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파르(Afar)족

2008. 7. 28. 12:29
 

아파르(Afar, Danakil)족은 에리트리아와 에티오피아에 있는 다나킬(Danakil) 사막과 지부티 근처에서 산다. 대략 70만명의 아파르 인들이 살고 있다.


1. 역 사

아파르족의 조상들은 에티오피아에 정착한 유목민들이었다. 하지만 1000년 전에 그들의 삶은 점진적으로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생활로 바뀌었고, 높은 고원지대에서 오늘날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여 내려왔다. 이 종족은 침입자들과, 이후 제국주의 세력, 그리고 정부에 저항하여 투쟁한 사실 때문에 그들의 역사는 자주 폭력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20세기까지 여전히 이웃하고 있는 부족들과 분쟁을 벌였다.

1975년에 아파르 민족주의자들의 반란이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되었다. 전 아파르족 슐탄에 의해 주도 된 반란이 실패한 이후 아파르 해방 전선(Afar Liberation Front ; ALF)이 창설되었다. 군사정부가 아사브(Assab : 현재의 아셉(Aseb)지역) 자치지역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르족은 군사정부에 의해 주어진 자치에 만족하지 않고 에리트리아가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할 당시인 1990년대 초반까지 저항이 계속되었다. 1977년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부티 인구의 절반이 아파르족이다. 아파르족과 소말리족사이에 충돌이 계속되어왔고 아파르 족의 저항과 반란은 3년 동안 계속되어 1994년에 끝났다.


2. 언 어

아파르(Danakil라고도 함)의 언어는 쿠시(Cushitic)어에 속한다.


3. 생 활

비록 오늘날 몇몇 아파르인들이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 : 에티오피아의 수도)와 지부티의 항구도시 등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아파르족은 아직도 계속 험한 사막지역에서 염소, 양, 소를 주로 기르는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불모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단으로 하나의 물웅덩이에서 다음 물웅덩이로 계속 이동한다. 건기가 계속될 때, 대부분의 아파르족들은 아와시(Awash) 강기슭으로 향한다. 이 강은 주변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강이기 때문에 그들은 가장 좋은 장소를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신들이 차지한 자리를 지킨다. 아와시 강은 산에서 발원하고, 아주 풍부한 양의 물을 운반한다. 하지만, 이 지역의 온도가 매우 높아서 바다까지는 흘러가지 못하고, 아베(Abbe) 호수에서 끝난다.

건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가혹한 시기이다. 음식과 곡식이 바닥난다. 몇몇 아파르인들은 경작할 수 있는 땅을 찾아 아파르인들의 수도로 여겨지는 아사이타(Asayita)로 몰려든다.

11월에 짧은 우기가 되면, 대부분의 아파르인들은 모기와 홍수를 피해 높은 지대로 이동한다.

다른 유목민들처럼, 아파르인들은 늘 집과 침대를 가지고 다닌다. 이러한 도구들은 낙타를 이용해 나른다. 아파르인들의 집은 아리(ari)라고 불리는데, 몇 개의 잘 휘어지는 유연한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돗자리로 지붕을 덮어 만든다. 아리는 강렬한 태양을 막아줄 수 있는 있다. 하나 또는 두 개의 아리로 만들어지는 부라(burra)라는 마을(camp)에 상당히 긴 기간동안 있게되면 아파르인들은 아리안에 사용할 침대를 만든다. 침대들도 잘 휘어지는 유연한 나무막대로 만들고 돗자리를 펼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침대는 잠을 자기에 시원하고 또 편안하다.

여자들은 마을을 돌봐야하는 책임이 있다. 그들은 집과 침대를 만든다. 마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아이들과 가축들을 돌보는 책임도 있다. 우유와 가축의 가죽은 아파르인들의 자급자족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 곡식이나 야채로 바꾸는데 쓰이기도 한다. 물건을 사고 파는 두개의 중요한 시장은 에티오피아 내륙지방의 센베테(Senbete)와 바티(Bati)다.


4. 사회구조

아파르족은 공통의 조상을 갖는 확대가족이 모인 씨족의 형태로 구성되어있다. 이 씨족집단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붉은 색(reds)'이라는 뜻의 아사이마라(asaimara : 붉은색) 그리고 ’흰 색(whites)'이라는 뜻의 아도이마라(adoimara), 혹은 하층민으로 구분된다. 아사이마라는 정치적 주도권을 가지고 있고 아도이마라는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이 속한다. 

부계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아버지로부터 권한과 재산을 상속받는다. 키와 육첵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는다고 생각한다.

아파르의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통과의례를 겪는다. 여자아이들의 통과의례인 할례는 더 위험한 수술이고, 그에 대한 논쟁도 훨씬 치열하다. 남자는 통과의례의 고통을 참음으로써 용기를 검증 받는다. 성년이 되면, 남자는 젊은 여성을 선택하여 결혼할 수 있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종족 안에서ㅡ되도록이면 사촌을 선택ㅡ배우자를 찾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가정과 종족을 중시하는 이러한 풍토는 강력한 충성심을 만든다.

과거에 아파르 사회는 여러 술탄들에 의해 조직되고 각각의 술탄이 지배하는 사회는 여러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각의 술탄들은 다르다르(dardar)라는 행정관료를 두고 통치를 원활히 하였다. 오늘날 아파르 족은 에티오피아 연방의 반자치지역에 살고 있다.


5. 문화와 종교

종교 : 아파르족은 10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하여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이슬람교는 지금도 아파르 족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아파르 족은 이슬람을 자신들의 신에 기반한 고유의 문화와 종교에 따라 변화시켜 받아들였다.

: 전통적인 아파르 옷은 허리에 두르고 오른쪽 엉덩이에 묶는 사나필(sanafil)이다. 과거에는 남자들은 질레(jile)라고 불리는 38cm에 이르는 긴 단도를 차고 다녔다. 남자들의 옷은 염색하지 않고, 여자들의 사나필은 미모사 나무껍질로 만든 염료를 써서 갈색으로 염색한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갈색 옷을 수입된 원단으로 만든 밝은 원색의 옷으로 대체하고 있다. 서구의 옷들은 많은 아파르 족들이 선호하는데, 특히 도시에 살고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결혼한 아파르족 여인은 전통적으로 검은색 천으로 만든 머리 수건을 두르는데 샤스(shash) 또는 무샬(mushal)이라고 불린다. 대체로 약 15세가 되면 아파르족 남자들은 성인식을 치르는데 그들의 머리 양식을 가지고 구분한다. 성인식을 치룬 아파르족 남자들은 짧게 자른 단정한 머리양식을 만든다.

아파르 족들은 소금을 사막에서부터 채취하여 사용한다.


아파르(Afar)족의 간추린 역사

1000년대까지 아파르 족들이 지금살고 있는 땅에 정착.

1200~1600년대 아파르 무슬림들이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함

1884년 프랑스령 소말리(French Somaliland ; 지금의 지브티(Djibouti))로 편입됨.

1935~1941년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에 의해 정복당함.

1961년 에리트리아인들이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기위해 투쟁을 시작함.

1967년 프랑스령 소말 리가 프랑스령 아파르와 이사스(French Territory of the Afars and the Issas)로 명칭이 바뀜.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에디오피아의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1세(Haile Selassie 1)를 몰아냄.

1975년 아파르 해방 전선(Afar Liberation Front ; ALF)가 창설됨. ALF는 에티오피아와 지부티의 국경지역에서 활동함.

1977년 지부티가 독립함. 멩기스투 할리에 마리암(Mengistu Halie Mariam)이 에티오피아의 통치자가 됨.

1979년 지부티에서, 아파르족이 비합법적인 친민주주의적 운동(prodemocracy movement)을 전개함.

1980년대 혹독한 가뭄이 들어 에티오피아에 기근이 찾아옴.

1981년 지부티가 일당제(one-party)를 채택함.

1987년 에티오피아에서, 아파르 자치지역이 만들어짐.

1991년 멩기스투가 권력을 잃고 내전이 끝남. 지브티에서 에리트리아 해방운동으로 약 100여명의 아파르인들이 체포됨. 이파르인들이 반정부 활동을 개시함.

1992년 불합리한 다당제 선거가 지브티의 일당제를 끝냄.

1993년 에리트리아가 공식적으로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함.

1994년 아파르 주(Afar state)가 에티오피아에 만들어짐. 평화회담이 열려 지부티의 아파르족 반란이 끝남.

1995년 300명의 아파르 반란군이 지브티 군에 합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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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 Icon
    이건 아닌데

    정보가 잘못되었으니 수정 바랍니다.
    지부티로 이주 해 간게 아니라

    에리트리아 지부티 에티오피아에 걸쳐 살고있는 지부티족은 원래 거기 살았지만 식민지시절 나라를 갈르면서 3나라에 걸쳐 살게 된겁니다.

    님이 올리신 자료엔 뭔가 내용이 다 틀리군요,.ㅡ_ㅡ 삭제를 하세요 그냥..

  2. Blog Icon
    엔젤

    이건 아닌데 분 뭔가 내용이 다 틀리다고 하신분의 지식을 올려주시죠. 열심히 올리신 분에게 그냥 삭제하라니요
    댁이 정확하게 올려보세요. 더 잘 아신다면....

  3. Blog Icon
    우분투

    저런 식으로 예의없이 댓글다는 사람의 글이야말로 당장 삭제하시길 바랍니다. 엔젤님 말씀대로 자신이 제대로 글 하나 올리지 못하는 주제에 좋은 사이트에 흙탕물만 뿌리고 있군요.

  4. Blog Icon
    홍콩에서

    그러게요. 다른 정보가 있다면 그냥 알려 주시지, '이건 아닌데'님의 말이 너무 까칠하군요.

  5. Blog Icon
    만사무사

    정보가 잘 못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우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이 정확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근거와 자료에 의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인지 설명해주시면 더 연구하여 수정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아프리카를 아주 많이 다니면서 학자들과 만나서 아프리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논란이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6. Blog Icon

    비밀댓글입니다

  7. Blog Icon
    전혜원

    윗 댓글을 적은 사람입니다. ^^
    비밀글 체크를 했더니, 제가 쓴 글을 확인을 못하게 되어서요.ㅠㅠ
    답변에 관해서는 제 메일(jhw1203@naver.com)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1. 아촐리(Acholi)족

2008. 7. 28. 12:22
 

아촐리족은 수단 남부, 우간다, 케냐 북서부의 국경선 지역에서 산다. 그들은 수 세기 전에 고향인 수단 남부로부터 동부아프리카로 이주한 로(Lwo)어를 사용하는 조상들의 후손들이다. 아촐리족은 17세기에 들어와 파티코(Patiko)어 사용자들로 최초로 지금의 아촐리랜드(Acholiland)로 불리는 지역으로 이주한 로어 조상들, 아테커르(Ateker)어 사용자들로 이곳에 일찍 이주하여 살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서쪽에서 온 수단어 사용자들을 흡수하여 통합됨으로서 현재의 종족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19세기에 노예침략자들이 동쪽해안으로부터 아촐리 땅에 도착하였고 아촐리족은 노예무역으로 크게 고통 받았다.

