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예술과 문학'

  1. 2004.07.13 --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5)
  2. 2004.07.13 --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4)
  3. 2004.07.13 --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3)
  4. 2004.07.13 --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2)
  5. 2004.07.13 --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1)
  6. 2004.07.13 --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속담 속에 나타난 문화적 정체성
  7. 2004.07.13 --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속담의 정의와 속담의 중요성
  8. 2004.07.13 --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의 중요성과 역사적 배경
  9. 2004.07.12 --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아프리카제어의 계통분류
  10. 2004.07.12 --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서론 (2)
  11. 2001.12.17 -- 동물의 말을 배운 사람
  12. 2001.11.19 -- 죽음에 대한 신화
  13. 2001.11.19 -- 요루바의 신화
  14. 2001.11.19 -- 아프리카의 탄생 이야기2
  15. 2001.11.19 -- 아프리카의 탄생 이야기1
  16. 2001.11.19 -- 요루바의 신들
  17. 2001.11.19 -- 거북이와 도마뱀(반투족)
  18. 2001.11.19 -- 리투올로네(Lituolone)
  19. 2001.11.19 -- 루이야(Luyia) -- 케냐
  20. 2001.11.19 -- 천둥과 번개(나이지리아)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5)

2004. 7. 13. 13:08

6.45 말과 침묵(Speech/Silence)


■ Binadamu ana macho mawili, masikio mawili na mdomo mmoja.
   인간은 두 개의 눈과, 두개의 귀와 하나의 입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보는 역할을 하는 눈도 하나가 아니고 두 개로 많이 보라는 의미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귀도 역시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인 까닭은 귀는 본래 그 역할이 남의 말을 듣는데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러므로 상대방의 의견을 많이 듣고 경청하라는 의미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반대로 입이 하나인 이유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많이 듣고 세상을 많이 보되 많이 말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말은 적을수록 좋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Kinywa ni jumba la maneno.
   입은 단어의 집이다.
■ Debe tupu haliachi kuvema.
   빈 깡통은 소리 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 Mwenye kelele hana neno.
   수다스런 사람은 어떤 소식/전갈도 갖고 있지 않다.
■ Simba aendaye kimya ndiye alaye nyama.
   천천히 움직이는 사자는 고기를 먹는 놈이다.
■ Neno jema lilitoa nyoka pangoni.
   친절한 말은 뱀을 구멍속에서 나오게 한다.
■ Maneno ni kama fumo yakitoka mdomoni hayarudi.
   말은 마치 창과 같아서 입술에서 떠나는 순간 돌아오지 않는다.
■ Heri kukwaa kidole kuliko kukwaa ulimi.
   발부리가 걸려 넘어지는 것이 말을 더듬는 것(실수하는 것)보다 낫다.
■ Huwezi kuwaza, bila kunyamaza.
   혀를 붙들지 않고서는 생각할수 없다.
■ Msi hadhari hujifunga kwa ulimi wake.
   부주의한 사람은 자기 혀로 자신을 속박할 뿐이다.
■ Mtu hachongewa na ulimi wake.
   사람은 자신의 혀에 의해 배반당한다.
■ Natuone ndipo twambe, kusikia si kuona.
   보자, 그런 후에야 우리는 말할 수 있다,듣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 Jicho la jirani halikuangalii bwami.
   듣는 것 보다는 보는 것이 낫다.
■ Kusikia si kufikia.
   소문은 도달한 것이 아니다. 소문은 그 지점에서의 사실과 같지 않고 변한다.
■ Kusikia si kuona.
   들은 것은 본 것이 아니다. 네가 들은 것 모두를 믿지는 말라.



속담은 잉태된 지역의 향토성과 가치관, 생활양식을 반영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말과 관련한 아프리카 속담을 분석해 보았다.

첫째, 각 속담에는 언중의 신념과 인생관, 처세술이 엿보인다. 특히 문자 언어가 없었던 아프리카에서는 이러한 구전 속담을 통해 각 구성원에 대한 사회화 교육을 행해야 했을 터라 다른 문화권보다 속담이 더 발달되었다고 생각된다. 말에 대한 속담에 특수화를 시켜본다면 속담을 통해 각 개인을 보호하고 집단을 유지하는 교육을 구성원에게 시켰음을 알 수 있다.한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어 부족사회에서 이탈한다는 것이 바로 죽음을 뜻하는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여타 다른 공동체 보다 서로간의 신뢰와 융화가 더욱 중요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서로를 무시하고 싸움이 잦아지면 집단간의 응집력을 약화시켜 타 집단과의 전쟁에서 불리할 수 밖 에 없어 사회의 존폐 위기에 처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마을을 이탈한다는 것이 각 개인에게 초래할 손상을 약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따른 서로에 대한 예의가 잘 발달했을 것이고, 족장이나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 의해 위에서 언급한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교육이 행해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각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소문만을 듣고 사실을 판단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말은 아무래도 전해오면서 왜곡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섣불리 개인에 대한 판단(주로 비난)을 하지 말고 진상을 밝혀서 억울하게 소문으로 인해 집단에서 이탈하는 자가 나오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각 개인에게도 자신이 말한 것에 책임을 지도록 하여 행여 있을 말실수에 대해 타인이 입어야 할 피해를 극소화 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집단 유지를 위해서 각 개인이 융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말에 대한 각별한 조심성을 요구했다.
그리고 각 집단 구성원에게 서로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듣기 좋은 말을 할 것을 권장했다.


6.46 절도(Stealing)


■ Mlia ashitakiwe, meiba fupa mwenyewe.
   누군가가 범인이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뼈를 훔친 사람이다.
■ Paka haekewi kitoweo kulinda.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지키게 하지는 않는다.



이 속담은 우리나라 속담의 "도둑이 제 발 저린다." 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속마음으로 그것이 드러날까 걱정이 되어 조마조마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태도에서 그 실정이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에 고양이에게 음식을 지키라고 한다면 고양이는 재빨리 그 음식을 훔쳐와서 눈 깜짝할 새에 입안에 넣어버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이 속담은 소중한 물건을 신용 없는 사람에게 맡겨두지 말라는 뜻으로 쓰여진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양이에게 생선맡기기."라는 속담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양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신용을 얻지 못하는 동물인가보다^^.

  
6.47 성공과 실패(Success/ Failure)


■ Ameangukiwa kikuti kibichi.
   녹색(신선한) 종려 잎이 그에게 떨어졌다.
■ Muonja asali, hutupa ugali.
   꿀을 맛 본 사람은 굳어버린 우갈리는 던져버리게 마련이다.



이 속담은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아무런 노력 없이 우연히 찾아왔을 때에 쓰는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종려나무의 잎(palmleaf)은 상, 영예, 승리, 성공 등을 상징한다. 그래서 길을 지나다 우연히 종려 잎이 누군가에게로 떨어진다는 것은 그에게 우연한 행운이 찾아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종려 잎을 행운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우리 문화권에서는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대신에 호박을 사용하는데, 왜 굳이 호박을 사용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생김새가 둥글둥글하여 구르기 좋거나 옛날 사람들에게는 호박이 별식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이 속담은 온갖 어려움 끝에 성공한 사람이, 어려웠던 자신의 과거를 잊고 처음부터 잘난 듯이 뽐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같은 의미의 속담이라도 상징물의 선택과 표현이 다른 것은 그 사회의 환경과 문화를 반영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풍부한 수자원과 좋은 환경적 조건을 바탕으로 논농사가 발달하였다. 그래서 생활 주변에서 쉽게 개구리를 볼 수가 있었고, 어릴 때의 모습(올챙이)과 다 자라서의 모습(개구리)이 현격히 다른 개구리를 보면서 그러한 속담을 착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논농사가 발달하지도 못했고, 기후적 영향으로 인하여 개구리를 많이 볼 수 없는 환경이 있다. 이들은 개구리 대신에 꿀과 포리지를 사용하였는데, 포리지는 이들이 아침 식사로 먹는 걸죽한 죽의 이름으로, 아침식사로 포리지를 먹는 것은 그것이 맛있고 영양가가 많아서라기 보다는 먹을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콤한 꿀을 맛본 사람은 이전에 먹던 하찮은 포리지는 더 이상 입맛에 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의 속담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포리지는 영국 등지에서 주로 아침식사로 대용되는 것으로,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걸쳐 기업적으로 생산하여 보급시킨 것이라는 점은, 아프리카가 영국 식민지 하에서 받았던 영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6.48 절약과 낭비(Thrift /Waste)


■ Akiba haiozi.
   미리 준비해둔 것은 헛되지 않는다.
■ Akiba si mbi, ingawa ya kivumbi siku ya kivumbi hutia motoni.
   그것이 설혹 섬유모양의 코코넛 껍질일지라도 힘든 시기에 불을 밝히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것처럼, 준비해서 나쁜 것은 없다.
■ Hakuna akiba mbovu.
   해서 나쁜 준비는 없다.



이 속담들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아끼고 앞날에 대비하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 속담에 나오는 코코넛은 아프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자나무의 열매로, 보통은 배젖에서 야자유(椰子油)를 짜며, 이것을 말려 코프라(마가린·비누·양초 등의 원료)를 만드는 데에 이용되고, 그 껍질은 버려진다. 따라서 여기에서 코코넛 껍질은 불필요한 것, 쓸데없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쓸모 없어 보이는 코코넛 껍질조차도 먼지 폭풍이 이는 날에 불을 밝히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좋은 것, 좋은 목적을 위해 남겨두고 준비할 때 그것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말한다. 위와 비슷한 속담으로 'Mali ya bakhili huliwa na wadudu.'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평소에 남는 물자가 생길 때에 이를 부주의하게 다루지 말고, 주의 깊게 사용해야 함을 충고하는 속담이다.

  비슷한 우리나라의 속담으로는 '돈은 상 귀에 뿔이 나기 전에 벌어야 한다.'가 있다. 여기에서 상 귀에 뿔이 난다는 말은 어린아이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상 근처에 모여든다는 것으로, 돈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벌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속담은 위에서 살펴본 아프리카의 속담과 뜻은 통하지만 두 문화권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돈의 개념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준비해야할 대상으로서 다른 것들을 제치고 돈을 든 것에 차이가 있으며, 속담 속에 '상'이 등장한 것도 상 위에서 식사를 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식사문화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6.49 전쟁과 평화(War/ Peace)


■ Ndovu wawili wakisongana ziumiazo ni nyika.
   두 마리 코끼리가 서로 밀치며 싸울 때, 다치는 것은 풀이다.
■ Vita vya panzi [ni] furaha ya kunguru.
   메뚜기 사이의 전쟁은 까마귀를 기쁘게 한다.



이 속담은 두 큰 세력간의 싸움으로 그 사이에 낀 상관없는 약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됨을 말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식민지로서 식민지 지배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가지 이익을 착취당해왔다. 강대국들간에 전쟁이 나게 되면 피해를 입게 되지나 않을까 항상 떨어야 했다. 이처럼 강대국들 사이에서 고통받아야 했던 역사가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와 우리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점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많은 침략을 당해왔고, 20C에 들어서는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의 4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아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의미의 속담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것에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가 있다. 이처럼 표현 방법이 다른 것으로부터 문화적 차이를 추정해보면, 아프리카는 사바나 기후로서 초지가 많고, 코끼리나 황소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환경에 있지만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바다 생물에 속하는 고래나 새우를 비유에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속담은 비슷한 힘을 가진 것끼리의 싸움이 그들 스스로의 파멸을 초래하거나, 그들이 약해짐으로써 양자의 공통의 적에게 이익을 주는 결과를 가져올 때 쓰인다. 이 속담은 두 사람이 싸워서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제 3자에게 이익을 줄뿐이므로 다투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좀 더 큰 규모에서는, black 아프리카 국가들끼리의 분쟁은 그들 국가의 지위와 이익을 약화시키고 백인 사회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아프리카의 환경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아프리카는 해마다 메뚜기와 전쟁을 치른다. 메뚜기 떼가 한번 몰려오면 그들이 왔다 간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메뚜기 떼에 의한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뚜기와 같은 친숙한 곤충(끔찍하게 친숙한...)이 속담의 소재로 선택된 것이다.  


6.50 여자와 남자(Women/Men)


■ Mke ni nguo.
   아내는 옷이다.
■ Mke ni nguo, mgomba kupalilia.
   아내는 옷에 달려있고 바나나 농사는 풀을 제거하는 것에 달려있다.
■ Chema chajiuza, kibaya chajitembeza.
   좋은 물건은 알아서 팔리지만, 나쁜 물건은 팔기 위해 광고해야 한다.
■ Sura nzuri haihitaji kupakwa rangi.
   잘 생긴 얼굴에는 화장할 필요 없다.



첫 속담은, 여자(확대되면 사람)의 미모는 꾸미기 나름이라는 뜻인 듯하다. 우리말에도 옷이 날개라는 표현이 있지 않은가. 두 번째 속담은, 아내는 잘 꾸며주고 바나나는 잡초를 뽑아주어야 하듯이, 사람/물건을 잘 돌봐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솔직히 이 속담이 여기 - 여자/남자 부분에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브랜드 - 이름 값의 중요성을 아프리카 인들도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6.51 노동과 게으름(Work/Laziness)


■ Achanikaye kwenye mpini hafi njaa.
   괭이로 (손에)물집 잡힌 사람은 굶어죽지 않는다.
■ Avunjaye nazi ni lazima ale tui yake.
   코코넛을 깬 사람은 반드시 속을 먹어야 한다
■ Anayejitahidi hufaidi.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 Anayetaka hachoki hata akichoka keshapata.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 Awashaye ndiye ajikunaye.
   가려우면 스스로 긁는다.
■ Mtumaini cha ndugu hufa maskini.
   친척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죽는다.
■ Aweza kugeuza yalala kuwa utajiri.
   쓰레기 더미를 재물로 바꿀 수 있다.
■ Kazi mbi si mchezo mwena.
   서툴게 일하는 것이 잘 노는 것보다 좋다.
■ Kazi ni kanzi.
   일은 보물이다.
■ Siku nyeusi, fedha nyeupe.
   힘든 일, 좋은 날.
■ Aingiaye mwituni, atareja na kuni.
   숲에 간 사람이 장작을 들고 돌아온다.
■ Mvivu hugaguna vifuvu.
   게으른 사람은 빈 코코넛을 씹는다.
■ Mtaka kilicho mbali hukitembelea.
   멀리 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그곳으로 간다.
■ Alalamikaye kwa wingi hufanya machache.
   많이 불평하는 사람이 적게 일한다.
■ Fundi mbaya anateta na ala zake.
   서툰 장인이 도구 탓한다.
■ Mchagua jembe si mkulima.
   자기 괭이를 고르는 사람은 진짜 농부가 아니다.
■ Mshoni hachagui nguo.
   재단사는 천을 고르지 않는다.
■ Mlala mvulini, atakula nini?
   그늘에서 자는 사람은 무엇을 먹을 수 있겠는가?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다는 의미)
■ Ajizi ni ufunguo wa umaskini.
   게으름은 가난의 열쇠이다. (게으르면 가난해진다.)
■ Ajizi nyumba ya njaa.
   망설임(혹은 게으름)은 굶주림의 집이다. (망설이거나 게으르면 굶주리게 된다.)
■ Uvivu hurithisha umaskini.
   게으름은 가난을 낳는다. (게으르면 가난해진다.)
■ Kwanza kazi, pili pato.
   먼저 일하고 돈 받아라.
■ Mtaka cha mvunguni huinama.
   침대 밑에 있는 것을 원하면 허리를 굽혀야 한다.
■ Mtu apandacho ndicho avunacho.
   사람이 어떤 것을 심으면 그것을 거둔다.
■ Alimao ndio avunao.
   경작하는 것(작물)이 수확하는 것(작물)이다.
■ Alimaye mtama havuni kunde.
   수수를 경작하는 사람은 콩을 수확하지 않는다.
■ Mpanda ovyo hula ovyo.
   불규칙적인 방법으로 심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불규칙적으로 먹게 된다.



이 속담들은,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굶어 죽지 않는 법이며,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아야 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노력은 힘들지 않은 법이다. 만약 피로를 느낀다면, 그때는 바라는 것을 이룬 후일 것이다. 자기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줄 수 없다. 잘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야지, 남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쓰레기 더미를 재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란, 단순히 운이 좋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쓸모 없는 것을 재물로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속담들은,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도 있고 돌려서 말한 것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잘 살기 위해서는 먼저 열심히 일해야 하는 법이다.

이제 열심히 일하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일하지 않으면 아무 보상도 없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일하지 않는 것을 허물로 여기는 사고 방식이 드러난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다. 무엇인가 아쉬우면,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게으른 사람에 대한 경계(?)는 세계 어디에서나 보편적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게으름보다는 부지런함을 더 중요시해왔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나듯이 부지런한 개미는 겨울에 먹을 양식이 있고 게으른 베짱이는 먹을 양식이 없어서 굶게 된다. 이처럼 "게으름=가난함(굶주림)"이라는 등식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 하다. 아프리카 속담에서도 이러한 것이 보이는데, 대부분의 위에 나타난 속담에서 게으른 사람은 가난해지게 마련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게으름은 가난의 원인이다" 정도의 의미를 갖는 말을 "게으름은 가난의 집이다"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집"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가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인"이라고 하는 의미를 대체할 수 있는 말로 "근원" 내지는 "뿌리"와 같은 것이 있는데, 이들은 "뿌리"라고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을 중시하는, 즉 조상을 중시하는, 그러한 전통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 "집"이 가지는 의미는―모든 일이 가정에서 시작되고 가족을 잃는 것은 마치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가족이나 집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져있음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면―우리나라에서의 "뿌리"가 가지는 의미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추측일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집"이라는 말이 "원인, 근원"을 뜻하는 것도 이러한 아프리카인들의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게으름과 배고픔은 쌍둥이이다"라는 속담에서 상당히 참신하고 제대로 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둥이는 매우 닮았고 공통점이 많듯이, 그만큼 게으름과 배고픔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잘 표현해낸 것 같다. 이는 영어 속담에 있는 "게으른 놈과 거지는 사촌이다"라는 것과 매우 유사해서 흥미로웠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혹은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모든 것은 원인에 따라 그 결과가 생긴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 속담과 우리나라 속담을 비교해 보았을 때에 그 뉘앙스가 약간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속담의 경우에는 단순히 원인에 따라 그 결과가 있다는 의미에 그친 것 같다. 하지만 아프리카 속담은 그보다는 약간 농업(?) 쪽에 더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양식의 양이 결정된다는 의미가 더 강하게 드러나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속담에서 그러한 것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식량이 부족하여 먹을 것이 중요시되는 배경이 반영된 듯하다. 결론적으로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긴다는 의미에 부지런한 만큼 자신에게 양식이 더 많이 돌아온다는 어감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52 세상과 우주(World/Universe)


■ Ulimwengu hauna siri.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 Habari za nyumbani simfunulie jirani.
   가족 문제를 이웃에 알려주지 말라.
■ Macho hayana pazia.
   눈에는 칸막이가 없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다 볼 수 있다.)
■ Sikio halilali na njaa.
   귀는 배고픈 채로 자러 가지 않는다. 언제나 험담은 있게 마련이다.
■ Siri yako usimwambie mwanamke.
   여자에게 비밀을 말하지 말라.
■ Ukimficha jogoo kwenye pakacha kuna wakati atawika.
   만약 수탉을 바구니에 숨기면 언젠가는 수탉이 울 것이다.(사람들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 Watu siri huibana : [ndio hali ya duniani]
   사람들은 서로서로 비밀을 알아낸다 :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비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말을 조심하지 않게 되면 그 비밀은 드러나는 법이고, 보통 그런 식으로 해서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 이처럼 비밀을 간직하기란 쉽지 않은 것인데, 위의 속담들은 이를 표현하고 있다. 내부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이 바깥으로 절대로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공유하게 되면 그만큼 비밀이 누설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런데 그러한 속담 중에는 "세상에는 비밀이 존재할 수가 없다"라든지 "비밀이란 언젠가는 알려지게 되는 것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속담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아프리카인들의 순수성을 유지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사실도 비밀이 될 수가 없다고 인식을 한다면 남에게 속이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순수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서구인들이 아프리카를 지배하기 이전까지는 주술사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었으며, 잘못을 저지르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백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위의 속담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와 유사한 것을 찾아보면,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또는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와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프리카의 속담들과는 달리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6. 결론

아프리카의 사회조직을 이해하는 핵심은 사회적 집단(social groupings)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개인은 매일 매일의 생활속에서 중복되어 집단에 소속된다고 볼 수 있는데 정리하여 본다면 첫 번째가 가족이나 동족, 씨족을 포함하는 친족집단이다. 두 번째는 비 친족 집단인 연령집단, 비의결사, 통과의례, 기술조합 같은 단체들이다. 셋째는 주거하는 지역에 따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정치, 장로정치 구조(gerontocratic structure)는 유사이래로 인간의 계속성과 함께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유아, 아이, 배우자, 부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동해 간다. 사회적으로는 통과의례나 연령등급, 그리고 비의결사같은 단계를 거쳐 옮겨가게 된다. 질병으로 일찍 죽지 않고 많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길러낸 사람들은 연장자로서 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노인정치 사회에서는 연장자들의 회의에 상당한 권위가 있으나 그들의 통치는 서투르거나 압제적인 것이 아니다.

연장자들이 죽으면 그들은 명예스러운 조상들로서 후손들에게 기억된다. 또 후손들은 그들의 살아있는 집합적인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의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조상숭배를 'ancestor worship'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worship'이라는 말은 아프리카인들과 조상들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조상숭배는 존경, 경외, 숭배등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조상숭배는 현실의 일시적인 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 사회조직은 마을의 사회적 영역뿐 아니라 전임자들의 사회적 시간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조상들은 초연장자(super-elders)다. 그들은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축적된 모든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종류의 불사, 불멸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있어서 결혼이 실존의 초점이 되고 있다. 결혼은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즉 죽은 사람, 현존하는 사람, 그리고 태어날 사람들 모두가 만나는 한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의무이고 협동적인 사회의 요청이며, 누구나가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의 리듬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공통체를 저주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반역자이고 범법자이며 비정상적인 일일 뿐 아니라 '인간이하'이다. 정상적인 여건 혹은 환경 안에 있으면서도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이 사회를 거절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는 반대로 그를 거절해버릴 수 있다.

출산은 근원적인 불멸의 상실에 대항하여 벌이고 있는 인간의 투쟁을 위하여 개인이 생명의 씨앗을 봉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일종의 종교적인 의무로까지 생각되어질 수 있다. 생리적으로 볼 때에도 남편과 아내는 모두 그들의 자식속에서 재현된다고 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인간의 연쇄는 그러한 출산을 통하여 영구히 지속되어나가는 것이다. 후손이 없는 사람은 사실은 생명의 불을 꺼버리는 것이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결혼을 하지도 않고 아이도 가지지 않으면 그가 지니고 있던 육체적 지속의 줄이 단절되고 말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 가장 불행한 남녀는 육체적인 죽음 뒤에 아무도 자기들을 '기억'해 줄자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과 출산이 하나라고 하는 것은 따라서 절대로 비난하거나 경멸해서는 안되는 신성한 이해이며 의무이다.

이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아프리카인들이 결혼에 관한 생각과 여러 관습들 예를 들면 신랑이 결혼하기 위하여 신부에게 많은 선물(신부값)을 주는 일, 일부다처제, 죽은 형제의 부인을 아내로 맞는 일,  부모가 자녀의 결혼을 결정하는 일등을 좀 더 분명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공동체가 친족 관계와 다른 사회적 구조가 뒤엉킨 협동적 특성을 지나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도덕적인 악이든 자연적인 악이든 간에 개인이 당하는 악의 형태는 거의 모두가 마찬가지로 구성원에 의하여 야기되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범하는 도덕적인 범죄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그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 전체에 대한 범죄이다.

인간 관계에서는 연령과 신분상의 위치에 따라 위계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위계 개념은 신으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사다리를 이루듯 형성되어 있다.

신은 창조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어버이이며,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호소와 청탁의 마지막 극점이 되고 있다. 그 신 밑에 여러 신적인 존재와 영이 있다. 이들은 인간보다 더 강한 자들이며, 여러 사회의 창시자나 선조이기도 하다.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살아 있는-사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년식, 결혼, 자녀의 양육 등을 통하여 완성된 완전한 인간이다. 인간들의 계층은 위로부터 왕, 통치자, 우사, 사제, 점술사, 주의, 각 가정의 가장, 연로한 어른, 부모, 손위형과 누나, 그리고 끝으로 공동체의 가장 어린 구성원으로 위계가 이루어진다.  

요루바족의 도덕적인 가치는 신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신을 "순수한 왕", "완전한 왕", 흰 옷을 입고 위에서 사는 분", "본질적으로 흰 대상, 양태가 없는(완전히 흰) 흰 물질"이라고 생각한다. 요루바족의 원리의 본질은 품성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바로 이 품성에 달려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드러운 품성은 생명의 줄을 사람의 손에서 끓어지지 않게 한다"라든가,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은 좋은 성품이다"라고 말한다. 훌륭한 품성이란 결혼 전의 순결, 결혼 기간 동안의 신실성, 정중한 예절, 이기심과 반대되는 너그러움, 친절, 정의로움, 진실, 본질적인 덕으로서의 방정함, 도둑질하지 않는 일, 약속을 지키고 어리석음을 피하는 일,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지켜주고 특별히 여자를 보호하는 일, 노인을 찬양하고 존경하는 일, 위선적이지 않는 것 등이다.

"도덕적인 악"은 인간이 자기 동류인 인간에게 행한 것과 연결된 것이다. 이것은 모두 훌륭한 품성의 덕을 계발하고 드러내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들이다.

결국 도덕적인 "선"이나 "악"의 개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회나 공동체 안에서 궁극적으로 개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관계의 본성이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은밀한 죄"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인간이거나간에 그가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에 의하여 그것, 혹은 그는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판단된다.

"자연적인 악"이란 인간의 삶에서 부닥치는 고통, 불행, 질병, 재난, 사고, 갖은 형태의 아픔 등에 대한 경험을 지칭한다. 이들 대부분의 현상은 자연적인 "원인"을 통하여 설명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사고"나 "우연"으로 인해서 어떤 슬픈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어떤 대리자(인간이나 영이나 간에)에 의하여서만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러한 악을 "일으킨" 대행자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회에서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가 규범을 어겼기 때문에 신이나 영이 그 범법자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경우에는 그 사람 자신이 사실상 자기 고통의 원인이다. 즉 그는 먼저 자기의 고통의 원인을 외면화했다가 다시 그 다음에 이를 내면화하는 것(안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형태의 고통은 거의 절대적으로 마법사, 사술사, 악한 주술을 행하는 사람 등, 인간인 행위자들에 의하여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들은 사회적으로 악의 화신이다. 이런 부도덕한 행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악"이 존재하는 것이다.

