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샤(Falssha) 족은 아프리카의 시미엔(Simien) 산맥을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는 탁카즈(Takkazze) 강을, 그리고 남쪽으로 타나호수와 서쪽의 수단을 경계로 위치해 있다. 수세기 동안 이 이디오피아의 검은 유대인들은 아프리카의 지붕이라 불리는 건조하고 비탈진 불안정한 곳에 거주하고 있다.
팔라샤 족의 축제는 이디오피아인들과는 다르지만 유대인들과 유사한 태양력을 사용하였다. 일 년은 12달 30일이고 13달째는 5일 동안이다. 4년마다 윤년이 돌아오고 마지막 달은 6일 동안이다. 펜타토치에 설명된 축제들은 유대인들의 의해 행해졌으며 그 외에도 팔라샤 족 고유의 축제들이 있다.
이 축제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9번째 달의 마지막 날에 행해지는 식디(Sigd)라고 하는 축제이다. 이 축제는 에제라(Ezra)와 네헤미아(Nehemiah)가 이끄는 추방자들이 바빌로니아(Babylonia)에서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행해진다. 이날 사제들은 성서를 들고 높은 언덕의 정상에 원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등에 돌을 지고 언덕을 오른다. 정상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들고 온 죄로 비유되는 것들을 던져 버린다. 다른 관습 중의 하나는 새들에게 곡식 알갱이를 먹이는데, 알갱이들은 고인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습은 윰 키푸르(Yom Kippur) 라 불리는 속죄의 날에 행해진다.
팔라샤 족에게 있어서 돌은 중요하고 상징적인 존재이다. 어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각각의 적대자들은 돌을 집어 등에 놓는다. 그러고 나서 그 돌을 던져버리고 서로에게 키스를 하면 싸움은 해결된다.
팔라샤 족은 원뿔형의 초가 지붕으로 된 둥근 오두막들이 지어진 작은 마을에 산다. 이 마을들은 주로 언덕의 정상과 강 근처에 위치해 있다. 이 외에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오두막들이 있는데, 이곳은 저주의 또는 피의 오두막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생리 기간인 7일 동안 일도 하지 않고 감금되어 있어야 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여성들은 몸을 씻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이전에는 위에서 언급한 저주의 오두막 뿐만 아니라, 각 마을마다 출산을 위한 오두막이 있었다. 아들을 출생한 후 8일이 되는 날-포경 수술을 하는 시점-산모는 아이를 출산한 저주의 오두막을 나와 출산을 위한 오두막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내아이를 출산하면 40일 여자아이를 출산하면 80일 동안 산모는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옷을 세탁한다. 그리고 출산 장소로 쓰인 오두막은 불에 태워 없앤다.
청결하기로 소문난 팔라샤 족에게는 베를 짜는 솜씨가 좋은 직공, 도공, 대장장이들이 경제 생활의 주류를 이룬다. 이디오피아에 있는 다른 대장장이들처럼, 그들의 예술을 초자연적인 힘과 연관시키려는 믿음 때문에 그들은 멸시를 받기도 했다. 그들은 대장장이와 현인을 의미하는 타비브(Tabib)로 불리어졌다. 그러나 이 용어는 또한 마녀를 경멸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밤에는 하이에나로 변하여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졌다.
팔라샤 족은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지만 농지가 부족하여 궁핍한 생활을 한다. 대부분의 이디오피아인들 처럼 그들은 농지를 소유하지 않는다.
좋은 농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최근에 이들 중 일부는 수단과 이디오피아의 국경지대인 세티트-휴메라(Setit-Humera)로 이동하였다. 그곳의 토양은 비료가 필요 없는 검은 점토로 구성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면화, 참깨, 수수 등이 생산된다. 전통적인 팔라샤족의 홈랜드와 세티트-휴메라 지역의 차이는 엄청나다. 가파른 언덕과 이어진 암석으로 덮인 들판은 수평선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평지가 되었다. 산악지역에 내리는 소나기 대신 덥고 건조한 날씨와 거세게 퍼붓는 빗줄기로 인해 팔라샤 족은 그곳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팔라샤 족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살아갈 지는 의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선교 활동과 유대인들로 인해 그들의 터전은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다. 팔라ㅑ 족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알려진 이스라엘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원하고 있다.