다른 나일족과 마찬가지로 아촐리족은 목축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대규모로 소를 방목하는 사회였으나 최근에는 농장이나 도시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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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부갈(Abgal)족

2008. 7. 28. 12:20
 

아부갈족은 이사(Issa)족의 가장 하위종족집단으로 약 400,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이사족은 아프리카의 뿔 지역인 에티오피아, 에리트리아, 그리고 소말리아에 살고 있는 소말리 종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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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a Musa 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소말리아, 아부갈(Abgal), 아프리카의 뿔(The Horn of Africa), 에리트리아, 에티오피아, 이사(Issa)

9. 아베(Abbe)족

2008. 7. 28. 12:18
 
    아베(Abbe, Abbey, Abé)족은 약 2만명 정도로 대부분이 코트디부아르의 남동쪽해안에 분포되어 있다. 아베족들은 석호 집단(Lagoon cluster)사람들로 불리고 있으며 아칸(Akan)족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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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바자(Abadja)족

2008. 7. 28. 12:16
   
    아바자족은 나이지리아의 이보(Igbo)족 하위종족집단이다. 이보족은 나이지리아 남동쪽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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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바다(Ababda) 족

2008. 7. 28. 12:15
 

아바다(Ababda, Ababa)족은 수단의 베자(Beja)족의 하위종족집단이다. 대부분의 아바다족 사람들은 수단의 홍해(Red Sea)연안에 살고 있다. 전체 종족 수는 약 20만이상으로 파악되고 있다.

Mansa Musa 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베자(Beja), 수단, 아바다(Abada)

6. 기타 아프리카어

2008. 7. 28. 11:56
 

비 토착적인 요소들로부터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아프리카인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들은 아프리카너(Afrikaners), 칼라드(Coloureds), 스와힐리(Swahili), 미국계-라이베리안들(American - Liberians)이다.

아프리칸스(Afrikaans)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너의 기원은 인도로 가는 항로의 기항지를 케이프타운(Cape Town)에 건설하기 위해 165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파견한 직원들이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적은 숫자의 네덜란드인과 다른 유럽인들 그리고 대부분의 프랑스 위그노 교도(Huguenots)들이 1652년 이후 수십년에 걸쳐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주로 농사에 종사했던 이들을 ‘농사꾼’이라는 뜻의 보어(Boers)인들이라고 불렀고 케이프타운 부근의 땅이 점차로 부족해짐에 따라 그들은 코이코이와 산(San)족이 살고 있는 내륙지역으로 이주와 정착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팽창은 그들을 마침내 18세기 초에 반투족인 코사(Xhosa)족과 조우하게 했고 무려 100여 년 동안이나 계속된 일련의 국경 전쟁들을 불러 일으켰다.

반면에 영국인들은 케이프에서 네덜란드인들을 정복하였다. 영국의 적대적인 조치와 외국인으로서 대우하는데 대한 불만으로 수천명의 아프리카너들은 1830년대 초에 대이주(Great Trek)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북쪽으로 내륙 깊숙이 전진하여 오렌지(Orange) 강을 가로질러 북쪽의 트랜스발(Transvaal)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 지역은 샤카 줄루에 의한 음페카네(mfecane)로 아프리카인 인구가 적은 상태였고 목축을 위한 좋은 초원이 풍부하게 있었다.

남아공의 칼라드(Coloured)라 불리는 유색인종 또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케이프 타운의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아프리카 다른 지역으로부터 노예를 수입했고 인도와 인도네시아 섬에서도 노동력이 수입되었다. 이들 사이에 혼혈이 일어났는데 예를 들어 유럽인과 노예 사이에, 유럽인과 코이코이족 사이에, 노예와 코이코이족 사이에서 혼혈이 일어났다. 이들중 일부는 리호보스(Rehoboth)나 그리콰(Griqua) 같은 새로운 인종집단으로 발전했으나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너의 문화를 따르고 있었고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신봉하고 있었다.

스와힐리는 반투 언어이고, 기원후 1세기 동안 케냐의 타나(Tana)강 하류 지역에 중심을 둔 조그마한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이 마을들 중의 몇 개는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온 상인들과 무역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수세기 동안 계절풍을 이용해 동아프리카와 페르시아 만 사이를 항해하며 교역에 종사했다. 9세기와 12세기 사이에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상업 도시문명을 발전시켰다. 얼마 안가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스와힐리(Swahili)어라고 알려진 새로운 언어를 발전시켰다. 이 이름은 아랍어에서 왔고 “해안의 사람들”로 번연된다.

파테(Pate), 라무(Lamu), 말린디(Marindi), 몸바사(Mombasa), 그리고 랍타(Rhapta)같은 도시들은 12세기부터 15세기 걸쳐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포르투갈 인들의 간섭과 내륙지역의 무역이 불안정하게 되자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상아와 노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1832년에 잔지바르(Zanzibar)에 수도를 정한 오만(Oman)의 슐탄에 의해 다시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스와힐리어는 스와힐리는 중요한 상업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교통어(Lingua franca)가 되었다.

시에라 레온(Sierra Leone)의 크레올(Creoles)어는 프리타운(Freetown)에 해방된 노예들이 이곳에 이주하여 만들어진 언어다. 1787년에 처음으로 이곳에 해방된 노예들이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미국의 독립전쟁시기에 영국으로 도망간 흑인들이었다. 자메이카(Jamaica)에서 온 마룬(Maroons ; 도망 온 노예들) 같은 다른 흑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공헌은 영국 함선에 의해 포획된 노예선의 해방된 노예들이 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영국은 1833년에 영국에서 노예제도 금지하고 서아프리카의 해안을 순찰하는 함대를 운영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통해 이주하여 정착한 사람들이 크리오(Krio)라고 불리는 그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었고 영국의 문화에 기반을 두고 발전시켰다. 이들은 프리타운에 근거지를 두고 주로 무역에 종사하면서 이익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해안 어디든지 이주하였다. 

라이베리아(Liberia)도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주로 이주하여 정착하여 미국계-라이베리아인(Americo-Liberians)들이 살게 되었다. 미국 식민지 사회(American Colonization Society)의 도움으로 1822년 소규모의 해방된 노예들이 메주라도 곶(Cape Mesurado)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정착지를 몬로비아(Monrovia)라 불렀다. 이 사회는 점점 더 성장하여 1839년에는 다른 정착민들과 더불어 라이베리아 연방(Commonwealth of Liberia)이 형성되었고 1848년에 는 독립을 하였다. 미국계-리베리아인들은 미국의 헌법을 본 따서 그들의 헌법을 만들었고 침례교회의 영향아래 강력한 미국계 문화를 발전시켰다.

Mansa Musa 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미국계-라이베리안들(American - Liberians), 스와힐리(Swahili), 아프리카너(Afrikaner), 칼라드(Colureds), 크레올(Creoles), 크리오(Krio)

5. 니제르-콩고 어족(Niger-Kordofanian Language Family)

2008. 7. 28. 11:54
    나이저 콩고 어족(Niger-Congo Family)은 나이저 코르도판 어족(Niger-Kordofanian Language Family) 또는 콩고 코르도판 어족(Congo-Kordofanian Family)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서아프리카의 세네갈로부터 동부지역인 케냐와 탄자니아 그리고 남부지역의 남아공에 이르기까지 가장 방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주로 반투어로 분리되는 언어들이 포함된다. 수단의 코르도판 지역의 언어를 제외한 나머지 언어를 나이저-콩고어족이라 칭하고 이는 다시 6개의 하위 어군으로 분류된다. 대륙서쪽으로부터 차례로 열거해보면 월로프(Wolof), 플라니(Fula/Fulani)를 포함하는 西대서양(West-Atlantic)어군, 밤바라(Bambara), 수수(Susu) 등의 만데(Mande)어군, 모네(Mone), 구루마(Gurma), 도곤(Dogon), 카브레(Kabre)등의 볼타(Voltaic)어군(혹은 구르(Gur)어군), 네 번째로 가나, 나이지리아에서 사용되는 아산티(Ashanti), 아칸(Akan), 에베(Ewe), 요루바(Yoruba), 이보(Igbo)등의 언어를 포함하는 꾸아(Kwa)어군, 중앙아프리카아의 참(Cham), 상고(Sango), 음바(Mba), 잔데(Zande)어등으로 대변되는 아다마와 우방기(Adamawa-Ubangi)어군, 끝으로 두알라(Duala), 루안다(Ruanda), 스와힐리(Swahili), 쇼나(Shona), 헤레로(Herero), 줄루(Zulu) 등 400여 반투어를 포함하는 베누에 콩고(Benue-Congo)어군으로 이 어군만으로도 흑아프리카 중남부 전역을 차지하고 있다.

첫째로 서대서양(West-Atlantic)어군은 아프리카 대륙 서쪽 끝 대서양해안 연변과 그 배후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북으로는 모리타니아, 세네갈로부터 남으로는 라이베리아에 이르는 지역에서 사용되며 약 45개 언어가 속한다. 플라니(Fula/Fulani ; 800만정도 사용, 코카서스 인종에 가깝다.), 세레르(Serer ; 30만), 그리고 월로프(Wolof ; 120만)어가 속한다. 둘째는 만데(Mande)어군으로 말리를 중심으로 세네갈, 기니, 시에라 레온, 라이베리아, 상아해안, 부르키나 파소등지에 분포되어 있다. 가나, 말리, 밤바라(Bambara), 말린케, 디올라, 수수(Susu)등의 언어를 모두 만딩고어라고 한다. 만딩고 어는 약 600만명의 화자를 가지고 있다. 셋째는 구르(Gur)어군 또는 볼타(Voltaic)어군으로 부르키나 파소, 가나, 토고, 상아해안, 말리 및 베넹에서 사용되고 있다. 모두 53개어로 약 550만의 화자가 사용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모네(Mone)어는 모시왕국에서 사용된 언어다. 구르마(Gurma ; 13만), 세누포(Senufo), 도곤(Dogon), 그리고 카브레(Kabre)어가 속한다. 넷째는 꾸아(Kwa)어군으로 꾸아라는 단어는 트위(Twi)어의 ‘사람, 인간’의 의미를 지닌 꼬아(kóa)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서부 기니해안으로부터 상아해안, 가나, 토고, 베넹을 거쳐 동부 나이지리아에 이르는 지역으로 해안으로부터 약 400km의 폭에 걸쳐서 분포되어 있다. 트위(Twi), 판테(Fante), 아샨티(Ashanti), 아칸(Akan), 에웨(Ewe), 가(Ga), 요루바(Yoruba ; 1986년 Wole Soyinka ‘The interpreters’로 노벨상 수상), 에도(Edo), 누페(Nupe), 이보(Igbo ; Chinua Achebee, 'Things fall apart', 'Arrow of God')어 등이 속한다. 다섯째, 아다마와 우방기(Adamawa-Ubangi)어군으로 서부 나이지리아로부터 북부 카메룬, 차드남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북부 및 수단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한다. 참(Cham), 상고(Sango ), 음바(Mba), 잔데(Zande), 그바야(Gbaya)어가 속한다. 여섯째로 베누에 콩고(Benue-Congo)어군으로 약 400여개의 반투어가 이에 속하며 10만 이상의 언어는 50여개, 100만 이상의 언어는 10여개이다. 두알라(Duala ; 카메룬), 무에네(Myene ; 가봉),  뇨로(Nyoro ; 우간다), 키쿠유(Kikuyu ; 케냐), 스와힐리(Swahili ; 케냐 ; 탄자니아), 키콩고(Kikongo ; 잠비아), 벰바(Bemba ; 잠비아), 야오(Yao ; 말라위, 모밤비크, 탄자니아), 헤레로(Herero ; 나미비아), 쇼나(Shona ; 짐바브웨), 츠와나(Tswana ; 보츠와나와 국경을 맞댄 남아공), 줄루(Zulu ; 남아공), 소토(Sotho ; 남아공), 페디(Pedi ; 남아공), 코사(Xhosa ; 남아공), 팡(Fang ; 카메룬), 루안다(Ruanda ; 루안다), 루간다(Luganda ; 우간다), 쵸크웨(Chokwe(구자이레, 앙골라, 잠비아)어 등이 속한다.

