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역사학과 구전전통의 중요성 - 6. 결론

2004. 7. 7. 19:22
6. 결론

3장에서 자세히 고찰한 것처럼 아프리카의 구전전통은 역사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문화의 정수로서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을 밝히고 아프리카의 본질을 밝히는데 가장 중요한 문화적 요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이러한 연구는 그동안 정치, 경제 그리고 어문학에 편중되어 왔던 아프리카학에 대한 연구가 역사인류학적 연구로 확대됨으로서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을 보다 정확히 밝힐 수 있으며, 향후 학제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학에 대한 연구가 좀 더 균형 있게 발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非문자사회로서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구전전통’이라는 패러다임을 통하여 접근함으로서 ‘거시사’적이며 ‘타자화’된 역사연구방법론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고 아프리카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역사연구방법의 좋은 범례를 제공할 수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구전전통에 대한 연구는 언어, 역사, 문학 등 제 학문분야와 긴밀한 협의아래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방대한 작업인 만큼 연구인력의 확보와 연구기간의 소요가 불가피 하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 역사학과 구전전통의 중요성 - 5. 아프리카의 구전역사가들

2004. 7. 7. 19:21
5. 아프리카의 구전역사가들

모든 사회에서는 놀라운 기억력과 수사학적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특히 지역사와 지방사에 관해 많은 역사적 자료를 잘 유지하고 전달하기 때문에 구전전통과 역사의 창고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러한 재능은 음악적 재능과 학문적 능력을 결합시킴으로서 존경받고 또 명성을 얻고 있다. 몇몇 사회에서는 구술예술가들이 전문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관계를 관리하는 전문화된 집단으로 인식된다. 예를 들어,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와 남부 아프리카의 임봉기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와 남부 아프리카의 임봉기는 사회-정치적 시사 해설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비평가로서 그리고 선전가로서 정치적 웅변을 통하여 힘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평가하고 그들의 최근 역사에 대한 논평하고 해설을 한다. 탈식민지 이후 그리오와 임봉기는 더욱 활동이 명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디오프(Diop)와 만델라(Mandela)가 각각 1980년과 1994년 취임한 이후 시들은 TV를 비롯한 모든 방송매체에서 다루어져 왔다.

아프리카 사회들은 각각 다른 종류의 구전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정치적 중심을 이루고 강력한 세습 왕조가 있었던 일부 사회에서는 선택된 인물들만이 기억하고, 낭송하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구전 역사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griot)와 남부 아프리카의 임봉기(imbongi)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현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면서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전문적인 궁정 역사가들이 있었던 이러한 국가에서는 전통이 명확하고 정확히 말 그대로 낭송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그러한 전통은 “고정된(fixed)" 텍스트라 칭하여졌다.

세습 법률에 기반한 중심화된 정치 체제가 없는 사회를 포함하여 다른 사회에서는 구전 전통이 “자유로운(free)" 텍스트가 되는 경향을 띠었다. 여기서 전통은 전문가 계층의 관심사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연장자나 주술사같은 사회의 전문가집단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사회 구성원 누구에 의해서나 표현될 수 있었다. 고정된 텍스트와 달리, 자유로운 텍스트는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면서 정확히 말 그대로 낭송되지 않았다. 그들의 말하는 방식 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개성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서부 아프리카의 그리오는 게웰(gewel), 가울로(gawlo), 잘리(jali), 젤리(jeli), 마보(mabo), 디젤리(djeli), 디엘리(dieli), 디젤리바(djeliba), 젤리야(juliya)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지는데 구전으로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여 전해내려 온 구전역사가이며 이야기꾼(storyteller)으로 '이야기의 대가(Master of Word) ‘이야기의 대가’라는 말은 훌륭한 역사가로서 그리오의 역할을 묘사한 것이다.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오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 없어진다”
는 말처럼 아프리카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서부 아프리카에서 중앙집권적인 국가형태를 이룩한 말린케(Malinke), 밤바라(Bambara), 풀베(Fulbe), 월로프(Wolof), 투콜로르(Tukulóór), 그리고 소닌케(Soninke)왕국에서 존재하였다. 그들은 왕, 군사적 지도자, 귀족, 그리고 나중에는 이슬람 학자들의 중요한 수행원이었다. 그들의 사회적 임무와는 별도로 그들은 역사, 가계의 혈통의 수호자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 주요한 수단은 속담, 노래 그리고 음악이었다. 이들은 역사가이며, 음악가이며, 무용가이며 그리고 연기자로서 부족의 위대함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리오는 어린아이와 어른에게 왕의 법정을 만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이었다. 음악, 춤, 그리고 이야기 같은 공연예술을 사용하여 부족의 역사를 통하여 기억해야 할 부족과 세대 그리고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오늘날 고대 말리제국의 역사가 재조명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전문 사가이며 찬양시인이며 음악가인 만데족(만딩카(Mandinka), 만딩(Manding), 또는 말린케(Malinke)족으로 불리기도 한다)의 그리오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만데족은 말리, 기니아, 감비아, 세네갈, 코트 디브아르, 부르키나 파소, 그리고 기니비소등 서부 아프리카의 6개국에 분포하여 살고 있다. 만데족은 1468년 이후 하나의 정치적 통일체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주목할만한 동일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오를 통해 그들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전해오고 있다. 모든 그리오들의 가장 소중한 역사는 말리 왕국의 첫 번째 왕인 순디아타 케이타(Sundiata Keita)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오는 역사가이고 찬양시인이며 음악가다. 그리도 아직까지 만데족 사회에서 이들의 유일무이한 위상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용어가 없다. 순디아타 시대에 그리오는 왕자들을 개인교습하였으며 왕에게 자문을 하였다. 그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었으며 현명하였고 현재에 맞닥뜨린 문제들에 대해 역사적 지식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출생, 죽음,  결혼, 사냥,  계절 그리고 전쟁등 마을의 중요한 사건들에 관련된 집단적인 기억과 유산을 보존하는 사람으로서 부족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씨족의 혈통에 대해서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오는 몇 시간, 또는 하루종일 그리오에서 그리오로 전해내려 온 그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1468년 말리제국이 무너진 이후에도 그들의 활동은 언제나 계속되어 논쟁을 중재하고 전통을 확인하며 조언을 하여왔다.    

남부 아프리카의 코사족의 구전역사가도 그리오와 비슷한 기능을 하였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구전 역사가로서 임봉기(imbongi)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지봉고(izibongo)라는 찬양시(praise poem)를 만들어 추장의 역사를 후세에 전해주는 전문가였다. 이들은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거의 모든 찬양시를 만들고 즉석에서 공연하였다(Opland 1998, 5).  

임봉기는 추장의 궁정에 소속된 중요한 관리로서 찬양자의 이름(praise-names), 승리(victories), 그리고 그의 주인에 대한 찬양할 만한 특징들을 찾아서 기록하는 전문적인 구전역사가였다. 이러한 찬양들은 적을 패배시켰다든지 중요한 외교사절의 접대, 그리고 추장이 내리는 하사품의 분배같은 중요한 때에 행해졌다.  

줄루 사회에서 임봉기의 작업은 추장에 대한 찬양을 수집하여 기록하고 전하는 것이다. 부족민들 누구나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찬양을 만들거나 말할 수 있지만 추장에 대한 찬양시를 만들고 공연하는 것은 구전역사가인 임봉기만이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별한 작업은 찬양시를 만드는 것 보다 전달(performance)이 더 중요했는데 창조적 작업보다 수집과 완벽한 전달이 더 중시되었다.

