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사회인류학 14

아프리카인에게 민간신앙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아프리카인에게 민간신앙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장용규 아프리카는 종교적 역사가 깊은 땅이다. 에티오피아에는 기원 후 1세기경부터 아랍지역에서 들어 온 기독교가 정착돼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 Church)가 형성되었다. 동부아프리카와 북부아프리카에도 이미 기원을 전후로 해서 아랍지역의 이슬람 문명과 꾸준한 교류가 있었으며, 기원 후 7세기를 시점으로 빠른 속도로 이슬람교가 침투해 들어 왔다. 18세기에는 수많은 유럽의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밀려들어오는데 특히 남부아프리카에서의 파급효과가 커 기독교는 남부아프리카의 최대 종교로 성장해왔다. 이런 역사적 정황으로 볼 때, 북부와 서부아프리카에는 이슬람이, 중부와 남부아프리카에는 기독교가 크게 영향력을 행사..

아프리카 민족에 대한 단상

아프리카 민족에 대한 단상 장용규 민족은 이해집단이다. 민족은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유지해 오던 정체성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이해를 추구한다. 프레드릭 바쓰(Barth, F.)가 주장한 민족의 영역(boundary)과 개인 사이의 상호작용은 아프리카라는 맥락 안에서 의미가 있다. 바쓰는 한 민족이 타 집단과의 경계를 설정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문화적 상징들, 예를 들어, 종교, 정치, 언어, 역사 등이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관심을 보인다. 민족 정체성은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온 고정된 문화적 산물이라기보다는 융통성 있는 사회조직의 특성이라는 것이 바쓰의 입장이다. 특히 바쓰는 민족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로 ‘주어진 환경’에 ..

아프리카의 성과 결혼 : 신화와 현실

아프리카의 성과 결혼 : 신화와 현실 장용규 솔로몬의 지혜 남아공 유학시절, 학교 앞에서 같이 자취를 했던 분투(Buntu)라는 학생으로부터 들은 재미난 이야기 한 토막. 코사 ‘전통’에서 사춘기가 지난 사람들이 이성교제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지. 오히려 사춘기가 지났는데도 이성친구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 뭔가 부족한 바보가 아니고서야... 우리 또래에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거든. 남녀 간의 교제에는 일편단심이 통하지 않아. 뭐,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만날 수도 있고, 반대로 한 여자가 여러 남자를 사귈 수도 있는 거지.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야. 단 우리 ‘전통’은 남자와 여자의 이성교제는 허락하되 성관계는 엄격하게 금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남자와 여자가 사귀..

"가부장제적 제국주의"(Patriarchial Emperialism)-1

서양이 아프리카를 분할통치하면서 가장 먼저 도입해야 했던 것은 '통치이념'이었습니다. 특히 영국은 아프리카를 통치하기 위해 적지 않은 규모의 백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여기에 영국정부에서 파견된 식민관료, 선교사 등을 이주시켜 해당지역의 통치를 위임했습니다. 식민지배 초기의 영국인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출세의 길을 보장받지 못한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본국에서 교육(주로 선교사로서의 소양교육)을 받은 후 식민지에 투입되었지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데이빗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입니다. 리빙스턴은 스콧랜드(Scotland)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방직 공장에서 힘겨운 노동일을 해왔습니다. 신분상승에 야심이 차 있었던 어린소년은 미션학교에 들어가..

아프리카 만들기

오리엔트는 서양의 눈에 비친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타자(他者)"라는 정의를 내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리엔트에 대한 이 정의를 아프리카에 적용시켜 보려 합니다. 하나의 대상이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침묵과 복종을 필요로 합니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말을 빌리면 존재란 "자기를 본질적인 것으로 주장하고 타자를 비본질적인 객체로 설정함으로써 자신을 확립시켜 나가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서양이 스스로를 확립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서양에 대비시킬 수 있는 타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오리엔트와 아프리카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었습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아프리카는 서양의 어두운 심성을 표현하는 것이라 했고 프란츠 파농은 흑인은 "외부세계에 의해 화석화된 인종"이라고 단언한 것..

