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성과 결혼 : 신화와 현실
장용규
솔로몬의 지혜
남아공 유학시절, 학교 앞에서 같이 자취를 했던 분투(Buntu)라는 학생으로부터 들은 재미난 이야기 한 토막.
코사 ‘전통’에서 사춘기가 지난 사람들이 이성교제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지. 오히려 사춘기가 지났는데도 이성친구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 뭔가 부족한 바보가 아니고서야... 우리 또래에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거든. 남녀 간의 교제에는 일편단심이 통하지 않아. 뭐,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만날 수도 있고, 반대로 한 여자가 여러 남자를 사귈 수도 있는 거지.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야. 단 우리 ‘전통’은 남자와 여자의 이성교제는 허락하되 성관계는 엄격하게 금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남자와 여자가 사귀다 보면 관습적으로 허락하는 선을 넘어서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럴 경우에 관습에 따라 엄격한 제재를 받아. 특히 남자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지.
내 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있었어.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고 해. 어느 날, 그 여자친구가 임신을 해 버렸어. 당연히 그 집안은 발칵 뒤집혔겠지. 집안의 큰 수치이거든. 임신을 한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책임규명을 하기로 했지. 그런데 문제는 딸에게 남자친구가 여럿이었다는 거야.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물론 모두들 발뺌을 했겠지. 결국 여자친구는 아이를 낳았다는 거야.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자기 딸의 남자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대.
“누구냐, 누가 이 아이의 아버지냐?”
당연히 침묵이 흘렀겠지? 아버지는 결국 일대일 대면을 했다는 거야. 어린아이를 일일이 남자친구들과 비교해 보고 얼굴 형태나 신체구조가 가장 비슷한 친구를 ‘친아버지’로 규정 한 거지. 그게 바로 내 친구였어.
분투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 날 나는 분투의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솔로몬을 뺨치는 지혜가 아닌가?
분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부에 있는 트란스케이(Transkei) 주에서 북동쪽으로 인접해 있는 끄와줄루-나탈(KwaZulu-Natal) 주로 유학 온 코사(Xhosa) 학생이었다. 분투는 어린 나이였지만 코사 속담을 섞어가면서 이끌어가는 화법이 능숙해 상당한 매력을 던져주는 친구였다. 그 친구에게 코사 사회의 많은 관습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지만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성인식’과 함께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미난 이야기였다. 분투는 자기 마을에서 혼전관계를 통해 아이가 태어날 경우 관습에 따른 보상절차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아이를 낳게 한 책임이 있는 남자는 여자 집안에 소 한 마리를 보상하고, 여자의 또래 친구들에게는 염소 한 마리를 보상하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분투가 설명해 준 코사 사회의 사생아에 대한 보상관습은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많은 민족지에 그대로 드러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사회에서 사람은 횡적/종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한다. 횡적관계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집단을 뜻하며, 종적관계란 연령별로 맺어진 또래집단을 의미한다. 이 두 집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이 일상생활을 해 나가면서 의지할 수 있는 중요한 두 축이다. 이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오명은 집단의 명예실추로 이어진다. 더욱이 오명을 쓴 개인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을 경우 개인과 개인이 속한 집단은 초자연적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갖고 있다. 초자연적 처벌이란 조상혼령으로부터 오는 처벌이다. 실제로 이들 사회에서는 사생아는 조상혼령의 이름을 물려받을 수도 없으며,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온갖 사회적 불행과 질병에 시달린다고 믿고 있다. 아이의 생부가 누구인지 반드시 확인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부를 통해 보상으로 받은 가축은 조상혼령에게 바치는 제물로 이용된다.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이성간의 교제에 대해 관대한 반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성을 문화로 재창조 한다 : 레소토의 본야찌(bonyatsi)
아프리카의 성과 결혼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항상 회자되는 것 중의 하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왕성한 성욕과 원초적 본능에 관한 것이다. 일전에 국내에서 출간된 아프리카 성문화와 관련된 책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저자는 책에서 온통 아프리카의 기묘한 결혼제도를 동물적 성욕과 연결시켜 풀어내고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야생적인 성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야생동물들의 사진을 함께 싣는 친절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인간의 성욕 = 야생동물’과 연결시키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씁쓸했다.