니제르 콩고 언어들은 많은 언어들이 포함되어 있고 다른 어족들보다 더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니제르 콩고 언어들은 지금의 나이지리아(Nigeria)와 카메룬(Cameroon)의 사바나(savanna)와 열대 우림지역에서부터 시작된 이주와 정착으로 인해 현재의 분포지역을 갖게 되었다. 서쪽으로의 이주는 니제르와 세네갈 강의 위쪽 지역까지 이르렀고 이 지역에서 그들은 포니오(fonio)와 아프리카 쌀에 기초한 농업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곳에서 그들은 흩어져 있는 나일-사하라 어족 공동체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들은 기원전 마지막 세기에 농업, 고기잡이, 그리고 가축 돌보기 등과 소규모의 무역을 기반으로 한 국가를 가지고 있었던 원형 만데(proto-Mande)어 화자들이었다. 가장 잘 알려진 장소는 농업적으로 가장 비옥한 곳이었던 니제르 강 삼각주 내륙 내에 위치한 젠노-제노(Jenno-jeno)였다. 이 곳은 큰 교역망의 일부분으로 돌, 철, 구리 제품을 교역하였다.

젠노-제노와 다른 중심지들은 왕국과 제국이 출현했던 곳이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그 첫 번째는 가나(Ghana)로  만데어족 중 소닌케(Soninke)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던 곳으로 이미 18세기 말 무슬림 방문자에 의해 잘 묘사되었다. 가나는 소금과 금의 무역을 관리함으로 부유해졌다. 소금은 서부 사하라(Western Sahara)에서 생산되었고 소금이 부족한 서부 아프리카의 사바나와 우림지역에 공급되었다. 금은 이와 반대로 밤북(Bambuk)으로 알려진 세네갈(Senegal) 강의 상류지역에서 생산되었다. 이러한 상품들은 카르타고와 로마시대부터 존재한 사하라 횡단 무역로를 따라서 교역되었고 가나 왕조에서 자시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북부 아프리카를 아랍이 정복함에 따라 사하라를 따라 금을 운반하는데 노예들이 동반되었다. 국내의 노동력으로 그리고 군인들로 이용되었으며 이 지역에서는 물로 남서 아시아 지역에서 그 가티가 높게 평가되었다.

가나의 계승자는 말리(Mali)였다. 또 다른 만데족인 말린케(Malinke)족에 의해 세워졌으며, 말리는 14세기 중반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말리의 지도자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여 무슬림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팀북투(Timbuktu)와 젠네(Djenne)를 이슬람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모든 성직자들과 학자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 도시들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서부 아프리카를 통과하여 북쪽 지역으로 무역이 활발하게 발전하였다. 왕가라(Wangara), 디율라(Dyula), 마르카(Marka), 그리고 야레(Yarre)족 등이 말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말리의 영토는 세네갈 강과 니제르 강의 중심지로 뻗어나갔고, 니제르 강의 연안을 넘어 동쪽과 사하라의 북쪽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많은 다른 종족들이 합류하게 되었고 14세기 말에는 심각한 파벌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민족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말리는 점차 그 영역을 잃어갔고, 마침내 16세기 말에 멸망했다. 송가이(Songhai)는 말리가 통치하던 지역에서 출현한 국가였다. 송가이 제국이 힘과 이슬람의 명성은 말리보다 훨씬 더 컸으나 얼마 안가 내부의 파벌주의에 의해 힘겨운 상태가 되었다. 1590년대, 모로코(Morocco)의 술탄(Sultan)에 의해 침입을 받았는데 그는 사하라 무역로에 공급되는 금 산지를 통제하고자 했다.  송가이 군대들은 그들의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 송가이 화살들과 창들은 모로코 군대의 화승총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송가이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작게 분열되었고 인종적 집단에 따라 나뉘어졌다. 그중 하나는 타크루르(Takrur)인데, 세네갈 강의 저지대와 중간지대에서 발전하였다. 이 국가는 니제르 콩고 어족의 대서양 어군의 하나인 투콜로르(Tukolor) 어 사용자들에 의해 세워졌으며 국가 종교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하라 남부의 첫 정치공동체가 되었다.

풀베(Fulbe) 또는 풀라니(Fulani)족은 소를 기르는 목축 생활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기원후 1000년 이전에 세네갈 강 계곡 지역에 다다른 베르베르족 유목민들과 접촉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처음에 타크루르의 일부로서 풀베족은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의 길은 푸타 잘론(Fouta Djallon)의 고지대로 향하는 길이었고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던 농업을 하던 다얀로케(Dyanlonke)족들과 조우하여 목축의 권리와 농산물을 교환하는 대가로 가축을 공급하였다. 개척된 또 다른 길은 니제르 강을 따라서 이어졌는데 말리와 송가이 제국에 도달하였다. 이곳에서도 그들은 농부들과 교환 관계를 성립시켰고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하였으며 결국 하우자랜드(Hausaland)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들이 이동하는 동안 풀베족의 일부는 도시에 정착하고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이슬람은 목축업자들을 개종시켰고 하우사족들을 개종시켰다. 이 두 공동체의 강력한 동맹은 18-19세기에 걸쳐 서부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되는 것을 도왔다.

송가이의 몰락 이후 지역적으로 중요해진 다른 지역 정치 공동체는 모씨(Mossi), 맘프룰리(Mampruli), 다곰바(Dagomba), 월로프(Woloff) 그리고 세레르(Serer)족 등이 있다.

니제르 콩고 지역의 통합과 확장으로 생긴 또 다른 지역은 니제르와 베누에(Benue)강의 합류지점에 있는 사바나와 열대 우림 기후의 경계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5000~4000년 전 사이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수렵, 채집, 그리고 고기잡이를 하였으며 얌과 기름야자를 기르기 시작했다. 인구가 성장하게 됨에 따라 크와(Kwa)와 베누에 콩고(Benue Congo)어군이 출현하였다. 크와족의 구성원들은 서쪽으로 이주하여 반다마(Bandama)강에 이르렀고 만데어 화자들과 경계를 맞대게 되었다.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몇몇 지역들은 인구 밀집지역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일부는 나이지리아의 크와 중심지역과 가까이 있었다. 그 중 하나의 지역은 이그보-우크우(Igbo-Ukwu) 고고학 발굴 지역으로 현재의 오니차(Onitsha)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기원후 9세기 무렵에 큰 규모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지중해보다 더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전해진 물건들이 발견되었다. 이그보(Igbo, Ibo) 사람들의 고향이었고 다음 세기에 남동부 나이지리아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현재 요루바(Yoruba)족은 이페(Ife)가 조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페는 기원 후 10세기 말에 정착이 시작된 도시이다. 이곳은 명백히 요루바족이 공동체가 발전하고 북쪽과 남쪽에 위치한 다른 도시들에 전략적 거점으로서 역할을 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루바족은 이 시기에 크게 번성했고, 많은 도시들과 지방 왕국들이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상아, 구리, 철, 그리고 가죽으로 만든 질 높은 제품들이 생산되었다.

대략적으로 보아서 이그보-우쿠웨(Igbo-Ukwu)와 이페가 출현했던 동시대에 에도(Edo)화자들에 의해 세워진 베닌(Benin)이 출현했다. 다른 인종집단들과는 달리 이 국가는 주위의 정착지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15세기 초에는 더 넓은 베닌왕국으로 발전하였다. 하우사(Hausa) 도시국가, 그리고 송가이에 이르는 무역로는 베닌왕국이 이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왕국으로 거듭나게 했고 그 이후 몇 세기 동안 계속된 경제적 우위를 장악했다.

더욱 더 서쪽으로 네 번째 크와 집단이 가나의 북부와 중부 지역에서 발전했다. 11세기에 크와 어군의 아칸(Akan)족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이 살았다. 그들은 가나와 말리에 금과 콜라 열매들의 교역으로 연결되었으며 자원들을 찾아 남쪽지역의 열대우림기후지역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어 나갔다. 16~17세기에 작은 지방의 국가들이 출현했지만 아산테(Asante)왕국에 의해 정복되었다. 쿠마시(Kumasi)를 중심으로 아산테 왕국은 강력한 왕국으로 발전하여 갔다.

