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사회인류학

아프리카인에게 민간신앙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africa club 2004. 6. 29. 15:14
아프리카인에게 민간신앙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장용규

아프리카는 종교적 역사가 깊은 땅이다. 에티오피아에는 기원 후 1세기경부터 아랍지역에서 들어 온 기독교가 정착돼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 Church)가 형성되었다. 동부아프리카와 북부아프리카에도 이미 기원을 전후로 해서 아랍지역의 이슬람 문명과 꾸준한 교류가 있었으며, 기원 후 7세기를 시점으로 빠른 속도로 이슬람교가 침투해 들어 왔다. 18세기에는 수많은 유럽의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밀려들어오는데 특히 남부아프리카에서의 파급효과가 커 기독교는 남부아프리카의 최대 종교로 성장해왔다. 이런 역사적 정황으로 볼 때, 북부와 서부아프리카에는 이슬람이, 중부와 남부아프리카에는 기독교가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종교를 이야기할 때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다. 흔히 아프리카의 종교를 구분하는데 기독교인 몇 %, 무슬림 몇 %, 전통종교 몇 %로 수치화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인들의 종교적 심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에서 발생한 것이다. 아프리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신자의 수를 헤아려 수치화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아프리카인들의 심성에 녹아있는 민간신앙을 수치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편화의 오류를 감수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인이건 무슬림이건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이 민간신앙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민간신앙은 아프리카인들이 외세의 종교에 의존할 수 없는 특수한 환경에 부딪칠 때 특히 위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인들은 합리적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부딪쳤을 때 쉽게 민간신앙에 의존함을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민간신앙의 틀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찾고, 처방을 하고 마지막으로 위안을 얻는다. 민간신앙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 아프리카인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민간신앙의 구조를 남아공의 줄루 사회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프리카 민간신앙의 삼위

창조신
아프리카 민간신앙에 유일신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다. 많은 수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창조주의 성격을 띤 절대자가 존재했었다는 기록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남아공에 살고 있는 줄루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창조 신화는 역할의 중요성은 둘째로 치더라도 창조주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줄루 사회에서 찾아 보루 수 있는 절대자의 명칭은 다양하다. “위대한 자”라는 뜻을 가진 응꿀룽꿀루(Unkulunkulu), “처음부터 존재 하던 자”라는 뜻을 가진 움벨리깡기(umbelingqangi), 소만들라(somandla, 증대시키는 자) 등 절대자를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하다.

줄루 사회에는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든 뒤 자신이 살고 있는 하늘과 인간의 땅을 연결하던 줄을 거두어들이고 하늘의 문을 닫아 인간 사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말았다는 신화가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사회와 관계가 없는 초월적인 창조주는 줄루 민간신앙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줄루인들은 창조주에 대해서 대체로 무관심하다. 창조주는 현실적으로 줄루사회의 길흉화복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줄루 전통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는 절대자에 대한 제례를 지내지 는 일이 없다. 대부분의 줄루인들에게 창조신은 인간 세상의 뒷전에 머물러 있는 잊혀 진 존재로 남아있다.


조상 혼령(Amadlozi) : ‘살아있는 사자’(Living Dead)
줄루인들은 일반적으로 조상혼령을 이들로지(idlozi)라고 부르지만 조상혼령의 특성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판시(iphansi)는 ‘밑에 거주하는 존재’라는 뜻으로 조상혼령이 땅 속 세계에 머물고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이름이며, 우모야(umoya)는 그 어원(-moya, 공기)이 말해 주듯 공기 중에 떠다니는 혼령을 말한다. 이통고(ithongo)는 ‘잠(ubuthongo)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는데 왜냐하면 이 조상혼령은 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조상혼령은 꿈을 통하거나 동물의 몸을 빌려 후손에게 나타난다. 특히 줄루인들은 특정 종류의 뱀을 조상의 현신이라고 믿는다. 이냔데줄루(iNyandezulu)라고 하는 밝은 갈색에 검은 점을 가지고 있는 뱀은 그 크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로 ‘남자 조상혼령’을 대표한다. 완전히 성장한 이냔데줄루는 한 집안의 가장이거나 한 지역의 추장이 죽어 현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장기에 있는 이냔데줄루는 보통 남성 또는 아이가 죽어 된 혼령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갈색의 우마비비네(uMabibine)는 일반적으로 여성을 나타내는 뱀이며, 움세네네(umSenene)는 나이 든 여성을 대표하는 뱀이다. 줄루인들은 갈대로 지붕을 엮은 전통 가옥(indlu)을 한 두 채 씩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 전통 가옥은 조상 혼령을 모시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조상혼령은 산 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사실 조상혼령은 줄루인들 사이에 경외의 대상으로 섬김을 받기보다는 현세에 살고 있는 후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들의 하루하루 삶에 관여하고 있는 (초)현실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조상혼령과 후손과의 현재(現在)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죤 음비티가 아주 적절한 표현을 남겼다. 음비티에 따르면 아프리카 믿음 체계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조상혼령에 대한 기억술이며 보통 4-5대까지 그 기억이 계속된다고 밝혔다.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왜냐하면 “죽은 사람이 이름에 의해서 기억되는 한 그는 죽었지만 정말로 죽은 것은 아니(고)...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죤 음비티는 이러한 조상혼령을 가리켜 “살아 있는-사자”(死者, Living Dead)라고 불렀다.