인간은 성을 문화로 창조하는 유일한 동물일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본능적인 것이며 동시에 ‘유희’의 성격을 띤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의 성에 대한 인식은 동물의 세계와 확연히 구분된다. 동물의 세계는 철저하게 개체증식이라는 차원에서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한다. 자기증식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자본이고, 유희이며, 권력이다. 돈을 위해 성을 팔고, 성적 쾌락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성을 권력화 한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사회-문화적 현상인 셈이다.
한 문화권의 성문화가 오해를 받기 쉬운 이유는 다른 문화권에 낯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성문화가 대표적으로 오해를 받는 사례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성적 표현은 우리에게 낯설다. 성에 도덕적 엄숙함을 적용하는 우리 사회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성적 표현은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여기 한 사례를 소개하겠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둘러싸여 있는 산악국가 레소토(Leshoto)에는 본야찌(bonyatsi)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다. 본야찌는 혼외정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레소토의 일반적인 관습이다. 레소토에 사생아가 많은 것은 본야찌 풍습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도덕할 뿐 아니라 법적인 처벌까지 감수해야 할 이 풍습이 레소토에서는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비정상적이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일정하게 유지되어 온 관습. 뒤르케임의 말을 빌리면, 본야찌는 지극히 ‘사회적인 것’이다. 실제로 레소토 사람들은 본야찌 풍습이 도덕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는 인정받을 수 있는 행위라고 받아들인다. 현대식 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본야찌 풍습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도 개인적으로는 본야찌를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본야찌는 레소토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무분별한 성관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일까? 성에 대한 무분별함, 후세에 대한 무관심이 레소토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일까? 그렇지 많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학자들 사이에는 본야찌가 ‘전통’이냐 아니면 산업사회의 산물이냐에 대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먼저 본야찌를 소토(Sotho) 사회의 전통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소토사회는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해 왔다. 일부다처제는 소토 사회의 성에 대한 엄격한 금기와 관련이 있다. 소토 사회에서는 아내가 아이를 낳은 뒤 2년 동안 성 관계를 갖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 왔다. 따라서 두 번째 부인이나 세 번째 부인은 소토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레소토 사회에서 부인을 한 명 이상 둘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드문 것이 사실이다. 부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금액의 신부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를 낳은 아내에 대한 2년간의 성적 접촉 금지라는 전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다른 여자와 불법적인 관계가 묵인된다는 주장이다.
본야찌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사회제도와 관련이 있다. 레소토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신부대(bride-price)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소작농이거나 이주 노동자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레소토 사람들에게 신부대는 버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난한 레소토 서민들은 지역의 재력가나 명망가와 일종의 계약을 맺게 된다. 추장이나 세력가는 서민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묶어두기 위해 이들을 바흘랑가(bahlanga, 고객)로 맞이한다. 이들은 바흘랑가를 위해 ‘신부대’를 대신 치뤄 주고 바흘랑가의 결혼을 성사시킨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바흘랑가는 추장이나 세력가에게 충성을 바치기도 한다. ‘보호자-고객’(patron-client)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바흘랑가가 결혼을 통해서 낳은 아이는 신부대를 대신 지불해 준 추장이나 세력가에게 귀속된다. 이를 소의 아이(bana ke ba likhomo)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아내를 얻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은 추장이나 명망가의 아내에게 접근을 해서 혼외정사를 가질 수 있다. 혼외정사를 통해 태어난 아이에 대한 양육권은 물론 명망가에게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명망가의 아이로 인정받는다. 이처럼 레소토의 가난한 청년들은 추장이나 세력가에게 신부대를 대납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추장이나 세력가의 아내 중 한 명과 혼외정사를 통해 성적욕구를 충족시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양자의 경우 모두 자식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명망가들은 본야찌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부러 행사하기도 한다. 왕의 아내가 왕이 동맹을 맺고자하는 지역 세력가에게 가서 동침을 함으로써 왕국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도 있다.