스와힐리어에 대한 연구는 분명히 국내에서는 새로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어과는 국내유일의 아프리카어과로서 1983년 스와힐리어과로 개설되어 그 동안 동아프리카 언어, 문화 그리고 지역학 연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왔으며 아프리카연구를 동부, 서부 그리고 남부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연구범위를 다변화시키고 확대하려는 계획에 따라 1989년 학과명칭을 아프리카어과로 변경하였다. 또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서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지금까지 해온 대로 주요 언어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더욱 강화할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한국 내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세계 각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스와힐리어』를 교양과정으로 개설하였다. 언어학과에서는 강의 내용이 명확히 드러내고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이해에 또 하나의 초점이 있음을 반영하기 위해서 교과목 명칭을 2002년 2학기에는 {아프리카의 언어와 문화}로, 2003년 1학기에는 {스와힐리어와 아프리카 문화}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스와힐리어는 BBC, 라디오 카이로(이집트), VOA(미국), 라디오 도이체벨레(독일), 라디오 모스코우 인터내셔널(러시아), 라디오 저팬 인터내셔널(일본), 라디오 차이나 인터내셔널(중국), 라디오 수단(수단), 라디오 사우스 아프리카 등 세계 라디오 방송국들에 있어서 특별히 다루는 주요한 언어중의 하나이다. 스와힐리어는 노래, 연극, 영화, TV프로그램 같은 예술세계에서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쓴 "라이베리아 소녀(Liberian girl)"라는 노래의 가사에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원해!)Nakupenda pia, nakutaka pia, mpenzi we!"라는 스와힐리 어구가 나온다. 잘 알려진 디즈니 영화인 "라이온 킹(Lion king)"에서도 스와힐리어 단어가 나온다. 예를 들면 배역들의 이름인 "사자(simba)" "친구(rafiki)"를 들 수 있다. 또한 스와힐리어구인 "문제없다(Hakuna matata)"도 이 영화에서 쓰이고 있다.

아프리카언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제1언어인 스와힐리어가 중점적으로 학습되고 연구된다면 아프리카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학의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문화와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스와힐리어에 대한 연구와 강의는 국내에서 더욱 심도 있고, 폭넓게 진행되어야 하며 나아가 한국어-스와힐리어 사전의 편찬도 서둘러야 할 때라고 할 수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예술과 문학/속담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4)

2004. 7. 13. 13:04

6.40 운명(Fortune) - 주인과 하인(Master / Servant)


■ Kujikwaa si kuanguka./Kuteleza si kuanguka.
   미끄러지는 것과 떨어지는 것은 다르다.(오히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게끔 한다)
■ Leo kwako, kesho mwenzio.
   오늘은 당신의 것으로 다가온 것도 내일은 당신의 친구의 것이 될 수 있다.(선과 악이 우리를 찾아온다./-오늘 내게 일어난 일이 내일 너에게 일어날 것이다.)
■ Riziki, kama ajali, huitambui ijapo.
   사람의 섭리라고 하는 것은 운명과 같은 것이다. 언제 그것이 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행운, 불운은 예측할 수 없다.)
■ Ukipata bahati mbaya, usiangalie kichoko.
   운이 안 좋았다고 하더라도 아픈 데를 보지 마라.(낙담해서는 안된다.)
■ Waliapo ndipo wachekapo.
   우는 곳에서 또 웃게 될 것이다.(슬픔은 기쁨으로 변한다. 어떤 사람은 깊이 슬퍼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불운의 중요성 때문에 기뻐한다.)



위의 속담들은, 사람의 일이란 그것이 좋은 쪽으로 갈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갈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옛 중국의 고사‥ 어느 날 늙은 농부의 명마가 달아난다. 아무리 주위에서 달래도 그 늙은이는 낙담한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그 말이 또 다른 군(명)마를 거느리고 돌아온다. 몇 일 뒤에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늙은이는 낙담하지 않는다. 다시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전쟁이 일어나 젊은이들은 다 군에 소집되지만, 불구가 된 아들은 군 입대를 면하게 된다.‥에서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맥락의 한국 속담으로는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아무리 구차한 사람이라도 운수가 터질 때가 있다./「개똥밭에도 이슬 내릴 때가 있다」/「음지도 양지될 날이 있다」‥운 나쁜 사람도 좋은 수를 만날 수 있고, 운 좋은 사람도 늘 좋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가 있으니, 세상일은 늘 돌고 돈다./「고생 끝에 낙이 있다」/「삽살개도 하늘 볼 때가 있다」등이 있다.

위와 같은 속담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나 아프리카인이나, 예로부터 불행이나 불운에 대처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종의 기제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불행’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그것(우리는 흔히 불행을 ‘他’에 의해 기인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他’와 비교하기 십상이다. 또 만성적으로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스와힐리어로 사사sasa는 현재를, 자마니zamani는 과거를 뜻한다. 하지만 ‘미래’라는 단어가 없다는 데서도 미래에 대해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름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 Paka akiondoka, panya hutawala.
   고양이가 없어지면 쥐가 군림한다.(명확한 규칙이 있는 지배자가 규칙이 없는 것 보다 낫다.)



위의 속담은, 뛰어난 사람이 없는 곳에서 되지도 못한 사람이 득세하는 꼴을 눈꼴사납게 보아 이른 것이다. 비슷한 맥락의 한국 속담에는 「범 없는 골에서는 토끼가 선생노릇을 한다」/「범 없는 산에서는 삵괭이가 범 노릇한다」/「범 없는 산에서는 토끼가 왕 노릇 한다」/「혼자 사는 동네, 면장이 구장」등이 있다.


■ Samaki huanza kuoza kichwani.
   물고기는 머리부터 상하기 시작한다.(지도자가 타락하면 모든 공동체가 타락한다.)
■ Wakubwa humeza wadogo.
   큰 者자 작은 者를 먹는다.



위의 속담은, 윗사람이 잘해야 아랫사람도 잘한다는 뜻으로 비슷한 맥락의 한국속담으로는 「부모가 착해야 효자가 난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다」「위로 진 물이 발등에 진다」「이마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흐른다」등이 있다.

이러한 속담은 주로 정치상황에서 사용되는 말들이다. 아프리카의 정치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도 다른바있지만, 아프리카의 신생 정부들이 이어받은 정치적 구도는 대체로 제정 유럽의 정략적인 경제적, 정치적 전략에 근거한 것이었다. 독재주의가 통치에 적합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식민지 정치 유산의 일부로 남았으며 상당수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지도적 위치를 사회적 경제적 이득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당파가 형성되었으며 후원자-고객 네트워크가 탈식민 시대의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중요한 정치적 상호작용 형태가 되었다.

이렇듯 1990년대의 민주화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부패의 악취는 끊이질 않고 타락된 정치체제가 악순환 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6.41 불행(Misfortune)


■ Ashukaye hushushwa.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그는 그렇게 되도록 누가 거들었다
■ Mchezo wenu ndio mauti yetu.
   너의 놀이는 우리에겐 죽음이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엿못에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죽음을 가져다 줄 수 있다.
■ Raha yako, taabu yangu.
   너의 즐거움은 나의 슬픔



이빨을 가진 사람에게 기쁜 일’이며 ‘입안에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한 일’이 될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 그리고 ‘한 쪽의 기쁨이 다른 쪽에게는 죽음’이 될 수 있는 상황이란 어떤 상황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빨을 가진 사람에게는 기쁜 일이며 입 안에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아닌 일’은 음식을 먹는 일이고, ‘한 쪽의 즐거움이 다른 쪽의 죽음’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재미로 개구리를 돌로 맞혀 개구리가 죽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접하자마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우리 속담이 떠오르지 않아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역지사지’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역지사지라는 표현보다는 불행에 처한 사람,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가짐이 더 절실히 와 닿았다. ‘역지사지’라는 짧은 표현보다는 길게 풀어 썼고 상황 설정적인 내용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의미의 다른 표현이 세 가지 씩이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 아닐까. 불행에 대한 속담이라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에 관련된 속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불행에 대한 따뜻하다면 따뜻하다고 할 수 있는 마음가짐, 그리고 지금은 타인의 불행이지만 자신도 그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생각, 나아가 불행한 처지만의 ‘역지사지’가 아니라 불행에 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역지사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2번 속담을 접하고 생긴 씁쓸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지게 되었다.


■ Baada ya dhiki, faraja.
   고통 뒤에 편안함이 찾아온다.
■ Zito hufuatwa na pesi.
   힘든 일 뒤에 쉬운 일이 찾아오느니.
■ Chumia juani kalie kivulini.
   햇볕 아래에서 너의 인생을 설계하라, 그러면 그늘에서 먹고 쉴 수 있으리라.
■ Dhoruba ilipo, shwari ipo.
   폭풍우가 있는 곳에 고요함도 있다.
■ Mla cha chungu na tamu hakosi.
   쓴 것을 먹는 자는 단 것도 먹게 된다.
■ Mla raha na uchungu hula.
   행복을 맛보는 자는 슬픔도 맛보게 된다.
■ Mwisho wa furaha, machungu.
   기쁨 뒤에 슬픔.
■ Pindi yakikaza mawi, huwa karibu kwisha.
   고난이 최악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끝에 가까워 있다.



아프리카인들의 낙천적인, 아니 낙천적이라기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속담들이었다. 물론 이들의 속담에서만 접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불행은 삶의 한 부분으로 피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처럼 불행이 지나고 행복이 온다는 식의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조금 궁금한 점이 슬며시 고개를 들게 만드는 속담이 몇 개 있었다. 우선 6번, 7번, 11번, 14번의 속담이 그것이다. 이들 속담은 ‘무엇인가를 수고해야만 즐거움, 안락함, 편안함’이 찾아온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왜 이들이 불행에 대한 속담일까? 근면이나 노동에 관계된 속담에 더 적절한 표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수고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좋지 못한 상황, 불편한 상황, 불행이 찾아온다는 경고성 문구로서 불행과 관련을 맺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 질문은 스스로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나의 오해일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속담을 접하면서 든 생각 중의 하나이므로 적고 넘어가려 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아프리카인들의 ‘내일’에 대한 생각과 관련해서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날씨 좋은 한낮에 그들이 낮잠 자는 모습-은 왠지 수고니 ‘햇볕 아래 서느니’하는 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노동은 주로 여성들이 맡아야 하는 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도 그리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그리고 16번과 17번의 속담은 그 의미 구조상 행복 다음에 불행이 왔는데 왜 그런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불행이 삶의 한 부분으로 행복 다음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른 표현들과는 의미 구조가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눈에 띄었다. 불행하지 않은 때라도 불행에 대해서 잊지 말고 있으라는 의도를 가진 것일까? 그리고 19번 속담은 끝까지 그 의미를 모르겠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22번 속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같이 행복하지만, 그래서 역경도 함께 이겨낸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불행에 대한 인식보다도 그 불행을 ‘우리’라는 공동체로 ‘함께’ 이겨 낸다는 사고가 너무도 따뜻하고 든든한 느낌을 준다.


■ Hakuna kirefu kisicho mwisho.
   긴 역경도 마침내는 끝나게 되어 있다.
■ Hapana msiba usioenda na mwenziwe.
   친구 없이 찾아오는 불행은 없다. 제 혼자 오는 불행은 없다.



'끝이 없을 정도로 큰 것/긴 것은 없다’, ‘끝이 없는 말은 없다’, ‘긴 역경도 마침내는 끝나게 되어 있다’ 등의 속담이다. 불행도 끝이 있으므로 불행한 상황에 처했다고 좌절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을 주는 속담들이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계속 지속되는 것은 없다. 사람은 인내심이 있다’라는 말이었다. 의미하는 방향은 알겠지만 아직도 정확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인내심이 있기 때문에 계속되는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인내심으로 인해 서서히 고통이 아닌 것이 되어 간다는(고통에 둔감해진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사람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는 정도까지의 고통은 없다는(어떤 고통도 인내심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다 보면 고통, 불행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불행은 일시적-기간의 길고 짧음의 상대적 문제는 있겠지만-인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어 그들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반대로 낙천적, 긍정적 사고관이 바탕이 되어 이런 속담이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


■ Mfa maji hukamata maji.
   물에 빠진 자는 물 속에서 뭐라도 잡으려 한다.
■ Buyu kali ni dawa mwana-mimba.
   지저분한 호리병이라도 임산부에게는 치료약이다.
■ Uwongo wa mganga ni nafuu ya mweke, ni mwele kupona.
   주술치료사의 거짓말은 아픈 사람에게는 구원이다. 그것은 병을 저주한다.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의 아프리카식 표현이다. ‘친구 없이 찾아오는 불행은 없다’. 불행한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생기는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위에서 먼저 접한 속담들을 생각하며 굳어져버린 사고 탓일까. 아니면 그보다도 이전에 갖게 된(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해 주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름대로 갖게 된 생각인데...) ‘아프리카인들은 낙천적이다’라는 생각 때문일까. 어쩌면 불행이 함께 데리고 오는 ‘친구’라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든다. 불행이 찾아 와도 그 친구인 행복을 함께 데리고 왔으므로 그 불행한 상황은 곧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닐까? 내가 아프리카인들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 Kama maji yamemwagita ndiyo yameshamwagika.
   물이 일단 엎질러지면, 그것은 진짜로 엎질러 진 것이다.
■ Yalitopita si ndwele, tugange yaliyomo na yajayo.
   지나가 버린 것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



우리 속담 식으로 하자면 ‘엎지른 물은 쓸어 담지 못 한다’ 정도의 표현들이 아닐까. 그런데 이 속담들이 왜 불행에 관련된 속담인지 처음에는 바로 와 닿지 않았다. 그다지 불행이라고 할 만한 상황의 설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과 표현은 비슷한데 그 속담에서 받은 느낌은 우리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엎질러진 물’과 같은 우리 속담에서 받아 왔던 느낌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일’, 그렇기에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워낙 익숙하게 접해 왔던 속담이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느낌은 ‘체념적’인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38번 ‘지나가 버린 것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라는 속담에서는 지나가 버린 일에 대한 체념이라기보다는 지나가 버린 것에 연연해하지 않으려는 모습, 어찌 보면 새로이 찾아 올 일에 대한 준비의 마음가짐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 ‘지나가 버린 것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니, 슬펐더라도 이제 그만 슬픔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살자’라는 충고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 속담에서 이런 느낌을 받아서인지, 우리 속담과 비슷한 표현인 다른 속담들(36번, 37번 속담)마저도 이런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35번 속담은 그 표면적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불운에 대하여 울지 않을 것이며, 내 눈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에서 눈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바로 와 닿지 않았다.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결과, 눈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운을 슬퍼한 나머지 펑펑 울거나 해서 눈이 붓거나 하는 식으로 눈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이 속담에서도, 지나갔거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그 상황에 빠져 슬퍼하거나 체념하지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닥친 일은 닥친 일,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생각을 매듭짓고 그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긍정적인 자세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면 이는 지나친 생각일까.


6.42 부모와 아이(Parent / children)


■ Baba wa kambo si dada.
   계부는 아버지가 아니다.
■ Ukigombana na mama asiye mama yako, ni kuchokoza midomo bure.
   계모와 말다툼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네 입술을 지치게 하는 일이다.



여기서는 부모와 계부모에 대한 속담이다. 주로 계부모와의 인간관계를 경시하는 경향의 속담들이다. 이 속담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속담의 기능에 의한 분류이다. 먼저 속담 그 자체의 의미로서 기능한다고 한다면 위의 속담들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특히 스와힐리 사회에서 계부 혹은 계모에 의한 인위적인 부모 자식의 관계보다 생태적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의 관계를 중요시 한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파악이 많은 것을 말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따라서 속담의 기능이 단순히 사실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위에 있거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경고문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염두에 두고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속담의 주요 기능은 공동체 생활, 특히 부족 내에서 태어나 부족 내에서 죽는 것이 그들의 인생이자 그들이 생각하는 또 하나의 축복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속담은 경고로서의 기능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아프리카 사회는 끊임없이 부족 간의 갈등이 지속되었고, 각종 풍토병에 의해 평균수명이 짧다. 따라서 자연히 성년식을 치르기 전의 미성년의 경우 계부나 계모의 밑에서 자라야 하는 경우도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아프리카 사회에 있어 한 인간, 특히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그 사회에 바치게 될 노동력과 일종의 군사력은 그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은 그 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즉 이 속담을 보면서 계부나 계모는 더욱 자신의 양자, 양녀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분명 그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크게 공헌했으리라 짐작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전과 같은 계모형 설화에 근간을 두는 이야기들이 수백 년간 계모나 계부들에게 일종의 권계가 되어 왔던 것처럼 말이다.


■ Damu nzito kuliko maji.
   피는 물보다 진하다.
■ Azaaye kinyago akinyonyesha.
   불구를 낳더라도, 젖을 먹인다.
■ Mama hawezi kumbana mtoto, hata akiwa na vilema.
   어머니는 아이를 저버리지 않는다. 비록 아이가 흠이 있다 하더라도.
■ Ndugu mabaya hushinda rafiki naye.
   못된 식구라도 좋은 친구보다는 낫다.
■ Ni nduguyo akuhusuye.
   너를 위해 근심하는 자는 네 형제다.
■ Vita vya ndugu haviamuliwi.
   형제 사이의 싸움은 화해시키지 못한다.
■ Wa kuume haukati wa kushoto.
   오른팔이 왼팔을 자르지는 않는다.



속담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유행어와는 다르다. 여기서 이 말을 문두에 시작하는 이유는 이 속담의 의미를 생각해 봄에 있어 지금 현재의 아프리카 사회, 특히 문명화된 아프리카 사회를 기반으로 생각하기보다 이 속담이 살아온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할 아프리카의 전통 사회, 특히 부족 사회를 중심으로 그 의미를 파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광활한 사바나 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족 공동체 그 자체였을 것이다. 먼저 주지컨대, 여기서의 속담들은 부족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윤리로서의 기능을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아프리카 부족사회의 근간을 이룩하는 것은 건강한 가정 그 자체임에 틀림없다. 여기의 속담의 대부분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라는 낯에 익은 속담이거나 어머니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표현인데, 이는 다름 아닌 피와 모정을 강조를 통한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견고한 부족사회의 유대성을 중요시 하는 그들의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Mjukuu kwetu tunda.
  손주는 우리에게 열매와 같다.
■ Mlimwengu ni mwanawe.
   인류는 아이들에게 달려있다.
■ Mtoto ni kito, mzigo mzito.
   아이는 보석과도 같지만, 무거운 짐과도 다름없다.
■ Ucheshi wa mtoto ni anga la nyumba.
   아이의 웃음은 그 집안의 빛과도 같다.
■ Mwana huwa, alivyolewa.
   아이는 키우는 대로 된다.(어떻게 키우는냐에 따라 아이는 커나간다.)
■ Mwana huua mzee, mzee haui mwana.



아이는 부모를 죽여도, 부모는 아이를 죽이지 못한다. 여기서의 속담들은 아이들의 중요성에 대한 속담들이다. 수업 시간 중에 누차 언급되었듯이 아이를 낳고 출산 하는 것은 그들이 세대와 시간을 넘어 살아가는 방법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그 어느 사회에서 중요시 되는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만약에 여기에서 단순히 아이들의 중요성만은 그들의 속담에서 읽고 간다면 너무나 허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좀더 나은 이해를 위하여 앞 단락에서 언급한 ‘시간을 넘는다’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사회는 순환론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문화를 지녔다. 작게는 하루하루의 반복과 크게는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단순 반복 속에서 그들의 사고는 순환론적 사고를 갖게 되었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단 순환론적 사고를 가진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의 관념이 부정적으로 파악된다는 점이며 따라서 중요시 되는 관념은 바로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가치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황금의 가치가 순환론적인 사고를 지녔던 중세 사회에서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을 넘어 변하지 않는 그 색채에 있었다는 점, 순환론적 사고를 가진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시간에 맞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연장자가 대접을 받는 다는 점 등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순환론적 사고는 아프리카 사회에 있어 인간에게도 적용되어 자신의 삶은 계속되는 순환의 한 고리이며, 자신의 뒤에 또다른 순환의 한 고리가 아이들에게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시간을 넘어 존재하는 소중한 가치를 갖고 싶어 했음을 엿볼 수 있다.


6.43 가난과 부(Poverty/Wealth)


■ Dau la mnyouge haliendi joshi, likienda joshi ni Mungu kupenda.
   가난한 사람의 보트는 절대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자라면, 당신은 바람을 “가지고 달아날” 수 있고 당신의 길은 더 쉬워 질 것이다.)
■ Dau la mnyonge haliendi joshi, likienda joshi ni Mungu kupenda.
   가난한 사람의 보트는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지 않는다. 만약 배가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항로를 바꾼다면, 그것은 신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의 토착보트는 빠르게 항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십중팔구 끝마무리가 안 되어서 물이 새거나 또 다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담은 대개 파산한 사람이 쓰거나, 의기소침하여 말할 때 쓰인다.
■ Anayelaumiwa ni yule mwenye bahati mbaya.
   불행한 친구(가난한 친구)는 항상 비난을 받는다.
■ Bendera hufuata upepo.
   깃발은 바람을 따라 흔들린다.(조류를 따라 수영하는 것이 더 쉽다.)
■ Umekuwa bendera kufuata upepo.
   당신은 바람을 따라가는 깃발 같다.(Bendera[깃발]는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을 의미하고, upepo[바람]는 부자나 강한 사람의 힘을 의미한다.)
■ Kamba hukatikia pembamba[pabovu].
   줄은 얇은 곳에서 끊어진다.[그것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 /불행한 사람은 항상 비난을 받는다.
■ Kuku wa mkata hatagi, na angetaga haangui, na akiangua halei, na akilea hutwaliwa na mwewe.
   가난한 사람의 암탉은 알을 낳지 못한다. 그리고 암탉이 알을 낳을 지라도 암탉은 결코 부화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부화시킬지라도, 암탉은 결코 병아리를 기를 수 없다. 그리고 암탉이 병아리를 기르면 매가 채어간다.
■ Kwa mnyonge hakuna haki.
   빈곤한 사람을 위한 권리는 없다.(가난한 사람은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않는다.)
■ Mashua ya maskini mieshazama mtoni.
   가난한 사람의 배는 강에서 이미 가라앉는다. 즉 가난한 사람은 어떠한 시도를 할지라도 초반부터 실패한다.
■ Maskini yoyote asemayo ni makosa.
   가난한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지 않다.
■ Dirishani upendo huruka, umaskini ucukapo kizingiti.
   가난이 문지방을 가로지를 때, 사랑은 창문 밖으로 날아간다.
■ Fedha ilicunja nguu, milima ikalala.
   돈은 언덕의 정상을 갈고, 언덕은 평지가 된다. 즉, 돈은 전능하다.
■ Uungwana haufai, bora ni ndarama. [ndirama]
   좋은 집안[또는 : 점잖은 태도]은 쓸모가 없고, 중요한 것은 돈이다./돈이 세계를 지배한다.
■ Yote utaweza, ukiwa na feza.
   만약 당신이 돈을 가지고 있다면, 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 Mali mengi adui wengi.
   많은 재산은 많은 적을 부른다.
■ Maskini hohehahe, hana mbele wala nyuma.
   매우 가난하고 빈한한 사람은 앞도 뒤도 없다.(즉, 그는 도움을 청할 곳이 아무데도 없다. : 그는 기다릴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다.)



위의 속담들을 살펴보면 아프리카인들이 돈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을 몹시 무시한다거나 가난한 사람이 하는 일은 뭐든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나 영어 속담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난한 사람의 배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침로를 바꾸면 그것은 오로지 신의 힘에 의해서라고 해석하는 속담이 재미있다. 이러한 가난과 부에 대한 속담들은 가난한 삶을 살아온 아프리카인들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속담을 통해 생활 속에서 가난을 경계하고 부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속담대로라면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황금만능주의에 빠지기 쉬울 것 같다.


6.43 자만과 겸손(Pride / Humility)


■ Hakuna kiumbe asiye na aibu.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 Asiye na kombo, ana doa.
   결점(결함)이 없는 사람은 없다.
■ Hakuna aliye mdogo wa mwisho kabisa.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작은 자는 아무도 없다. 즉, 더 가난하거나 더 비참한 어떤 사람이 항상 있다.
■ Kila mtu ana doa.
   모든 사람은 결점을 가지고 있다.
■ Kila mtu na kidonda chake.
   모든 사람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은 난처한 일들과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 Kisa kimoja hakimwachi mke.
   하나의 사실(fact)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하나의 사실 때문에 이혼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 Kosa moja haliachi mke.
   한 가지 실수가 아내와의 이혼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결점에 대한 속담들로 모든 사람은 다 결점을 가지고 있어서 완벽한 사람들이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속담들이다. 이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속담으로는 ‘옥에도 티가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등이 있다. 아프리카인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인간의 완전하지 못한 속성을 이해하고 그 것에 대한 속담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아내의 실수로 인한 이혼에 대하여 속담이 있는 것도 인상 깊다. 이 같은 사람의 완벽하지 못한 속성을 인정하는 모습에서 더욱 인간다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 Nyani haoni kundule, huliona la mwenziwe. / Nyani haoni kundule, huona la mwenziwe.
   우리는 남의 결점은 볼 수 있으나 자신의 결점은 보지 못한다.
■ Ajabu ya kondoo kucheka kioo.
   양이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웃는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Ajabu ya ngamia kucheka nundu ya ng'ombe.
   낙타(큰 혹을 가짐)가 소의 등에 있는 혹(작은 혹)을 보고 비웃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어떤 사람은 자신과 같거나 심지어 더 작은 문제를 가진 사람을  비웃는다.
■ Asiyeona aibu zake, haifai aone aibu za wengine.
   자신의 결함(악함, 부끄러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동료의 결점을 알아차릴 수 없다.
■ Kuni juu ya uchaga zacheka zilizo motoni.
   저장고(장작을 모아 두는 곳)에 있는 (곧 불이 붙여질)장작이 불속에 있는 다른 장작을 비웃는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을 비웃는 것은 우스운 일(어리석은 일)이다.
■ Mtu haoni aibu yakwe, huona ya mwenziwe.
   사람은 자신의 결점은 보지 못하나, 그의 이웃의 결점은 본다.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하고 항상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을 일컫는 속담들이었다. 이러한 속담들을 통해서 아프리카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속담은 다음과 같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가마솥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고 비웃는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숯이 검정 나무란다.
제 똥 구린 줄 모른다.
제 똥구멍은 보지 못한다.
제 얼굴 더러운 줄 모르고 거울만 나무란다.
제 흉 열 가진 놈이 남의 흉 한 가지를 흉본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 흉본다.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인데 이것을 경계하는 속담들이 아프리카 속담에도 많으며, 우리나라의 속담과 비슷한 것도 많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6.44 신중함(Prudence)


■ Ajali haijajiri, heri mbele ufikiri.
   사건이 생기기 전에 좀더 주의 깊게 생각하라.
■ Asiyeangalia huishia :Ningalijua!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내가 그것을 알았었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 Boriti ya nyumba, ifupishie nyumbani.
   뛰기 전에 그 주변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
■ Dimbwi la maji ulijaribu kijiti.
   장대로 우물의 깊이를 측정하라'는 의미이다.
■ Enga kabla ya kujenga.
   행동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해라.
■ Halla !halla! mti na macho.
   주의해라! 주의해라! 나무 가지와 눈'. 일상생활속에서 나무 가지와 같이 위험할 수 있는 것들을 조심하고 유의하라는 의미로 파악된다.
■ Hasara humfika mwenye mabezo.
   손실은 부주의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 Hekima, salama.
   지혜는 부유함을 만든다.
■ Mambo maarifa, si nguvu.
   어떠한 것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느냐를 아는 것이 방법이지 힘이 방법이 아니다.
■ Mbele ya kuvuta tumbako, yafaa kukohoa.
   힘으로 행동하지 말고 주의를 가지고 행동해라.
■ Mtu halali karobu na mto, ujapo kuwa umekauka maji.
   사람은 아무리 강이 말랐다고 하여도 강가에서는 자서는 않된다.
■ Mtaratibu hushinda mwenye nguvu.
   주의 깊은 사람은 보통 성급한 사람보다는 더 많이 성취한다.
■ Palipozimika moto ogopa jivu.
   불이 꺼져갈 때 재를 조심하라.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예술과 문학/속담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3)

2004. 7. 13. 13:00

6.25 자유(Freedom)


■ Angurumapo simba, mcheza nani?
   사자가 포효할 때 누가 감히 뛰어다니겠는가?
■ Angurumapo simba nani achezaye?
   사자가 포효할 때 누가 감히 춤을 추겠는가?


