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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7.17 -- 아프리카의 정치 - 21세기 아프리카의 희망과 발전
  3. 2012.07.17 -- 아프리카의 정치 - 냉전이후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발전
  4. 2012.07.17 -- 아프리카인들에게 성(性: sex)은 어떤 것일까?
  5. 2012.07.17 -- 왜 아프리카는 저발전 되었는가?
  6. 2012.07.17 -- 아프리카의 인종과 문화집단 구분
  7. 2012.07.17 -- 아프리카 지역학 연구의 연구방법론. 아프리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 방법론
  8. 2012.07.17 -- 스와힐리(Swahili) 문명
  9. 2012.07.17 --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내전에 관하여
  10. 2012.07.17 --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다르푸르(Darfur) 내전
  11. 2012.07.17 -- 아프리카인들의 소유개념. ‘잠시 빌려다 쓴다.’ 나의 메이드 셀리나
  12. 2012.07.17 -- 조상숭배. 조상을 잘 모시고 가문을 빛내야 한다.
  13. 2012.07.17 -- 아프리카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14. 2012.07.17 -- 아프리카의 이미지와 역사․문화적 정체성
  15. 2012.07.17 -- 아프리카의 회화 팅가팅가(Tinga Tinga)
  16. 2012.07.17 -- 비밀사회-아프리카는 비밀스런 계모임을 가지고 있다.
  17. 2012.07.17 -- ‘여자와 어린아이부터!’ 여기서 시작되다.
  18. 2012.07.17 -- 아프리카인의 장로정치(Gerontocracy)와 경험의 중요성 (1)
  19. 2012.07.17 -- 아프리카에서는 나이 많으신 어른의 말씀이 곧 법이다.
  20. 2012.07.17 -- 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시간개념

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왜 탄자니아에 있는가?

2012. 7. 17. 21:49

 

 

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왜 탄자니아에 있는가?

 

 

 

세계지도를 보노라면 이상하게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이 그리기 쉽게 그리고 명료하게 직선으로 그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산과 하천 같은 자연을 경계로 국경이 그어진 반면 직선으로 그어져 있어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원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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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를 진보적이고 근대화를 위한 힘이었다고 종종 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식민주의는 사실 독재적이고 또한 거의 폭압적이었던 외국의 통치였다. 모순적이게도 아프리카 대륙의 점령과 분할이 일어난 시기는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 내부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들이 더욱 발전하던 시기였다.

 

1870년 무렵에는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점령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1884년에서 1885년 사이에 열린 베를린회의(Berlin Conference)가 역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1885년을 식민주의 시대가 개막된 해라고 할 수 있다. 베를린회의에서는 아프리카 쟁탈을 합법화했고, 유럽의 열강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하자고 공식적으로 비준했다. 이 조약에서는 유럽의 열강들이 식민지의 주권을 주장하기 전에 그 영토를 효과적으로 점령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유럽의 주도적인 군사적 산업적 국가였던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가치 있는 대부분의 식민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독일의 자극을 받은 프랑스도 1870~1871년에 벌어진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 프로이센의 지도 하에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정책이 충돌해 일어난 전쟁-역자주)에서 독일에게 잃은 알사스-로렌 지방을 보충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했다. 독일은 독일 동부 아프리카(German East Africa: 현재의 탄자니아-역자주), 남서 아프리카(South-West Africa: 현재의 나미비아-역자주), 토고(Togo), 카메룬(Cameroon) 등에 식민지를 세워 제국주의 열강이 되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함으로써 이 지역들을 모두 잃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해방자라고 칭했지만, 점령의 과정은 거의 폭력적이라 할 수 있었다. 점령은 주로 용병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들과 고용주들이 부유해지는 것 뿐이었다.

 

유럽과 아프리카간의 본질적인 관계는 노예무역의 폐지와 공산품 수출의 확산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은 비서구 세계와 교역을 강화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아프리카와 후진국으로 알려져 있던 다른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한 것은 주요 산업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 욕구 때문이었다.

 

 


유럽인들은 우세한 기술적 군사적 힘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점령할 수 있었는데, 식민화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정치적 경제적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민족주의적 경쟁과 힘의 균형, 그리고 국가의 영광을 위한 행보와 같은 정치적 요인들로 인해 식민지를 더욱 더 원하게 되었다. 또한 제국주의 역시 주요 산업 열강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장과 천연자원의 산지를 차지하여 지배하고 싶게 만들었다. 이런 지역들은 유럽인들이 경제적으로 낙후되었다고 생각하는 곳이었다. 많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아프리카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은 아프리카 제국을 차지하는 것보다는 아시아를 소유하여 유지하고 개발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제1봉인 킬리만자로 산도 이러한 식민주의의 잣대로 인해 운명을 달리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킬리만자로에 대해서 들었지만 산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지 않다. 헤밍웨이가 “킬리만자로의 눈(snows of Kilimanjaro)"이라는 작품에서 킬리만자로를 묘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정확하게 어느 곳에 눈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사람들은 킬리만자로가 아프리카에 있지만 정확히 케냐에 있는지 아니면 탄자니아에 있는지 잘 모른다. 물론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 있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또 왜 탄자니아에 속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킬리만자로는 수백 만 년 전 지질학적 융기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의 생성물이다. 그러나 탄자니아는 인간의 손에 의해 국경이 그어진 역사의 산물이다. 탄자니아의 국경은 빅토리아 호수에서 인도양을 향해 킬리만자로의 북쪽 경사면의 굽은 국경선을 제외하고는 거의 직선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국경선은 식민통치자들의 편의에 의해 그어진 것이다. 

 

킬리만자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빌헬름(Wilhelm)은 높고 큰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라고 언급하면서 그의 손자인 독일 황제에게 수여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역사책에서는 식민지 국가들이 국경선을 정하면서 얼마나 임의적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국경선을 그었는지 잘 설명해주는 실례로서 언급된다. 빅토리아 여왕과 빌헬름 황제의 이야기는 감상적이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1886년 킬리만자로의 운명이 정해질 때까지 빅토리아 여왕은 빌헬름 황제에게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았고 빌헬름 황제도 받지 않았다. 그 당시 황제는 그의 할아버지였고 그의 아버지 크라운 왕자(Crown Prince)는 황재권을 물려받기 위해 그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론은 간단하다. 탄자니아에 킬리만자로가 있게 된 자명한 사실을 독일인들은 최상의 카드를 이용하여 합법적 권한을 보장받고 싶었고 이에 대해 영국인들은 가장 현명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나중에 알고 있는 것처럼 필 수 불가결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탄자니아 국경선은 영국과 독일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그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협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동아프리카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독일과 영국은 부지불식간에 국경선을  1889년 10월 6일 독일인 지리학자 한스 메이어(Hans Meyer)는 킬리만자로 최고봉에 오른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으며 독일 깃발을 휘날렸다. 1961년 12월 9일 탄자니아 국기가 같은 장소에서 휘날림으로서 25년간의 독일의 통치와 40년간의 영국의 통치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독일의 지배기간동안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다. 1880년대에는 유럽국가들의 관심이 동아프리카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1878년의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는 단지 해안선만을 가진 지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내륙지방은 거의 개척되지 않았고 조사되어 있지도 않았다. 15세기 말에 아프리카는 포루투갈, 영국, 그리고 프랑스 순으로 항해를 통해  알려지고 있었다. 단지 네덜란드만이 희망봉에 도달했고 내류지역으로 그들의 세력을 확대시키고 있었다. ‘비공식적 제국(informal empire)'의 개념을 옹호하고 있던 영국은 정복이나 합병이 아니라 영국해군의 강력한 힘에 바탕을 둔 상업적 이익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880년에는 아프리카 어디에도 독일 식민지는 없었다. 그러나 독일은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지역에서, 특히 잔지바르(Zanzibar)에서 경제적으로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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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정치 - 21세기 아프리카의 희망과 발전

2012. 7. 17. 21:47

 

 

아프리카의 정치 - 21세기 아프리카의 희망과 발전

 

 


 

아프리카는 통계수치로 보면 열악한 상황이다. GDP는 2009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5%이며 1인당 840불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개발지수(HDI)는 0.465로 세계평균 0.729에 비해 현저히 낮고 아프리카 국가 중 HDI가 가장 높은 남아공도 0.647로 세계에서 121위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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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21세기에 들어와 ‘블루 오션’으로 평가받으며 희망과 발전의 세기를 맞고 있다. 민주화와 좋은 통치(Good governance)에 바탕을 둔 정치적 안정, 그리고 지속가능한 경제적 발전은 지금 현재 아프리카 국가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과제들이다. 어쩌면 그 어느 시기보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발전을 위한 기회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동서냉전체제의 종식으로 인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더 이상 이념과 체제에 따라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다당제 도입, 자유선거실시, 세계자본시장체제 편입 등 개혁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아프리카는 세계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 10년 동안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가 발전하였으며 경제성장이 가속화되어 아프리카 대륙에 희망이 싹튼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경제성장률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전체 GDP의 5.9% 성장함으로서 지난 10년간 평균 5%대를 상회하였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개혁‧개방과 함께 신중한 거시경제정책을 실시함으로서 독립이후 최근 10년 동안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아프리카는 2003년 이후 수출입 교역량인 두 자리 수의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였고 2008년 아프리카 FDI 유입액도 풍부한 지하자원과 투자여건의 개선으로 876억 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IMF에 따르면 정정 불안과 권위주의적 정부형태가 지난 20년 동안 크게 감소하였고 1990년대 이후 국가 간 분쟁과 내전도 급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현재 심각한 내전지역은 코트디브아르, 수단, 소말리아뿐이다.

 

 

2010년 2월에는 서아프리카의 니제르에서 구데타가 발생하였고 3월에는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충돌해 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21세기 아프리카 정치상황은 분명히 민주주의로 향하고 있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다당제에 기초한 선거를 실시하고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아프리카 각국은 AU와 NEPAD(The New Partnership for Africa's Development)를 통해 외교적 협력을 강화함으로서 위기상황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정치적 안정을 유도하고 있다. UN도 냉전종식이후 국제사회의 국지적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서 정치적 안정을 이루어가고 있다. 지금 현재 UN 안보리에서 논의되고 있는 의제 중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에 관한 문제로 아프리카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48개국 중에서 다당제와 인권‧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국가’는 77년 단지 3개국이었으나 88년에는 11개국으로 늘어났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국가는 25개국에서 14개국으로 감소한 것으로 발표하였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상황이 역사적으로 식민통치의 유산이며 독립이후 동서냉전 체제와 이념으로 인해 발생된 것이라는 주장은 21세기에는 너무 진부한 설명이 되었다.  일당제(one-party system), 후원자 고객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 독재, 군사 쿠데타, 부정부패 등 이제 아프리카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돌아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20세기까지 아프리카의 운명을 외부에서 결정하였다면 21세기는 아프리카인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들어와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주변부화 된 아프리카를 국제사회의 일부분으로 끌어내는 것이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동안 직면했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발전을 스스로 만들고 지속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수많은 종족 또는 부족으로 구성된 아프리카 국가들의 인종적 긴장은 항상 부도덕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인종정치(ethnic politics)’는 특히 2007년 케냐의 대통령 선거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권을 잡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방법으로 사용되었고 정치적 불안과 동요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케냐의 정치적 소요와 불안정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 있어 부족적, 인종적 분쟁이 원인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democracy)’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각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이룬지 40여년이 이미 지나고 있고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의 역량에 따라 민주주의가 정착되어가고 있는 탄자니아나 보츠와나와 같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케냐에서 발생한 종족적 폭력은 선거부정으로 야기되었으나 종족간 폭력을 종식시키는 궁극적인 방법은 선거 민주주의의 회복, 책임 있는 정치, 나아가 민주주의의 완전한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점은 강력한 민주주의 제도(입법, 사법, 행정)가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선의(goodwill)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수준만큼 민주주의화 되어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남아공과 르완다는 변화하는 21세기 아프리카의 현주소를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차별정책을 실시했던 백인정부에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이끄는 흑인정부로의 정권교체는 아프리카의 마지막 독립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황제와 종이 그 신분을 뒤바뀐 역사적 사건으로 세계 역사상 ‘위로부터의 민주화’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한 남아공 정부는 선거를 통해 3번의 정권교체를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이룩하며,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사회-경제적, 문화적 민주화를 이룩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남아공이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또 지속시키느냐가 아프리카의 발전의 지표로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정권교체 이후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제외하고 점진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향후 남부아프리카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지도국으로 그 위상을 강화시켜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아공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전체 GDP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 영향력이 강력하며 정치적으로 남부 아프리카 개발동맹(Southern African Development Community: SADC),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 AU)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지도국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위상은 2010년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었고 G20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아프리카 대표로 참가함으로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르완다는 1994년 후투(Hutu)와 투치(Tutsi) 족 인종분규로 제노사이드가 발생했지만 중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발전이 빠른 국가에 속한다. 2010년 실질 GDP 성장률이 2010년 약 6%로, 2011년에는 약 7.5%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2010년 8월 총선에서 이변이 없는 한 현 폴 카가메(Paul Kagame) 대통령이 다시 선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르완다 정부가 또 다른 차별과 권위적 통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노사이드의 상처를 딛고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1999년 만들어진 국가통합 및 화회 위원회(National Unity & Reconciliation Commission: UNRC)는 르완다의 문화적 전통을 일깨우면서 국가의식과 국민의식을 고양시키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21세기를 기회의 시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산적해 있다. 부정부패의 척결, 여성의 진출과 기여의 확대, 아프리카 역내 교류의 확대와 지역협력의 강화, 전세계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협력.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적 고려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가난을 줄여나가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아프리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얼마나 진출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에 대해 편협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막연히 ‘마지막 남은 미지의 대륙’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자원’과 ‘시장’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할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진출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인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열악하다. 미래를 위해 적극적인 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국가와 기업 국민들이 진출을 서둘러야 할 곳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처럼 국가주도의 대규모의 투자와 진출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틈새를 노려야 한다. 아프리카인들은 거의 500년 동안 서구 식민 지배를 받아왔다. 아주 익숙하게 식민지배 국가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국가들에 대해 ‘이 사람들이 이번에는 무엇을 뺏어가려고 오는 걸까?’라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이익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신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현지화 전략을 발휘해야 한다. 아프리카 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친구로서 다가가려는 일관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렇게 아프리카 학(African studies)을 연구하는 한편 현지에 학교와 한국학 센터를 건립하여 한국을 알리고 우수한 아프리카 인재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지한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익을 챙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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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정치 - 냉전이후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발전

2012. 7. 17. 21:46

 

 

아프리카의 정치 - 냉전이후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발전

 

 

 

30년 이상의 부패와 독재 정치를 겪고 난 후였던 1990년대 초에는 실제로 아프리카 전 대륙에서 강력한 정치적 개혁과 민주화를 보여주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아프리카인들은 1989년 베닌에서 시작하여 1990년대 초 여세를 몰아 독재적 지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숨막힐 듯 답답하고 악화된 경제와 구 소련 및 동구 유럽의 몰락으로부터 자극 받은 아프리카인들은 다당제 정치체제와 시민의 자유 확대, 자유 선거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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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유화의 물결은 남아공과 나이지리아의 민주화 과정으로 인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남아공은 1990년 2월 1일 드 클레르크(F.W. de Klerk)가 300여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초유의 인종차별정책 폐지를 선언하였고 1994년 4월 최초의 다인종 선거로 넬슨 만델라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됨으로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또한 1999년 6월에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고 타보 음베키(Thabo Mbeki)의 주도아래 인종적․문화적 다양성(multi-cultural diversity)을 추구하며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사회-경제적, 문화적 민주화 과정을 시도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남아공의 민주화는 아프리카 역내 민주화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부 아프리카의 중심국가로서 남아공은 이 지역 분쟁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1998-2001년 비동맹 의장국으로서 제3세계의 중심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남아공의 “기적”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식민주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협과 화해를 통한 위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960-66, 1979-83 그리고 1985-99년에 걸쳐 군사정권이 들어섰던 나이지리아는 1999년 5월 오바산죠(Olusegun Obasanjo) 대통령이 이끄는 민선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더 이상 아프리카가 정치적으로 후진적이라는 비판을 근절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폭력적인 정권 획득의 대부분은 구데타나 군사 개입을 통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1960년 이후 25명의 대통령과 수상들이 정치적 폭력의 결과로 정권에서 쫓겨났다. 1952년 이집트 혁명이후 아프리카에서 85번의 폭력에 의해 정권 교체가 있었으며 모두가 폭력적인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90여개의 정부가 전복되었다.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31개국이 정권교체를 당했고 이들 중 22개국은 유사한 종류의 정권교체를 1번 이상 경험했다. 베닌, 부룬디, 가나, 나이지리아, 수단, 시에라 레온과  우간다는 최소한 5번의 군사적 정권 교체가 있었다. 군사정권은 일당제와 다당제 국가 모두에서 발생했다.