본야찌는 레소토가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변화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레소토에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많은 시골 남성들이 대도시로 나가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규모 산업단지와 플랜테이션으로의 이주가 선호되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 정부는 남자 이외에는 이주 노동자의 신분증을 발급하지 않았다. 호스텔(Hostel)문화는 이런 남성 중심의 이주 노동자가 만들어낸 문화이다. 호스텔은 남성 이주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한 숙소였다. 이곳에 장기간 체류하는 남성들은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매매춘이나 동성애에 쉽게 빠지곤 했다. 반면에 남성이 부재 하는 시골은 여성 인구가 편중된 현상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혼외정사와 사생아 문제는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결국 레소토의 본야찌는 레소토 사람들의 성관념이 사회-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형태로 발전된 풍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다처제에 대한 오해 : 신화와 현실
성 행위가 문화 행위로 규정되는 최종점에는 결혼이 있다.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조직은 가족이다. 사회의 구성단위로서 가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남녀 간의 사회적 결합이 필요하다. 이것을 결혼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결혼제도와 결혼에 따른 제약이 너무 다양하다는데 있다. 지금은 서양에서 보편적인 결혼형태인 일부일처제가 이상적인 결혼형태로 강요되고 있지만 과거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이질적인 결혼형태와 제도가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의 수단 북부에 살고 있는 누어(Nuer) 사회이다. 누어 사회에는 유령 결혼(ghost marriage)이라는 결혼제도가 있다. 이것은 실제로 유령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과부가 낳은 아이는 죽은 남편의 아이로 취급되는 관습이다. 이와 함께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는 동성결혼이 있다. 이는 주로 나이가 많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여자가 젊은 여성의 결혼 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이 경우에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아버지’(나이 많은 여성)의 아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레소토의 본야찌 풍습과 유사한 면을 엿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결혼풍습 중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부분은 일부다처제에 관한 것이다. ‘아프리카 사회는 일부다처제’라는 신화는 아프리카 남성들이 아내를 여럿 두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일부다처제는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남아공의 최대민족인 줄루(Zulu)는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해 왔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줄루 남성들은 아내를 여럿 두기를 희망한다. 아내를 여럿 두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먼저 혈연에 대한 집착이다. 이들에게 자식을 낳아 자신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우리 못지않다. 특히 아들에 대한 선호도는 무척 높은 편이어서 아들만큼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줄루 사회의 뿌리 깊은 조상숭배와도 관련이 있다. 줄루 사회에서 조상혼령은 ‘살아있는 죽은 자’이다. 죽은 자가 후손들, 특히 아들에 의해 기억되는 한 죽은 자의 육신은 소멸되었어도 혼령은 살아있다는 믿음 때문에 줄루 사회에서는 조상혼령에 대한 절대적인 섬김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들을 많이 낳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기억해주는 시간이 연장될 터이고 이는 당연히 남의 부러움을 사게 된다. 아들을 많이 낳기 위해서, 아들을 많이 낳을 기회를 얻기 위해서 아내를 여럿 두는 풍습이 생겼다는 말이다.