조상혼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영향력을 상실하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영향력 있던 조상 혼령들조차 ‘조상혼령’이라는 모호한 범주 안으로 편입되어 사실상 후손들로부터 잊혀지고 만다. 브라이언트라는 민속학자에 따르면 후손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상의 혼령은 부계(父系) 조상, 즉 아버지, 할아버지와 가까운 남계 친척이라고 한다.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사실은 줄루사회에서는 죽음이 조상혼령이 되기 위한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조상혼령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줄루인들은 죽음의 종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 죽음은 인생을 알맞은 때에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이것은 악한 죽음이 아니며 그 사람의 영적인 존재 자체는 산 자들 사이에 지속된다고 한다.

죽음이란 것은 이 세상과 조상들이 살고 있는 세상간의 ‘전이’과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조상의 혼령이 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할 필요가 있다. 그 기본 조건으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자신을 기억해 줄 후손이 있어야 한다. 죽은 자를 기억해 줄 후손이 존재하는 한 죽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고 삶의 연장선상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구부이사 이들로지(ukubuyisa idlozi)라고 하는 특별한 통과의례(通過儀禮)를 거쳐야 한다. 우구부이사 이들로지는 ‘죽은 혼령을 다시 불러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보통 이 의례는 사람이 죽은 뒤 일 년이나 이 년이 지난 뒤에 행해진다. 다만 여성이 죽었을 경우에는 이 의례를 행하지 않았다. 우구부이사 이들로지를 위해서 커다란 암소가 희생 제물로 봉헌되는데 때로는 한두 마리의 염소와 함께 적은 현금이 함께 봉헌되기도 한다. 이 의례가 행해지는 동안 죽은 사람의 이름이 조상들의 이름 반열에 들어가 암송되는데 이로써 죽은 사람은 당당하게 조상의 대열에 들어가게 된다.  

다른 하나의 죽음은 악(惡)과 관련이 있는 죽음인데 이것은 사람이 적절한 때에 적당한 장소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이 경우의 죽음은 원혼(冤魂)을 생기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죽음은 전쟁터에서의 전사를 들 수 있다. 사람이 죽음을 맞는 기본 조건은 죽음을 바라 볼 친인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터에서의 죽음은 돌변적인 죽음이고 그 시신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원혼으로 떠돌게 된다. 식민 경제 체제의 도입과 함께 많은 수의 농촌 흑인들이 대도시로 광산으로 몰려 나간 것도 이러한 원혼을 생겨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낯선 광산에서의 죽음은 그를 기억해 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원혼으로 떠돌 가능성이 크며 유랑 원혼은 줄루 사회에 커다란 위협 요소이다. 사실 이러한 원혼 집단의 유랑으로 인한 질병의 확산도 인류학자들에 의해서 확인된 바 있다. 어린아이도 죽어서 혼령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죽음은 절대 직계 조상의 반열에 들지는 못한다.

직계 조상 혼령과 후손은 현실 사회에서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한다. 후손들이 조상 혼령으로부터 바라는 큰 관심은 이 세상에서의 번영을 보장해 주는 것이며, 이에 대한 대가로 조상 혼령은 후손들로부터 정규적인 제례 의식을 요구한다. 조상 혼령과 후손사이의 기본적인 교환 관계가 깨어지지 않는 한 조상 혼령과 후손은 건강하고 튼튼한 사회 구조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항상 완벽하게 유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줄루 사회에는 많은 관습과 전통이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들을 완벽하게 지켜나가는 사람은 없을 뿐더러 어느 정도의 일탈 행위는 정상적인 사회 행위로 인정을 해 주고 있다.  