임봉기는 추장에 대하여 노래하는 공식적인 지위를 가진 음유시인으로서 역사적 사적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사건을 추장의 면전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청중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 많은 구전 역사가들과 예술가들은 부유한 후원자 가족의 고객으로서 활동하였다. 그들의 중요한 일은 이러한 후원자들의 명성과 평판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르완다(Rwanda)의 왕궁에 있는 우무시지(umusizi)는 후원자 가족의 현재 구성원의 업적과 전설적인 과거를 칭찬한다. 이러한 부유층 집안의 힘과 위세를 공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 집안 지도자의 지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남아프리카의 코사족과 줄루족의 임봉기는 지배자의 위세를 강화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였다. 공식적인 행사에서 그는 왕족의 역사를 알렸다 몇몇 사회에서는 전통을 기억하고 전하는 일이 다른 개인 또는 전문가의 가족들에게 나누어졌다.

오늘날 후원자 가족 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연하는 많은 구술예술가들이 있다. 식민지의 경제적 수탈 이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과학기술 변화의 과정은 이러한 후원관계의 근본적인 부분을 손상시킴에 따라 구술예술가들의 일하는 환경도 변했다. 예술가들은 후원자의 물질적 지원으로부터 더 이상 가치를 두지 않았고 후원자들은 부와 정치적 영향력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지위, 역할,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의 인식들을 심각하게 바꾸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적인 의견의 관리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도 변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의사소통에서의 혁명과 과학기술은 항상 이러한 아프리카 구술문화의 손해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니(Guinea), 세네갈(Senegal), 감비아(Gambia), 말리(Mali) 의 도시에서는 그리오들이 방송매체를 이용하여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그들의 노래와 역사적 이야기는 텔레비전과 국내, 국제적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되었다. 그들의 공연은 카세트 테이프로 널리 퍼졌기 때문에 먼 시골 지역에까지도 퍼졌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술가들 몇몇은 크게 성공한 팝가수가 되었고, 때때로 국제적 명성을 이룩하기도 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 역사학과 구전전통의 중요성 - 4. 구전전통의 중요성

2004. 7. 7. 19:19
4. 아프리카 역사학에 있어서 구전전통의 중요성

역사가, 인류학자, 그리고 사회학자들은 그들의 작업을 편찬하기 위해 구전을 사용한다. 구전은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기록이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구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무쿨라(P. M. Mukula)는 구전이 없이는 아프리카의 사회에 대한 역사 기록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구전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한 국가의 역사와 미래세대의 참고자료로서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구전의 전승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망하기 전 구전을 채집하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사회는 그들의 문화적 유산과 인간적 경험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아프리카 문화에서, 물려받은 인간적 경험의 집합체인 통찰력과 관습은 말을 통해 전달된다. 구전으로 전달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인 구전 텍스트들은 구전전통이라 부른다. 구전전통의 가장 특징적인 사항은 입을 통해 적어도 한 세대 이상 전해진다는 것이다. 구전전통 텍스트는 지난 사건과 관습을 배타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몇몇 동시대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그 주민들의 주요한 부분과 구전전통과의 관련성이나 타당성은 동시대의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쓰여진 역사적 증거보다 훨씬 더 높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기록보존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게 구전을 전해주는 읽고 쓰는 방법은 몰랐지만 속담, 그림, 이야기, 노래 등과 같은 세심한 장치를 통해 부족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예술 장르들에 삶의 다양한 면면을 효과적으로 투사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정보의 전달과 보존은 구전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전을 정보를 보존하고 다음세대에 전달하는 기록관리자의 임무를 담당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록보관은 아프리카사회에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구전은 특정한 집단에 속하는 정보의 집합이다. 세대를 거쳐 구술로 전해진다. 무엇이 어떻게 전수되었는지는 집단정신이 무엇을 보존하고자 하는지에 달려있다. 전수의 수단도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구전은 집단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과거로부터 전해져 오며 미래의 세대에 전수할 의무를 지닌다. 전통의 창시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전은 항상 익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첫 번째 증인 혹은 창시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전의 중요한 역할은 과거의 집단적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지켜나가며 소속감을 향상시킨다. 재앙이 닥쳤을 때도 정체성은 집단의 재산이었다. 구전을 모두에게 유효한 공적 재산으로 여겼다.

아프리카에서 역사와 구전전통은 아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구전을 통해 밝힐 수 있다는 데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한세대동안 구전역사의 방법론과 해석은 주목할 만한 발전을 하였다. 그러나 구전역사의 개념은 역사의 구전전달의 본성과 가능성에 대한 가정을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 쓰여진 자료를 중시하는 유럽중심주의적 역사적 연구방법론과는 다르게 반시나(Jan Vansina)와 디아와라(Mamadou Diawara)같은 학자들은 구전자료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쓰여진 자료와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인식하여하 한다는 주장을 펴왔는데 이는 아프리카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톰슨(Thompson)은 구전역사운동의 주창자로서 ‘위로부터의 역사’로 유린당한 역사적 시각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역사적 실체를 부여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역사 속에서 구전에 의한 자료의 가치를 옹호하였다.

문헌적 자료에 의해 고찰되지 못한 사회의 역사에 대한 구전자료의 역할에 있어서, 아프리카 구전역사에 관한 연구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아프리카 역사가 반시나는 그의 저서 역사로서의 구전전통(Oral Tradition as History)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구전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쓰여진 문헌이 전혀 없거나, 또는 거의 없는 곳에서 구전전통은 역사적 재구성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물론 문헌으로 된 자료와 같은 역할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쓰여진 것은 하나의 기술적인 경이로움인 것이다..... 구전전통은 오랫동안의 연구를 통해 여전히 자세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평가되어져야 한다. 구전 자료를 통한 역사의 재구성은 확인할만한 별개의 자료가 전무할 때, 아마도 신뢰의 정도가 아주 낮을 수도 있다(Vansina 1985, 199).

반시나(Jan Vansina)는 구전전통을 ‘한 세대에서 다음세대로 또는 그 이상의 세대로(from on generation to the next, or more) 입으로 전해져 내려가는 구전 증거/자료’라고 정의했다. 세대를 통해 이어져 내려오는 구술 데이터의 엄청난 양과 특별한 영역은 시간과 상당한 정신적 노력이 요구되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구조적으로 볼 수 있는데 뒤르케임(Durkheim)과 같은 학자들은 구전전통의 생성과 전승이 사회적 구조의 재생산과 체계적으로 또 의존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또 다른 학자들은 구전전통을 보다 포괄적이며 자율적인 인지적 목적으로 보고 있다.


Oral tradition implies that the tradition in question is verbal or not-written, belonging to the 'folk' with the connotation of non-educated and non-élite, and fundamental and valued, supposedly transmitted over generation.(구전전통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내려 온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쓰여지지 않고 말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서 교육받지 못한 평민들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Finnegan 1992, 7)

Oral tradition applies both to a process and to its products. the products are oral messages based on previous oral message. The process is the transmission of such messages by word of mouth over time until the disappearance of the message.(구전전통은 과정과 결과로서 적용시킬 수 있다. 결과는 이전의 구전 메시지에 근거한 구전 메시지다. 과정은 메시지가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두고 입으로 전해내려 온 메시지의 전달을 말한다.)(Vansina 1985, 3)

Oral tradition is not only a part of a society's cultural knowledge or 'traditional culture' but also a source of information about contemporary cultural and social systems.(구전전통은 사회의 지식 또는 전통문화일 뿐만 아니라 지금 현시대의 문화적 사회적 체제에 대한 정보의 원천이다.)(Seymour-Smith 1986, 212)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마디로 구전 전통은 아무런 문자 기록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저장한 사회-문화적 결과물의 전체적인 저장 축적물들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역사에 대한 개념에서도 다를 바 없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이라는 개념도 대부분 유럽에 기원을 둔 ‘글로 쓰여진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구전 전통은 그 전달 수단에 관계없이 완전히 자립적인 문학 전통이며 기록을 알지 못했던 문명에서 말은 한 집단의 삶에 본질적인 메시지의 한 축을 차지하였음을 볼 때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의 문명은 분명히 구전의 문명이라 할 수 있다.

