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며 'Yes'맨?

2018. 3. 9. 17:17

 

오늘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러나 이러니 이야기는 일반화시켜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분히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콩고민주공화국 현지인들과 친한 관계를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 7년 이상 메이드로 일했던 사람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훔쳐서 도망하는 경우도 있다. 17년 동안 일하던 경리직원이 작은 사건으로 인해 해고 통지를 받고 그날 들어온 달러를 모두 들고 훔쳐간 사건도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감시가 소홀해 지면 물건을 주머니에 넣고 훔치는 행위도 비일비재하고 관리자는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익을 취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이익을 챙긴다. 물건을 정상 무게보다 낮게 장부에 적고 차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고, 오래 되거나 상태가 좋지 못한 물건을 싼 값에 빨리 팔라고 하면 비싸게 팔고 차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가격을 정해준 대로 팔지 않고 비싸게 팔아 차익을 넘기는 경우도 있으며 회사의 돈을 횡령하여 자신의 집을 건축하는 비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사람은 ‘yes’인이다! 일단 무슨 일을 시켜도 대부분은 ‘yes’라고 답한다. 심지어 하늘이 할 수 없는 일도.. ‘조금만 기다려,,, 내일이면 될 거야!’ 이런 말은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지만 내일은 빠르면 일주일 혹은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처리를 위해 선금을 내고 추가금을 내고, 또 나중에 추가금을 내야하는 경우가 다반사며 그나마 일이 해결되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도둑은 일상적인 손님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도둑을 잡을 때도 모든 비용을 피해자가 내야 한다. 말로는 나중에 도둑을 잡으면 다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검찰은 우리가 준 돈을 먹고 도둑을 잡았을 것이고 도둑을 다시 협박해 돈을 또 챙겼을 것이다. 우리가 검찰에 항의하면 또 돈을 요구하고 그 돈의 가치에 따라 다시 도둑을 불러들일 것이냐가 판단된다. 도둑을 잡아도 돈은 받기 힘들다. 감옥에 도둑을 집어넣어도 도둑은 한 달 이내에 돈을 주고 감옥에서 나온다. 아프리카에 오는 모든 투자자들이나 사업가들은 많은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 습관 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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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남자들은 면도날을 이용해 이발을 한다.

2018. 3. 9. 17:13

 

콩고민주공화국 현지인들은 면도날을 빗에 대고 빗질을 해가면서 이발을 한다. 흑인은 머리카락이 길게 자랄 수 없어서 빗질을 하면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이 잘린다고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태어날 때부터 곱슬머리여서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동부아프리카의 남자들은 레게머리를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서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남자들이 레게머리를 많이 한다. 남자들의 경우 이발소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시내의 이발소도 있지만 시내버스 정류장이나 한적한 마을에 간이 이발소가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조잡한 그림으로 널빤지에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 형태를 그려놓지만 실제로는 머리를 완전히 밀거나 약간 남겨놓는 빡빡 형태의 머리가 일반적이다. 만약 우리와 같은 머리 형태를 원하면 분명코 쥐어뜯어 놓은 것처럼 만들어 놓아 나중에는 완전히 바리캉으로 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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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은 왜 여러 대의 핸드폰을 들고 다닐까?

2018. 3. 9. 17:09


아프리카인들에게도 핸드폰은 신분과 부의 척도를 나타내는 상징이며 모든 생활의 중심에 있다.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 앱을 깔아 결재를 하는 데도 이용되고 있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아날로그든 스마트폰이든 관계없이 핸드폰을 통해 돈을 보내고 받는 은행기능까지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이 우리보다 더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아프리카인들에게 핸드폰은 중요한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얼마나 핸드폰이 중요하게 되었는가는 길거리의 광고를 보면 알 수 있다.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광고는 코카콜라에서 지원한 광고가 주를 이루어 온통 붉은 색이었으나 요즘은 통신회사에서 지원한 광고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진 1>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거리에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 핸드폰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다. 2014127일 필자 촬영



아프리카에서는 일반적으로 핸드폰이 부의 상징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알 수 있어 그 사람의 정체성까지 결정할 수도 있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지금도 생각난다. 아프리카인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여자 친구를 만날 때도 좋은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였다. 소개나 미팅을 할 때는 물론이고 처음 만날 때 어떤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키아와 삼성이 가장 인기가 많은데 비용이 약 50만원에서 60만원 정도 하니까 결국 이런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는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약 1000만원 정도하는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당시 중국제 가짜 전화기를 들고 다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와서 놀란 점 중 하나가 사람들이 핸드폰이 기본적으로 2-3개 가지고 다닌다는 점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통신이 불안정해서 한 통시사의 번호만 가지고 있으면 통신사가 문제가 있을 경우 다른 통신사의 번호로 전화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한가지 이유는 같은 통신사끼리 전화를 하면 비용이 아주 저렴하고 다른 통신사의 번호로 하면 아주 비싼 요금체계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유엔이나 NGO, 정부 고위관료들은 명함을 받을 때마다 전화번호가 4개에서 5개까지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한 대의 핸드폰도 운영하기가 어려운데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은 보통 2-3대가 기본이고 4대 이상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전화번호를 여러 개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핸드폰에 심카드를 2개씩 넣을 수 있는 중국산 핸드폰을 이용하기도 한다. <사진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통화' 버튼이 두개가 있는 핸드폰으로 통화버튼 1은 첫 번째 심카드를, 통화버튼 2는 두 번째 심카드를 사용하는 통화버튼이다.


콩고민주공화국 마타디(Matadi)에서 35세의 회사원이 쥘(Jule)과 핸드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사진 2> 예언자 시몬 킴방구의 여정 2014126일 필자 촬영



한 번은 기업노조연합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어요. 거기엔 다수의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다들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놓았죠. 아니나 다를까 다들 스마트폰이었어요. 저는 전화가 오면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계속 끊어버렸죠. 창피했어요. 저도 나름 회사대표로 참석 했는데 말이죠. 저도 전화가 오면 액정을 밀어서 전화를 받고 싶어요. 하지만 스마트폰은 너무 비싸요. 제 한 달 급여를 다 투자해도 살 수가 없는 금액이에요. 몇 달 모아서 사고 싶지만 당장 월급은 마누라한테 다 들어가니마누라 몰래 급여를 가불 받아서 일단 사고 싶은데 그랬다간 아마 이혼당할지도 몰라요.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 1순위는 누가뭐래도 스마트폰이에요. 뭐랄까 좀 다른 느낌이니까 제 핸드폰이 제가 조금 잘나가는 위치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러기까지는 콩고민주공화국에 들어와있는 외국인들의 역할이 컸어요. 너도 나도 스마트폰이니. 우리가 최고로 보는 핸드폰은 삼성이나 아이폰이에요. 하지만 비싸죠. 보통 중고시장도 형성되어 있지만 중고도 비싸요. 하지만 중고 삼성 스마트폰은 저희가 아예 접근도 못할 가격은 아니에요. 중국인들이 중고 스마트폰을 많이 가져오는 것 같더라고요. 핸드폰을 여러 가지 가지고 있는 이유는 통신사별로 통신상태가 안 좋을 때가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보다콤이 안 터질 때 에어텔은 터지고, 에어텔이 안 터질 때, 보다콤은 터지는 식이죠. 그래서 통신사별로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요.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은 3G가 서서히 자리잡고 있는 형국이에요. 아직 가격이 비싸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진 않지만 글쎄요. 조금씩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겠죠?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 페이스북 같은 거 해야 하잖아요.


저도 너무 스마트폰이 가지고 싶어서 중국산 짝퉁을 산 적이 있었어요. 기능은 잘 모르겠고, 어쨌든 밀어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다만 한 달도 안 되어서 고장 나더라고요. 중국산 짝퉁은 정말 비추천이에요. 저희는 보통 몇 백 프랑에서부터 오천 프랑까지 선불카드를 사서 핸드폰 요금을 충전해요. 통신비가 싸지 않으니 자주 통화를 하지도 못 하죠. 급한 일이 있는데 제가 요금이 없을 때는 상대방에게 전화를 하고 끊어요. 그렇게 여러 번 하면 그쪽이 전화를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뭐 급한 사람이 우물 파는 거죠

 

1998년 초만 해도 킨샤사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매우 극소수로 일부였다. 2015년 현재 핸드폰은 통신수단으로, 편지와 문자, 음악감상, 동영상, 카메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 은행역할을 함으로서 현대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모토롤라(Motorola)와 노키아(Nokia) 전화기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아주 부유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선전신을 주로 이용하였다. 5년 뒤에 삼성, 엘지(LG), 애플 등 다른 회사 전화기들이 시장에 나왔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모토롤라와 노키아를 선호했다. 최근에는 아이부터 어른할 것 없이 좋은 품질의 핸드폰을 선호하고 있다.


2005년 초에 중국의 이중 심카드 전화기가 출시되어 킨샤사에 보급되었는데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비록 중국제품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메모리카드, 라디오, 카메라 기능을 갖춘 핸드폰을 선호하게 되었다.


킨샤사에서 요즘 핸드폰을 빼앗는 기막힌 사기행각도 벌어지고 있다. 킨샤사국립대학교(Université de Kinshasa: UNIKIN)에 다니는 클라우델(Claudel)이라는 학생은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클라우델은 저녁 6시에 교회를 가는 길이었는데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클라우델을 보고 까이 와서 그는 반둔두(Bandundu) 주에서 살고 있는데 엄마가 아파 킨샤사에 왔고 엄마가 지금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엄마에게 드릴 약을 살 돈이 필요해서 고향에서 가지고 온 금을 팔려고 한다고 하며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그는 시골에서 와서 금값을 잘 모르니 클라우델이 좀 팔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는 클라우델을 믿으니 금을 가지고 약국에서 팔아 약을 좀 사다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약을 사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당신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대신 핸드폰을 두고 가도 좋다고 말했다. 클라우델은 핸드폰을 놓고 금이 든 가방을 열어보고 확인하지 않고 약국을 향했다. 몇 발자국을 떼어놓지도 않았는데 그는 도망했다고 한다. 소리를 지르면서 그를 쫒았지만 그를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사진 3> 마타디 시내의 핸드폰 판매대 진열장. 2014725일 필자 촬영



스마트폰을 통한 페이스북, 홧츠앱(Whatsapp), 이모(imo)같은 소셜 네크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의 발전으로 통신은 더욱 다양하게 발전했다.


보다콤, 오렌지(Orange), 아프리셀(Africell), 에어텔(Airtel) 같은 통신회사들은 다른 회사의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회사 네트워크를 사용하도록 강요한다. 따라서 만약 위의 회사들의 심카드를 사면 같은 회사끼리 전화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주 저렴하지만 다른 회사 심카드를 가지고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비용을 비싸게 청구한다. 그래서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은 핸드폰을 2-3개씩 가지고 다니거나 이중 심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중국 및 노키아 핸드폰을 사용한다.