줄루 사회는 농경과 목축을 병행하지만 기본적인 생계는 농경활동을 통해 얻은 곡물로 유지된다. 줄루 사회는 노동이 철저하게 분화되어 있어 농경활동은 여성의 경제영역으로 남아있다. 남자는 ‘절대로’ 농사일에 간여하지 않는 것이 자신들의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해, 여자는 노동력의 원천이다. 당연히 여자가 많은 집안은 풍부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다른 사람보다 밭 개간이나 작물 파종 등 농사일에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내를 여럿 두는 것은 이런 경제적인 측면을 살펴볼 때 중요하다. 줄루 사회에서 아들을 선호하지만 딸을 낳는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아들이 종교적, 사회적 신분 유지에 중요하다면 딸은 경제적 효용가치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딸은 시집을 가기 전까지는 어머니를 도와 농경활동을 하는 보조 인력으로 활용될뿐더러 결혼을 할 때에는 신부대로 소 열한마리와 교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줄루 사람들은 아들, 딸 구별 없이 많은 자식을 낳은 것을 선호한다. 당연히 일부다처제는 줄루 남성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결혼형태이다.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줄루 사회에서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신부 측에 소 열한마리를 지불해야 한다. 신부가 귀족일 경우에는 그 수가 스물 네 마리까지 올라간다. 소 한 마리 가격이 보통 3백만 원 정도라고 볼 때, 금액으로 환산해서 3천 3백만 원이라는 돈이 필요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줄루 노동자의 봉급이 약 10만 원 안팎임을 감안할 때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서민이 강남에 아파트를 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현실적으로 결혼을 하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아내를 여럿 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물론 일부 사회의 재력가들은 아내를 여럿 두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법적으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기독교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양식 결혼제도인 일부다처제를 법에 명시해 왔다. 아직 시골지역에서는 관습법을 따르고 있지만 성문법은 항상 불문법에 상위하는 개념이었다. 따라서 아내를 여럿 둔 명망가의 경우 첫 번째 부인 이외에는 법적인 아내가 될 수 없다. 첫 번째 부인 이외의 여자에게서 낳은 자식은 입양 등의 과정을 통해서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한다. 이렇듯 관습에 기반을 둔 ‘전통’사회의 결혼제도와 현대사회에서 제도화한 결혼제도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일부다처제는 줄루사회의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혼형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일부다처제는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결혼제도임에도 분명하다. 줄루사회, 더 나아가서 아프리카 사회를 일부다처제 사회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프리카의 다양성을 박제하는 신화에 불과하다.
장용규
솔로몬의 지혜
남아공 유학시절, 학교 앞에서 같이 자취를 했던 분투(Buntu)라는 학생으로부터 들은 재미난 이야기 한 토막.
코사 ‘전통’에서 사춘기가 지난 사람들이 이성교제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지. 오히려 사춘기가 지났는데도 이성친구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 뭔가 부족한 바보가 아니고서야... 우리 또래에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거든. 남녀 간의 교제에는 일편단심이 통하지 않아. 뭐,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만날 수도 있고, 반대로 한 여자가 여러 남자를 사귈 수도 있는 거지.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야. 단 우리 ‘전통’은 남자와 여자의 이성교제는 허락하되 성관계는 엄격하게 금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남자와 여자가 사귀다 보면 관습적으로 허락하는 선을 넘어서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럴 경우에 관습에 따라 엄격한 제재를 받아. 특히 남자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지.
내 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있었어.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고 해. 어느 날, 그 여자친구가 임신을 해 버렸어. 당연히 그 집안은 발칵 뒤집혔겠지. 집안의 큰 수치이거든. 임신을 한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책임규명을 하기로 했지. 그런데 문제는 딸에게 남자친구가 여럿이었다는 거야.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물론 모두들 발뺌을 했겠지. 결국 여자친구는 아이를 낳았다는 거야.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자기 딸의 남자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대.
“누구냐, 누가 이 아이의 아버지냐?”
당연히 침묵이 흘렀겠지? 아버지는 결국 일대일 대면을 했다는 거야. 어린아이를 일일이 남자친구들과 비교해 보고 얼굴 형태나 신체구조가 가장 비슷한 친구를 ‘친아버지’로 규정 한 거지. 그게 바로 내 친구였어.
분투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 날 나는 분투의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솔로몬을 뺨치는 지혜가 아닌가?