 

 


보츠와나와 모리셔스만이 독립 이후 다당제를 유지해 왔으며 1994년 7월 군부의 권력 탈취가 있기 전까지는 감비아도 다당제를 유지하였다. 짐바브웨와 나미비아는 독립 이후 다당제 국가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기니아, 말리, 니제르같은 나라들은 독립과 함께 일당제를 채택하였는데 일당제는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게 일반적인 정당 체제로 받아들였다. 구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의 일반적인 모습은 점진적으로 군사정부를 민간정부형태로 이양해가고, 또한 군부 정치 체제를 일당 독재 체제로 변형시켜나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가나와 나이지리아는 예외적으로 독립 후에 민주주의와 군정이 번갈아 가면서 나타났다. 1977년까지 이집트, 모로코, 세네갈에서는 다당제를 부활시켰으며 1980년대에는 튀니지아, 수단, 알제리, 라이베리아, 코모로스 등지에서도 다당제가 뒤따라 부활되었다. 그 후에 라이베리아와 수단에서 독재주의가 부활하고 라이베리아가 내전에 휘말리게 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초 다당제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소용돌이의 초석이 되었다.

 

1980년대의 마지막 해에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권위주의적 권력 질서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한 저항은 폭 넓은 대중의 지지속에 일어났으며, 경제적인 빈곤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또한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힘을 얻게 된 아프리카 지원국들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정부에게 경제와 정치 체제에 대한 개방 압력을 가했다. 1989년 11월, UN의 감독 하에 치러진 독립전 나미비아의 총선은 아프리카 제 2의 해방 이라 일컬어진다. 이것은 1990년 전반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일당제 권력 독점이 다당제 선거 제도로 상당히 빠르게 이행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0년 3월 나미비아가 독립을 맞았을 때, 코모로스는 최초의 경선을 치루었고, 가봉과 코트 디부아르도 같은 해에 코모로스의 전철을 밟았다.

 

 

1991년에는 케이프 베르데, 상토메 프린시페, 베닌, 잠비아에서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1997년 10월까지 45개 국가에서 121번의 다당제 선거(53번의 대통령 선거, 68번의 입법 선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41개국이 존재함과 동시에 나이지리아, 부룬디, 시에라리온, 그리고 콩고 브라자빌 등 4개국은 군사정권으로 돌아갔다. 이 같은 나라 대부분은 자국의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위기의 상황 아래서 다당제를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알제리, 앙골라, 니제르, 그리고 오랜 다당제 전통을 가진 감비아를 포함해서 다당제가 새로이 도입된 곳에서는 불안정한 모습으로 군정권의 개입에 의해 다당제가 파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7년 중반, 이 네 나라들은 다당제를 부활시키고, 문민 정부로 회귀하였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많은 국가에서, 기존의 정치체제들은 야당의 형성과 공개된 선거제도의 실시를 허용했다. 사하라 이남 지역의 48개국 중 1997년 말까지 경쟁적인 다당제 선거를 치루지 않은 국가는 4개국뿐이었다. 실제로 1990년대 초의 아프리카는 세계를 휩쓸고 있는 민주화의 분명한 ‘물결'에 완전히 동참하고 있었다. 그 정치적 변동의 폭은 1994년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 합법적으로 일당 체제의 국가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정치적 개혁과 민주화를 향한 아프리카의 다양한 추이는 21세기 초에 여러 가지 요인들이 아프리카 국가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정치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내부에서 정치가 이루어진 전반적인 배경에는 빈곤과 의존적인 경제라는 식민주의의 산물과, 후원자-고객(Patron-Client Network)중심의 정치 체제, 그리고 냉전체제의 붕괴와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같은 외부의 정치적 경제적 세력의 영향력 증가가 포함된다.

 

아프리카는 중동 근처에 위치하여 남대서양과 인도양에 가까운 지리적 위치와 풍부한 광물 자원을 가진 덕택에, 냉전 기간 동안에는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전략적 지역'으로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아프리카에 상당한 지원을 한 것은 미국이었고, 그보다 양은 적었지만 소련 연방도 거들었다. 소련 연방이 와해되고 소련이 동구 유럽에 대한 통제권을 잃으면서, 아프리카의 중요성은 크게 떨어졌다.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과 케냐 등 미국의 고객국 뿐 아니라 나머지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원조가 삭감되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러시아와 동구 유럽에서 대체 자원을 공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아프리카의 전략적인 광물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었고, 아프리카 전체의 경제적 침체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불리한 경제적 상황은 1990년대 후반 국제 정치 무대에서 변화가 일어난 배경이 되었다.

 

다시 말해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일당체제존립 정통성의 이론적 기반을 붕괴시켰고 이들의 원조가 단절되고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념은 이제 아프리카 국가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으며 새로운 국제질서의 변화에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간 아프리카의 정치적 궤적을 형성한 사회적, 경제적 정황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들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화를 일으키는 민족, 지역, 종교, 하부민족적 차이로 인해 사회구조가 나뉘어졌다고 주장한다.

 

 

2002년 9월 23일 인종갈등으로 인한 구테타가 일어난 서아프리카의 코트 디브아르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발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머나먼 길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이러한 민주화를 향한 운동이 가지는 가능성이 커 보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경쟁 다당 체제의 민주정치가 쉽게 구축될 수 있다거나 아프리카가 지닌 무수한 문제들 사이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우려할 만한 것은 1990년대 초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비교적 민주적 정부로의 성공적인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후반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민주화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은 감소되었다. 이러한 이유는 서구선진국가들이 상업적 이익이 있는 지역에서는 민주적 개혁이나 정권교체를 그다지 강요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행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1989년이래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프리카의 정치상황은 발전하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장애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모든 부문에 걸쳐 정치 구조에 근본적인 개혁이 있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모든 국가들은 정치적 자유화를 실행했고, 일당 정부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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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들에게 성(性: sex)은 어떤 것일까?

2012. 7. 17. 21:44

 

 

아프리카인들에게 성(性: sex)은 어떤 것일까?

 

 

 

모든 사회는 성을 규정하는 어떤 규칙이 있으며 성에 따라 고유의 역할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서구인들의 성적 가치관은 성은 쾌락을 주는 것으로서 생각하고 있는 반면 우리에게 성은 유교주의의 영향으로 신성한 것으로서 또 인간이 누려야할 쾌락의 일부로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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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어떤 아프리카 사회는 결혼에서 성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여 처녀성(virginity)에 대하여 프리미엄이 주어진다. 

 

결혼한 여성이 처녀로 밝혀지면 당연히 보답이 주어진다. 처녀임을 나타내는 피는 생명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 생명의 샘이 무용지물로 흘러버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신부와 그녀의 가족이나 친척이 인간이 인간을 출산한다고 하는 일의 신성한 존엄성을 유지해왔다고 하는 사실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피는 신성한 것이고 오직 결혼만이 이 신성한 피를 흘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처녀성은 육체적 순결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순결도 상징한다. 따라서 신랑이 숫총각인 경우에도 신부의 부모, 신랑자신, 그리고 온  친척들에게 그보다 큰 영광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바토로(Batoro)족과 아칸(Akan)족은 결혼 첫날밤에 신부가 완전무결한 처녀일 때는 신부의 숙모에게 소 한 마리를 주고 친정어머니에게는 소와 처녀를 나타내는 피가 묻은 홑이불을 보내준다. 이 핏자국은 신부의 어머니는 물론 그 모든 친척들에게 가장 큰 신망을 안겨준다. 반면에 케냐의 킾시기스(Kipsigis)족의 경우 여자가 성년식(initiation)전에 성관계를 맺어 임신을 하게 되면 신성모독의 행위로 간주된다. 이런 일은 최악의 상황을 의미하며 과거에는 여자와 그녀가 낳은 아이는 사회로부터 추방당했다. 그리고 추방이라는 의미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우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결혼 전의 성관계가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성이 사회적으로 이용되어 ‘친밀한 관계, 농(弄)할 수 있는 관계(joking relationship)’ 로서 친절의 표시가 되는 지역도 있다.

 

이런 관습은 아프리카와 북부 아메리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퍼진 예는 남자와 아내의 형제자매(처남, 처제)와의 관계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남자형제와 여자형제의 아들사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손녀사이에 이런 관계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외설적이면서도 무례한 행위나 언어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러한 관계의 극단적인 예는 성의 제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손님이 내방했을 때 주인이 자기의 아내(딸이나 혹은 누이도 가능)를 그 손님과 동침하게 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한 형제들 모두가 그 형제들의 아내들과 성교를 할 수 있는 꼭 같은 권리(아내도 수많은 잠재적인 ‘남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마사이(Maasai)족의 경우 같은 통과의례를 지낸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아내들과 성관계를 가질 수가 있다. 또 남편이 불가피하게 아내와 떨어져 살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그 남자의 친구(형제관계에 있는)가 그의 아내와 성교를 한다. 이는 성적욕구로 그녀가 탈선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 아버지가 없는 동안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버지가 누구인가가 중요하기 보다는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으며 사회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이와는 반대로 일정한 거리를 두거나 ‘회피’를 해야 하는 관계(Avoidance relationship)도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사위와 장모는 일정한 사회적인 거리를 유지(장모회피 ; mother-in-law avoidance)해야 하며 또 심할 경우에는 접촉을 아예 금지시키기도 한다. 이런 ‘회피(avoidance)'관습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사회에서는 장모에게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사회에서는 남자가 그의 형제의 장모들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회피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회에서 장모의 여자형제들에게도 비슷한 회피가 이루어지기도 하며 아내의 할머니에게까지도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간다(Ganda)족은 남자는 장모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할 수 없으며 갈라(Galla)족은 남자는 장모와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장모의 이름을 언급할 수 없다. 또한 장모가 마신 컵으로 우유를 마실 수도 없으며 장모가 요리한 음식을 먹을 수도 없다. 이는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아프리카 전통사회의 경우 사위와 장모의 나이 차가 많지 않고 어떤 경우는 같은 연배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회피관계는 그의 아내의 남자친척들에게도 일정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아내의 아버지에게는 당연한 일이며, 아내의 아버지의 남자형제들과 아내의 어머니의 남자형제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토로(Toro)족의 경우 장모와 사위의 회피보다도 사위와 장인의 회피가 더욱 엄격히 나타난다. 또한 우간다의 렌두(Lendu)족의 경우 장인은 그의 딸이 심각한 병이 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위를 방문할 수 없다. 그러나 장모는 결혼한 지 두 달 후에 그의 사위와 딸을 방문할 수도 있다.

 

 

넷째로 제의를 시작할 때나 끝날 때 부부간이나 혹은 다른 제식 집행자와의 실제적인 혹은 상징적인 성교를 경건하게 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성이 거룩한 행위 혹은 내적, 정신적 가치를 의미하는 하나의 ‘성례(聖禮)’로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며 표시이다.

 

 

다섯째로 ‘정당한 성의 사용(proper uses of sex)’은 신성한 것이며 특정한 때에 성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고 하는 금기나 제의적 규제를 범하면 그것을 의례를 깨뜨린 범죄가 된다. 특히 간통이나 간음은 아주 가혹하게 취급된다. 어떤 사회에서는 그 범인(특히 남자)을 매로 때리고 돌로 쳐서 죽인다. 또 보상을 지불하게 하고 목을 치거나 몸의 한 부분을 절단해버리기도 한다.

 

 


아칸(Akan)족의 경우 만약 어떤 사람이 여자와 간통을 하였다면 남자에게는 간통요금을 지불할 것이 요구될 수 있으며 아이가 생긴다면 여자의 남편에게 속하게 된다. 왜냐하면 아칸족은 ‘도둑은 어린아이가 없다(A thief has no child)'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가 남자의 부담이 아니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생각될 수 도 있지만 아프리카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아이가 없는 사람은 곧 ’자신을 기억해줄 사람이 없는 것“이 되므로 불행한 것이며 죽은 것이기 때문에 좋아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부끄러운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부모의 성기를 본다든가 그것에 대한 이야기(농담)를 한다든가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커다란 죄로 여긴다. 성기는 생명의 문이다. 그래서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성기와 궁둥이를 가장 조심스럽게 가린다. 전통적인 아프리카인들의 눈으로 보면 성기와 궁둥이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것이 ‘벌거벗은 것’이다.

 

니야큐사(Nyakyusa)족의 경우 성액(性液)이 아이들에게 유해하다고 생각.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 아내가 남편을 멀리하든가 성교 후에 부인이 몸을 말끔히 씻든가 한다.

 

아울러 아프리카인들이 가장 분하게 여기며 화를 내는 경우는 부모의 욕을 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욕이 심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너는 너의 부모에게 교육을 그렇게 받아서 이 모양이야’라고만 해도 얼굴이 울그락 붉으락하고 덤벼들던지 아니면 금세 눈물을 쏟아내면 엉엉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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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프리카는 저발전 되었는가?

2012. 7. 17. 21:42

 

 

왜 아프리카는 저발전 되었는가?

 

 

 

여타 다른 지역보다는 달리 아프리카의 가장 널리 퍼져있는 문화특질들도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아프리카인들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자연환경과 그들 스스로 자연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는 자연에 대한 적응력의 결과로서 자연의 한 부분 또는 영역으로서 발전했다. 즉 환경의 다양성은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와 주목할 만한 신체적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아프리카가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발전된 국가로 되지 못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질문에 아프리카의 역사적 환경적 요인이 적절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토양과 물이 다른 지역에 비해 척박하거나 충분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충분한 식량생산을 가능하지 못하게 한 주된 원인이었다. 둘째, 새로운 생각과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전파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셋째,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질병(malaria, tsetse fly)이 발전을 저해했다. 넷째, 강력하고 거대한 정치적 통일체(political entities)가 없었다. 아산테(Asante), 부간다(Buganda), 줄루(Zulu) 그리고 소코토(Sokoto)같은 왕국들은 유럽이나 아시아처럼 거대한 정치적 통합체가 움직일 수 있는 많은 인구와 자연자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또한 문화적 이질성과 낮은 인구구성은 조그만 국가들이 모인 모자이크 같은 상태를 유지하였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기술의 교환 같은 효과를 노릴 수 없었다.

