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이 아프리카를 분할통치하면서 가장 먼저 도입해야 했던 것은 '통치이념'이었습니다. 특히 영국은 아프리카를 통치하기 위해 적지 않은 규모의 백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여기에 영국정부에서 파견된 식민관료, 선교사 등을 이주시켜 해당지역의 통치를 위임했습니다.
식민지배 초기의 영국인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출세의 길을 보장받지 못한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본국에서 교육(주로 선교사로서의 소양교육)을 받은 후 식민지에 투입되었지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데이빗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입니다.
리빙스턴은 스콧랜드(Scotland)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방직 공장에서 힘겨운 노동일을 해왔습니다. 신분상승에 야심이 차 있었던 어린소년은 미션학교에 들어가 선교사가 된 후 아프리카로 건너와 탐험가로, 선교사로, 그리고 행정관료로 일생을 마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계층의 사람들은 영국에서 누릴 수 없었던 특권을 아프리카 땅에서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아프리카를 본격적으로 관리하면서 지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군인, 지식인, 전문 행정관료 등을 파견했습니다. 이들은 유럽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신사계층'이었으며 당시 빅토리아 왕조에 절대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아프리카에 정착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자신들이 아프리카 흑인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별화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었지요. 문화 진화론적인 관점에 사로잡인 이들은 '차별'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상징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 땅에 영국적 문화전통을 이식(또는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도입한 영국적 문화전통은 다름아닌 "가부장제적 제국주의"였습니다. 당시 유럽, 특히 영국과 독일 그리고 벨기에,을 지배하고 있던 정치 이념은 "제국주의적 왕권"(Imperial Monarchy)였습니다. 영국(그리고 다른 유럽 식민지배세력)에서 파견된 식민관료들은 아프리카 땅에 자신들과 아프리카 흑인들의 관계를 군대식 주종관계로 질서지었습니다. 그 결과 "가부장제적 주종관계"가 형성되었지요.
가부장제적 주종관계는 군대식 위계질서와 절대 복종을 바탕으로 하는 군주와 식민의 관계를 상정하고 있는데, 아프리카에 건너 온 영국 식민관료들은 바로 빅토리아 왕조를 대변하는 '상징'세력이었습니다. 아버지 격인 '영국'과 자식 격인 '아프리카'라는 관계가 성립된 것이지요. 물론 이 위계질서를 부정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가혹한 탄압)이 따랐지요.
이처럼 주종관계를 형성한 영국은 지속적으로 영국의 우월성을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주입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백인의 우월함, 흑인의 열등함"이라는 프로젝트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주입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에 대한 예찬은 그 중 하나였습니다.
"광활한 대자연", "끝없는 초원", "인류의 요람", "원시림", "동물의 왕국" 등과같은 수사어는 모두 아프리카가 갖고 있는 원형질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여성성과 유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인간이 궁극적으로 안겨야 할 대자연에 대한 예찬은 마치 어머니의 품, 여성의 품이라는 이미지와 연결되었습니다(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오늘날에까지 그 효력이 미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관련된 사진자료나 홈페이지는 예외없이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초원과 동물, 그리고 거의 자연에 가까운 상태의 아프리카 흑인들 모습을 담고 있지요.)
아프리카의 여성성/유아성은 곧바로 이를 보호해야 할 가부장적인 존재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서양의 남성상이 강조되는 것은 이 시점이었습니다. 서양은 여성적이고 유아적인 아프리카에 비교해 볼 때 모험과 진취성 그리고 합리성을 두루 갖춘 남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은 아프리카를 보호할 자격이 있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도구로써 적절하게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 논리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는 문학과 종교였는데 영국에서 대인기를 끌었던 '타잔'과 서양의 유일신 '야훼'는 서양의 남성상을 대표하는 두 아이콘이었습니다.
식민지배 초기의 영국인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출세의 길을 보장받지 못한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본국에서 교육(주로 선교사로서의 소양교육)을 받은 후 식민지에 투입되었지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데이빗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입니다.
리빙스턴은 스콧랜드(Scotland)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방직 공장에서 힘겨운 노동일을 해왔습니다. 신분상승에 야심이 차 있었던 어린소년은 미션학교에 들어가 선교사가 된 후 아프리카로 건너와 탐험가로, 선교사로, 그리고 행정관료로 일생을 마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계층의 사람들은 영국에서 누릴 수 없었던 특권을 아프리카 땅에서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아프리카를 본격적으로 관리하면서 지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군인, 지식인, 전문 행정관료 등을 파견했습니다. 이들은 유럽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신사계층'이었으며 당시 빅토리아 왕조에 절대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아프리카에 정착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자신들이 아프리카 흑인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별화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었지요. 문화 진화론적인 관점에 사로잡인 이들은 '차별'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상징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 땅에 영국적 문화전통을 이식(또는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도입한 영국적 문화전통은 다름아닌 "가부장제적 제국주의"였습니다. 당시 유럽, 특히 영국과 독일 그리고 벨기에,을 지배하고 있던 정치 이념은 "제국주의적 왕권"(Imperial Monarchy)였습니다. 영국(그리고 다른 유럽 식민지배세력)에서 파견된 식민관료들은 아프리카 땅에 자신들과 아프리카 흑인들의 관계를 군대식 주종관계로 질서지었습니다. 그 결과 "가부장제적 주종관계"가 형성되었지요.
가부장제적 주종관계는 군대식 위계질서와 절대 복종을 바탕으로 하는 군주와 식민의 관계를 상정하고 있는데, 아프리카에 건너 온 영국 식민관료들은 바로 빅토리아 왕조를 대변하는 '상징'세력이었습니다. 아버지 격인 '영국'과 자식 격인 '아프리카'라는 관계가 성립된 것이지요. 물론 이 위계질서를 부정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가혹한 탄압)이 따랐지요.
이처럼 주종관계를 형성한 영국은 지속적으로 영국의 우월성을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주입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백인의 우월함, 흑인의 열등함"이라는 프로젝트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주입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에 대한 예찬은 그 중 하나였습니다.
"광활한 대자연", "끝없는 초원", "인류의 요람", "원시림", "동물의 왕국" 등과같은 수사어는 모두 아프리카가 갖고 있는 원형질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여성성과 유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인간이 궁극적으로 안겨야 할 대자연에 대한 예찬은 마치 어머니의 품, 여성의 품이라는 이미지와 연결되었습니다(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오늘날에까지 그 효력이 미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관련된 사진자료나 홈페이지는 예외없이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초원과 동물, 그리고 거의 자연에 가까운 상태의 아프리카 흑인들 모습을 담고 있지요.)
아프리카의 여성성/유아성은 곧바로 이를 보호해야 할 가부장적인 존재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서양의 남성상이 강조되는 것은 이 시점이었습니다. 서양은 여성적이고 유아적인 아프리카에 비교해 볼 때 모험과 진취성 그리고 합리성을 두루 갖춘 남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은 아프리카를 보호할 자격이 있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도구로써 적절하게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 논리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는 문학과 종교였는데 영국에서 대인기를 끌었던 '타잔'과 서양의 유일신 '야훼'는 서양의 남성상을 대표하는 두 아이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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