이 속담은 '고양이 앞에 쥐'라는 우리의 속담과 같이 무서움에 감히 누가 뛰어들겠는가라는 것이다.


6.26 우정(Friendship)


■ Akufaaye kwa dhiki ndiye rafiki.
   당신이 필요로 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다.
■ Nifae la mvua nikufae la jua.
   우기에 나를 돌보아 준다면 나는 건기에 너를 돌볼 것이다.
■ Asiyekuwapo machoni, na moyoni hayupo.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가슴속에 함께 하지 않는다.
■ Kulingana kama chanda na pate.
   손가락에 맞는 것이 반지다.
■ Moyo wa mwenzio ni msitu wa giza.
   당신 친구의 마음은 어두운 숲과 같다.
■ Rafiki yako ndiye adui yako.
   당신의 친구는 당신의 적이다.



속담에서 보이는 친구(rafiki)는 형제자매보다 더 친밀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친한 사이가 되면 '나의 형제(ndugu yangu)'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형제자매와 같은 역할을, 나아가 형제자매가 도와줄 수 없는 어려운 일을 친구가 도와줌으로서 생활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사이(Maasai)족은 같은 통과의례를 지낸 집단의 친구들은 서로의 아내들과 성관계를 가질 수가 있다. 또 남편이 불가피하게 아내와 떨어져 살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그 남자의 친구(형제관계에 있는)가 그의 아내와 성교를 한다. 이러한 관습은 성이 사회적으로 이용되어 '친밀한 관계, 농(弄)할 수 있는 관계(joking relationship)'로서 친절의 표시를 하는 것이다. 이는 성적욕구로 그녀가 탈선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 아버지가 없는 동안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아버지가 누구인가가 중요하기보다는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으며 사회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27 선물(Gifts)


■ Mali ya urithi haina baraka.
   물려받은 재산에는 복이 없다.
■ Mtu akimpa maskini kichache, Mungu humruzuku kingi.
   가난한 자에게 조금을 베풀더라도 신은 베푼 자에게 넘치는 축복을 내릴 것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쓰게 되니, 노력 없이 얻어진 부(富)는 그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어서 혼자 힘으로 지키기가 어렵다. 베푸는 손이 거두어들이는 손이니, 사람들에게 베푼 만큼 신은 또한 사람들을 통해 그에게 베푸신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자신만의 풍요로움을 교환하면서 관계는 사랑으로 충만하게 된다. 신과 가까이 지내려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오로지 하나의 길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6.28 신과 종교(God and Religion)


■ Dhamiri safi ni tandiko laini.
   맑은 마음은 부드러운 이불이다.



마음이 맑고 고요한 사람은 온갖 욕심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도 두려움이 없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잘 알기 때문이다. 맑은 마음은 거울과도 같이 세상을 비춘다. 악한 일을 슬퍼하고 선한 일을 북돋운다. 모든 사람이  맑은 마음에서 사랑과 위로를 얻는다.


6.29 감사(Gratitude)


■ Ahsante ya punda ni teke.
   당나귀의 감사는 발길질.
■ Fadhili ya nyuki ni moto.
   꿀벌이 받는 감사는 불. 꿀을 가져가면서 벌집을 태운다.
■ Tendea-mbwa, ajuaye fadhiliye?
   개에게 베푼다면, 개가 어떻게 은혜를 알겠는가?



부자와 현자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헤어질 때는 부자의 마음에는 몽롱한 말들이 남을 것이고, 현자의 마음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모자라서도 지나쳐서도 안 된다. 사랑은 지혜롭게 베푸는 것이라야 한다.


6.30 탐욕(Greed)


■ Kitu kisichokufaa wewe wamzuwiliyani mtu kimfae?
   당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라면, 왜 다른 사람이 쓸 수 없게 하려 하는가?
■ Joka la mdimu halitundi wala halili, huwasa watundao na walao.
   라임나무의 큰 뱀은 과일을 따지도 먹지도 않으면서 따거나 먹으려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 Mtaka yote hukosa yote.
   모든 것을 원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 Mwenye kutakayote hukosa yote. 더
   원하면, 갖고 있던 고기 한 점마저 잃는다.
■ Bata mtaga mayai usimchinje kwa tamaa ya wingi.
   오리더러 알을 많은 알을 빨리 낳으라고 재촉하지 말아라.
■ Choyo ni shina la maovu yote.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
■ Mpanda farasi wawili, hujishuka miguu miwili.
   두 마리 말을 타려는 사람은 떨어질 것이다.
■ Mtaka yote kwa pupa hukosa yote.
   서들러서 모든 것을 갖기 원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는다.
■ Mwangaza mbili, moja humponyoka.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좇는 사람은 분명 한 가지를 놓친다.
■ Nija mbili zaumiza.
   두 길을 가는 것은 고통스럽다.
■ Pupa haishi.
   욕심은 끝이 없다.



아프리카인들은 탐욕을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즉 자신이 사용하기에 충분하면서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재앙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몫 이상 갖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을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해야 한다. 어떤 것을 더 가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6.31 건강과 질병(Health and Sickness)


■ Afya ni bora kuliko mali.
   건강이 재물보다 우선이다.
■ Afya ni hakuna aijuaye isipokuwa mwenye maradhi.
   건강이 최고다. 아파보기 전에는 건강의 중요성을 모른다.
■ Dawa inayowasha inakupenda.
   쓴 약이 몸에 좋다.
■ Bora ni salama, kuliko ghanama.
   몸조심! 또 몸조심! 하는 것이 병든뒤 치료보다 낫다.
■ Mficha ndwele hapati dawa.
   병을 감추는 사람은 약을 구할수 없다.
■ Mgana hajigangi.
   의사가 제 병은 못고친다.


아프리카인들도 건강을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병을 소문내고 다녀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아프리카의 속담이나 영어속담, 우리의 속담이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6.32 배고픔(Hunger)


■ Tumbo haina inga
   위는 휴식의 날을 모른다.(즉 심지어 일요일날에도 먹어야 한다)
■ Maskini hana miiko
   가난한 사람은 금기(taboos)가 없다.
■ Mwenye shibe hamjui njaa.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모른다.
■ Mwenye shibe hamjui mwenye njaa.
   충분한 음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이 속담을 살펴보면,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금기시 되어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한 예를 들어 케냐 전통부족 사회에서는 임신한 여성이 지방과 콩, 독 묻은 화살로 잡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 금기 사항이 있다. 아이를 하늘이 내리신 선물로 여기는 아프리카 인들에게 이러한 터부사항은 그들이 믿는 신앙체계에 따른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에서도 옛 부터 전해 내려오는 임산부에 대한 금기 사항이 있다. ‘산모가 백일, 돌 음식을 얻어 먹으면 해롭다’ ‘산 후에 음식을 볶으면 아기 얼굴에 두드러기가 난다’마늘 생강은 해롭다(동의 보감)’‘고기(개,토끼,자라.게.오리)는 해롭다(동의보감)’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신의 주관에 따라 판단하지만,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모른다.그가 직접 스스로 어려움을 경험할 때까지는 그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을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을 잘 모른다.


6.33 서두름(Hurry)

아프리카인들은 '서두름'이나 '빨리 빨리'를 문화적으로 싫어한다. 따라서 이에대한 속담은 아주 많이 나오고 있다.


■ Haraka, haraka, haina baraka.
   서두름/급함은 축복이 없다.
■ Ka Ka Ka Ka haina mbaraka.
   경거망동은 축복이 없다.
■ Pole pole ugali hupikwa.
   우갈리(옥수수 가루에 우유 또는 물을 넣어 만든 죽)는 천천히 천천히 익는다.
■ Mwenye pupa hadiriki kula tamu.
   성급한 사람은 달콤한 것(중요한 것)을 놓친다.
■ Nyikani ukikimbia, nyoka atakuumia [atakuuma]
   만약 긴 풀이 무성한 곳을 달려간다면 뱀한테 물릴 것이다.
■ Siku moja haiozeshi nyama.
   하루 동안의 기다림이 고기를 상하게 하진 않는다.



baraka는 종교적인 의미와 비종교적인 의미가 있다. 먼저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baraka는 “축복(blessing)"의 의미가 있다. 선행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또한 행운과도 동일시 되는 개념이다. 비종교적인 의미로는 ”이익, 이득(profit, benefit) 의 의미도 있다.

그리고 첫 번 째 두 번째 속담의 의미는 “급함은 죄(sin)”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급함은 불필요한 것”, “급함은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이 더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종교적 이라기 보다 실용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이 속담은 경고, 충고, 비판, 자기정당화 등에 쓰일 수 있다. 다섯 번째 속담은 아프리카의 사바나 기후의 특성을 보여주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맨 아홉 번째 속담은 다른 속담과는 달리 직접적인 의미 전달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급함의 무용을 설명하고 있다. 빨리 가봤자 남는 시간은 어차피 기다리기 마련이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우리나라 에서는 빨리 하면 남는 시간에 다른 것을 할 수 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오늘 할 일을 오늘 안에만 끝내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아프리카 속담을 보면 동음이 반복되는 운율을 볼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 경상도 사투리의 예를 들자면 “가가 가가가?”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같은 음을 반복함으로써 더 급함을 표현한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급하면 말을 더듬듯이,,,,,,또한 동음을 반복함으로써 스와힐리어특유의 운율을 살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속담에 이와 비슷한 속담을 예로 들자면, “새벽달 보자고 초저녁부터 기다린다.”,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까?”, “우물가에서 숭늉 달랜다.“, ”콩 밭에 가서두부 찾는다.“, ”급한 걸음에 맵시 있는 걸음 없다. 급히 먹는 밥에 목 메인다.” 등을 들 수 있겠다.



■ Chelewa ufike kuliko kulala njiani.
   길에서 밤을 보내는 것 보다 늦게 도착하는 것이 더 낫다.
■ Chelewa ufike, usiende haraka ukavunjika mguu.
   급하게 가다가 다리 부러지지 말고 천천히 가라.
■ Heri kawa ufike, kama karibu harabu.
   구사일생으로 오느니(급히 오다가 사고치느니) 늦게 도착하는 게 더 낫다.



아프리카이기에 가능한 속담이다. 우리나라처럼 급히(특히나 급히!!)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통할 수 없는 속담이다.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나라에서 늦음이란 용납할 수 없는 요소이다. 아프리카 인들의 여유로움... 배워봄직한 덕목이다.  

이러한 속담을 우리나라의 속담에서 찾기는 여려웠다. 우리나라와 아프리카의 문화 차이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몇가지 억지로 예를 들자면, “속히 더운 방이 쉬 식는다.”를 들 수 있겠다. 급히 데워지고 급히 식느니 천천히 데워지고 오래 가는 것이 좋다는 의미에서 정했다. 또 한가지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라는 속담으로 건성건성 급하게 하면 아니함만 못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Chungu kiinjike noto ukiishawaka.
   불을 지핀 다음에 항아리를 돌(불에 달궈진)에 올려놔라.
■ Daraja livuke ulifikiapo.
   다리에 도달했을 때에 다리를 건너라.
■ Kutinda kanzu mwana hajazawa.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옷을 맞춘다.
■ Subiri, subiri, tajaa bahari.
   기다리고 기다려라. 조수는 곧 올라온다.
■ Sishue dau na maji yajaa.
   물이 차기 전까지는 배를 띄우지 말아라.
■ Mbegu za leo si miti ya kesho.
   오늘 심은 씨앗이 내일 나무가 되진 않는다.
■ Mvumbika mbichi hula mbivu.
   덜 익은 과일을 모으는 사람은 그 과일이 익으면 먹는다.



아프리카의 문화를 알지 못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속담이 몇 개 나와있다. 먼저 첫 번째 속담을 보면 “불을 지핀 다음에 항아리를 돌 에 올려놔라”를 보면 우리나라의 아궁이와 비슷한 존재로 “돌”을 사용하여 구움을 알 수 있다. 한 대 유행했던 돌판 삼겹살을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또 세 번째 속담에선 도축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동물을 도축할 때 풀을 베어서 밑에다 깔고 시작함을 알 수 있다. 여섯 번째 속담에서는 이야기꾼(story teller)의 재치를 알게 해주는 속담이다. 이 문구는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섣부른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이야기꾼이 해주는 말이라고 한다. “다 듣고 질문해!” 라는 표현을 재밌게(서로 맘 상하지 않게)했다.

우리 나라의 속담에서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뿌리 없는 나무에 잎이 필까.”, “떡방아 소리에 김치국 부터 마신다.”, “떡 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김치국 부터 마신다.”, “시집도 가기 전에 기저귀 마련한다.” 등을 들 수 있다.


■ Kusimamia haki ni subiri.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다.
■ Kwanza kwa saburi, kwisha kwa sururi.
   인내를 갖고 시작하면 즐겁게 끝난다.
■ Subira [saburi] ni ufunguo wa wema[faraji]
   인내는 행복함의 비결이다.
■ Subira yavuvta heri. Saburi huvuta heri.
   인내는 축복을 가져다 준다.
■ Subira huzaa mwana mwema.
   인내는 훌륭한 아이를 만든다.
■ Asubiriye hajuti.
   인내할 줄 아는 자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 Mstahimilivu (Mstahamilivu) hula kibivu [mbivu]
   인내심 있는 사람은 잘 익은 과일[잘 요리된 음식]을 먹는다.



이 속담 군은 인내의 중요성, 미덕에 대한 속담들이다. 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인내는 복의 근원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내를 권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속담이 인내는 행복, 축복, 평온함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우리 나라 속담으로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를 들 수 있다.


■ Phoephoe na wendo!  [Polepole na wendo]
   느긋함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 Pole pole ni mwendo.
   느긋함[주의 깊음]이 바로 앞서 나가는 것이다.
■ Taratibu ndio mwendo ; nguvu-nguvu hayafani.
   조심함, 그것이 길이다 , 힘으로 하는 것은 성공적이지 않다.
■ Mwenda (wa) haraka hukwaa dole.
   천천히 걷는 사람은 발부리가 걸리지 않는다.
■ Mwenda pole hufika mbali.
   천천히 하는 여행이 더 멀리 간다.
■ Polepole ya kobe humfisha mbali.
   천천히 걷는 거북이가 멀리 간다.



느림에 대한 속담들을 살펴보면 먼저 앞에 빠름에 대한 속담에도 나왔지만, 다리와의 관계성을 알 수 있다. 급히 가면 다리가 다칠 수 있고, 느리게 가면 안 다치고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급히 갈 때 보단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꾸준히 하는 성실함을 강조하는 속담이기도 하다. type D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이와 상응하는 우리 속담으로“느린 걸음이 잰걸음.”,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을 들 수 있다.


6.34 위선(Hypocrisy)


■ Hutumiaje mchuzi nyama usile.
   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고기죽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 Nyoka wa uduma-kuwili, huuma akivuvia.
   입이 두 개달린 뱀이 물고, 불어주고 둘다 한다. (너를 기만하는 친구를 조심해라.)
■ Akuangaliaye mchana, usiku akuchoma.
   낮에는 너를 칭송해던 자들이 밤에는 너를 불질러버릴지도 모른다.
■ Epuka wakusifuo siku zote.
   너를 항상 칭찬하는 자를 경계하라.
■ Panya hupuliza aumapo.
   쥐는 물기전에 아첨한다. (아첨하는자를 경계하라)



눈가리고 아웅‘과 비슷한 의미의 속담이다.
아프리카에는 뱀에 관련된 속담이 많은 것 같다. ‘소’ 가 우리나라의 속담에 많이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입이 두개인 뱀이 한입으로는 물고, 다른 한 입으로는 불어준다는 비유가 참 재밌다.

어느 사회, 문화에서나 위선자들에 대한 경계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감언이설’이라는 사자성어와 같은 의미이다.

쥐 역시 뱀과 함께 아프리카의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먹이감을 먹기 전에 아첨을 한다는 쥐의 특성이 우리나라 속담에서의 쥐의 특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6.35 친절함(Kindness)


■ Hisani haiozi.
   친절함은 부패하지 않는다.
■ Alokunyowa, mekupunguza kuchana.
   다른 사람이 너의 머리를 잘라준다면 너의 빗질하는 수고는 줄어들 것이다.
■ Asiye kuudhi simuudhi.
   그가 너에게 해롭게 하지 않는 다면 너도 그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말아라.
■ Aninymae mbaazi, kanipunguzia mashuzi.
   너의 도움을 거절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필요는 없다.
■ Ihsani iandame imani.
   친절함은 반드시 정직함이 동반되어야 한다.
■ Jaza ya ihsani ni ihsani.
   친절의 대가는 친절이다.
■ Njema haziozi.
   좋은 행위/친절함는 나쁘게 되지 않는다.
■ Vyema haviozi.
   좋은 행동은 썩지 않는다.
■ Mwenye kutenda mema ajifanyizia mwenyewe.
   그가 좋은 행동을 하면 그것은 나중에 그에게 보답되어질 것이다.
■ Mwenye kumridhi mwenziwe, na Mungu humridhi.
   친구들에게 상냥한 사람은 신께서도 똑같이 상냥하게 대해 주신다.
■ Mwenye kutenda jamala, naye hulipwa jamala.
   친절한 행동을 한 그에게 친절한 행동은 그렇게 되어질 것이다.
■ Salamu hurudishiwa salamu.
   인사는 또 다른 인사를 얻게된다.



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친절함이란 나에게 해로운 것을 다른 사람이 가져가거나 제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내게 도움 줄 것을 거절했다면 나 또한 그 사람에게 어떠한 감사도 보일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속담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란 말로 정리 할 수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 대가를 치룬다는 데에 중점을 둔 것 같으며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잘 알게끔 해주는 소재들로 속담을 만들었음을 느꼈다.


6.36 배움(Learning)


■ Asiyeuliza, hanalo ajifunzalo.
   질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것 이 없다.
■ Eleza haja upate haja.
   네가 필요한 것을 설명하면 그 필요한 것을 얻게 될 것이다.
■ Jifanye mnyonge upate kujua.
   알기 위해서는 네 자신을 낮춰라.
■ Kuuliza si ujinga.
   질문하는 것과 무지한 것은 같지 않다.
■ Mtu si mjinga asemaye sikufahamu.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것이 아니다.
■ Muuliza ana ilimu.
   질문하는 학생은 안 하는 학생보다 더 많이 배운다.
■ Elimu haina mwisho.
   학문은 끝이 없다.
■ Elimu ni bahari.
   배움은 바다와 같다./배우는데 늦는 것은 없다./가르침을 받지 못한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 Elimu ndiyo mwanga yongozayo kila shani.
   배움은 모든 것을 황홀한 지경으로 이끌어 주는 불빛이다.
■ Ajifunzaye haachi kujua.
   공부는 계속 배워야 한다.
■ Elimu ni mali ambayo adui hawezi kuiteka.
   교육은 어떤 적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소유물이다.



6.37 사랑(Love)


■ Adui mpende
   원수를 사랑하라
■ Adui mpende , kumchukia ni kumchukia ndugu yako.
   원수를 사랑하라, 네가 그를 미워하는 것은 너의 형제를 미워하는 것과 같다.
■ Adui mpende leo , yawezekana mkana rafiki kesho
   오늘 원수를 사랑하라 ; 네가 내일 친구가 되어준다면 가능하다.
■ Chiki kwa chuki , mwanga kwa mwanga
   미움에는 미움, 친절에는 친절
■ Akutendaye mtende , mche asiyekutenda
   너를 해치는 사람을 해롭게 해라, 그리고 너를 해치지 않는 사람은 걱정해주어라
■ Dawa ya jipu ni kulipasua
   종기를 치료하는 것은 그것을 짜는 것이다
■ Dawa ya moto ni moto.
   불에 대한 해결은 불이다. 불에는 불로 싸워라.
■ Haina tabibu ndwele ya mapenzi.
   상사병에는 약이 없다. 사랑은 맹목적이다.
■ Akipenda chongo huita kengeza
   사랑은 악이 없다고 생각한다.
■ Akipenda chongo huona kengeza
   만약 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는 사팔눈으로만 본다(콩깍지가 씌인다.)
■ Mapendo yanapovusha.
   눈을 가리고 사랑해라
■ Mapenzi hayana macho , wana hayana maarifa
   사랑은 눈을 가지고 있지도,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 Mwenye kupenda ni jura, wala hana maarifa
  사랑하는 사람은 어리석고, 이해력을 가지지 않는다./사랑은 어리석음을 만들고 모든 지혜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 Ukipenda damu upende na usaha
   만약 피를 사랑한다면 고름까지 사랑하라.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가 아프거나 가난할때도 역시 사랑하라.
■ Yaliyopita yamepita , yaliosalia kitube cha mongo.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은 우리 뒤에 버려 두라.



6.38 거짓말(Lying)


■ Habari ya uwongo ina ncha saba.
   거짓된 이야기는 일곱개의 결말을 가진다. 눈덩이처럼 이것은 혼자 구르면서 불어난다.
■ Hakuna akweaye mbuyu na viatu miguuni.
   신발을 신고 바오밥나무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실과 거짓은 같이 갈 수 없다. 거짓말쟁이는 반드시 넘어진다.
■ Njia ya mwongo (ni) fupi.
   거짓말쟁이의 길은 짧다. 거짓말은 멀리가지 못한다./얼마 후에 거짓말쟁이는 그가 말한 것을 잊어버리고, 그리고 그는 그가 한 거짓말에 붙잡힐 것이다.
■ Uwongo ni mbio ya sakafuni.
   거짓은 마치 미끄러운 지붕 위를 달리는 것과 같다.
■ Msena kweli hakosi.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다. 정직은 최고의 예절이다.
■ Kusema kweli si tua.
   진실을 말하는 것은 불명예가 없다.
■ Kweli iliyo uchungu, si uwongo ulio mtamu.
   불쾌한 진실은 기분 좋은 거짓보다 낫다.
■ Kweli ndiyo fimbo ya kukamata.
   진실은 인생에서 최고의 도움이다.
■ Ukweli uchungu, lakini wa mungu
   진실은 고통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으로부터 온 것이다.
■ Msema kweli hukimbiwa na marafiki zake.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그의 친구들로부터 버림받는다./아첨은 친구를 가져다주고 진실은 적을 가져다준다.
■ Una uwongo una njia.
   거짓말을 했다면 길을 가진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는 아주 낯익은 문구가 스와힐리어에도 똑같이 있을줄이야
그리고 사랑에 관한 파트는 몇개의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번째로  원수 또는 적을 사랑하라 는 종류,  눈에는 눈 , 이에는 이  종류,  맹목적인 사랑 에 관한 종류, 대상의 모든 면을 다 사랑하라 는 종류로 나눠지는데 이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에 관한 재미있는 속담 중 거의 모든 유형의 것이 다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파트가  원수를 사랑하라  는 교훈적인 속담이어서 그런지 계속 그런 종류가 나올거란 생각을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속담이 나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런 당황스러움은 거짓말에 관한 속담에서 더 심해졌는데, 거짓말 부분도 마찬가지로 교훈적인 내용이 나오다가 뒤에가서는 때로는 거짓말이 유용함을 알려주는 속담도 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당황스러움의 원인은 바로 나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스와힐리어로 된 속담이 내가 알고 있는 동양과 서양의 이른바 명언 또는 격언과 같다는 데서 나의 편견은 무너졌고 또 그런 무거운 교훈이 담긴 속담만이 존재할거라는 편견도 다른 여러가지 기지와 재치가 넘치는 속담들을 보면서 무너져야만 했다.

왜 스와힐리어 속담은 동서양의 다른 속담들보다 범위도 좁고 덜 교훈적일거란 편견이 무의식적인 생각이 깔려있었던 걸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와 같은 무섭고 공격적인 속담에서부터  원수를 사랑하라  또는  맹목적으로 사랑하라  와 같이 깊이있는 속담들 또 이른바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가 씌인다  로 해석되는 재미있는 속담들이 실로 나에게 익숙한 문화와 너무나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나에게는 일종의 문화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앞뒤 안가리며, 콩깍지 씌일수 있으며 , 때로는 살아가면서 거짓말이 더 편하게 사는 방법이 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아 ..그들도 나와 같구나.. 하는 생각에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의 문화적 편견은 아프리카에 대한 것만은 아닐것이다.다른 아시아의 국가들이나 아니면 다른 문화적 대상에 대해 알게 모르게 오랜 편견에 의한 틀린 잣대로 판단하게 되는 우매함을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준 시간이었다.  


6.39 풍습/예절(Manners)


■ Kawaida ni kama sheria.
   관습/풍습이란 법과 같은 것이다.
■ Mgeni pofu ingawa ana macho yake.
   방문객이란 눈을 갖고 있어도 눈 먼 것과 마찬가지이다.(비록 현명한 방문객이더라도 현지인/지배인/주인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 Ukikaa mji wa mwenye chongo, nawe vunja lako jicho.
   만약 한쪽 눈만 갖는 사람들의 마을에 산다면, 그들과 똑같이 하라.
■ Wananchi wakila panya, ule panya.
   만약 현지인/원주민이 쥐를 먹는다면 따라 먹어라.



위에 소개된 아프리카의 속담은, 낯선 곳에 가더라도 그 사회의 픙습과 습관에 따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그렇게 행동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나와 다른 것,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것(문화)들에 대해서도 편견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말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존중의 자세·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이해이며, 그 문화 안에 있는 사람한테는 그 문화가 “절대적”이라는 것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속담은 한국에도 많다.「시골가면 시골풍습을 따라야 한다」/「절에 가면 중인체 촌에 가면 속인인체」‥환경에 적응하라./「절에 가면 중 이야기하고, 촌에 가면 속인 이야기한다」/「분에 심어 놓으면 못된 풀도 화초라 한다」‥사물은 그 환경에 따라 귀하고 천해진다./ 등이다.

예화 - 문화의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한 예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영화이다. 덴마크 출신의 작가 카렌 블릭센(필명 아이삭 디네센)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하여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상당 부분을 자신의 요리사였던 키쿠유족의 카만테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했다.

카만테가 우리 백인들이 먹는 서양음식이 어떤 맛이 나야만 되는지에 대해서 알 리가 없다. 카만테는 비록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문명의 세계(백인들의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었음에도 그의 심중에는 여전히 키무유족의 전통에 대한 믿음만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는 철저한 키쿠유 부족민이었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맛보곤 했지만 그의 표정은 마치 마녀가 냄비에서 국물을 떠서 살짝 맛보면서 짓는 의심쩍은 표정 그 자체였다. 카만테는 자기의 조상들이 대대로 먹어온 우갈리(옥수수 가루로 만드는 동부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음식으로서 모양은 백설기와 비슷)만을 고집해서 먹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조차 카만테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구운 고구마나 양고기 비계 덩어리 등 키쿠유 부족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들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이는 마치 사람들과 오랫동안 살아서 문명화된 개가 은혜에 대한 답례로서 당신 앞에 뼈다귀를 가져다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카렌 블릭센은 자신의 요리사였던 카만테를 인간들(즉 유럽의 백인들)과 오랫동안 살아온 덕분에 문명화된 개에 비유했다. 그녀의 의식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흑인들의 이미지는 완전한 존재로서의 인성이 아닌 獸性으로서의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모든 선함과 훌륭한 가치의 기준은 백인중심의 유럽문화였으며 타문화는 미개하고 열등하기에 문명화시켜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타문화에 대한 존중심을 결여했을 뿐만 아니라 백인 중심의 가치판단 기준으로서 타문화를 재단하려 했다. 또 모든 문화는 상대성을 가지고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철저히 부정했다.