구전 전통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언명되는 것으로써 정의될 수 있다. 정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전 전통이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전달 방법상에서 가지고 있는 특성 자체가 문자 기록과 비교하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취약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단일한 사건에 대해 기록한 기록 문자도 여러 가지의 번안이 존재하는 반면 구전 전통에서도 전형적이고도 고정된 판이 있다는 것이다.
원래 구전 전통은 목격, 순수하게 개인적인 영감으로 나온 실체가 없는 루머 혹은 전적으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다른 구전 내용을 해석한 것에 기초할 수 있다. 그러나 목격에 발단을 두어 나온 구전 전통만이 실제로 유효하다. 구전 전통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언어로 이루어져 전승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전전통의 목적은 관계가 없다. 고문서 기록과 같이 일부 구전 자료는 결코 현재나 미래 대중을 위해 고안되지 않았다. 이들 모두가 그 당시 특정 순간에 생각, 가치, 구조, 행동 그리고 특정 사회에 대한 세계관에 대한 무의식적인 증언을 위해 존재하였다.

구전전통은 인간의 삶 속에서 거대한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종교, 광물학, 의학, 그리고 약학에 관련된 자연과학, 기술을 전수하는 도제제도, 역사, 오락과 게임, 사랑과 죽음 등 모든 영역을 다룬다. 아프리카 구전사회에서 지식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명백한 사회적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구전전통은 아프리카인들의 역사와 정신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부 학자들은 구전전통은 진실이 결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결코 올바른 평가라고 볼 수 없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는 그것이 쓰여진 것이든 말해진 것이든지 정보제공자의 신뢰도에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쓰여진 자료를 추적하여 들어간다면 모든 인간의 전달에 근거하고 있는 구전적 증거에서 그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

구전은 허구라기 보다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기술을 말하는 것으로서 역사적 사실로서 보아야 한다. 많은 구전들이 노래나 시의 형태로 세대를 거쳐 전해지고 있는데 문학적인 중요성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후세들은 구전을 통해 사회의 관습과 규범, 축적된 지식, 그리고 조상들의 편견을 파악할 수 있다. 사회적 기억의 보고인 구전을 연구하는 것을 구전역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구전 전통은 다른 ‘수준’과 다른 ‘관점’에서 분석될 수 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과거를 현재와 강하게 연결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존중하는 관습과 전통은 대부분 신화적인 과거의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 구전 전통과 관련됨으로써 유효성을 갖게 된다. 그러한 전통은 종종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왕국에서 그리오들의 고정된 텍스트는 종종 특별한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를 반영한다. 이는 주로 왕조의 합법성을 강조하고 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경우, 구전 역사가는 “공식적인" 왕실의 전통적인 낭송과는 매우 다른 견해를 제공하는 서민들의 유사한 전통을 신중하게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이러한 고정된 낭송의 “기능주의"적 성격을 결정할 수 있다. 때로 그 사회의 기본적인 사회 문화적 관심사를 구체화하는 다른 구전 전통은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부 아프리카의 주변화된 많은 유목 민족들 사이에서, 전통은 자주 건기 목초지로 가축을 끌고 가서 다시는 부모들의 공동체로 되돌아오지 않은 젊은이들이 특정한 사회를 형성했음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집단의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는데, 유대감이 결여되면 매우 평등하고 유동적인 공동체에서 종종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전통은 집단의 유대감과 통일의 의의에 대한 중요한 구조주의적 메시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동시에 전통은 보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젊은이들이 유목민들의 이동에서 종종 개척자 역할을 하는 것을 확인한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그들의 구전 역사에서 연대기적으로 뚜렷이 구별되는 세 개의 시기를 판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세계가 “창조되고" 특정 사회가 “형성되는" 시기인 아주 먼 최초의 시대이다. 그 다음에는 다른 사회와 합병되고, 상호작용하고 이동, 갈등 또는 기아를 경험했던 중간 시대가 끼여든다. 가장 최근의 시기는 공동체에서 살아있는 가장 연장자들의 생활 경험 바로 직전의 시간인 2~3세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첫 번째 시기의 “기원" 전통은 문자로 작성된 문서의 표현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표현 방식에서 파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해석하기가 특히 어려울 수 있다. 그러한 전통에는 종종 “중심적인 진부한 표현"이라 불리는 것이 포함된다. 즉, 그러한 전통은 실제로 매우 복잡한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략한 진술로 요약하여 표현한다. 또한 “진부한 표현"은 특정한 역사적 정보를 엮어내는 일종의 기억 장치로 자주 사용된다.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에서 약간의 변형이 있을 경우 종종 조작되거나 “잘못 전달"된 것으로 여겨지는 문자로 작성된 사료와는 달리, 구전 전통에서는 변형된 이야기 속에 역사가에 대한 가장 귀중한 실마리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와 관련된 전통은 때로 두 개 이상의 완전히 다른 전통을 결합하는 불완전하거나 미화된 전통들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상당한 기간의 시간 동안 발생한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했던 것처럼 “압축"되어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중간 시기에 접근하는 일반적인 방법 중 하나는 특정한 씨족이나 더 작은 친족 집단의 개인적인 역사 체험을 다루는 전통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방" 또는 “가족" 전통은 그들이 속한 특정 집단에 의해서만 알려지고, 일반적으로 전체 공동체에 완전히 알려진 “일반적인" 전통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더 나은 역사 정보 자료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널리 알려진 전통들은 종종 전설과 연결된 다양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되고, 교훈을 주기보다는 즐겁게 하기 위하여 이야기된다.

