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학/속담

<font color=blue>스와힐리어 속담에 나타난 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정체성 - 스와힐리어 속담연구 (4)

africa club 2004. 7. 13. 13:04

6.40 운명(Fortune) - 주인과 하인(Master / Servant)


■ Kujikwaa si kuanguka./Kuteleza si kuanguka.
   미끄러지는 것과 떨어지는 것은 다르다.(오히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게끔 한다)
■ Leo kwako, kesho mwenzio.
   오늘은 당신의 것으로 다가온 것도 내일은 당신의 친구의 것이 될 수 있다.(선과 악이 우리를 찾아온다./-오늘 내게 일어난 일이 내일 너에게 일어날 것이다.)
■ Riziki, kama ajali, huitambui ijapo.
   사람의 섭리라고 하는 것은 운명과 같은 것이다. 언제 그것이 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행운, 불운은 예측할 수 없다.)
■ Ukipata bahati mbaya, usiangalie kichoko.
   운이 안 좋았다고 하더라도 아픈 데를 보지 마라.(낙담해서는 안된다.)
■ Waliapo ndipo wachekapo.
   우는 곳에서 또 웃게 될 것이다.(슬픔은 기쁨으로 변한다. 어떤 사람은 깊이 슬퍼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불운의 중요성 때문에 기뻐한다.)



위의 속담들은, 사람의 일이란 그것이 좋은 쪽으로 갈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갈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옛 중국의 고사‥ 어느 날 늙은 농부의 명마가 달아난다. 아무리 주위에서 달래도 그 늙은이는 낙담한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그 말이 또 다른 군(명)마를 거느리고 돌아온다. 몇 일 뒤에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늙은이는 낙담하지 않는다. 다시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전쟁이 일어나 젊은이들은 다 군에 소집되지만, 불구가 된 아들은 군 입대를 면하게 된다.‥에서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맥락의 한국 속담으로는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아무리 구차한 사람이라도 운수가 터질 때가 있다./「개똥밭에도 이슬 내릴 때가 있다」/「음지도 양지될 날이 있다」‥운 나쁜 사람도 좋은 수를 만날 수 있고, 운 좋은 사람도 늘 좋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가 있으니, 세상일은 늘 돌고 돈다./「고생 끝에 낙이 있다」/「삽살개도 하늘 볼 때가 있다」등이 있다.

위와 같은 속담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나 아프리카인이나, 예로부터 불행이나 불운에 대처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종의 기제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불행’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그것(우리는 흔히 불행을 ‘他’에 의해 기인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他’와 비교하기 십상이다. 또 만성적으로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스와힐리어로 사사sasa는 현재를, 자마니zamani는 과거를 뜻한다. 하지만 ‘미래’라는 단어가 없다는 데서도 미래에 대해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름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 Paka akiondoka, panya hutawala.
   고양이가 없어지면 쥐가 군림한다.(명확한 규칙이 있는 지배자가 규칙이 없는 것 보다 낫다.)



위의 속담은, 뛰어난 사람이 없는 곳에서 되지도 못한 사람이 득세하는 꼴을 눈꼴사납게 보아 이른 것이다. 비슷한 맥락의 한국 속담에는 「범 없는 골에서는 토끼가 선생노릇을 한다」/「범 없는 산에서는 삵괭이가 범 노릇한다」/「범 없는 산에서는 토끼가 왕 노릇 한다」/「혼자 사는 동네, 면장이 구장」등이 있다.


■ Samaki huanza kuoza kichwani.
   물고기는 머리부터 상하기 시작한다.(지도자가 타락하면 모든 공동체가 타락한다.)
■ Wakubwa humeza wadogo.
   큰 者자 작은 者를 먹는다.



위의 속담은, 윗사람이 잘해야 아랫사람도 잘한다는 뜻으로 비슷한 맥락의 한국속담으로는 「부모가 착해야 효자가 난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다」「위로 진 물이 발등에 진다」「이마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흐른다」등이 있다.

이러한 속담은 주로 정치상황에서 사용되는 말들이다. 아프리카의 정치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도 다른바있지만, 아프리카의 신생 정부들이 이어받은 정치적 구도는 대체로 제정 유럽의 정략적인 경제적, 정치적 전략에 근거한 것이었다. 독재주의가 통치에 적합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식민지 정치 유산의 일부로 남았으며 상당수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지도적 위치를 사회적 경제적 이득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당파가 형성되었으며 후원자-고객 네트워크가 탈식민 시대의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중요한 정치적 상호작용 형태가 되었다.