■ Asiyefunzwa kwao hufunzwa na ulimwengu.
   집에서 풍습/예절을 못 배우면 세상으로부터 배우게 된다.
■ Asofundwa na nina, ulimwengu humfunda.
   어머니에게 맞지 않는 자녀는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게 된다.
■ Teke la kuku halimwumizi mwanawe.
   닭이 걷어차도 병아리는 다치지 않는다.(부모가 자식을 꾸짖을 때 쓴다.)
■ Ukupigao ndio ukufunzao.
   너를 꾸짖는 者야말로 너를 가르치는 者이다. (채찍질을 안 하면 아이를 망친다.)  



위의 속담들은 자식이 귀할수록 매를 때려서라도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는 뜻을 가진 것들이다. 이와 비슷한 한국의 속담으로는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한 개 더 준다」/「귀한 자식에게는 매를 아끼지 말아라」/「매 끝에 정든다」‥매를 맞든지 꾸지람을 들은 뒤에 도리어 정이 들게 된다./「노인네 망령은 고기로 고치고 젊은이 망령은 몽둥이로 고친다」/「매로 키운 자식이 효성 있다」/「부모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아이를 기르려면 무당 반 어사 반」등이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예술과 문학/속담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2)

2004. 7. 13. 12:54
6.14 꾀, 교활함(Cunning)

현명함, 재치, 영리함, 잔꾀, 교활등의 단어들은 다소 구체적 의미상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조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명함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사회에서 구분되는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현명함, 또는 꾀에 대한 속담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은 그것이 자연스러움으로 대변될 수 있는 아프리카라는 생활적 여건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첫 속담은 나이와 지혜로움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원시 부족을 이루면서 살던 아프리카에서는 부족 구성원들간의 계급적 차별보다는 나이 또는 사회적 기여도 등이 그 구성원에 대한 대우의 척도로서 중용한 요건이었을 것이다. 나이는 결국 경험의 풍부함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고 사회의 질서를 위해 나이든 이들에 대한 공경과 존중은 아프리카 문화를 포함하여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노인정치, 장로정치 구조(gerontocratic structure)는 유사이래로 인간의 계속성과 함께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유아, 아이, 배우자, 부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동해 간다. 사회적으로는 통과의례나 연령등급, 그리고 비의결사같은 단계를 거쳐 옮겨가게 된다. 질병으로 일찍 죽지 않고 많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길러낸 사람들은 연장자로서 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노인정치 사회에서는 연장자들의 회의에 상당한 권위가 있으나 그들의 통치는 서투르거나 압제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혜 또는 꾀가 많음이 아프리카 사회의 제일 가치는 아니다. 꾀가 많고 똑똑하더라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 있듯이 실수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이들에게도 실수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결국 이러한 실수는 다른 이로부터 어떠한 실망을 주게 되더라도 용서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 Mtoto wa makako hawezi kumfundisha makako wa zamani mayele.
   어린 원숭이는 나이 든 원숭이에게 잔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 Ndege mjanja hunaswa na tundu bovu.
   영리한 새도 새 덫에 잡힐 수 있다.



6.15 죽음(Death)

죽음 또한 어느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를 들여다보더라도 눈에 띄는 모습이다. 이 세상 어느 구석에 가더라도, 어떠한 문화를 살펴보더라도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지어서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군락에서는 죽은 이에 대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와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속담은 비교적 죽음에 관해 풍부한 속담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들의 삶에서 죽음의 문제가 얼마나 친밀하고 또한 얼마나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음 몇가지 분류된 속담들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느껴 보도록 하자.

어떤 속담들은 죽음의 의미를 통해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 같다.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라는 식의 말은 우리 문화권에서도 매우 친근한 속담이다. 불구자의 의미가 척박한 자연환경속에서 생활이 이루어지는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거의 죽음에 가까운 치명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래도 죽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아는 이들도 삶에 대한 중요성을 이 속담들을 통해 되새겨 놓고 있다.

어떤 속담은 말 그대로 "죽음 앞에서는 영웅 호걸도, 빈부귀천도 없다."는 뜻이다. 무덤의 모습이 그가 가지고 있던 부를 어느 정도는 보여줄 수 있을 지 몰라도, 죽고 나면 빈손으로 간다는 "공수래공수거"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속담들은(비교적 많은 수의 속담들이 여기에 모여있는데) "죽음은 결국 인간이 피하지 못하는 숙명적인 결과이다"라는 의미를 말하고 있다. "Kifo kikimbizwa funza chawekwa mahali gani?(어떤 곳에 놓아도 구더기가 쓸지 않는 시체가 있을까?)"와 같은 속담은 아프리카 인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 속담인 것 같다. 결국 죽음이 사람들에게 허무함을 안겨주고 절망을 몰고 올 지라도 또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서 오히려 죽음이 가져다주는 공포감을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는 것 같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속담은 찾기가 어렵지 않은데 아마도 어느 시대 어디에서도 이라한 고민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는 것 같다.

죽음이 비록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지라도 언제 어디서 어떠한 위험이 닥쳐올 지 모르는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자신 근처에서 언제 자신을 덮칠 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다. 이는 그들에게 언제 자신을 데려갈 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하여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지를 제시해 줄 것이다. 죽음의 불가항력적인 도래는 결국 신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짐을 확인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함을 신의 영역으로 옮기면서 자연의 위대한 힘과 위협으로부터 안정과 기댈 곳을 모색하는 아프리카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 Bora kilema kuliko mfu.
   불구자는 시체(죽음)보다 더 낫다.
■ Ni afadhali kuishi kuliko kufa.
   죽음보다 오히려 사는 것이 낫다.
■ Hakuna tajiri shimoni.
   부자(가 묻힐) 구멍은 (따로) 없다.
■ Kifo hakina kinga.
   죽음은 방어를 갖고 있지 않다. 죽음을 피할 방법은 없다.
■ Hakuna chanzo kisicho (na) mwisho.
   끝이 없는 시작은 없다.
■ Hakuna kilima bila kaburi.
   무덤 없는 산은 없다.
■ Kifo na kiumbe, kiumbe na kifo.
   죽음과 인간, 인간과 죽음.
■ Kufa ni faradhi ya iliyokadirika.
   죽음은 불변성을 평가하기 위해 있다.
■ Kifo ki karibu, ki kishogoni mwako
   죽음이 가깝다, 너의 뒤통수에 있다.
■ Kuna uzima na kifo.
   삶과 죽음이 있다.
■ Kufa kolewa ni Mungu
   죽음은 신으로부터 정해진다.



6.16 결정(Decision)

아프리카인들도 시작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다. 시작을 잘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교훈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담기 힘들다는 속담의 일반적인 특성은 시작이라면 일단 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한 속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스와힐리어 속담에도 적용된다 하겠다.

위의 속담들은 해야할 일을 미루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뜻을 담고 있는 속담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아마 이보다 더 널리 회자되고 있는 속담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이 속담이 이만큼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아마도 중요한만큼 생활 속에서 지키기 힘든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스와힐리어 속담에서도 이 속담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있다. 아프리카인들도 부지런함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반대로 미루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속담이 이만큼 많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그것을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계속적으로 그것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하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사람이란 하기 어려운 일일수록 말을 많이 하는 법이다.

이 속담은 시작이라는 것이 중요한만큼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르게 해석한다면 시작이 어려운만큼 시작이 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시작이 반이다!'


■ Chanzo chema, mwisho mwema.
   시작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
■ Atanguliaye kupiga mara nyingi ni mshindi.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기 마련이다.
■ Awali ni awali, awali mbovu hapana./Awali ni awali, hakuna awali mbovu.
   시작치고 나쁜 시작은 없다.
■ Leo ni leo.
   오늘은 오늘이다.
■ Aliyengonja, hawezi kuja.
   기다리기만 해서는 오지 않는다.
■ Leo(ni) kabla ya kesho.
   오늘이 내일보다 먼저다.
■ Leo ni leo : asemaye kesho ni mwongo.
   오늘은 오늘이다. 내일이라 말하는 자는 거짓말쟁이이다.
■ Leo ni siku ya mwerevu, kesho ya mpumbavu.
   오늘은 똑똑한 자의 날이고 내일은 멍청한 자의 날이다.
■ Leo ni yako, kesho sio.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 너의 날이다.
■ Ngonja! ngonja! huumiza matumbo.
   기다려! 기다려! 이것은 위장을 상하게 한다.
■ Ngonja! ngonja! ikamkosesha sokomtu mkia.
   너무 오래 기다려서 침팬지는 꼬리를 잃었다.
■ Ni sasa mambo, ni sasa.
   그것들이 지금이 어떤 것이다. 현재가 그들이다. 지금이 행동할 때이다.
■ Nyumba ya usiri ni nyumba mbaya.
   미루는 것이 습관이 된 집은 좋지 않은 집이다.
■ Usiri usiri wavuta ukiwa.
   연기시키는 것은 포기를 불러온다.
■ Usiseme "kesho kesho" hwenda hutaona mwisho.
   "내일 내일"이라고 말하지 마라. 아마도 너는 결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 Mwanzo huwa na usiri, ikawa mkaragazo.
   시작은 연기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폭우가 있을 수도 있다.



6.17 음주(Drinking)

술이 문제라는 것은 어디에서나 인정되는 사실인 모양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술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과할 경우에는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속담에도 나타나는 것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술은 그러한 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Penye ulevi ndipo penye matata.
   술 취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문제가 생긴다.
■ Hapo palipokuwa na mvinyo ndipo penye hatari.
   술이 있는 곳에는 위험이 있다.



6.18 본분, 직분(Duty)

이 장의 속담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게, 본분에 맞게 일을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능력에 닿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지말고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한다라는 속담이라든지, 코끼리에게 이길 수 있다는 허풍 따위는 하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본분을 잃어버리지 마라'는 교훈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이 되었으면 어른에 걸맞은 행동과 일을 해야한다는 속담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보트 띄우기 놀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 Acha kujenga nyumba ya karatasi.
카드 집 짓는 일은 그만해라. 생산적이지 못한 일은 그만하고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을 해라. 비현실적인 일보다는 현실적인 일을 해라.
■ Hujenga ghorofa kuzimuni.
   그는 마천루를 짓고 있다.
■ Hukupata nguvu za kushinda njovu.
   너는 코끼리를 이길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
■ Kuolesha huko utakwishilia.
   넌 어린애들 장난감 보트 놀이 하다가 끝이 날 것이다.
■ Mfumbata moshi.
   연기 잡기.



6.19 해악, 불선(Evil)

이 속담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중국 성어로 잘 표현될 수 있겠다. 항상 자신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또 설혹 아주 좋더라도 그러한 일은 언제든지 바뀌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나아가 너에게는 의미 없고 쓸데없는 것 혹은 오히려 나쁜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줌으로써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Asiyataka kukusaidia kubeba hukwambia bwaga.
너를 돕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너의 짐을 들어준다면 그것은 너의 짐이 내동댕이쳐질 것을 의미한다. 도와주지는 못하면서 오히려 해코지를 한다.
■ Kiwi cha yule, ni chema cha yule ; hata ulimwengu wishe.
   한 사람에게는 나쁜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 Kilo sumu kwako ni dawa kwa mwenzio.
   너에게는 독인 것이 너의 상대에게는 약이 될 수 있다.
■ Kizuri kwako, kibaya kwa mwenzako.
   너에는 좋은 것이 너의 친구에게는 나쁜 것일 수 있다.  
■ Rusha ni adui ya haki.
   뇌물은 정의의 적이다.



6.20 최선책, 귀중함(Excellence)

우리 속담 중에 '겨울이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는 속담이 이와 유사한 뜻을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겨울이 없기 때문에 눈이나 추위와 관련된 속담이 없다. 따라서 어떤 물건이나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 또는 그가 위기에 처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위기 상황으로 겨울의 추위를 상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농사는 지었기 때문에 괭이의 유용성을 평가할 수 있는 곳은 밭이라는 것이라는 비유를 통해 같은 교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속담은 어떤 물건 등을 제 용도에 어울리지 않게 사용하는 경우 혹은 그물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경우 등을 의미 할 때 쓰인다. 우리속담에 비슷한 것으로 '개발에 편자' 등이 있다. 아프리카는 역시 아프리카답게 그 지역 특산물인 상아를 등장시켜 속담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속담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라는 속담과 비슷하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속담은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그 주제를 표현해 내는 그릇인 형식이라고 하겠다. 언어는 그 나라나 민족의 특수성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일종의 색인이기 때문이다.

비용을 조금 아끼려다 일이 잘못되어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속담은 그러한 실수에 대한 경각심을 북돋워 주는 역할을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어떤 일이든지 정직한 노력을 쏟아 부어 그에 합당한 결과를 받고 그에 승복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 Imara ya jembe kaingoje shamba.
   괭이의 단단함은 정원에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 Jino la pembe si ya pengo.
   상아는 마지막 이빨이 벌어진 틈에 대한 치료법이 되지 못한다.
■ Wanja wa manga si dawa ya chongo.
   물감은 외눈에 대한 치료법이 아니다.
■ Paka hashiba kwa wali, matilabae ni panya.
   고양이는 쌀에 만족하지 않는다. 쥐가 그것에 대한 더 나은 대답이다.
■ Paka hakuti kwa wali, martaba yake panya.
   고양이가 원하는 것은 쥐지 쌀이 아니다.
■ Rahisi inavunja upishi.
   싸게 하려다 요리를 망친다.
■ Rahisi siku zote haifiki.
   쉬운 일이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다.



6.21 경험(Experience)

아프리카인들은 전통적인 유교사상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못지 않게 연장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지혜에 따르도록 한다. 아프리카에서 연장자들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나이만큼 축적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있어서 경험은 지식의 원천이자 권위의 근거이다. 경험을 통해 얻어진 지식은 갖가지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하고,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힘든 시행착오를 거쳐 경험적 지혜를 터득한 연장자들은 공동체에서 지도자의 지위를 갖게 된다. 즉, 아프리카 사회에서 경험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규범적, 윤리적 가치에 권위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얻은 산지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어느 나라의 경우에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고방식이지만, 아프리카인들이 경험을 얻는 방법은 곤충, 물, 집의 구조 등 그들의 삶의 터전과 방식과 조응하면서 독특하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 kitanda usichokilala, hujui kunguni wake  
   자보지 않은 침대에 있는 벌레들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 Adhabu ya kaburi hujua maiti.
   무덤의 벌은 시체만이 안다. 죽어봐야 저승도 안다
■ Asiyejua faida ya mwangaza aingie gizani
빛이 주는 이익을 알지 못하는 자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하라. 자기가 갖고 있는 좋은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반대의 나쁜 것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뜻
■ Atangaye sana na jua, hujua
   낮 동안 많이 돌아다녀 본 자가 안다. 많은 경험을 하면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 Uzoefu ndio mama wa maarifa
   경험은 지식의 어머니이다
■ Kupotea njia ndiko kujua njia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길을 아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옳은 방법을 알게 된다는 뜻,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재난으로부터 뜻밖의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 Njia ya siku zote haina alama
매일 매일의 모든 길은 표시를 갖고 있지 않다. 앞일을 미리 알 수는 없지만 경험이 많으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뜻.
■ Maji usiyoyafika hujui wingi wake
너는 네가 가보지 못한 곳의 물의 양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자기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
■ Nilale usiku chumbani, nikajua tundu paani
나에게 그 방에서 하룻밤만 자게 해보면 지붕에 있는 구멍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뜻.
■ Nyumba usiyolala ndani huijui ila yake
   네가 자보지 않은 집의 결점은 알지 못한다.
■ Nyumba usimolala hujui kama inavuja
   네가 자보지 않은 집이 새는지를 알 수 없다. 외양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 Tamu ya muwa aijua muonja
   설탕의 달콤함은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
■ Kuishi kwingi kuona mengi
   오래 사는 것이 많이 보는 것이다.
■ Chiriku mzee hakamatwi na makapi
   늙은 새는 덫에 잡히지 않는다
■ Mpofuka ukongweni, hapotewi na njia
   나이 많은 장님은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 Ng'ombe hajui thamani ya mkia wake mpaka umekatwa
   소는 꼬리가 잘리기 전까지는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6.22 운명(Fate)

아프리카인들은 운명에 대해 대부분 순응적인 태도를 보인다. 오랜 시간동안 자연의 힘을 경험적으로 터득한 이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대처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순환적인 자연의 흐름을 통해 생명과 가치를 갖고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소멸하기 마련이라는 교훈을 간직하고 있다.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모든 문에는 열쇠가 있다”식의 비유를 통해 모든 문제에는 그에 맞는 해결책이 존재하며,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동반자가 있다는 적극적인 운명의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 Ajali haibishi hodi
   사고는 미리 노크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 Ajali haina kinga
   운명은 막을 수 없다. 불행한 일이나 사고를 당한 사람을 위로할 때 쓰인다.
■ Agali haina kinga likufikalo shukuru
   죽음은 막을 수 없다, 만약 죽음이 찾아오면 고마워해라.
■ Amekipanda chombo mwamba
   그의 배는 벼랑 위에 올려졌다.
■ La kuvunda halina rubani
   망가진 배에는 항해사가 필요 없다
■ Chombo cha kuzama hakina usukani
   가라앉는 배에는 조향장치가 필요 없다
■ La kuvunda halina ubani
   썩은 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
■ Mja hafuti landishiwelo
   죽을 운명에 있는 사람은 저승의 명단에서 지워질 수 없다
■ Tbibu hazuii ajali
   의사는 죽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
■ Chema hakidumu
   좋은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 Chema duniani hakina maisha
   이 세상의 좋은 것은 오래 가지 않는다.
■ Kila mlango una ufunguo wake
   모든 문은 열쇠를 갖고 있다
■ Kila mtu na mtuwe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사람(친구)를 갖고 있다



6.23 두려움(Fear)

자칼이 덤벼들거들랑 하이에나를 보여주고, 하이에나가 덤벼들거들랑 사자를 보여주고, 사자가 덤벼들거들랑 사냥꾼을 보여주고, 사냥꾼이 덤벼들거들랑 뱀을 보여주고, 뱀이 덤벼들거들랑 막대기를 보여주고, 막대기가 덤벼들거들랑 불을 보여주고, 불이 덤벼들거들랑 강물을 보여주고, 강물이 덤벼들거들랑 바람을 보여주고, 바람이 덤벼들거들랑 신을 보여주어야지. [덤벼들거들랑] 전문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인들은 두려움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 있어서 힘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지 그 힘과 대결하여 이기려고 하거나 정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인들의 두려움에 관한 속담들은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한국 속담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우선, 비슷한 수의 속담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특히 뱀과 관련된 그들의 속담은 매우 다양하다. 아프리카 인들의 생활에 있어서 뱀은 무척이나 두려운 존재이며, 그래서 항상 경계의 대상이고 그 심정이 이렇게 다양한 속담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인들에게 악어, 뱀 등의 동물은 그들의 몸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적(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인들은 그들에 대해 경계의 마음은 있을지언정 적대의 마음은 없다. 두렵고 피해야 하는 대상이지(그러면서 공존하는), 포획하고 훈련을 시킬 수 있는 대상은 아닌 것이다. 무자비한 포획으로 따로 법을 만들고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동물'을 보호해야만 하는 '현대화'된 지역과는 사뭇 대조적인 관점이 아프리카에 있는 것이다.

두려움을 하나의 상처로 이해하고, 그 상처는 결코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관습을 주목해 볼 만하다. 두려움에 관련된 그들의 속담 중 상당수는 '두려움의 상처는 치유되는 않는다'는 일관된 내용을 담고 있다. 언제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생활을 살아가는 아프리카 인들에게 갖가지 두려움들은 평생 유의해야할 일종의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상처처럼 남은 그 기억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보다 현명하게 유지해 나갔던 것이다. 아프리카 인들의 이와 같은 사고는 그들의 역사 속에 상처로 기억된 '식민지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너무도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식민지 경험은 그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며, 그들은 언제든지 그 기억을 떠올리며 경계의 자세를 취할 것이다. 오늘날 아프리카가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 원인에 대한 연구에는 이와 같은 아프리카 인들만의 사고 구조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역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 Mguu ulioumwa na nyoka hawishi woga : hata ukiona kamba hudhania ni nyoka.
   뱀에게 다리를 물린 사람은 항상 그것을 두려워하며, 심지어 줄을 보아도 뱀이라 여기게 된다.
■ Mwenye kuumwa na nyoka akiona jani hustuka.
   뱀에 물려본 사람은, 나뭇잎만 보아도 깜짝 놀란다.
■ Mwenye kuumwa na nyoka, akiona ung'ongo hujituka.
   뜨거운 것에 데인 고양이는 찬 물도 두려워한다.
■ Mtafunwa na nyoka akiona ung'ongo(au ukuti) hushtuka.
   덫에 걸려본 새는 모든 숲을 두려워한다.
■ Mwenye kovu usidhani kapoa.
   상처가 있는 사람은, 그가 완전히 나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Mwenye khovu simuhasibu mepoa.
   상처가 있는 사람에 대해, 나는 그가 완전히 치료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Mwenye kovu haliwai na kidonda.
   상처가 있는 사람은 그 고통을 잊지 못한다.



6.24 어리석음과 지혜(Foolishness/Wisdom)


■ Kuchinja mbuzi kwa ajili ya kinofu.
   한 조각의 고기를 위해 염소를 도살한다.
■ Kuzimisha moto kwa mafuta wilaya.
   기름으로 불을 끈다.
■ Kuuza kapu kwa miwaa.
   야자 나뭇잎을 얻기 위해 야자 나뭇잎으로 만든 바구니를 판다.
■ Chumvi sileteni baharini.
   바다에 갈 때, 소금은 안 가져가도 된다.



'어리석음'에 관한 첫 번째 속담들은 절대 낭비를 하지 않고, 매우 '합리적인' 생활 태도를 지니고 있는 아프리카 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아프리카 인들은 아주 중요한 생활 양식(糧食)인 염소를 절대로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여느 사람들과 같이 단지 쇠뿔이나 고기 한 점을 위해 소를 잡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들에게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다. 또한 염소는 그들에게 아주 소중한 동물이므로, 단지 육즙의 헐값에 교환하는 것도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다.

  그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야자나무'에 관련된 일에서도 그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지혜롭다고 여긴다. 작은 것을 얻기 위해 보다 큰 것을 소비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아프리카인들 역시 생활 속의 지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일상 생활에서 빈도 높게 사용되는 '불 난 집에 부채질한다'라는 속담 역시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도 쓰이는 속담이다. 즉, 위의 속담들은 아프리카 인들이 지니고 있는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 사람들과 비슷한 특성, 즉 그들 삶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속담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 인들이 생각하는 지혜는 다른 사회에서도 충분히 통하고 있는 지혜인 것이다.  


■ Akili ni mali.(Akili yapita mali.)
   지혜는 재산이다.
■ Akili ni bora kuliko mali.
   지혜는 재산보다 더 낫다.



'지혜'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슬기.'이다. 한마디로 지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잘 분별하고 슬기롭게 대처해 가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지자불혹(知者不惑), '지혜는 항상 부와 똑같다.(Wisdom is a treasure for all time)'라는 일본 속담이 보여주듯,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매우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역시 지혜는 물질적인 풍요와 똑같거나, 그 이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속담을 통해 알 수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예술과 문학/속담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1)

2004. 7. 13. 12:50
6.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본 연구에서는 주제별로 정리된 스와힐리어-영어-한국어 속담사전의 총 53개장을 개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스와힐리어 속담을 몇 개의 큰 주제로 분류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해석에 따라 이 연구에서는 스와힐리어 속담을 몇 개의 주제아래 분석하여 검토해보려 한다. 첫째, 아프리카인의 인간관과 인생관 ; 인생에 대한 태도, 행운, 불행, 역경에 대한 태도, 운명, 처세 및 행동양식. 둘째, 세태관과 처세관. 셋째, 자연관 등등으로 나누어 연구된다. 이에 따라 주제별로 정리된 스와힐리어-영어-한국어 속담사전의 총 53개장을 2개 학기에 나누어 연구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6.1 욕설, 험담(Abuse)

다른 사람을 비방하면 자신도 똑같이 비방받거나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 부류에 속하는 속담들의 중요한 내용이다. 이 속담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그의 불편함을 바라는 사람에게 대한 경고와 힐책으로 사용된다. 핵심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친지들에게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 Achekaye kilema hata kwao kipo.
   절름발이를 비웃는 사람은, 그의 가족들에게도 결함이 있다.
■ Kipofu simcheke, si makosa yake.
   장님을 비웃지 말아라,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 Kucheka kovu, asiyefikwa na jeraha.
흉터를 비웃는 사람은 상처를 입지 않았다. 즉, 사람의 불행을 보고 웃는 것은 그의 무지함을 보여준다.
■ Mdharau biu hubiuka yeye.
   불구자를 조소하는 사람은 그 스스로 불구자가 되어간다.
■ Mwapiza la nje, hupata la ndani.
   밖을 향하여 저주하는 것은 안을 향하여 저주하는 것이 된다.
■ Si vema, kucheka kilema.
   불구자를 비웃는 것은 좋지 않다.
■ Usimcheke mkweo, utaota chokea[nene].
   너의 장모를 비웃지 말아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의 눈에 다래끼가 생길 것이다.



6.2 경계, 조심(Alertness)

여기서 보여지는 속담은 일종의 경고를 위한 것들인데,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경고나, 아니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조심해야 될 내용 등을 보여주고 있다. 도굴꾼이 무덤 안에서 시체를 보기 전까지는 도굴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참 특이한 것 같다. 또한 우물에 관한 속담이 많은 것을 보면 아프리카인들이 특히 물을 중요시했었던 점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해가 돌아온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래서 자기를 어떤 불유쾌한 일에 몰아가는 가는 것은 그 스스로가 불유쾌한 결말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 Atupaye tope hujichafua naye.
   진흙을 던지는 사람은 스스로 더럽혀진다.
■ Kutoboa-toboa ndiko kujitoboa mwenyewe.
   계속적인 찌름은 자신을 찌른다. 사람들을 항상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은 스스로를 파괴시킨다.
■ Mchimba kaburi hachoki mpaka anaona mwana ndani.
도굴꾼은 무덤 안에서 시체를 보기 전까지는 도굴을 멈추지 않는다. 도굴꾼은 무덤 안에서 어린아이를 보기 전까지는 도굴을 멈추지 않는다.
■ Mchimba kisima huingia mwenyewe.
   무덤을 잘 파는 사람은 스스로 무덤에 들어간다.
■ Mfukuwa shimewe mwishowe hungia yeye.
구멍을 파는 사람은 그 구멍에 스스로 떨어질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악을 끼치는 사람은 그 악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 Mchimaba kisima kiwi huingia mwenyewe.
   나쁜 우물을 파는 사람은 거기 스스로 떨어질 것이다.
■ Mfyeka msitu mwisho hujikata mwenyewe.
   숲을 베어 넘기는 사람은 결국엔 다칠 것이다. 항상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결국엔 다칠 것이다.
■ Mla sumu hakufa, afile alopika.
독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았다. 죽은 사람은 그것은 요리한 사람이다. 욕설은 종종 기대에 어긋난 결과가 된다.
■ Mshale hupinduka utokako.
   위로 올라간 화살은 올라갔던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6.3 야망(Ambition)

어떤 목표를 위해서는 처음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배와 새를 빗대어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따라 일을 진행해야 하며 내 자신을 나보다 나은 그런 상대와 비교하면서 상심하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또한 어떤 일에 있어 눈에 보이는 결과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만이 행복이나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 Atakaye kufuga ng'ombe aanse na kuku.
   한 마리 소를 기르고자 하는 이는 한 마리 닭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 Mwanzo kokochi, mwisho nazi.
   시작은 싹에서 끝은 코코넛 열매로
■ Kila chombo kwa wimbile.
   모든 배는 자신만의 파도가 있다.
■ Kila ndege ana ubawa wake.
   모든 새는 자신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 Kila ndege huruka kwa bawa lake(ubawa wake).
   모든 새는 자신의 날개로 비행한다.
■ Sifanye mashindano na mtu.
   내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
■ Ukila na timsaha, hutapata nyingi raha.
   당신이 악어와 함께 원한다면 큰 기쁨은 갖지 못할 것이다.
■ Usinywe kama tembo, utapasuka tumbo.
   코끼리처럼 술을 마시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위는 망가질 것이다.



