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재미있는 Africa 이야기 II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내전에 관하여

africa club 2012. 7. 17. 21:35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수단 내전에 관하여

 

 

 

수단은 아프리카 53개국 중 가장 면적이 넓은 국가로 영토의 절반이 나일강의 중류 및 상류의 분지이며 북동쪽 끝이 홍해에 면한 짧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BC 3000년경에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수단의 북부지역인 누비아를 침략한 후 이집트와 교류가 본격화되었고 BC 7세기경에는 누비아이들이 세운 쿠쉬왕국이 이집트를 정복하여 지배함. 6세기에는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나 7세기부터 아랍인들이 수단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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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이래로 남부지역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있어왔고 1956년 독립이후에도 아랍인들과 무슬림들에 의해 중앙정부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남부세력은 차별철폐, 민주화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결국 자치/독립을 요구하면서 수단인민해방군(SPLA)를 조직하여 정부군과 대립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인종구성은 아랍인들은 약 39%, 아프리카인들은 약 69%이며 종교적으로는 수단의 북부와 중부에는 약 75%를 차지하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무슬림 수니파가 살고 있으며 산업으로는 주로 농업이 발달해 있고, 남부는 약 25%를 차지하는 딩카족이나 뉘르족, 실루크족 등 나일 사하라 족이 기독교와 전통종교를 믿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발달이 미약하여 남북간의 뚜렷한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부는 영국의 통치로 영어사용자가 많은 편이고 135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주요 언어만도 30여종이나 된다.

 

 

1956년 영국-이집트 령에서 독립할 때부터 내전에 발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다. 1969년 구데타로 집권한 누메이리 정권이 1983년 자치를 유지하고 있던 남부 3개주에까지 이슬람법(Sharia)을 도입함에 따라 음주, 간통 도둑질에 대해 공개적인 태형이나 수족을 절단하고 남부의 자원을 확보하려고 하자 흑인 기독교도들이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하였다. 

 

1989년 바시르 장군이 누메이리 정권에 대한 구데타 이후 군사독재를 강화하고 이슬람원리주의의 민족이슬람전선(NIF : National Islamic Front)과 손을 잡고 이슬람법의 적용을 강화함. 비서구노선을 강화하여 이란, 이라크, 리비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의 입국을 환영하기도 하였다.

 

1991년 바시르정권은 내전종결위해 연방제이행을 선포. 인민해방군은 내부권력투쟁의 심화로 분열과 혼란을 겪고 3개의 파벌로 나누어진다. 1992년 정부군의 대공세와 이집트의 수단정부 지원으로 열세에 몰린 인민해방군은 1992년 5월 나이지리아의 중재 하에 아푸자에서 휴전협상을 체결하였으나 1996년 SPLA등 7개 세력이 민족민주동맹(NDA)를 결성 반정부 공세를 감행하였다.

 

 


1999년 수단정부는 수단반군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3개월간의 국가긴급사태를 선포하고 국가의 모든 권력을 오마르 알 베시르 장군(현 대통령)에게 위임하였다. 수단은 내전으로 인하여 약 200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난민은 약 450만 명 이상이 발생하였다.

 

수단 정부는 587개의 부족 중 단지 19개 부족이 중심이 되어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하나의 수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남부 3개주의 소수종족은 기독교와 원시종교 믿으며 자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수단 내전은 본질적으로는 반정부 분리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종교 부족간의 갈등과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자원전쟁의 양상을 띠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수단의 내전은 종교적인 부분보다는 자원의 공유와 문화적인 충돌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 북부의 수단인 들은 남부의 문화를 경멸하고 있으며 토착민들을 지배아래 두는 것을 신성한 의무처럼 보고 남부의 석유자원개발에 대해서도 자기들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파간 이념간 벌어지는 내전상황과는 달리 수단의 내전상황은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기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토착민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역을 분리 독립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단 분쟁은 강대국의 직접적 이익이 걸려있지 않고 그 영향범위가 내부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수단의 내전상황은 수단정부가 분리독립에 대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며 최선의 방책은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무장대결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올해 5월에 수단정부와 남부 반군인 수단인민해방군이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서 지난 21년간의 수단 내전을 평화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개입으로 수단 정부와 최대의 반군조직인 인민해방운동(SPLM) 사이에 맺어진 평화협정이라는 데 더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수단의 평화정착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상당한 난관이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의 평화협상은 최종적인 것도 아니며 다르푸르 지역 같은 경우는 별개의 협상이 진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차후의 협상에서도 권력분배의 문제와 수도 카르툼에 대한 종교적 영향력 행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 수단은 국가의 경제발전과 정치적 생존을 위해 테러지원국의 오명을 씻고 1989년 이후 계속되어온 경제 제제조치가 해제되기를 바라는 등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맞물려 수단의 평화정착을 모색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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