16세기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서부 아프리카의 인구발전은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인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향을 받았다. 포르투갈에 의해 초기에 이루어진 노예무역은 월로프, 세레르, 마린케족이 살고 있던 세네감비아(Senegambia)해안을 따라 이루어졌다. 가장 중요한 노예거래 장소는 고래(Gorée)섬이었다. 포르투갈은 또한 아칸족 상인들과 무역을 했는데 금의 저장소로 엘미나(Elmina)에 지어진 요새를 주요 노예 거래소로 이용하였다. 포르투갈은 베닌 사람들을 노예로 공급하여 이익을 남기려고 시도했지만 통치자들이 이익을 많이 남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자 노예들을 노동력으로 이용하여 원활하게 노예무역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카리브해(Caribbean)과 브라질(Brazil)에서 플랜테이션에 기초한 새로운 경제체제를 도입함에 따라 16세기에 들어와서는 노예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노예무역은 17세기에도 계속 성장하였으며 18세기에 들어와서는 최고조에 달해 한 해에 평균 4 만 명의 노예들이 선적되었다. 노예무역의 감소는 카리브해 연안의 플랜테이션 농업에 변화가 일어났고 특히 영국에서 노예 폐지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1810년대에 들어와 노예무역의 수가 현저하게 감소했고 1800년대 중반에 서부 아프리카의 노예무역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대서양을 노예무역을 통해 얼마나 실려갔는지는 통계가 아직까지도 정확하지 않다. 약 1000만~1500만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고 서아프리카에서 약 절반이 넘는 인구가 유출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가장 큰 인구유출 지역은 지금의 베닌에서 칼바(Calbar)의 해안과 니제르 강 삼각주의 동쪽지역이었다. 노예무역의 부정적 영향과 충격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전반적으로 노예무역이 이루어지던 시기에는 인구성장이 정체되어 있었다. 노예를 포획하였던 측은 인구와 지역적 영향에 있어서 더 조직화 되어있고 군사적으로도 발달되었으며, 막강한 정치력을 가졌다. 이그보, 요루바, 아산테는 노예무역으로 성장했던 국가들이었다. 노예무역에 참여하여 강력한 왕국으로 발전했던 국가는 폰(Fon)족이 설립한 다호메이(Dahomey) 왕국이었다. 18세기 말까지 요루바족이 세운 오요(Oyo)왕국과 경쟁적인 관계였다.

노예로 빼앗긴 작은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하였다. 특별히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소위 말해서 중부 지대(middle belt)였는데, 하우사와 모시(Mossi) 왕국과 같은 내륙지방과 해안의 왕국들과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은 비교적 낮은 인구밀도를 보이고 있다.

노예무역으로 인한 정치와 경제분야의 영향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좀더 권위적인 정권이 출현했고, 총기를 갖춘 군사력을 보유하였으며 제조업과 농업이 모두 쇠퇴했다. 그들은 이러한 혼란 때문에, 노예들을 거래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노예를 포획하거나 침입하여 약탈하였다. 

베누에 콩고(Benue Congo)어군의 발전은 반사적으로 얻는 이익이 더 많았다. 이것은 대부분 반투의 이주에 기인했고, 이들은 실제 대륙의 절반정도에서 동쪽과 남쪽으로 그들의 말을 가져왔다. 이들의 이주는 대부분 반투(Bantu)족의 이주로 이루어졌는데 아프리카 대륙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동부와 남부로 이주와 정착이 이루어졌다. 이주는 약 5000년 전에 크로스 강 계곡(Cross River valley) 근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고기잡이와 사냥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얌과 다른 작물들을 경작하기 시작했고, 결국 인구의 성장을 가져와 새로운 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몇몇 집단은 습기 있는 늪지대의 동쪽으로 이동했으며, 적도의 열대우림기후의 북쪽 가장자리까지 다다랐다. 3000년 전에 이들은 알버트(Alvert), 에드워드(Edward), 그리고 빅토리아(Victora) 호수의 비옥한 곡창지대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새로운 반투인구가 핵심적으로 형성되었으며, 더욱 활발한 이주와 정착을 하게 되었다. 일부는 동아프리카로 들어갔으며 다른 사람들은 기원후 1세기 경에는 남아프리카에 도착하였다.

분명히 반투족의 동쪽이주와 정착은 또 다른 나이저 콩고 어군의 일파인 우방기인(Ubangian)들의 이주와 정착을 동시에 발생시켰다. 그들은 반투족이 경험했던 유사한 식량경제체제를 시작했지만 북쪽에 살고 있던 중부 수단(Central Sudanic groups)과의 접촉으로 곡물과 가축을 기르고 있었다. 초기의 우방기인들은 적도 북쪽에서 세력을 규합하였고 후에는 잔데(Zande), 망베투(Mangbetu), 은자카라(Nzakara)와 같은 집단으로 분화하여 발전하였다.

또 다른 반투 이주자들은 좀 더 남쪽에 있는 적도의 열대우림지대로 이동했다. 강의 계곡들을 따라 그들은 작물들을 위한 비옥한 토양들과 풍부한 고기잡이를 할 수 있는 지역, 그리고 사냥하기에 좋은 장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러한 이주와 정착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정착하여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며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선주민인 피그모이드(pygmoid)와 조우하게 되었다. 이러한 접촉은 대부분 적대적 행위가 아닌 숲의 생산품과 농산물과 제조품을 교환하는 협력적인 관계가 출현하였다. 이 결과 피그모이드의 언어는 반투족의 언어로 대체되었고 점점 더 늘어나는 반투족의 성장은 피그모이드들의 활동영역을 좁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음부티(Mbui)와 트위(Twi)와 같은 소수의 피그모이드 집단만이 소수로 남아있다.

반투족의 이주와 정착이 성공한 주요 요인은 철기 도구의 사용이었다. 철기의 사용은 보다 더 많은 땅을 개간하고 경작할 수 있게 했고 강력한 화살촉과 창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철기제조기술의 전파에 대한 기원은 두가지로 나누어 설명되고 있다. 하나는 나이지리아에 있는 조스 고원(Jos Plateau)의 주변에 있는 타루가(Taruga)다. 발견된 용광로와 철광 침전물은 기원전 400-700년 사이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철기제조기술이 이곳에서부터 반투족이 이주한 지역을 포함하여 모든 지역으로 확대되었다고 추측되어진다. 두 번째는 빅토리아 호수 지역에 있는 부하야(Buhaya)에 있다. 타루가와는 어떠한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그러한 발전이 독자적인 발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열대우림지역에서 출발한 반투족의 이주는 모든 방향에서 이루어졌고 동부 아프리카의 사람들과 상호교류를 했다. 결국 특별한 지역들이 인구가 집중되는 지역으로 출현했다. 그 하나는 빅토리아 호수 지역으로 바나나가 보급됨으로서 농업 생산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바나나는 남동 아시아가 그 기원지로 약 2000여 년 전에 이곳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약 600-700년 전에 왕국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분요로(Bunyoro), 부간다(Buganda), 은코레(Nkore), 르완다(Rwanda), 그리고 부룬디(Burundi)왕국들이 강력한 왕국들로 출현하였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소에 기반을 둔 귀족 정치가 나일(Nilotic) 목축업자들과 반투족들의 연합으로 발달하였다. 그들은 투치(Tutsi)로 알려지게 되었고 다수 집단인 후투(Hutu)족을 지배하게 되었다.

동아프리카에 있는 또 다른 반투 집단들은 고원 지대에 출현했는데 특히 키쿠유(Kikuyu), 메루(Meru), 그리고 엠부(Embu)족들이 대표적이었다. 킬리만자로(Kilimanjaro)산은 차가(Chaga)인들이, 우삼바라(Usambara) 산맥은 샴바(Shambaa)인들이, 그리고 말라위(Malawi) 호수의 북쪽 고지대는 냐큐사(Nyakyusa)인들의 주 정착지가 되었다. 상대적으로 비옥하지 않은 저지대로의 이주는 이후 이루어졌는데 헤헤(Hehe), 고고(Gogo), 투루(Turu), 그리고 냠웨지(Nyamwezi) 족이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케냐의 그레이트 리프트 계곡(Great Rift Velley)에서부터 탄자니아 중부까지 반투족과 나일(Nilotes)족의 접촉은 흔한 일이었다. 이러한 접촉은 때때로 갈등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 관계는 평화스러웠고 서로의 생산물을 교환하는 관계를 만들었다.

동아프리카를 넘어 반투인들의 이주는 그들을 가장 생산성이 높은 남부 아프리카의 경작지역으로 이루어졌다. 트란스발(Transvaal)에 그들이 이주하여 정착한 것으로 보이는데 수많은 소토-츠와나(Sotho-Tswana)족들이 정착하였고 나탈(Natal)의 언덕을 따라 은구니(Nguni)족이 정착했다. 두 언어집단의 정치구조는 은구니 줄루(Zulu) 왕국이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18세기 말까지 작고 자급자족적인 형태로 남아있었다. 줄루족의 군사체제인 임피(impi)는 19세기 중반까지 새로운 전략으로 자리 잡았고 줄루족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파괴와 이주를 의미하는 음페카네(Mfecane)의 시기 동안 많은 남부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멸망하거나 쫓겨났고 이들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음펭구(Mfengu)나 바소토(Basotho)같은 새로운 집단들이 만들어졌다.

짐바브웨의 비옥한 토지는 어떻게 쇼나(Shona)족들이 번영을 누리게 되었는지 잘 설명해준다. 이 지역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갖게 된 이유는 금 무역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금 무역의 독점은 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의 도시국가를 출현시켰고 12세기부터 15세기 까지 번영을 누렸다. 두꺼운 돌로 집이 만들어졌고 비단, 양탄자, 그리고 자기 제품 같은 사치품들이 소팔라(Sofala)와 킬와(Kilwa) 항구에서 아랍과 스와힐리 상인들에 의해 거래되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다른 쇼나(Shona) 국가들, 특히 무타파(Mutapa)와 바투아(Batua) 같은 국가들에게 무역 주도권을 잃게 됨으로서 이 지역은 쇠퇴하게 되었다.

생산적인 농업활동과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은 또 다른 사람들은 콩고 강 하류의 둑을 따라 거주한 콩고(Kongo)인들이었다. 그들이 형성한 왕국은 15세기 말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침입했을 때는 이미 강대국이 되어 있었다. 상업적인 관계가 세워졌고 두 국가는 외교관계도 맺었다. 상아와 밀랍이 처음에 거래되었고 다음 세기 초반에는 콩고인들은 노예무역에 종사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활동이 그들의 지위를 강화시켰지만 17세기에 왕국의 붕괴를 초래한 내부와 외부의 경쟁으로 치달게 되었다.

노예 거래는 19세기 중반까지도 중앙아프리카에 영향력을 계속해서 미쳤다. 중부 아프리카의 노예무역은 대서양 횡단 무역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주로 브라질에 노예가 공급되었다. 오빔분두(Ovimbundu), 룬다(Lunda), 초크웨(Chokwe), 그리고 로지(Lozi) 같은 왕국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위해 노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점점 더 상아 무역에 치중하게 되었는데 대서양 해안뿐만 아니라 인도양까지 상아무역이 이루어졌다. 노예 무역에 의한 붕괴는 서아프리카에서 경험한 것 보다 훨씬 더 컸고, 상당한 인구 손실을 야기했다. 가장 큰 타격 가운데 그들이 카르툼(Khartoum) 노예상인들의 목표가 된 우방기(Ubangians)인들 이었다.