분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부에 있는 트란스케이(Transkei) 주에서 북동쪽으로 인접해 있는 끄와줄루-나탈(KwaZulu-Natal) 주로 유학 온 코사(Xhosa) 학생이었다. 분투는 어린 나이였지만 코사 속담을 섞어가면서 이끌어가는 화법이 능숙해 상당한 매력을 던져주는 친구였다. 그 친구에게 코사 사회의 많은 관습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지만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성인식’과 함께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미난 이야기였다. 분투는 자기 마을에서 혼전관계를 통해 아이가 태어날 경우 관습에 따른 보상절차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아이를 낳게 한 책임이 있는 남자는 여자 집안에 소 한 마리를 보상하고, 여자의 또래 친구들에게는 염소 한 마리를 보상하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분투가 설명해 준 코사 사회의 사생아에 대한 보상관습은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많은 민족지에 그대로 드러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사회에서 사람은 횡적/종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한다. 횡적관계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집단을 뜻하며, 종적관계란 연령별로 맺어진 또래집단을 의미한다. 이 두 집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이 일상생활을 해 나가면서 의지할 수 있는 중요한 두 축이다. 이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오명은 집단의 명예실추로 이어진다. 더욱이 오명을 쓴 개인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을 경우 개인과 개인이 속한 집단은 초자연적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갖고 있다. 초자연적 처벌이란 조상혼령으로부터 오는 처벌이다. 실제로 이들 사회에서는 사생아는 조상혼령의 이름을 물려받을 수도 없으며,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온갖 사회적 불행과 질병에 시달린다고 믿고 있다. 아이의 생부가 누구인지 반드시 확인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부를 통해 보상으로 받은 가축은 조상혼령에게 바치는 제물로 이용된다.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이성간의 교제에 대해 관대한 반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성을 문화로 재창조 한다 : 레소토의 본야찌(bonyatsi)
아프리카의 성과 결혼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항상 회자되는 것 중의 하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왕성한 성욕과 원초적 본능에 관한 것이다. 일전에 국내에서 출간된 아프리카 성문화와 관련된 책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저자는 책에서 온통 아프리카의 기묘한 결혼제도를 동물적 성욕과 연결시켜 풀어내고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야생적인 성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야생동물들의 사진을 함께 싣는 친절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인간의 성욕 = 야생동물’과 연결시키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씁쓸했다.
인간은 성을 문화로 창조하는 유일한 동물일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본능적인 것이며 동시에 ‘유희’의 성격을 띤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의 성에 대한 인식은 동물의 세계와 확연히 구분된다. 동물의 세계는 철저하게 개체증식이라는 차원에서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한다. 자기증식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자본이고, 유희이며, 권력이다. 돈을 위해 성을 팔고, 성적 쾌락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성을 권력화 한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사회-문화적 현상인 셈이다.
한 문화권의 성문화가 오해를 받기 쉬운 이유는 다른 문화권에 낯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성문화가 대표적으로 오해를 받는 사례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성적 표현은 우리에게 낯설다. 성에 도덕적 엄숙함을 적용하는 우리 사회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성적 표현은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여기 한 사례를 소개하겠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둘러싸여 있는 산악국가 레소토(Leshoto)에는 본야찌(bonyatsi)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다. 본야찌는 혼외정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레소토의 일반적인 관습이다. 레소토에 사생아가 많은 것은 본야찌 풍습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도덕할 뿐 아니라 법적인 처벌까지 감수해야 할 이 풍습이 레소토에서는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비정상적이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일정하게 유지되어 온 관습. 뒤르케임의 말을 빌리면, 본야찌는 지극히 ‘사회적인 것’이다. 실제로 레소토 사람들은 본야찌 풍습이 도덕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는 인정받을 수 있는 행위라고 받아들인다. 현대식 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본야찌 풍습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도 개인적으로는 본야찌를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본야찌는 레소토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무분별한 성관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일까? 성에 대한 무분별함, 후세에 대한 무관심이 레소토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일까? 그렇지 많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학자들 사이에는 본야찌가 ‘전통’이냐 아니면 산업사회의 산물이냐에 대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먼저 본야찌를 소토(Sotho) 사회의 전통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소토사회는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해 왔다. 일부다처제는 소토 사회의 성에 대한 엄격한 금기와 관련이 있다. 소토 사회에서는 아내가 아이를 낳은 뒤 2년 동안 성 관계를 갖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 왔다. 따라서 두 번째 부인이나 세 번째 부인은 소토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레소토 사회에서 부인을 한 명 이상 둘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드문 것이 사실이다. 부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금액의 신부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를 낳은 아내에 대한 2년간의 성적 접촉 금지라는 전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다른 여자와 불법적인 관계가 묵인된다는 주장이다.