이렇듯 1990년대의 민주화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부패의 악취는 끊이질 않고 타락된 정치체제가 악순환 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6.41 불행(Misfortune)


■ Ashukaye hushushwa.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그는 그렇게 되도록 누가 거들었다
■ Mchezo wenu ndio mauti yetu.
   너의 놀이는 우리에겐 죽음이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엿못에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죽음을 가져다 줄 수 있다.
■ Raha yako, taabu yangu.
   너의 즐거움은 나의 슬픔



이빨을 가진 사람에게 기쁜 일’이며 ‘입안에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한 일’이 될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 그리고 ‘한 쪽의 기쁨이 다른 쪽에게는 죽음’이 될 수 있는 상황이란 어떤 상황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빨을 가진 사람에게는 기쁜 일이며 입 안에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아닌 일’은 음식을 먹는 일이고, ‘한 쪽의 즐거움이 다른 쪽의 죽음’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재미로 개구리를 돌로 맞혀 개구리가 죽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접하자마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우리 속담이 떠오르지 않아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역지사지’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역지사지라는 표현보다는 불행에 처한 사람,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가짐이 더 절실히 와 닿았다. ‘역지사지’라는 짧은 표현보다는 길게 풀어 썼고 상황 설정적인 내용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의미의 다른 표현이 세 가지 씩이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 아닐까. 불행에 대한 속담이라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에 관련된 속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불행에 대한 따뜻하다면 따뜻하다고 할 수 있는 마음가짐, 그리고 지금은 타인의 불행이지만 자신도 그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생각, 나아가 불행한 처지만의 ‘역지사지’가 아니라 불행에 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역지사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2번 속담을 접하고 생긴 씁쓸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지게 되었다.


■ Baada ya dhiki, faraja.
   고통 뒤에 편안함이 찾아온다.
■ Zito hufuatwa na pesi.
   힘든 일 뒤에 쉬운 일이 찾아오느니.
■ Chumia juani kalie kivulini.
   햇볕 아래에서 너의 인생을 설계하라, 그러면 그늘에서 먹고 쉴 수 있으리라.
■ Dhoruba ilipo, shwari ipo.
   폭풍우가 있는 곳에 고요함도 있다.
■ Mla cha chungu na tamu hakosi.
   쓴 것을 먹는 자는 단 것도 먹게 된다.
■ Mla raha na uchungu hula.
   행복을 맛보는 자는 슬픔도 맛보게 된다.
■ Mwisho wa furaha, machungu.
   기쁨 뒤에 슬픔.
■ Pindi yakikaza mawi, huwa karibu kwisha.
   고난이 최악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끝에 가까워 있다.



아프리카인들의 낙천적인, 아니 낙천적이라기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속담들이었다. 물론 이들의 속담에서만 접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불행은 삶의 한 부분으로 피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처럼 불행이 지나고 행복이 온다는 식의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조금 궁금한 점이 슬며시 고개를 들게 만드는 속담이 몇 개 있었다. 우선 6번, 7번, 11번, 14번의 속담이 그것이다. 이들 속담은 ‘무엇인가를 수고해야만 즐거움, 안락함, 편안함’이 찾아온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왜 이들이 불행에 대한 속담일까? 근면이나 노동에 관계된 속담에 더 적절한 표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수고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좋지 못한 상황, 불편한 상황, 불행이 찾아온다는 경고성 문구로서 불행과 관련을 맺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 질문은 스스로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나의 오해일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속담을 접하면서 든 생각 중의 하나이므로 적고 넘어가려 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아프리카인들의 ‘내일’에 대한 생각과 관련해서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날씨 좋은 한낮에 그들이 낮잠 자는 모습-은 왠지 수고니 ‘햇볕 아래 서느니’하는 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노동은 주로 여성들이 맡아야 하는 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도 그리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그리고 16번과 17번의 속담은 그 의미 구조상 행복 다음에 불행이 왔는데 왜 그런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불행이 삶의 한 부분으로 행복 다음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른 표현들과는 의미 구조가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눈에 띄었다. 불행하지 않은 때라도 불행에 대해서 잊지 말고 있으라는 의도를 가진 것일까? 그리고 19번 속담은 끝까지 그 의미를 모르겠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22번 속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같이 행복하지만, 그래서 역경도 함께 이겨낸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불행에 대한 인식보다도 그 불행을 ‘우리’라는 공동체로 ‘함께’ 이겨 낸다는 사고가 너무도 따뜻하고 든든한 느낌을 준다.