Mansa Musa 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꾸아 어군, 나이저 코르도판 어족, 나이저 콩고, 만데 어군, 베누에 콩고 어군, 볼타 어군, 서대서양 어군, 아다마와 우방기 어군

4. 아시아 아프리카 어족(Afro-Asiatic language Family)

2008. 7. 28. 11:51
 

아시아 아프리카 어족(阿亞語族 ; Afro-Asiatic Language Family)은 주로 북아프리카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약 1억 7천 5백만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1/3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어족은 햄-셈어족(Hamito-Semitic Family)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명칭은 구약성서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당시의 3대 민종이름 중 두 민족이 햄족과 셈족에서 비롯되었다. 이 어족에 속하는 중요언어는 모두 6가지 어군으로 세분화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고대 이집트어, 서북 아프리카 마그레브지역 사막에서 쓰이는 베르베르(Berber)어군(알제리 남부, 니제르 사막에서 사용되는 투아레그(Tuareg)어), 소말리어, 및 갈라어로 대변되는 쿠쉬(Cushitic)어군, 아랍어 및 이디오피아어들을 포함하는 셈(Semitic)어군, 그리고 차드호수 인근의 하우사(Hausa)어 등으로 대변되는 차드(Chadic)어군, 마지막으로 오모강 유역의 오모(Omotic)어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베르베르어(Berber)어군으로 약 1100만명의 화자가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4000-5000여개의 방언이 있으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60%정도가 아랍어에서 차용된 것이다. 현재 베르베르어는 하층민이 사용(불어, 아랍어는 상층민이 사용)하고 있으며 점차 감소추세에 있다. 북아프리카의 산악지대와 사하라 사막에 고립되어 있는 유목민의 언어로 투아레그(Tuareg ; 알제리 남부, 니제르 사하라 사막), 시위(Siwi ; 서부 이집트의 시위(Siwi)오아시스 부근), 누푸시(Nefusi ; 리비아 서부 드체벨(Dschebel)지방), 제나가(Zenaga ; 모리타니아와 대서양 연안), 제나티방언(Zenati ; 사막 베르베르어)등이 있다. 두 번째는 차드(Chadic)어군으로 약 125개 언어로 나누어지며 차드호를 중심으로 하는 나이지리아, 카메룬, 챠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니제르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하우사(Hausa)가 차드어군에 속하며 사용화자수가 1200만이며 제 2 언어로 사용하는 화자수는 약 1300만에 이르고 있다. 세 번째는 셈(Semitic)어군으로 20여개의 언어로 모두 1억 5천 7백만 정도의 화자수를 갖고 있다. 주로 북부 아프리카와 근동지방에 분포되어 있다. 1억 4천만 정도가 아랍어 화자이고 암하릭(Amharic)어 사용자가 약 8백만, 티그리냐(Tigrinya)어가 약 360만, 그리고 현대 히브리어가 약 300만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네 번째는 쿠쉬(Cushitic)어군으로 약 30여개의 언어 및 방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자수는 약 1500만 정도다. 이 언어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햄의 아들 이름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수단 북동부 지역과 이집트의 국경지역, 지부티, 소말리아, 에디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일부에 분포되어 있다. 베자(Beja), 소말리(Somali), 갈라(Galla), 랜딜래(Reudilla), 이라쿠(Iraqu), 음부구(Mbugu), 엔몰로, 야쿠(Yaku), 산예(Sanye)어 등이 속한다. 다섯째는 고대 이집트(Old Egyptian)어군으로 기원전 3300 전부터 상형문자로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언어중의 하나다. 라베시트어, 4세기 데모트어, 9-10세기 곱틱어등이 있는데 이슬람교의 확장으로 점차 아랍어로 대체되었고 곱틱어는 현재 종교언어로만 사용되고 있다. 여섯째로 오오모(Omotic)어군이 있는데 투르카나 호수, 오모강 상류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화자수는 약 130만명으로 월라모(Welamo ; 90만), 케파-마차(Kefa-Macha ; 17만)어가 속한다.

아시아-아프리카 어족은 홍해(Red sea)와 나일 강 사이에 있는 북동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곳에서부터 그들은 북쪽으로는 케냐에서부터 서쪽으로는 모로코까지 대강 초승달 모양의 지역으로 넓혀갔다. 그 언어들 중의 하나는 이집트(Egypt)가 남긴 상형 문자와 같은 고대 이집트어였다. 이미 석기시대부터 높은 인구밀도를 보였던 아스완(Aswan)의 북쪽 나일 강 연안에 7000년 전의 새로운 식량 생산기술이 전파된 이후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다. 이러한 농업기술은 인접해 있던 레반트(Levant ; 동부 지중해 연안 제국; 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 등)로부터 전해졌는데 밀과 보리, 소, 양, 염소, 돼지들도 전해졌다. 약 2000년 후에 그 지역에 흩어져 있던 많은 농촌 마을들이 정치적으로 제 1 왕조(First Dynasty) 지배 하에서 통합되었다.

이집트의 남쪽은 누비아(Nubia)인데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저평가되었고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북쪽으로부터 많은 영향력을 받아들였고 금과 다른 귀중한 일용품을 위해 정기적으로 이집트인들에 의해 습격을 받았다. 이것이 때때로 상당한 정치적 혼란을 가중 시겼고 때때로는 땅의 많은 부분들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기원전 2000년경 나일 강의 세 번째와 네 번째 폭포(cataracts) 사이에 위치한 동골라(Dongola) 지역에서 출현한 쿠쉬(Kush)왕국이었다. 설립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남아있는 비명(碑銘)은 이집트어로 되어 있지만 이들의 일상적인 언어는 아니다.

더 멀리 남쪽으로는, 에디오피아(Ethiopia)가 쿠시(Cushitic) 언어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들은 에디오피아의 고지대에서 테프(teff)와 손가락 기장(finger millet ; eleusine)을 재배하며 농업을 주 생산수단으로 하고 있었다. 기원전 4000년부터 3500년 사이에 아라비아 남부로부터 셈(Semitic) 어족의 이주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 한 가지의 결과는 유대교의 도입이었고 오늘날 그들을 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 ; Falasha ; 에티오피아에 사는 유대교를 신봉하는 햄(Ham)족)을 이름)이라고 부르고 있다. 더 폭넓은 문화적인 통합이 일어나서 아숨(Askum)왕국을 건설한 사람들이 출현하였다. 악숨 왕국은 기원후 500년 동안 티그리냐(Tigirnya)의 조상이었고 세계에서 강력한 왕국 중 하나를 건설하였다. 그들은 금, 상아를 포함한 귀중품을 인도양 무역로를 통해 거해하였고 또한 성경에서도 유명한 유향과 몰약도 거래하였다.  전성기에 악숨의 영토는 홍해를 지나 백나일과 청나일의 합류점으로부터 남쪽 아라비아까지 확대되었다. 기원후 4세기에 기독교가 악숨의 공식적인 종교가 되었다. 에디오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장기간 동안 지속되어온 기독교 나라가 되었다. 왕국은 6세기에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고원 지대 전체에 영향을 주었고 후에 계승되는 왕조에 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었으며 암하라(Amhara)족의 지배 하에 있던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쿠시어족의 다름 부류들은 베자(Beja), 소말리(Somali), 그리고 오로모(Oromo) 같은 목축민들 사이에서 저지대에서 발달해 나갔다. 8세기에서 시작하여 그들은 이슬람을 그들의 지배적인 종교로 받아들였다.

이집트의 나일 강에서부터 대서양에 있는 해양까지 서부 지역은 베르베르(Berber)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틀라스 산맥(Altas Mountains)의 경사면과 비옥한 계곡에서 곡물을 생산하는 농부였고 양과 염소를 기르며 살고 있었다. 나중에는 소와 낙타를 더 중시하여 경제를 발달시켰고, 낙타는 이들의 삶의 무대가 사막의 오아시스로 확대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확대는 기존에 살고 있던 나일-사하라 어족에게 영향을 주었다. 가장 영역을 확대시킨 사람들은 투아레그(Tauareg)족으로 그들은 아하가르 산맥(Ahaggar Mountains)과 에르 고원(Aïr Highlans) 지대에 주로 살고 있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그들은 많은 사하라 무역로를 지배했고 정기적으로 노예와 다른 상품을 확보하기 위해 사막의 정착 집단을 습격했다.

아시아-아프리카 어족의 팽창은 몇몇 무리들을 사막과 북 나이제리아로 이동시켰다. 가장 강력한 종족 중 하나이 하우사(Hausa)족을 포함한 차딕(Chadic)족이 출현했다. 그들은 요새화된 강력한 작은 도시로 성장했으며 주변에 있는 시골지역의 영주나 지배자들과 연방형태로 지배하고 있었다. 가작 큰 도시는 고비르(Gobir), 카치나(Katsina), 그리고 카노(Kano)인데 이들은 13세기에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각기의 도시는 자신의 영향력 하에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우자족은 무역과 숙련된 수공업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가죽, 금속, 직물을 잘 다루었다. 많은 하우자족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자신들의 기술을 펼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

아랍어는 아시아-아프리카 어족의 셈(semitic) 어족에 속한다. 아랍어 사용자들은 7세기에 대륙의 북쪽 해변 지역을 정복한 이슬람 군대와 함께 많은 숫자가 아프리카에 들어왔다. 아랍인들의 공격은 로마와 비잔티움 시대에 기독교화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시레네(Cyrene), 그리고 카르타고(Carthage)와 같은 주요 도시에 이루어졌다. 이 무렵 제국들은 무너졌고 이슬람 군대들은 아주 작은 저항을 받았다. 아랍의 군대는 성직자를 대동하고 있었고 이들은 내륙에 있는 베르베르족을 개종시켰다. 후에 무슬림 아랍인들은 9세기와 10세기 걸쳐 이주하기 시작했고 베두인(Bedouin)족같은 유목민들이 이주했다. 이러한 이주는 아라비아 반도를 강타한 가뭄으로 인해 더욱 급격하게 진전되었다. 지역경제의 불안정으로 인해 유목민들은 서쪽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베르베르족들은 산악지역을 제외하고 그들의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모로코(Morocco)의 저지대에서 아랍과 베르베르의 통합이 일어나서 마우레스(Maures)를 탄생시켰다. 여기서부터 그들은 세네갈(Senegal) 강 계곡까지 남쪽으로 이동했다. 땅을 잃은 사람들은 주로 기독교도들이었고 이들은 북아프리카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7세기 이후 아프리카가 아랍인들의 주요활동지역이 되었다. 사실 이주해온 아랍인들은 이집트인, 베르베르인,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인종적으로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아랍어는 정치적, 경제적 기회의 언어가 되었고 그 언어를 말하지 않는 것은 불이익에 처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유익했다. 그것은 종종 아랍어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졌고, 새로운 문화와 상업의 세계로 이끌었다.