악마(Abathakathi)와 하수인
움타가티는 악마를 지칭하는 줄루 어로 조상 혼령과 함께 산 자들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조상 혼령이 한 가문의 후손들을 보호하고 번성케 하는 순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 악마는 사회 자체를 무차별 공격해 재난과 파괴를 일삼는 반사회적인 존재이다. 악마가 반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은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악마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현지 조사를 하는 동안 많은 정보를 제공해줬던 점술가(isangoma) 알디나 Aldina는 악마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움타가티는 늙은 여자가 대부분이며 한밤중에 떠돌아다닌다. 이들은 바분(baboon, 원숭이의 일종으로 보통 원숭이보다 몸집이 훨씬 크고 포악하다.)을 탈것으로 이용하는데, 완전히 나체가 되어 바분을 거꾸로 타고 다닌다.” 알디나의 묘사에서 볼 수 있듯이 움타가티의 행위는 완벽하게 반(反) 사회적이다. 바분을 탈것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반 사회(자연) - 포악함을 상징하며 나체에 비정상적인 방법(거꾸로)으로 비정상적인 시간에(밤) 돌아다니는 것도 움타가티의 반사회적인 성격을 보여 주는 예이다. 움타가티는 인간에게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사회적 흐름을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움타가티는 그 성격에 따라 여러 종류의 하수인을 두고 있으며, 시체나 야생 동물에 주술을 걸어 하수인으로 이용한다. 또꼴로쉐(tokoloshe)는 움타가티의 하수인 중 대표적인 존재로 키는 작은 어린아이의 것을 넘지 않는 난쟁이이다.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또꼴로쉐는 자기 키 만한 어린아이의 눈에만 보이는데, 주로 한 밤중에 지붕을 타고 들어와 잠자는 사람의 가슴에 올라타 목을 조르거나 무차별한 성 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줄루사회 주민들 중 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또는 ‘아침부터 피곤하다’라고 하는 사람은 일단 또꼴로쉐의 행위를 의심한다. 움타가티가 주로 이용하는 야생 동물로는 뱀, 야생 고양이, 바분 등이 있는데 이들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기보다는 움타가티의 탈것이나 심부름을 하는 존재들이다.

움타가티를 돕는 하수인 중 재미있는 존재는 잉꼬부(inkovu)라고 부르는 좀비이다. 잉꼬부는 움타가티가 죽은 시신을 다시 살려 하수인으로 쓰는 경우인데, 이들에게는 감정과 신경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힘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들은 한밤중에 움타가티의 부름을 받고 악마를 위해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하는데, 특히 움타가티의 밭을 경작하는데 이용된다. 죽은 자의 초자연적인 힘을 빌림으로써 악마는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서 좋고 죽은 자는 산 자와는 달리 밭을 가는 동안 휴식을 취하거나 불평을 할 염려가 없어 노동력에 대한 이중 착취인 셈이다. 악마의 밭작물이 유난히 풍성하고 수확이 좋은 것은 잉꼬부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줄루 사회의 선(善)과 악(惡)

줄루 종교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선악 개념은 독특하다. 줄루사회를 비롯한 아프리카 전통 사회에서는 사회 질서와 평화 유지를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 나가야 할 신성한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들 - 도덕, 관습, 규례 등 -은 일종의 권위와 더 나아가서는 신성함을 부여받았다. 이 ‘신성한’ 제도에 순응하는 한 사회 구성원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제도적 장치의 신성함을 깨뜨리는 행위는 어떠한 것이든지 사회에 대한 일탈행위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회 질서와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었다.