■ Hakuna kirefu kisicho mwisho.
   긴 역경도 마침내는 끝나게 되어 있다.
■ Hapana msiba usioenda na mwenziwe.
   친구 없이 찾아오는 불행은 없다. 제 혼자 오는 불행은 없다.



'끝이 없을 정도로 큰 것/긴 것은 없다’, ‘끝이 없는 말은 없다’, ‘긴 역경도 마침내는 끝나게 되어 있다’ 등의 속담이다. 불행도 끝이 있으므로 불행한 상황에 처했다고 좌절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을 주는 속담들이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계속 지속되는 것은 없다. 사람은 인내심이 있다’라는 말이었다. 의미하는 방향은 알겠지만 아직도 정확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인내심이 있기 때문에 계속되는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인내심으로 인해 서서히 고통이 아닌 것이 되어 간다는(고통에 둔감해진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사람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는 정도까지의 고통은 없다는(어떤 고통도 인내심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다 보면 고통, 불행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불행은 일시적-기간의 길고 짧음의 상대적 문제는 있겠지만-인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어 그들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반대로 낙천적, 긍정적 사고관이 바탕이 되어 이런 속담이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


■ Mfa maji hukamata maji.
   물에 빠진 자는 물 속에서 뭐라도 잡으려 한다.
■ Buyu kali ni dawa mwana-mimba.
   지저분한 호리병이라도 임산부에게는 치료약이다.
■ Uwongo wa mganga ni nafuu ya mweke, ni mwele kupona.
   주술치료사의 거짓말은 아픈 사람에게는 구원이다. 그것은 병을 저주한다.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의 아프리카식 표현이다. ‘친구 없이 찾아오는 불행은 없다’. 불행한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생기는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위에서 먼저 접한 속담들을 생각하며 굳어져버린 사고 탓일까. 아니면 그보다도 이전에 갖게 된(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해 주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름대로 갖게 된 생각인데...) ‘아프리카인들은 낙천적이다’라는 생각 때문일까. 어쩌면 불행이 함께 데리고 오는 ‘친구’라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든다. 불행이 찾아 와도 그 친구인 행복을 함께 데리고 왔으므로 그 불행한 상황은 곧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닐까? 내가 아프리카인들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 Kama maji yamemwagita ndiyo yameshamwagika.
   물이 일단 엎질러지면, 그것은 진짜로 엎질러 진 것이다.
■ Yalitopita si ndwele, tugange yaliyomo na yajayo.
   지나가 버린 것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



우리 속담 식으로 하자면 ‘엎지른 물은 쓸어 담지 못 한다’ 정도의 표현들이 아닐까. 그런데 이 속담들이 왜 불행에 관련된 속담인지 처음에는 바로 와 닿지 않았다. 그다지 불행이라고 할 만한 상황의 설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과 표현은 비슷한데 그 속담에서 받은 느낌은 우리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엎질러진 물’과 같은 우리 속담에서 받아 왔던 느낌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일’, 그렇기에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워낙 익숙하게 접해 왔던 속담이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느낌은 ‘체념적’인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38번 ‘지나가 버린 것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라는 속담에서는 지나가 버린 일에 대한 체념이라기보다는 지나가 버린 것에 연연해하지 않으려는 모습, 어찌 보면 새로이 찾아 올 일에 대한 준비의 마음가짐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 ‘지나가 버린 것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니, 슬펐더라도 이제 그만 슬픔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살자’라는 충고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 속담에서 이런 느낌을 받아서인지, 우리 속담과 비슷한 표현인 다른 속담들(36번, 37번 속담)마저도 이런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35번 속담은 그 표면적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불운에 대하여 울지 않을 것이며, 내 눈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에서 눈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바로 와 닿지 않았다.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결과, 눈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운을 슬퍼한 나머지 펑펑 울거나 해서 눈이 붓거나 하는 식으로 눈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이 속담에서도, 지나갔거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그 상황에 빠져 슬퍼하거나 체념하지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닥친 일은 닥친 일,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생각을 매듭짓고 그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긍정적인 자세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면 이는 지나친 생각일까.


6.42 부모와 아이(Parent / children)


■ Baba wa kambo si dada.
   계부는 아버지가 아니다.
■ Ukigombana na mama asiye mama yako, ni kuchokoza midomo bure.
   계모와 말다툼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네 입술을 지치게 하는 일이다.