구전 전통을 연구하는 역사가의 또 다른 관심사는 서술된 사건들의 연대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세계의 다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서구의 선형적인 시간 개념을 공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는 특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민족은 세대 교체를 문자 그대로 세대가 서로 교체하는 것으로 보는 순환적인 시간 개념을 갖고 있다. 중앙집권적 국가에서는, 전통은 자주 특정 통치자의 치세와 관련하여 이야기된다. 이럴 경우, 역사가는 신뢰할 만한 왕의 목록을 정리하고 각 통치자의 대략적인 치세 기간을 결정해야 한다. 여러 아프리카 왕국에서 왕조의 치세 기간을 계산하는 여러 가지 공식들은 역사가들의 힘든 작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중앙집권화를 이루지 못한 사회인 경우에는, 역사가를 도와줄 왕의 목록도 가계에 대해 남아 있는 정보도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사회들 중 대부분이 연령 체계(age-set)를 가지고 있고, 역사적 사건들은 종종 특정한 이름을 가진 연령체계와 관련하여 이야기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연령체계속에서 연장자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조사되어야 한다. 이러한 체계의 역동성을 매우 주의 깊게 분석하고 기억된 연령집단들의 목록을 수집하면 각각의 연령집단들이 차지하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고, 역사가는 어느 정도 신뢰할만한 연대기적 등급을 얻음으로써 그러한 사건들이 대략 언제 발생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아프리카인들은 구전 문화와 전통에 그 뿌리를 둔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와 이야기꾼을 경외한다. 고대의 글쓰기 전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존재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로 구전인들이며 그들의 예술형태는 문헌적이라기 보다는 구전형태이다. "쓰여진 문헌(written literature)"과는 반대로 케냐의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응구기 와 시옹고(Ngugi wa Thiongo)가 사용한 “구연(orature)"이라는 용어는 ”말하여진 텍스트“로서 대비된다고 할 수 있으며 문학의 한 형태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이런 배경은 아프리카의 구전예술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아프리카 문화의 초기부터 발전을 해 왔고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꽃을 피우며 살아있는 전통으로서 전해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유럽 식민지 관료와 여행가들이 노래, 이야기, 수수께끼, 속담 같은 아프리카의 구술원문을 수집했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시각에선, 오직 글자로 기록되고 구성된 문학만이 예술 작업으로서 인정되었고, 그들이 보기에 기록된 원문은 그것의 창작자와 소비자(이용자)에게 더 높은 수준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구술로 행해진 수집된 원문은 아프리카의 예술적 상상력의 생산물로 보지 않고 단지 민간전승으로만 보았다. 유럽인들은 유럽의 교육받은 엘리트 계층을 상층문화라 보고 이를 기록된 문자와 연결시켰고, 읽고 쓰지 못하는 일반대중 문화를 하층문화라 하여 상층문화와 하층문화를 구별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분명히 아프리카를 타자화 또는 주변부화 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1970년 발간된 피내간(Ruth Finnegan)의 아프리카의 구연문학(Oral Literature in Africa)은 아프리카의 구연문학을 하나의 장르로서 끌어올려 문학이라는 범주로 가져가게 하였다.

아프리카 ‘구전문화(oral culture)’의 개념은 구연문학(oral literature), 구전전통(oral tradition)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장태상 교수는 oral literature를 구전문학, 민속문학, 전통문학이라는 용어로 해석하는 것은 특성상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하며 구연문학(口演文學)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피네간(Finnegan)이 oral literature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 실제공연(actual performance)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구연문학이라는 용어는 ‘말로서 행해지는 문학’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본질적 특성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연문학이란 입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개념의 구전문화는 그 초점이 생산물과 멀리 떨어져 변화한다. 다시 말해, 원문은 구전원문의 이야기가 행해지는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배경을 포함한다. 게다가 구전문화는 구연 의사소통 관습의 지속성을 위해 말하는 단어의 사용과 주의를 끄는 것과 관련된 모든 관습과 습관을 가리킨다. 공연(performance)은 구전 텍스트의 실질적인 행위인 반면에 구전문화의 다양한 생산물은 구연문학으로 불리어질 수 있다.

구연문학의 중요한 형태는 노래(songs), 낭송/영창(recitations/chants), 시(poetry), 서사시와 이야기(epics and narratives), 공연(performance),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결한 말을 표현함으로서 화자의 수사적이고 지적인 능력을 반영하는 속담, 수수께끼, 그리고 익살적인 말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아프리카 문학은 기술된 문학과 기술되지 않은 문학으로 대별되나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아랍문화의 영향을 받아온 일부지역을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의 문학형태는 구전문학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구전문학이라고 하는 개념은 일찍부터 문자를 사용해온 문화권의 사람들에겐 생소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서구문화적 개념으로서의 문학이란 글자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Literature란 말의 어원인 라틴어 "Litera"는 '글자"를 의미하고 있다. 매씨우아놀드(Mathew Arnold 1822-88)는 문학이란 하나의 위대한 글자이며 그것은 글자로 쓰여진 책으로 엮어진 모든 것을 뜻한다고 정의함으로서 문학의 개념을 협의로 규정짓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대륙이 장구한 세월을 지내는 동안 그들 고유의 문자사용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발전 되어온 구비전통의 형태가 아프리카인들의 생활 속에 밀착되어 살아있는 문학인 구전문학이다. 근세사에 원인을 둔 식민지 경영으로 아프리카대륙에 식민지 경영국의 언어와 문자가 이식됨에 따라 아프리카 지식인들 중에 많은 작가가 탄생하여 식민지종주국의 언어와 문자로 문학작품을 창작하기 전까지는 쓰여진 문학은 거의 전무하였고 구전문학이 아프리카의 진정한 문학형태였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구전문학이란 무엇인가? 쓰여진 문학이 문자를 매체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전문학은 구화(口話) 즉 말을 매체로 사용하여 말 되어지고 행위 되어지는 예술을 말한다.(Oral literature is a spoken, acted or performed art whose media, like that of written Literature is words) 발설된 언어와 행위  된 연기는 구전문학의 중요한 특징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구전문학가(oral artist)는 마치 조각가가 아름다운  예술품을 창조하기 위해서 나무나 돌을 사용하듯이 문학작품인 이야기나 노래를 창작하기 위해서 발설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구전문학이 장구한 세월을 두고 그들 사이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 한마을 사람들로부터 이웃마을로 또다시 다른 이웃마을로 전파되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대를 이어 옮겨가는 매체는 글자가 아닌 말 그 자체인 것이다. 구전 문학가는 이야기나 노래 속담 등을 통해서 사랑과 증오, 인생의 행복과 고뇌, 희망과 절망을 담거나 일상생활에 있어서 제반행위나 가족관계의 상황을 묘사하고 타종족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하며 그들 자신의 종족에 대한 근원, 초자연력에 대한 신앙, 나아가서는 그 사회를 오랜 동안 결속시켜 온 가치관과 규범에 대한 문학을 창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전문학을 통해서 생활양식과 의식구조 생활철학과 가치규범, 신앙, 통치와 경제구조 등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을 묘사한 이야기나 노래를 통해서 역사가들은 과거의 사실을 추적하고 아프리카와 같은 운명사회에서의 강력한 사회교육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구연문학과 기록문학의 중요한 차이는 먼저 구연예술의 어떤 작업이라도 청중과 함께 존재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창작된다고 할 수 있다. 관객과 청중은 보통 찬성인지 불찬성인지에 대한 논평과 설명을 개진하고, 공연자들이 그들의(관객) 반응을 고려해 공연의 내용을 재조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공연의 반복은 종종 같은 작품의 다른 해석에 대한 결과이다. 구연예술 형식의 유동적인 성질과 예술작업의 창조에서 관객의 참여는 기록문학과 명확히 다른 점이다. 두 번째는 구연문학과 기록문학의 실질적 차이는 작가의 예술작업의 내용과 질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상황에 있다. 구술문학 작가들은 그들이 살아가고 공연하는 사회적 상황에서 매우 독립적이다. 예술가들은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예술작업을 창작하고 특히 사회에서 공연자의 입장이란 위치에서 기록문학의 형태보다 예술작업을 하는데 더 명확히 반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연예술의 어떤 해석도 공연자가 살고 작업한 상황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공연자들의 사회정치적 상황의 평가는 공연의 사회적, 정치적 관련성을 강화할 것이다. 셋째로 일반적인 가정은 아프리카 구전문학은 전통적인 아프리카 사회의 정체성 또는 공동정신을 반영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구술 공연자들은 보통 특별한 집단 또는 개인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때문에 구술원문은 유동적이고 즉흥적인 것에 개방적이다. 그들은 정치적 통제와 합법화의 목적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한 비평과 조롱을 표현한다. 구술공연의 정치적 연관성은 특히 상상을 다루거나, 사회의 구전전통 중심의 일부분인 실제 과거를 다룬 원문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역사적 이야기의 공연을 하는 동안 공연하는 예술가들은 명백히 말하지 않고 종종 관객 중 특별한 구성원의 흥미(관심거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원문의 미묘함과 역사적 거래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런 해적을 재해석한 원인이 된 그들이 전해 들었던 역사적 상황을 확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증거로서 구술전통에 대한 한계는 모든 역사적 사항이 전달의 과정에서 살아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몇 사항은 반복적으로 공연자에 의해 사라지면서 시간이 지나면 잃어버릴 것이다(없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에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평가를 다음세대에 전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결과적으로, 몇몇 현재의 구술전통은 초기의 여러 해석에 대한 결과물을 한 개의 이야기로 융합한 것이다. 많은 역사적 가치는 일관된 연대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은 사건의 정확한 날짜와 인물평의 어려움을 전한다. 또 불가능하지 않다 해도, 다른 구술원천을 통한 독립적인 사건의 확증은 종종 어렵다. 마지막으로 몇몇 역사적 가치는 상징적인, 다소 사실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실제사건의 관찰을 보도하는 것 이상으로 확실한 표준과 태도를 표현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이유로, 구술된 역사는 역사적 기록이 사용된 때를 주의 깊게 해석해야 한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 역사학과 구전전통의 중요성 - 3. 구전전통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