 

다섯째, 위와 같은 설명으로는 아프리카의 저발전을 설명하는데 분명히 충분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 단계에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사항이 바로 노예무역이다. 노예무역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유효노동인구의 손실.

 

② 노예를 잡아들이는 방법은 삶의 토대를 파괴, 사회적 불안 가중.

 

③ 경제적 폐해. 의존적인 경제활동과 역내 무역의 파괴, 그리고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가져오게 되었다.

 

결국 노예무역은 인적자원 및 물적자원의 착취와 아프리카국가들의 실질적인 붕괴를 가져오게 되었다.

 

 


여섯째, 식민지배와 착취적인 통치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는 인종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띄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주민이 대규모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아공의 백인들은 자신들 스스로 유럽의 백인들과 동일한 인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Afrikaner'라고 부르며 아프리카의 또 다른 인종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이메리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서처럼 토착민이 멸종하거나 미미한 존재로 남아있지 않고 강력한 중요인종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의 인종적 유입과 우월적인 정치, 경제, 문화적인 지배는 독립후에까지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게으르고 나태하며 과거와 현재만을 중시하는 아프리카인들의 민족성을 들 수 있다. 물론 위에 열거한 모든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원인 분석은 인종편견적인 발언으로 자제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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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인종과 문화집단 구분

2012. 7. 17. 21:41

 

 

아프리카의 인종과 문화집단 구분

 

 

 

 

아프리카는 현생인류가 처음 나타난 곳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는 곳으로 해부학 연구결과 지금의 아프리카 종족들은 사하라 이남에서는 약 1 만년 전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는 그보다 조금 늦게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인구는 지리학상 북부는 유럽계 민족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남부는 아프리카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아프리카 국가에서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프리카 토착민들이다. 남아공은 백인이 전체인구의 약 11%정도를 차지하며 이밖에 짐바브웨, 잠비아, 나미비아, 모잠비크, 케냐, 세네갈 등은 백인이 비교적 많이 살고 있다. 이밖에 주요소수 민족으로는 케냐와 남아공에 인도인들이 살고 있으며 남아공에는 새로운 인종으로 분류되는 혼열인종인 칼라드(Coloured)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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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인종, 종족, 민족이었으며 그 수는 거의 2034개에 달한다. 그 대부분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독립된 사회구성단위인 종족집단으로서 공통된 문화정서와 일체감을 갖고 있으며 특히 구성단위별로 고유의 독자적인 언어와 종교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 기준은 다르게 적용되지만 아프리카 인종을 나누는 기준은 피부색(Skin colour), 머리스타일(Hair form), 신장(stature), 두상(Head shape), 얼굴형태(Face), 코의 생김새(Nose)에 따라 구분한다.

 

먼저 가장 수가 많고 넓게 분포되어 있는 인종은 ‘진정한/숲속의 흑인(True/Forest Negroids)’으로 불리는 흑인들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주로 살고 있다. 흑색인종이라고도 하며, 몽골로이드 ·코카소이드와 함께 인류의 3 대 인종군을 이룬다. 거주지역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오세아니아 일부도 포함된다. 피부색은 갈색에서 검정색이 나타나고 짙은 것이 공통 특색이지만, 모두 같은 조상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피부색이 짙은 것은 색소량이 많기 때문이며, 멜라닌과 각질층으로 열대의 강한 자외선을 막는다. 땀샘의 기능도 왕성하여 열대에 잘 적응하고 있다.

 

특징은 피부색 ·땀샘의 기능 이외에 검정색의 곱슬머리, 양털 같은 머리, 고수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장두(長頭), 이가 돌출한 턱, 가로 퍼진 납작코, 두꺼운 입술, 위팔에 비해 긴 팔뚝, 몸통에 비해 긴 다리 등이 두드러진다. 가슴은 넓고 편평하며, 엉덩이는 뒤로 돌출해 있고, 장딴지가 발달하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모두 같지는 않다. 피부색도 세네갈 사람들의 흑단색(黑檀色)에서부터 부시맨 등의 담갈색까지 가지각색이며, 신장면에서도 평균 180cm라는 세계 최장의 나일강(江) 상류 주민도 있고, 평균 140cm인 세계 최단의 피그미족도 있다.

 

 


니그로이드 인종들과 그 분포은 몇 계통의 인종이나 아(亞)인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단 아인종은 서아프리카 삼림과 초원에 사는 전형적인 흑인이다. 피부색은 검고, 장두이며, 키가 크다(약 170cm). 또 몸매가 날씬하고, 코도 지나친 납작코가 아니다. 기니 아인종은 수단 아인종보다 몸집이 약간 작고, 피부색이 덜 검으며, 코가 매우 퍼진 사람도 있다. 적도 삼림에 사는 콩고 아인종은 그보다 키가 더 작고(160∼165cm) 중두(中頭)이며, 체모가 나있고 다리가 짧다는 점에서 수단 아인종과 다르지만, 색이 검고 턱이 돌출해 있으며, 입술이 두껍고 코가 퍼져 있다. 그 남쪽에는 남아프리카 아인종과 남부 ·동부 반투 아인종이 있는데, 피부색은 담색(淡色)이며, 중키(168cm)이고, 장두 ·납작코 ·고수머리이다. 턱 돌출은 심하지가 않고 이목구비가 단정하다. 나일로틱 아인종은 나일강 부근의 강변 ·소택지 ·초원에 사는 사람들인데, 키가 크고(178cm) 장두이며, 코가 높고 몸집은 매우 가늘다. 얇은 입술, 넓은 이마, 몹시 긴 다리, 마른 몸매 등은 지금까지 말한 흑인과 뚜렷이 구별되는데, 에티오피아 인종처럼 옛날 아프리카 북부에서 백인과의 혼혈로 생겨났을 것이다.

 

니그로이드 인종인 피그미는 적도 남북의 카메룬과 대호수지역(Great Lake Areas) 사이에 사는 사람들이며, 키가 매우 작다(137∼159cm). 대부분 채집수렵민이지만, 반투어를 사용하는 주변의 흑인과 접촉하여 농경에 종사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피부색은 그다지 검지 않고 중두이며, 긴 몸통, 짧은 다리, 비교적 긴 팔이 특징이다. 다른 흑인보다 체모가 많고, 코는 매우 퍼져서 찌부러진 것처럼 보인다. 또 맥박이 느리고 피지선(皮脂腺)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등 생리적인 특징이 있다.

 

 

두 번째로 다른 인종집단은 코이산(Khoisan) 인종집단이다. 칼라하리 사막 근처에 사는 산족과 코이코이족을 인류학자들은 코이산 인종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들은 일찍이 북 ·동아프리카로부터 남아프리카까지 널리 분포했으나, 북에서는 반투 흑인에게 밀리고, 남에서는 백인의 압박을 받아 지금과 같은 불모의 환경으로 쫓겨났다. 누르스름한 피부색과 가늘고 치켜 올라간 눈이 몽골로이드와 비슷하지만, 인종적으로 근친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른 몸매, 돌출한 엉덩이, 머리가죽에 달라붙은 고수머리 등이 특징이다. 산족은 키가 작고(155cm) 중두이며, 코이코이족은 그보다는 키가 크고(161cm) 장두이다.

 

이 인종집단은 부쉬맨(Bushmen)과 호텐토트(Hottentots)족이 속하는데 이 명칭들은 남아공의 백인 아프리카너들이 ‘수플사이를 다니는 작은 사람들’ 그리고 ‘딸깍음(click sound)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비하하여 부르는 말로 원래는 산(San)과 코이코이(Khoikhoi ; 사람중의 사람이라는 뜻)로 불리어져야 한다. 이 인종은 키가 약 150 cm 이고 피부는 노란색과 갈색의 중간정도이며 주름이 많은 편이다. 검정색의 머리는 일반적으로 짧으며 나선형으로 감기어져 있다. 특히 여자들은 엉덩이(지둔(脂臀))가 많이 튀어나와 있고 소음순(小陰脣)의 기형적으로 큰 것으로 유명하다. 코이코이족일찍이 남아프리카 서해안에 널리 분포하여 살았으나, 백인(白人)의 압박에 의해 현재는 나미비아의 일부와 보츠와나에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주(州)에는 컬러드라 불리는 백인과의 혼혈이 많이 있다.

 

 


세 번째 인종집단으로는 북부 아프리카의 코카소이드(Caucasoid)인종이다. 이들은 사하라 이남지역에는 최근에 유럽과 아시아로부터 들어왔으며 토착인종은 아니다. 사하라 이북의 아프리카지역으로 이곳에는 주로 햄1), 셈족(아프로-아시아틱어족) 계통의 언어를 쓰는 종족들이 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종족인 베르베르족은 모로코에 가장 많고 튀니지에는 소수만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 결과 문화적인 접촉과 타종족과의 결혼을 통해 셈어를 사용하는 아랍인들에게 동화되었다. 셈어를 사용하는 아랍인들은 여러차례에 걸쳐 아라비아에서 북부 아프리카로 이주해왔는데 이들이 아프리카에 처음 유입된 것은 7세기 경이었다. 마그리브2)문화의 특성은 이러한 인종간 혼합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아프리카 민족을 문화적으로 나누어 연구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사회적, 정치적 성격이 서로 다른 구성단위들을 하나의 커다란 문화집단속에 묶으려는 시도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인류학자 G.P. 머독이 아프리카 대륙을 55개의 종족집단으로 구성된 11개의 주요 구성단위로 나누었는데 이는 인종이나 언어의 일체성보다는 오히려 사냥이나 목축등 생활방식으로 나눈 것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문화지역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방식은 북부, 서부, 중부/중서부, 동부, 그리고 남부(마다가스카르 포함) 지역등 지역으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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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햄족(Ham) : 북아프리카 및 북동아프리카의 코카소이드(백인)계(系) 주민. BC 5000년경 아라비아 남부로부터의 이주민이 나일강(江) 하구에 정착하여 농경을 시작하여 점점 나일강 유역과 지중해 연안을 따라 퍼져 나갔다. 고대 헤브라이인은 구약성서에서 노아의 아들 함의 자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쪽의 함족은 이집트 ·누비아 ·에티오피아 ·베자 ·아파 ·소말리 ·갈라 등으로, 나일 하구와 상류의 계곡, 고지초원(高地草原), 홍해(紅海) 연안의 건조한 스텝, 내륙에 가까운 사바나에 살고 있다.
나일강 유역에서는 집약적인 관개농업(灌漑農業)으로 밀 ·보리 등을 생산한다. 그 밖의 건조지대에서는 피 ·옥수수 ·콩류의 조방농경(粗放農耕)을 하고 있다. 베자와 갈라의 일부는 목축을 주로 하고, 북부는 낙타, 남부는 소 외에 염소와 양을 많이 사육하여 고기 ·우유 ·버터를 만든다. 둥근 토벽에 원뿔 모양으로 된 초가지붕의 주거가 많으나, 도시에서 천일건조(天日乾燥)한 기와나 돌을 쌓아 벽토(壁土)를 바른 직사각형의 가옥도 보급되어 있다.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경우는 소인수(小人數)의 가족군으로 나뉘어, 풀이나 야자잎의 거적으로 덮인 텐트에 생활하면서 이동한다.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지만, 에티오피아는 4세기 초부터 이집트의 콥트파(派) 그리스도교를 믿고, 현재도 국교로 삼고 있다. 동쪽의 함족은 콧대가 곧고 입술도 두꺼우나 돌출해 있지는 않다. 머리털은 검고 고수머리이며, 피부색은 흑인종과의 혼혈 정도에 따라 황갈색에서 흑갈색으로 다양하다.
서쪽의 함족은 키레나이카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의 베르베르족(族)과 사하라 사막의 투아레그족, 나이지리아 북부에 많은 후르리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조상은 BC 4000년에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살면서 이집트로부터 재배식물과 가축을 들여왔다. BC 2000년경 베르베르족은 사하라 사막을 넘어 수단의 흑인과 통상하고 이집트 문명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BC 1000년 이후로는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가 차례로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므로 함족의 일부는 사하라 사막의 남쪽으로, 또 일부는 지중해를 따라 서쪽으로 밀려났다. 7세기부터 아라비아의 이슬람교도 침입이 빈번해져 함주민은 문화 ·사회 ·언어 ·종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10세기 이후의 베두인족의 대량 이주가 함족의 남하와 목축에 대한 의존을 크게 촉진시켰다. 지중해와 대서양 연안지방에서는 보리 ·밀 ·포도 등의 과수재배, 산지에서는 돌로 쌓은 계단식 밭에서 보리 ·채소 ·올리브 등을 재배한다. 아틀라스 산지에서는 이동목축을 하고 있는데, 여름에는 고지에서 소 ·양 ·염소를 기르고 겨울에는 골짜기에 방목한다.
또한, 사하라의 북변에서 건기를 지내고 우기에는 사막으로 이동하는 목축민도 많다. 사하라의 스텝지대에서는 투아레그족 ·후르리족 ·베르베르족의 일부가 낙타와 소의 대규모 유목을 한다. 북부의 농경민은 돌벽에 통나무를 얹고 진흙을 덮은 각형(角形) 가옥에, 목축민은 낙타나 양의 모피로 만든 텐트에서 산다. 남쪽 지방에는 천일건조한 기와집이 많다. 피부색은 밝은 갈색에서 짙은 갈색까지로 다양하다. 머리털은 검고 곧으며, 다소 단신(短身)으로 유럽 남부의 주민과 공통되는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북아프리카의 함족에서는 소수이지만 푸른 눈동자와 금발의 어린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2) 마그레브(Maghreb) :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아프리카 북서부 일대의 총칭. 마그리브(Maghrib)라고도 한다. 이 말은 아랍어로, 동방(東方:Mashriq)에 대하여 서방(西方:땅의 끝)을 뜻하는 아랍어이다. 이슬람의 ‘동방세계’가 아랍인과 페르시아인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데 대하여 ‘서방세계’는 아랍화한 베르베르인이 중심이 되며, 문화적으로도 많은 차이가 있다. 7세기 말부터 이슬람 왕국의 흥망과 이합집산이 되풀이되어, 19~20세기에 트리폴리타니아가 이탈리아령이 된 외에 서방은 프랑스령으로 분할 ·통치되었다. 1950년대에 리비아 ·튀니지 ·모로코 등이 독립하면서부터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 중에 모로코와 튀니지가 마그레브 연방 형성을 제창하였다. 현재도 교통 ·통신 ·무역 ·관광 등의 목적을 위해 마그레브 정신을 살리려고 한다.
마그레브(Maghreb)는 아랍어로 ‘서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포함하는 북서부 아프리카지역을 말한다. 마그레브지역은 로마제국시기에는 곡창지대로 곡식 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올리브, 포도 등을 공급해 주었다. 17세기 마그레브는 이슬람 아프리카로 진출하는 서구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아랍 세력이 진출하여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그레브의 지역 사람들은 통합에 대한 오랜 꿈을 간직하고 있으며 11세기에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통합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세 지역은 각각 분리되어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에는 통합을 바라는 범마그레브 정신이 남아있다. 이와는 반대로 민족주의가 통합을 반대하고 있는데 오늘날 모로코와 알제리는 폴리사리오운동으로 적대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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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역학 연구의 연구방법론. 아프리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 방법론