Mansa Musa 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고대 이집트어, 베르베르어군, 셈어군, 아시아 아프리카 어족, 오모어군, 쿠쉬어군, 햄 셈어족

3. 나일-사하라 어족(Nile-Sahara, Nilotic Language Family)

2008. 7. 28. 11:49
  

나일 사하라 어족(Nile-Sahara; Nilotic Language Family)은 사하라사막과 나일 강 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어족은 송가이(Songhai), 마반(Mabaan)등 군소어군과 함께 방대한 언어를 포함한 샤리-나일어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샤리-나일어군은 모루(Moru), 마디(Madi), 망베투(Mangbetu) 등의 중부 수단어와 베르타(Berta), 쿠나마(Kunama)등을 포함하여 가장 큰 언어집단이 나일어군을 포함한 동부 수단어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칼렌진(Kalenjin), 루오(Luo), 마사이(Maasai) 등의 나일(Nilotic)어는 아프리카 동부 케냐등지에서 반투어와 인접해 있다.

첫번째로 나일어(Nilotic)는 화자수가 약 800만으로 제일 많다. 루오(Luo ; 케냐 서부지역), 딩카(Dinka ; 수단남부 나일강 범람지역), 킵시키스(Kipsikiis), 마사이(Masai ; 케냐), 투르카나(Trukana), 뉘르(Nuer ; 수단 남부), 아촐리(Acholi ; 우간다), 난디(Nandi ; 케냐)어가 속한다. 둘째는 중부 수단어(Central Sudanic)로 우간다의 알버트 호수 및 나일 강 상류로부터 서쪽으로는 챠드 호수와 로고네(Logone)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사라(Sara ; 100만), 바르마(Barma ; 90만)어가 동쪽으로는 룩바라(Lugbara ; 28만), 발레(Bale ; 25만),  망베투(Mangbetu ; 14만), 모루(Moru), 마디(Madi)어 등이 사용된다. 셋째로 북부지역어로 누비아어, 송가이(Songhai)등이 사용된다.

1만 년 전에, 북아프리카의 기후는 오늘날 보다 훨씬 습기가 많았고 우리가 지금 사하라 사막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많은 큰 호수와 강, 그리고 계곡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연환경이 제공한 풍부하고 다향한 수자원은 증가하고 있는 인구를 지탱해 주었다. 이들 속에는 나일사하라(Nilosaharan) 사용자들의 조상도 포함된다. 다음 수 천 년의 가정 동안에 그들의 경제는 가축 특히 소의 추가로 윤택해졌고 그 이후 수수와 기장의 경작으로 더욱 경제가 좋아졌다. 이러한 상황은 그들을 적도우림지역을 경계로 하고 있는 사바나 남쪽 지역으로의 진출을 가능하게 했고 중부 수단어(Central Sudanic language) 사용 지역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어 나가게 되었다. 나일-사하라 어족들은 남부 수단의 백나일강 계곡(White Nile River valley)을 둘러싸고 있는 목초지와 늪지대를 점령했다. 소들은 높은 경제적ㆍ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점점 더 동아프리카의 남부와 사바나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이주는 기원전 500년 초에 시작되어서 19세기에도 계속 되었다. 투치(Tutsi), 삼부루(Samburu), 마사이(Masaai), 카라마종(Karamajong), 그리고 루오(Luo)족이 이 지역에 이주하여 정착한 대표적인 민족들이다.

다른 나일-사하라 어족의 이주는 아스완(Aswan)과 카르툼(Khartoum) 사이의 나일 계곡에 살고 있는 누비아 족(Nubians) 탄생시켰다. 이러한 이주는 기원후 1세기 동안 몇 단계에 나누어서 발생했고 최초의 거주자들은 흡수되거나 해체되었다. 또 다른 일련의 나일-사하라 어족의 이주는 차드(Chad)호수 지역의 카누리(Kanuri)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기원후 1000년경에 카넴-보르누(Kanem-Bornu)를 창건했다. 사하라 횡단 무역(trans-Saharan trade)로에서 나오는 이익으로 인해 카넴-보르누는 800여 년 동안 이 지역의 강대국으로 존재했다.

사하라 내륙지역과 부근에 있는 나일-사하라 어족들은 땅을 잃어버렸다. 동쪽으로부터는 아프로아시아틱(Afroasiatic)어족들이 침입하였고 니제르-콩고(Niger-Congo) 어족은 서쪽으로부터 침입을 했다. 생존자들은 니제르 강의 연안을 따라 살아남았고 이들은 송가이(Songhai) 제국을 건설하여 16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Mansa Musa 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나일 사하라, 나일어(Nilotic), 누비아어, 송가이, 중부 수단어(Central Sudanic)

2. 코이산 어족(Khoisan Language Family)

2008. 7. 17. 11:55
 

코이산 어족(Khoisan, San Language Family)은 수렵 채집을 하며 인류문화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형태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산(San ; Bushman)족과 유목․목축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코이코이(Khoikhoi ; Hottentot)족이 포함된다. 남부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하여 최초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종족은 산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부쉬맨이라고 부르는 명칭은 남아프리카에 정착했던 보어(Boer)인들이 ‘수풀에 사는 사람들(Boesman)'이라는 격멸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부터 유래하고 있으나 산족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예컨대, 코사(Xhosa)족은 트와(Twa), 소토(Sotho)족은 로아(Roa), 코이코이(Khoikhoi)족은 산(San, Saan)으로 부르고 있다. 코이코이(Khoikhoi)족은 인종상 산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란 색깔의 피부빛깔이나, 이들의 언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단음절의 흡기음(吸氣音, staccato click sound) 사용은 코이코이족 역시 산족과 동일한 혈통을 가졌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람중의 사람’이라는 의미의 ‘코이코이(Khoikhoi)’로 불려 지기도 한다. 그러나 유럽인들에 의해 명명된 ‘호텐토트’가 일반적으로 폭 넓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호텐토트라는 ‘흡기음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격멸적인 호칭이다. 1487년, 포르투갈인들이 남부아프리카에 도래했을 당시 코이코이족들은 살단하 만(Saldanha Bay), 테이블 만(Table Bay), 모셀 만(Mossel Bay) 등지에 걸쳐 고기잡이와 조개류 채취, 그리고 반유목민으로서 긴 뿔 소와 양을 사육하였고 사냥용으로 개도 길렀다 1652년 얀 판 리비어크(Jan van Riebeeck)가 케이프에 상륙했을 때는 이들은 케이프(Cape) 주변지역, 오렌지(Orange)강 유역 그리고 나탈(Natal)지역과 지금의 나미비아 지역 훨씬 위쪽까지 분포되었다. 그러나 산족보다 넓은 지역에 분포되지는 못했다. 이들은 유목을 하였기 때문에 건조한 내륙이나 산악지대보다는 해안가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했다.

코이산 언어(Khoisan language)는 흡기음(clicks ; 혀 차는 소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파열음으로 형성된 자음 소리와는 반대되는 것으로써 내파음이다. 이 언어의 기본형은 잠베지(Zambezi)강의 남쪽 지역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동부 아프리카의 사바나(Savanna)지역, 케냐(Kenya)의 타나(Tana)강 북쪽까지 확대되었다. 코이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채집과 사냥을 했다. 그리고 돌, 나무, 뼈로 만든 도구를 고안해냈다. 그들은 식량 획득을 위해 계절적으로 이동을 하였고 30-50명이 집단을 이루어 생활을 하였다.

2000여 년 전에 오늘날의 잠비아(Zambia)와 짐바브웨(Zimbabwe)의 국경 부근인 잠베지 강 근처에 거주하고 있던 무리들이 양과 염소를 획득하고 남쪽으로 이주를 했다. 몇몇은 결국은 팔(Vaal) 강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오렌지(Orange) 강 사이의 기름진 목초지에 정착했고 다른 사람들은 희망봉 부근의 비옥한 땅에 정착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반 사막기후지역인 척박한 카루 부시 지역(Karoo bush lands)을 점령했다. 긴밀하지 않은 혈연관계로 조직된 이 목축업자들은 코이코이(Khoikhoi)로 알려지게 되었고 사냥꾼과 채취자로서 살아갔던 사람들은 산(San)족이었다.

코이코이와 산 족은 더 나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도전을 받았다. 기원후 1세기, 철기문명을 가지고 농업을 주 생산수단으로 삼던 반투 어를 사용하는 농부들이 드란스발(Transvaal)과 나탈(Natal)의 더 좋은 농경지를 차지하면서 북쪽으로부터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650년에 유럽 사람들은 케이프(Cape)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주거지를 점점 더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주, 전쟁, 질병들이 코이산족들을 몰아내어 오늘날에는 단지 남부 아프리카의 보츠와나(Botswana)의 쿵 산(!kung san)과 같은 몇몇 집단들만이 분명한 문화로써 남아있다. 동부아프리카에서는 산다웨(Sandawe)와 탄자니아의 하드자(Hadza)가 한 때에 넓게 퍼져있던 코이산들의 존재를 입증한다.

Mansa Musa 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로아(Roa), 보츠와나, 산 (San), 코이산 어족, 코이코이(Khoikhoi), 쿵산(! kung san), 트와(Twa), 흡기음(Clicks)

1. 아프리카 언어(African Language)

2008. 7. 17. 11:53
 

아프리카는 적어도 2000여개의 언어 집단과 인종이 살고 있다. 각각의 언어집단은 그들 자신만의 특별한 문화적ㆍ역사적 전통을 가진 사람으로 그들을 동일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증거는 인간이 아프리카에 첫 발자취를 남겼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다양성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400 만 년 전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우주는 그렇게 오랜 덧없는 여행을 금지한다. 그래서 우리의 첫 시발점은 오늘날의 언어에 대한 첫 출현이 탐지될 수 있는 5000-10000년 전 사이가 될 것이다. 그들의 많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모든 토착민의 언어들은 코이산(Khoisan), 나일-사하라(Nilosaharan), 아프리카-아시아(Afroasiatic), 그리고 니제르 콩고(Niger Congo)라 불리는 네 가지 언어집단으로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다. 각각은 특별한 지역적인 배경 안에서 생겨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화되고 발전하였으며 이주민들과의 접촉과 교류로 인해 인구분산이 일어났다. 이러한 이주에 도화선이 된 것은 식량 생산에 있어서의 변화였고 새로운 기술의 발달, 특히 철기, 무역, 종교적인 제휴였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특징으로서 다양성과 유동성을 결합시키는 것은 복합성이다. 대부분은 복합적인 영향력에서부터 생겨났고 그 힘과 강도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했다. 어떤 몇 가지 정체성은 수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 다른 것들은 최근 까지도 이어졌다. 19세기와 20세기에 유럽의 식민주의는 정체성 형성에 특히 중요했고, 식민지 시기는 이러한 정체성의 대부분이 정형화된 시기였다. 식민지의 행정가들은 경계를 필요로 했고 그들은 또 대개는 그들이 부족이라고 부르는 것에 따라서 그 경계선을 그었다. 그것은 몇 가지 변화하지 않은 과거의 뿌리를 둔 실체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에 대해 식민주의자들은 분명히 실수를 했다. 그어진 경계선과 붙여진 이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까지 아프리카의 민족들을 한계 짓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한 집단에 주어지는 격멸적인 함축을 가지고 있는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실수들이 바로잡혀 왔다. 그러한 예에서 만들어진 변화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옛날 이름은 삽입구로 기록되었다.