2004. 7. 7. 19:16
3. 아프리카 역사학에 있어 구전전통에 대한 연구의 목적과 필요성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이 중요시되어야 하는 이유는 서두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자세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역사적 문화적 전통이 없는 것처럼 각인되어 왔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구전전통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구전을 통한 아프리카 역사연구가 그동안 연구영역과 방법론이 제한되어 왔던 아프리카학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연구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아프리카 정치와 경제에 대한 연구가 주종을 이뤄왔으며 80년대 이후 아프리카 어문학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후 인문학분야에서 학문후속세대가 성장하면서 역사학과 인류학, 종교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프리카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 시점에서 역사학과 인류학, 문학이 접목된 학제간 연구를 시도하려는 연구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또한 현재 빠른 속도로 현대화되어 가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구전전통을 채록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작업으로 의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식 합리주의와 객관주의가 아프리카적 가치관에 우선한다는 분위기는 아프리카를 ‘타자화’했던 서구의 학자들은 물론이고 아프리카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적 가치관, 특히 역사와 문화에 관한 자의식은 기억의 영역에서 서서히 망각되고 있으며 중요한 역사전승 수단인 구전전통의 소멸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추세로 볼 때 아프리카 사회의 구전전통을 채록 보존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연구를 진행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신화와 전설, 시, 속담, 그리고 이야기등 구연문학(oral literature)으로 정의할 수 있는 구전역사가들의 발화를 연구하는 것은 타자화되고 주변부화된 아프리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아프리카학의 학제간 연구를 위한 학문적 바탕을 축적하는데 중요하다. 이렇게 채록된 구전자료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역사를 지역적으로 타자화했던 서구의 시각에 대하여 아프리카 중심주의적(Afrocentrism) 시각에서 해석함으로서 아프리카인들의 역사의식의 수준과 정체성을 평가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아프리카 역사속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여온 ‘구전’이라는 독특한 패러다임을 통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의 현재적 의미를 도출하여 문화적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은 아프리카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경험과 감각행위의 주관적 측면이 우선적인 연구대상으로 설정되어야 하며 아프리카인들의 구체적인 행위와 생각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그와 함께 사건과 구조, 그리고 과정이 정작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중시한다. 당연히 자료의 해석에는 ‘현재적’(現在的) 관점이 적용되어야 한다. 과거란 현재적 해석이 있을 때 의미가 도출되는 것이며, 과거의 기억은 현재에 활용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아프리카의 과거에 매달리기보다 현지조사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

둘째, 아프리카역사에 대한 역사인류학적 연구는 이미 국외 학계에서는 본 궤도에 올라있는 중요한 주제로 인식된다. 많은 아프리카 전문가들이 UNESCO 등의 지원을 받아 소멸되어 가고 있는 아프리카 사회에 대한 심층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미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아프리카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그만큼 빠른 속도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본 연구는 사회적 변혁기에 처한 아프리카 사회의 현재와 과거를 ‘구전’이라는 독특한 패러다임 속에서 해석하기 때문에 학문적 가치가 높다고 사료된다. 인간에 관한 학문인 역사인류학은 무엇보다도 문화 속에 아로새겨진 인간의 생활형태와 경험들에 역사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여러 학문분과를 넘나드는 그야말로 열린 연구분야인 역사인류학에서, 문화란 단순히 인간행동의 부분영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실생활을 실어 나르는 매체이자 특정한 시공간에서 실제로 삶을 꾸려 가는 개인과 사회집단들 간의 어우러짐으로 파악된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역사인류학적 방법론은 아프리카 구전을 적극 활용해 거시적 역사기술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정체성을 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셋째, 구전에 대한 연구의 시도는 21세기 아프리카역사학의 중요한 흐름으로 서구문명에 의한 ‘타자화’된 아프리카역사를 아프리카 중심주의(Afrocentrism)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역사서술방법에서 ‘캠브리지 아프리카 역사(The Cambridge History of Africa,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5~92)'는 전형적인 역사 기술 방법을 따랐으나 'UNESCO 아프리카 역사(UNESCO General History of Afric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1~92)'는 문화적, 역사적 접근 방식을 택하였고, 수정주의자적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1권의 주요 부분을 방법론에 할애하면서 여러 학문과 관련된 조사의 특징을 설명한다. 최근 미국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UNESCO 아프리카 역사'에서 보이는 수정주의자적 접근 방식이 바로 아프리카 중심주의(Afrocentrism)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구전이라는 아프리카의 독특한 역사전승 방식은 서양의 과학적 객관주의에 기초한 역사기술 방식에 밀려 역사학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말았으며 서양학계의 엄정한 과학주의와 객관주의는 아프리카의 유연하고 상황적인 역사전승 방식을 거부했다. 이후 아프리카 역사는 서양의 역사서술 패러다임 속에서 기술(記述)되거나 역사의 언저리에 묻혀지고 말았다. 아프리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전승수단인 ‘구전’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객관적 사료라고 판정되는 역사적 사건을 중시하는 연대기적 역사 기술로 흐를 수밖에 없었고 아프리카 역사를 ‘역사적 사건의 종합 전시장’으로 만들면서 역사의 주체인 사람은 역사적 부산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구전’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의 한 분야로서 중요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부라우델(Fernand Braudel)은 세계사 속에서 아프리카 문명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아프리카가 없었다면 유럽은 수천 가지 이유에서 신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 자신의 힘을 그렇게 거대한 능력으로 변환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으며 블로취(Marc Bloch)는 “아프리카적 요소 없는 로마제국의 존재는 어거스틴(Augustine)없는 캐톨릭 교회의 존재와 같다.”고 설명하였고 프리니(Priny)은 "아프리카에서는 항상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아프리카를 빼고서 더 이상 세계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치 아프리카 탐험시대에 만들어진 지도에서 미지의 지역을 하얀 공백상태로 놓아두거나 코끼리나 사자 같은 동물들로 채우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학계에서는 아프리카 역사학이라는 영역은 학술진흥재단의 학문분야분류표에도 나와있지 않으며 기타역사학으로 분류되고 있을 정도이다. 아프리카의 구전전통에 대한 연구는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연구분야를 심도 있게 다룸으로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아프리카학의 균형 잡힌 학제간 연구를 촉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 역사학과 구전전통의 중요성 - 2. 아프리카의 타자화