본야찌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사회제도와 관련이 있다. 레소토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신부대(bride-price)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소작농이거나 이주 노동자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레소토 사람들에게 신부대는 버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난한 레소토 서민들은 지역의 재력가나 명망가와 일종의 계약을 맺게 된다. 추장이나 세력가는 서민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묶어두기 위해 이들을 바흘랑가(bahlanga, 고객)로 맞이한다. 이들은 바흘랑가를 위해 ‘신부대’를 대신 치뤄 주고 바흘랑가의 결혼을 성사시킨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바흘랑가는 추장이나 세력가에게 충성을 바치기도 한다. ‘보호자-고객’(patron-client)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바흘랑가가 결혼을 통해서 낳은 아이는 신부대를 대신 지불해 준 추장이나 세력가에게 귀속된다. 이를 소의 아이(bana ke ba likhomo)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아내를 얻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은 추장이나 명망가의 아내에게 접근을 해서 혼외정사를 가질 수 있다. 혼외정사를 통해 태어난 아이에 대한 양육권은 물론 명망가에게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명망가의 아이로 인정받는다. 이처럼 레소토의 가난한 청년들은 추장이나 세력가에게 신부대를 대납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추장이나 세력가의 아내 중 한 명과 혼외정사를 통해 성적욕구를 충족시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양자의 경우 모두 자식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명망가들은 본야찌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부러 행사하기도 한다. 왕의 아내가 왕이 동맹을 맺고자하는 지역 세력가에게 가서 동침을 함으로써 왕국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도 있다.
본야찌는 레소토가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변화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레소토에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많은 시골 남성들이 대도시로 나가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규모 산업단지와 플랜테이션으로의 이주가 선호되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 정부는 남자 이외에는 이주 노동자의 신분증을 발급하지 않았다. 호스텔(Hostel)문화는 이런 남성 중심의 이주 노동자가 만들어낸 문화이다. 호스텔은 남성 이주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한 숙소였다. 이곳에 장기간 체류하는 남성들은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매매춘이나 동성애에 쉽게 빠지곤 했다. 반면에 남성이 부재 하는 시골은 여성 인구가 편중된 현상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혼외정사와 사생아 문제는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결국 레소토의 본야찌는 레소토 사람들의 성관념이 사회-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형태로 발전된 풍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다처제에 대한 오해 : 신화와 현실
성 행위가 문화 행위로 규정되는 최종점에는 결혼이 있다.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조직은 가족이다. 사회의 구성단위로서 가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남녀 간의 사회적 결합이 필요하다. 이것을 결혼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결혼제도와 결혼에 따른 제약이 너무 다양하다는데 있다. 지금은 서양에서 보편적인 결혼형태인 일부일처제가 이상적인 결혼형태로 강요되고 있지만 과거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이질적인 결혼형태와 제도가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의 수단 북부에 살고 있는 누어(Nuer) 사회이다. 누어 사회에는 유령 결혼(ghost marriage)이라는 결혼제도가 있다. 이것은 실제로 유령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과부가 낳은 아이는 죽은 남편의 아이로 취급되는 관습이다. 이와 함께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는 동성결혼이 있다. 