구(AZAPO ; Azanian People's Organisation)로 나타났으나 2000년 6월 남아공의 민주당과 국민당이 합당을 통해 민주동맹당(Democratic Alliance)이 됨으로서 정당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양당은 케이프 타운에서 각 당별 집행위원회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합당을 결정하였다. 이로서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실시했던 국민당이 사라지게 되었다. 민주당 당수 레온(Tony Leon)이 신당의 당수가 되고 국민당의 당수 판 스칼베이크(Marthinus van Schalkwyk)가 부당수가 되었다. 총재 자리는 민주당의 현 총재인 조 세레마네가 맡는다. 양당이 합당을 통해 국회에서 차지하게 되는 의석은 민주당 38석 국민당 28석을 합쳐 총 66석이 된다. 양당 지도부는 이번의 합당을 야권 강화를 위한 중대한 발전이라며 남아공의 다당제 민주주의를 한층 더 공고히 하며 여당과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고 환영하였다.

1994년 백인정부에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이끄는 흑인정부로의 정권교체는 황제와 종이 그 신분을 뒤바뀐 역사적 사건으로 위로부터의 민주화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한 남아공 정부는 1999년 6월 2일 두 번째로 출범한 타보 음베키(Thabo Mbeki)의 지도아래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사회-경제적, 문화적 민주화 과정을 시도하고 있으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남아공이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또 지속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정권교체이후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제외하고 점진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향우 남부아프리카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지도국으로 그 위상을 강화시켜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프리카 GDP의 1/3을 점하고 있는 남아공은 그간 인종차별정책 때문에 우리나라와 수교하지 못하다가 드 클레르크(De Klerk)백인정부의 정치적 민주화 조치와 함께 1992년 12월에 수교가 이루어 졌다. 지금 현재 주남아공 한국대사관은 인접한 6개국(나미비아, 보츠와나, 레소토, 스와질랜드, 마다가스카르, 콩고민주공화국)의 대사업무를 겸임하고 있을 정도로 남아공은 남부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남아공은 남부 아프리카의 관문으로서 풍부한 지하자원과 거대한 영토(한반도의 약 5.5배), 놀랄 만한 사회간접시설과 좋은 기후조건등으로 인해 아프리카속의 유럽국가로 인식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교민의 숫자도 짧은 기간동안 1,100여명으로 급증하였고 양국간 관계도 더욱 긴밀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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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주(州) 이름 변경

2002. 2. 16. 10:35

이스턴 케이프(Eastern Cape)가 주(州) 이름의 변경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이미 노던주(Northern Province)가 림포포(Limpopo)라는 새로운 주(州)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스턴 케이프 주의 실무팀들은 그 가능성에 대해 작업에 들어갔다.
노쓰 웨스트(North West) 주 지사인 포포 몰레페(Popo Molefe)는 그의 주는 너무나 가난해서 주 이름을 변경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 이름을 변경하는 것은 주 정부나 기업가들에게 거대한 비용이 소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든 주지사인 라마틀로디(Ngoako Ramatlhodi)는 주 이름을 변경하는데 많은 비용이 소비된다는 주장에 대해 부인하였다.  그는 "기업들에게는 주 변경에 의한 각종 부담들을 6년에서 8년간의 유예기간을 주면 될 일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자동차 번호판의 변경에 새로운 비용을 추가해야하는 노든 주의 자동차 소유자들은 반드시 새로운 주 명의의 번호판을 바꿔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지사는 강조했다. 즉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번호판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주지사는 주 정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정부 이름이 새겨져 있는 기존의 편지서간들로 모두 사용될 때까지 그대로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노든 주지사는 기업들에게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재정적 혜택을 볼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특히 관광분야에서는 '소규모 비용'을 투입되는 것에 비교하여 장기적으로는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의회 의장인 무쉬와나(Edgar Mushwana)는 캘리포니아의 예를들면서 관광객들이 노든 주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으며 특정 의미나 쉽게 기억되는 주 이름으로 변경하면 쉽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림포포는 남아공에서 가장 잘 알려진 림포포 강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  그리고 사업가들도 기존의 주 이름으로는 마케팅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든 주의 이름변경과 관련하여 대부분 도시들에 거주하고 있는 백인들은 주 이름 변경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고 있으며 반면 여러 흑인 사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가지는 등 논쟁이 되고 있다.
자유전선(Freedom Front)의 지도자인 윌리엄스(Johan Willemse)는 이번 주 이름 변경은 잘못된 발상이며, 단견이고 주 정부와 특정 사회단체와 대결을 이끌려고 하는 의도로서 백인 문화 이익에 차별되는 발상이라고 강조하였다.
자유전선과 민주동맹(Democratic Alliance) 그리고 노든 주의 다른 야당들은 새로운 주 이름 변경에 반대하기로 공동전선을 형성하였다.  반면 주의 지방정부 주택 부(Department of Local Government and Housing)는 노든 주의 도시와 마을들 그리고 거리의 명칭을 또한 변경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노든 주는 남아공에서 주의 이름을 바꾼 세 번째 주로 이전에 PWV에서 하우텡 주로 그리고 이스턴 트랜스바알에서 음푸말랑가로(Mpumalanga) 이름을 변경한 주들이 있다.
(Mail & Guardian, 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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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세계 최고 호화 열차 ‘블루 트레인’(Blue Train)