2004. 7. 7. 19:13
2. 서구 유럽에 의해 '타자(Others)'화 작업과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

오늘날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혼재되어 있는 다원주의 사회로 변모되고 있는 가운데 역사를 만들어왔던 주제에 대한 인식 또한 변하고 있다. 즉, 남성 중심으로 그리고 엘리트 중심으로 역사가 발전되어 왔다는 전통적인 인식이 도전받으면서 ‘타자(他者 ; Others)’로 분류되어 왔던 여성, 노동자, 소수인종등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무시되어 왔던 ‘타자’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한 사회나 국가, 나아가 문명이 어떻게 ‘타자화’되었는지 그리고 타자화된 주체의 시각에서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여 왔는가를 학제간 연구를 통해 고찰해 봄으로서 ‘정체성(identity)’을 찾는 역사학의 방법론은 역사학의 새로운 연구방향이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는 철저히 '타자화'되고 '주변부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기 밖의 모든 것을 타자화시킨 계기는 18세기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였다. 계몽주의에 고취된 모더니즘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는 합리적, 합목적적이며 분열되지 않은 사고를 하는 자아를 만물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18세기 부르주아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이었다. 그들은 ‘나’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고, 거기에서부터 자아, 주체는 타자, 객체로부터 자동적으로 분리되었다. 그들은 자아/주체의 편에 의식과 진리와 실재를 두고 타자/객체의 편에 무의식과 허구와 비실재를 위치시킴으로서 서양의 분석적 사고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이분법을 가동시켰다.

위와 같은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개인은 개인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하고, 그러한 역할을 할 타자가 없을 때는 타자를 만들어 내는 일도 불사하였다. ‘근대적 유럽’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타자를 필요로 했던 유럽인들은 非유럽 세계를 자신들의 타자로 상정하였다. 유럽은 ‘타자 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보편적 규범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우월한 인종으로 확인하였으며 어떤 면에서 유럽은 非유럽인들에게 부과한 인식론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유럽문명의 토대가 되는 백인과 非백인, 문명과 야만, 진보와 정체 등의 개념이 정립되고 담론이 형성되었으며 유럽 지식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만들어졌다.

자아와 타자의 뚜렷한 이분법적 사고 및 타자보다 우월한 자아라는 인식은 유럽철학은 또한 역사의 범주를 유럽문명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일원론적 역사관을 정립하였다. 이 인식은 세계의 역사를 사실상 유럽의 역사와 동일시하며 비유럽 세계를 유럽이라는 기호 밑에서 침묵 당하고 길들여지는 타자로 만들었다. 그 결과 유럽 역사는 모든 것을 총체화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말없는 지시체’로서 유럽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역사적 이해의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근대를 보편적 근대로 상정하고 공간적․시간적 동질화를 추구하는 역사 인식을 낳았으며, ‘유럽의 현재’를 ‘非유럽인의 미래’로 투영함으로서 역사적 진보를 정의하였다. 유럽이 ‘근대’라면 非유럽은 ‘전근대’ 또는 ‘非근대’여야만 했다. 서양인들이 非서구세계에 대해 행한 차별하기의 가장 뚜렷한 양상은 끊임없이 진보하는 서양에 대조되게 非서구세계를 정체한 혹은 퇴락한 사회로 표상하는 것이었다. 유럽이 자유, 진보, 문명, 역동성을 의미한다면 非유럽세계는 예속, 정체, 야만, 무기력을 의미하였다.

아프리카에 역사와 문명이 존재했었는가에 관한 논란은 최근까지도 계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일부 인종차별주의와 문명 우월주의자들의 중요한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또한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역사는 백인이 도래한 이후부터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설사 그 이전에 어떠한 원주민의 사회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야만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역사하자 토인비(Anold Toynbee)로 인한 바 크다. 그는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이집트, 안데스, 중국문명 등 세계의 문명을 21개의 문명으로 분류하여 상호비교연구를 하는 가운데 아프리카의 문명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또 21개의 문명의 주체를 인종에 따라 분류할때에도 “어느 문명에도 적극적으로 공헌하지 않는 것은 흑색인종뿐이다”라고 흑인의 문명을 부정하고 있다. 또한 독일의 역사학자 헤겔은 『역사철학강의(Philosophie der Geschichte』서문에서 흑인들은 야만성과 분방함에 있어 자연적인 인간상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품위, 인륜, 그리고 감정이라고 불리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나아가 아프리카는 역사적인 세계에 속한다고 볼 수 없으며 ‘운동과 발전’이 결여되어 있는 대륙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와 같은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일반적인 무지를 가져오게 된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아프리카의 타자화 작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머피(E. Jefferson Murphy)교수의 말처럼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하고 백인들의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과 경멸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문자를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프리카 문화를 야만적이거나 원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화론적 사고와 함께 백인의 우월주의적 시각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이디오피아의 게즈(Geez)어를 사용하는 부족, 서아프리카의 만데(Mande)어족에 속하는 바이(Vai)족, 멘데(Mende)족, 로마(Loma)족, 크펠레(Kpelle)족, 바사(Basa)족 등 몇몇 부족들처럼 고유의 문자를 사용한 부족도 있었지만 다른 대륙과 비교하여볼 때 미미한 수준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 또한 사하라 사막주변의 서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스와힐리 문화권에서 아랍문자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기도 하였지만 성직자나 학자등 일부 계층에만 국한되어 사용되었다. 특정집단의 문화라는 것은 특정한 사회집단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 사회적으로 전승된 모든 행위유형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벌어지는 아프리카의 많은 갈등과 문제들은 유럽의 식민통치체제와 맞물린 경제, 환경, 정치, 사회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과 마찬가지로, 식민통치 이전 수천년에 걸쳐 쌓인 아프리카 역사의 일정한 양식과 정체성이 아프리카의 식민지 경험에도 영향을 미쳤고 식민지 이후의 아프리카를 형성하는 데에도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 대륙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아프리카인들이 역사적 도전에 처했을 때마다 반응했던 고도의 적응성과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인들은 자기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했고 또 지금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 역사학과 구전전통의 중요성 - 1. 서론

2004. 7. 7. 19:07
1. 서론

왜 아프리카는 서구열강이 오랜 기간동안 식민지배와 침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처럼 완전히 서구문화에 동화되지 못했는가?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가 월등하고 우월하다면 당연히 아프리카라는 문명권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서구인들의 지배와 침탈의 과정이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 비해 이익이 덜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은 식민지화과정에서 보여준 서구제국주의의 침탈과정과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나타난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을 살펴본다면 절대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인도 등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서구열강으로부터 지배를 벗어나고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강력한 전통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아프리카에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문화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이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프리카인들이 그들 나름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를 “아프리카인들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으로 정의 할 수 있다.