2012. 7. 17. 21:39

 

 

아프리카 지역학 연구의 연구방법론. 아프리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 방법론

 

 

 

아프리카는 전 지구 면적의 1/5(3032만 ㎢)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다. 정치적 통합체는 약 53개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구는 약 8억 3천만(2000년 추정)으로 1000여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아프리카는 多樣性(diversity)과 逆動性(dynamism)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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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프리카의 역사가 유럽인들의 도래로 시작되었다는 잘못된 주장을 증명할 필요는 없으며 또 아프리카가 인류의 기원지이며 ‘유전학적 보고(genetic heritage)'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더 이상 질문거리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에 대한 의식은 어떠한가?”, “과거에 대한 그들의 의식은 무엇인가?”, “아프리카인들의 사고체계 속에서 역사의 역할은 무엇인가?”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의 역사전통에서, 신화(myth), 전설(legend), 그리고 상징(symbolism)들은 종족의 기원, 역사적 사건의 원인, 이주, 그리고 다른 부족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결코 과거와 분리되거나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과거의 사실들은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의존은 조상들, 부족의 창시자나 왕국의 건설자에 대한 외경과 공경들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신에 대한 존재, 살아있는 것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은 세대를 거쳐 나타난 그들의 정신과 기억들만큼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은 젊은 사람들의 역사의식의 과정을 도와준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행동과 연장자에 대한 태도등 집단의 전통과 일치할 때 그것은 칭찬되어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조상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덕적 규범들을 어기거나 공격하는 것은 조상들의 정신을 공격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 이런 생각에서 역사는 사회적 통제와 집단의 공고함과 결속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아프리카 역사전통은 식민주의 가치, 기술, 인종적 우월주의, 그리고 편견으로 후퇴를 가져왔다.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보존할만한 가치 있는 과거가 없었다는 주장은 식민주의자들이 전략적으로 꾸며낸 논리이며 상대적으로 식민주의자들이 그들의 사상, 가치, 그리고 제도들을 더욱 훌륭한 것이라는 주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것은 적자생존논리에 입각한 다아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유럽인들의 지적 환경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서구인들에 의해 고착화되고 뒤틀려진 이러한 흐름을 바꾸려는 노력을 아프리카인들은 계속하고 있다. 남아공의 웨스턴 케이프 대학(University of Western Cape)에는 메이부이어(Mayibuye)연구센터가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식민지시대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자’라는 뜻이다.

 

 


아프리카학 또한 다른 학문(지역학)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본질’ 또는 ‘아프리카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른 지역학분야와 마찬가지로 아니 다른 지역학분야보다도 더욱 학제간 연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는 아프리카 대륙만이 갖는 특수성으로 인해 더욱 그렇다. 기록 문자가 다른 대륙보다 적은 아프리카를 학문적으로 연구해 나가기 위해 새롭게 개발된 실증적 연구방법론을 갖춘 연구분야가 중시되고 있는데 구전전통과 구비전승의 역사, 고고학, 문화인류학, 그리고 언어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역사의 재구성은 하나의 도전으로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자료의 한계로 아프리카 연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의 광대한 지역에서 식민지 시대 이전의 과거역사에 관한 문자 이외의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첫째로 이러한 자료로서 구전전통ㆍ구비전승(Oral historyㆍoral tradition)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함파테(HampâtâBé)가 ‘아프리카에서 나이 많은 이가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진다.’고 말한 내용은 역사적 자료로서 구전전통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전전통은 세대를 거쳐 전해내려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지니고 있는 보물단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족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들의 역사와 전통을 관리하는 사람들(the custodians of heritage)이었다. 이러한 집단기억을 관장하는 관리집단을 서부아프리카에서는 그리오(griots) 말리에서는 디엘리(dieli)라고 불리어졌다.

 

아프리카인들은 과거에 대해 거의 본능적으로 애착을 느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구비전승의 역사전달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가 책, 기록문, 기록보관소의 문제와 관련된 나라들에서는 과거에 대해 사람들이 일종의 거리감, 격리감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친숙한 이름들을 지닌 구비전승에 너무도 가까이 있어 역사가 공동의 자산으로 변모되어 대대손손 읊어지고 또 읊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주의 깊게 추려지고 비판적 분석이 요구되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들이 신화, 전설, 격언, 시, 의식, 이야기, 그리고 음악속에서 그들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둘째, 아프리카의 고고학(archaeology)으로부터 우리는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구전전통의 역사를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고고학은 주로 고대유적이나 사원등을 발굴하여 당시의 생활상이나 문화를 연구하는데 필요한 고도의 방법론을 발전시켜 왔는데 이는 아프리카 유적들(예를 들어 짐바브웨 유적)을 탐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고고학중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민족들을 연구하는 것이 선사학(先史學)인데 아직까지 문맹률이 높아 문자생활을 영위하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아프리카 부족민의 문화와 생활을 연구하는데 인류학과 더불어 좋은 방법론을 아프리카지역하게 제공하고 있다.

 

 


셋째, 인류학(anthropology)또한 중요하다. 인류학분야중 문화인류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문화에 관한 일반화와 이론화를 중점적으로 추구하는 학문으로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다고 할 수 있다. 인류학 연구를 통해 얻어진 물질문화자료, 사회, 정치제도, 사회집단, 사회변화, 가치체계 그리고 종교와 철학적 사고의 연구는 역사문화 연구에 귀중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언어학의 연구도 중요하다. 언어는 두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기호체계(a system of signals)이며 또 하나는 특정 언어집단의 문화유산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즉 언어학의 연구는 바로 사람들의 문화양상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특별한 언어가 발전되었을까?, 다른 언어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어떤 상호관계를 가졌을까? 이런 질문들은 역사비교언어학(comparative historical linguistics), 어휘통계(lexico-statistics), 그리고 언어연대학(glottochronology)같은 연구를 통해 아프리카 지역학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의 유산인 언어를 제반 다른 사회영역 즉 정치, 사회, 철학, 역사, 심리학 등과 연관지어 언어가 이들에 미치는 영향 혹은 언어속에 이들 요소들이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를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가 정치와 연관되는 부분에서는 언어정책(language policy), 언어선택(language choice), 다언어 현상(multi-lingualism), 언어교체현상(language-substitution)등 아프리카 사회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언어사회학적 제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동물학(zoology)과 식물학(botany)또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과 식물들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었는가는 사람들의 생각, 이주, 무역루트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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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힐리(Swahili) 문명

2012. 7. 17. 21:38

 

 

스와힐리(Swahili) 문명

 

 

 

동부 아프리카 해안지역에 이슬람 상인들이 이 지역으로 진출한 결과, 뿌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두었지만 서남아시아에서 영향을 받은 크레올(Creole)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문화에서 나온 언어인 키스와힐리(Kiswahili)어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상징한다. 이 언어는 아랍어와 다른 언어에서 많은 단어들이 차용되어 만들어진 반투(Bantu)어 이다. 이 이름은 해안을 뜻하는 아랍어 사헬(sahel)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문화의 혼합 장소였던 해안가의 작은 섬들과 대륙의 내륙지역을 가리킨다. 최근의 언어학자, 고고학자,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의 케냐(Kenya) 지역에 이주해온, 반투어를 쓰고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는 부족이 기원 후 1000년 정도에 이 해안에 살았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토양이 비옥하고 대부분 건조한 지역인데도 강수량이 적당한 독특한 해안 환경으로 인해 이주자들은 생태적으로 적합한 장소를 모두 차지하여 살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이주 지역이 해안가에서 수마일 이상 떨어진 곳까지 확산되지는 않았다. 이주하는 과정에서 스와힐리 부족이 넓은 지역으로 퍼져갔지만 해안 주민들은 해안의 부락들과 계속 무역을 하며 접촉을 했다. 스와힐리족은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에서 온 이슬람 선원들과 교류하였고, 다우(dhow: 아라비아해에서 쓰이는 대형 삼각돛을 단 연안항해용 범선-역자주)선으로 알려진 배를 타고서 인도양을 건너 다녔다. 결국 스와힐리족은 그들의 상업 정신과 종교적 신념을 받아들이고, 이슬람교를 해안 주거지에 전파했다. 13세기 무렵, 스와힐리 상인들은 해안을 따라 내려가서 남부 중앙아프리카에 있는 짐바브웨 고원의 금광 국제무역을 독점했다. 킬와(Kilwa)라는 도시는 스와힐리 황금 무역의 중계항이었다. 많은 이슬람 도시를 여행한 이븐 바투타(Ibn Battuta)는 킬와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 중 하나이고, 건물들이 매우 고상하다며, 그 곳에 사는 주민들 역시 고결하고 덕망 있는 이슬람 교도라고 서술한 바 있다.

 

스와힐리(Swahili)란 말은 원래 아랍어의 ‘umani'방언 “sahil" (해안) 과 “sawahil” (해안사람)에서 유래된 것이다. 스와힐리어가 언제부터 생성되어 사용되었는가는 정확하지 않으나 10C경 아랍인 지리학자이며 역사학자인 알 마수디(Al Masudi)가 동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고 “잔즈(Zenj)인들은 훌륭한 언어와 그 언어로 선교하는 성직자들을 갖고 있다”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스와힐리 문명은 초기 10C동안 반투 이주민들과 아랍 상인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스와힐리란 오늘날 탄자니아 케냐의 인도양해안지방을 비롯한 그 내륙지방의 주민과 그들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문화양식, 그들의 언어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스와힐리문명은 10C를 전후하여 형성된 비교적 젊은 문명으로 ①해안지방에 발달한 상업도시, ②아랍과 페르시아계의 반투혼혈족, ③이슬람의 신봉, ④탈부족화, ⑤스와힐리어의 사용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속성은 내륙지방으로의 전개과정에서 많은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오늘날에는 스와힐리의 본래개념이 많이 변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스와힐리인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스와힐리문명의 특징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해안지방에 발달한 상업도시는 아랍으로부터 수입된 건축과 조각을 가지고 있었고 스와힐리인들의 복식은 아랍식 옷을 입었는데 남자는 모자인 코피아(kofia)를 쓰고 여자는 아랍식으로 몸과 머리를 감싸는 캉가(kanga)를 입었다.

 

스와힐리문명의 기초가 된 이슬람문명은 아라비아반도로부터 항해를 통해 전파되었으며 그 흡수방법은 기존 동아프리카 해안의 반투족 사화에 다소 무력점령의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흡수되었다. 스와힐리어의 생성도 아랍어와 반투어의 ‘혼합’이라기보다는 반투어를 기초로 하여 아랍어의 어휘를 차용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증거로는 스와힐리어가 아랍어를 근간으로 하는 많은 어휘들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세련된 단어들이 많고 이에 반해서 기본적인 어휘에서는 차용어가 극히 드물며 또한 문법적인 구조에서도 아주 미세한 정도만 영향 받은 것으로 알 수 있다. 즉 반투족은 아랍의 언어와 문화를 자신의 언어와 문화에 융합시켜 새로운 스와힐리문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 지도 1 > 1200년경 인도양 무역1)

 

 

 

< 지도 2 > 잔지바르 오만체제하의 주요 교역통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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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 Davidson, "Africa in historical perspective", Europa Publications Ltd., Africa South of the Sahara 1992 (London, Europa Publications Ltd., 1991), p. 8.

 


2) 라윤도, "스와힐리어 文明의 歷史的 展開過程", 아프리카 硏究, 제 2호, 1982, p.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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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내전에 관하여

2012. 7. 17. 21:35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내전에 관하여

 

 

 

수단은 아프리카 53개국 중 가장 면적이 넓은 국가로 영토의 절반이 나일강의 중류 및 상류의 분지이며 북동쪽 끝이 홍해에 면한 짧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BC 3000년경에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수단의 북부지역인 누비아를 침략한 후 이집트와 교류가 본격화되었고 BC 7세기경에는 누비아이들이 세운 쿠쉬왕국이 이집트를 정복하여 지배함. 6세기에는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나 7세기부터 아랍인들이 수단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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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이래로 남부지역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있어왔고 1956년 독립이후에도 아랍인들과 무슬림들에 의해 중앙정부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남부세력은 차별철폐, 민주화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결국 자치/독립을 요구하면서 수단인민해방군(SPLA)를 조직하여 정부군과 대립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인종구성은 아랍인들은 약 39%, 아프리카인들은 약 69%이며 종교적으로는 수단의 북부와 중부에는 약 75%를 차지하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무슬림 수니파가 살고 있으며 산업으로는 주로 농업이 발달해 있고, 남부는 약 25%를 차지하는 딩카족이나 뉘르족, 실루크족 등 나일 사하라 족이 기독교와 전통종교를 믿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발달이 미약하여 남북간의 뚜렷한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부는 영국의 통치로 영어사용자가 많은 편이고 135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주요 언어만도 30여종이나 된다.

 

 

1956년 영국-이집트 령에서 독립할 때부터 내전에 발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다. 1969년 구데타로 집권한 누메이리 정권이 1983년 자치를 유지하고 있던 남부 3개주에까지 이슬람법(Sharia)을 도입함에 따라 음주, 간통 도둑질에 대해 공개적인 태형이나 수족을 절단하고 남부의 자원을 확보하려고 하자 흑인 기독교도들이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하였다. 

 

1989년 바시르 장군이 누메이리 정권에 대한 구데타 이후 군사독재를 강화하고 이슬람원리주의의 민족이슬람전선(NIF : National Islamic Front)과 손을 잡고 이슬람법의 적용을 강화함. 비서구노선을 강화하여 이란, 이라크, 리비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의 입국을 환영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바시르정권은 내전종결위해 연방제이행을 선포. 인민해방군은 내부권력투쟁의 심화로 분열과 혼란을 겪고 3개의 파벌로 나누어진다. 1992년 정부군의 대공세와 이집트의 수단정부 지원으로 열세에 몰린 인민해방군은 1992년 5월 나이지리아의 중재 하에 아푸자에서 휴전협상을 체결하였으나 1996년 SPLA등 7개 세력이 민족민주동맹(NDA)를 결성 반정부 공세를 감행하였다.

 

 


1999년 수단정부는 수단반군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3개월간의 국가긴급사태를 선포하고 국가의 모든 권력을 오마르 알 베시르 장군(현 대통령)에게 위임하였다. 수단은 내전으로 인하여 약 200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난민은 약 450만 명 이상이 발생하였다.