<사진 4> 콩고민주공화국 마타디(Matadi) 시내의 핸드폰 판매대에 있는 가짜 핸드폰 2014725일 필자 촬영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통신회사는 오렌지다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셀을 이용하는데 같은 회사 통신망을 이용하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에어텔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시골지역에 연고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에어텔은 시골 지역까지 촘촘하게 통신망을 깔아 통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킨샤사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시골에서 올라와 사는 사람들로 아직도 가족들이 시골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메시지를 보낼 때 사람들은 정확하게 문법에 맞게 문장을 만들어서 보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집에 있어(je suis à la maison)’라는 문장을 ‘g s8 a la mzon’라고 쓰기 때문에 일종의 은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물론 발음도 다르다.


최근에는 안드로이드 또는 윈도우 스마트폰을 좋아한다. 삼성, 노키아, 모토롤라 등의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다. 오렌지 통신회사가 가장 잘 나가는 회사로 기지국의 네트워크가 잘 만들어져 통화품질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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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사람은 생선이 없으면 밥을 안 먹는다!

2018. 3. 9. 16:28

 

콩고민주공화국인 사람들은 바다 생선을 아주 좋아한다. 콩고 강을 접하고 있어 민물 생선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작지만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 바다 생선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이 식사 때마다 생선을 먹을 만큼 생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의 바다 생선 사랑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은 닭고기나, 소고기보다는 생선을 훨씬 더 좋아하며 끼니때마나 생선을 먹지 못하면 식사를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는 대체로 생선을 튀겨 먹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은 튀기고, 삶고, 졸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요리하여 즐기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생선을 냉동상태로 수입하여 팔고 있는 회사는 레바논, 벨기에, 한국 등 대부분 외국인 회사들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이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바다 생선을 주식으로 삼게 된 것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자원과 외국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 중요한 이유였다. 콩고민주공화국인의 생선 사랑을 살펴보면 콩고민주공화국의 식문화뿐만 아니라 외국의 영향력에 의해 어떻게 식량주권이 영향을 받았는지 조망할 수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피오디(mpiodi), 음봉고(mbongo), 하케(hake) 등의 제품을 판매를 하고 있는데, 피오디와 음봉고는 우리나라에선 전갱이 같은 생선종류이고, 하케는 동태 같은 종류의 생선이다. 뿔레는 닭고기이다. 보통 생선 한 박스는 30kg으로 10kg3개의 묶음이 들어가 있는데 위에 사진 속에 카톤(carton)은 박스가격이고 라메(rame)3개씩 나누어진 것 중 하나의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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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졸업식 뒤풀이에 하얀 가루를 뿌리고 축하한다!

2018. 3. 9. 14:43



콩고민주공화국에는 대학교는 졸업식 세리머니가 있으나 중등학교에서는 없다. 그러나 콩고민주공화국 전역의 중등학교에서 학생은 물론 부모들도 머리에 하얀 가루를 뿌리면서 축하를 한다. 특이한 점은 부모도 하얀 가루를 뿌리면서 축하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유행하는 교복 찢기, 옷 벗기기, 속옷 차림으로 바닷물 뛰어들기, 팬티만 입고 질주하기, 머리에 케첩 뿌리기…. 등등은 없다. 콩고민주공화국인들이 과거에는 밀가루를 많이 뿌렸는데 요즘엔 분말 가루가 가격이 싸져서 분말 가루를 많이 뿌린다.


학기는 9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6월이나 7월에 끝난다. 학생들은 청색과 하얀색으로 된 교복을 입어야 하면 finalists, pre-frinalists, 그리고 일반적인 과정으로 나누어진다. Finalis는 졸업반 학생으로 6학년 생이며, pre-frinalists은 5학년 생이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특별한 이름은 없다. 링갈라어로 학생들을 ‘Bana class’라고 부르는데 ‘Children of the Class’라는 뜻을 갖고 있다.


간호학교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나 5학년 생을 학생으로 받는다.

어떤 때는 수험생들이 합격했을 경우에 가루를 공중에 뿌리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성공을 축하하고 친구, 부모님들과 기쁨을 함께 하는 의미가 있다. 가루를 몸에 뿌린 사람은 성공했다는 표시로 자긍심을 갖게 된다. 흰 가루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6학년 졸업학년 학생은 2개의 시험인 구두시험과 필기시험 중 1개과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졸업할 수 있다. 국가시험과 필기시험은 정부가 주관하는 중요한 시험 중 하나다. 국가 시험은 모든 시험의 마지막 단계에서 치러진다.


마지막 시험 다음에 약 3주에서 5주간 교육부의 결정을 기다린다. 그리고 통신회사를 통해, 주로 보다콤(Vodacom)을 통해 그해 시험결과를 발표한다.


시험결과에서 합격을 받으면 기뻐하며 노래를 부르고 길거리로 걸어가서 흰 가루를 뒤집어 쓰고 함께 뛰어다닌다.


콩고민주공화국 마타디(Matadi)에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및 분석 대학(Institut Supérieur d'Informatique, Programmation et Analyse: ISIPA)의 렐로(Lelo) 교수는 현재 53세인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음.. 글쎄요 우선 제가 어렸을 때는 그런 의식이 없었어요.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이 천 년도 초반 정도부터 그러한 문화가 생긴 것 같아요. 이유라… 뭐라고 설명 드릴 수가 없는데 그냥 하나의 통과의례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도 그런 것이 있지 않나요?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하는 의식들.


보통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가장 많이들 그렇게 해요. 대학교 졸업식에는 물론 있긴 하지만 많이들 하진 않아요. 보통 밀가루나 파우더를 사용하는데 밀가루 같은 경우엔 한 봉지에 오백 프랑 정도 한다고 생각하면 되고 그 정도면 충분히 뿌리고 졸업식을 즐길 수 있죠. 많이들 밀가루를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의식은 졸업식이 끝난 후 집까지 이어지는데 제 첫 째 녀석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집에 와서 제 얼굴에 밀가루를 뿌리더군요. 저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그 녀석을 교복을 찢어버렸어요. 이제 대학에 가야 하니까 더 이상 교복은 필요 없잖아요?


어쨌든 흰 가루를 뿌리는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그리고 이 의식을 싫어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애들에게는 뿌리지 않는다고 해요. 기분 좋은 졸업식에 굳이 감정 상할 필요 없으니까. 그냥 축하의 의미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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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i oa tunya by 모륜

2015. 4. 25. 16:54

Mosi oa tunya

by 모륜


아프리카.



모시 오아 투냐(Mosi oa tunya)는 현재의 빅토리아 폭포를 말한다. ‘천둥의 안개’라는 뜻의 이 단어는, 과거 빅토리아 폭포의 거대함을 나타낸다. 하지만 1855년 폭포를 발견한 리빙스턴은 이곳에 영국여왕의 이름을 붙이게 된다. 그 후 모시 오아 투냐는 빅토리아 폭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빅토리아 폭포의 거대함을 잊을 수 없던 리빙스턴은 첫 방문 이후, 예술가이며 탐험가인 토마스 바이네스(Thomas baines)와 함께 이곳을 찾아 그림으로 나타내, 세상에 거대한 폭포의 모습을 알리게 된다. 그림 속에 등장한 세 그루의 나무는 아직까지 현존함으로써 빅토리아 폭포의 오랜 시간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만 년 전, 갑작스런 지각 변동으로 인해 잠베지 강의 상류가 솟아오른다. 이는 잠베지 강의 물줄기를 바꿔놓았고, 거대한 폭포를 이루며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게 된다. 이는 현재의 빅토리아 폭포를 만들어냈다.  


빅토리아 폭포는 아프리카 4대강 중 하나인 잠베지 강의 중류에 위치하고 있다. 잠베지 강은 길이가 2,470km에 이르며, 잠비아와 앙골라 고원에서 시작하여 모잠비크 해협의 인도양으로 흘러들어간다. 이곳은 크기에 알맞게 ‘위대한 강’이라는 뜻을 지니며,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흐르고 있다. 폭이 최대 1,700미터나 되는 강이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최대 108m의 낙차를 이루며 반경 20미터에 불과한 웅덩이로 쏟아져 내린다. 이는 깊이가 나이아가라 폭포의 2배 이상임을 깨닫게 해주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웅덩이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물은 낙차에 의해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킨다. 폭포소리는 천둥소리와 같으며 물보라가 공중으로 305m이상 튀어 올라 500m이상의 기둥이 형성되어 사방에 흩뿌려진 물방울들 덕분에 폭포주변으로 울창한 열대우림이 펼쳐진다. 또한 폭포의 수량이 60%이상 흐를 땐, 곳곳에서 많은 수의 무지개를 감상할 수 있다.

빅토리아 폭포는 항상 거대한 한 장의 폭포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5개의 폭포가 모여 만들어 졌기 때문에 Victoria falls라는 복수의 이름을 지닌다. 폭포의 동쪽 끝에는 이스턴 캐터랙트(Eastern Cataract)가 존재한다. 이곳은 암체어라 불리는 저지대와 경계를 이루며, 이는 주로 물이 부족한 건기에 나타난다. 암체어의 서쪽엔  레인보우폭포(Rainbow)가 뻗어있고, 그 옆에는



또 다른 절벽인 말편자모양의 호스슈폭포(Horseshoe)를 이루고 있다. 과거 리빙스턴이라 명칭 된 섬과 보아루카 섬 사이가 균열되어 형성된 메인폭포(main)가 있으며, 데빌스 캐터랙트(Debil's Cataract)라는 좁은 절벽, 이렇게 5개의 폭포가 존재한다.

11월말에서 4월 우기 기간에 이곳을 방문하면 1분마다 5억 리터의 물이 떨어져 한 장의 커튼과 같은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반면 9월 건기 시, 1분에 천만 리터의 물이 흘러 여러 개의 폭포로 나뉘어 떨어지는 작은 폭포들을 각각 관찰할 수 있다. 이곳을 찾을 땐, 항상 단단한 대비를 해야 한다.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물이 튀어 오르기 때문에 우비와 우산준비는 필수이다.