여기서는 부모와 계부모에 대한 속담이다. 주로 계부모와의 인간관계를 경시하는 경향의 속담들이다. 이 속담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속담의 기능에 의한 분류이다. 먼저 속담 그 자체의 의미로서 기능한다고 한다면 위의 속담들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특히 스와힐리 사회에서 계부 혹은 계모에 의한 인위적인 부모 자식의 관계보다 생태적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의 관계를 중요시 한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파악이 많은 것을 말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따라서 속담의 기능이 단순히 사실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위에 있거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경고문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염두에 두고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속담의 주요 기능은 공동체 생활, 특히 부족 내에서 태어나 부족 내에서 죽는 것이 그들의 인생이자 그들이 생각하는 또 하나의 축복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속담은 경고로서의 기능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아프리카 사회는 끊임없이 부족 간의 갈등이 지속되었고, 각종 풍토병에 의해 평균수명이 짧다. 따라서 자연히 성년식을 치르기 전의 미성년의 경우 계부나 계모의 밑에서 자라야 하는 경우도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아프리카 사회에 있어 한 인간, 특히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그 사회에 바치게 될 노동력과 일종의 군사력은 그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은 그 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즉 이 속담을 보면서 계부나 계모는 더욱 자신의 양자, 양녀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분명 그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크게 공헌했으리라 짐작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전과 같은 계모형 설화에 근간을 두는 이야기들이 수백 년간 계모나 계부들에게 일종의 권계가 되어 왔던 것처럼 말이다.


■ Damu nzito kuliko maji.
   피는 물보다 진하다.
■ Azaaye kinyago akinyonyesha.
   불구를 낳더라도, 젖을 먹인다.
■ Mama hawezi kumbana mtoto, hata akiwa na vilema.
   어머니는 아이를 저버리지 않는다. 비록 아이가 흠이 있다 하더라도.
■ Ndugu mabaya hushinda rafiki naye.
   못된 식구라도 좋은 친구보다는 낫다.
■ Ni nduguyo akuhusuye.
   너를 위해 근심하는 자는 네 형제다.
■ Vita vya ndugu haviamuliwi.
   형제 사이의 싸움은 화해시키지 못한다.
■ Wa kuume haukati wa kushoto.
   오른팔이 왼팔을 자르지는 않는다.



속담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유행어와는 다르다. 여기서 이 말을 문두에 시작하는 이유는 이 속담의 의미를 생각해 봄에 있어 지금 현재의 아프리카 사회, 특히 문명화된 아프리카 사회를 기반으로 생각하기보다 이 속담이 살아온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할 아프리카의 전통 사회, 특히 부족 사회를 중심으로 그 의미를 파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광활한 사바나 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족 공동체 그 자체였을 것이다. 먼저 주지컨대, 여기서의 속담들은 부족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윤리로서의 기능을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아프리카 부족사회의 근간을 이룩하는 것은 건강한 가정 그 자체임에 틀림없다. 여기의 속담의 대부분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라는 낯에 익은 속담이거나 어머니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표현인데, 이는 다름 아닌 피와 모정을 강조를 통한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견고한 부족사회의 유대성을 중요시 하는 그들의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Mjukuu kwetu tunda.
  손주는 우리에게 열매와 같다.
■ Mlimwengu ni mwanawe.
   인류는 아이들에게 달려있다.
■ Mtoto ni kito, mzigo mzito.
   아이는 보석과도 같지만, 무거운 짐과도 다름없다.
■ Ucheshi wa mtoto ni anga la nyumba.
   아이의 웃음은 그 집안의 빛과도 같다.
■ Mwana huwa, alivyolewa.
   아이는 키우는 대로 된다.(어떻게 키우는냐에 따라 아이는 커나간다.)
■ Mwana huua mzee, mzee haui mwana.



아이는 부모를 죽여도, 부모는 아이를 죽이지 못한다. 여기서의 속담들은 아이들의 중요성에 대한 속담들이다. 수업 시간 중에 누차 언급되었듯이 아이를 낳고 출산 하는 것은 그들이 세대와 시간을 넘어 살아가는 방법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그 어느 사회에서 중요시 되는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만약에 여기에서 단순히 아이들의 중요성만은 그들의 속담에서 읽고 간다면 너무나 허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좀더 나은 이해를 위하여 앞 단락에서 언급한 ‘시간을 넘는다’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사회는 순환론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문화를 지녔다. 작게는 하루하루의 반복과 크게는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단순 반복 속에서 그들의 사고는 순환론적 사고를 갖게 되었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단 순환론적 사고를 가진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의 관념이 부정적으로 파악된다는 점이며 따라서 중요시 되는 관념은 바로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가치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황금의 가치가 순환론적인 사고를 지녔던 중세 사회에서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을 넘어 변하지 않는 그 색채에 있었다는 점, 순환론적 사고를 가진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시간에 맞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연장자가 대접을 받는 다는 점 등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순환론적 사고는 아프리카 사회에 있어 인간에게도 적용되어 자신의 삶은 계속되는 순환의 한 고리이며, 자신의 뒤에 또다른 순환의 한 고리가 아이들에게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시간을 넘어 존재하는 소중한 가치를 갖고 싶어 했음을 엿볼 수 있다.