6.4 분노(Anger)

분노나 노여움에 대한 경계를 언급하고 시간의 흐름이 어느 정도의 아픔이나 노여움의 기억을 지워주듯이 어려운 시절의 분노나 흥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치료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분노는 악마와 같은 것으로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 3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뿐이라는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다.


■ Chungu kidogo huchemka upesi.
   작은 주전자가 빨리 끓는다.
■ Dawa kubwa ya hasira ni kuchelea.
   노여움의 가장 좋은 치료제는 시간의 흐름이다.
■ Hasira ni hasara.
   분노는 상실(해)이다. 분노는 해를 가져온다. 분노는 헛수고다.
■ Hasira ya mkizi furaha ya mvuvi.
   오징어의 분노는 어부의 기쁨이다.
■ Mwenye ghadhabu mbele yake busimama shetani.
   악마는 화난 사람 앞에 서 있다.
■ Ukikasirika, utahasarika.
   당신이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당신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6.5 외모(Appearance)와 아름다움(Beauty)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하며 잘난 척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은 다르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 Uzuri wa mkakasi ndani kipande cha mti.
   둥근 상자의 아름다움은 나무 안에 있을 뿐이다.  
■ Uzuri wa godoro uzuri wa nje ndani mna pamba.
   깔개의 아름다움은 겉에 있다.
■ Kila King'aracho usine ni dhahabu(hata shaba nayo hung'ara.
   빛나는 모든 것이 금이라고 생각지는 말아라(심지어는 동도 빛난다).
■ Mnyonge haunuki, hupendeza maauaye. / Mnyonyore haunuki, hupendeza mauae.
   mnyonge
   '관목은 향이 없으나 꽃은 예쁘다.'라는 말이다. 잘난 척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6.6 교제, 교류(Association)

다음의 속담들은 교제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들로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웃의 중요함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좋은'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할 뿐 아니라 그의 친족집단에 충성하는 사람이며 또한 좋은 이웃이다. 좋은 사람은 그의 시간에 관대하고 다른 사람의 곤경에 참여하고 그의 세상의 재산에 관대한 사람이다. 관대함은 최고의 미덕이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추장같이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 Baba na mtoto mwanaume : mama na mtoto mwanamke.
   아버지와 아들 : 어머니와 딸.
■ Mtu akaaye na wevi ataleta nini kama si wivi.
   도둑과 함께 사는 사람, 그 사람이 도둑질말고 무엇을 배우랴.
■ Mwivi huenda na wevi, mlevi nao walevi.
   도둑은 도둑과 함께 하고, 주정뱅이는 주정뱅이와 함께 한다.
■ Shirika wa mwizi ni mwizi.
   도둑의 친구는 도둑이다.
■ Jirani ya karibu si ndugu ya mbali.
   가까운 이웃은 떨어져 있는 형제보다 낫다.
■ Alla, Alla, jirani kama ndugu mli kule.
   신이시여, 신이시여, 형제가 멀리 있을 때는 이웃을.
■ Mkia wa nyani haumbanduki nyani.
   원숭이의 꼬리는 원숭이로부터 떨어지지 않는다.



6.7 차용, 대출(Borrowing)

이 내용은 빌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며 나아가 스스로의 노력 없이 빌리는 것만으로는 어떤 일을 해결할 수 없으며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을 교훈으로 주고 있으며 또한 빌릴 때와 갚을 때의 사람마음이 한결같지 않음을 경계시키고 있다.


■ Kukopa harusi kulipa matanga.
   빌리는 것은 갚는 것보다 항상 쉽다.
■ Mzowea kutwaa, kutoa ni vita.
   가져가는데 익숙한 사람으로부터 돌려 받는 것은 전쟁과 같다.
■ Mzoea twaa, kutoa ni vita.
   빌려주고 괜히 불평만 산다.
■ Kukopa kunazaa umaskini.
   빌리는 것은 가난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 Kanzu ya kuazima usiendelee Ijumaa.
   빌린 칸주(가운)를 입고 금요일의 축제에 가지 마라.
■ Nguo ya kuazima haistiri matako.
   빌린 옷으로 엉덩이를 가릴 수는 없다.
■ Shoka la mgeni haliwezi kazi yako.
   낯선 사람의 도끼로 너의 일을 끝낼 수는 없다.



6.8 적합성, 일치성(Compatability)

이 말은 '우리속담의 한 어미의 자식도 아롱이 다롱이'라는 속담과 비슷한 의미로 모두 같지 않다는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 Chanda si sawasawa.
   손가락들이 모두 같지 않다.



6.9 결과, 결말(Consequences)

항상 일에는 원인에 따른 결과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주 사소한 일도 커다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 Bila mti hakuna kivuli.
   나무가 없으면 그림자가 없다.
■ Chura huweza kumwua tembo.
   개구리가 코끼리를 죽일 수 있다. 작은 원인이 큰 결과를 낳는다.
■ Mwiba uchomeapo ndipo utokeapo.
   가시가 관통한 곳은 가시가 나오는 바로 그곳이다.



6.10 끈기, 인내, 지속성(Constancy)

항심(恒心)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바탕으로 모든 일을 정성을 다해 성실한 자세로 임하면 해결할 수 있으며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남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행동이나 결과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 Abadi, abadi, ukambaa watinda jiwe.
   꾸준히 오랫동안 노력하면 줄로 돌을 자를 수 있다.
■ Haba na haba hujaza kibaba.
   조금씩 조금씩 넣은 것이 나중에는 되를 채운다.
■ Chembe na chembe ni mkate.
   작은 곡물 알갱이가 모여 빵 덩어리를 만든다.
■ Kimbuzi na kimbuzi hununua jahazi.
   조금씩 사 모은 것이 나중에는 큰 재산이 된다.
■ Tone na tone hujaza ndoo.
   한 방울씩 모은 것이 양동이를 채운다.
■ Chururu, si ndo, ndo, ndo!
   흐르는 물도 꾸준히 조금씩 떨어지는 물을 못 당한다.
■ Ivumayo haidumu.
   으르렁거리는 사자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 Ngoma ivumayo haidumu.
   지나치게 크게 울리는 북은 곧 부서진다.
■ Kivumacho hakidumu.
   고함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 Penye nua ipo njia.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 Penye nia ndipo njia.
   의지가 있는 사람은 길을 찾을 것이다.



6.11 조언, 상담, 자문(Consultation)

이 속담들은 어떤 결정을 할 때뿐만이 아니라 매사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주의하여 귀담아 듣고 행동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아프리카의 분쟁해결방법에도 잘 표현하고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두 사람 사이에 분재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중재와 화해다. 한 사람이 되었든지 많은 사람들이 되었든지 사건을 평결하기 위해 초대되어지는 방법을 취한다. 중재는 언제나 분쟁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족시켜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3자 개입은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법제도의 특징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중재자로 초빙된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건에서는 추장의 고문으로 추대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런 약력을 가진 사람들이 중재를 한다면 평결의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건이 추장의 고문들에 의해 논의되어진 후 추장에게 맡겨졌을 때 사건의 결과는 다르게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건을 다루었던 고문관들이 같은 수준에서 결과에 영향을 이미 주었기 때문이다.

중재에서 평결이 내려질 때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분쟁에 관련된 사람들이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엄격하고 공명정대한 평결이 강조된다. 그러나 한쪽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낳은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사과시키는 것을 적절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중재에서의 벌금은 부담스럽지 않게 한다. 배심원의 구성원들이 벌금을 나누어 갖는다.


■ Maneno ya mwendawazimu hayana maana, lakini ni maneno.
   현명한 사람은 미친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인다.
■ Wawili si mmoja.
   두 사람이 한 명보다 낫다.
■ Akili yachotwa katika mkutano.
   생각은 만남에서 생겨난다.
■ Bamba na waume bamba, hakuna bamba la mume.
   상담자가 많은 곳은 안전하다.
■ Bamba na waume, wake, hapana bamba la mtu peke yake.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없다.
■ Bamba na waume.
   위대한 사람도 도움이 필요하다.
■ Penye watu haliharibiki neno.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일이 잘못되는 경우는 없다.
■ Shauri baraka.
   토론은 축복을 가져온다.
■ Ametoa waadhi akajisahau.
   설교자 자신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 Mtowa waadhi hajisahau mwenyewe.
   조언해준 사람은 그때 한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enye wengi, pana Mungu.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신이 있다.



6.12 안분지족, 만족(Contentment)

멀리 있는 이익보다 현실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뜻.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위대한 것보다는 사소한 것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프리카인들의 종교관에 이러한 사상이 잘 반영되고 있는데 아프리카 전통주의자들은 신을 단순히 이론적인 의미에서의 최고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아프리카적 사고는 전반적으로 사색에 주어지지 않는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실생활의 상황에서 경험되는 현실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은 사람들과 다른 창조물들과의 다른 관계에서 구체적인 삶의 환경에서 경험된 한에 있어서만 진정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의 전통적 사고로는, 멀리 떨어져 관계하지 않고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도 없이 이 세상에 신비하게 연결되어 있는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어떤 존재라는 식의 추상적 의미로서의 신은 상상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적 사고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의미로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신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시각은 신이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관계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신의 사랑과 힘을 경험한다


■ Heri moja mkononi, kama kumi mwituni.
   숲 속에 10개 있는 것보다 손안의 하나가 더 낫다.
■ Afadhali dooteni kama ambari kutanda.
   갖기 힘든 것보다 하찮은 것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낫다.
■ Baya baya lako si jema la mwenzako.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작거나 나쁘게 보여도 자신의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 Bora nusu kitumbua mkononi kuliko kitumbua kizima kilicho dukani.
   진열대의 둥그런 빵보다 자신의 반쪽 빵이 낫다.
■ Bora nusu yai kuliko ganda tupu.
   빈껍데기보다 반쪽이라도 있는 계란이 낫다.
■ Fimbo iliyo mkononi, ndiyo iuayo nyoka.
   손에 쥔 막대기가 바로 뱀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 Kenda junbata si kumi nje kesho.
   내일 올 10개보다는 손안의 9개가 낫다.
■ Ukikinai kichache Mungu atakupa kingi.
   작은 것에 만족하면 신이 더 베풀 것이다.
■ Usiache mbachao kwa msala upitao.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친구를 위해 오래된 친구를 버려 두지 마라.
■ Radhi ni kubwa zaidi ya mali.
   만족은 부유함보다 더 큰 것이다.



6.13 도움, 협동(Cooperation)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반드시 서로 도와야만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한사람의 능력보다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면 그 능력이 더욱 배가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Kidole kimoja hakivunji chawa.
   손가락 하나로는 이를 죽일 수 없다.
■ Banba la warume, si bamba na maguvu.
   큰 일들은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 Dau la upweke haliendi joshi.
   한 사람이 탄 다우선(외돛범선)은 바람이 부는 곳까지 항해할 수 없다.
■ Figa moja halitegemezi chungu.
   모닥불에 있는 하나의 돌로는 냄비를 지탱할 수 없다.
■ Kijiti kimoja hakisimamishi jengo.
   말뚝 하나로는 집을 지을 수 없다.
■ Kila mto na mtuwe.
   모든 사람은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 Mikono miwili ni kuoshana.
   손이 두 개라야 서로 씻는다.
■ Chombo cha manahodha wengi huzama.
   선장이 많으면 배는 가라앉는다.
■ Mapaka mengi hayakamati panya.
   고양이가 많으면 생쥐를 잡을 수 없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예술과 문학/속담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속담 속에 나타난 문화적 정체성

2004. 7. 13. 12:26
5. 속담 속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아프리카 토속어에는 각기 풍부한 속담이 담겨있으며 속담을 잘 알고 사용이 능숙한 사람일수록 존경을 받는다. 57)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는 서아프리카의 이보(lbo)족에 있어서 속담은 "말을 찍어먹는 야자기름" 58) 이라고 말하고 있다. "속담 없는 말은 소금 없는 음식과 같다"는 이디오피아 암하릭어 속담이나, "속담은 대화속의 말(馬)(Owe lesin oro, oro lesin owe, boro ba sonu, owe la fi nwa)"로 대화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표류할 때 속담은 잃어버린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속담은 속담의 강력한 힘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59)

속담은 화자에게 전문성과 신뢰성을 가져다 준다. 속담을 인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그 사회에서 장(長), 연장자, 그리고 조상들로 그 부족과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들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전문화속에서 이러한 전문가들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60) 이러한 상황은 속담을 이용하여 특수한 상황에서 화자가 청자에게 민감한 문제에 대해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소위 비주관화(desubjectivized)의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으므로 속담의 사용은 화자의 위신과 지혜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속담은 화자에게 그 문화코드에 맞는 도덕적 규범과 가치를 알려준다. 61)

"속담을 아는 현명한 사람은 분쟁을 잠재울 수 있다(A wise man who knows proverbs can settle disputes)"는 말은 요루바(Yoruba)족의 속담이다. 아프리카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요루바족들 사이에서 속담은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다. 속담은 젊은 사람들에게 가족, 친족 그리고 마을의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을 가져다준다. 그들은 속담을 사용하여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에게 지혜로서 대함으로서 평화를 가져오게 한다. 그 일예로 이런 문제들에 관련된 속담들은 "지도력(leadership)",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사회(society)" 그리고 "경험(experience)"같은 말이 들어있다. 62)

속담은 인용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내포하며 대화속에서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문맥의 전후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속담을 해석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러므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의미를 확정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63) 특히 아프리카 속담들은 많은 설명과 해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의 속담을 이해하는데 있어 인종적, 민족적 설명이 없이는 완벽한 이해가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속담은 완전한 설명과 이해를 돕기 위해 작은 이야기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지혜는 루비보다 더 귀중하다(Wisdom is more precious than rubies)"라는 속담은 남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산(San)족에게는 무의미하며 아무런 의미도 전달할 수가 없다. 산족들은 기껏해야 철로 만들어진 창과 땋아 만든 팔찌가 전부이며 부유하거나 호화로운 사치품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특정한 인종집단의 문화적 이해 없이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두 개의 나미비아의 다마(Dama)족 속담을 들어보자. "만약 한 잔의 달콤한 우유를 가지고 있으면 만족하라(If you have a cup of sweet milk, be content)"와 "추한 대상은 아름다운 그 무엇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An ugly object may hide something sweet)"는 두 개의 속담은 옹이와 마디가 많이 있는 doringboom이라는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나미비아 사막으로부터 나온 속담이다. 이 나무의 바깥 표피는 아주 딱딱하지만 안의 내부의 부드러운 섬유질층은 당밀처럼 달콤하지는 않지만 시럽같은 달콤한 수액이 있다. 다마족들은 겉껍질의 딱딱한 표피를 벗겨내고 안의 수액을 우유에 섞어 마신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유를 그 나무의 그늘아래서 마시는 것을 즐기고는 한다. 함께 둘러 앉아서 달콤한 우유를 마시는 것은 다마족들의 가장 큰 즐거움중 하나이다. 이 속담이 알려주고 있는 것은 추하게 생긴 사물이나 사람도 유익하고 좋은 면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64)

마사이족은 거인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구전되고있다. 아링큰(Arinkon)은 거인이였는데 자신의 지역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일거리를 수행하도록 명령하곤 했지만 한 어린 소년의 지혜로 매번 그 불가능한 일을 처리함으로서 거인을 이겨낸다. 이와 같은 구전에 배경을 둔 속담으로서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하지 않거나 힘을 잘못 사용하거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에게 "너 아링콘, 너 원하는 것을 택해라"라는 속담을 인용한다. 마라골리(Maragoli)족의 전설에는 나보레그와(Navolegwa)라는 주인공인 등장한다. 그는 몸이 허약하고 모든 사람들로 부티 희망이 없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어느 날 그는 사냥을 나가 마을에서 가장 힘센 사람들도 하기 어려운 들소를 잡아온다. 이 전설에서 연유된 마라콜리족의 속담으로 "나볼레그와가 들소를 잡았어"가 자주 인용된다. 업신여김과 멸시를 경고하는 교훈을 담고있다. 이상 언급한 두 속담은 강력한 의미전달과 메터포가 동원된 아프리카 속담이 모두가 구전설화에서 연유된 내용을 압축한 것으로서 구전이야기와 속담과의 상관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65)

즉 아프리카의 속담은 그 사회의 집합적인 사회적 종교적 규범을 내포하고 있음으로서 사회성원의 교육적 지침의 구실을 하고있을 뿐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추적해주는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모든 아프리카인들의 생활철학과 가치관의 척도가 담겨있는 아프리카인의 바이블이며 유구한 세월에 젖어온 아프리카 바로 그 자체이다. 66)

예를 들어 밤바라(Bambara)속담인 "나무가 강에 떠다니게 놓아두어라, 결코 악어가 될 수 없다(Let the tree float in the river, It will never become a crocodile)"라는 속담은 실재로는 해도 없고 수동적인 사람이 그 자신을 강하고 공격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즉 인간의 감정, 생각, 그리고 문제에 대한 일반성과 보편성을 드러내고 있다. 67)

그러나 많은 속담들은 지역적 특수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각 인종들은 삶에 대해 특별한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말로 삶의 경험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와힐리(Swahili)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신은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며 그의 법을 따르는 것은 파라다이스로 가는 문을 열게 할 것이다(Happiness is obeying God's will, for following His low will open the gate of Paradise)"라는 속담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다른 생각을 속담을 통해 표출하고 있다. 모잠비크에서는 "개구리는 많은 자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The frog is happy with his numerous offspring)"라고 말하고 있으며 탄자니아에서는 "행복은 평화, 그늘을 갖는 것이며, 배고픔이 없는 것이다(Happiness is to have peace, shade and no hunger)"라고 표현하고 있다. 68)

아프리카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행운과 불행이 있으며 바람과 두려움이 있고 배고품이든지 사랑이 원인이이든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스와힐리어에서처럼 "사랑(love)"은 "소원(will)"을 "미움(hate)"은 "혐오(disgust)"를 의미한다. 링갈라(Lingala)어에서는 "지적인 것(intelligence)"나 "지혜(wisdom)"는 "교활(cunning)"을 의미한다. 알루르(Alur)어에서는 "소녀에게 청혼하다(to propose to a girl)"는 말은 "달변으로 또는 능숙하게 말하다(to talk eloquenctly)"라는 의미가 된다. 이와 같이 아프리카의 속담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이나 수단은 물론 인간 본성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생각과 경험사이에 또 다른 일상적인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동아프리카에서 "가난한 사람의 보트는 가라앉는다(The poor man's boat sinks)"라는 속담과 "가난한 사람의 암탉은 결코 알을 낳을 수 없다(The poor man's hens never lay eggs)"라는 속담은 가난과 불행이 연관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은 불행과 함께 게으르기 때문에 또는 간단히 말해서 건강한 닭이나 좋은 보트를 살수 없기 때문에 가난하다.

이와 유사하게 가난은 '외로움'과 관련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배척하거나 피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의 불행을 나누어 갖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며 실패를 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친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가난은 외로움의 결과라고 설명될 수 있다. 많은 형제와 친구들 그리고 친척들은 결코 배고픔을 결코 겪지 않지만 자기 자신밖에 없는 사람들은 결국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에서 지혜는 생존과 관련 있다. 탄자니아에 우화에는 계략을 쓰는 족재비인 카분디(Kabundi)와 매우 영리한 거북이 코베(Kobe) 그리고 교활한 토끼인 숭그라(Sungura)등 기지에 의해 살아가는 많은 영리한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미국보다 더 많은 적과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가장 슬기로운 생존전략이 아프리카 이야기 속에서 중심된 주제였다. 어리석은 당나귀는 비난과 매도의 대상이었지만 현명한 당나귀는 언제나 음식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먹을 것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에 살고있는 아프리카인들은 생존이 매일매일의 긴급한 문제였다. 69)

교육적 기능만이 속담의 기능이 아니었으며 속담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기능으로도 사용되었다. "어린아이들은 나이든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Children have a duty to look after their old mother)"라는 속담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지만 노동에서 여성을 해방시켜 편안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즉 "지금 어린아이는 너에게 고통을 주고 있지만 나중에는 너를 보살피게 될 것이다(Now the child causes you pain, but later he will take care of you)"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비 온 뒤에는 해가 난다(After rain comes the sunshine)"와 "해가 난 뒤에 비 온다(After sunshine comes the rain)"라는 속담은 과거에 행복했던 사람들과 현재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데 사용된다. "많은 손은 일을 가볍게 한다(Many hands make light work)"라는 속담이나 또는 스와힐리어의 "한 사람은 배를 띄울 수 없다(One man cannot launch a ship)"라는 속담은 "너무 많은 요리사는 고기수프를 망친다(Too many cooks spoil the broth)"와 밤바라(Bambara)어 속담인 "열 명의 재단사는 하나의 양복을 결코 끝낼 수 없다(Ten tailors will never finish one garment)"와 모순되고 있다. 속담의 목적이 모든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고정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속담은 특별하고 유일한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70)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과일은 없다(No fruit falls far from the tree)"라는 속담은 뉴튼의 만류인력법칙, 즉 물리적 법칙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속담의 사용자는 부모(tree)와 어린아이(fruit)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달리고 사과는 다시 사과나무가 된다는 것을 가족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전학자들은 모든 아들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닮지는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런 내용은 속담의 목적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기를 기대하고 아버지의 족적을 따르기를 바란다. 그를 닮은 아들만큼 아버지에게 더 큰 기쁨은 없다. 즉 사회의 유지와 지속은 모든 사회의 목적이며 그 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속담의 공부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복잡성을 연구하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속담의 연구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1)

아프리카 속담의 문체와 구조중 두드러진 것은 표현에 있어 시적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속담이 표현하고 있는 글자 그대로의 뜻을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로 은유와 직유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베티(Beti)족의 "여자는 입이 없다.(Women have no mouth.)"라는 속담은 아주 직접적인 표현으로 가부장적 사회속에서 여자는 그 어떤 의견개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으며 아샨티(Ashanti)족의 "암닭은 아침이 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수탉의 입을 본다.(The hen knows when it is morning, but she looks at the mouth of the cock. ; 암탉은 수탉이 회를 치는 것을 기다린다는 뜻.)"라는 속담은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72) 따라서 아프리카 속담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특징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 예를 들어 정리하여 보면 첫째, 속담의 글자 그대로의 형태는 자주 암시나 생생한 발화형태를 포함하며 또 어떤 경우는 리듬을 가진 시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만약 추장이 말을 한다면 사람들은 그들의 귀를 조용히 한다.(If the chief speaks, the people make silent their ears.)", "어떤 사람이 카피르(Kaffir) 전통주를 게걸스럽게 먹으면 그 술이 그를 먹는다.(He devoured the Kaffir-beer and it devoured him.)", 그리고 "구한 사람이 죽인다(The people who rescure and kill. ; 한편으로는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파괴한다는 의미)"라는 코사(Xhosa)족의 속담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대부분의 속담은 한가지 또는 그 이상의 방법으로 비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으며 직접적인 은유도 자주 나타난다. 하우사(Hausa)족의 "추장은 모든 사람들의 불평불만을 가져다 놓은 먼지더미와 같다.(A chief is like dust-heap where everyone comes with his rubbish(complaint) and deposits it.)" 남부 아프리카의 통가족(Thonga)의 "부는 이슬이다.(Wealth is dew.)"와 은데벨레(Ndebele)족의 "왕권은 이슬이다.(Kingship is dew.)"라는 속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아주 자주 속담은 은유적으로 비교가 나타난다. 속담의 이런 형태는 반투어에서 새나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주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토(Sotho)족의 진드기 새를 의미하는 "나와 나의 코뿔소다.(I and my rhinoceros.)", 은다우(Ndau)족의 소우리의 벌레를 의미하는 "나는 소다.(I am an ox.)", 그리고 일라(Ila)족의 낭비벽이 심한 사람을 의미하는 "방탕한 소는 그의 꼬리도 던져버린다.(The prodigal cow threw away her own tail.)"라는 속담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통가족의 "악어의 힘은 물 속에 있다.(The strength of the crocodile is in the water.)"라는 속담도 사람은 친족집단의 힘을 얻을 수 있을 때 강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꼭 새나 동물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렘바(Lemba)족의 "이미 함께 용접된 쇠를 어떻게 용접되지 않은 상태로 만들 수 있는가?(Metal that is already welded together, how can one unweld it?)", "엎질러진 우유를 가지고 울지 마라.(Don't cry over spilt milk.)", 그리고 통가족의 "목의 목덜미는 볼 수 없다.(The nape of the neck does not see.)"라는 속담들도 이런 부류로 정리할 수 있다. 넷째, 과장법도 많이 쓰이고 있다. 반투족의 속담에 "만약 당신이 인내심이 강하다면 달팽이의 눈을 볼 수 있을 것이다.(If you are patient, you will see the eyes of the snail.)"나 요루바(Yoruba)족의 "게의 윙크를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은 바닷가에서 오랫동안 지체하게 될 것이다.(He who waits to see a crab wink will tarry long upon the shore.)"라는 속담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73)

스와힐리어에서도 속담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인이었다. 그의 새로운 속담은 리듬과 운(韻)을 갖추어야 했다. 따라서 많은 속담들은 하나 또는 두 줄로 된 운문형태를 띄게 되었다. 속담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시적 주석서라고 할 수 있다. 속담은 과거의 세대의 지혜를 가진 기지의 표현으로서 듣기에 즐겁고 기억되기 쉬운 리듬을 가지고 있다. 74)

속담은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 오지만 나무 널빤지, 솥뚜껑, 그리고 호리병박에 조각을 하거나 새기거나, 옷에 수를 놓는 방법 등 다른 예술적 형태를 통해 상징적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중앙아프리카의 어떤 부족들은 속담을 시각화하여 일종의 코드(cord)를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적 도구로 사용한다. 이 코드는 열대덩쿨식물에 모든 종류의 대상물들, 닭의 다리, 약초, 천 조각들을 붙여놓았다. 각각의 대상물들은 속담을 나타낸다. 이외에 또 다른 속담의 전달방법은 북, 뿔나팔, 또는 트럼펫을 사용하는 음악에서 표현될 수 있다.