빅토리아 폭포를 즐기는 방법은 여럿이다. 먼저 짐바브웨에서 출발하게 되는 방법은 폭포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울창한 산책로를 따라가면 각각 뷰포인트들이 존재한다. 폭포입구에서는 우비와 우산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대여소가 마련되어 있다. 잠비아도 마찬가지이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면 짐바브웨와 또 다른 빅토리아 폭포를 좀 더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빅토리아 폭포를 눈으로 감상하는 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고 폭포를 제대로 즐기기를 원한다면 번지와


래프팅 그리고 크루즈를 추천하고 싶다. 빅토리아 폭포 하류에는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잇는 빅토리아 폭포다리 (잠베지다리)가 놓여있다. 이는 카이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영국의 종단정책을 위해 1905년 완성되었지만, 지금 현재 이곳에선 번지점프가 주를 이룬다. 111미터 높이의 다리위에서 검은 물살이 흐르는 아래로 몸을 던지는 것은 레포츠 마니아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한 잠베지 강의 거친 물살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래프팅이 존재하는데, 1번부터 18번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어 급격한 물살에 몸을 맡기는 아찔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모든 활동을 마치고 해가 질 때 쯤, 선셋크루즈를 즐길 수 있다. 부드러운 물살과 함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따뜻한 햇살은 강을 비추고, 강 주위의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폭포의 상류엔 아주 오래되고 거대한 바오밥 나무가 존재한다. 둘레 16미터, 높이 20미터, 그리고 수령은 1500년이 된 이 나무는 현재 정부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1800년대에는 이 나무를 모든 이의 약속장소로 이용할 정도로 유명했다. 아프리카 전설에 따르면 신이 노해서 나무를 거꾸로 박았다는 속설을 가지고 있다. 낙엽이 없는 건기가 되면 뿌리가 지상에 나와 있는 것 같아 정말 그 속설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대한 물줄기와 그 물줄기를 느끼고 싶다면 빅토리아 폭포는 분명 엄청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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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by 소진

2015. 4. 25. 16:51

킬리만자로


by 소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킬리만자로, 스와힐리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그 어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killima(작은 언덕)와 njaro(은자로 신)가 합쳐져서 ‘은자로 신이 사는 작은 언덕’, 워낙 돌출 되어 지표로서 사용했기 때문에 ‘여행자들의 산’, 그리고 마사이어로 물을 뜻하는 ngare가 합쳐져 ‘물의 산’ 이라는 여러 가지 어원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단일산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위치는 적도의 남쪽으로 약 330km 떨어진 탄자니아와 케냐의 경계부근으로, 적도에서 단지 3도 아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 정상은 빙하와 눈으로 뒤덮여 있다. 최정상은 직경 2.5km의 분화구인 키보(5895m)로, 맑은 날 100마일(약 160km)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개의 휴화산과(키보 5895m, 마웬지 5149m) 하나의 사화산(쉬라 3962m)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 화산 폭발로 생성된 킬리만자로는 지구의 지각을 통해 폭발한 것 중 가장 큰 화산이다.

킬리만자로 국립공원은 1973년에 확정 되었고, 1977년, 공식적으로 관광을 위해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유산 등록지로 선언 되었다. 공원 본부는 마랑구에 있으며, 모시로부터 41km,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으로부터 8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등반 역사

1887년 독일인 지리학자인 한스 마이어(H. Mayer)가 처음 등정했다. 당시 그의 포터 라우오(Lauwo)와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

킬리만자로는 몬타네 숲, 문 랜드, 사막에 눈과 얼음까지 지구의 거의 모든 환경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라 할 수 있다. 산 정상에서는 박테리아부터 동물에 이르기까지 최초의 진화 과정을 담고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킬리만자로의 자연환경>



<킬리만자로의 열대 우림>



킬리만자로에서 가장 신비로운 빙하

킬리만자로의 빙하 역사는 약 만 2천년이나 되는데 이런 만년설이 서서히 녹고 있다. 15년 전에는 1/4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단지 두 곳만 남아 있다. 가뭄과 지구 온난화로 산이 사막화 되고 있으며 먼지바람이 불고 풀이 사라졌다. 약 2020년 정도면 빙하가 사라질 것이라 한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키보(5985m)>



킬리만자로의 매력들


◦ 세개의 봉우리

  키보: 가장 높은 봉우리

  마웬지: 매우 도전적이고 클라이밍 기술이 필요한 바위투성이 산.

  쉬라: 약 750년 전에 주저앉은 가장 오래된 봉우리.

◦ 쉬라 고원 - 아름다운 풍경의 독립적인 고원

◦ 몬타네 숲 - 1800~2800m의 킬리만자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특히 아름다운 야생지대.

◦ 새 - 얼룩 까마귀, 산 지빠귀 등 다양한 새들이 고지에 산다.

◦ 문화유적 - 역사적으로 차가 부족의 문화적인 의식행사가 있고, 서쪽 일부는 마사이족의 의식 행사가 있다.

◦ 찰라 호수 - 공원 밖에 있음에도 킬리만자로에서 시작된 지하의 증기를 이용하여 물을 끌어 올리기 때문에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 동물 - 일반적으로 동물을 관찰하기가 어렵지만, 얼룩 콜럼버스 원숭이, 파란 원숭이, 듀이커(영양종류), 쥐 같은 작은 포유동물 등 다양한 영장류들을 볼 수 있다.

등반 Tip

◦ 시즌 - 1~2월, 6월말~10월 중순까지의 건조기에 트레킹하기 좋다.

◦ 트레킹 준비물 - 배낭, 스틱, 윈드자켓, 보온자켓, 판쵸, 티셔츠, 긴 바지, 짧은 바지, 모자, 헤드랜턴(예비전지), 등산화, 썬글라스, 침낭(동계용), 물병



보너스


<킬리만자로 등반 루트>



<마랑구 루트 입구>



<포터들과 등산객들의 모습>



연락처

P.O.BOX 96, Maran gu MOSHI, Tanzania

Tel: +255-27-2756602

Fax: +255-27-2756606

E-mail: kinapa@habari.co.tz   Web: www.tanzaniaparks.com

입장료

16세 이상: 60$,

5~16세: 10$

5세 미만: 무료

숙박요금

마랑구 루트: 산장 50$

론가이, 마차메, 론드로시, 움베, 음웨카 산장: 캠핑 40$

5~16세 캠핑 요금: 10$

가이드 요금

워킹하는 시간동안 10$

외부에서 워킹하는 시간동안 15$



킬리만자로에 얽힌 이야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킬리만자로를 그녀의 독일 손자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는 이야기는 전해져 오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 황제가 갖고 있는 동 아프리카 지역에는 눈이 있는 봉우리가 없다며 불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처음부분.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에는 얼어 죽은 한 마리의 표범의 시체가 있다.

이처럼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아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고 작사했다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 구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 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 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 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 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꺽이지 않는 한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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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by 희영

2015. 4. 25. 16:44

 탄자니아


by 희영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
세렌게티는 동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이다. 동물원에 익숙한 도시인들, 야생동물이라고는 비둘기, 쥐, 들고양이가 전부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지프차에 발이 묶인 채 동물들의 영역을 방문하게 된다. 세렌게티에서는 오히려 인간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유자적하게 풀을 뜯고 있는 동물들을 지나치며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과 아프리카 특유의 파란 하늘 아래를 달렸던 기억. ‘자유’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그 느낌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세렌게티 국립공원은 탄자니아에 위치한 거대한 생태보호구역이다. 서울특별시 면적의 20배에 달하는 거대한 곳으로 면적이 무려 12,950 제곱킬로미터이다. 아프리카 사바나 생태계를 대표하는 구역으로, 남쪽의 응고로응고로, 북쪽 켄야에 위치한 마사이마라와 함께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200만 마리가 넘는 물소, 50만 마리가 넘는 톰슨가젤의 서식처인 세렌게티는, 서쪽으로는 빅토리아 호수, 남쪽으로는 이바시 호수, 동쪽으로는 Great Rift Valley가 위치하여 외부로부터 차단된 지형이다. 매년 이루어지는 동물들의 대이동은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관이다. 강수량에 따라 변화하는 초목, 초목의 성장을 쫓아 이동하는 초식동물들, 그리고 이들을 쫓는 육식동물의 이동은 생명의 거대한 순환을 보여준다.
 


동물

 

 

동물원에서만 보아온 사자를 야생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세렌게티의 바람으로 자연 스타일링 된 사자의 모습에 카리스마가 넘친다.

   


 
사파리를 하면서 수천마리의 물소를 지나친다.

처음에는 무척 신기해하다가도, 하루의 사파리 후에는 물소 때의 모습이 어느 세 눈에 익는다.

 

 

 

무리지어 이동하는 얼룩말들. 의외로 포악한 성격을 갖고 있어 사육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섹시한 엉덩이는 매력 만점이다.

   

세렌게티에는 30 종이 넘는 초식동물과 500 종이 넘는 새가 서식하고 있다. 우기인 11월에서 5월 사이에는 수천마리의 물소와 얼룩말이 이동한다. 세렌게티의 초원이 야생 동물들의 대이동의 출발지가 되는 셈이다. 5월에 초원의 잔디가 건조해 먹이가 부족해지면 물소들의 이동이 시작된다. 이 시기는 물소들의 발정기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물소들은 서로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혈전을 벌인다. 얼마 후 물소는 물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이어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두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한 쪽은 북동쪽으로, 한 쪽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일단 시작된 동물들의 이동은 멈출 수 없다. 마라 강을 건너면서 수많은 물소가 물에 빠져 죽고, 이동 과정에서 약자는 사냥되어 오직 건강한 물소만이 살아남는, 자연 선택의 법칙이 적용된다.


얼룩말도 자연히 대이동의 일부이다. 숫자는 물소의 1/8에 불과하지만, 대략 12 마리 정도 되는 무리를 유지하면서 이동한다. 사자, 치타, 하이에나, 사냥개들이 물소와 얼룩말의 뒤를 쫓는다. 11월 달에 다시 북쪽의 식량이 동이 나면 초식 동물들은 다시 그동안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 남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새끼를 낳고 번식을 한 물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5월에는 북쪽으로 이동이 반복된다.

 

 

 

소심한 성격의 노루 때에서도 우아함이 느껴진다.


세렌게티 북쪽으로 가면 그란트 가젤(Grant's gazelle)과 톰슨가젤을 볼 수 있고, 간혹가다 토피(topi)와 콩고니(kongoni)도 보인다. 타조와 다양한 종류의 새들, 그리고 워트 혹도도 곳곳에 숨어있다. 하이레이즈(hyraze)와 도마뱀들, 그리고 다양한 새들이 공원 내부에 서식하고 있다. 아카시아의 가시를 피해 연한 잎사귀를 뜯어먹는 기린이나, 천천히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버팔로 무리 틈을 누비다보면 생명이 있는 그대로 살아 숨쉬는 세렌게티를 느낄 수 있다. 밤에는 표범과 하이에나의 울음소리가 들려옥, 사자들은 위험 있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

세렌게티는 1920년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후 1951년 공식적으로 국립공원이 되었다. 1913년 스튜워드 에드워드 화이트(Stewart Edward White)가 백인으로서 처음으로 세렌게티에 발을 들였는데, 마사이족은 이보다 200여년 앞서 세렌게티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북쪽에서 내려와 소를 방목하며 부족단위로 생활하였다. 세렌게티라는 명칭은 마사이어로 ‘끝없는 평원’이라는 뜻이다.

 

 

화려한 의상을 두르고 있는 마사이족.

그들의 전통 의상도 모두 made in China 라고 한다. 비록 옷감의 원산지는 세계화되었지만,

색감과 장신구에서 마사이족의 미학을 접할 수 있다.