 

수단 정부는 587개의 부족 중 단지 19개 부족이 중심이 되어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하나의 수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남부 3개주의 소수종족은 기독교와 원시종교 믿으며 자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수단 내전은 본질적으로는 반정부 분리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종교 부족간의 갈등과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자원전쟁의 양상을 띠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수단의 내전은 종교적인 부분보다는 자원의 공유와 문화적인 충돌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 북부의 수단인 들은 남부의 문화를 경멸하고 있으며 토착민들을 지배아래 두는 것을 신성한 의무처럼 보고 남부의 석유자원개발에 대해서도 자기들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파간 이념간 벌어지는 내전상황과는 달리 수단의 내전상황은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기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토착민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역을 분리 독립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단 분쟁은 강대국의 직접적 이익이 걸려있지 않고 그 영향범위가 내부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수단의 내전상황은 수단정부가 분리독립에 대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며 최선의 방책은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무장대결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올해 5월에 수단정부와 남부 반군인 수단인민해방군이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서 지난 21년간의 수단 내전을 평화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개입으로 수단 정부와 최대의 반군조직인 인민해방운동(SPLM) 사이에 맺어진 평화협정이라는 데 더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수단의 평화정착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상당한 난관이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의 평화협상은 최종적인 것도 아니며 다르푸르 지역 같은 경우는 별개의 협상이 진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차후의 협상에서도 권력분배의 문제와 수도 카르툼에 대한 종교적 영향력 행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 수단은 국가의 경제발전과 정치적 생존을 위해 테러지원국의 오명을 씻고 1989년 이후 계속되어온 경제 제제조치가 해제되기를 바라는 등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맞물려 수단의 평화정착을 모색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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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다르푸르(Darfur) 내전

2012. 7. 17. 21:33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다르푸르(Darfur) 내전

 

 

 

 

다르푸(Darfur)지역은 수단의 서쪽, 정확히 말하자면 차드(Chad)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원주민들은 아프리카계와 아랍계가 섞여 있으며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아프리카계인 - 퍼르(Fur)족, 마살리트(Masalit)족, 그리고 자그하와(Zaghawa)족 -이 다수족이며 인구는 약 600만정도이다. 2003년 초부터 수단정부군이 지원하는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Janjaweed)와 두 개의 아프리카계 반군들 사이에서 종족분규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으로 구타와 고문, 노예, 소년병,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 강간, 인종청소 등 내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인권남용의 백태가 보여지고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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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분쟁으로 인해 약 3만명이 숨졌으며 약 20만명이 이웃 차드에 피난해 있고 약 1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올해 말에는 약 220만명이 국제사회의 구호를 필요로 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03년 아프리카 부족들이 중심이 된 두 개의 반군집단 - 수단 인민해방군(Sudan Liberation Army/Movement : SLA/SLM), 정의평등운동(Justice and Equality Movement : JEM) - 이 다르푸 지역의 경제적 소외를 종식시키고 아랍인들에게 치우쳐 있는 국가권력을 공평하게 분배할 것을 주장하며 반군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또한 다르푸 지역은 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북쪽의 유목민 집단들이 가뭄과 사막화로 인해  아프리카계 주민이 살고 있는 다르푸 중심지역을 자주 침범하는데 대해 정부에 대책을 호소했으나 정부의 무대응으로 일관한데 대한 반발도 작용하였다. 

 

반면에 아랍계 주민들은 다르푸 지역에서 아프리카계 주민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소외된데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1989년 바시르 장군이 누메이리 정권에 대한 구데타 이후 군사독재를 강화하고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이슬람법의 적용을 강화하였으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수단정부가 의도적으로 아랍 주민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주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수단정부군중 많은 사람들이 다르푸지역 출신으로 수단정부군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일종의 대리전을 치루게 함으로서 인권문제에 대한 국내외적 비난을 피하고 다르푸의 아프리카계 민족을 제압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수단정부는 다르푸와 차드의 가난한 아랍계 유목민들을 대상으로 잔자위드라는 무장단체를 만들게 하고 무장, 훈련, 장비등 모든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또한 이들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행위에 대해 죄를 묻지 않는 일종의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 단체의 지도자들은 과거에 농경마을을 공격했던 범죄경력을 가지고 있다. 진자위드라는 뜻은 다르푸인들 사이에 ‘산적(bandits)' 또는 '노상강도(highwaymen)'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약 20,000명의 병력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공격시 수단 공군의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복장도 수단정부군과 비슷한 녹색의 카키색 복장이고 수단정부에서 허가한 위성전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단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수단정부군과 잔자위드가 반군에 대한 공격보다는 시민들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공격과 파괴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증거에 따르면 수단군과 진자위드 민병대의 공격은 민간인이 거주하는 마을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수단공군의 공군력이 동원되고 있는데 이는 삶의 주거지를 완벽하게 파괴함으로서 거주지를 포기하고 떠나게 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잔자위드는 아프리카계 주민들에 대한 공격시 모든 것을 초토화시킴으로서 그들을 난민화시켜 쫒아내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살해, 강간, 약탈은 물론 구호품에 대한 약탈도 서슴지 않고 있다. 정부군은 언제나 먼저 도착하고 제일 나중에 철수함으로서 수단정부군과 잔자위드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집단임을 알 수 있다.

 

다르푸 지역의 분쟁은 정확히 종교적 분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거의 모든 다르푸 인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군과 진자위드는 모스크와 코란을 신성모독하며 모스크 안에 피난해 있는 사람과 지도자들을 살해하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정부군이 공격하기 전까지 수단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기껏해야 서부지역사람들 또는 다르푸 사람들 정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분쟁으로 인해 민족적, 인종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즉 국가의식은 더욱 희박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분명히 종족적, 인종적 분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먼저 다르푸 지역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을 수단정부에서 막고 있으며 차드지역으로 난민이 들어가는 것도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사회가 원조를 위해 이 지역에 들어가는데 약 4개월이 걸리고 있다. 도로상황도 엉망이고 철도도 다르푸 남부의 냘라(Nyala)지역으로만 진입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수송로가 좋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무장세력이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단정부는 21년간의 남부의 내전에서도 국제사회의 구호노력을 방해하고 좌절시켰다. 수단정부의 이 같은 방해와 함께 남부지방에 첫 번째 기근이 들었던 1988년에는 약 250,000명이 생명을 잃었으며 두 번째 기근이 들었을때는 약 100,000명이 사망하였다. 수단정부는 다르푸지역에서 비슷하게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다.

 

수단정부는 다르푸 사태가 정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협상보다는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르푸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실제적인 권한을 주지 않고 일당제 국가처럼 국가의회당(National Congress Party)의 주도하에 비둘기파인 고위공무원을 매파인 군 인사로 대체하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국제사회가 이라크 사태에 대하여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고 국제방송매체들이 이 지역에 대한 자유로운 취재가 어려운 점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두 반군집단은 2004년 4월 8일에 휴전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수단 공군에 의한 폭격과 진자위드의 계속된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진자위드는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으로 피난한 시민들에게 테러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단정부는 제일먼저 진자위드를 무장해제시키고 인권남용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삶의 주거지를 빼앗기거나 떠나온 사람들에게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본다면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처럼 인종적 화해, 보상, 그리고 정의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사회는 무엇보다도 수단정부에 대해 잔자위드를 무장해제시키고 인종청소 등 인권남용에 대한 범죄행위를 조사할 것을 요구해야한다. 특히 전쟁의 수단으로서 강간과 살인등을 일삼은 전쟁범죄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수단정부가 약속한 위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게 하려면 국제사회의 감시가 필수적이다.

 

 

지금 현재 약 100만명이 넘는 다르푸 사람들이 보건과 위생, 영양, 주거지등은 물론 계속되는 공격으로부터 보호되기 위해 긴급하고 충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수단정부는 한해 약 10억 달러에 이르는 남부에서 나는 원유수입으로 인해 중국, 러시아, 벨로루시등으로부터 군사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고 내부적으로는 2002년 10월 남부지역의 휴전으로 인해 다르푸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또한 국제사회의 공조로 무기금수조치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이 다르푸 지역의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에 수단에 대한 제제조치를 추진중인데 수단은 제 2 의 이라크 사태를 언급하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는 수단정부의 노력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UN은 남부 지역의 휴전과 함께 휴전감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보리는 이러한 감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6500명의 군대를 파병하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이 병력은 다르푸 지역에만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수단 전 지역에 배치되고 기간도 짧기 때문에 그 효과가 의심되고 있다.

 

4월 8일 휴전협정에 따라 수단 정부와 두개의 반군집단은 아프리카 연합(Africa Union)이 휴전을 위해 휴전 위원회를 설치하는데 동의했다. 이에 따라 AU는 약 120명의 휴전감시요원과 270명의 무장 보호병력을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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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들의 소유개념. ‘잠시 빌려다 쓴다.’ 나의 메이드 셀리나

2012. 7. 17. 21:31

 

 

아프리카인들의 소유개념. ‘잠시 빌려다 쓴다.’ 나의 메이드 셀리나

 

 

 

셀리나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나의 메이드였다. 내가 남아공에서 유학하는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와서 청소와 빨래를 하여주었다. 거의 4년 가까이 메이드로 지냈으니까 남아공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현지인중 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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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두 아인의 엄마였으며 남편은 직업이 없어 집에서 놀고 있었다. 가냘픈 몸매지만 단아했다. 마치 잘 살았던 집이 몰락하여 어쩔 수 없이 메이드 일을 하게 된 사람처럼 조용하고 고집도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한 시간에 출근을 하였고 제시간에 퇴근하였다. 혹시 토요일에 일을 좀 할 수 없냐고 이야기하면 수입이 생길텐데도 단호히 일을 하지 않는 날이라고 잘라 말했다. 

 

내가 묵고 있는 집은 하우스에 딸린 메이드 방이었는데 개조해서 나에게 세를 내주었다. 방하나, 욕실하나, 거실 겸 식당으로 우리나라의 원룸형태였다. 주인집과는 뚝 떨어져 있었고 학교와의 거리가 차로 10분 거리도 안되기 때문에 언제나 집에 가서 밥을 먹곤 했는데 혼자 먹기도 지겨웠고 마침 셀리나가 너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서 하루는 같이 먹자고 했다. 그랬더니 한사코 나중에 먹겠다고 하였다. 긴 설명 끝에 같이 먹게 되었는데 그녀는 같은 테이블에서 먹지 않고 조금 떨어진 바닥에서 먹겠다고 하였다. 그것만은 말리지 못할 것 같아 같이 먹게 되었는데 그 광경이 정말 우스웠다. 유학 살림이 다 그렇듯이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반찬도 한 두가지였는데 두 사람이 각기 떨어져서 밥을 먹고 있는 광경이라니...

 

아마도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인종차별정책이 셀리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리라. 1994년 이전에는 흑인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타운쉽(Township)에서 아침 7시 30분정도에 출근하여(남아공은 모든 업무가 8시에 시작됨) 오후 5시까지 일하고 모두 백인들의 도시에서 나가야만 했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흑인들이 이용하는 화장실과 수도꼭지까지도 백인들과 달랐으니 나하고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아공은 도시구조가 참 특이하다. 이것도 과거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백인들의 도시가 만들어지면 약 7-15km 떨어진 곳에 타운쉽이 들어선다. 또 그 사이에 칼라드와 인도인들의 주거지가 작은 규모로 만들어진다. 백인들의 집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영장과 아름드리 나무들이 있는 정원을 갖춘 곳으로 꽃이 피어있는 정원에 스프링클러가 돌아간다. 인도인들의 거주지는 백인들의 집만큼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원도 있고 넓게 지어져 있다. 반면에 흑인들의 거주지는 집이라고 하기 보다는 슬럼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 - 철판, 종이박스, 합판, 양철 등등 심지어는 도로표지판을 잘라다 사용한 경우도 있음 -를 가지고 집을 지어놓았는데 정말 힘껏 밀면 넘어갈 것 같다. 1994년 이전에는 전기, 수도, 전화 등 전혀 없었으나 1994년 이후에는 주택공급사업에 따라 비록 작지만 벽돌로 지은 집이 보급되고 있고 전기가 가설되었다. 수도는 아직까지 공동수도를 설치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생산시설이라고는 전무하고 오직 백인들이 사는 도시에 나가 하급 노동자로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흑인들을 실어 나르는 미니버스가 항상 붐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이 나에게 커피잔 세트를 선물로 주고 가셨다. 꽃무니도 있고 세트로 상자에 담겨 있어서 제법 폼이 나는 물건이었다. 혼자서 생활하다 보니 쓸일이 없어 부엌의 찬장 꼭대기에 깊숙이 보관하여 놓고 있었다. 무심코 열어보았는데 두개가 비어있었다. 누가 오는 사람도 없었고 부엌살림을 하는 사람은 셀리나 밖에 없었다. 불러서 보여주고 엄중히 추궁하였으나 완강히 부인하는데 달리 도리가 없었다.

 

또 수업료 냈구나!!!

 

어떤때는 아는 한국인의 운동화를 들고 가는 흑인을 길거리에서 만났는데 분명히 그분 운동하였다. 그래서 추궁하였더니 베시시 웃으면서 도로 가져다 놓은 일도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은 남의 물건을 가져다 쓰는 것을 전통적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물건은 돌아다니는 것이고 잠시 빌어쓰는 것일 뿐 헤지거나 없어지면 그만이다. 음식도 항상 나누어 먹고 물건도 같이 사용한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소유나 도둑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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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숭배. 조상을 잘 모시고 가문을 빛내야 한다.

2012. 7. 17. 21:30

 

 

조상숭배. 조상을 잘 모시고 가문을 빛내야 한다.

 

 

 

씨족과 가계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집단들이다. 씨족과 가계는 개인보다는 결국 이러한 조직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법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법인집단(corporate groups)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개인들이 토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씨족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게 땅을 처분할 권리는 제한된다.

 

씨족의 전설과 신화는 역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씨족 조상들은 현재 살아있는 구성원들의 일상의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영혼의 신, 살아있는 사자(living dead)로서 존재할 것이다. 씨족 조상들은 현존하는 사람들에게 사후에도 중요한 존재로서 실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씨족 구성원들은 위기나 필요한 의식에서 서로 돕는다. 결국 씨족은 궁극적인 관련 집단으로 개인의 정체성, 명성, 그리고 자부심이다. 한 아프리카인은 “만약 내가 매우 오랜 길을 걸어서 지쳐 더 걸을 수 없다면 나는 지쳐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씨족의 이름을 말한다면 나는 일어나 걸을 것이다”라고 개인에 대한 씨족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그의 씨족이 그의 피곤함보다 더 중요하고 그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며 그의 씨족에 대한 기억이 그를 지탱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즉 씨족은 개인에게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은 친족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아프리카 생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친족관계는 혈연관계와 결혼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친족관계는 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어하며 결혼관습과 규례도 이 친족관계가 다스린다. 또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이 친족관계가 결정한다. 사실 이 친족감은 ‘부족’의 전체 삶을 한데 묶어 놓는 것일 뿐만 아니라 ‘토템(totem)'의 체계를 통하여 동물, 식물, 생명 없는 물건들에게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씨족은 대체로 토템을 통하여 구별한다. 즉 각 씨족은 동물이나 식물, 돌이나 광물 등의 어떤 것을 그 씨족의 토템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씨족의 구성원들은 자기들의 토템은 절대로 살해하거나 먹지 않는다. 토템은 일체성, 친족, 소속감, 연대감, 공동의 친화감을 가시적으로 나타낸 상징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와 관련된 거의 모든 개념들은 친족관계의 체계를 통해서 이해될 수도 있고 해석될 수도 있다. 친족관계는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의 행동과 사유 및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족체계는 죽은 사람과 장차 태어날 사람들을 포함하여 수직적으로 확대된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그들 가계의 족보(the genealogies of descent)를 공부하는 것이 전통적인 교육의 일부가 되고 있다. 족보는 심원한 역사적인 소속감,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이 족보를 계승 확대해야 하겠다는 거룩한 의무감을 가지도록 한다. 족보를 통하여 현재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과거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과 굳은 연계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족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그 존재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근거인 과거를 향하도록 하는 거룩한 수단이다. 족보를 통하여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과 현재에 있는 사람은 인간의 삶이 지니고 있는 무시간적인 리듬 속에서 ‘동시대적(同時代的)’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족보를 통하여 신화적인 ‘최초’의 인간, 혹은 국가적인 영웅에까지 소급해 올라감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긍지와 만족감을 지니게 하기도 한다.