6.43 가난과 부(Poverty/Wealth)


■ Dau la mnyouge haliendi joshi, likienda joshi ni Mungu kupenda.
   가난한 사람의 보트는 절대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자라면, 당신은 바람을 “가지고 달아날” 수 있고 당신의 길은 더 쉬워 질 것이다.)
■ Dau la mnyonge haliendi joshi, likienda joshi ni Mungu kupenda.
   가난한 사람의 보트는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지 않는다. 만약 배가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항로를 바꾼다면, 그것은 신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의 토착보트는 빠르게 항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십중팔구 끝마무리가 안 되어서 물이 새거나 또 다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담은 대개 파산한 사람이 쓰거나, 의기소침하여 말할 때 쓰인다.
■ Anayelaumiwa ni yule mwenye bahati mbaya.
   불행한 친구(가난한 친구)는 항상 비난을 받는다.
■ Bendera hufuata upepo.
   깃발은 바람을 따라 흔들린다.(조류를 따라 수영하는 것이 더 쉽다.)
■ Umekuwa bendera kufuata upepo.
   당신은 바람을 따라가는 깃발 같다.(Bendera[깃발]는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을 의미하고, upepo[바람]는 부자나 강한 사람의 힘을 의미한다.)
■ Kamba hukatikia pembamba[pabovu].
   줄은 얇은 곳에서 끊어진다.[그것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 /불행한 사람은 항상 비난을 받는다.
■ Kuku wa mkata hatagi, na angetaga haangui, na akiangua halei, na akilea hutwaliwa na mwewe.
   가난한 사람의 암탉은 알을 낳지 못한다. 그리고 암탉이 알을 낳을 지라도 암탉은 결코 부화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부화시킬지라도, 암탉은 결코 병아리를 기를 수 없다. 그리고 암탉이 병아리를 기르면 매가 채어간다.
■ Kwa mnyonge hakuna haki.
   빈곤한 사람을 위한 권리는 없다.(가난한 사람은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않는다.)
■ Mashua ya maskini mieshazama mtoni.
   가난한 사람의 배는 강에서 이미 가라앉는다. 즉 가난한 사람은 어떠한 시도를 할지라도 초반부터 실패한다.
■ Maskini yoyote asemayo ni makosa.
   가난한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지 않다.
■ Dirishani upendo huruka, umaskini ucukapo kizingiti.
   가난이 문지방을 가로지를 때, 사랑은 창문 밖으로 날아간다.
■ Fedha ilicunja nguu, milima ikalala.
   돈은 언덕의 정상을 갈고, 언덕은 평지가 된다. 즉, 돈은 전능하다.
■ Uungwana haufai, bora ni ndarama. [ndirama]
   좋은 집안[또는 : 점잖은 태도]은 쓸모가 없고, 중요한 것은 돈이다./돈이 세계를 지배한다.
■ Yote utaweza, ukiwa na feza.
   만약 당신이 돈을 가지고 있다면, 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 Mali mengi adui wengi.
   많은 재산은 많은 적을 부른다.
■ Maskini hohehahe, hana mbele wala nyuma.
   매우 가난하고 빈한한 사람은 앞도 뒤도 없다.(즉, 그는 도움을 청할 곳이 아무데도 없다. : 그는 기다릴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다.)



위의 속담들을 살펴보면 아프리카인들이 돈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을 몹시 무시한다거나 가난한 사람이 하는 일은 뭐든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나 영어 속담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난한 사람의 배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침로를 바꾸면 그것은 오로지 신의 힘에 의해서라고 해석하는 속담이 재미있다. 이러한 가난과 부에 대한 속담들은 가난한 삶을 살아온 아프리카인들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속담을 통해 생활 속에서 가난을 경계하고 부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속담대로라면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황금만능주의에 빠지기 쉬울 것 같다.