위와 같은 비구어적 속담전달 방법은 여자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피오테(Fiote)족의 솥뚜껑 메세지(Pot-lids message)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피오테족은 앙골라의 카빈다(Cabinda)와 콩고민주공화국과 해안지역과 연결된 지역에 분포되어 살고 있다. 솥뚜껑은 여자들이 그들의 남편에게 말로서 표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뚜껑은 직경이 18cm로 위쪽에 속담이 새겨져 있다. 전통적으로 아내는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 씨족의 남자는 씨족의 남자들이 먹는 장소에서 함께 먹어야 한다. 아내들은 오지그릇에 남편을 위해 음식을 차리고 바나나 잎으로 덮은 후 아이들에게 가져가게 한다. 그러나 만약 아내가 남편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거나 싸우고 있으면 그녀는 의미 있는 속담이 담긴 솥뚜껑을 선택하든지 그녀의 주문에 따라 새로운 것을 만들도록 예술가에게 부탁한다. 속담이 새겨진 솥뚜껑이 전달되자마자 흥분과 소요가 일어난다. 특별한 솥뚜껑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편은 문제가 무엇인지 고백하고 아첨을 시작한다. 남편의 문제는 그의 게으름, 무능력, 탐욕, 두 번째 아내에 대한 아내의 반대를 의미할 수도 있다. 만약 그가 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솥뚜껑이 전문가에 의해 다시 조각되든지 남편의 친구에 의해 조언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속담에 "세 개의 돌은 요리용 솥에 필요하다(Three stones support the cooking-pot)"라는 속담은 여자에게 옷, 음식, 그리고 성(sex)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러한 속담은 아내에게 이 세가중 한가지 이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때는 여자들이 친구들에게 화가 났을 때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아내가 그녀가 속담을 통해 불평을 했을 때 남편과 함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직접적인 분노의 폭발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은 시간이 지난 뒤에 이성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할 수 있다. 솥뚜껑에 쓰여진 속담을 이용한 아내들의 대화방법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남편에게 민감한 문제를 끄집어 낼 수 있다. 75)



57) 김윤진, 아프리카 문화 (서울, 다해, 2003), pp. 228-229.

58) 김윤진, 아프리카 문화 (서울, 다해, 2003), p. 204.

59) N. Schipper, Sources of all evil : African proverbs and sayings on women (Johannesburg, Ravan Press, 1991), p. 1. ; Pachocinski, Ryszard, Proverbs of Africa : Human nature in the Nigerian oral tradition ; An exposition and analysis of 2,600 proverbs from 64 peoples (Minnesota, A PWPA Books, 1996), p. 5.

60) ) N. Schipper, Sources of all evil : African proverbs and sayings on women (Johannesburg, Ravan Press, 1991), p. 2.

61) N. Schipper, Sources of all evil : African proverbs and sayings on women (Johannesburg, Ravan Press, 1991), p. 3.

62)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p. 8-9.

63) N. Schipper, Sources of all evil : African proverbs and sayings on women (Johannesburg, Ravan Press, 1991), pp. 11-12.

64)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p. 2-3.

65) 김윤진, 아프리카 문화 (서울, 다해, 2003), p. 229.

66) 김윤진, 아프리카 문화 (서울, 다해, 2003), p. 229.

67)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 3.

68)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p. 3-4.

69)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p. 4-5.

70)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 7.

71)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p. 7-8.

72) Schipper, N., Sources of all evil : African proverbs and sayings on women (Johannesburg, Ravan Press, 1991), p.7.

73) R. Finnegan, Oral literature in Africa (Nairobi,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p. 395-399.

74)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 2.

75) Schipper, N., Sources of all evil : African proverbs and sayings on women (Johannesburg, Ravan Press, 1991), pp. 8-9.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예술과 문학/속담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속담의 정의와 속담의 중요성

2004. 7. 13. 08:40
4. 속담의 정의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있어 속담의 중요성

속담이란 진주조개 속의 진주와 같은 "말의 진주" 38)라고 할 수 있는데 교훈·기지·상상·경계·비유·풍자 등을 바탕으로 통속적이고 진솔함이 긷든 구비전승의 언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언중의 경험과 지혜와 교훈에서 우러난 진리를 지닌 간결하고 평범하며 은유적인 표현의 관용어라고 정의할 수 있다. 39)

속담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묘사와 언급에서 생성되며 일상에서 자주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유추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민족의 속담은 보통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재도구, 가축, 애완동물, 일상사를 다루면서 대중에게 스며들어 오랜 세월을 거쳐 대중의 공감과 사랑을 받으며 끊임없이 정제되어 속담으로 정착되어 그 사회를 대변하는 언어가 된 것이다. 40)

속담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시적 주석서라고 할 수 있다. 속담은 과거의 세대의 지혜를 가진 기지의 표현으로서 듣기에 즐겁고 기억되기 쉬운 리듬을 가지고 있다. 41)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속담은 사회적 소산이다.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언중의 시' 42)로서 언중 모두의 공감 속에 자연스럽게 사용되면서 일정한 의미전달을 위한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속담은 본질적으로 언중 모두가 공유하는 소중한 자산으로, 한 민족사회의 생활 모습과 삶의 지혜를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민속학의 중요한 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43) 아울러, 속담은 언중 속에서 태어나 언중 속에서 자랐고, 언중에 의해 도태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언중과 하나가 되어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민족의 상징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의해서 속담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백과사전이요, 현재를 바라보는 모니터이며, 미래를 비춰 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44)

속담은 잉태된 지역의 향토성을 반영하며, 더 나아가 민족성과 인간성을 반영한다. 세계의 여러 민족 사이에 표현까지도 유사한 속담이 발견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며, 이것은 속담이 시대성을 반영하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속담은 그 민족과 민속학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며, 역사·사상·문학·종교·미신·풍속·제도 등과 같은 제반 문제를 연구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45) 속담에는 언중, 나아가서는 민족의 보편적 심리가 내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민족의 독특한 정서와 지혜, 민족성이 담겨있으며 보편적 심리가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나라 민족의 심리나 문화를 충분히 알려면 그 민족의 속담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46)

속담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속담은 그것이 생성된 사회의 소산물이다. 어느 개인의 창의에 의해 표현된 말일지라도 그것은 언중 누구나가 체험하고 느끼던 사실을 속담 형식에 맞춘 것이라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속담은 그 사회의 소산물로서 생명을 얻어 사용되는 것이다. 둘째, 속담은 그것이 생성된 지역의 향토성을 반영한다. 지방에 따라서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다르듯이, 속담 또한 그것이 생성된 지역에 따라 고유한 향토색을 풍기게 되는 것이다. 셋째, 속담은 그것이 생성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시대에 따라 삶의 방식과 가치가 다르고 이념과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속담은 그것이 생성되던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속담은 언중들의 생활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속담은 끊임없는 수정과 시행착오를 통해 일반화 법칙을 거쳐서 얻어지는 것이다. 속담에는 처세의 교훈이 있고, 세태에 대한 풍자와 경계가 있으며, 언중들의 신념과 인생관이 담겨 있다. 따라서, 속담을 통해 우리는 그 때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 생활 모습 등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속담은 군더더기가 없이 간결하고 세련된 언어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섯째, 속담은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훨씬 부드럽게 해 준다. 속담은 비유의 대상으로 쓰여지며 전통적 진리로서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속담의 인용은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울러, 오랜 생활 체험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지혜의 함축표현이므로 수양과 처세의 지침이 됨은 물로, 재치와 해학을 함께 담고 있는 말이므로 언어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감칠맛 나는 힘도 갖고 있는 것이다. 47) 속담에 대한 정의는 쉽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간결성(shortness)', '지각(sense)', 그리고 '통쾌함(salt)'을 이용하여 진실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속담도 이러한 일반적인 정의를 담고 있다. 48)

탄자니아 출신의 샤반 로버트(Shaaban Robert)는 그의 수필 '속담과 그 용법(Methali na matumizi yake)'라는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속담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49)

노인들은 상당히 자주 속담을 인용한다. 왜냐하면 속담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쓰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유명한 시인이나 학자, 교육 높은 선비나 재주있는 작가들은 속담을 씀으로서 기쁨을 찾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라는 것은 흔히 듣는 말이다. 속담은 우리에게 행동양식을 가르치므로 참으로 유익하다.

속담은 우리들 보통의 사람들에게 친구역할, 선생님 그리고 안내자 역할을 한다. 우리는 속담속의 교훈을 통해 우리의 습관을 고칠 수 있고 따라서 생활을 고쳐나갈 수도 있다. 우리가 속담의 의미를 잘 음미해 본다면 우리는 속담을 인생의 지침으로 사용할 수 있다. 흔해 빠진 문학서의 한 장이나 혹은 한편의 시보다도 단 반줄 길이의 짧은 속담이 훨씬 유익함을 누구나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 후에 속담은 우리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부족의 연장자들은 사회적 삶 속에서 사용되는 속담의 유용함에 대해 다양하게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하우자족의 연장자들은 속담을 대화속에서 전문지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속임으로서 더 깊이 있는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속담은 철학적 발화로서 사람들과 사회의 경험과 사고를 반영하여 생존을 돕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요루바족의 연장자들은 속담의 인용이나 언급은 아주 많은 다양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만약 나이어린 사람이 연장자 앞에서 속담을 사용하였다면 그는 연장자에게 사과하여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중요한 속담들은 연장자에 의해 언급되거나 인용되어야 하며 이러한 역할은 사회나 가족에서 연장자의 중요한 역할로 인식되고 있다. 연장자들은 어떻게 젊은 세대들이 평화, 안정, 그리고 질서를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삶 속에서 행동해야 하는지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부족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속담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결국 속담은 중요한 문화적 유산의 하나로서 사회규범과 전통적인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티브(Tiv)족의 연장자는 속담은 좌절을 맛본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우어주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연장자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회에서 생활할 것인지 속담으로 충고한다. 어떤 속담들은 어떻게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고 모든 상황속에서 발생하는 불평등한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하게 만든다. 이그보미나(igbomina)족 연장자들은 속담은 사회가 미래에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현명한 조상으로부터 전해내려온 속담은 어떠한 어려움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어려운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속담은 진실이 사라졌을 때 진실을 찾는 말(馬)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앙가스(Angas)족의 연장자들은 속담은 대체로 어리석을 사람을 깨우치고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속담들은 주로 결혼식때 언급되는데 앙가스족들은 결혼이 사회제도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비비오(Ibibio)족의 연장자들은 속담을 삶의 양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50)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속담은 아이와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들은 신, 조상, 이웃, 그리고 그들 자신들에 대한 행동원칙과 준거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콩고민주공화국의 욤베(Yombe)족 같은 경우에는 속담이 건강에 관련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며 남부 나이지리아의 아낭(Anang)족은 사법제도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되기도 한다. 51)

요루바어에서는 새로운 속담을 만드는 사람은 없었다. 연장자들만이 진짜의 속담을 말할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단지 가짜의 속담을 사용하도록 허락되었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젊은 사람이 연장자의 면전에서 속담을 사용하면 그는 "속담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속담이 아니다(It looks like a proverb but it isn't real one!)"라고 말하며 사과를 해야만 했다. 이런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배타주의에도 불구하고 발전은 지속되었다. 노래처럼 속담은 내용, 형태 그리고 수에 있어서 변화했다. 각각의 세대들은 쓰여진 전통에서 불가능한 그 자신만의 고전을 만들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속담의 기능은 너무나 중요하여 속담 없이 어떤 종류의 협상도 일어날 수 없었다. 52)

아프리카에서 속담은 삶과 문학 모든 영역속에서 효과적이다. 그들의 문학적 중요성은 말과 형태의 아름다움과 다른 장르에서의 예술적 표현에서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실제적 상황속에서 사용된 적절함과 통찰력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속담의 가장 중요한 점은 속담이 사용되는 특별한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속담의 매력, 통찰력, 기지, 그리고 의미는 그 상황이 처한 문맥속에서 확연하게 그 중요성이 나타난다. 53) 유사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일어날 때 사회는 그것들을 장황한 설명 없이 간략히 언급할 수 있는 이름을 필요로 하는데 속담은 한 사회 내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전형적인 상황들을 언급하는 전략적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대상에 이름이 있듯이 상황에도 이름이 있으며, 대상의 이름들이 화자의 태도를 반영하는 경우가 있듯이 상황에 붙여진 이름들도 화자의 태도를 반영한다. 이러한 태도(전략)에는 풍자, 비난, 저주, 예언, 명령, 설득, 훈계, 경고, 충고, 교훈, 위로, 찬양, 수사 등이 있다. 54)


속담은 대화의 말(馬)이다. - 요루바
속담을 아는 현명한 사람은 어려움을 다시 숙고한다.(A wise man who knows proverbs reconciles difficulties.) - 요루바
속담은 경험의 딸이다.(Proverbs are the daughters of experience.) - 시에라 레온(Sierra Leone)
속담은 말을 싸먹는 잎사귀와 같다(The proverb is the leaf they use to eat the word.) - 이보(Ibo)
속담은 모든 사람들의 일이다.(Proverbs are the affairs of the nation.) - 콩고(Kongo) 55)


속담은 한 종족이나 민족사회의 오랜 경험과 지혜를 반영하는 것으로 민중의 생활경험을 표현한 것이다. 속담은 그 종족이 존중하는 가치와 멸시하는 가치를 나타내며 삶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에 있어서 속담은 다음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첫째 일반언어에 비해 보다 강력한 의미를 전달하고, 둘째 그 종족의 생활상태와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추장이나 왕은 통치 받는 대상과의 관계를 규정짓게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속담을 사용하고 있으며 통치 받는 대중은 지도자의 권력남용을 경고하는 수단으로 속담의 표현을 사용한다. 셋째 각기 다른 종족과 사회환경으로부터 독자적인 이미지와 재료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내용을 전하는 속담이라 할지라도 마사이족과 루야족의 이미지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56)



38) 서정수, 정달영(편저.), 세계속담 대사전 : 주제별 비교 분류 (서울, 한양대학교 출판부, 1998), p. vi.

39) 최창렬, 우리속담연구 (서울, 일지사, 1999), pp. 13-14.

40) 김수영, 韓·英 俗談에 관한 硏究 (석사논문,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 1984), p. 7 에서 재인용.

41)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p. 2, 10.

42) 김수영, 韓·英 俗談에 관한 硏究 (석사논문,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 1984), p. 1. ; 김종택, "속담의 의미기능에 관한 연구", 국어국문학, 34, 1967, p. 63.

43) 송재선, 우리말 속담 큰사전 : 成語辭典 (서울, 교육출판공사, 1999), p. 9.

44) 최창렬, 우리속담연구 (서울, 일지사, 1999), p. 14.

45) 최창렬, 우리속담연구 (서울, 일지사, 1999), p. 15.

46) 김수영, 韓·英 俗談에 관한 硏究 (석사논문,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 1984), p. 1.

47) 최창렬, 우리속담연구 (서울, 일지사, 1999), pp. 16-17.

48) R. Finnegan, Oral literature in Africa (Nairobi,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 393.

49) 송미루, "스와힐리 俗談속에 나타난 人間과 社會의 모습", 아프리카 硏究, 제 4호 1988, pp. 117-118.

50) Pachocinski, Ryszard, Proverbs of Africa : Human nature in the Nigerian oral tradition ; An exposition and analysis of 2,600 proverbs from 64 peoples (Minnesota, A PWPA Books, 1996), pp. 8-15(introduction).

51) A. Scheven, Swahili proverbs : Nia zikiwa moja, kilicho mbali huja (Washington, University Press of America, Inc., 1981), pp. viii-iv(preface).

52)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p. 5-6.

53) R. Finnegan, Oral literature in Africa (Nairobi,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p. 424-425.

54) 장태상, "속담의 민족지학적 연구에 대하여: 아프리카의 속담전통을 중심으로", 사회언어학, 제 9 권, 1호, 2001년, p. 145.

55) A. Scheven, Swahili proverbs : Nia zikiwa moja, kilicho mbali huja (Washington, University Press of America, Inc., 1981), p. xiii(preface).

56) 김윤진, 아프리카 문화 (서울, 다해, 2003), p. 228.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예술과 문학/속담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의 중요성과 역사적 배경

2004. 7. 13. 08:06
3. 스와힐리어의 중요성과 역사적 배경

아프리카 대륙의 종족 분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언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전형적인 예를 들어 '반투(Bantu)' 16)라는 인종의 범위는 반투어계(語系)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부족의 총칭인 것과 같이, 언어의 분류가 인종이나 부족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록된 역사문서가 타대륙에 비해 적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어 아프리카인들의 사회, 문화, 종교, 철학 등을 연구하는데 언어의 연구가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아프리카 연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2,034개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스와힐리어(Kiswahili)어는 흑아프리카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언어로서 세계 12대 언어 중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으며, 과학적이며 조직적인 체계를 지닌 아름다운 언어로 알려져 있다. 17)이러한 주장은 스와힐리어 시문학의 대가인 크나퍼트(Jan Knappert) 교수가 '스와힐리어야말로 시를 위한 언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 18)

스와힐리어는 동아프리카 10 여개 국에서 국어 또는 공식어로 혹은 교통어(Lingua franca)로 사용되는 언어로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용 인구수, 사용나라, 보유 문학등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언어로서 인식되고 있다. 19)케냐, 탄자니아, 콩고민주공화국 동부는 스와힐리어를 국어(national language)로, 탄자니아에서는 공식어(official language)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고 이외에 소말리아(Somalia) 남부,  르완다(Rwanda), 부룬디(Brundi), 말라위(Malawi), 잠비아(Zambia)북부, 모잠비크(Mozambigue) 북부, 코모로(Comoro)군도,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북단에서 사용되고 있다. 20)

< 지도 2 > 스와힐리어 사용지역 21)


이처럼 스와힐리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약 5000만 이상의 서로 다른 수많은 종족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명실공히 교통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동부아프리카, 특히 도시지역에서는 제 1 언어로서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화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2)

이러한 중요성을 반영하여 외국의 중요대학에서는 아프리카 연구에 있어 스와힐리어를 필수과목으로 취급하여 연구와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중요한 언어인 스와힐리어를 공부하는 것은 아프리카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특수언어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Swahili란 말은 원래 아랍어의 'umani'방언 "sahil" (해안) 과 "sawahil" (해안사람)에서 유래된 것이다. 23)스와힐리어가 언제부터 생성되어 사용되었는가는 정확하지 않으나 10C경 아랍인 지리학자이며 역사학자인 알 마수디(Al Masudi)가 동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고 "잔즈(Zenj)인들은 훌륭한 언어와 그 언어로 선교하는 성직자들을 갖고 있다"' 24)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스와힐리 문명은 초기 10C동안 반투 이주민들과 아랍 상인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25)

< 지도 3 > 동아프리카 해안(The East African Coast) 26)


스와힐리란 오늘날 탄자니아 케냐의 인도양해안지방을 비롯한 그 내륙지방의 주민과 그들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문화양식, 그들의 언어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스와힐리문명은 10C를 전후하여 형성된 비교적 젊은 문명으로 ①해안지방에 발달한 상업도시, ②아랍과 페르시아계의 반투혼혈족, ③이슬람의 신봉, ④탈부족화, ⑤스와힐리어의 사용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속성은 내륙지방으로의 전개과정에서 많은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오늘날에는 스와힐리의 본래개념이 많이 변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27) 현재는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스와힐리인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스와힐리문명의 특징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해안지방에 발달한 상업도시는 아랍으로부터 수입된 건축과 조각을 가지고 있었고 스와힐리인들의 복식은 아랍식 옷을 입었는데 남자는 모자인 코피아(kofia)를 쓰고 여자는 아랍식으로 몸과 머리를 감싸는 캉가(kanga)를 입었다. 28)

스와힐리문명의 기초가 된 이슬람문명은 아라비아반도로부터 항해를 통해 전파되었으며 그 흡수방법은 기존 동아프리카 해안의 반투족 사화에 다소 무력점령의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흡수되었다. 29) 스와힐리어의 생성도 아랍어와 반투어의 '혼합'이라기 보다는 반투어를 기초로하여 아랍어의 어휘를 차용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증거로는 스와힐리어가 아랍어를 근간으로하는 많은 어휘들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세련된 단어들이 많고 이에 반해서 기본적인 어휘에서는 차용어가 극히 드물며 또한 문법적인 구조에서도 아주 미세한 정도만 영향 받은 것으로 알 수 있다. 즉 반투족은 아랍의 언어와 문화를 자신의 언어와 문화에 융합시켜 새로운 스와힐리문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30)

스와힐리 문명의 형성과 발전은 아래의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계절풍(monsoon)의 영향이 중요한 작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바람은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북동풍이, 5월에서 9월까지는 남서풍이 불어 아랍인들이 다우(Dhow ; 돛이 하나인 외돛 범선)를 타고 동아프리카에 왔다가 다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31)

< 지도 4 > 1200년경 인도양 무역 32)


결론적으로 스와힐리어는 역사적으로 이미 2000여년전부터 아랍인, 페르샤인, 인도인들의 동아프리카 해안과의 접촉으로 현지의 반투어를 사용하는 원주민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던 중 특히 아랍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발전하였다. 그 외에도 역사적 접촉을 계기로 페르샤어, 구지라티어, 힌디어, 포루투갈어, 영어등으로 부터 많은 외래차용어를 받아들였다. 33)

아랍·스와힐리인들에 의한 내륙교역이 18C에 활발하게 진행된 것을 필두로 서구세력에 의한 식민통치기간동안 스와힐리어는 상업언어(trading language)이며 교통어(lingua franca)로서 그리고 효율적인 식민지배정책을 위해 내륙으로 급속히 확장 전파되었다. 그로 인하여 이 지역에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 종교, 생활방식 또는 인종적 특성까지도 혼합된 형태의 스와힐리 문명이 창조되었다. 34)

< 지도 5 > 잔지바르 오만체제하의 주요 교역통로 35)


스와힐리어는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방언이 발견되고 있다. 비반투어 사용자들이 제 1언어로 사용하는 스와힐리어와 반투어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는 현저히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리적 방언(Geographical dialect)으로서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사용되는 키웅구아나(Kiunguana)어 라무(Lamu)에서 사용되는 키아무(Kiamu)어, 몸바사(Mombasa)에서 사용되는 키음비타(Kimvita)어, 잔지바르(Zanzibar)에서 사용되는 키웅구자(Kiunguja)어 등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차이점이 상당히 많다. 이밖에 사회적 방언(Social dialect)으로는 유럽인이나 아시아인 이민자들이 사용하는 피진 스와힐리어로 구별하여 설명할 수 있다.표준 스와힐리(Standard Swahili)어는 잔지바르에서 사용되는 키웅구자(Kiunguja)어를 말하며 동부아프리카 지역의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고, 매스·미디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다. 36)

스와힐리어의 체계화와 보급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은 19C 이 지역에 들어왔던 독일의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효율적인 포교를 위해 성경의 스와힐리어 번역작업 및 스와힐리어 교육을 위한 스와힐리어 문법서 발간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독일의 반투어학자 칼 마인호프(Karl Meinhof)는 스와힐리어 철자법 및 표준어를 정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선교사인 크라프(Ludwing Krapf ; 1850)는 몸바사에서 성경번역 및 스와힐리어 사전을 편찬함으로서 스와힐리어 연구에 초석을 마련하였다. 이후 영국의 스티어(E. Steere ; 1908) 박사는 Swahili Exercises라는 문법서를 발간하면서 시작된 스와힐리어 연구는 프랑스의 사클라우스(Sacleaux ; 1090), 영국의 애쉬톤(Ashton ; 1944), 패럿(Perrot) ; 1951), 그리고 미국의 롱맨(Loogman ; 1965)을 통하여 소위 학교문법(School grammar)의 형태로 대학에서 교수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 구조주의 언어학이 널리 알려지면서 보다 전문적인 문법기술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텍사스 대학의 폴로메(Polom  ; 1967)에 의해 이루어 졌다. 변형생성문법의 등장과 함께 통사론이 비탈레(A. Vitale ; 1981)에 의해 기술됨으로서 스와힐리어 연구에 보다 전문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 37)



16) 반투(bantu)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블레크(W. H. I. Bleek)로 1862-69년에 반투어에 대한 광범위하고 폭넓은 내용을 담은 저서, 『남아프리카 언어 비교문법(A comparative grammar of South African languages. part I. Phonology, part II. The noun)』을 출판하였다. bantu의 어근에 해당하는 -ntu는 '사람'을 의미하며 여기에 접두사 ba-가 첨가된 것이다. 따라서 bantu라는 단어의 뜻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반투어에서 사용되어진다. 권명식, 아프리카학 입문 : 역사비교언어학적 접근 (서울, 명지 출판사, 1988), p. 24.

17) 김윤진, "스와힐리어의 언어적 특성", 외대통역협회지, 제 4 권, 1986, p. 55. ; 권명식, 스와힐리어 문법구조 (서울, 한국외국어대하교 출판부, 2003), p. i(서문).

18) 김윤진, "스와힐리어의 언어적 특성", 외대통역협회지, 제 4 권, 1986, p. 56.

19) 권명식, "스와힐리어에 대한 사회언어학적 고찰", 한국외대 서학인, 제 1 권, p. 120. ; 권명식, '탄자니아의 언어상황과 언어정책", 韓國아프리카 學會誌, 제 5 집, 제 1권, p. 7.

20) Hinnebusch, T. & Mirza, S.M., Kiswahili : msingi wa kusema kusoma na kuandika (Washington, University Press of America, Inc., 1979), pp. xiii-xiv(introduction). ; 권명식, "스와힐리어에 대한 사회언어학적 고찰", 한국외대 서학인, 제 1 권, pp. 116-127. ; S.M. Zawawi, Say it in Swahili (New York, Dover Publications Ltd., 1972), p. 1-2. ; 권명식, 스와힐리어 연구 (서울, 명지출판사, 1986), p. 2.

21) J. Russell, Swahili (UK, Teach Yourself Books, 1996), p. 3.

22) 권명식, '탄자니아의 언어상황과 언어정책", 韓國아프리카 學會誌, 제 5 집, 제 1권, pp. 7-8.

23) 스와힐리란 말은 아랍어로 해안을 의미하는 sahel의 복수 swahel에서 온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 J.D. Rollins, A history of Swahili prose (Leiden, E.J. Brill, 1983), p. 11.

24) 잔즈는 페르시아어로 '검다'는 뜻이며 이는 아프리카를 지칭하는 말이다. E. J. Murphy, History of African Civilization (New York, Dell Publishing Co. Inc., 1972), pp. 226-227.

25) 7C부터 시작된 아랍인들의 정착으로 교역활동이 활발해지자 동아프리카 해안 일대에는 교역중심도시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물질적인 부를 바탕으로 차츰 독자적인 도시국가로 성장하였다. 이 도시국가들이 가장 번창하였던 15C에는 남쪽의 소랄라로부터 북쪽의 모가디슈까지 모두 30여개가 있었다. 오늘날의 모잠비크 해안에는 킬와, 마피아, 잔지바르, 펨바등이 케냐해안에는 몸바사, 말린디, 라무, 페이트등이 소말리아 해안에는 키스마유, 부라바, 모가디슈등이 있었다.

26) D. Nurse & T.J. Hinnebusch, Swahili and Sabaki : A linguistic histor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3), p. 1.