특히 非문자사회라는 아프리카의 특성상 구전전통ㆍ구비전승(oral tradition)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구전은 풍부한 기억력과 상상력을 기초로 ‘입’에서 ‘입’을 통해 사실을 전승하는 방법론으로 문자체계가 없었던 사하라이남 반투 사회의 대표적인 역사전승 방식이었다. 함파테(Hampâtâ Bé)가 ‘아프리카에서 나이 많은 이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진다’고 말한 내용은 역사적 자료로서 구전전통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전전통은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지니고 있는 보물단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부족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유산을 관리하는 사람들(the custodians of heritage)’로 불리어졌다. 이러한 사람들을 서부아프리카에서는 그리오(griots) 남부 아프리카의 줄루족과 코사족에서는 임봉기(imbongi)라고 불리어졌고 서부 아프리카보다는 자유로운 형태로 동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주로 연장자나 주술사등 사회의 전문가집단에 의해 전승되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들이 이와 같은 구전역사가들의 발화를 통해 나타난 신화, 전설, 찬양시, 속담, 이야기, 그리고 음악속에서 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아프리카인들은 말을 대상화하지 않고 지시체의 실재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들은 언어를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존재의 통합적 특성이 발화의 힘 속에 체현된 것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말은 단지 학습된 형식의 효과적인 정교화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발성되는 힘이었다. 그리하여 발화는 개인의 지위에 따라 상대적 무게를 가진다. 말의 힘은 세상에 적극적으로 행위 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간주되어 저주, 주문, 기도와 같은 ‘위대한 말들’은 무기로 사용되었다. 이들의 문화에서 말하고 명명하는 것은 경험을 창조하는 것, 곧 실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체계는 구체에서 추상의, 사물에서 말의 명쾌한 분리에 실증적 지식이 있다고 보았던 19세기 유럽인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인들은 과거에 대해 거의 본능적으로 애착을 느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구비전승의 역사전달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가 책, 기록문, 기록보관소의 문제와 관련된 나라들에서는 과거에 대해 사람들이 일종의 거리감, 격리감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친숙한 이름들을 지닌 구비전승에 너무도 가까이 있어 역사가 공동의 자산으로 변모되어 대대손손 읊어지고 또 읊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주의 깊게 추려지고 비판적 분석이 요구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적확히 직시한다면 아프리카를 이해하기 위한 구전전통의 연구를 통한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 연구는 매우 의의 있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프리카의 구전전통이야 말로 아프리카 역사․문화의 보고로서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아프리카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서구 학자들의 타자화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간단히 살펴보고 구전전통에 대한 연구가 왜 아프리카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그 연구의 필요성과 의의를 고찰하여보고자 한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과 말의힘 - 결론

2004. 6. 27. 22:45
5. 결론

아프리카인들은 말을 잘한다. 모두가 연예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창하고 논리가 있다. 또한 말은 하는 사람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힘과 권위를 갖는 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과 대화를 하는 도중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그들의 말을 무심히 흘려버린다면 꼭 후회하게 될 것이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과 말의힘 - '말'의 권위와 힘

2004. 6. 27. 22:44
4. 아프리카인의 ‘말’의 권위와 힘.

아프리카인들은 말을 대상화하지 않고 지시체의 실재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들은 언어를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존재의 통합적 특성이 발화의 힘 속에 체현된 것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말은 단지 학습된 형식의 효과적인 정교화가 아니라 개인이 가진 발성되는 힘이었다. 그리하여 발화는 개인의 지위에 따라 상대적 무게를 가진다. 말의 힘은 세상에 적극적으로 행위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간주되어 저주, 주문, 기도와 같은 ‘위대한 말들’은 무기로 사용되었다. 이들의 문화에서 말하고 명명하는 것은 경험을 창조하는 것, 곧 실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체계는 구체에서 추상의, 사물에서 말의 명쾌한 분리에 실증적 지식이 있다고 보았던 19세기 유럽인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언어에도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다든지, 사회적인 위치나 공직에서의 직위가 높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속에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는 말속에는 “힘”이 들어 있다. 그래서 특별히 위기에 처한 경우에 발언되는 부모의 말은 행운을 “낳기도”하고, 저주, 성공, 평안, 슬픔, 혹은 축복을 “낳기도”한다. 또 주의의 말은 그가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는 그 약을 통해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병을 치유하거나 불운을 예방해주는 것은 약초보다도 사실은 그 주의의 말의 효험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저주”와 “축복”은 지극히 실제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다. 앞장에서 서술한 전문가들도 실은 개인적으로나 그들의 직책이나 직능으로 인해서 그와 같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재판을 할 때 저주를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본적인 원리는 다른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유죄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면 그를 저주함으로써 그 저주의 말에 의하여 악이 그에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 신념이다. 주로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저주할 수 있지, 그 역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저주는 부모나 아저씨, 아주머니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또 가장 고약한 저주는 임종시에 하는 저주이다. 일단 그 저주자가 죽으면 이를 취소할 방도가 실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참회를 하고 저주를 거두어주기를 원하면, 그 저주를 한 사람은 그 저주를 스스로 취소할 수도 있고, 또 그 저주가 심각한 것이었으면 제의를 통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부어진 저주가 이루어졌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약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죄가 없으면 저주는 기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공식적인 저주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마치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특별히 가족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관계를 저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프리카의 종교적 사고는 신화, 구전 전통 그리고 연장자들 그리고 세대간 논의를 통해서 표현된다. 또한 영적인 힘을 끌거나 그것의 자비를 얻기 위해서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포함하는 의식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이러한 의식이 많은 전통속에서 최고 존재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데 최고 존재는 이미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제물은 종종 야자 술, 기장맥주 그리고 물과 함께 바쳐지는 데 이는 말해진 것(단어)어의 힘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은 제주(술)와 말해진 언어의 힘을 포함하는 생명력을 풀어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의식의 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종종 참가자들은 희생양의 고기를 소비하고 술을 마신다. 따라서 이 모임은 그들의 기도자들을 향하여 일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 성직자와 영적 존재들이 결합된 것이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과 말의힘 - 구전전통의 중요성

2004. 6. 27. 22:43
3.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에 있어서 구전전통의 중요성

모든 사회는 그들의 문화적 유산과 인간적 경험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아프리카 문화에서, 물려받은 인간적 경험의 집합체인 통찰력과 관습은 말을 통해 전달된다. 구전으로 전달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인 구전 텍스트들은 구전전통이라 부른다. 구전전통의 가장 특징적인 사항은 입을 통해 적어도 한 세대 이상 전해진다는 것이다. 구전전통 텍스트는 지난 사건과 관습을 배타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몇몇 동시대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그 주민들의 주요한 부분과 구전전통과의 관련성이나 타당성은 동시대의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쓰여진 역사적 증거보다 훨씬 더 높다.

역사가, 인류학자, 그리고 사회학자들은 그들의 작업을 편찬하기 위해 구전을 사용한다. 구전은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기록이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구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무쿨라(P. M. Mukula)는 구전이 없이는 아프리카의 사회에 대한 역사 기록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구전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한 국가의 역사와 미래세대의 참고자료로서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구전의 전승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망하기 전 구전을 채집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기록보존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게 구전을 전해주는 읽고 쓰는 방법은 몰랐지만 속담, 그림, 이야기, 노래 등과 같은 세심한 장치를 통해 부족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예술 장르들에 삶의 다양한 면면을 효과적으로 투사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정보의 전달과 보존은 구전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전을 정보를 보존하고 다음세대에 전달하는 기록관리자의 임무를 담당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록보관은 아프리카사회에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구전은 특정한 집단에 속하는 정보의 집합이다. 세대를 거쳐 구술로 전해진다. 무엇이 어떻게 전수되었는지는 집단정신이 무엇을 보존하고자 하는지에 달려있다. 전수의 수단도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구전은 집단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과거로부터 전해져 오며 미래의 세대에 전수할 의무를 지닌다. 전통의 창시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전은 항상 익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첫 번째 증인 혹은 창시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전의 중요한 역할은 과거의 집단적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지켜나가며 소속감을 향상시킨다. 재앙이 닥쳤을 때도 정체성은 집단의 재산이었다. 구전을 모두에게 유효한 공적 재산으로 여겼다

아프리카인들은 구전 문화와 전통에 그 뿌리를 둔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와 이야기꾼을 경외한다. 고대의 글쓰기 전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존재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로 구전인들이며 그들의 예술형태는 문헌적이라기 보다는 구전형태이다. "쓰여진 문헌(written literature)"과는 반대로 케냐의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응구기 와 시옹고(Ngugi wa Thiongo)가 사용한 “구연(orature)"이라는 용어는 말로 만들어져 전해진 것으로 춤과 음악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말로서 공동체내에서 종종 만들어지고 행해진다. 아프리카의 구전예술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아프리카 문화의 초기부터 발전을 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꽃을 피우며 살아있는 전통으로서 전해내려오고 있다.