이는 주로 나이가 많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여자가 젊은 여성의 결혼 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이 경우에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아버지’(나이 많은 여성)의 아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레소토의 본야찌 풍습과 유사한 면을 엿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결혼풍습 중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부분은 일부다처제에 관한 것이다. ‘아프리카 사회는 일부다처제’라는 신화는 아프리카 남성들이 아내를 여럿 두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일부다처제는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남아공의 최대민족인 줄루(Zulu)는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해 왔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줄루 남성들은 아내를 여럿 두기를 희망한다. 아내를 여럿 두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먼저 혈연에 대한 집착이다. 이들에게 자식을 낳아 자신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우리 못지않다. 특히 아들에 대한 선호도는 무척 높은 편이어서 아들만큼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줄루 사회의 뿌리 깊은 조상숭배와도 관련이 있다. 줄루 사회에서 조상혼령은 ‘살아있는 죽은 자’이다. 죽은 자가 후손들, 특히 아들에 의해 기억되는 한 죽은 자의 육신은 소멸되었어도 혼령은 살아있다는 믿음 때문에 줄루 사회에서는 조상혼령에 대한 절대적인 섬김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들을 많이 낳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기억해주는 시간이 연장될 터이고 이는 당연히 남의 부러움을 사게 된다. 아들을 많이 낳기 위해서, 아들을 많이 낳을 기회를 얻기 위해서 아내를 여럿 두는 풍습이 생겼다는 말이다.
줄루 사회는 농경과 목축을 병행하지만 기본적인 생계는 농경활동을 통해 얻은 곡물로 유지된다. 줄루 사회는 노동이 철저하게 분화되어 있어 농경활동은 여성의 경제영역으로 남아있다. 남자는 ‘절대로’ 농사일에 간여하지 않는 것이 자신들의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해, 여자는 노동력의 원천이다. 당연히 여자가 많은 집안은 풍부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다른 사람보다 밭 개간이나 작물 파종 등 농사일에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내를 여럿 두는 것은 이런 경제적인 측면을 살펴볼 때 중요하다. 줄루 사회에서 아들을 선호하지만 딸을 낳는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아들이 종교적, 사회적 신분 유지에 중요하다면 딸은 경제적 효용가치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딸은 시집을 가기 전까지는 어머니를 도와 농경활동을 하는 보조 인력으로 활용될뿐더러 결혼을 할 때에는 신부대로 소 열한마리와 교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줄루 사람들은 아들, 딸 구별 없이 많은 자식을 낳은 것을 선호한다. 당연히 일부다처제는 줄루 남성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결혼형태이다.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줄루 사회에서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신부 측에 소 열한마리를 지불해야 한다. 신부가 귀족일 경우에는 그 수가 스물 네 마리까지 올라간다. 소 한 마리 가격이 보통 3백만 원 정도라고 볼 때, 금액으로 환산해서 3천 3백만 원이라는 돈이 필요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줄루 노동자의 봉급이 약 10만 원 안팎임을 감안할 때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서민이 강남에 아파트를 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현실적으로 결혼을 하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아내를 여럿 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물론 일부 사회의 재력가들은 아내를 여럿 두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법적으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기독교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양식 결혼제도인 일부다처제를 법에 명시해 왔다. 아직 시골지역에서는 관습법을 따르고 있지만 성문법은 항상 불문법에 상위하는 개념이었다. 따라서 아내를 여럿 둔 명망가의 경우 첫 번째 부인 이외에는 법적인 아내가 될 수 없다. 첫 번째 부인 이외의 여자에게서 낳은 자식은 입양 등의 과정을 통해서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한다. 이렇듯 관습에 기반을 둔 ‘전통’사회의 결혼제도와 현대사회에서 제도화한 결혼제도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일부다처제는 줄루사회의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혼형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일부다처제는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결혼제도임에도 분명하다. 줄루사회, 더 나아가서 아프리카 사회를 일부다처제 사회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프리카의 다양성을 박제하는 신화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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