27) 라윤도, "스와힐리 文明의 歷史的 展開過程", 아프리카 硏究, 제 2 호, 1982, pp. 121-122.

28) 라윤도, "스와힐리 文明의 歷史的 展開過程", 아프리카 硏究, 제 2 호, 1982, p. 134.

29) 라윤도, "스와힐리 文明의 歷史的 展開過程", 아프리카 硏究, 제 2 호, 1982, p. 127.

30)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에서는 가족단위로 이주하여 그들 고유의 문화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었으나 동아프리카 해안에 온 아랍인들은 대부분 선원이나 상인들로 혼자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반투 아프리카인 여자들과 결혼을 하여 살게 되었으므로 자연히 반투족에 흡수 동화되었던 것이다. ; 라윤도, "스와힐리 文明의 歷史的 展開過程", 아프리카 硏究, 제 2 호, 1982, pp. 134-135.

31) 김윤진, 東아프리카사 (서울,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4), p. 35.

32) B. Davidson, "Africa in historical perspective", Europa Publications Ltd., Africa South of the Sahara 1992 (London, Europa Publications Ltd., 1991), p. 8.

33) T.J. Hinnebusch & S.M. Mirza, Kiswahili : msingi wa kusema, kusoma na kuandaka (Washington, University Press of America, Inc., 1979), pp. xvii-xix. ; 권명식, '탄자니아의 언어상황과 언어정책", 韓國아프리카 學會誌, 제 5 집, 제 1권, pp. 11-22.

34) 스와힐리어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라윤도, "스와힐리 文明의 歷史的 展開過程", 아프리카 硏究, 제 2 호, pp. 119-150을 참조할 것.

35) 라윤도, "스와힐리어 文明의 歷史的 展開過程", 아프리카 硏究, 제 2호, 1982, p. 142.

36) 김윤진, "스와힐리어의 언어적 특성", 외대통역협회지, 제 4 권, 1986, p. 56. ; Hinnebusch, T. & Mirza, S.M., Kiswahili : msingi wa kusema kusoma na kuandika (Washington, University Press of America, Inc., 1979), pp. xv-xvi(introduction).

37) 권명식, 스와힐리어 문법구조 (서울, 한국외국어대하교 출판부, 2003), pp. i-ii(서론). ; Z. Marsh & G.W. Kingsnorth,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East Africa (London, Cambridge Univ. Press, 1966), pp. 75. ; 라윤도, "스와힐리 文明의 歷史的 展開過程", 아프리카 硏究, 제 2 호, 1982, p. 146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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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아프리카제어의 계통분류

2004. 7. 12. 08:23
2. 아프리카제어의 계통분류

언어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기호체계(a system of signals)이며 또 하나는 특정 언어집단의 문화유산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8)

8) J. Greenburg, Essays in linguistic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pp. 1-17. ; 권명식, 아프리카학 입문 : 역사비교언어학적 접근 (서울, 명지 출판사, 1988), pp. 19-21. 권명식, "아프리카학 서설", 한국외국어대하교 논문집, 권 20, 1987, p. 400에서 재인용.


즉 언어학의 연구는 바로 사람들의 문화양상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특별한 언어가 발전되었을까?, 다른 언어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어떤 상호관계를 가졌을까? 이런 질문들은 역사비교언어학(comparative historical linguistics), 어휘통계(lexico-statistics), 그리고 언어연대학(glottochronology)같은 연구를 통해 아프리카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비교언어학적 측면에서 흑아프리카 반투어의 대표적인 언어인 스와힐리어를 연구함으로서 아프리카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문법체계의 변화과정, 언어변화의 패턴, 언어집단의 이동, 집단간의 접촉과 언어상에 나타나는 문법의 변이사이의 특정한 상관관계를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9) 나아가 스와힐리어의 연구에서 아프리카에 산재해 있는 약 2034여개의 언어들을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비교 연구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 될 수 있을 것이다.

9) W. Welmers, African languages structure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1), pp. 1-19. ; J. Greenburg, Essays in linguistic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pp. 66-74, 35-55. ; 권명식, "아프리카학 서설", 한국외국어대하교 논문집, 권 20, 1987, p. 401에서 재인용.

이 같은 연구는 기록된 문자가 없는 수많은 부족들이 과거 어떤 경로를 통하여 이동해 왔으며, 또 어떤 문화형태를 누려왔는지 어휘를 통해서 추정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집단간의 접촉 및 교류현황까지 비교적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10)

10) 권명식, "아프리카학 서설", 한국외국어대하교 논문집, 권 20, 1987, p. 401.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의 유산인 언어를 제반 다른 사회영역 즉 정치, 사회, 철학, 역사, 심리학 등과 연관지어 언어가 이들에 미치는 영향 혹은 언어 속에 이들 요소들이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를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가 정치와 연관되는 부분에서는 언어정책(language policy), 언어선택(language choice), 다언어현상(multi-lingualism), 언어교체현상(language-substitution)등 아프리카 사회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언어사회학적 제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11)

11) J. Fishman, Sociolinguistics, a brief intorduction (출판지를 인터냇에서 확인할 것, Newbury House Language Series, 1970), Section V, VII. ; 권명식, "아프리카학 서설", 한국외국어대하교 논문집, 권 20, 1987, p. 401에서 재인용.


우선 2,034개의 언어가 산재해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스와힐리어의 언어학적 지위와 그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아프리카 언어의 계통분류(genetic classification)를 고찰해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계통분류는 아프리카인들의 기원과 그들의 과거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아프리카언어의 계통분류는 1963년 그린버그(J. Greenberg)가 총 집대성하였는데 유형학적 방법과 역사비교언어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크게 4대 언어군으로 구별하였다. 12)

12) 아프리카어 계통분류는 J, Greenberg, The languages of Africa (Mouton, The Hague, 1963). ; 권명식, 아프리카학 입문 ; 역사비교언어학적 접근 (서울, 명지출판사, 1988). ; 권명식, "아프리카어 제어 개관", 변광수 편저, 세계의 주요언어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3), pp. 1031-1053. ; 권명식, "스와힐리어 구조, 유형학적 특징", 변광수(편), 세계의 주요언어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3), pp. 1081-1109 등을 참조할 것.


첫 번째 어족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어족/阿亞語族(Afro-Asiatic Language Family)으로 주로 북아프리카지역에 분포되어있다. 이 어족에 속하는 중요언어는 모두 6가지 어군으로 세분화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고대 이집트어, 서북 아프리카 마그레브지역 사막에서 쓰이는 베르베르(Berber)어(알제리 남부, 니제르 사막에서 사용되는 투아레그(Tuareg)어), 소말리어, 및 갈라어로 대변되는 쿠쉬(Cushitic)어군, 아랍어 및 이디오피아어들을 포함하는 셈(Semitic)어군, 그리고 차드호수 인근의 하우사(Hausa)어 등으로 대변되는 차드(Chadic)어군, 마지막으로 오모강 유역의 오모(Omotic)어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 어족으로는 나이저 코르도판 어족(Niger-Kordofanian Language Family)으로 서아프리카 의 세네갈로부터 동부지역인 케냐와 탄자니아 그리고 남부지역의 남아공에 이르기까지 가장 방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반투어로 분리되는 언어들을 포함한다. 수단의 코르도판 지역의 언어를 제외한 나머지 언어를 나이저-콩고어족이라 칭하고 이는 다시 6개의 하위 어군으로 분류된다. 대륙서쪽으로부터 차례로 열거해보면 월로프(Wolof), 플라니(Fula/Fulani)를 포함하는 西대서양(West-Atlantic)어군, 밤바라(Bambara), 수수(Susu) 등의 만데(Mande)어군, 모네(Mone), 구루마(Gurma), 도곤(Dogon), 카브레(Kabre)등의 볼타(Voltaic)어군(혹은 구르(Gur)어군), 네 번째로 가나, 나이지리아에서 사용되는 아산티(Ashanti), 아칸(Akan), 에베(Ewe), 요루바(Yoruba), 이보(Igbo)등의 언어를 포함하는 꾸아(Kwa)어군, 중앙아프리카아의 참(Cham), 상고(Sango), 음바(Mba), 잔데(Zande)어등으로 대변되는 아다마와 우방기(Adamawa-Ubangi)어군, 끝으로 두알라(Duala), 루안다(Ruanda), 스와힐리(Swahili), 쇼나(Shona), 헤레로(Herero), 줄루(Zulu) 등 400여 반투어를 포함하는 베누에 콩고(Benue-Congo)어군으로 이 어군만으로도 흑아프리카 중남부 전역을 차지하고 있다.

세 번째 어족으로 나일 사하라 어족(Nile-Sahara; Nilotic Language Family)으로 사하라사막과 나일강 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어족은 송가이(Songhai), 마반(Mabaan)등 군소어군과 함께 방대한 언어를 포함한 샤리-나일어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샤리-나일어군은 모루(Moru), 마디(Madi), 망베투(Mangbetu) 등의 중부 수단어와 베르타(Berta), 쿠나마(Kunama)등을 포함하여 가장 큰 언어집단이 나일어군을 포함한 동부 수단어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칼렌진(Kalenjin), 루오(Luo), 마사이(Maasai) 등의 나일어는 아프리카 동부 케냐등지에서 반투어와 인접해 있다. 마지막으로, 코이산 어족(Khoisan, San Language Family)이 있으며 수렵 채집을 하며 인류문화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형태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산(San ; Bushman) 13)족과 유목·목축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코이코이(Khoikhoi ; Hottentot) 14)족이 포함된다.

13) 남부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하여 최초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종족은 부쉬맨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부쉬맨이라고 부르는 명칭은 보어(Boer)인들이 '수풀에 사는 사람들(Boesman)'이라는 의미로 일컬었던 데서 유래하고 있으나 부쉬맨들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예컨대, 코사(Xhosa)족은 트와(Twa), 소토(Sotho)족은 로아(Roa), 코이코이(Khoikhoi)족은 산(San, Saan)으로 부르고 있다.
오늘날 이들은 대략 10,000여명(실질적으로 약 500명 정도)이라는 극히 적은 수의 인구를 유지하며 칼라하리 사막 주변인 보츠와나(Botswana), 나미비아(Namibia), 앙골라(Angola) 등지의 건조지대에서 멸종의 위기를 맞으며 자신들의 전통적 석기시대의 생활방식(수렵과 채집 및 채취, 중요 도구는 타조 알을 사용)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쉬맨들의 신체적 특징으로는 매우 작은 키와 노랑색 또는 갈색의 피부 빛깔을 둘 수 있으며 이들의 언어는 매우 독특하여 "딸깍 딸깍 찰깍 찰깍"하는 소리나 혀 차는 소리들이 나는 소위 흡기음(吸氣音, click sound)을 구사하고 있다. G.S. Were, A history of South Africa (London, Evans Brothers Limited, 1974), pp. 2-4.



14) 호텐토트(Hottentot)족은 인종상 부쉬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란 색깔의 피부빛깔이나, 이들의 언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단음절의 흡기음(吸氣音, staccato click sound)의 사용은 호텐토트족 역시 부쉬맨과 동일한 혈통을 가졌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람중의 사람'이라는 의미의 '코이코이(Khoikhoi)'로 불려 지기도 한다. 그러나 유럽인들에 의해 명명된 '호텐토트'가 일반적으로 폭 넓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호텐토트라는 '흡기음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1487년, 포르투칼인들이 남부아프리카에 도래했을 당시 호텐토트족은 살단하(Saldanha Bay)만, 테이블(Table Bay)만, 모셀(Mossel Bay)만 등지에 걸쳐 고기잡이와 조개류 채취로 생활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호텐토트족은 반유목민으로서 긴 뿔소와 양을 사육하였고 사냥용으로 개도 길렀다(주로 서쪽에 있는 Swakop강과 동쪽의 Fish강 사이의 해안가). 1652년 Jan van Riebeeck이 케이프에 상륙했을 때는 이들은 희망봉(The Cape) 주변지역, 오렌지(Orange)강 유역 그리고 나탈(Natal)지역과 서남아프리카 지역 훨씬 위쪽까지 분포되었다. 그러나 부쉬맨보다 넓은 지역에 분포되지는 못했다. 이들은 유목을 하였기 때문에 건조한 내륙이나 산악지대보다는 해안 가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했다. G.S. Were, A history of South Africa (London, Evans Brothers Limited, 1974), pp. 4-8.



<지도 1> 아프리카의 언어의 계통분류 15)

15) K. Shillington, History of Africa (London, Macmillan, 1993), p. 50.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스와힐리(Swahili language)어는 나이저 코르도판 어족중 베누에 콩고(Benue-Congo)어군에 속하는 반투어라고 할 수 있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예술과 문학/속담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서론

2004. 7. 12. 08:12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1)

1) 이 논문은 2002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KRF-2002-043-A00062)

1. 서론

왜 아프리카는 서구열강이 오랜 기간동안 식민지배와 침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처럼 완전히 서구문화에 동화되지 못했는가?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가 월등하고 우월하다면 당연히 아프리카라는 문명권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서구인들의 지배와 침탈의 과정이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 비해 이익이 덜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은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나타난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을 살펴본다면 절대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인도등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서구열강으로부터 지배를 벗어나고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강력한 전통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아프리카에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문화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닐까?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이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프리카인들이 그들 나름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으로 정의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정체성은 국가집단 혹은 민족집단의 문화적 요소에 접근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비교 인류학은 문화적 정체성을 정치적, 경제적 또는 보다 특수한 사회와 교육 구조 안에서 형성된 삶의 독특한 방식이라고 규정짓는다.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용어는 기준, 가치, 태도, 정책과 관련 깊다. 이것은 사회 양상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표준이 된다. 문화적 정체성은 그것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구조화되는 방법이며, 기준, 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태도와 행동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규정짓는 인지지식 체계이다. 추상적인 용어로서 문화적 정체성은 내면화된 문화적 의식이며 현실에 대한 명백한 동일화의 과정이다. 국가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정체성은 공통된 문화 유산의 산물이다. 문화적 정체성과 민족주의는 독립된 존재 또는 정치적 국민의 창조를 위한 기준으로서 선택된 어떤 정체성 양식으로서 연관성을 지닌다. 그 요소들은 언어, 역사, 종교, 활동영역, 문화유물 또는 상징과 같은 독립된 존재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어지는데 이러한 각각의 요소들은 특별한 문화적 정체성과 국가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2) C. Brock & W. Tulasiewicz, "The concept of identity : Editors introduction", C. Brock & W. Tulasiewicz(eds.), Cultural identity and educational policy, pp. 3-4.

특히 非문자사회라는 아프리카의 특성상 구전전통ㆍ구비전승(oral tradition)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구전은 풍부한 기억력과 상상력을 기초로 '입'에서 '입'을 통해 사실을 전승하는 방법론으로 문자체계가 없었던 사하라이남 반투 사회의 대표적인 역사전승 방식이었다. 함파테(Hamp t B )가 '아프리카에서 나이 많은 이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진다'고 말한 내용은 역사적 자료로서 구전전통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전전통은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지니고 있는 보물단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의 속담은 아프리카 구전전통속에서 아프리카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시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속담은 약 백만여개로 추정되고 있을 정도로 아주 많다. 조사된 바에 따르면 비교적 소국인 부룬디(Burundi)는 약 3,000여개의 속담이 존재하며 스와힐리 사회의 속담은 약 2,000여개로 나타나고 있다. 3)

3) J. Knappert, The A-Z of African proverbs (London, Karnak House, 1989), p. 10.

구전성이 문자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속담의 사용은 현지인들의 언어생활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1962년에 편찬된 서아프리카의 하우사족의 사전(Abraham, R.C., Dictionary of the Hausa language (London, University of London Press, 1962)의 경우 992쪽에 달하는 방대한 사전의 예문들 중에서 약 30%가량이 속담이나 격언의 범주에 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프리카의 언어와 문학, 민속과 문화에 대한 연구가 속담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4)

4) 장태상, "아프리카의 속담전통을 통해서 본 속담에 관한 통념의 제문제", 비교민속학, 17권, 1999년, p. 402.

현대 아프리카의 속담연구의 당위성을 얀센(K. Jansen)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속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상의 언어구사에 절대 필요한 요소이며 별 뜻 없는 대화나 잡담에서부터 시작하여 특히 토론이나 논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영원히 살아있는 생활문학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5)

5) K. Jansen, "Afrikanische Ltferature", B. Heine et. al., Die Sprachen Afrikas : mit zahlreichen Karten und Tabellen (Hamburg, Buske, 1981), p. 580.

아프리카에서 속담은 구연문학의 다름 형태들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속담은 용어적으로 분명하게 그 영역이 구분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구연문학의 특성상 다른 구연문학의 형태와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어려우며 특히 쓰여진 문자전통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고 비문자적 전통이 강한 아프리카에서는 더욱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반투어를 사용하는 종족들 속에서 속담을 의미하는 용어의 중복사용은 두드러진다. 냔자(Nyanja)족은 므왐비(mwambi)라는 말은 이야기, 수수께끼, 속담을 말하며, 간다(Ganda)족의 올루게로(olugero)라는 말은 이야기, 우화, 그리고 속담을 의미한다.

또한 몽고(Mongo)족의 보콜로(bokolo)는 우화, 시, 이야기를 포함하는 시적 표현을 사용할 때 사용한다. 그리고 서부아프리카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림바(Limba)족의 음보로(mboro)는 이야기, 수수께께, 우화와 이야기 그리고 속담을 의미한다. 플라니(Fulani)족의 틴돌(tindol)은 인기 있는 도덕적 이야기를 의미하며 속담이나 격언을 나타낸다. 6)

6) R. Finnegan, Oral literature in Africa (Nairobi,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p. 390-393.

이야기와 속담사이의 긴밀한 연관은 아잔데(Azande)족, 줄루족, 아샨티(Ashanti)족 등에서 나타나는데 도덕적인 이야기를 끝맺을 때 아니면 이야기의 중간에 정확한 전달을 위해 속담을 이용한다. 또한 속담은 자주 노래나 시에서 표현된다. 7)

7) R. Finnegan, Oral literature in Africa (Nairobi,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 391.

결론적으로 속담만큼 아프리카 사회의 진면목과 사고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없다. 어떤 다른 아프리카의 전통보다 아프리카인의 지혜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속담들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속담은 아프리카 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펴볼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언어인 스와힐리어로 된 속담을 연구하는 것은 스와힐리어와 그 문명을 이해하고 나아가 아프리카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 연구는 타문화와 이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인식틀을 제공할 수 있으며 향후 통일이후 한국의 상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본고에서는 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분석하기 위해 먼저 스와힐리어의 언어학적 지위와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아프리카제어에 대한 계통분류와 스와힐리어의 역사적 형성배경을 고찰한다. 스와힐리어에 대한 설명은 다소 장황하여 주제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있으나 특수어라는 점에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스와힐리어 속담에 대한 분석을 위해 속담의 정의와 역할을 간략하게 정의하고 속담이 아프리카의 문화속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또 이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본고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 스와힐리어 속담을 주제별로 분석하여 설명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속담의 형식면에 관한 연구보다는 내용면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고자한다. 즉 각 속담을 주제 및 소제별로 수집 정리하여 그들이 어떤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밝히는 것이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예술과 문학/속담

  1. Blog Icon
    이뿌니

    어지럽네요저다못읽었어요ㅠㅠ

  2. Blog Icon
    만사무사

    ㅎㅎㅎ 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여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동물의 말을 배운 사람

2001. 12. 17. 20:28
오히아 (Ohia)는 매우 운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했던 모든 일들은 잘못되어만 갔다. 그가 옥수수 씨를 심으면, 새들에게 다 먹혀버리거나 개미들이 가지고 갔다. 그리고 카사바를 심으면, 원숭이들이 와서 파가기 일쑤였다. 그가 염소를 사와서 기르면 곧 죽었고, 암탉을 사와서 기르면, 그 닭들은 그가 달걀을 찾지 못하도록 숲 속에서 알을 낳았다.
  지금 오히아에게는 아리웨후(Ariwehu)라는 아내가 있다. 그런데 그녀 또한 오히아 만큼이나 운이 없어서 그녀가 하는 일도 그녀의 남편과 똑같이 운이 없었고, 따라서 그들은 남은 식량이 거의 없었졌으며, 낡아빠진 옷가지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급속도로 가난해졌다.  그들이 아주 보 잘 것 없는 저녁식사를 마친 어느 날 저녁, 그들은 오두막 밖에 앉아서 그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분명히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꺼야”라고 아리웨후는 처량하게 말문을 열었다.  
“만약 내가 새 옷을 지금 당장 살 수 없다면, 이 낡은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서 마을로 내려가게 되면 창피를 당하고 그렇게 되면, 하루 종일 우리 오두막에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 우리는 무언가 해결책을 생각해 내야해”라고 오히아는 대답했다.
“나는 오늘밤고 같은 이렇게 배고픈 것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우리가 먹어버린 것도 이제 마지막 식량이야. 아마 우리 친구들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가 먹을 내일 식량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오히아는 골똘히 깊이 생각했고 그의 부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그렇게 신세타령을 하고 있는 동안 마을 뒷산의 숲에서 올빼미가 구슬프게 어둠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때 오히아는 한 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알아냈다!”라고 그가 소리쳤다.’
그는 모든 것들을 다시 생기 있게 바라보면서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나는 부자 농장주가 살고 있는 저 언덕 너머로 가서 내가 그를 위해 야자나무를   베는 일을 해도 되는지 부탁 할 것이다. 그는 내가 확신 하 건데, 그렇게 허락해줄  정도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나는 나무의 수액을 모을 것   이고, 나의 아내,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팔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기꺼이 그 일을 하겠어요”라고 그 부인은 대답했고, 그녀는 어떻게 그 돈을 써야할지를 상상하면서 눈을 감았고, 그녀가 사게 될 새 옷의 색상을 결정했다.
그 다음날 오히아는 일찍 일어나 그 부자 농장주를 방문하기 위해 떠났다. 농장주는 오히아가 사리 분별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고, 오히아는 야자 수액을 모아 담을 큰 단지들까지도 빌릴 수 있었으며 농장주와 그는 그들의 수입을 나누기로 약속했다.
오히아는 기운이 넘쳤으며 의욕을 갖고 큰 야자수들을 베는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은 힘든 노동이었고, 특히 굶주린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마침내 그 일을 마쳤고, 그는 나무들의 밑 부분을 잘라서 수액을 단지에 모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오히아와 그의 아내는 야자수액을 어떻게 팔 것인지, 그리고 돈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서로 상의를 하며 몇 시간 동안을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러다가 동트기 훨씬 전에 오히아는 호롱불을 들고서 그의 단지에 야자수액이 얼마나 모아져 있는지 보기 위해 갔다. 그는 그것을 집으로 가지고 오면 아내가 그것을 바로 그날 시장에 내다 팔 것을 꿈꾸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첫 번째 나무에 도착했을 때 무엇인가가 단지를 산산 조각 내어 야자수액이 모두 쏟아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실망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그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6그루의 나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알라!”, 두 번째 단지마저도 깨져있었고, 3번째, 4번째 그리고 그가 7번째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모두 산산조각 났을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단지 모두가 깨어져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닥친 그 불행 때문에 거의 죽을상이 되어 그의 아내에게로 급히 돌아갔다.
“알라....!!!” 그는 지금까지 그가 본 것에 대해 아내에게 설명하며 울었다.
“진정하세요...” 그의 아내는 씩씩하게 말했다.
“당신은 포기하선 안돼요. 저는 야자수액을 훔쳐간 도둑이 단지들을 모두 깨뜨려서 마치 동물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보이게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 당신 말이 맞아” 그녀의 남편은 대답했다.
“난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시장에 가서 어떤 것도 살 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친구에게 단지 몇 개를 더 빌려왔고, 그것들을 나무들 바로 아래에 그가 잘라 놓은 부분으로부터 수액이 잘 떨어지게끔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는 지난번처럼 단지들 모두가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또다시 절망에 빠졌다. 그는 그것이 도둑의 짓이라고 확신하고 부인에게 말을 했다.
“오늘밤 단지를 몇 개 더 가져다 놓을 것이지만, 그것들을 안전 망 밖에 방치해 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안 할 것이다. 난 근처에 숨어서 도둑을 지켜보고 그를   잡아서 도둑질 한 것에 대해서 변상하도록 할 것이다.”
오히아와 그의 아내는 간신히, 그와 오랜 고난을 함께 한 친구에게 항아리 몇 개를 더 빌릴 수 있었고, 수액을 모을 수 있게 오른쪽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큰 나무 뒤에 숨어서 기다렸다.
한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아는 꼼짝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기 때문에 몸에 경련이 일었고 또한 날씨도 추웠으며, 심지어 모기들이 얼굴을 물어뜯어 모기들을 때려잡아야 했으며 시간이 지니자 조금 전에 도둑에게 경고했던 것 같은 배짱도 사라져 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새벽 2시쯤, 그는 어두운 형체 하나가 야자나무 근처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고, 단지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숨죽이며 낮게 천천히 기어가서 본 형체는 큰 단지들 갖고 다니면서 오히아의 야자수액을 단지에 채우고 나서는 오히아의 단지를 부수고 다니는 큰 어른 사슴임을 알고 나서 놀랐다.
오히아는 있는 힘을 다해 뛰어서 그 사슴 옆으로 가 잡으려고 손을 뻗쳤으나 그 사슴은 그에 비해서 너무 빨랐고, 그의 큰 단지를 땅에 버려둔 채 사슴은 잽싸게 숲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오히아는 사슴을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의 화는 걸음에 속도를 더했고, 그는 사슴을 쫒아 수 마일을 따라갔다.
마침내 해가 뜨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오히아는 그 사슴을 잡지 못했고, 그 둘은 몇 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도달했고, 그 위에서 사슴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뛰어갔다. 오히아는 너무 많이 지쳤지만, 그가 갑작스레 자신이 그들의 제왕처럼 보이는 표범을 둘러싸고 있는 무리를 진 동물들의 집회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까지, 천천히 위로 오르고 있었다.
그 사슴은 그 왕의 발밑에 숨을 헐떡이며 누워 있었고, 그의 얘기를 했다. 그동안 모든 동물들은 오히아를 쳐다보며 시선을 집중 시켰고 오히아는 동물들의 왕인 표범에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애원했다.
오히아는 그의 계속되어 왔던 불운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였고, 오히아는 자신이 왜 그 사슴을 쫒아서 표범의 왕국으로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으며, 그에게 자신의 동물세계에 대한 침범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표범 왕은 주위 깊게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잘못을 한 자가 당신이 아니라 사슴인 것에 동의한다. 나는 사슴에게 나를 위한 야자수액을 사기 위해 많은 돈을 주어왔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의 것을 훔치는 것이 쌀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슴이 훔친 야사수액과 깨져버린 단지들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 하나를 주려고 한다.  지금부터 앞으로 당신은 모든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고, 이 능력은 너를  빠르게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오히아는 그 선물이 어떻게 자신에게 부를 가져다 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표범 왕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정중하게 감사했다.
“그러나 한 가지 네가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라고 왕은 말했다.
“너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너의 그 굉장한 능력에 대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것을 어긴다면, 너는 그 즉시 죽게 될 것이다.”
오히아는 다시 한번 그에게 감사를 하고, 그 선물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언덕을 내려와 집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의 아내 아리웨후는 그를 보고 기뻐하며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하였지만, 그가 그의 아내에게 말한 것은 그의 단지들을 깬 사슴을 잡으려고 추적했지만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저녁, 그는 사슴이 그의 단지를 모두 부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야자나무에 가서 수액을 얻으려는 마지막 시도를 했다. 그 가난한 사람에게 그의 단지들 속에 야자수액으로 넘치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정말 그를 기쁘게 했고, 그의 아내는 그것을 시장으로 가지고가 좋은 가격에 팔았다.
이제 오히아의 운은 실제로 바뀌었다. 그는 항상 팔 수 있는 많은 양의 야자수액을 얻었고, 그는 염소들과 닭들을 살 수 있었으며, 그의 집도 수리 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아내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옷들을 가질 수 있었고, 마침내 그들 사이에 어린 아들이 태어났다.
그가 근처 연못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오히아는 닭 한마리가 그녀의 어린 병아리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저기 물 속에 있는 어리석은 사람을 봐라.” 그 암탉은 쿡쿡거렸다.
“자신의 몸 하나 모두 담글 수 있는 물을 분명히 가질 수 있을 텐데 어쩌면 저렇   게 불쌍할까. 그러나 그가 바보 인 것은 정말 확실하단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집 뒤에 금 단지가 세 개나 묻혀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지 때문이야. 내가 모     이를 먹기 위해 땅을 쪼을 때 그것들을 발견했지만, 난 그를 좋아하지 않기 때     문에 그가 그것을 보기 전에 다시 덮어놓았단다.”  
오히아는 그의 귀를 의심했지만, 마치 아무 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그의 몸을 계속 씻기만 했다. 그날 이후 한 낮의 더위에 마을 전체가 잠이 든 것처럼 조용해 졌을 때, 오히아는 그의 정원을 팠고 바로 3개의 금 단지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그의 집 바닥에 숨겨 놓았고, 그 후에 그는 그녀의 부인에게 땅을 파야할 곳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할 수 없었다.
이제 그들의 생활은 윤택해져 그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부부가 되었다. 아리웨후는 마음씨 착한 여성이었고, 자신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어떠한 사람들이라도 도왔다.  반면 오히아는 좀 더 존경받기를 원했으며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기로 결심했다.
그 어리석은 남자는 빼어난 미모를 지닌 한 여자를 선택했다. 그는 그녀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왔고, 시련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새로운 부인은 오히아와 아리웨후가 함께 있는 것을 참지 못했고, 그녀가 근처에 있을 때 그들이 얘기를 나누고 웃기라도 하면, 그녀는 순식간에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을 비웃었다면서 그들을 비난했다.
오히아는 집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했지만, 모두 헛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오히아는 그의 집 밖에서 아리웨후 함께 나란히앉아 있었지만, 그의 새 부인이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말을 나눌 수도 없었다. 아리웨후는 피곤해 했고, 편안히 잠이 들어버린 동안, 오히아는 그의 머리맡의 지붕위에 있는 두 마리의 작은 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자마자 바로....”  한 쥐가 찍찍거렸다.
“우리는 그들의 음식 창고로 들어갈 꺼야.”
“오.. 아주 좋아!!” 라고 다른 한 쥐가 외쳤다.
“내가 그 안을 살펴봤는데, 그들은 내가 도저히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맛있게 생긴 콩으로 만든 케이크를 가지고 있다.”
오히아는 자기 근처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체 크게 웃었다. 아리웨후는 깜짝 놀라서 일어났지만, 그 새 부인은 그 옆의 오두막 밖으로 이렇게 소리치며 뛰어나갔다.
“또 다시 나를 놀렸어. 당신들을 웃게 한 것이 도대체 뭐야?”
아리웨후는 잠을 잤다고 주장했고, 오히아는 갑자기 바보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고 설명했지만, 그 여자는 그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바보같은 생각 때문에 웃었다면, 당신은 나에게 그 생각이 무엇이었는가를 당장 나에게 말세요.”  
그녀는 불평을 했고, 저녁나절 내내 그리고 하루 온종일 의심하며, 그에게 성가시도록 잔소리를 하면서 그가 한 바보같은 생각을 자신에게 말하게 하도록 했다.  결국에 그녀는 추장에게로 가서 남편에 대한 불평을 일러바치기로 결심했다. 현재 추장은 오히아의 친구였고, 그 새 부인의 화가 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를 도와주기 위해서 오히아를 데리러 보냈다.
“그녀의 한탄 때문에 너의 하루하루가 비참해 지는 것보다는 네가 왜 웃었는지를 이 새 부인에게 말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 추장은 말을 했다.
오히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냐하면 그는 그 추장을 존경했고, 그의 새 부인이 그의 새로 찾은 행복을 망치는 것들에 대해 참으로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동안 가장 좋은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애쓰면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 자신을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선택을 했다. 그 후에 그는 오랜 동안 지켜온 비밀을 말해야 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의 모든 친구들과 친족들을 큰 연회를 열어 초대했고, 그 자리에서 그는 그의 유산으로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금은 아내 아리웨후에게 주기로 하고, 나머지 그의 모든 재산은 아들에게 줄 것을 선언했다.  그는 추장에게 머리 숙여 절을 했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가 표범 왕을 만난 이야기와 그 왕이 자신에게 선물로 준 능력에 대해서 말을 했다.
그는 단지 그들에게 말하는 그 시간밖에 갖게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표범 왕이 그에게 경고했던 것처럼 죽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웃음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후에 그 연회는 장례식으로 바뀌었고, 그의 모든 친구들은 오히아를 묻으면서 슬프게 울고 애도하며 한탄했다.
그들은 그의 죽음의 탓으로 그의 새 부인에게 굉장히 화를 냈고, 그녀를 죽여서 그 시신을 마을 밖에서 태워버렸다.  그녀의 재는 세상 전체로 바람에 날려 흩어졌고, 그녀의 작은 흔적들이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지, 질투와 이기심이 뿌리내렸다.  그리고 이것은, 그전에 오직 선함과 배려하는 마음만이 있었던 모든 세상에 악의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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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신화