사회 단위가 거대하고 사회 구성원간에 상호 익명성이 보장되는 현대사회는 개인주의를 특성으로 한다. 사회 기능 면에서 현대사회는 사회 분업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개개인은 자신과 네트웍을 형성하고 있는 활동영역 안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뿐 사회라는 추상적 전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여기에 빈번한 타 문화권과의 교류로 인한 사회-문화적 다양성은 개인 관심의 다변화를 조장하는데 이러한 개인주의, 익명성, 그리고 관심의 다변화는 종교와 개인과의 관계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혼령과 개인은 개인적, 개별적 관계를 맺는다. 줄루사회는 다양한 친족 관계를 중심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개인의 행위는 다른 구성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줄루사회에서 마을 구성원간의 상부상조는 마을 질서 유지를 위해서 필수적인 행위이다. 줄루사회에서는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구성원을 위험한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관계를 중심으로 줄루사회 사회에서 선악의 개념이 형성된다. 구성원의 행위가 사회적인가 아니면 반사회적인가 하는 것이 선악을 결정하는 잣대로 작용한다.

줄루 사회에서의 선악개념은 우리의 선악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줄루의 인식론에서 악(-bi)은 나쁜 의도를 갖고 있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가 미치는 사회관계에 무게를 둔다. 다시 말해 악의 본질은 나쁜 의도를 가진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조화로운 사회관계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는 어떤 요소를 의미한다. 악이란 사회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반사회적 능력이다. 아프리카사회에서 구성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어떤 관습이나 법률, 규칙 등을 깨뜨리는 행동은 반사회적인 ‘악’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는 관계가 없고 다만 자기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관습과 규례를 준수하면 ‘선’하게 행동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못되게’(악하게)행동한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인 본성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인 규제이며 이러한 규제들은 신과 인간 간의 도덕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인간 간의 수준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사회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였다.

줄루사회 사람들은 조상 혼령은 현재를 살고 있는 후손들을 보호하는 ‘선(善)’한 혼령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는 악의 화신인 악마(umthakathi)에 비교를 한다. 그 원인으로 줄루사회 사람들에게 조상 혼령은 항상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적 존재인 반면 악마는 언제나 사회 질서를 파괴하려는 위험한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줄루사회 사람들은 조상 혼령은 항상 후손에게 번영과 질서 그리고 복지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반면 악마는 언제나 틈을 노려 사람들에게 재난과 질병을 던진다고 믿고 있다.  

일견 줄루 사회의 선악 개념은 ‘조상 혼령은 선하고 악마는 악한’ 이원론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줄루사회 사람들이 불행이나 질병을 겪어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점술가를 찾아가 점술 행위를 하는 과정을 관찰해 보면 질병이나 재앙의 원인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줄루사회 사람들에게 질병과 재난을 가져다주는 존재는 악마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조상의 혼령도 이에 못지 않은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조상 혼령이 다 후손들에게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부계 사회인 줄루 사회에서 후손들에게 우호적인 혼령은 남계친을 중심으로 한 직계 조상 혼령이며 결혼으로 맺어진 외촌혼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직계 혼령은 한 가족의 안녕과 단합을 도모하는 혼령으로 줄루 선악 개념에 있어서 선한 조상 혼령의 범주에 들지만 외촌 혼령은 언제나 한 가족의 질서를 깨뜨릴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에 ‘악’한 범주의 조상 혼령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조상 혼령은 선하다’라는 일반론적인 개념은 줄루 사회에 있어서는 적당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악의 대표인 악마의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줄루 사회에서 악마는 사회 질서를 유린하는 악의 대변인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악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혼령이 악한 것은 아니다. 악한 혼령도 상황에 따라서 친 사회적이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선한 혼령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줄루사회 종교현상의 사회학적 해석  

줄루인들에게 세속적인 삶과 종교적인 삶은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 있다. 이들에게 매일 매일의 삶은 종교의 영역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집안의 길흉화복이 있을 때에 줄루사회 사람들은 항상 특정 조상에 의례를 올린다. 이러한 의례가 반드시 형식적이고 거창할 필요는 없다. 조상의 이름을 읊으며 집에서 빚은 전통 주를 마당에 한 잔 뿌리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좀 여유가 있을 경우에는 닭과 같은 작은 희생물을 바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있든지 조상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줄루사회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이러한 종교 현상의 내용은 변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사회의 변화는 종교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따라서 줄루사회 종교 현상은 줄루사회의 지정학적 특성, 친족 구조의 변화, 종족 문제 등과 사회적인 요소를 통하여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사회의 인식론은 그 사회가 처한 사회적 환경과 필연적 연관성을 맺고 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발달된 인식론은 아프리카 사회가 처한 환경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인식론적 특성인 내향성과 신비주의적 경향은 인식론적 오류라기보다는 아프리카 인식론의 고유한 성격이라고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