 

연장자들이 죽으면 그들은 명예스러운 조상들로서 후손들에게 기억된다. 또 후손들은 그들의 살아있는 집합적인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의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조상숭배를 ‘ancestor worship'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worship'이라는 말은 아프리카인들과 조상들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조상숭배는 존경, 경외, 숭배 등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조상숭배는 현실의 일시적인 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 사회조직은 마을의 사회적 영역뿐 아니라 전임자들의 사회적 시간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조상들은 초연장자(super-elders)다. 그들은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축적된 모든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종류의 불사, 불멸을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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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2012. 7. 17. 21:29

 

 

아프리카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회 인류학자들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회에 대한 연구는 자신을 더 비판적으로, 또 비교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게 되었다. 즉 그들은 우리사회의 차이와 차별성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요즈음의 추세는 많은 학자들이 인류학을 식민주의 학문에서 탈 식민주의 학문으로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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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은 사람들 사이의 질서, 흔히 인식되어지는 규칙, 적당한 권위, 다음 세대에 이어질 도덕적인 가치, 축적되는 지식이 없으면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세분화하여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생계의 방법(modes of livelihood)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프리카인들은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는 종족들이 있다. 아프리카의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사냥을 하고 야생에서 음식을 얻는다. 이제는 전적으로 야생에서 자원을 얻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콩고(Congo) 숲의 피그미(pyhmies)족이나 칼라하리(Kalahari) 사막의 산(San ; Bushmen)족 원주민들이 제한된 사냥활동을 하고 있다. 탄자니아(Tanzania)의 하드자(Hadza)족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유랑하며 떠나고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그들이 정착하기를 요구하고 농사 기술을 가르친다.

 

 

아프리카인들은 유목을 주업으로 하는 종족이 있다. 대부분의 유목 민족들이 건조한 북부의 케냐(Kenya) 와 우간다(Uganda)에서 그리고 나일강의 상류지역에서 발견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방목과 물이다. 그들은 건조한 시기에는 물을 찾아 떠나고 우기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 다른 사람들 - Jie, Turkana, Karimojong - 은 여자와 늙은 사람들은 물이 충분한 곳으로 보내고 젊은이들을 방목하는 곳에 보낸다. 전형적인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일을 처리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돌본다. 케냐의 마사이족은 2000년 건기가 지속되자 목초지가 부족하게 되어 나이로비 시내에 소떼를 몰고 나타나기도 하였으며 우간다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아프리카인들은 농업을 주로 하지만 소를 키우기도 한다(반농반목형태). 아프리카의 땅 대부분이 급속하게 황폐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마을을 이동해야 한다. 어디에나 경작하지 않은 땅을 떠나서 충분한 땅이 있다고 간주하고 영구적으로 정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친족들 사이에서 경작할 땅을 올바르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의 농업사회에서는 ‘전형적인’ 것이 없다.

 

두 번째로 아프리카인들은 친족 관계(kinship)가 중요한 기능을 한다.

 

 


많은 사회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훌륭한 관습들은 단계(unilineally)의 친족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그들의 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어머니에서 어머니에게로 전해진다.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계혈통(patrilineal)을 따르고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모계혈통(matrilineal)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모계혈통을 따르는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 살고 있고 마을은 작으며 그들이 이동할 때 자주 나눠진다. 많은 지역에서 소는 살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소를 키우고 50만이 넘는 가나(Ghana)의 아샨티(Ashanti)족 사람들은 그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판다.

 

다른 출계율(descent rule)은 두 가지 형태의 차이점을 야기한다. 특별히 부계사회에서는 결혼할 때 신부값(bridewealth)이 있다. 잠재적으로 남편의 합법적인 자식을 낳는다는 것에 대한 지불인 것이다. 모계 사회에서 아이는 어머니쪽에 속해 있고, 결혼에 따른 지불금도 있다고 하더라도 약간의 값을 지불한다.

 

세 번째로 정치적인 조직(political system)이 특이하게 나타난다.

 

아프리카 민족학을 언급했던 인류학자들은 처음에 모든 사회가 정치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는지에 의문을 가졌다. 모든 사회의 정치적인 조직은 물질적 힘을 사용하여 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으로 전체체계의 한 부분(that part of the total system)으로서 설명되어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위의 의문들은 무가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령조직(age organisation)은 유목민의 특징으로서 설명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인구에 대해서 정치적인 기능을 부여한다. 소년기를 지나 성년기에 접어들면 성년의식을 치루고 성년이 된다. 또 나이가 들면서 의식을 치루고 다음단계로 진행한다. 

 

네 번째로 종교(religion)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인들은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고 있다. 우주는 두 개의 개념으로 설명되어 지는데 보이는 지상(인간이 거처하는 곳)과 하늘(창조자가 거처하는 곳, 영적 존재들이 함께 존재하는 곳)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하늘의 세계는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신과 인간사이에서 중간역할을 하는 다른 영적존재들(예를 들어 조상신)이 있는 곳이다. 비록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지만 자연세계와 관련된 보이지 않고 내재하는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들이 있다. 종교는 아프리카인들의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다. 사회의 도덕규범을 만들고 자연과 조화로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음악과 춤 그리고 예술(music, dance and art)은 아프리카인들의 생활 속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음악과 춤은 종교와 분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활로부터도 분리할 수 없다. 이것들은 종교적 행위에 필수적이다. 관습, 노래, 그리고 스텝은 오락으로서가 아니라 종교적 상징물로 표현된다.

 

아프리카의 전통예술은 사람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영역이다. 사람들의 정령의 힘을 반영한다.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은 아니다. 그것은 기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성이 존재한다. 예술은 사회의 거울이며 모든 아프리카 사회에서 아프리카의 예술인들은 종교, 사람, 신, 자연, 그리고 조상의 정신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남아공의 민주화투쟁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흑인들의 저항방식은 춤과 노래가 단결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매우 위협적으로 작용하였다.

 

아프리카 문화에서 가장 기본적인 특질은 이중성(duality)이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지상과 하늘, 자연스러운 것과 성스러운 것, 인간의 세계와 신 그리고 영적존재들의 세계등등....

 

 

 


이중성은 아프리카의 문화적 표현을 정의한다. 그러나 이중성으로 표현되는 아프리카의 문화는 적대주의와나 무질서와 대비되는 화해와 상호이해, 조화 그리고 합리적인 것이 있다. 

 

아프리카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사회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지식의 폭과 깊이를 넓혀줄 뿐만 아니라 생각의 틀을 변화시켜줄 것이 틀림없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또 다른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 나아가 아프리카의 부족들의 삶 속에서 우리의 전통사회가 지키려고 했던 살맛나는 살 냄새 가득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예로 “우리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인들과 비교되는 것조차 싫어하며 분명히 아프리카인들보다 행복하다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또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은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우리보다는 행복해하고 있다. 시장에서, 길거리에서, 그리고 그 어디에서든지 발견할 수 있다.

 

아프리카는 아직도 우리에게 낯선 곳이다. 아니 아프리카에 관한 지식은 거의 무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타잔이 사는 곳, 가난과 기근, 내전이 있는 곳, 미개하고 저능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정도로 알고 있다.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이와 같다면 우리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차별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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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이미지와 역사․문화적 정체성

2012. 7. 17. 21:27

 

 

아프리카의 이미지와 역사․문화적 정체성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여전히 반쯤 벌거벗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알 수 없는 주술을 행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아프리카(Primitive Africa)로 인식되고 있거나 아니면 열대우림의 정글과 야생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야생의 아프리카(Wild Africa)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좀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발전되지 못하고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아, 가난, 질병, 내전, 구데타, 부정부패 등 아프리카는 희망이 없는 비관주의(Afro-Pessimism)를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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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들은 아프리카를 정확하게 보고 있지 못하고 일부분만 보는 것으로 아프리카 진출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꺾는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는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에 역사적으로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지배 통치하였던 국가들이 세계사 속에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정치적 경제적 역사문화적인 분석이 물론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우리에게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역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륙으로 53개국이라는 국가가 속해있으며 약 10억에 이르는 인구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원의 보고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울러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아프리카도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개방경제로의 전환을 채택하고 있어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편입이 가속화됨으로서 21세기에는 또 다른 위상을 갖게 될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외국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친구’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언제나 우월한 인종으로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일을 같이하면서 느낀 점은 이들은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오랜 기간동안 외국인들을 대하는 ‘노하우(?)’가 잘 준비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매사에 진정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정말로 어떤 계기가 없다면 외국인들은 ‘친구’라기 보다는 ‘이방인’ 또는 ‘침략자’ 등으로 생각한다. 또한 외국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검둥이’, ‘머리 나쁜 사람들‘ ’게으름뱅이‘ ’흑인들은 안돼!‘ 라는 의식을 저변에 깔고 대하기 때문에 좀처럼 ’차별‘이라는 벽을 넘기가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 역사와 문명이 존재했었는가에 관한 논란은 최근까지도 계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일부 인종차별주의와 문명 우월주의자들의 중요한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또한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역사는 백인이 도래한 이후부터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설사 그 이전에 어떠한 원주민의 사회형태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야만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역사학자 토인비(Anold Toynbee)로 인한 바 크다. 그는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이집트, 안데스, 중국문명 등 세계의 문명을 21개의 문명으로 분류하여 상호비교연구를 하는 가운데 아프리카의 문명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또 21개의 문명의 주체를 인종에 따라 분류할 때에도 “어느 문명에도 적극적으로 공헌하지 않는 것은 흑색인종뿐이다”라고 흑인의 문명을 부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일반적인 무지를 가져오게 된 이유는 아프리카의 '타자(他者 ; Others)화'되고 ‘주변부화(Marginalization)'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머피(E. Jefferson Murphy)교수의 말처럼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하고 백인들의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경멸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유럽’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타자를 필요로 했던 유럽인들은 非유럽 세계를 자신들의 타자로 상정하였다. 유럽은 ‘타자 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보편적 규범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우월한 인종으로 확인하였으며 어떤 면에서 유럽은 非유럽인들에게 부과한 인식론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유럽문명의 토대가 되는 백인과 非백인, 문명과 야만, 진보와 정체 등의 개념이 정립되고 담론이 형성되었으며 유럽 지식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근대를 보편적 근대로 상정하고 공간적․시간적 동질화를 추구하는 역사 인식을 낳았으며, ‘유럽의 현재’를 ‘非유럽인의 미래’로 투영함으로서 역사적 진보를 정의하였다. 유럽이 ‘근대’라면 非유럽은 ‘전근대’ 또는 ‘非근대’여야만 했다. 서양인들이 非서구세계에 대해 행한 차별하기의 가장 뚜렷한 양상은 끊임없이 진보하는 서양에 대조되게 非서구세계를 정체한 혹은 퇴락한 사회로 표상하는 것이었다. 유럽이 자유, 진보, 문명, 역동성을 의미한다면 非유럽세계는 예속, 정체, 야만, 무기력을 의미하였다.

 

오늘날 벌어지는 아프리카의 많은 갈등과 문제들은 유럽의 식민통치체제와 맞물린 경제, 환경, 정치, 사회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과 마찬가지로, 식민통치 이전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아프리카 역사의 일정한 양식과 정체성이 아프리카의 식민지 경험에도 영향을 미쳤고 식민지 이후의 아프리카를 형성하는 데에도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 대륙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아프리카인들이 역사적 도전에 처했을 때마다 반응했던 고도의 적응성과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인들은 자기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했고 또 지금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아프리카는 서구열강이 오랜 기간동안 식민지배와 침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처럼 완전히 서구문화에 동화되지 못했는가?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가 월등하고 우월하다면 당연히 아프리카라 문명권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서구인들의 지배와 침탈의 과정이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 비해 이익이 덜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은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나타난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을 살펴본다면 절대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인도등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서구열강으로부터 지배를 벗어나고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강력한 전통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아프리카에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문화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이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프리카인들이 그들 나름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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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회화 팅가팅가(Tinga Tinga)

2012. 7. 17. 21:25

 

 

아프리카의 회화 팅가팅가(Tinga Tinga)

 

 

 

'TingaTinga(팅가팅가)'는 1960년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발생된 독특한 회화형태로서, 'Edward saidi Tingatinga'에 의해 시작되었다. E. S. TingaTinga는 1932년 탄자니아 Tunduru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으로 인하여 초등학교 4학년 이후 학교를 떠나야 했으며, 그 이후 오로지 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비참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의 나이 25세때인 1957년부터는 사이잘1)농장의 최하급 노동자 생활을 했으며, 1959년 그의 사촌이 있는 Dar es Salaam으로 옮겨가 정원사를 거쳐 자전거에 과일과 야채를 싣고 팔러 다니는 행상 일을 시작했다. 행상 일을 하는 틈틈이 Tingatinga는 베갯닢, 식탁보, 침대보 등에 수놓는 일을 시작하였으며, 그후  매트와 바구니 짜는 일 등을 거쳐 그가 살고 있는 마을의 집들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보잘것없는 흑인을 위대한 예술가로 변모시킨 시작이자 팅가팅가라는 독창적이고 가장 아프리카다운 회화의 출발이었다. 그의 그림솜씨가 알려지며 차츰 벽화를 그려달라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68년 그는 가로 세로 120cm*120cm의 판에 유화로 아프리카의 동물과 풍경 또는 신화 속의 이야기 등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비로소 오늘날 팅가팅가라 불리는 회화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그 이후 한 관광객에 의해 그의 그림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 '팅가팅가'라 불리게 되었다.

 

팅가팅가는 매우 독창적이고 강렬하다. 화려한 무늬와 다양하고 원색적인 색상은 아프리카의 태양아래 비춰진 세상을 강렬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동물과 풍경 그리고 신화 속의 이야기를 소재로한 표현은 그들의 삶과 의식을 소박하고 해학적으로 투영함으로써 깊은 느낌과 강한 메시지를 이끌어 낸다. 그림 속에서 해학적으로 또는 기형적으로 변형된 동물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민화를 보는 듯한 촌스러움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신화 속의 이야기라든가 무속행위에 관한 그림은 부적에서와 같은 주술적인 힘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서양의 화법에 물들지 않은 독창적인 순수함, 그것이 내가 느끼는 팅가팅가이다. 그 후 Mtalia, Mandu, Linda, Tedo, Mpata 등의 직계제자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팅가팅가를 배우고 꾸준히 새로운 소재와 형태로 재창조해 왔으며, 현재는 TingaTinga가 살던 Msasani 지역에 팅가팅가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작품활동을 하며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Tingatinga는 그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던 중, 1979년 다르에스살람에서 그가 탄 차를 강도의 도주차량으로 오인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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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박용 밧줄을 만드는 사이잘삼의 원료가 되는 용설란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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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사회-아프리카는 비밀스런 계모임을 가지고 있다.