2001. 11. 19. 21:50
어느 사회에서도 죽음은 중대한 문제가 되고 있으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 및 구체적으로 취급하는 방식은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
종교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죽음에 대한 의미와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죽음이 윤회에 따라 일어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죽음의 기원은 자주 신화로 설명되고 있어서, 본래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금기(禁忌)를 범했다거나 신의 노여움을 사서 저주를 받는 등의 이유로 죽게 되었다고 한다. 셀레베스섬의 알푸루족은 신이 하늘에서 내려준 돌과 바나나 중에서 인간이 식품으로 바나나를 골랐기 때문에 생명이 정해지게 되었다고 믿는다.
아프리카에는 신령의 메시지가 잘못 전달되었다는 신화가 있다.
예를 들면 부시먼족의 경우 달이 토끼에게 <내가 죽어도 되살아나듯이 사람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였는데, 토끼가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잘못 전했기 때문에 생명이 정해졌다는 신화가 있다.
많은 미개사회에서는 개개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돌린다.
즉 아프리카의 체와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조사할 당시 생긴 사망사건 149건 가운데 4건은 신이 한 일로(자연사), 140건은 요사스러운 술법 등 주술 탓으로, 5건은 조상이 원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프리카 누에르족은 벼락이나 돌풍으로 죽은 사람은 신이 하늘로 내려간 것으로 생각하며 이것은 혼령 특히 악령의 짓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은 영혼과 맺어진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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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루바의 신화

2001. 11. 19. 21:49
태초에 위에는 하늘, 아래에는 물과 늪지대만 있었다.  신의 왕인 올룬(Olorun)은 하늘을 지배했고 여신인 올로쿤(Olokun)은 아래를 지배했다.  또 다른 신인 오바탈라(Obatala)는 이같은 상황을 깊이 생각했다.  그런 후 올로룬에게 가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마른 땅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올로룬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올로룬의 맏아들이자 예언의 신인 오룬밀라(Orunmila)에게서 조언을 들었다.  그는 아래까지 닿을 긴 금 사슬과 모래를 가득 채운 달팽이 껍질, 흰 닭, 검은 고양이 그리고 야자 껍질이 필요하다고 그에게 말했다.  모든 신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금들을 주었으며 오룬밀라는 물건들을 나를 수 있는 가방들을 지원했다.  이 모든 것이 준비되자 오바탈라는 하늘의 모퉁이에 그 사슬을 걸고 그의 어깨위에 가방을 매고 그리고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그 사슬의 끝에 다다랐지만 아래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는 위의 우룬밀라로부터 달팽이 껍질 속에 있는 모래를 쏟아 부으라는 것과 하얀 닭을 풀어주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시키는 대로 했으며 닭은 모래위에 떨어지자 모래를 할키어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 모래는 마른 땅을 만들었고 보다 큰 부분은 언덕들이 되고 작은 부분들은 계속이 되었다.  오바탈라는 한 언덕에 뛰어 내렸고 그곳을 이페(Ife)라고 이름 지었다.
그 마른 땅은 계속 넓혀졌다.  그는 큰 구멍을 파서 그곳에 야자열매를 심었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크게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 큰 야자나무는 땅위에 많은 야자열매를 떨어뜨렸으며 그 열매들이 보다 많은 야자나무를 만들어 내었다.  오바탈라는 친구인 고양이와 함께 정착하게 되었다.  많은 달이 지나가자 그는 지루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친구로써 자신과 같은 형체의 생물체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모래를 파서 흙을 찾아 그 자신과 같은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곧 지쳤고 잠시 휴식하기로 했다.  그는 야자나무 근처에서 와인을 만들어 계속 마셨다.  그는 술에 취한 것을 알지 못했다.  오바탈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그의 작업실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술이 취했기 때문에 많은 불완전한 형체를 만들었다.  이것을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창조물에 생명을 불어 넣어줄 것을 올로룬에게 요청했다.  다음 날 그는 그가 무엇을 했는지를 깨달았고 결코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그는 불완전한 형체를 한 그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다.  그래서 그는 불안전한 형체의 사람들을 돌보는 보호자가 되었다.  이 새로운 사람들은 오바탈라가 했던 것과 같은 오두막집을 지었고 곧 이페는 번성허여 도시가 되었다.  모든 신들은 오바탈라가 하는 일들은 무었이든지 축복을 주었고 하늘 아래를 지배하는 신인 올로쿤만 제외하고 가끔 땅을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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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탄생 이야기2

2001. 11. 19. 21:48
대부분의 아프리카 탄생이야기들 중에는 많은 유사점들이 있다.  반면 약간의 차이점들도 있다.  탄생 이야기들 중 네 가지를 선별해서 비교해 보자.  첫 번째는 "아프리카인의 우주론"이다.  붐바(Bumba)라는 창조주가 있다.  그는 태양과 달을 토해난 이후 9명의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아프리카 인간창조의 이야기"인데 백나일강 유역에 살고 있는 실룩크족의 이야기인데 주로 지구의 다양한 인종들의 피부색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쥬크(Juok)가 지구의 모든 인간들을 만들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백인들은 쥬크가 하얀 땅에서 발견한 하야 모래로 만들었다.  붉거나 갈색 피부를 가진 인간들은 이집트 나일강의 진흙으로 만들었다.  흑인들은 실룩크족의 땅에 있는 검은 흙으로 만들었다.
이 탄생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모든 필수적인 기능이 주어졌다.  각 부분들은 존재의 이유들이 있었다.  예를들면, 쥬크는 일을 위해 인간에게 팔을 주었다.  세 번째는 "신과 다섯 여인들"들로 땅과 불, 물 그리고 여자의 기원에 대한 신화를 주는 것으로 북태평양 해안의 톰슨 인디언들로부터 그 기원이 온 것이다.  이 탄생 이야기는 지구가 노인 혹은 추장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천상의 세계로부터 구름을 가지고 내려왔으며 다섯명의 완벽한 형태를 가진 젊은 여인들을 만들었다.  그들 각자에게 그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었이냐고 물었다.  첫 번째 여자는 "악"(bad)이 되기를 원했고, 두 번째 여자는 "선"(Good)이 되기를 원했다.  세 번째 여자는 땅이 되기를 원했다.  네 번째 여자는 불이 되기를 원했고, 다섯 번째 여자는 물이 되기를 원했다.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생각의 탄생"으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지구에 가장 먼저 탄생한 인간이다.  그후 이와 유사한 인간들이 탄생하였다.  그 지구의 창조주는 흙으로부터 인간을 만들었다.  그는 인간에게 마음과 사고, 혀, 영혼 그리고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이 형체의 모든 것들은 생각의 진행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에는 주요 창조주가 있다.  신 혹은 창조주는 인간을 만들고 이들을 지구의 여기저기에 거주하게 만들었다.  이들 이야기 중 두 개는 인간 탄생과 관련하여 유사한 개념을 지니고 있다.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생각에 의한 탄생"이야기와 "아프리카 인간 창조의 이야기"가 유사점을 가진다.  그것은 또한 이 모든 이야기들 속에는 인간이 탄생되기 이전에 모든 것들 심지어는 동물들이 이미 탄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네 이야기들은 인종들의 유사한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들면, "아프리카 인간탄생 이야기"에서 쥬크는 인간에게 손을 준 것은 그들이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사하게 "생각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지구 창조주는 인간에게 영혼과 마음, 말하는 능력을 주었고 그 자신과 유사하게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이 창조주와 같은 행동 할 것을 기대했었다.
또한 이 네 이야기들 간에는 많은 차이점들도 있다.  예를들면, 탄생의 기원이 그것이다.  각 문화들은 인간이 그들 내부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탄생의 이야기는 다르다.  또한 탄생된 인간의 의미들도 다르다.  이 네가지 이야기들 속에 있는 인간은 흙 또는 여자들 그리고 생각으로부터 탄생되었다.  "아프리카 우주론"에서는 가장 중요한 탄생의 특징은 동물이었다.  이것은 "모든 것의 마지막에 남자들이 나온다"라는 이야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과 다섯 여인들"이라는 이야기에서는 여자들이 창조의 중심에 있다.  이것은 다른 창조 이야기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 모두가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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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탄생 이야기1

2001. 11. 19. 21:47
인간이 살기 시작한 이래 이 세상의 모든 문화들과 종교들을 함께 묶으려는 하나의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로 이 이야기도 아프리카대륙에 존재하고 있던 수많은 종교단체들을 위한 진실을 담고 있다.  과학의 부재속에 그들은 그들이 하지 않았던 것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창조적 이야기들에 의지하였다.  그것들의 기본적인 줄거리와 가설이 유사한 반면, 이 이야기들은 그것들의 내용과 의미에 있어서는 매우 다양하다.  그것들을 연구하다보면 아프리카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예를들면, 나일지역의 실룩크(Shilluk)족들은 인간이 흙으로 빚어져 만들어 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창조주가 나타나는 세계의 각 지역들에서 창조주는 활용할 수 있는 물질들로부터 인간들을 만들어 내는데 어떤 것은 하얗게, 그리고 어떤 것은 빨갛거나 황색 그리고 실룩크족 처럼 검게 만들어 내었다.  창조주는 땅의 일부를 떼어서 그들에게 팔과 눈 등을 주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가치관과 문화 등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특징들을 분배함에 있어 맨 먼저 창조주는 그들의 팔과 다리를 이용하여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들의 음식에 대한 맛을 느끼게 하고 볼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그들 스스로 즐길 수 있게 말을 하고 듣는 능력을 받았다.  이것은 실룩크족 중에서도 일을 하기 위한 체계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이야기함으로서 다양한 인종들 사이에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는 시도이기도 하다.
서부아프리카의 창조 이야기는 영혼을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우연히 하늘의 신에 의해 땅으로 보내졌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쓸쓸한 그 두 사람은 흙을 가지고 어린아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의 신이 내려올 때는 그것들을 숨겨야 했다.  그들은 불 속에 감쳐져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은 곧 얼마나 오래 그 열에 노출되었느냐에 따라 다양한 피부색깔을 지니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흙 아이들은 점점 성장하여 지구의 다양한 지역으로 옮겨갔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인구의 성장을 가져왔다.  실룩크족들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도 이중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 그들 중에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창조의 특성도 설명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서부아프리카인들의 가치가 차이점이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들은 모든 인간들이 동등하게 태어났고 동등하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룬다 클루스트의 중앙 반투 족인 보숑고(Boshongo)족은 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들을 위한 창조주는 태양과 달을 만들어 낸 붐바(Bumba)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이다.  어떻게 인간이 다른 사람을 창조했는지의 설명에서 보숑고족과 자연 사이의 깊은 관계를 볼 수 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살아있는 유기체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세계의 개선을 위해 모두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그들 사회속에 존재하는 단일성이 있다.
반대로 아발루이아족은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그런 후 신이 식물들과 동물들을 만들어 인간의 식량으로 제공하였으며 누군가와 이야기 할 수 있게 여자를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아발루이아족들이 매우 자기 중심적이며 맹목적 애국주의 부족 단체임을 보여준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세상이 다른 창조물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인간(여자도 제외됨)의 욕구를 맞추기 위해 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아발루이족에 의하면, 세상은 그들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네 이야기들은 그들이 신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이유들에 대한 그들의 묘사속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는 반면 그들은 똑같은 목적들에 봉사하고 있다.  어떻게 이같은 일들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그들의 설명을 통해 그들이 세상속에 있는 그들의 장소를 보는 견해들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이 이야기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위안의 근거로서 그리고 다음 세대에 대한 연결 고리로서 의무를 하게 될 것이다.  이 창조의 이야기들은 위대한 문헌의 작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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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루바의 신들

2001. 11. 19. 21:46
전통 요루바 종교는 오리샤(orisha)라 불리우는 만신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한 아이가 태어나면 바바라우(Babalawo)라는 점쟁이가 그 아이가 뒤를 이어야할 오리샤를 결정하는 조언을 한다.  성인이 되면 요루바는 종종 여러 신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구전에 의하면, 가장 높은 신인 올로룬(Ololun : Olodummara)이 처음으로 일레-이페(Ile-Ife) 지역의 땅에 생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리샬라(Olishala)를 보내기로 하였으나 오리샬랴는 지체하였고 그의 동생인 오두두와(Oduduwa)가 그 일들을 수행했다.  그후 16명의 다른 오리샤가 땅에 인간들과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내려왔다.  이들 신들의 후손들은 요루바지역 전지역에 요루바 문화와 종교를 전파하였다.
신성한 도시 이페 제례의 으뜸은 왕실조직과 요루바 신들의 기본적인 만신전을 합법화  하는 것이었다.  일부 신들은 오두두와가 땅을 탄생시킬 때 이미 존재했던 태초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신들은 인간에 중요한 인상을 남긴 영웅들이었다.  신들은 아마 인간들의 역사와 삶에 영향을 미친 산이나 언덕 그리고 강들과 같은 자연현상들도 있을 수 있다.  요루바인들에 의해 숭배되는 수백의 신들 중에 가장 인기있는 신은 청둥과 번개의 신인 상고(Sango), 예언의 신인 이페(혹은 올룬밀라 : Orunmila), 사자 혹은 책략가의 신인 에슈(Eshu), 그리고 철과 전쟁의 신인 오군(Ogu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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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와 도마뱀(반투족)

2001. 11. 19. 21:44
거북이는 그의 소금 모두를 소비했고 그는 그의 식사가 소금이 없어 매우 맛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는 그의 형을 불러 만약 여분의 소금이 있으면 조금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의 형은 많은 소금을 가지고 있었다.  "너의 집에 어떻게 소금을 가져갈 것이냐?"라고 그의 형이 물었다.  "만약 형이 나무껍질 보자기에 그 소금을 싸 준다면 그리고 그것을 잘 묶어 준다면 나의 어깨에 끈으로 그 꾸러미를 묶어 질질 끌고 가겠다"라고 거북이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야"하고 그의 형이 말하고는 그들은 튼튼한 소금 주머니를 만들었다.  그런 후 거북이는 그의 뒤에서 자루가 쿵쿵내는 소리와 함께 길고도 느린 그의 집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갑자기 그는 무엇이간 당기는 기분을 느꼈고 그는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 그는 큰 도마뱀이 소금 꾸러미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도마뱀은 거북이를 노려보고는 "나의 소금으로부터 떨어져!"라고 거북이에게 소리쳤다.  "이 소금은 너의 것이 아니야!"라고 도마뱀에게 대답했다. "내가 길을 가고 있을 때 나는 길가에 이 꾸러미가 있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나는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고 따라서 그것은 나의 것이야"라고 도마뱀은 거북이에게 말했다.  "무슨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너도 알고 있듯이 그 꾸러미에 끈으로 묶어 내가 집어들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도마뱀은 계속해서 길위에 있는 그 꾸러미를 자신이 발견했으며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만약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장자에게 가지 않는다면 그 꾸러미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쌍한 거북이는 그렇게 하기로 동의하고 함께 법정에 있는 연장자에게 갔다.  첫 번째로 거북이는 그가 그의 다리가 짧아 항상 물건을 나를 때 짐을 끈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자 도마뱀은 길에 놓여 있는 그 꾸러미를 그는 발견했으며 그래서 그것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연장자들은 한참 동안 심각하게 그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가 도마뱀과 친척이었고 그들은 소금을 나누어주기로 했다.  결국 그들은 소금을 절반으로 나누었으며 그리고 절반씩 서로에게 나누어주었다.  거북이는 낙담했다.  왜냐하면 그 소금이 분명이 자기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낙담의 한숨만 내쉬고는 절반의 꾸러미만 들고나올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도마뱀은 즉시 가장 큰 보자기로 그 절반을 챙겼으며 불쌍한 거북이는 그의 절반의 보자기에서 그의 소금 대부분을 땅에 쏟고 말았다.  결국 거북이는 그의 소금을 다시 모으기 시도했다.  그의 손은 너무나 작았으며 보자기도 소금을 싸기에는 너무 작았다.  마침내 거북이는 단지 그의 몫의 일부만 가지고 낙담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반면 연장자들은 거북이가 가지고 가지 못한 모든 소금을 모두 모아서, 비록 더럽지만, 그들의 아내들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거북이의 아내는 그가 가져온 소금이 너무 적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했다 그리고 거북이가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그의 아내에게 말하자 그녀는 아주 분개했다.  길고도 느린 여행이 그를 지치게 했다.  그리고 거북이는 여러 날 동안 쉬어야 했다.  비록 거북이가 매우 느리지만 그는 또한 매우 꾀가 많기도 하다.  결국 그는 도마뱀을 혼내 주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아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도마뱀의 집으로 그의 눈을 끔뻑이며 터덜터덜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는 혼자서 날 개미를 먹고 있는 도마뱀을 보았다.  거북이는 도마뱀에게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다가가서는 도마뱀의 허리를 두 손으로 꽉 지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라고 거북이는 큰 소리로 외쳤다.  "너 지금 뭘 하고 있냐?" 도마뱀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나는 단지 길을 따라 걷고 있는 데 그곳에 무엇인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라고 설명했다.  "네가 지난번 나의 소금을 가로챘듯이 그래서 나는 그것을 집었고 그것은 지금 나의 것이 되었다".
도마뱀은 거북이가 그에게서 떨어지게 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거북이는 법정에 있는 연장자들에게 가자고 주장했다.  연장자들은 양쪽의 이야기를 뜯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우리가 공정해야 한다면 지난번의 소금 사건의 결정과 같아야 한다"라고 한 사람이 말하자, "맞다"하며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다.  "우리가 소금 꾸러미를 절반으로 잘랐듯이 도마뱀도 절반으로 잘라 절반은 거북이가 가져야 한다"라고 연장자들은 판결했다.  "그것이 맞는 말이다"라고 거북이는 대답하고 도마뱀이 도망가려하자 연장자의 허리에 있던 칼로 도마뱀을 반으로 절단했다.  그것으로 욕심 많은 도마뱀은 결국 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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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올로네(Lituolone)

2001. 11. 19. 21:44
옛날에 인간을 잡아먹는 캄마파라(Kammapa)는 괴물이 있었다. 그 괴물은 닥치는 대로 인간을 잡아먹음으로서 이 세상에는 나이 많은 한 여자만이 이같은 일들을 알고 두려움에 숨어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자의 도움없이 이 여자는 사내 애를 출산하였다.  그녀는 그의 아들 이름을 리투올로네라 이름지었다.  하루가 다르게 그는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가 캄마파라의 이야기를 듣고는 손에 칼을 잡고 그와 싸우기 위해 찾아 나섰다.  그 괴물은 그를 보자 단번에 삼켰다.  그러나 그 소년은 그 괴물의 뱃속에서도 무사했다.  리투올로네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칼로 괴물의 배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 괴물의 내장을 찢고 나가는 과정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 괴물의 뱃속에 잡혀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는 그들과 함께 괴물의 뱃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세상은 다시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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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야(Luyia) -- 케냐

2001. 11. 19. 21:43
처음에 남자와 여자는 오랜 동안 자식들이 없었다.  그들은 출산의 비밀을 알지 못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결합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어느 날 남자가 나무에 오르는 것을 보았고 그녀의 은밀한 부분을 보았다.  그래서 밤에 남자는 그녀와 결합하려 했다.  그러나 처음에 여자는 거부하였으나 결국 허락했다.  여자는 이 결합이 아주 큰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아들을 낳았고 그들 모두 대단히 놀라웠다.  그것이 그들 가족의 시작이었으며 그들은 아기를 얻게되는 비밀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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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과 번개(나이지리아)

2001. 11. 19. 21:42
오랜 옛날 천둥과 번개가 사람들과 함께 땅에 살고 있었다.  천둥은 엄마 양이고 번개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동물들은 사람들과 친하지 않았는데 이는 누군가가 번개를 성나게 하면 번개는 대단히 화가 나서 그가 지나는 곳마다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이같은 불길은 종종 오두막집과 옥수수 그리고 심지어는 큰 나무들까지 옮겨 붙게 한다.  때때로 그는 그의 불로 농장의 곡식들을 망치게 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기도 한다.  천둥이 그의 아들의 이같은 일을 알고는 가장 큰 목소리로 호통을 지르곤 한다.  자연적으로 이웃들도 처음에는 번개가 불을 놓음으로써 피해를 보고 그 후에는 항상 그의 어머니의 큰 소리로 인해 매우 화가 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같은 일들에 대해 왕에게 불평을 하였으며 드디어 왕은 번개와 천둥을 마을 가장 먼 곳에 살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마을 근처에 오지 않아야 하며 그리고 사람들과 섞여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일들은 지켜지지 않아 번개는 여전히 마을 길을 걷고 있는 보이는 사람들마다 괴롭히고 다투었다.  드디어 왕은 그들을 불러서 "나는 너희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우리 마을로부터 떠나야 하며 야생에서 살도록 하라.  우리는 너희들 얼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천둥과 번개는 왕의 말을 따랐고 그래서 그들은 마을을 떠났으나 마을 주민들에게 대단히 화가 났다.
그러나 여전히 번개는 추방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많은 분쟁을 가져왔다.  사람들의 농장과 심지어는 집까지 번개의 불길이 계속되었으며 종종 천둥의 큰 소리도 들리곤 해서 사람들은 다시 낙담했다.  왕은 그의 신하들과 모여 이 이들에 대해 논쟁을 한 끝에 하나의 계획을 만들었다.  왕은 천둥과 번개를 땅으로부터 완전히 추방하여 하늘에 살게 하는 것이었다.  왕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천둥과 번개를 하늘로 보내졌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로 인해 피해가 없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것 처럼 조용하게 지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때때로 그들의 분을 이기지 못해 땅에다 불을 보내며 그후 그의 어머니 목소리가 여전히 우르렁 거리며 그의 아들을 나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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