6.43 자만과 겸손(Pride / Humility)


■ Hakuna kiumbe asiye na aibu.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 Asiye na kombo, ana doa.
   결점(결함)이 없는 사람은 없다.
■ Hakuna aliye mdogo wa mwisho kabisa.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작은 자는 아무도 없다. 즉, 더 가난하거나 더 비참한 어떤 사람이 항상 있다.
■ Kila mtu ana doa.
   모든 사람은 결점을 가지고 있다.
■ Kila mtu na kidonda chake.
   모든 사람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은 난처한 일들과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 Kisa kimoja hakimwachi mke.
   하나의 사실(fact)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하나의 사실 때문에 이혼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 Kosa moja haliachi mke.
   한 가지 실수가 아내와의 이혼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결점에 대한 속담들로 모든 사람은 다 결점을 가지고 있어서 완벽한 사람들이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속담들이다. 이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속담으로는 ‘옥에도 티가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등이 있다. 아프리카인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인간의 완전하지 못한 속성을 이해하고 그 것에 대한 속담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아내의 실수로 인한 이혼에 대하여 속담이 있는 것도 인상 깊다. 이 같은 사람의 완벽하지 못한 속성을 인정하는 모습에서 더욱 인간다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 Nyani haoni kundule, huliona la mwenziwe. / Nyani haoni kundule, huona la mwenziwe.
   우리는 남의 결점은 볼 수 있으나 자신의 결점은 보지 못한다.
■ Ajabu ya kondoo kucheka kioo.
   양이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웃는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다른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Ajabu ya ngamia kucheka nundu ya ng'ombe.
   낙타(큰 혹을 가짐)가 소의 등에 있는 혹(작은 혹)을 보고 비웃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어떤 사람은 자신과 같거나 심지어 더 작은 문제를 가진 사람을  비웃는다.
■ Asiyeona aibu zake, haifai aone aibu za wengine.
   자신의 결함(악함, 부끄러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동료의 결점을 알아차릴 수 없다.
■ Kuni juu ya uchaga zacheka zilizo motoni.
   저장고(장작을 모아 두는 곳)에 있는 (곧 불이 붙여질)장작이 불속에 있는 다른 장작을 비웃는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을 비웃는 것은 우스운 일(어리석은 일)이다.
■ Mtu haoni aibu yakwe, huona ya mwenziwe.
   사람은 자신의 결점은 보지 못하나, 그의 이웃의 결점은 본다.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하고 항상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을 일컫는 속담들이었다. 이러한 속담들을 통해서 아프리카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속담은 다음과 같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가마솥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고 비웃는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숯이 검정 나무란다.
제 똥 구린 줄 모른다.
제 똥구멍은 보지 못한다.
제 얼굴 더러운 줄 모르고 거울만 나무란다.
제 흉 열 가진 놈이 남의 흉 한 가지를 흉본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 흉본다.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인데 이것을 경계하는 속담들이 아프리카 속담에도 많으며, 우리나라의 속담과 비슷한 것도 많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6.44 신중함(Prudence)


■ Ajali haijajiri, heri mbele ufikiri.
   사건이 생기기 전에 좀더 주의 깊게 생각하라.
■ Asiyeangalia huishia :Ningalijua!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내가 그것을 알았었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 Boriti ya nyumba, ifupishie nyumbani.
   뛰기 전에 그 주변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
■ Dimbwi la maji ulijaribu kijiti.
   장대로 우물의 깊이를 측정하라'는 의미이다.
■ Enga kabla ya kujenga.
   행동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해라.
■ Halla !halla! mti na macho.
   주의해라! 주의해라! 나무 가지와 눈'. 일상생활속에서 나무 가지와 같이 위험할 수 있는 것들을 조심하고 유의하라는 의미로 파악된다.
■ Hasara humfika mwenye mabezo.
   손실은 부주의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 Hekima, salama.
   지혜는 부유함을 만든다.
■ Mambo maarifa, si nguvu.
   어떠한 것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느냐를 아는 것이 방법이지 힘이 방법이 아니다.
■ Mbele ya kuvuta tumbako, yafaa kukohoa.
   힘으로 행동하지 말고 주의를 가지고 행동해라.
■ Mtu halali karobu na mto, ujapo kuwa umekauka maji.
   사람은 아무리 강이 말랐다고 하여도 강가에서는 자서는 않된다.
■ Mtaratibu hushinda mwenye nguvu.
   주의 깊은 사람은 보통 성급한 사람보다는 더 많이 성취한다.
■ Palipozimika moto ogopa jivu.
   불이 꺼져갈 때 재를 조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