 


원색의 장신구, 옷감을 즐겨 사용하는 마사이족. 귀에 아주 큰 구멍을 뚫기도 한다.

 

 


20세기 초반 시작된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식민 정치의 일환으로 세렌게티는 독일의 치하에 놓였다. 독일 식민 정부는 1921년 세렌게티를 보호구역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지프차와 함께 몰려온 밀렵꾼과 사냥꾼들에 의하여 동물들이 속수무책으로 도살당하고,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에 Bernhard Grizmek과 그의 아들 Michael Grizmek의 노력으로 세렌게티는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들이 찍은 다큐멘터리와 동일 제목의 책 ‘Serengeti Shall Not Die'는 자연보호 운동의 시초로써 자연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Grizmek 부자의 노력으로 세렌게티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운명이 국제적인 관심사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아름다운 세렌게티의 본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서든 세렌게티에서 행해졌던 무차별적 사냥이 금지되었다.

 

또한 기존에 세렌게티에 정착한 마사이족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이들 역시 세렌게티로의 출입이 금지되고 응고로응고로 분화구로 강제 이전되었는데, 이것이 과연 합당한 처사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마사이족은 백인들이 주도권을 잡기 이전부터 주변 환경과 균형을 이루며 살아왔었고, 식민 정부 입장에서는 그런 마사이족을 내쫓을 자연 보호라는 훌륭한 구실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야생동물의 숫자는 서서히 회복되었고, 과거 상아 밀렵꾼들에 의해 세렌게티에서 전멸되다시피 한 코끼리도 건강한 숫자가 유지되고 있다.


세렌게티는 탄자니아의 첫 국립공원으로, 198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매 년 전 세계에서 사진가, 과학자, 관광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을 갖고 세렌게티를 찾는다. 기후, 강수량에 따른 대지의 변화와 동물들의 대이동, 번식 시기에 따라 세렌게티의 모습은 매달, 매주, 매일 바뀐다. 언제 어느 지역을 찾아도 세렌게티의 다채로운 매력은 모든 이를 매료시킨다.

 

 

 

응고로응고로 보호구역

응고로응고로는 1959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세렌게티 국립공원으로부터 분리되었다. 197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응고로응고로는 탄자니아 유일한 보호구역으로써, 이는 생태계를 보호함과 동시에 인간의 주거를 허용한다는 의미로, 마사이족의 생활터전이기도하다. 따라서 최소한의 경작이나 방목 활동만이 허용된다. 세렌게티 생태계의 일부로 12월에는 남쪽에서 물소와 얼룩말 때게 내려오고, 6월달에는 다시 북쪽으로 이동한다. 강수량에 따라 변동하는 식량을 따라 동물들은 응고로응고로 전 지역을 누비게 된다. 25,000마리가 넘는 큰 동물들의 서식지로써, 은두투 Ndutu 호수 주변에는 치타와 사자가 많이 살고 있다. 또한 응고로응고로 크레이터는 아프리카 전역 중 가장 높은 밀도의 야생 동물 서식지로 유명하다. 검은 코뿔소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지만, 하마는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소, 얼룩말, 가젤 등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세렌게티 평원의 동물들의 대이동에 따라 6월에서 12월 사이에는 수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응고로응고로 분화구는 깊이가 610 미터, 바닥이 260 제곱킬로미터로, 지구상 가장 큰 칼데라이다. 칼데라는 분화구의 일종으로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다. 용암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면서 화산 내부에 빈 공간이 생기고, 외벽이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원형의 균열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내부로 무너져 내려 칼데라가 생긴다. 250만 년 전 현재 킬리만자로 크기의 활화산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것이 폭파하면서 생긴 칼데라가 지금 현재의 응고로응고로이다.

 

 

 

응고로응고로에서 코끼리 가족을 볼 수 있었다.

 

 


 
만나기 힘들다는 치타를 볼 수 있었다.

지구상 가장 빠른 포유류의 프라이드와 고양이 특유의 우아함과 도도함이 느껴지는 워킹을 선보였다.

 

  

      
아프리카에서는 타조 고기, 타조 깃털, 타조 알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야생의 타조는 농장의 타조보다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응고로응고로의 플라밍코들은 발레리나의 군무를 연상시켰다.


응고로응고로 새벽 사파리는 흡사 시간여행 같다. 자욱한 안개는 분화구 가득 가라앉아 사방을 둘러싼다. 아프리카 어디서도 응고로응고로만큼 다양한 동물들이 한 곳에 밀집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사방이 분화구 벽으로 둘러싸인 초원에서 코끼리 가족, 치타, 플라밍고 무리, 물소, 가젤 때를 가까이서 보는 것을 잊지 못할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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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크와 유적 by 지연

2015. 4. 25. 16:30

 타크와 유적


by 지연


 아프리카.

 

 

 

타크와 유적지의 모스크

 

한 때 무역이 번성했다는 타크와의 유적을 찾아 나섰다. 500년 전 항해사들이 지나다녔을 그 수로를 그대로 따라 망그로브 나무로 뒤덮인 섬들 사이사이를 해쳐 나가는 시간 자체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의식 같았다. 바람이 밀어주는 다우선을 타고 유적지의 입구까지 낭만적인 기분에 푹 젖은 우리는, 섬 육지까지 배가 들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에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가방을 머리 위에 얹고, 허리까지 올라오는 늪지대를 걸어 지나간 후에야 타크와 유적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타크와 유적은 만다섬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고, 라무 타운에서부터 배로 30분 거리이다. 타크와 유적은 15세기에서 16세기 동안 번성했다가 17세기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져 지금은 폐허가 된 스와힐리 무역 도시의 잔재이다. 이 유적이 중요한 것은 시기적인 이유도 있지만 다량의 유적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키블라 벽(메카 방향을 향한 벽) 위에 기둥이 세워진 모스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이 기둥은 벽 아래에 있는 셰이크(통치자)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웃한 섬에서 종교적인 행사를 치르기 위해 이곳 타크와로 일년에 두 번 방문을 하기 때문이다.


타크와의 유적은 해수면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밖에서는 이 섬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인도양을 면한 해변에서 섬을 바라보면 언덕 뒤편에 있는 타크와 유적은 시야에서 가려지기 때문에 외부의 적은 그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섬 주변이 얕은 바다여서 많은 배들이 접근하기 힘들고, 따라서 바닥이 얕은 배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자연적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이들의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크와는 결국 17세기에 멸망하고 만다. 안타깝게도 그 정확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지만,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담수의 소금화로 식수 조달이 불가능해지고, 동시에 파테인들과의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이 유적은 지금은 대중들에게 완전 공개되어 있으며 피크닉이나 캠핑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외딴 섬에 이런 유적지가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300년 동안 베일에 감추어져 있었던 이 타크와 유적을 방문한 첫 백인 탐험가는 무엇을 느꼈을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려진 벽화마저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 모습은 마치 타임캡슐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한 때 스와힐리 문명과 아랍 문명이 뒤섞이며 번영을 이루었을 그들은 이 유적만을 남긴 채 어디로 사라져간 것일까?
왠지 쓸쓸함을 풍기는, 과거의 잔상이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라무 해안의 다우선


 

 다우선


수세기동안 아랍인들은 인도양에서 동아프리카로 항해를 하였다. 이 때 쓰였던 배가 다우(Dhow)라 불리는 외돛 범선이다. 엔진이나 노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바람에 의한 동력만으로 항해를 하는 배인데, 다양한 화물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의 다우가 있다. 돛이 하나 밖에 없어서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돛의 각도를 이용하여 바람을 받는 방향을 조종할 수 있고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심지어는 맞바람을 맞을 때에도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린다. 다우선은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30명까지 탈 수 있다. 아랍인들은 계절풍의 도움을 받아 매년 12월부터 5월 사이에 동아프리카로 건너와서 6월부터 10월 사이에 아라비아와 북인도양 인근으로 돌아갔다. 동아프리카로 올 때는 이국적인 대추야자, 카펫, 향료 등을 아라비아와 인도에서 싣고 와서 돌아갈 때에는 망그로브 나무, 곡식, 금, 상아 그리고 아랍이 노예무역을 할 당시에는 노예도 싣고 돌아갔다.


최근에 현대적인 선박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라무섬이나 잔지바르 같은 곳에서는 비록 관광용일지라도 항구에 정박한 다우선들을 볼 수 있다. 부두 위에는 열심히 돛을 손질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항해는 바람과 물살, 뱃사람의 노련한 힘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다우선의 역사


혹자는 다우를 모든 배들 중에서 가장 우아하다고 했다. 이러한 다우를 통해서 인도양의 무역이 이루어졌고,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주된 교통수단이었다.


다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에리트리아해 항해지』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다우는 인도양 서부와 홍해에서 일반적인 무역수단이었다. 일례로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바스코 다 가마가 마톤도니섬에 도착했을 때 그 곳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카누와 다우를 만드는 전문가들이었다. 다 가마는 이 사람들의 다우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다우 무역의 시대가 지남에 따라 다우 문화가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지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대를 이어 내려오던 다우에 대한 지식과 전설들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단지 가끔씩 지나가버린 아름답고 로맨틱한 시절에 대한 회상을 하기 위해서 다우를 찾는다. 지금은 몇 대의 다우만이 케냐 해안에 남아 있을 뿐이고, 이마저도 대부분이 관광용이다.

 

 

 

 

라무시의 해안 모습.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우를 만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수 세기에 걸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 전통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15세기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 다우는 단 한 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코코넛 끈과 나무 핀으로만 엮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다우제작의 맥이 끊겨가고 있지만 다 가마가 600년 전에 만났던 마톤도니 섬에는 아직도 그 기술을 증명할 수 있는 장인이 살고 있다. 이 섬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다우 만들기를 관람하고 간다. 장인들은 전통적인 도구들을 사용하여 나무를 자르거나 조각을 한다. 음감보나무라는 매우 단단한 나무를 주로 사용하여 제작하는데, 최근에는 이 나무를 베어가려면 산림청에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대의 최신 항법과 디젤 엔진이 장착된 선박들 때문에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오가던 다우 무역은 이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천년 가까이 지속되어오던 모습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사실상 다우 위에서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었던 만큼, 현대 항해술의 발달을 안타까워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선원들은 갑판 위에서 날씨에 상관없이 자야했고 규율은 매우 엄격했다. 무슬림 기도 시간은 철저하게 지켜졌고 여성들은 갑판 아래에만 갇혀서 모든 여행 기간을 보내야 했다니,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안전하고 오고갈 수 있는 지금의 모습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스톤 타운


라무 올드 타운은 전통적인 기능을 간직하면서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보존이 잘 되어있는 스와힐리 주거지역이다. 산호석과 망그로브 나무로 단순한 모양새로 지어진 시가지는 안뜰, 베란다, 정교하게 조각된 문 등의 독특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라무는 19세기부터 주요한 무슬림 종교 축제를 주관해오고 있으며, 학술적으로 이슬람과 스와힐리 문명 연구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라무 박물관 위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이곳은 또한 여행을 하기에도 매우 적합한 곳이다. 대다수의 건물들이 라무 섬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18세기에 지어졌고, 정교하게 조각된 목재문과 좁은 골목길, 높은 건물들은 마음 편히 유유자적하면서 걸을 수 있는 산책코스이기도 하다.

