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아프리카의 민족과 문화

4. 아시아 아프리카 어족(Afro-Asiatic language Family)

Mansa Musa 2008. 7. 28. 11:51
 

아시아 아프리카 어족(阿亞語族 ; Afro-Asiatic Language Family)은 주로 북아프리카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약 1억 7천 5백만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1/3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어족은 햄-셈어족(Hamito-Semitic Family)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명칭은 구약성서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당시의 3대 민종이름 중 두 민족이 햄족과 셈족에서 비롯되었다. 이 어족에 속하는 중요언어는 모두 6가지 어군으로 세분화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고대 이집트어, 서북 아프리카 마그레브지역 사막에서 쓰이는 베르베르(Berber)어군(알제리 남부, 니제르 사막에서 사용되는 투아레그(Tuareg)어), 소말리어, 및 갈라어로 대변되는 쿠쉬(Cushitic)어군, 아랍어 및 이디오피아어들을 포함하는 셈(Semitic)어군, 그리고 차드호수 인근의 하우사(Hausa)어 등으로 대변되는 차드(Chadic)어군, 마지막으로 오모강 유역의 오모(Omotic)어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베르베르어(Berber)어군으로 약 1100만명의 화자가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4000-5000여개의 방언이 있으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60%정도가 아랍어에서 차용된 것이다. 현재 베르베르어는 하층민이 사용(불어, 아랍어는 상층민이 사용)하고 있으며 점차 감소추세에 있다. 북아프리카의 산악지대와 사하라 사막에 고립되어 있는 유목민의 언어로 투아레그(Tuareg ; 알제리 남부, 니제르 사하라 사막), 시위(Siwi ; 서부 이집트의 시위(Siwi)오아시스 부근), 누푸시(Nefusi ; 리비아 서부 드체벨(Dschebel)지방), 제나가(Zenaga ; 모리타니아와 대서양 연안), 제나티방언(Zenati ; 사막 베르베르어)등이 있다. 두 번째는 차드(Chadic)어군으로 약 125개 언어로 나누어지며 차드호를 중심으로 하는 나이지리아, 카메룬, 챠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니제르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하우사(Hausa)가 차드어군에 속하며 사용화자수가 1200만이며 제 2 언어로 사용하는 화자수는 약 1300만에 이르고 있다. 세 번째는 셈(Semitic)어군으로 20여개의 언어로 모두 1억 5천 7백만 정도의 화자수를 갖고 있다. 주로 북부 아프리카와 근동지방에 분포되어 있다. 1억 4천만 정도가 아랍어 화자이고 암하릭(Amharic)어 사용자가 약 8백만, 티그리냐(Tigrinya)어가 약 360만, 그리고 현대 히브리어가 약 300만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네 번째는 쿠쉬(Cushitic)어군으로 약 30여개의 언어 및 방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자수는 약 1500만 정도다. 이 언어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햄의 아들 이름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수단 북동부 지역과 이집트의 국경지역, 지부티, 소말리아, 에디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일부에 분포되어 있다. 베자(Beja), 소말리(Somali), 갈라(Galla), 랜딜래(Reudilla), 이라쿠(Iraqu), 음부구(Mbugu), 엔몰로, 야쿠(Yaku), 산예(Sanye)어 등이 속한다. 다섯째는 고대 이집트(Old Egyptian)어군으로 기원전 3300 전부터 상형문자로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언어중의 하나다. 라베시트어, 4세기 데모트어, 9-10세기 곱틱어등이 있는데 이슬람교의 확장으로 점차 아랍어로 대체되었고 곱틱어는 현재 종교언어로만 사용되고 있다. 여섯째로 오오모(Omotic)어군이 있는데 투르카나 호수, 오모강 상류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화자수는 약 130만명으로 월라모(Welamo ; 90만), 케파-마차(Kefa-Macha ; 17만)어가 속한다.

아시아-아프리카 어족은 홍해(Red sea)와 나일 강 사이에 있는 북동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곳에서부터 그들은 북쪽으로는 케냐에서부터 서쪽으로는 모로코까지 대강 초승달 모양의 지역으로 넓혀갔다. 그 언어들 중의 하나는 이집트(Egypt)가 남긴 상형 문자와 같은 고대 이집트어였다. 이미 석기시대부터 높은 인구밀도를 보였던 아스완(Aswan)의 북쪽 나일 강 연안에 7000년 전의 새로운 식량 생산기술이 전파된 이후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다. 이러한 농업기술은 인접해 있던 레반트(Levant ; 동부 지중해 연안 제국; 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 등)로부터 전해졌는데 밀과 보리, 소, 양, 염소, 돼지들도 전해졌다. 약 2000년 후에 그 지역에 흩어져 있던 많은 농촌 마을들이 정치적으로 제 1 왕조(First Dynasty) 지배 하에서 통합되었다.

이집트의 남쪽은 누비아(Nubia)인데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저평가되었고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북쪽으로부터 많은 영향력을 받아들였고 금과 다른 귀중한 일용품을 위해 정기적으로 이집트인들에 의해 습격을 받았다. 이것이 때때로 상당한 정치적 혼란을 가중 시겼고 때때로는 땅의 많은 부분들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기원전 2000년경 나일 강의 세 번째와 네 번째 폭포(cataracts) 사이에 위치한 동골라(Dongola) 지역에서 출현한 쿠쉬(Kush)왕국이었다. 설립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남아있는 비명(碑銘)은 이집트어로 되어 있지만 이들의 일상적인 언어는 아니다.