2012. 7. 17. 21:20

 

 

비밀사회-아프리카는 비밀스런 계모임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사회구조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또 하나의 단체가 비의결사(secret societies)이다. 이것은 주로 서부 아프리카와 콩고분지에서 나타났던 사회제도이다. 이 비의결사는 사회를 통제하고 젊은이들을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정교하고 오래끌었던 통과의례들은 비의결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어떤 때는 몇 년 동안 지속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힘과 영향력은 강한 종교적 제재에 의하여 후원되었다.

 

어떤 사회는 신성한 숲(sacred grove)을 소유하고 이곳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상징물을 구체화했고 의식을 위한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비의결사는 통과의례의 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출계집단의 친족조직과 구별되는 사회조직이다. 그들은 각각의 아내와 남편 형제자매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가진 서로 다른 가족들이 모여 동맹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방법 때문에 사회는 하나의 조직원리(제도나 조직의 규칙)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원리들이 중복되어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한 현상은 아프리카 사회를 강하게 결속시키기도 하며 유연성과 적응력을 갖게 하기도 한다.

 

이보(Igbo)족의 소녀들을 특별한 장소에 격리 수용하여 놓고 살이 찌도록 잘 먹이고 몸에 기름을 바른다. 소녀들이 완전하게 살이 쪄서 볼이 둥글게 부풀고 젓가슴이 커지며 허리가 기름살로 뚱뚱해지면 마침내 그들은 결혼해도 좋은 적령기에 달했다고 본다. 즉 이보족들의 미적 기준은 살이 얼마나 많이 쪘는가이며 비밀스러운 조직에서 여자로서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피부관리등 신부가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시에라 레온(Sierra Leone)의 멘데(Mende)족은 남자는 포로(Poro)라는 조직에 속하는데, 분쟁이 있을 때 사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남자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와 포로의 구성원 선출에 관여한다. 여자들은 상데(Sande)라는 조직에 속하여 여자아이들을 성인이 되게 하는 통과의례를 주관하고 치료를 위한 약재들과 의식에 필요한 지식을 전수한다. 이때 치료해주고 얻은 수입은 치료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멘데족의 것이 된다. 이러한 의식조직(ritual organizations)은 비밀스러운 것이며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나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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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어린아이부터!’ 여기서 시작되다.

2012. 7. 17. 21:19

 

 

 

‘여자와 어린아이부터!’ 여기서 시작되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다룬 영화에서 배가 침몰할 때 여자와 어린아이부터 구명정에 태우는 모습과 선상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이 자신의 운명을 감지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배가 침몰하는 모습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 여자와 어린아이부터 구명정에 태우고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선원이나 종사자들이 그들의 운명을 당연한 것처럼 태연히 받아들이는 모습들은 남아공의 희망봉에서부터 유래되었다.

 

1852년 2월 26일 남아프리카의 해안에서 침몰한 버컨헤드(Birkenhead)라는 전함으로부터 이 역사적인 사실은 전해오고 있다. 1900톤의 이 전함은 나무가 아닌 철로 만들어진 최초의 전함이었으며 중기터빈으로 움직이며 또한 프리깃함형태의 범선처럼 돛으로 항해할 수도 있었다.

 

1852년 1월 7일 이 배는 군병력을 수송할 목적으로 남아공으로 항해를 시작하였다. 남아공의 시몬즈타운(Simonstown)에서 석탄과 식량을 공급받고 638명의 승객을 태운 후 2월 25일에 항해를 다시 시작했다. 그들 중 476명의 영국 군인들은 동부 케이프의 전선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나머지는 여자와 어린이들이었다.

 

날씨는 아주 좋았고 암석이 많기로 악명 높은 해안도 아주 선명하여 항해하는 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항해장비의 잘못된 조작과 해류로 인해 다음날 아침 이 배는 케이프 아귤하스(Cape Agulhas)와 케이프 헹클립(Cape Hangklip)사이의 위험지역(Danger Point)근처의 암초에 걸려서 침몰해가고 있었다. 이미 하갑판에서 잠자고 있던 약 100명의 군인들은 침대에서 익사하였고 모두 8척의 구명보트중 모두 부서지거나 제기능을 할 수 없어 단지 3척의 구명보트만 바다에 내릴 수 있었다. 선장은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여자와 어린아이부터 구명정에 타게하고 모든 승선인원들에게 배를 버리고 탈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 때 알렉산더 쌔톤 중령(Lieutenant-Colonel Alexander Seton)은 군인들에게 갑판에 정렬하게 하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타고 있는 구명보트에 달려가지 않도록 명령하고 칼을 빼들고 이탈자를 제지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쌔톤 중령은 빼어든 칼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곧 그 군인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곧이어 배는 두 조각으로 동강이가 나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굴뚝과 돛대가 갑판에 무너지면서 물결에 잠겨가고 있었다. 그러나 군인들은 갑판에 서서 단 한사람도 움직이지 않고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만약 한사람이라도 그 상황을 이탈한다면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태우고 있는 구명정에 군인들이 몰려들어 침몰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638명의 항해자중 단지 193명만이 살아남았으며 선장과 쌔톤중령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버컨헤드 훈련(Birkenhead Drill)’이라고 알려지게 되었으며 배가 침몰할 때 “여자와 어린이부터(Women and children first)"라는 구호가 유래되는 계기가 되었다. 배를 침몰로 몰고 갔던 암초는 버컨헤드 암초(Brikenhead Rock)로 명명되어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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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의 장로정치(Gerontocracy)와 경험의 중요성

2012. 7. 17. 21:17

 

 

 

아프리카인의 장로정치(Gerontocracy)와 경험의 중요성

 

 

 

아프리카에 처음 갔을 때 동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마타투(matatu)라는 버스를 타고 시골지역으로 연구차 들어가면서 겪었던 일은 나에게 지금까지도 ‘경험 많은 어른들’이 아프리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곤 한다. 마타투라는 버스는 우리나라의 봉고와 같은 승합차이며 아프리카인들의 주요한 교통수단이다. 마타투라는 말은 3을 의미하는데 차비가 과거에 우리 돈으로 3전하던 차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요즈음에는 “빨리 타”, “빨리 가”, 그리고 “빨리 죽어”라는 3가지의 별명을 가질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운송수단이다. 마타투는 외국의 관광객들이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차에 탔을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신기한 듯이, 그리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였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나는 ‘썰렁한’ 분위기를 애써 무마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는 달리 수다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말이 많던 현지인들은 말도 별로 하지 않았다. 시골길을 한참을 달리다가 문이 열리고 노인이 한 분 올라왔다. 그 노인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머리에는 코피아를 쓰고 있었으며 곳곳이 헤진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기품이 있어 보이는 어른이셨다. 마침 빈자리가 보이지 않아 나는 얼른 일어나 내 자리를 양보하며 “어르신 이쪽으로 앉으시지요(Mzee ukae hapa!)"라고 말했다. 그 노인은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나를 살펴보시며 ”자네는 어디에서 왔나?(Umetoka wapi?)"라고 물으셨고 나는 공손하게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Nimetoka Korea.)"라고 대답했다. 그 노인은 온화한 미소와 함께 ”여행 잘하시게(Safari njema!)"라고 하시고 내가 양보한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 후 그 마타투 안에서 나는 많은 사람을 친구로 만들 수 있었고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며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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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인간관계는 연령과 신분상의 위치에 따라 위계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신은 창조자이고, 모든 인류의 어버이이며,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호소와 청탁의 마지막 극점이 되고 있다. 그 신 밑에 여러 신적인 존재와 영(靈)이 있다. 이들은 인간보다 더 강한 자들이며, 여러 사회의 창시자나 선조이기도 하다.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인 살아 있는-사자(living-dead)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년식, 결혼, 자녀의 양육 등을 통하여 완성된 완전한 인간이다. 인간들의 계층은 위로부터 왕, 통치자, 우사(rain-maker), 사제, 점술사, 주술사, 각 가정의 가장, 연로한 어른, 부모, 손위 형과 누나, 그리고 끝으로 공동체의 가장 어린 구성원으로 위계가 이루어진다. 

 

실제로 이러한 위계 개념은 신으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사다리를 이루듯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경험이 많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은 아프리카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한 덕목이며 의무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이 드신 분이 분별없이 언행을 하지도 않는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하거나 여행을 하려 한다면 반드시 오래사신 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하고 또 존경하는 마음 갖기를 바란다. 바라는 결과를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1. 아프리카는 연장자 중심의 씨족중심사회

 

 

씨족과 가계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집단들이다. 씨족과 가계는 개인보다는 결국 이러한 조직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법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법인집단(corporate groups)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개인들이 토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씨족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게 땅을 처분할 권리는 제한된다.

 

씨족의 전설과 신화는 역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씨족 조상들은 현재 살아있는 구성원들의 일상의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영혼의 신, 살아있는 사자(living dead)로서 존재할 것이다. 씨족 조상들은 현존하는 사람들에게 사후에도 중요한 존재로서 실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씨족 구성원들은 위기나 필요한 의식에서 서로 돕는다. 결국 씨족은 궁극적인 관련 집단으로 개인의 정체성, 명성, 그리고 자부심이다. 한 아프리카인은 “만약 내가 매우 오랜 길을 걸어서 지쳐 더 걸을 수 없다면 나는 지쳐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씨족의 이름을 말한다면 나는 일어나 걸을 것이다”라고 개인에 대한 씨족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그의 씨족이 그의 피곤함보다 더 중요하고 그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며 그의 씨족에 대한 기억이 그를 지탱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즉 씨족은 개인에게 물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은 친족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아프리카 생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친족관계는 혈연관계와 결혼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친족관계는 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어하며 결혼관습과 규례도 이 친족관계가 다스린다. 또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이 친족관계가 결정한다. 사실 이 친족감은 ‘부족’의 전체 삶을 한데 묶어 놓는 것일 뿐만 아니라 ‘토템(totem)'의 체계를 통하여 동물, 식물, 생명 없는 물건들에게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씨족은 대체로 토템을 통하여 구별한다. 즉 각 씨족은 동물이나 식물, 돌이나 광물 등의 어떤 것을 그 씨족의 토템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씨족의 구성원들은 자기들의 토템은 절대로 살해하거나 먹지 않는다. 토템은 일체성, 친족, 소속감, 연대감, 공동의 친화감을 가시적으로 나타낸 상징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와 관련된 거의 모든 개념들은 친족관계의 체계를 통해서 이해될 수도 있고 해석될 수도 있다. 친족관계는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의 행동과 사유 및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족체계는 죽은 사람과 장차 태어날 사람들을 포함하여 수직적으로 확대된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그들 가계의 족보(the genealogies of descent)를 공부하는 것이 전통적인 교육의 일부가 되고 있다. 족보는 심원한 역사적인 소속감,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이 족보를 계승 확대해야 하겠다는 거룩한 의무감을 가지도록 한다. 족보를 통하여 현재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과거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과 굳은 연계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족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그 존재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근거인 과거를 향하도록 하는 거룩한 수단이다. 족보를 통하여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과 현재에 있는 사람은 인간의 삶이 지니고 있는 무시간적인 리듬 속에서 ‘동시대적(同時代的)’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족보를 통하여 신화적인 ‘최초’의 인간, 혹은 국가적인 영웅에까지 소급해 올라감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긍지와 만족감을 지니게 하기도 한다.

 

연장자들이 죽으면 그들은 명예스러운 조상들로서 후손들에게 기억된다. 또 후손들은 그들의 살아있는 집합적인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의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조상숭배를 ‘ancestor worship'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worship'이라는 말은 아프리카인들과 조상들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조상숭배는 존경, 경외, 숭배 등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조상숭배는 현실의 일시적인 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 사회조직은 마을의 사회적 영역뿐 아니라 전임자들의 사회적 시간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조상들은 초연장자(super-elders)다. 그들은 가장 최고의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축적된 모든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종류의 불사, 불멸을 얻었기 때문이다.

 

 

 

2. 연장자는 사회구조의 최 상층부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이서열(age ranking)은 아주 중요하며 연령질서(age order)는 사회조직의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아프리카 언어들은 영어에서 발견될 수 없는 장자(eldest son), 차자(second son) 또는 장녀(eldest daughter)같은 단어들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가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아이들은 나이어린 아이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쿠랑코(Kuranko)족은 연장자가 나이어린 사람들을 ‘소유(owns)' 또는 ’통제(rule)'한다고 말한다. 나이지리아의 이보(Igbo)족은 가족 구성원들이 고기를 배분하는데 나이순으로 한다. 나이든 남자는 머리부분을, 다음의 연장자는 목 부분을 먹게 된다. 즉 동물의 몸이 상징적으로 나이계급에 따라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남자들이 회의하는 방(meeting house)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을 때도 나이순으로 하며 음식이나 음료수도 언제나 연장자가 우선이다.

 

이러한 노인정치, 장로정치 구조(gerontocratic structure)는 유사 이래로 인간의 계속성과 함께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유아, 아이, 배우자, 부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동해 간다. 사회적으로는 통과의례나 연령등급(age set), 그리고 비의결사(secret society)같은 단계를 거쳐 옮겨가게 된다. 질병으로 일찍 죽지 않고 많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길러낸 사람들은 연장자로서 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노인정치 사회에서는 연장자들의 회의에 상당한 권위가 있으나 그들의 통치는 서투르거나 압제적인 것이 아니다.

 

 


특히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연령등급은 사회조직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연령등급의 최고 단계에 연장자들이 위치하고 있다. 적절한 의식을 거행하면서 동아리 내의 일반적으로 연령차이와 동등한 간격으로 다음 나이 등급으로 옮겨간다. 이런 식으로 그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통과를 통하여 수많은 연령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몇몇 연령 등급은 그것과 연관된 분명한 책임감이나 특권을 갖는다. 따라서 개인에게 대개 그들의 동료들로 구성된 준거집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 연령등급체계는 사회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조직체를 구성한다.

 

관습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서부터 고유한 명칭을 갖는 일련의 단계들로 이루어진 연령집단의 일원이 된다. 단계마다 독자적인 지위나 사회적․정치적 역할이 주어지며, 이때 각 단계는 주로 나이로 등급이 매겨진다.

 

연령집단은 일반적으로 동․남부 아프리카의 목축사회에서 나타나며 서부아프리카에서 널리 퍼져있었고 전통적으로 사회구조의 가장 중요한 구조였다. 이것은 동시대성에 기초한 남자들의 단체이다. 청소년기로부터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을 시작으로 남자들은 나이에 따라 연령집단에 들어가며 평생동안 연령집단을 옮겨 다닌다. 구성원들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며 의무와 특권이 있다. 전형적으로 연령집단은 4가지 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훈련기간에 새로 가입된 남자들, 둘째로 방어를 전담하는 전사집단, 셋째로 통치에 관여하는 어른들, 넷째로 사회의 연장자들이 속한 등급이다.