2001. 10. 22. 10:14

최고급 설비와 서비스 덕분에 ‘달리는 최고급 호텔’이라는 별명을 얻은 블루 트레인.  그 역사는 19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블루 트레인’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은 1946년의 일이다.  블루 트레인은 왕실의 상징 색인 로열 블루와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 에게해의 파랑에서 유래한다.  지금도 일부에서 사용되는 구형 차량이 운행을 개시해 명실공히 블루 트레인이 된 것은 1972년의 일이다.  1997년 9월부터 신형 차량으로 교체하기 시작해 지금은 대부분 신형 차량으로 운행하고 있다.
열차의 최고 시속은 110킬로미터, 18량 편성으로 정원은 84명이다.  에어컨은 물론 방음, 방진 등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  18량 중 객차는 11량으로 럭셔리와 디럭스 등 2종류의 클래스가 있다.  2량은 럭셔리로 욕실에는 모두 욕조가 달려 있다.  나머지 9량의 디럭스는 욕조가 달린 욕실과 샤워만 달린 타입이 있다.  둘 다 침대는 벽에 격납할 수 있으므로 낮에는 라운지로 쓸 수 있다.  차 안에는 부드러운 융단이 깔려있고 갈색과 금색을 기조로 한 기품 넘치는 인테리어다.
아침, 점심, 저녁 세기 식사는 일류 요리사가 솜씨를 발휘한 호화로운 식단을 제공한다.  식당차의 정원은 42명이어서 식사는 2부제로 되어 있다.  저녁식사는 정장차림으로 임해야 한다.  객차와 식당차 외에 커피와 홍차 등을 제공하는 라운지 카와 와인 등 각종 알코올류를 제공하는 클럽 카 등 2량이 라운지가 있다.  승무원은 총 40명으로 전문 기사가 동승하여 안전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블루트레인의 식당차는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세련되면서도 클래식한 정취를 풍기고 있다. 우아한 본차이나 식기에 감탄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의 태양 에너지가 함유된 양고기와 신선한 야채, 굴, 생선들이 격식을 갖춰 제공되고 접대원들은 조용히 다가와 이국의 여행자에게 정성을 다한다.
블루트레인에서의 식도락은 여행 내내 계속된다. 식사가 끝나면 라운지 카로 가서 여행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인연으로 만난 낯선 이들과 작은 연회를 연다. 블루트레인의 승객은 유럽인이 많다. 여행 문화가 발달된 그 곳 사람들에게도 블루트레인은 몇 년의 휴가를 반납해서 돈을 모으고 예약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삼삼오오의 오붓한 모임에 남아공 전통 고급 차와 다양한 종류의 커피 등에 곁들여 고기, 케익, 오이샌드위치가 무한정 제공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연회의 주인공은 커다란 창밖으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풍경이다. 그래서 연회는 자주 침묵에 잠기고 만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블루트레인의 매력은 그것이 지나는 남아프리카의 명소들이라 하겠다. 블루트레인의 시설이나 서비스는 모두 그것을 위해 존재하고 있으며 여행의 주인은 철저히 자연이다. 우아한 시설과 상상을 초월하는 서비스도 모두 남아프리카의 대륙을 횡단하는 것에 봉사하는 것이다
한편 지금도 일부에서 이용되고 있는 70년대의 구형 차량도 색다르다.  그 중에서도  A 타입이라 불리우는 스위트 룸은 차량의 3분의 2를 침실, 거실, 욕실로 만든 호화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거실에는 미니 바가 있으며 서비스도 충실하다.
시발역인 프레토리아와 케이프타운에 마련된 블루 트레인 전용 카운터와 대합실에서는 샴페인과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며 발차할 때까지 한가하게 보낼 수 있다.

블루트레인은 프레토리아에서 케이프타운까지의 남행 기차와 프레토리아에서 빅토리아 까지의 북행 기차가 있다. 남행 기차는 곡식들과 과일들이 나고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을 지나 다이아몬드의 최대 광산지인 킴벌리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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