아프리카 언어의 계통분류(genetic classification)는 아프리카인들의 언어와 인종의 기원과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며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언어의 계통분류는 1963년 그린버그(J. Greenberg)가 총 집대성하였는데 유형학적 방법과 역사비교언어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크게 4대 언어군으로 구별하였다.

Mansa Musa 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그린버그(J. Greenberg), 나일-사하라, 니제르-콩고, 아프리카 언어, 아프리카 언어의 계통분류, 아프리카-아시아, 코이산

아프리카의 장로정치와 경험의 중요성 - 결론

2004. 6. 30. 00:07
6. 결론

아프리카 사회는 신과 인간의 세계가 촘촘한 하나의 그물처럼 서열화․계층화되어 있고 인간의 세계도 연장자와 아이에 이르기까지 위계가 있다. 이러한 사회의 모습은 다분히 종교적 사고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열화․계층화’는 그 권리와 의무가 명확하고 갈등이 아니라 화합과 조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연장자는 ‘살아있는 경험의 보고(寶庫)’로서 존중 되어진다. 그들의 ‘말’은 언제나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으며 이러한 연장자 중심의 사회는 사회의 순기능적인 입장에서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 지역의 연장자를 찾아가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자. 그야말로 만사가 형통이다.

올아프리카 africa club 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아프리카의 장로정치와 경험의 중요성 - 연장자에 대한 존경은 도덕적 명령

2004. 6. 30. 00:06
5. 연장자에 대한 존경은 도덕의 주요한 내용

남부 반투인들은 “좋은 사람(good man)"을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좋은 사람은 사회와 자연 사이의 섬세한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사람이며 다산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 도덕적 명령은 어른들은 존경하는 것이다. 특히 그들의 직계집단에서 이런 존경은 어릴 때부터 가르쳐졌다.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배웠다. 그들은 어른들에게 말 할 때 항상 정형화된 방법으로 말해야 했고 어른들이 얘기할 때 끼여들면 안 되었고 그들에게 소리치면 안 되었다. 잘못 행동하는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린 동생은 형이나 누나를 존경해야만 했고 직계 집단의 구성원들을 존경해야 했다. 맥주 마시는 날이나 축제 때에는 다른 연배 집단과의 혼합은 없었다. 각각의 집단은 따로 앉고,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과 한 접시에서 먹지 않았다. 자리배열이 이런 것을 강화시켰다. 젊은이는 그의 머리가 윗사람보다 높게 보이는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존경에 대한 이런 강조는 가족에서부터 씨족에 이르는 모든 친족집단으로 요약되었고, 충성이나 혈족에 대한 상호원조와 관련이 있었다. 친족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은 도덕적 절대 원리로써 진실을 말하는 것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진실을 말함으로써 집단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거짓말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인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남자는 윗사람을 존경할 뿐 아니라 그의 친족집단에 충성하는 남자였다. 그는 또한 좋은 이웃이다. 이것은 그가 보호를 하고 아니면 보호받는 그와 관계없는 구성원과의 협력을 의미한다. 사실 이것은 어쩌면 가족의 재산을 노려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친족보다는 사욕 없는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이웃을 말한다. 이웃들은 들판에서 농사로 도와주고 아플 때 수확한 것을 집으로 가져다준다. 좋은 사람은 그의 시간에 관대하고 다른 사람의 곤경에 참여하고 그의 세상의 재산에 관대한 사람이다. 관대함은 최고의 미덕이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추장같이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 다시 순종을 책임지는 제재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은 도덕적으로 해야 하는 올바른 것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했다는 걸 알리는데서 오는 자기만족감의 달아오름 때문에 다른 이를 도와주었다. 그들은 만약 도와주지 않았다면 후에 자신의 도움을 거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어떤 특별한 지역에 속한 이웃에 대한 느낌은 강한 지역 충성심으로 그러나 가깝게 함께 사는 것은 또한 문제점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삶이나 농사에서 다른 수확성공으로 일어나는 질투의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 이웃은 우리가 뒤에 볼 이러한 긴장을 반영한 마법의 고발지역에 있었다. 좋은 사람이란 마법의 의심이 가장 적은 때 묻지 않은 그런 좋은 이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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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장로정치와 경험의 중요성 - 분쟁해결의 주도적 역할

2004. 6. 30. 00:06
4. 연장자는 분쟁해결에서 주도적인 역할

재판에서 연장자의 저주를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본적인 원리는 어떤 사람이 유죄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면 그를 저주함으로써 그 저주의 말에 의하여 악이 그에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주로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저주할 수 있지, 그 역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저주는 연장자에 해당하는 부모나 아저씨, 아주머니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또 가장 고약한 저주는 임종시에 하는 저주이다. 일단 그 저주자가 죽으면 이를 취소할 방도가 실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참회를 하고 저주를 거두어주기를 원하면, 그 저주를 한 사람은 그 저주를 스스로 취소할 수도 있고, 또 그 저주가 심각한 것이었으면 제의를 통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주어진 저주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약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죄가 없으면 저주는 기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공식적인 저주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마치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특별히 가족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관계를 저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두 사람 사이에 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중재와 화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되었든지 많은 사람들이 되었든지 사건을 평결하기 위해 초대되어지는 방법을 취한다. 중재는 언제나 분쟁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족시켜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3자 개입은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법제도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중재자로 초빙된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연장자들로 어떤 사건을 다룰 때 추장의 고문으로 추대되기도 한다. 따라서 경험이 많은 연장자들이 중재를 한다면 평결의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건이 추장의 고문들에 의해 논의되어진 후 추장에게 맡겨졌을 때 사건의 결과는 다르게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건을 다루었던 고문관들이 같은 수준에서 결과에 영향을 이미 주었기 때문이다.

중재에서 평결이 내려질 때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분쟁에 관련된 사람들이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엄격하고 공명정대한 평결이 강조된다. 그러나 한쪽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낳은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사과시키는 것을 적절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중재에서의 벌금은 부담스럽지 않게 한다. 배심원의 구성원들이 벌금을 나누어 갖는다.

한 예로 북부 나이지리아의 베누에 강 연안에 살고 있는 티부(Tiv)족은 사법제도가 어떤 사회적 계층을 이룬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진다. 이들은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서 사법제도에 그 자체로서 제제나 상벌의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 계층은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연장자(Elders ; Vensen)와 명망 있는 사람들(Men of Prestige ; Shaba)이다. 이 두 집단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지위로 인해 아주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다. 연장자들은 언제나 사회에서 노인들이며 정치구조에서 연장자 정치(gerontocratic politics)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모든 분쟁이나 다툼을 다룬다. 이들에게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이 주어졌다고 믿고 있다. 반면에 명망 있는 사람들은 부, 관대함,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 두 계층의 사람들은 상호보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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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장로정치와 경험의 중요성 - 연장자는 최고의 지위

2004. 6. 30. 00:05
3. 연장자는 사회구조의 최 상층부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이서열(age ranking)은 아주 중요하며 연령질서(age order)는 사회조직의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아프리카 언어들은 영어에서 발견될 수 없는 장자(eldest son), 차자(second son) 또는 장녀(eldest daughter)같은 단어들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가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아이들은 나이어린 아이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쿠랑코(Kuranko)족은 연장자가 나이어린 사람들을 ‘소유(owns)' 또는 ’통제(rule)'한다고 말한다. 나이지리아의 이보(Igbo)족은 가족 구성원들이 고기를 배분하는데 나이순으로 한다. 나이든 남자는 머리부분을, 다음의 연장자는 목 부분을 먹게 된다. 즉 동물의 몸이 상징적으로 나이계급에 따라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남자들이 회의하는 방(meeting house)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을 때도 나이순으로 하며 음식이나 음료수도 언제나 연장자가 우선이다.

이러한 노인정치, 장로정치 구조(gerontocratic structure)는 유사 이래로 인간의 계속성과 함께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유아, 아이, 배우자, 부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동해 간다. 사회적으로는 통과의례나 연령등급(age set), 그리고 비의결사(secret society)같은 단계를 거쳐 옮겨가게 된다. 질병으로 일찍 죽지 않고 많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길러낸 사람들은 연장자로서 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노인정치 사회에서는 연장자들의 회의에 상당한 권위가 있으나 그들의 통치는 서투르거나 압제적인 것이 아니다.

특히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연령등급은 사회조직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연령등급의 최고 단계에 연장자들이 위치하고 있다. 적절한 의식을 거행하면서 동아리 내의 일반적으로 연령차이와 동등한 간격으로 다음 나이 등급으로 옮겨간다. 이런 식으로 그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통과를 통하여 수많은 연령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몇몇 연령 등급은 그것과 연관된 분명한 책임감이나 특권을 갖는다. 따라서 개인에게 대개 그들의 동료들로 구성된 준거집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 연령등급체계는 사회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조직체를 구성한다.

관습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서부터 고유한 명칭을 갖는 일련의 단계들로 이루어진 연령집단의 일원이 된다. 단계마다 독자적인 지위나 사회적․정치적 역할이 주어지며, 이때 각 단계는 주로 나이로 등급이 매겨진다.

연령집단은 일반적으로 동․남부 아프리카의 목축사회에서 나타나며 서부아프리카에서 널리 퍼져있었고 전통적으로 사회구조의 가장 중요한 구조였다. 이것은 동시대성에 기초한 남자들의 단체이다. 청소년기로부터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을 시작으로 남자들은 나이에 따라 연령집단에 들어가며 평생동안 연령집단을 옮겨 다닌다. 구성원들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며 의무와 특권이 있다. 전형적으로 연령집단은 4가지 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훈련기간에 새로 가입된 남자들, 둘째로 방어를 전담하는 전사집단, 셋째로 통치에 관여하는 어른들, 넷째로 사회의 연장자들이 속한 등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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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장로정치와 경험의 중요성 - 연장자중심의 씨족중심사회

2004. 6. 30. 00:04
2. 아프리카는 연장자 중심의 씨족중심사회

씨족과 가계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집단들이다. 씨족과 가계는 개인보다는 결국 이러한 조직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법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법인집단(corporate groups)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개인들이 토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씨족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게 땅을 처분할 권리는 제한된다.