100년 이상을 팔라샤 족들은 예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의식과 관습들을 과감히 버리도록 결정하였다. 팔라샤 족들에게 미치는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압력은 인구를 19세기에 250,000명에서 현재는 20,000명이 채 안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팔라샤 복지원은 의료와 교육 시설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세계 도처의 유대인들이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또한 노력하고 있다.
팔라샤 족의 축제는 이디오피아인들과는 다르지만 유대인들과 유사한 태양력을 사용하였다. 일 년은 12달 30일이고 13달째는 5일 동안이다. 4년마다 윤년이 돌아오고 마지막 달은 6일 동안이다. 펜타토치에 설명된 축제들은 유대인들의 의해 행해졌으며 그 외에도 팔라샤 족 고유의 축제들이 있다.
이 축제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9번째 달의 마지막 날에 행해지는 식디(Sigd)라고 하는 축제이다. 이 축제는 에제라(Ezra)와 네헤미아(Nehemiah)가 이끄는 추방자들이 바빌로니아(Babylonia)에서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행해진다. 이날 사제들은 성서를 들고 높은 언덕의 정상에 원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등에 돌을 지고 언덕을 오른다. 정상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들고 온 죄로 비유되는 것들을 던져 버린다. 다른 관습 중의 하나는 새들에게 곡식 알갱이를 먹이는데, 알갱이들은 고인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습은 윰 키푸르(Yom Kippur) 라 불리는 속죄의 날에 행해진다.
팔라샤 족에게 있어서 돌은 중요하고 상징적인 존재이다. 어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각각의 적대자들은 돌을 집어 등에 놓는다. 그러고 나서 그 돌을 던져버리고 서로에게 키스를 하면 싸움은 해결된다.
팔라샤 족은 원뿔형의 초가 지붕으로 된 둥근 오두막들이 지어진 작은 마을에 산다. 이 마을들은 주로 언덕의 정상과 강 근처에 위치해 있다. 이 외에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오두막들이 있는데, 이곳은 저주의 또는 피의 오두막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생리 기간인 7일 동안 일도 하지 않고 감금되어 있어야 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여성들은 몸을 씻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이전에는 위에서 언급한 저주의 오두막 뿐만 아니라, 각 마을마다 출산을 위한 오두막이 있었다. 아들을 출생한 후 8일이 되는 날-포경 수술을 하는 시점-산모는 아이를 출산한 저주의 오두막을 나와 출산을 위한 오두막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내아이를 출산하면 40일 여자아이를 출산하면 80일 동안 산모는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옷을 세탁한다. 그리고 출산 장소로 쓰인 오두막은 불에 태워 없앤다.
청결하기로 소문난 팔라샤 족에게는 베를 짜는 솜씨가 좋은 직공, 도공, 대장장이들이 경제 생활의 주류를 이룬다. 이디오피아에 있는 다른 대장장이들처럼, 그들의 예술을 초자연적인 힘과 연관시키려는 믿음 때문에 그들은 멸시를 받기도 했다. 그들은 대장장이와 현인을 의미하는 타비브(Tabib)로 불리어졌다. 그러나 이 용어는 또한 마녀를 경멸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밤에는 하이에나로 변하여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졌다.
팔라샤 족은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지만 농지가 부족하여 궁핍한 생활을 한다. 대부분의 이디오피아인들 처럼 그들은 농지를 소유하지 않는다.
좋은 농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최근에 이들 중 일부는 수단과 이디오피아의 국경지대인 세티트-휴메라(Setit-Humera)로 이동하였다. 그곳의 토양은 비료가 필요 없는 검은 점토로 구성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면화, 참깨, 수수 등이 생산된다. 전통적인 팔라샤족의 홈랜드와 세티트-휴메라 지역의 차이는 엄청나다. 가파른 언덕과 이어진 암석으로 덮인 들판은 수평선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평지가 되었다. 산악지역에 내리는 소나기 대신 덥고 건조한 날씨와 거세게 퍼붓는 빗줄기로 인해 팔라샤 족은 그곳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팔라샤 족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살아갈 지는 의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선교 활동과 유대인들로 인해 그들의 터전은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다. 팔라ㅑ 족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알려진 이스라엘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원하고 있다.
100년 이상을 팔라샤 족들은 예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의식과 관습들을 과감히 버리도록 결정하였다. 팔라샤 족들에게 미치는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압력은 인구를 19세기에 250,000명에서 현재는 20,000명이 채 안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팔라샤 복지원은 의료와 교육 시설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세계 도처의 유대인들이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또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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