 

 

 

응고로응고로의 플라밍코들은 발레리나의 군무를 연상시켰다.

 


응고로응고로 새벽 사파리는 흡사 시간여행 같다. 자욱한 안개는 분화구 가득 가라앉아 사방을 둘러싼다. 아프리카 어디서도 응고로응고로만큼 다양한 동물들이 한 곳에 밀집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사방이 분화구 벽으로 둘러싸인 초원에서 코끼리 가족, 치타, 플라밍고 무리, 물소, 가젤 때를 가까이서 보는 것을 잊지 못할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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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케냐, 그리고 나이로비 by 기웅

2015. 4. 25. 15:40

 

 

아프리카, 케냐, 그리고 나이로비

 

 

by 기웅

 

아프리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덥다, 검다, 못산다, 야생, 열악하다, 불쌍하다. 이런 단어들은 아닌지. 그러면 케냐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사파리? 마라톤? 혹시, 덥다, 검다...?

 

 

 

 

 

나이로비는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케냐의 수도이다. 엥카레 나이로비(Enkare Nairobi)라는 마사이어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그 뜻은 차가운 물이다. 나이로비의 기후도 그 이름처럼 그다지 덥지 않다. 적도에서 남으로 150정도 떨어진 열대 지역이지만, 1,676m 정도의 고원에 위치하기 때문에 연평균 기온이 약 18도 정도로 선선하다. 오히려 아침저녁으로는 긴팔이 꼭 필요할 정도로 쌀쌀하다. 나이로비에 처음 들어서면, 낮게 깔린 구름과 멀리까지 보이는 지평선,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져 깨끗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시내에는 충분한 녹지와 공원들이 배치되어 있어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깨주는 도시이다.

 

 

 

<하늘에서 본 나이로비>

 

 

나이로비는 원래 그 주변지역과 마찬가지로 마사이, 키쿠유 족 등과 야생동물들이 노니는 초원이었다. 지금도 유목민족인 마사이족이 때때로 소떼를 몰고 나이로비 근처에 주둔하거나 도시를 통과하기도 한다. 하지만, 1895년 영국이 몸바사에서 빅토리아 호수 연안의 키수무까지 철도를 놓는 공사를 시작하며 전진기지인 나이로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07, 나이로비는 영국령 동아프리카의 수도가 되었고, 1950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이후로도 발전은 거듭하며 동아프리카의 중심 도시로서 기능하고 있다. 또한 나이로비는 다른 대륙에서 아프리카로 들어오는 관문도시이자 사파리를 시작하는 사파리 수도로의 역할도 수행한다. 도시가 생긴지 10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인구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곳이 어느새 케냐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도시로 자리 잡았다. 19191만 명 정도였던 나이로비의 인구는, 194812, 독립 후인 1969년에 51, 1979년에는 83만으로 급증했고, 현재는 250만 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당신은 이러한 나이로비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아프리카에 대해 품고 있는 선입견으로 나이로비를 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로비는 세계의 다른 수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현대적인 대도시이다. 출퇴근 시간이면 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어쩌면 상당히 일반적인 대도시이다. 물론 나이로비에 흑인들이 많이 살지만, 식민시대 건너온 백인들의 후손들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백인, 인도인, 중국인 등 다양한 생김세의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빼꼭히 들어선 나이로비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야생 동물들의 고향인 와일드아프리카가 버젓이 살아있다. 하지만 나이로비도 세계 어느 도시처럼 빈민촌이 있고, 그들의 생활환경은 열악하며 때로는 불쌍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는 도시의 일부일 뿐이다. 양복을 갖춰 입고 시내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며, 저녁에는 친구들과 냐마초마(nyama choma : 스와힐리어로 구운 고기라는 뜻이다. 쇠고기나 염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소금에 찍어 먹는 전통 요리이다.)에 맥주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잠시 아프리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 대도시 나이로비에 어떤 삶이 있는지 알아보자.

 

 

나쿠마트 (Nakumatt)

 

나쿠마트는 우추미(Uchumi, 스와힐리어로 경제라는 뜻이다) 등과 더불어 케냐의 대표적인 마켓 체인이다. 케냐 전역에 17개의 매장이 있으며, 나이로비에서도 시내를 다니다 보면 나쿠마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각 매장은 약 5만 가지 정도의 상품을 구비하고 있다. 이는 식료품에서부터 화장품, 가구, 음반, 문구류, 전자기기, 오토바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를 모두 포함한 숫자이다. 나이로비 시내의 한 매장의 경우, 나쿠마트는 세 개의 층을 사용하고 있다.

 

 

<나쿠마트 외관> 마트의 상징인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1층에서는 고기 과일, 과자 등 각종 식품을 판매하고, 2층은 문구류, 음반, 식기 등 생활용품을, 3층에서는 컴퓨터 용품, 가구, 자전거 등 고가품을 진열해놓고 있었다. 이름만 다를 뿐 상품의 종류나 가짓수, 진열방식 등에 있어서 한국의 대형할인마트와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나쿠마트 내부>

 

다양한 상품이 구비되어 있다. 와인과 베이커리 코너의 모습.

 

 

이처럼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고, 가격 또한 합리적이기 때문에 케냐인과 외국인 모두 나쿠마트를 즐겨 찾는다.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의 경우 나이로비에 올 기회가 있으면 이러한 대형 마트에 들러, 근무지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구입해가는 경우도 있다. 간혹 마사이들이 고유의 붉은 의상을 입고 정말 현대적인 공간인 나쿠마트로 쇼핑을 오는 모습을 볼 수도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다.

 

 

나이로비 대학 (University of Nairobi)

시내 중심에 메인 캠퍼스를 두고 있는 나이로비 대학은 케냐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대학으로 1954년에 개교하였다. 처음에는 독자적으로 학위를 수여할 수도 없는 단과대학에 불과했다. 하지만 1963, 나이로비 대학은 우간다의 마케레레, 탄자니아의 다르에르살람 단과대와 통합하여 동아프리카 대학을 이루게 된다. 이어서 1970년 동아프리카 대학이 분리되며 종합대학으로 거듭났다. 의학, 수의학, 농학, 공학, 법학, 교육학, 경제학 등 거의 모든 분야의 학부가 있으며 케냐타칼리지를 산하에 두고 있다.

 

 

<나이로비 대학> 녹지와 건물이 잘 어우러진 캠퍼스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공부한다.

 

 

나이로비 대학의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표정이 상당히 밝고 자신만만하다. 사회의 엘리트다운 자부심과 당당함이 행동과 목소리에 묻어난다. 실제로도 이들은 케냐 전역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대학에 진학한 사람들이다. 자기 부족의 말과 스와힐리 그리고 영어까지 세 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동아프리카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엘리트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저학년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잔디밭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기도 하고, 놀러 나가기도 한다.

메인 캠퍼스를 방문하면 익숙한 인물의 동상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인도의 영웅인 마하트마 간디이다. 정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도서관이 그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간디 기념 도서관이고 그 안에 간디의 동상이 있는 것이다. 케냐와 간디가 바로 연결은 되지 않겠지만, 인도계 사람들이 간디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란 배경을 알면 납득이 될 것이다. 나쿠마트의 경영자도 인도계인데, 영국 지배시절 케냐로 많이 건너온 인도인들은 케냐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도서관 1층의 서점에서는 스와힐리 문학작품에서 각 학과의 전공 서적들까지 다양한 책을 판매, 대여한다. 이 중 몇몇 교재는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많이 보는 교재여서 세계화를 새삼 느낄 수 있다.

 

 

노포크 호텔 (Norfolk Hotel)

나이로비 대학과 케냐 국립극장 맞은편에는 유서 깊은 호텔이 있다. 나이로비가 생긴지 몇 해 지나지 않은 1904년 문을 연 노포크 호텔이 바로 그곳이다. 노포크 호텔은 식민시대 지배자였던 영국인들을 위한 호텔답게 영국식으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외관을 지니고 있으며, 98/99년의 개선 공사를 통해 시설도 깨끗하게 재정비되었다. 호텔의 설립 초기에는 사파리나 연구, 사냥 등의 목적으로 케냐를 찾는 손님들이 많이 묵었으며, 케냐에 정착한 백인들 간의 사교의 장으로도 활용되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루즈벨트도 1909년 사냥의 목적으로 케냐를 방문했을 때 노포크에 머물렀고, 영화 촬영을 위해 케냐에 온 배우들도 노포크를 즐겨 찾았다.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인사들이 노포크를 찾는데, 최근의 예를 들자면,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출연진과 스텝들이 묵어갔다. 하루 숙박에 200달러 내외로 비싼 편에 속하지만 인기가 높은 것은 역사와 시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서비스 때문일 것이다.

 

 

<노포크 호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외관.

 

 

사파리 파크 호텔 (Safari Park Hotel)

파라다이스 그룹의 창업자인 고 전락원 씨가 운영했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사파리 파크 호텔은, 도심 속의 휴양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지만,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주변 환경이 도시와는 다른 모습으로 확 바뀐다. 아프리칸 방갈로 스타일의 낮은 집들이 10만 평의 녹지 사이에 띄엄띄엄 들어서 있고, 건물의 외관에서 작은 인테리어까지 자연의 냄새가 나는 재료들을 택하여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온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로비가 있는 건물도 쥬라기 공원에서 본 듯한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다.

호텔에는 쇼핑 빌리지와 각국의 음식을 다루는 6개의 레스토랑, 카지노 등 흥미를 끄는 많은 시설들이 있다. 몸바사, 잔지바르 등 동아프리카지역의 엔틱 조각에서 현대 조각까지 다양한 아프리카 토산품을 파는 상점, 대형 화덕에 구운 악어, 타조, 멧돼지 등 각종 고기들을 맛볼 수 있는 냐마쵸마 식당 등은 어느 곳에도 뒤쳐지지 않는 만족을 제공한다.