오리엔탈리즘과 상상의 공간 그리고 아프리카

오늘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아프리카"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워밍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의 문학 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책으로, 1978년에 출판한 이후 인문학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명저이지요. 국내에도 번역이 되어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의 문화를 이야기하는데 『오리엔탈리즘』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아프리카의 문화의 다른 모습을 읽어 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리엔탈리즘』에서 사이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오리엔트'라는 개념이 사실은 얼마나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 "만들어져" 왔는지를 방대한 자료를..

"사회인류학" 코너를 개설하며...

'사회 인류학'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장용규입니다. 가입도 늦었고 글도 늦게 올린 점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이후로는 적은 분량이나마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에 대한 약력은 홈피의 연구진 profile에 나와있습니다만 여기에서 간단히 제 소개를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와힐리어과를 졸업(87)하고 인도와 남아공에서 사회학과 사회인류학을 전공했습니다. 관심분야는 아프리카 종교와 종교인류학, 종족문제 등과 상징/인지 인류학 분야입니다. 이 분야에 관심있는 분들과 좋은 토론을 벌였으면 좋겠습니다. 대화라는 것은 쌍방향 의사소통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 혼자 떠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 코너의 방향은 제가 논문을 위해 수행했던 현지조사..

제4기 신생대의 아프리카

제4기는 플라이스토세(1만~160만 년 전)와 홀로세(또는 현세:1만 년 전~현재)로 나뉜다. 제4기에는 화산활동이 계속 일어나 사하라 중부의 아하가르 산맥과 티베스티 산맥의 기저부 암반이 솟아올랐다. 화산활동 결과 사하라 협곡은 깊이가 최고 200m에 달할 정도로 융기·함몰되었으며, 심해로부터 현무암이 솟아올랐다. 다우기(多雨紀)라 불리는 춥고 습한 시기에, 동아프리카 고산지대를 덮고 있던 빙하는 오늘날 그곳 정상에 남아 있는 빙하보다 두께가 900~1,500m 정도 더 두꺼웠다. 그외의 지역들로는 사하라 및 칼라하리 사막지대가 건조한 시기와 습한 시기를 번갈아 맞이했으며, 건조한 시기에는 사막지대가 인근 삼림지역까지 확대되었다. 유인원(인간에 가까운 영장류 동물)이 발견되는 가장 오랜 지층으로 에티오..

제3기 신생대(6,640만년전 ~ 현재)

제3기는 몇 개의 큰 지각변동으로 특징지어진다. 그결과 알프스 산맥이 형성되었고, 북아프리카 산맥이 솟아올랐다. 신생대 제3기에는 또 홍해 지구대가 형성되었으며, 제3기 말기에는 화산활동 및 지각 단층활동이 활발했다. 팔레오세(5,780만~6,640만 년 전)에 형성된 지층은 동물의 화석이 묻혀 있어 그 중요성이 높다. 이 시대의 해양지층에는 화폐석(육안으로 보이는 크기의 단세포 동물로 일종의 커다란 유공충)·노틸로이드(촉각이 머리에 달린 연체동물로 껍질이 있는 두족류)·섬게 등의 화석이 묻혀 있는데, 이들 화석은 북아프리카·서아프리카·사하라에서 발견된다. 북아프리카·서아프리카·인도양에 접한 아프리카 해안지역 일대에서는 에오세(3,660만~5,780만 년 전)의 화폐석과 올리고세(2,370만~3,660만..

중생대의 아프리카

트라이아스기· 쥐라기·백악기로 구분되는 중생대에는 태고적 바다들이 범람했고, 연구가치가 있는 화석들이 많이 함유된 거대한 지층들이 나타났다. 트라이아스기에 태고적 바다의 침전물은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남부, 이집트, 아라비아, 마다가스카르 섬 북부 및 탄자니아 일부에 남아 해양지층을 이루고 있다. 쥐라기의 침전물은 오늘날 리오데오로 강의 대서양 유역 및 세네갈에서 발견된다. 쥐라기 중기에는 인도양의 대범람으로 바닷물이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를 넘어 에리트레아까지 뒤덮었다. 이어 백악기에도 인도양의 범람이 몇 차례 있었다. 한번은 지금의 대서양과 인도양 해안이 형성되던 시기에 아프리카 적도 해안 일대가 범람했고, 다음에는 사하라·이집트·수단까지 인도양이 범람했으며, 그후 같은 지역에 또 1차례, 그리고 아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