씨족의 전설과 신화는 역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씨족 조상들은 현재 살아있는 구성원들의 일상의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영혼의 신, 살아있는 사자(living dead)로서 존재할 것이다. 씨족 조상들은 현존하는 사람들에게 사후에도 중요한 존재로서 실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씨족 구성원들은 위기나 필요한 의식에서 서로 돕는다. 결국 씨족은 궁극적인 관련 집단으로 개인의 정체성, 명성, 그리고 자부심이다. 한 아프리카인은 “만약 내가 매우 오랜 길을 걸어서 지쳐 더 걸을 수 없다면 나는 지쳐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씨족의 이름을 말한다면 나는 일어나 걸을 것이다”라고 개인에 대한 씨족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그의 씨족이 그의 피곤함보다 더 중요하고 그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며 그의 씨족에 대한 기억이 그를 지탱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즉 씨족은 개인에게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은 친족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아프리카 생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친족관계는 혈연관계와 결혼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친족관계는 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어하며 결혼관습과 규례도 이 친족관계가 다스린다. 또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이 친족관계가 결정한다. 사실 이 친족감은 ‘부족’의 전체 삶을 한데 묶어 놓는 것일 뿐만 아니라 ‘토템(totem)'의 체계를 통하여 동물, 식물, 생명 없는 물건들에게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씨족은 대체로 토템을 통하여 구별한다. 즉 각 씨족은 동물이나 식물, 돌이나 광물 등의 어떤 것을 그 씨족의 토템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씨족의 구성원들은 자기들의 토템은 절대로 살해하거나 먹지 않는다. 토템은 일체성, 친족, 소속감, 연대감, 공동의 친화감을 가시적으로 나타낸 상징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와 관련된 거의 모든 개념들은 친족관계의 체계를 통해서 이해될 수도 있고 해석될 수도 있다. 친족관계는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의 행동과 사유 및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족체계는 죽은 사람과 장차 태어날 사람들을 포함하여 수직적으로 확대된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그들 가계의 족보(the genealogies of descent)를 공부하는 것이 전통적인 교육의 일부가 되고 있다. 족보는 심원한 역사적인 소속감,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이 족보를 계승 확대해야 하겠다는 거룩한 의무감을 가지도록 한다. 족보를 통하여 현재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과거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과 굳은 연계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족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그 존재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근거인 과거를 향하도록 하는 거룩한 수단이다. 족보를 통하여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과 현재에 있는 사람은 인간의 삶이 지니고 있는 무시간적인 리듬 속에서 ‘동시대적(同時代的)’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족보를 통하여 신화적인 ‘최초’의 인간, 혹은 국가적인 영웅에까지 소급해 올라감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긍지와 만족감을 지니게 하기도 한다.

연장자들이 죽으면 그들은 명예스러운 조상들로서 후손들에게 기억된다. 또 후손들은 그들의 살아있는 집합적인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의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조상숭배를 ‘ancestor worship'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worship'이라는 말은 아프리카인들과 조상들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조상숭배는 존경, 경외, 숭배 등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조상숭배는 현실의 일시적인 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 사회조직은 마을의 사회적 영역뿐 아니라 전임자들의 사회적 시간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조상들은 초연장자(super-elders)다. 그들은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축적된 모든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종류의 불사, 불멸을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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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장로정치와 경험의 중요성 - 들어가는 글

2004. 6. 30. 00:03
1. 들어가는 글

아프리카에 처음 갔을 때 동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마타투(matatu)라는 버스를 타고 시골지역으로 연구차 들어가면서 겪었던 일은 나에게 지금까지도 ‘경험 많은 어른들’이 아프리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곤 한다. 마타투라는 버스는 우리나라의 봉고와 같은 승합차이며 아프리카인들의 주요한 교통수단이다. 마타투라는 말은 3을 의미하는데 차비가 과거에 우리 돈으로 3전하던 차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요즈음에는 “빨리 타”, “빨리 가”, 그리고 “빨리 죽어”라는 3가지의 별명을 가질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운송수단이다. 마타투는 외국의 관광객들이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차에 탔을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신기한 듯이, 그리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였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나는 ‘썰렁한’ 분위기를 애써 무마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는 달리 수다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말이 많던 현지인들은 말도 별로 하지 않았다. 시골길을 한참을 달리다가 문이 열리고 노인이 한 분 올라왔다. 그 노인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머리에는 코피아를 쓰고 있었으며 곳곳이 헤진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기품이 있어 보이는 어른이셨다. 마침 빈자리가 보이지 않아 나는 얼른 일어나 내 자리를 양보하며 “어르신 이쪽으로 앉으시지요(Mzee ukae hapa!)"라고 말했다. 그 노인은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나를 살펴보시며 ”자네는 어디에서 왔나?(Umetoka wapi?)"라고 물으셨고 나는 공손하게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Nimetoka Korea.)"라고 대답했다. 그 노인은 온화한 미소와 함께 ”여행 잘하시게(Safari njema!)"라고 하시고 내가 양보한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 후 그 마타투 안에서 나는 많은 사람을 친구로 만들 수 있었고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며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인간관계는 연령과 신분상의 위치에 따라 위계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신은 창조자이고, 모든 인류의 어버이이며,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호소와 청탁의 마지막 극점이 되고 있다. 그 신 밑에 여러 신적인 존재와 영(靈)이 있다. 이들은 인간보다 더 강한 자들이며, 여러 사회의 창시자나 선조이기도 하다.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인 살아 있는-사자(living-dead)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년식, 결혼, 자녀의 양육 등을 통하여 완성된 완전한 인간이다. 인간들의 계층은 위로부터 왕, 통치자, 우사(rain-maker), 사제, 점술사, 주술사, 각 가정의 가장, 연로한 어른, 부모, 손위 형과 누나, 그리고 끝으로 공동체의 가장 어린 구성원으로 위계가 이루어진다.  

실제로 이러한 위계 개념은 신으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사다리를 이루듯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경험이 많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은 아프리카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한 덕목이며 의무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이 드신 분이 분별없이 언행을 하지도 않는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하거나 여행을 하려 한다면 반드시 오래사신 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하고 또 존경하는 마음 갖기를 바란다. 바라는 결과를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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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시간개념과 약속-결론

2004. 6. 28. 22:03
5. 결론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직선적인 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낯선 개념이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생산성과 떼어놓을 수 없다. 24시간의 시간은 생산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며 쪼개고 또 쪼개서 효율적으로 이용되어야 하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용된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은 시간의 노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의 시간은 언제나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 수 있는 개념으로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을 따지며 지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시, 분, 그리고 초까지도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는 일과 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날의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아무것도 못한’ 범주에 속한다.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자연현상을 중시하고 사람을 모든 활동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철학적 종교적 의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연을 거스르고 거부하며 바꿀 수 있다는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패턴에 따른다면 ‘우리의 시간개념과 아프리카인의 시간개념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이고 생산적이냐’라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전자라고 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것이 더 사람답게 사는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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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시간개념과 약속-사건과 자연현상을 통한 시간개념

2004. 6. 28. 22:03
4. 아프리카인들은 사건과 자연현상을 통하여 시간을 계산

이러한 음비티의 주장은 에반스-프리차드(Evans-Pritchard)나 보해넌(Paul Bohannan)의 연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에반스-프리차드는 뉘르(Neur)족의 시간개념을 연구한 후 뉘르족은 시간을 세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하였다. 1년이 12개월의 단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뉘르족은 그것들을 한 단위의 단편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어느 달에 한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추상적인 숫자 기호에서 일어난 사건들 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완전한 시간의 단위보다 활동들이나 활동의 성과, 그리고 사회 구조와 구조적 차이들로서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  

보해넌이 티브(Tiv)족으로부터 시간이란 제각기 다른 활동을 수용하는 일련의 폐쇄된 방으로 이러한 시간의 방들은 옮길 수도 섞일 수도 없다고 밝힌 내용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티브족에게 시간은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현상들에 의해 다른 종류의 기간들로 분류되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종종 다른 논리적인 시리즈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의 분류를 서로 관련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티브족은 달을 시장이나 농업 활동, 혹은 계절과 연관시키지 않는다. 만약 누가 얼마나 많은 달이 1년에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10에서 18까지 매우 다양하다. 만약 누가 한 달에 있는 시장의 개수를 물으면, 그 대답은 3에서 8까지 다양하다. 또한 한 달에 있는 일의 수를 물으면, 10에서 15까지 다양하다.

아프리카의 시간 계산은 반복되는 자연현상을 전제로 한다.- 계절, 달의 차고 기움, 그리고 해의 움직임- 그리고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사회 활동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또한 개인과 사회의 전반적인 삶 속에서의 사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프리카인들이 시간을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경험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즉 아프리카인 들은 다른 사건들에 비해 구체적인 사건들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한 아프리카인이 ‘그 마을은 내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옮기지 않았어요.’ 혹은, ‘정부는 내가 정화의식을 한 후에, 그리고 결혼을 하기 전에 출범했다.’라고 표현한다.

‘하루’는 아프리카의 공동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맞추어 시간이 진행된다. 예를 들어 우간다의 앙코레(Ankore)족은 가축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축을 돌보는 일에 맞추어 시간이 나누어진다. ‘달’은 ‘뜨거운 달’, ‘첫 비가 오는 달’, ‘잡초를 뽑는 달’, ‘콩을 거두어들이는 달’, ‘사냥을 하는 달’등으로 나누어 계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구분되기 보다는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해’는 계절에 따른 활동들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 모두 ‘몇일이 한해인가’라고 세기 보다는 ‘건기와 우기가 몇 번이나 지나갔는가’로 계산된다. 이 또한 정확한 날짜로 계산되면 365일을 벗어나 340일이 될 수도 있으며 360일이 될 수도 있지만 계절이나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차이도 느낄 수 없다.

낮과 밤의 끊임없는 리듬처럼, 그리고 달의 차고 기울음처럼 한해가 왔다가는 가곤 하는 그런 세월을 사람들은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즉 그들은 우기가 오면 다음에는 파종의 계절이 오고, 그것이 지나면 수확의 계절이 오며, 그 다음에는 건기가 오고, 그것이 지나면 다음에 다시 우기가, 그리고 그 우기의 다음에는 또 다시 파종의 계절에 오는 이 같은 영원히 지속되는 일들을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해를 지내면서 과거라고 하는 시간의 차원이 차츰 더해져 간다. 그들에게 있어 ‘무한’이라든가 ‘영원’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다만 과거의 영역에 속해있는 어떤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시간은 양을 잴 수 없는 다른 사건들의 반복들과 세대나 연령층과 같은 사회 구조들로서 표현되기 때문에, 시간은 균일한 것, 지속적인 것, 혹은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어 지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관점에서는, 지금의 하루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시간은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따라서 양력과 그것을 다시 일정한 달, 일, 시, 분, 초로 나눈 것에 근거한 현대 서양 문명의 연대기와는 다르게 자세한 과정들의 세부사항부터, 현재 시간까지의 일시적인 과정의 측정을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균일하게 추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을 수학적인 계산으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과의 관련속에서 구체적이고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헤아린다. 즉 시간은 사건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날, 달, 해, 일생, 혹은 사람의 삶은 제각기 그것들이 지닌 특별한 사건에 의해서 모두 나뉘어지고 헤아려진다. 왜나하면 그러한 시간들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일 어떤 일을 하자’라는 약속은 정확히 몇 시에 하자는 의미보다는 ‘무엇을 한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엇을 한다.’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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