 

 

<사파리 캐츠 쇼>

 

힘이 느껴지면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동작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냐마쵸마 식당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사파리 캐츠 쇼(Safari cat's show)를 볼 수 있다. 동아프리카 최초의 본격 전문 민속 무용단이 공연하는 사파리 캐츠 쇼는 아프리카의 힘과 생명력, 역동성을 잘 표현한 공연이다. 프랑스에서 초빙된 감독이 아프리카 전통의 무용에 현대 무용을 가미하여 만든 작품으로, 감독이 떠난 현재에도 재창조와 꾸준한 연습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다. 남여 배우들의 균형 잡힌 몸매와 놀라운 움직임도 감상에 즐거움을 더한다. 공연은 5분 정도마다 내용이 바뀌며 1시간가량 계속된다.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예로부터 춰온 춤으로 시작되어, 바구니 등의 소품을 이용한 춤으로 이어진다. 20명가량의 배우들이 무대 앞에 쭉 앉아서 박수치는 공연도 있고, 무용이라기보다 곡예에 가까운 장면들도 연출된다. 남여배우 한 명 씩 나와 서로의 사랑을 표현하는 부분도 화려한 개인기를 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의 정치, 경제와 문화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시이다. 아프리카에 있는, 우리의 도시와 영 다른 그 어떤 미개한 곳이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와도 견줄 수 있는 현대적 도시이다. 나이로비의 경제력, 젊은이들의 생각, 역사와 문화 그 어느 것도 뒤쳐지지 않는다. 케냐 사람들과 아프리카 대륙의 특징이 그 안에 녹아 들어가서 나이로비만의 색을 내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53개국이 있는, 지구 육지의 20%를 차지하는,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하는 큰 대륙이다. 물론 불행한 착취의 역사를 지워버릴 수는 없겠지만, 아프리카의 아름다움 또한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첫 여행지였던 나이로비의 변해가는 도시 풍경은 아프리카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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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i oa tunya (by. 모륜)

2013. 9. 8. 11:27

by. 모륜

 

 

모시 오아 투냐(Mosi oa tunya)는 현재의 빅토리아 폭포를 말한다. ‘천둥의 안개’라는 뜻의 이 단어는, 과거 빅토리아 폭포의 거대함을 나타낸다. 하지만 1855년 폭포를 발견한 리빙스턴은 이곳에 영국여왕의 이름을 붙이게 된다. 그 후 모시 오아 투냐는 빅토리아 폭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빅토리아 폭포의 거대함을 잊을 수 없던 리빙스턴은 첫 방문 이후, 예술가이며 탐험가인 토마스 바이네스(Thomas baines)와 함께 이곳을 찾아 그림으로 나타내, 세상에 거대한 폭포의 모습을 알리게 된다. 그림 속에 등장한 세 그루의 나무는 아직까지 현존함으로써 빅토리아 폭포의 오랜 시간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만 년 전, 갑작스런 지각 변동으로 인해 잠베지 강의 상류가 솟아오른다. 이는 잠베지 강의 물줄기를 바꿔놓았고, 거대한 폭포를 이루며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게 된다. 이는 현재의 빅토리아 폭포를 만들어냈다. 


빅토리아 폭포는 아프리카 4대강 중 하나인 잠베지 강의 중류에 위치하고 있다. 잠베지 강은 길이가 2,470km에 이르며, 잠비아와 앙골라 고원에서 시작하여 모잠비크 해협의 인도양으로 흘러들어간다. 이곳은 크기에 알맞게 ‘위대한 강’이라는 뜻을 지니며,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흐르고 있다. 폭이 최대 1,700미터나 되는 강이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최대 108m의 낙차를 이루며 반경 20미터에 불과한 웅덩이로 쏟아져 내린다. 이는 깊이가 나이아가라 폭포의 2배 이상임을 깨닫게 해주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웅덩이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물은 낙차에 의해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킨다. 폭포소리는 천둥소리와 같으며 물보라가 공중으로 305m이상 튀어 올라 500m이상의 기둥이 형성되어 사방에 흩뿌려진 물방울들 덕분에 폭포주변으로 울창한 열대우림이 펼쳐진다. 또한 폭포의 수량이 60%이상 흐를 땐, 곳곳에서 많은 수의 무지개를 감상할 수 있다.


빅토리아 폭포는 항상 거대한 한 장의 폭포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5개의 폭포가 모여 만들어 졌기 때문에 Victoria falls라는 복수의 이름을 지닌다. 폭포의 동쪽 끝에는 이스턴 캐터랙트(Eastern Cataract)가 존재한다. 이곳은 암체어라 불리는 저지대와 경계를 이루며, 이는 주로 물이 부족한 건기에 나타난다. 암체어의 서쪽엔  레인보우폭포(Rainbow)가 뻗어있고, 그 옆에는 또 다른 절벽인 말편자모양의 호스슈폭포(Horseshoe)를 이루고 있다. 과거 리빙스턴이라 명칭 된 섬과 보아루카 섬 사이가 균열되어 형성된 메인폭포(main)가 있으며, 데빌스 캐터랙트(Debil's Cataract)라는 좁은 절벽, 이렇게 5개의 폭포가 존재한다.

 

 

 

 

11월말에서 4월 우기 기간에 이곳을 방문하면 1분마다 5억 리터의 물이 떨어져 한 장의 커튼과 같은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반면 9월 건기 시, 1분에 천만 리터의 물이 흘러 여러 개의 폭포로 나뉘어 떨어지는 작은 폭포들을 각각 관찰할 수 있다. 이곳을 찾을 땐, 항상 단단한 대비를 해야 한다.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물이 튀어 오르기 때문에 우비와 우산준비는 필수이다.


빅토리아 폭포를 즐기는 방법은 여럿이다. 먼저 짐바브웨에서 출발하게 되는 방법은 폭포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울창한 산책로를 따라가면 각각 뷰포인트들이 존재한다. 폭포입구에서는 우비와 우산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대여소가 마련되어 있다. 잠비아도 마찬가지이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면 짐바브웨와 또 다른 빅토리아 폭포를 좀 더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빅토리아 폭포를 눈으로 감상하는 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고 폭포를 제대로 즐기기를 원한다면 번지와 래프팅 그리고 크루즈를 추천하고 싶다. 빅토리아 폭포 하류에는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잇는 빅토리아 폭포다리 (잠베지다리)가 놓여있다. 이는 카이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영국의 종단정책을 위해 1905년 완성되었지만, 지금 현재 이곳에선 번지점프가 주를 이룬다. 111미터 높이의 다리위에서 검은 물살이 흐르는 아래로 몸을 던지는 것은 레포츠 마니아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한 잠베지 강의 거친 물살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래프팅이 존재하는데, 1번부터 18번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어 급격한 물살에 몸을 맡기는 아찔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모든 활동을 마치고 해가 질 때 쯤, 선셋크루즈를 즐길 수 있다. 부드러운 물살과 함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따뜻한 햇살은 강을 비추고, 강 주위의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폭포의 상류엔 아주 오래되고 거대한 바오밥 나무가 존재한다. 둘레 16미터, 높이 20미터, 그리고 수령은 1500년이 된 이 나무는 현재 정부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1800년대에는 이 나무를 모든 이의 약속장소로 이용할 정도로 유명했다. 아프리카 전설에 따르면 신이 노해서 나무를 거꾸로 박았다는 속설을 가지고 있다. 낙엽이 없는 건기가 되면 뿌리가 지상에 나와 있는 것 같아 정말 그 속설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대한 물줄기와 그 물줄기를 느끼고 싶다면 빅토리아 폭포는 분명 엄청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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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by. 소진)

2013. 9. 8. 11:15

by. 소진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킬리만자로, 스와힐리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그 어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killima(작은 언덕)와 njaro(은자로 신)가 합쳐져서 ‘은자로 신이 사는 작은 언덕’, 워낙 돌출 되어 지표로서 사용했기 때문에 ‘여행자들의 산’, 그리고 마사이어로 물을 뜻하는 ngare가 합쳐져 ‘물의 산’ 이라는 여러 가지 어원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단일산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위치는 적도의 남쪽으로 약 330km 떨어진 탄자니아와 케냐의 경계부근으로, 적도에서 단지 3도 아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 정상은 빙하와 눈으로 뒤덮여 있다. 최정상은 직경 2.5km의 분화구인 키보(5895m)로, 맑은 날 100마일(약 160km)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개의 휴화산과(키보 5895m, 마웬지 5149m) 하나의 사화산(쉬라 3962m)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 화산 폭발로 생성된 킬리만자로는 지구의 지각을 통해 폭발한 것 중 가장 큰 화산이다.
킬리만자로 국립공원은 1973년에 확정 되었고, 1977년, 공식적으로 관광을 위해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유산 등록지로 선언 되었다. 공원 본부는 마랑구에 있으며, 모시로부터 41km,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으로부터 8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등반 역사


1887년 독일인 지리학자인 한스 마이어(H. Mayer)가 처음 등정했다. 당시 그의 포터 라우오(Lauwo)와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


킬리만자로는 몬타네 숲, 문 랜드, 사막에 눈과 얼음까지 지구의 거의 모든 환경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라 할 수 있다. 산 정상에서는 박테리아부터 동물에 이르기까지 최초의 진화 과정을 담고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킬리만자로의 자연환경>

 

 

 

 

<킬리만자로의 열대우림>


킬리만자로에서 가장 신비로운 빙하

킬리만자로의 빙하 역사는 약 만 2천년이나 되는데 이런 만년설이 서서히 녹고 있다. 15년 전에는 1/4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단지 두 곳만 남아 있다. 가뭄과 지구 온난화로 산이 사막화 되고 있으며 먼지바람이 불고 풀이 사라졌다. 약 2020년 정도면 빙하가 사라질 것이라 한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키보(5985m)>

 

 


킬리만자로의 매력들


◦ 세 개의 봉우리
  키보: 가장 높은 봉우리
  마웬지: 매우 도전적이고 클라이밍 기술이 필요한 바위투성이 산.
  쉬라: 약 750년 전에 주저앉은 가장 오래된 봉우리.


◦ 쉬라 고원 - 아름다운 풍경의 독립적인 고원


◦ 몬타네 숲 - 1800~2800m의 킬리만자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특히 아름다운 야생지대.


◦ 새 - 얼룩 까마귀, 산 지빠귀 등 다양한 새들이 고지에 산다.


◦ 문화유적 - 역사적으로 차가 부족의 문화적인 의식행사가 있고, 서쪽 일부는 마사이족의 의식 행사가 있다.


◦ 찰라 호수 - 공원 밖에 있음에도 킬리만자로에서 시작된 지하의 증기를 이용하여 물을 끌어 올리기 때문에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 동물 - 일반적으로 동물을 관찰하기가 어렵지만, 얼룩 콜럼버스 원숭이, 파란 원숭이, 듀이커(영양종류), 쥐 같은 작은 포유동물 등 다양한 영장류들을 볼 수 있다.

 

 

등반 Tip


◦ 시즌 - 1~2월, 6월말~10월 중순까지의 건조기에 트레킹하기 좋다.


