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토착적인 요소들로부터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아프리카인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들은 아프리카너(Afrikaners), 칼라드(Coloureds), 스와힐리(Swahili), 미국계-라이베리안들(American - Liberians)이다.
아프리칸스(Afrikaans)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너의 기원은 인도로 가는 항로의 기항지를 케이프타운(Cape Town)에 건설하기 위해 165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파견한 직원들이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적은 숫자의 네덜란드인과 다른 유럽인들 그리고 대부분의 프랑스 위그노 교도(Huguenots)들이 1652년 이후 수십년에 걸쳐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주로 농사에 종사했던 이들을 ‘농사꾼’이라는 뜻의 보어(Boers)인들이라고 불렀고 케이프타운 부근의 땅이 점차로 부족해짐에 따라 그들은 코이코이와 산(San)족이 살고 있는 내륙지역으로 이주와 정착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팽창은 그들을 마침내 18세기 초에 반투족인 코사(Xhosa)족과 조우하게 했고 무려 100여 년 동안이나 계속된 일련의 국경 전쟁들을 불러 일으켰다.
반면에 영국인들은 케이프에서 네덜란드인들을 정복하였다. 영국의 적대적인 조치와 외국인으로서 대우하는데 대한 불만으로 수천명의 아프리카너들은 1830년대 초에 대이주(Great Trek)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북쪽으로 내륙 깊숙이 전진하여 오렌지(Orange) 강을 가로질러 북쪽의 트랜스발(Transvaal)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 지역은 샤카 줄루에 의한 음페카네(mfecane)로 아프리카인 인구가 적은 상태였고 목축을 위한 좋은 초원이 풍부하게 있었다.
남아공의 칼라드(Coloured)라 불리는 유색인종 또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케이프 타운의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아프리카 다른 지역으로부터 노예를 수입했고 인도와 인도네시아 섬에서도 노동력이 수입되었다. 이들 사이에 혼혈이 일어났는데 예를 들어 유럽인과 노예 사이에, 유럽인과 코이코이족 사이에, 노예와 코이코이족 사이에서 혼혈이 일어났다. 이들중 일부는 리호보스(Rehoboth)나 그리콰(Griqua) 같은 새로운 인종집단으로 발전했으나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너의 문화를 따르고 있었고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신봉하고 있었다.
스와힐리는 반투 언어이고, 기원후 1세기 동안 케냐의 타나(Tana)강 하류 지역에 중심을 둔 조그마한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이 마을들 중의 몇 개는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온 상인들과 무역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수세기 동안 계절풍을 이용해 동아프리카와 페르시아 만 사이를 항해하며 교역에 종사했다. 9세기와 12세기 사이에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상업 도시문명을 발전시켰다. 얼마 안가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스와힐리(Swahili)어라고 알려진 새로운 언어를 발전시켰다. 이 이름은 아랍어에서 왔고 “해안의 사람들”로 번연된다.
파테(Pate), 라무(Lamu), 말린디(Marindi), 몸바사(Mombasa), 그리고 랍타(Rhapta)같은 도시들은 12세기부터 15세기 걸쳐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포르투갈 인들의 간섭과 내륙지역의 무역이 불안정하게 되자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상아와 노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1832년에 잔지바르(Zanzibar)에 수도를 정한 오만(Oman)의 슐탄에 의해 다시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스와힐리어는 스와힐리는 중요한 상업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교통어(Lingua franca)가 되었다.
시에라 레온(Sierra Leone)의 크레올(Creoles)어는 프리타운(Freetown)에 해방된 노예들이 이곳에 이주하여 만들어진 언어다. 1787년에 처음으로 이곳에 해방된 노예들이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미국의 독립전쟁시기에 영국으로 도망간 흑인들이었다. 자메이카(Jamaica)에서 온 마룬(Maroons ; 도망 온 노예들) 같은 다른 흑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공헌은 영국 함선에 의해 포획된 노예선의 해방된 노예들이 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영국은 1833년에 영국에서 노예제도 금지하고 서아프리카의 해안을 순찰하는 함대를 운영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통해 이주하여 정착한 사람들이 크리오(Krio)라고 불리는 그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었고 영국의 문화에 기반을 두고 발전시켰다. 이들은 프리타운에 근거지를 두고 주로 무역에 종사하면서 이익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해안 어디든지 이주하였다.
라이베리아(Liberia)도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주로 이주하여 정착하여 미국계-라이베리아인(Americo-Liberians)들이 살게 되었다. 미국 식민지 사회(American Colonization Society)의 도움으로 1822년 소규모의 해방된 노예들이 메주라도 곶(Cape Mesurado)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정착지를 몬로비아(Monrovia)라 불렀다. 이 사회는 점점 더 성장하여 1839년에는 다른 정착민들과 더불어 라이베리아 연방(Commonwealth of Liberia)이 형성되었고 1848년에 는 독립을 하였다. 미국계-리베리아인들은 미국의 헌법을 본 따서 그들의 헌법을 만들었고 침례교회의 영향아래 강력한 미국계 문화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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