 

 

3. 연장자는 분쟁해결에서 주도적인 역할

 

 

재판에서 연장자의 저주를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본적인 원리는 어떤 사람이 유죄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면 그를 저주함으로써 그 저주의 말에 의하여 악이 그에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주로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저주할 수 있지, 그 역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저주는 연장자에 해당하는 부모나 아저씨, 아주머니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또 가장 고약한 저주는 임종시에 하는 저주이다. 일단 그 저주자가 죽으면 이를 취소할 방도가 실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참회를 하고 저주를 거두어주기를 원하면, 그 저주를 한 사람은 그 저주를 스스로 취소할 수도 있고, 또 그 저주가 심각한 것이었으면 제의를 통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주어진 저주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약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죄가 없으면 저주는 기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공식적인 저주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마치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특별히 가족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관계를 저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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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나이 많으신 어른의 말씀이 곧 법이다.

2012. 7. 17. 21:15

 

 

 

아프리카에서는 나이 많으신 어른의 말씀이 곧 법이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이서열(age ranking)은 아주 중요하며 연령질서(age order)는 사회조직의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아프리카 언어들은 영어에서 발견될 수 없는 장자(eldest son), 차자(second son) 또는 장녀(eldest daughter)같은 단어들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가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아이들은 나이어린 아이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쿠랑코(Kuranko)족은 연장자가 나이어린 사람들을 ‘소유(owns)' 또는 ’통제(rule)'한다고 말한다. 나이지리아의 이보(Igbo)족은 가족 구성원들이 고기를 배분하는데 나이순으로 한다. 나이든 남자는 머리부분을, 다음의 연장자는 목 부분을 먹게 된다. 즉 동물의 몸이 상징적으로 나이계급에 따라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남자들이 회의하는 방(meeting house)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을 때도 나이순으로 하며 음식이나 음료수도 언제나 연장자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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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인정치, 장로정치 구조(gerontocratic structure)는 유사 이래로 인간의 계속성과 함께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유아, 아이, 배우자, 부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동해 간다. 사회적으로는 통과의례나 연령등급(age set), 그리고 비의결사(secret society)같은 단계를 거쳐 옮겨가게 된다. 질병으로 일찍 죽지 않고 많은 아이들을 생산하고 길러낸 사람들은 연장자로서 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노인정치 사회에서는 연장자들의 회의에 상당한 권위가 있으나 그들의 통치는 서투르거나 압제적인 것이 아니다.

 

특히 아프리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연령등급은 사회조직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연령등급의 최고 단계에 연장자들이 위치하고 있다. 적절한 의식을 거행하면서 동아리 내의 일반적으로 연령차이와 동등한 간격으로 다음 나이 등급으로 옮겨간다. 이런 식으로 그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통과를 통하여 수많은 연령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몇몇 연령 등급은 그것과 연관된 분명한 책임감이나 특권을 갖는다. 따라서 개인에게 대개 그들의 동료들로 구성된 준거집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 연령등급체계는 사회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조직체를 구성한다.

 

관습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서부터 고유한 명칭을 갖는 일련의 단계들로 이루어진 연령집단의 일원이 된다. 단계마다 독자적인 지위나 사회적․정치적 역할이 주어지며, 이때 각 단계는 주로 나이로 등급이 매겨진다.

 

 

 


연령집단은 일반적으로 동․남부 아프리카의 목축사회에서 나타나며 서부아프리카에서 널리 퍼져있었고 전통적으로 사회구조의 가장 중요한 구조였다. 이것은 동시대성에 기초한 남자들의 단체이다. 청소년기로부터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을 시작으로 남자들은 나이에 따라 연령집단에 들어가며 평생동안 연령집단을 옮겨 다닌다. 구성원들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며 의무와 특권이 있다. 전형적으로 연령집단은 4가지 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훈련기간에 새로 가입된 남자들, 둘째로 방어를 전담하는 전사집단, 셋째로 통치에 관여하는 어른들, 넷째로 사회의 연장자들이 속한 등급이다.

 

재판에서 연장자의 저주를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본적인 원리는 어떤 사람이 유죄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면 그를 저주함으로써 그 저주의 말에 의하여 악이 그에게 떨어질 거라고 하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주로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며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낮은 위계의 사람들을 저주할 수 있지, 그 역은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두려워하는 저주는 연장자에 해당하는 부모나 아저씨, 아주머니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것이다. 또 가장 고약한 저주는 임종시에 하는 저주이다. 일단 그 저주자가 죽으면 이를 취소할 방도가 실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참회를 하고 저주를 거두어주기를 원하면, 그 저주를 한 사람은 그 저주를 스스로 취소할 수도 있고, 또 그 저주가 심각한 것이었으면 제의를 통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주어진 저주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만약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이 죄가 없으면 저주는 기능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사회는 공식적인 저주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마치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특별히 가족권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관계를 저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두 사람 사이에 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중재와 화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되었든지 많은 사람들이 되었든지 사건을 평결하기 위해 초대되어지는 방법을 취한다. 중재는 언제나 분쟁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족시켜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3자 개입은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법제도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중재자로 초빙된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연장자들로 어떤 사건을 다룰 때 추장의 고문으로 추대되기도 한다. 따라서 경험이 많은 연장자들이 중재를 한다면 평결의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건이 추장의 고문들에 의해 논의되어진 후 추장에게 맡겨졌을 때 사건의 결과는 다르게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건을 다루었던 고문관들이 같은 수준에서 결과에 영향을 이미 주었기 때문이다.

 

중재에서 평결이 내려질 때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분쟁에 관련된 사람들이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엄격하고 공명정대한 평결이 강조된다. 그러나 한쪽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낳은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사과시키는 것을 적절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중재에서의 벌금은 부담스럽지 않게 한다. 배심원의 구성원들이 벌금을 나누어 갖는다.

 

 

 


한 예로 북부 나이지리아의 베누에 강 연안에 살고 있는 티부(Tiv)족은 사법제도가 어떤 사회적 계층을 이룬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진다. 이들은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서 사법제도에 그 자체로서 제제나 상벌의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 계층은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연장자(Elders ; Vensen)와 명망 있는 사람들(Men of Prestige ; Shaba)이다. 이 두 집단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지위로 인해 아주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다. 연장자들은 언제나 사회에서 노인들이며 정치구조에서 연장자 정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모든 분쟁이나 다툼을 다룬다. 이들에게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이 주어졌다고 믿고 있다. 반면에 명망 있는 사람들은 부, 관대함,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 두 계층의 사람들은 상호보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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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시간개념

2012. 7. 17. 21:10

 

 

아프리카인들이 생각하는 시간개념

 

 

 

아프리카인들에게 시간은 이차원적인 현상이다. 즉 긴 ‘과거’와 ‘현재’만이 있을 뿐 실제적으로 미래가 없다. ‘실제적인 시간’이란 현재의 시간이며 과거의 시간이다. 일단 일어난 사건은 이제는 미래를 향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 속으로 전개해 나간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뒤로 움직이는 것이다. 반면에 ‘잠재적인 시간’이란 미래에 틀림없이 일어날 사건, 또는 자연현상의 불가피한 리듬 안에 있는 것을 가리키고 일어나지 않은 것, 혹은 곧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은 비시간(No-time)의 범주 안에 속한다. 미래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미래 속에 있는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며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도 그들의 마음을 미래의 사물에다 두고 있지 않고 이미 일어난 것에 두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의 일부를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하고 미래에 있는 것은 전혀 경험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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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비티(J.S. Mbiti)의 주장처럼 아프리카인들은 대시간(Macro-Time)인 자마니(zamani ; 과거)와 소시간(Micro-Time)인 사사(sasa ; 현재)로 구분되고 미래라는 시간개념은 실제적인 시간의 너머로 생각된다. 사사라는 시간은 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사사기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스스로의 기억이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의 사사기간이 젊은 사람보다 길다.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아도 개인의 사사보다 좀더 중요하고 크다는 것일 뿐이지 자체적으로 사사기간이 있다. 사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존을 의식하는 시간의 영역이고 그 속에서 그들 스스로의 짧은 미래 속에, 그리고 주로 자마니라는 과거 속에다 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는 그것 자체로의 짧은 미래와 역동적인 현재와 경험된 과거를 함께 지닌 완전한 혹은 충분한 시간인 것이다. 자마니는 사사와 필연적인 관계이며 그것 자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지고 있다. 즉 사사는 ‘자마니에게 먹이를 준다.’든가 ‘자마니 안으로 사라져 들어간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자마니는 어떤 것도 그것을 넘어서서 더 갈 수 없는 그러한 기간이 된다. 자마니는 시간의 무덤이고 끝이며 모든 것이 휴지 점에 부닥치는 그러한 차원이다. 따라서 자마니는 모든 현상과 사건들을 모아놓는 마지막 창고이고 모든 사물이 이전도 이후도 없는 현실 속으로 흡수되는 시간의 바다이다.

 

 

 


자마니는 사사가 근거하고 있는 기초이며 또한 사사는 자마니에 의해 비로소 설명될 수 있고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마니는 소멸이 아니라 많은 일과 사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구전전통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듯이 신화와 전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의 역사관도 자마니를 지향하고 있지 지극히 짧은 시간안의 미래나 존재하지 않는 미래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인들의 신화와 전설은 그 어떤 것도 세상에 종말을 가져올 수 없으며 인간의 역사가 사사로부터 자마니로 움직이는 리듬 속에서 영원히 계속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떤 이는 역시 사건들을, 특히 사람들의 활동들에 대해, 그것들이 마쳐졌는지, 아직 진행 중인지, 혹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지 고려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마쳐지거나, 완벽히 마친 사건들이나 활동들은 다 마치지 못한 일들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아직 시작되어지지 못한 것들 보다는 훨씬 더욱 그렇다. 단순한 기술체계를 가지고 있고, 일시적인 흥미 거리가 사회 활동으로 집중되는(시계, 달력, 연대기, 그리고 자연 현상들이 아닌), 토착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과거가 미래보다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사회체계를 제공하는 것이 과거이고, 사회관계도 과거부터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전문화에서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본적 방향을 위해서 아직 진행 중인 어떤 것 보다는 과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들에게는, 역사는 미래의 골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은 세계의 기원, 인류의 창조, 인간의 역사와 전통, 혹은 그들의 사회로의 전개등과 같은, 사람들의 존재의 뿌리를 짚어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견해에 따르면, 미래는 비현실적이다. 그것은 아무런 사건도 포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종교적 혹은, 규범적인 중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 계절, 연령, 혹은 세대의 반복을 미래에 반영하고, 지금부터 이렇게 많은 단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야기 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만약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 끝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인들은 ‘진보에 대한 신념’ 곧 인간의 활동 및 업적의 발전은 낮은 데서부터 보다 높은 데로 나아간다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음비티의 주장은 에반스-프리차드(Evans-Pritchard)나 보해넌(Paul Bohannan)의 연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에반스-프리차드는 뉘르(Neur)족의 시간개념을 연구한 후 뉘르족은 시간을 세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하였다. 1년이 12개월의 단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뉘르족은 그것들을 한 단위의 단편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어느 달에 한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추상적인 숫자 기호에서 일어난 사건들 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완전한 시간의 단위보다 활동들이나 활동의 성과, 그리고 사회 구조와 구조적 차이들로서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 

 

보해넌이 티브(Tiv)족으로부터 시간이란 제각기 다른 활동을 수용하는 일련의 폐쇄된 방으로 이러한 시간의 방들은 옮길 수도 섞일 수도 없다고 밝힌 내용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티브족에게 시간은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현상들에 의해 다른 종류의 기간들로 분류되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종종 다른 논리적인 시리즈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의 분류를 서로 관련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티브족은 달을 시장이나 농업 활동, 혹은 계절과 연관시키지 않는다. 만약 누가 얼마나 많은 달이 1년에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10에서 18까지 매우 다양하다. 만약 누가 한 달에 있는 시장의 개수를 물으면, 그 대답은 3에서 8까지 다양하다. 또한 한 달에 있는 일의 수를 물으면, 10에서 15까지 다양하다.

 

 

 


아프리카의 시간 계산은 반복되는 자연현상을 전제로 한다.- 계절, 달의 차고 기움, 그리고 해의 움직임- 그리고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사회 활동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또한 개인과 사회의 전반적인 삶 속에서의 사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프리카인들이 시간을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경험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즉 아프리카인 들은 다른 사건들에 비해 구체적인 사건들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한 아프리카인이 ‘그 마을은 내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옮기지 않았어요.’ 혹은, ‘정부는 내가 정화의식을 한 후에, 그리고 결혼을 하기 전에 출범했다.’라고 표현한다.

 

‘하루’는 아프리카의 공동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맞추어 시간이 진행된다. 예를 들어 우간다의 앙코레(Ankore)족은 가축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축을 돌보는 일에 맞추어 시간이 나누어진다. ‘달’은 ‘뜨거운 달’, ‘첫 비가 오는 달’, ‘잡초를 뽑는 달’, ‘콩을 거두어들이는 달’, ‘사냥을 하는 달’등으로 나누어 계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구분되기 보다는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해’는 계절에 따른 활동들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 모두 ‘몇일이 한해인가’라고 세기 보다는 ‘건기와 우기가 몇 번이나 지나갔는가’로 계산된다. 이 또한 정확한 날짜로 계산되면 365일을 벗어나 340일이 될 수도 있으며 360일이 될 수도 있지만 계절이나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차이도 느낄 수 없다.

 

낮과 밤의 끊임없는 리듬처럼, 그리고 달의 차고 기울음처럼 한해가 왔다가는 가곤 하는 그런 세월을 사람들은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즉 그들은 우기가 오면 다음에는 파종의 계절이 오고, 그것이 지나면 수확의 계절이 오며, 그 다음에는 건기가 오고, 그것이 지나면 다음에 다시 우기가, 그리고 그 우기의 다음에는 또 다시 파종의 계절에 오는 이 같은 영원히 지속되는 일들을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해를 지내면서 과거라고 하는 시간의 차원이 차츰 더해져 간다. 그들에게 있어 ‘무한’이라든가 ‘영원’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다만 과거의 영역에 속해있는 어떤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시간은 양을 잴 수 없는 다른 사건들의 반복들과 세대나 연령층과 같은 사회 구조들로서 표현되기 때문에, 시간은 균일한 것, 지속적인 것, 혹은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어 지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관점에서는, 지금의 하루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시간은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따라서 양력과 그것을 다시 일정한 달, 일, 시, 분, 초로 나눈 것에 근거한 현대 서양 문명의 연대기와는 다르게 자세한 과정들의 세부사항부터, 현재 시간까지의 일시적인 과정의 측정을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균일하게 추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은 시간을 수학적인 계산으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과의 관련속에서 구체적이고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헤아린다. 즉 시간은 사건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날, 달, 해, 일생, 혹은 사람의 삶은 제각기 그것들이 지닌 특별한 사건에 의해서 모두 나뉘어지고 헤아려진다. 왜나하면 그러한 시간들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일 어떤 일을 하자’라는 약속은 정확히 몇 시에 하자는 의미보다는 ‘무엇을 한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엇을 한다.’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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