◦ 트레킹 준비물 - 배낭, 스틱, 윈드자켓, 보온자켓, 판쵸, 티셔츠, 긴 바지, 짧은 바지, 모자, 헤드랜턴(예비전지), 등산화, 썬글라스, 침낭(동계용), 물병

 

 

보너스

 

 


<킬리만자로 등반 루트>

 

 

<마랑구 루트 입구>

 

 

<포터들과 등산객들의 모습>

 

 

연락처
P.O.BOX 96, Maran gu MOSHI, Tanzania
Tel: +255-27-2756602
Fax: +255-27-2756606
E-mail: kinapa@habari.co.tz   Web: www.tanzaniaparks.com

 

입장료
16세 이상: 60$,
5~16세: 10$
5세 미만: 무료


숙박요금
마랑구 루트: 산장 50$
론가이, 마차메, 론드로시, 움베, 음웨카 산장: 캠핑 40$
5~16세 캠핑 요금: 10$

 

가이드 요금
워킹하는 시간동안 10$
외부에서 워킹하는 시간동안 15$

 

 

킬리만자로에 얽힌 이야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킬리만자로를 그녀의 독일 손자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는 이야기는 전해져 오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 황제가 갖고 있는 동 아프리카 지역에는 눈이 있는 봉우리가 없다며 불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처음부분.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에는 얼어 죽은 한 마리의 표범의 시체가 있다.
이처럼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아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고 작사했다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 구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 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 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 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 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꺽이지 않는 한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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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by. 희영)

2013. 8. 23. 00:12

by. 희영

 

 

세렝게티 국립공원


세렌게티는 동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이다. 동물원에 익숙한 도시인들, 야생동물이라고는 비둘기, 쥐, 들고양이가 전부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지프차에 발이 묶인 채 동물들의 영역을 방문하게 된다. 세렌게티에서는 오히려 인간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유자적하게 풀을 뜯고 있는 동물들을 지나치며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과 아프리카 특유의 파란 하늘 아래를 달렸던 기억. ‘자유’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그 느낌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세렌게티 국립공원은 탄자니아에 위치한 거대한 생태보호구역이다. 서울특별시 면적의 20배에 달하는 거대한 곳으로 면적이 무려 12,950 제곱킬로미터이다. 아프리카 사바나 생태계를 대표하는 구역으로, 남쪽의 응고로응고로, 북쪽 켄야에 위치한 마사이마라와 함께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200만 마리가 넘는 물소, 50만 마리가 넘는 톰슨가젤의 서식처인 세렌게티는, 서쪽으로는 빅토리아 호수, 남쪽으로는 이바시 호수, 동쪽으로는 Great Rift Valley가 위치하여 외부로부터 차단된 지형이다. 매년 이루어지는 동물들의 대이동은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관이다. 강수량에 따라 변화하는 초목, 초목의 성장을 쫓아 이동하는 초식동물들, 그리고 이들을 쫓는 육식동물의 이동은 생명의 거대한 순환을 보여준다.

 

동물

 

 

 

동물원에서만 보아온 사자를 야생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세렌게티의 바람으로 자연 스타일링 된 사자의 모습에 카리스마가 넘친다.

 

 


사파리를 하면서 수천마리의 물소를 지나친다.

처음에는 무척 신기해하다가도, 하루의 사파리 후에는 물소 때의 모습이 어느 세 눈에 익는다.

 

 

무리지어 이동하는 얼룩말들. 의외로 포악한 성격을 갖고 있어 사육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섹시한 엉덩이는 매력 만점이다.

 

 

세렌게티에는 30 종이 넘는 초식동물과 500 종이 넘는 새가 서식하고 있다. 우기인 11월에서 5월 사이에는 수천마리의 물소와 얼룩말이 이동한다. 세렌게티의 초원이 야생 동물들의 대이동의 출발지가 되는 셈이다. 5월에 초원의 잔디가 건조해 먹이가 부족해지면 물소들의 이동이 시작된다. 이 시기는 물소들의 발정기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물소들은 서로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혈전을 벌인다. 얼마 후 물소는 물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이어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두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한 쪽은 북동쪽으로, 한 쪽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일단 시작된 동물들의 이동은 멈출 수 없다. 마라 강을 건너면서 수많은 물소가 물에 빠져 죽고, 이동 과정에서 약자는 사냥되어 오직 건강한 물소만이 살아남는, 자연 선택의 법칙이 적용된다.


얼룩말도 자연히 대이동의 일부이다. 숫자는 물소의 1/8에 불과하지만, 대략 12 마리 정도 되는 무리를 유지하면서 이동한다. 사자, 치타, 하이에나, 사냥개들이 물소와 얼룩말의 뒤를 쫓는다. 11월 달에 다시 북쪽의 식량이 동이 나면 초식 동물들은 다시 그동안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 남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새끼를 낳고 번식을 한 물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5월에는 북쪽으로 이동이 반복된다.

 

 

소심한 성격의 노루 때에서도 우아함이 느껴진다.

 

세렌게티 북쪽으로 가면 그란트 가젤(Grant's gazelle)과 톰슨가젤을 볼 수 있고, 간혹가다 토피(topi)와 콩고니(kongoni)도 보인다. 타조와 다양한 종류의 새들, 그리고 워트 혹도도 곳곳에 숨어있다. 하이레이즈(hyraze)와 도마뱀들, 그리고 다양한 새들이 공원 내부에 서식하고 있다. 아카시아의 가시를 피해 연한 잎사귀를 뜯어먹는 기린이나, 천천히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버팔로 무리 틈을 누비다보면 생명이 있는 그대로 살아 숨쉬는 세렌게티를 느낄 수 있다. 밤에는 표범과 하이에나의 울음소리가 들려옥, 사자들은 위험 있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


세렌게티는 1920년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후 1951년 공식적으로 국립공원이 되었다. 1913년 스튜워드 에드워드 화이트(Stewart Edward White)가 백인으로서 처음으로 세렌게티에 발을 들였는데, 마사이족은 이보다 200여년 앞서 세렌게티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북쪽에서 내려와 소를 방목하며 부족단위로 생활하였다. 세렌게티라는 명칭은 마사이어로 ‘끝없는 평원’이라는 뜻이다.

 

 

 

화려한 의상을 두르고 있는 마사이족. 그들의 전통 의상도 모두 made in China 라고 한다.

비록 옷감의 원산지는 세계화되었지만, 색감과 장신구에서 마사이족의 미학을 접할 수 있다.

 

 

 


원색의 장신구, 옷감을 즐겨 사용하는 마사이족. 귀에 아주 큰 구멍을 뚫기도 한다.


 

20세기 초반 시작된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식민 정치의 일환으로 세렌게티는 독일의 치하에 놓였다. 독일 식민 정부는 1921년 세렌게티를 보호구역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지프차와 함께 몰려온 밀렵꾼과 사냥꾼들에 의하여 동물들이 속수무책으로 도살당하고,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에 Bernhard Grizmek과 그의 아들 Michael Grizmek의 노력으로 세렌게티는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들이 찍은 다큐멘터리와 동일 제목의 책 ‘Serengeti Shall Not Die'는 자연보호 운동의 시초로써 자연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Grizmek 부자의 노력으로 세렌게티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운명이 국제적인 관심사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아름다운 세렌게티의 본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서든 세렌게티에서 행해졌던 무차별적 사냥이 금지되었다. 또한 기존에 세렌게티에 정착한 마사이족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이들 역시 세렌게티로의 출입이 금지되고 응고로응고로 분화구로 강제 이전되었는데, 이것이 과연 합당한 처사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마사이족은 백인들이 주도권을 잡기 이전부터 주변 환경과 균형을 이루며 살아왔었고, 식민 정부 입장에서는 그런 마사이족을 내쫓을 자연 보호라는 훌륭한 구실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야생동물의 숫자는 서서히 회복되었고, 과거 상아 밀렵꾼들에 의해 세렌게티에서 전멸되다시피 한 코끼리도 건강한 숫자가 유지되고 있다.


세렌게티는 탄자니아의 첫 국립공원으로, 198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매 년 전 세계에서 사진가, 과학자, 관광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을 갖고 세렌게티를 찾는다. 기후, 강수량에 따른 대지의 변화와 동물들의 대이동, 번식 시기에 따라 세렌게티의 모습은 매달, 매주, 매일 바뀐다. 언제 어느 지역을 찾아도 세렌게티의 다채로운 매력은 모든 이를 매료시킨다.

 

 

 

응고로응고로 보호구역


응고로응고로는 1959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세렌게티 국립공원으로부터 분리되었다. 197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응고로응고로는 탄자니아 유일한 보호구역으로써, 이는 생태계를 보호함과 동시에 인간의 주거를 허용한다는 의미로, 마사이족의 생활터전이기도하다. 따라서 최소한의 경작이나 방목 활동만이 허용된다.

 

세렌게티 생태계의 일부로 12월에는 남쪽에서 물소와 얼룩말 때게 내려오고, 6월달에는 다시 북쪽으로 이동한다. 강수량에 따라 변동하는 식량을 따라 동물들은 응고로응고로 전 지역을 누비게 된다. 25,000마리가 넘는 큰 동물들의 서식지로써, 은두투 Ndutu 호수 주변에는 치타와 사자가 많이 살고 있다. 또한 응고로응고로 크레이터는 아프리카 전역 중 가장 높은 밀도의 야생 동물 서식지로 유명하다. 검은 코뿔소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지만, 하마는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소, 얼룩말, 가젤 등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세렌게티 평원의 동물들의 대이동에 따라 6월에서 12월 사이에는 수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응고로응고로 분화구는 깊이가 610 미터, 바닥이 260 제곱킬로미터로, 지구상 가장 큰 칼데라이다. 칼데라는 분화구의 일종으로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다. 용암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면서 화산 내부에 빈 공간이 생기고, 외벽이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원형의 균열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내부로 무너져 내려 칼데라가 생긴다. 250만 년 전 현재 킬리만자로 크기의 활화산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것이 폭파하면서 생긴 칼데라가 지금 현재의 응고로응고로이다.

 

 

응고로응고로에서 코끼리 가족을 볼 수 있었다.

 

 


만나기 힘들다는 치타를 볼 수 있었다.

지구상 가장 빠른 포유류의 프라이드와 고양이 특유의 우아함과 도도함이 느껴지는 워킹을 선보였다.

 

 


아프리카에서는 타조 고기, 타조 깃털, 타조 알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야생의 타조는 농장의 타조보다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응고로응고로의 플라밍코들은 발레리나의 군무를 연상시켰다.

 


응고로응고로 새벽 사파리는 흡사 시간여행 같다. 자욱한 안개는 분화구 가득 가라앉아 사방을 둘러싼다. 아프리카 어디서도 응고로응고로만큼 다양한 동물들이 한 곳에 밀집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사방이 분화구 벽으로 둘러싸인 초원에서 코끼리 가족, 치타, 플라밍고 무리, 물소, 가젤 때를 가까이서 보는 것을 잊지 못할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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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케냐, 그리고 나이로비 (by. 기웅)

2013. 8. 22. 23:38

by. 기웅

 

아프리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덥다, 검다, 못산다, 야생, 열악하다, 불쌍하다. 이런 단어들은 아닌지.