아프리카 ‘구전문화(oral culture)’의 개념은 구연문학(oral literature), 구전전통(oral tradition)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구연문학이란 입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개념의 구전문화는 그 초점이 생산물과 멀리 떨어져 변화한다. 다시 말해, 원문은 구전원문의 이야기가 행해지는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배경을 포함한다. 게다가 구전문화는 구연 의사소통 관습의 지속성을 위해 말하는 단어의 사용과 주의를 끄는 것과 관련된 모든 관습과 습관을 가리킨다. 공연(performance)은 구전 텍스트의 실질적인 행위인 반면에 구전문화의 다양한 생산물은 구연문학으로 불리어질 수 있다.  

특히 非문자사회라는 아프리카의 특성상 구전전통ㆍ구비전승(oral tradition)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구전은 풍부한 기억력과 상상력을 기초로 ‘입’에서 ‘입’을 통해 사실을 전승하는 방법론으로 문자체계가 없었던 사하라이남 반투 사회의 대표적인 역사전승 방식이었다. 함파테(HampâtâBé)가 ‘아프리카에서 나이 많은 이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진다’고 말한 내용은 역사적 자료로서 구전전통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전전통은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지니고 있는 보물단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부족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유산을 관리하는 사람들(the custodians of heritage)’로 불리어졌다. 이러한 사람들을 서부아프리카에서는 그리오(griots) 남부 아프리카의 코사족에서는 임봉기(imbongi)라고 불리어졌고 서부 아프리카보다는 자유로운 형태로 동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주로 연장자나 주술사등 사회의 전문가집단에 의해 전승되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들이 이와 같은 구전역사가들의 발화를 통해 나타난 신화, 전설, 찬양시, 속담, 이야기, 그리고 음악속에서 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적확히 직시한다면 아프리카를 이해하기 위한 구전전통의 연구를 통한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 연구는 매우 의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과 말의힘 -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2004. 6. 27. 22:42
2.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아프리카에 역사와 문명이 존재했었는가에 관한 논란은 최근까지도 계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일부 인종차별주의와 문명 우월주의자들의 중요한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또한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역사는 백인이 도래한 이후부터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설사 그 이전에 어떠한 원주민의 사회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야만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역사학자 토인비(Anold Toynbee)로 인한 바 크다. 그는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이집트, 안데스, 중국문명등 세계의 문명을 21개의 문명으로 분류하여 상호비교연구를 하는 가운데 아프리카의 문명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또 21개의 문명의 주체를 인종에 따라 분류할때에도 “어느 문명에도 적극적으로 공헌하지 않는 것은 흑색인종뿐이다”라고 흑인의 문명을 부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일반적인 무지를 가져오게 된 이유는 아프리카의 '타자(他者 ; Others)화'되고 ‘주변부화(Marginalization)'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머피(E. Jefferson Murphy)교수의 말처럼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하고 백인들의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경멸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유럽’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타자를 필요로 했던 유럽인들은 非유럽 세계를 자신들의 타자로 상정하였다. 유럽은 ‘타자 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보편적 규범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우월한 인종으로 확인하였으며 어떤 면에서 유럽은 非유럽인들에게 부과한 인식론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유럽문명의 토대가 되는 백인과 非백인, 문명과 야만, 진보와 정체 등의 개념이 정립되고 담론이 형성되었으며 유럽 지식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근대를 보편적 근대로 상정하고 공간적․시간적 동질화를 추구하는 역사 인식을 낳았으며, ‘유럽의 현재’를 ‘非유럽인의 미래’로 투영함으로서 역사적 진보를 정의하였다. 유럽이 ‘근대’라면 非유럽은 ‘전근대’ 또는 ‘非근대’여야만 했다. 서양인들이 非서구세계에 대해 행한 차별하기의 가장 뚜렷한 양상은 끊임없이 진보하는 서양에 대조되게 非서구세계를 정체한 혹은 퇴락한 사회로 표상하는 것이었다. 유럽이 자유, 진보, 문명, 역동성을 의미한다면 非유럽세계는 예속, 정체, 야만, 무기력을 의미하였다.

오늘날 벌어지는 아프리카의 많은 갈등과 문제들은 유럽의 식민통치체제와 맞물린 경제, 환경, 정치, 사회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과 마찬가지로, 식민통치 이전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아프리카 역사의 일정한 양식과 정체성이 아프리카의 식민지 경험에도 영향을 미쳤고 식민지 이후의 아프리카를 형성하는 데에도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 대륙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아프리카인들이 역사적 도전에 처했을 때마다 반응했던 고도의 적응성과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인들은 자기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했고 또 지금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아프리카는 서구열강이 오랜 기간동안 식민지배와 침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처럼 완전히 서구문화에 동화되지 못했는가?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가 월등하고 우월하다면 당연히 아프리카라 문명권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서구인들의 지배와 침탈의 과정이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 비해 이익이 덜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은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나타난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을 살펴본다면 절대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인도등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서구열강으로부터 지배를 벗어나고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강력한 전통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아프리카에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문화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이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프리카인들이 그들 나름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과 말의힘 - 서론

2004. 6. 27. 22:41
1. 서론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여전히 반쯤 벌거벗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알 수 없는 주술을 행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아프리카(Primitive Africa)로 인식되고 있거나 아니면 열대우림의 정글과 야생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야생의 아프리카(Wild Africa)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좀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발전되지 못하고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아, 가난, 질병, 내전, 구데타, 부정부패 등 아프리카는 희망이 없는 비관주의(Afro-Pessimism)를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들은 아프리카를 정확하게 보고 있지 못하고 일부분만 보는 것으로 아프리카 진출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꺾는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는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에 역사적으로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지배 통치하였던 국가들이 세계사 속에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정치적 경제적 역사문화적인 분석이 물론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우리에게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역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륙으로 53개국이라는 국가가 속해있으며 약 10억에 이르는 인구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원의 보고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울러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아프리카도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개방경제로의 전환을 채택하고 있어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편입이 가속화됨으로서 21세기에는 또 다른 위상을 갖게 될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외국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친구’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언제나 우월한 인종으로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일을 같이하면서 느낀점은 이들은 식민지배를 겪으면서 오랜 기간동안 외국인들을 대하는 ‘노하우(?)’가 잘 준비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매사에 진정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정말로 어떤 계기가 없다면 외국인들은 ‘친구’라기 보다는 ‘외국인’으로 생각한다. 또한 외국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검둥이’, ‘머리 나쁜 사람들‘ ’게으름뱅이‘ ’흑인들은 안돼!‘라는 의식을 저변에 깔고 대하기 때문에 좀처럼 ’차별‘이라는 벽을 넘기가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있지 않고 특히 아프리카인들의 ‘말’에 대해 주의하여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아프리카인들의 ‘말’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서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친구’로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역사/아프리카 역사와 구전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