더 멀리 남쪽으로는, 에디오피아(Ethiopia)가 쿠시(Cushitic) 언어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들은 에디오피아의 고지대에서 테프(teff)와 손가락 기장(finger millet ; eleusine)을 재배하며 농업을 주 생산수단으로 하고 있었다. 기원전 4000년부터 3500년 사이에 아라비아 남부로부터 셈(Semitic) 어족의 이주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 한 가지의 결과는 유대교의 도입이었고 오늘날 그들을 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 ; Falasha ; 에티오피아에 사는 유대교를 신봉하는 햄(Ham)족)을 이름)이라고 부르고 있다. 더 폭넓은 문화적인 통합이 일어나서 아숨(Askum)왕국을 건설한 사람들이 출현하였다. 악숨 왕국은 기원후 500년 동안 티그리냐(Tigirnya)의 조상이었고 세계에서 강력한 왕국 중 하나를 건설하였다. 그들은 금, 상아를 포함한 귀중품을 인도양 무역로를 통해 거해하였고 또한 성경에서도 유명한 유향과 몰약도 거래하였다.  전성기에 악숨의 영토는 홍해를 지나 백나일과 청나일의 합류점으로부터 남쪽 아라비아까지 확대되었다. 기원후 4세기에 기독교가 악숨의 공식적인 종교가 되었다. 에디오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장기간 동안 지속되어온 기독교 나라가 되었다. 왕국은 6세기에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고원 지대 전체에 영향을 주었고 후에 계승되는 왕조에 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었으며 암하라(Amhara)족의 지배 하에 있던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쿠시어족의 다름 부류들은 베자(Beja), 소말리(Somali), 그리고 오로모(Oromo) 같은 목축민들 사이에서 저지대에서 발달해 나갔다. 8세기에서 시작하여 그들은 이슬람을 그들의 지배적인 종교로 받아들였다.

이집트의 나일 강에서부터 대서양에 있는 해양까지 서부 지역은 베르베르(Berber)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틀라스 산맥(Altas Mountains)의 경사면과 비옥한 계곡에서 곡물을 생산하는 농부였고 양과 염소를 기르며 살고 있었다. 나중에는 소와 낙타를 더 중시하여 경제를 발달시켰고, 낙타는 이들의 삶의 무대가 사막의 오아시스로 확대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확대는 기존에 살고 있던 나일-사하라 어족에게 영향을 주었다. 가장 영역을 확대시킨 사람들은 투아레그(Tauareg)족으로 그들은 아하가르 산맥(Ahaggar Mountains)과 에르 고원(Aïr Highlans) 지대에 주로 살고 있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그들은 많은 사하라 무역로를 지배했고 정기적으로 노예와 다른 상품을 확보하기 위해 사막의 정착 집단을 습격했다.

아시아-아프리카 어족의 팽창은 몇몇 무리들을 사막과 북 나이제리아로 이동시켰다. 가장 강력한 종족 중 하나이 하우사(Hausa)족을 포함한 차딕(Chadic)족이 출현했다. 그들은 요새화된 강력한 작은 도시로 성장했으며 주변에 있는 시골지역의 영주나 지배자들과 연방형태로 지배하고 있었다. 가작 큰 도시는 고비르(Gobir), 카치나(Katsina), 그리고 카노(Kano)인데 이들은 13세기에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각기의 도시는 자신의 영향력 하에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우자족은 무역과 숙련된 수공업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가죽, 금속, 직물을 잘 다루었다. 많은 하우자족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자신들의 기술을 펼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

아랍어는 아시아-아프리카 어족의 셈(semitic) 어족에 속한다. 아랍어 사용자들은 7세기에 대륙의 북쪽 해변 지역을 정복한 이슬람 군대와 함께 많은 숫자가 아프리카에 들어왔다. 아랍인들의 공격은 로마와 비잔티움 시대에 기독교화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시레네(Cyrene), 그리고 카르타고(Carthage)와 같은 주요 도시에 이루어졌다. 이 무렵 제국들은 무너졌고 이슬람 군대들은 아주 작은 저항을 받았다. 아랍의 군대는 성직자를 대동하고 있었고 이들은 내륙에 있는 베르베르족을 개종시켰다. 후에 무슬림 아랍인들은 9세기와 10세기 걸쳐 이주하기 시작했고 베두인(Bedouin)족같은 유목민들이 이주했다. 이러한 이주는 아라비아 반도를 강타한 가뭄으로 인해 더욱 급격하게 진전되었다. 지역경제의 불안정으로 인해 유목민들은 서쪽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베르베르족들은 산악지역을 제외하고 그들의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모로코(Morocco)의 저지대에서 아랍과 베르베르의 통합이 일어나서 마우레스(Maures)를 탄생시켰다. 여기서부터 그들은 세네갈(Senegal) 강 계곡까지 남쪽으로 이동했다. 땅을 잃은 사람들은 주로 기독교도들이었고 이들은 북아프리카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7세기 이후 아프리카가 아랍인들의 주요활동지역이 되었다. 사실 이주해온 아랍인들은 이집트인, 베르베르인,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인종적으로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아랍어는 정치적, 경제적 기회의 언어가 되었고 그 언어를 말하지 않는 것은 불이익에 처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유익했다. 그것은 종종 아랍어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졌고, 새로운 문화와 상업의 세계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