그러면 케냐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사파리? 마라톤? 혹시, 덥다, 검다...?

 

나이로비는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케냐의 수도이다. 엥카레 나이로비(Enkare Nairobi)라는 마사이어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그 뜻은 ‘차가운 물’이다. 나이로비의 기후도 그 이름처럼 그다지 덥지 않다. 적도에서 남으로 150㎞ 정도 떨어진 열대 지역이지만, 1,676m 정도의 고원에 위치하기 때문에 연평균 기온이 약 18도 정도로 선선하다. 오히려 아침저녁으로는 긴팔이 꼭 필요할 정도로 쌀쌀하다. 나이로비에 처음 들어서면, 낮게 깔린 구름과 멀리까지 보이는 지평선,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져 깨끗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시내에는 충분한 녹지와 공원들이 배치되어 있어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깨주는 도시이다.


 

<하늘에서 본 나이로비>

 

 

나이로비는 원래 그 주변지역과 마찬가지로 마사이, 키쿠유 족 등과 야생동물들이 노니는 초원이었다. 지금도 유목민족인 마사이족이 때때로 소떼를 몰고 나이로비 근처에 주둔하거나 도시를 통과하기도 한다. 하지만, 1895년 영국이 몸바사에서 빅토리아 호수 연안의 키수무까지 철도를 놓는 공사를 시작하며 전진기지인 나이로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07년, 나이로비는 영국령 동아프리카의 수도가 되었고, 1950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이후로도 발전은 거듭하며 동아프리카의 중심 도시로서 기능하고 있다. 또한 나이로비는 다른 대륙에서 아프리카로 들어오는 관문도시이자 사파리를 시작하는 사파리 수도로의 역할도 수행한다. 도시가 생긴지 10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인구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곳이 어느새 케냐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도시로 자리 잡았다. 1919년 1만 명 정도였던 나이로비의 인구는, 1948년 12만, 독립 후인 1969년에 51만, 1979년에는 83만으로 급증했고, 현재는 250만 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당신은 이러한 나이로비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아프리카에 대해 품고 있는 선입견으로 나이로비를 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로비는 세계의 다른 수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현대적인 대도시이다. 출퇴근 시간이면 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어쩌면 상당히 일반적인 대도시이다. 물론 나이로비에 흑인들이 많이 살지만, 식민시대 건너온 백인들의 후손들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백인, 인도인, 중국인 등 다양한 생김세의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빼꼭히 들어선 나이로비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야생 동물들의 고향인 ‘와일드’ 아프리카가 버젓이 살아있다. 하지만 나이로비도 세계 어느 도시처럼 빈민촌이 있고, 그들의 생활환경은 열악하며 때로는 불쌍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는 도시의 일부일 뿐이다. 양복을 갖춰 입고 시내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며, 저녁에는 친구들과 냐마초마(nyama choma : 스와힐리어로 ‘구운 고기’라는 뜻이다. 쇠고기나 염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소금에 찍어 먹는 전통 요리이다.)에 맥주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잠시 아프리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 대도시 나이로비에 어떤 삶이 있는지 알아보자.

 

 

나쿠마트 (Nakumatt)


나쿠마트는 우추미(Uchumi, 스와힐리어로 경제라는 뜻이다) 등과 더불어 케냐의 대표적인 마켓 체인이다. 케냐 전역에 17개의 매장이 있으며, 나이로비에서도 시내를 다니다 보면 나쿠마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각 매장은 약 5만 가지 정도의 상품을 구비하고 있다. 이는 식료품에서부터 화장품, 가구, 음반, 문구류, 전자기기, 오토바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를 모두 포함한 숫자이다.

 

나이로비 시내의 한 매장의 경우, 나쿠마트는 세 개의 층을 사용하고 있다. 1층에서는 고기 과일, 과자 등 각종 식품을 판매하고, 2층은 문구류, 음반, 식기 등 생활용품을, 3층에서는 컴퓨터 용품, 가구, 자전거 등 고가품을 진열해놓고 있었다. 이름만 다를 뿐 상품의 종류나 가짓수, 진열방식 등에 있어서 한국의 대형할인마트와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나쿠마트 외관> 마트의 상징인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이처럼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고, 가격 또한 합리적이기 때문에 케냐인과 외국인 모두 나쿠마트를 즐겨 찾는다.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의 경우 나이로비에 올 기회가 있으면 이러한 대형 마트에 들러, 근무지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구입해가는 경우도 있다. 간혹 마사이들이 고유의 붉은 의상을 입고 정말 현대적인 공간인 나쿠마트로 쇼핑을 오는 모습을 볼 수도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다.

 

 

 

<나쿠마트 내부> 다양한 상품이 구비되어 있다. 와인과 베이커리 코너의 모습.

 

 

 

나이로비 대학 (University of Nairobi)


시내 중심에 메인 캠퍼스를 두고 있는 나이로비 대학은 케냐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대학으로 1954년에 개교하였다. 처음에는 독자적으로 학위를 수여할 수도 없는 단과대학에 불과했다. 하지만 1963년, 나이로비 대학은 우간다의 마케레레, 탄자니아의 다르에르살람 단과대와 통합하여 동아프리카 대학을 이루게 된다. 이어서 1970년 동아프리카 대학이 분리되며 종합대학으로 거듭났다. 의학, 수의학, 농학, 공학, 법학, 교육학, 경제학 등 거의 모든 분야의 학부가 있으며 케냐타칼리지를 산하에 두고 있다.

 

 

 

<나이로비 대학> 녹지와 건물이 잘 어우러진 캠퍼스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공부한다.


 

나이로비 대학의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표정이 상당히 밝고 자신만만하다. 사회의 엘리트다운 자부심과 당당함이 행동과 목소리에 묻어난다. 실제로도 이들은 케냐 전역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대학에 진학한 사람들이다. 자기 부족의 말과 스와힐리 그리고 영어까지 세 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동아프리카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엘리트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저학년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잔디밭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기도 하고, 놀러 나가기도 한다.


메인 캠퍼스를 방문하면 익숙한 인물의 동상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인도의 영웅인 마하트마 간디이다. 정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도서관이 그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간디 기념 도서관이고 그 안에 간디의 동상이 있는 것이다. 케냐와 간디가 바로 연결은 되지 않겠지만, 인도계 사람들이 간디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란 배경을 알면 납득이 될 것이다. 나쿠마트의 경영자도 인도계인데, 영국 지배시절 케냐로 많이 건너온 인도인들은 케냐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도서관 1층의 서점에서는 스와힐리 문학작품에서 각 학과의 전공 서적들까지 다양한 책을 판매, 대여한다. 이 중 몇몇 교재는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많이 보는 교재여서 세계화를 새삼 느낄 수 있다.

 

 

노포크 호텔 (Norfolk Hotel)


나이로비 대학과 케냐 국립극장 맞은편에는 유서 깊은 호텔이 있다. 나이로비가 생긴지 몇 해 지나지 않은 1904년 문을 연 노포크 호텔이 바로 그곳이다. 노포크 호텔은 식민시대 지배자였던 영국인들을 위한 호텔답게 영국식으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외관을 지니고 있으며, 98/99년의 개선 공사를 통해 시설도 깨끗하게 재정비되었다. 호텔의 설립 초기에는 사파리나 연구, 사냥 등의 목적으로 케냐를 찾는 손님들이 많이 묵었으며, 케냐에 정착한 백인들 간의 사교의 장으로도 활용되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루즈벨트도 1909년 사냥의 목적으로 케냐를 방문했을 때 노포크에 머물렀고, 영화 촬영을 위해 케냐에 온 배우들도 노포크를 즐겨 찾았다.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인사들이 노포크를 찾는데, 최근의 예를 들자면,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출연진과 스텝들이 묵어갔다. 하루 숙박에 200달러 내외로 비싼 편에 속하지만 인기가 높은 것은 역사와 시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서비스 때문일 것이다.

 

 

<노포크 호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외관.

 

 

사파리 파크 호텔 (Safari Park Hotel)


파라다이스 그룹의 창업자인 고 전락원 씨가 운영했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사파리 파크 호텔은, 도심 속의 휴양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지만,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주변 환경이 도시와는 다른 모습으로 확 바뀐다. 아프리칸 방갈로 스타일의 낮은 집들이 10만 평의 녹지 사이에 띄엄띄엄 들어서 있고, 건물의 외관에서 작은 인테리어까지 자연의 냄새가 나는 재료들을 택하여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온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로비가 있는 건물도 쥬라기 공원에서 본 듯한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다.


호텔에는 쇼핑 빌리지와 각국의 음식을 다루는 6개의 레스토랑, 카지노 등 흥미를 끄는 많은 시설들이 있다. 몸바사, 잔지바르 등 동아프리카지역의 엔틱 조각에서 현대 조각까지 다양한 아프리카 토산품을 파는 상점, 대형 화덕에 구운 악어, 타조, 멧돼지 등 각종 고기들을 맛볼 수 있는 냐마쵸마 식당 등은 어느 곳에도 뒤쳐지지 않는 만족을 제공한다.

 

 

 

<사파리 캐츠 쇼> 힘이 느껴지면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동작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냐마쵸마 식당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사파리 캐츠 쇼(Safari cat's show)를 볼 수 있다. 동아프리카 최초의 본격 전문 민속 무용단이 공연하는 사파리 캐츠 쇼는 아프리카의 힘과 생명력, 역동성을 잘 표현한 공연이다. 프랑스에서 초빙된 감독이 아프리카 전통의 무용에 현대 무용을 가미하여 만든 작품으로, 감독이 떠난 현재에도 재창조와 꾸준한 연습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다.

 

남여 배우들의 균형 잡힌 몸매와 놀라운 움직임도 감상에 즐거움을 더한다. 공연은 5분 정도마다 내용이 바뀌며 1시간가량 계속된다.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예로부터 춰온 춤으로 시작되어, 바구니 등의 소품을 이용한 춤으로 이어진다. 20명가량의 배우들이 무대 앞에 쭉 앉아서 박수치는 공연도 있고, 무용이라기보다 곡예에 가까운 장면들도 연출된다. 남여배우 한 명 씩 나와 서로의 사랑을 표현하는 부분도 화려한 개인기를 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의 정치, 경제와 문화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시이다. 아프리카에 있는, 우리의 도시와 영 다른 그 어떤 미개한 곳이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와도 견줄 수 있는 현대적 도시이다. 나이로비의 경제력, 젊은이들의 생각, 역사와 문화 그 어느 것도 뒤쳐지지 않는다. 케냐 사람들과 아프리카 대륙의 특징이 그 안에 녹아 들어가서 나이로비만의 색을 내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53개국이 있는, 지구 육지의 20%를 차지하는,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하는 큰 대륙이다. 물론 불행한 착취의 역사를 지워버릴 수는 없겠지만, 아프리카의 아름다움 또한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첫 여행지였던 나이로비의 변해가는 도시 풍경은 아프리카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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