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서상현) 아프리카 이야기

레소토

africa club 2003. 1. 30. 18:16
아프리카 남부의 독립왕국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중동부 지역에 둘러싸인 고립국으로 수도는 마세루이며, 남북 최장 길이 240km, 동서 최대 너비 약 240km이다. 면적 30,355㎢, 인구
2,008,000(1997).

자연환경

레소토는 산악국으로 전 면적의 2/3 가량이 산악지대(해발 3,000m 이상)인데, 북동부와 동부의 드라켄즈버그 산맥은 더 높다.  북동쪽 국경에 자리한 타바나은틀레니아나 산(3,482m)은 레소토의 최고봉이면서 아프리카 남부에서도 가장 높다.  서쪽으로 갈수록 점차적으로 지형이 낮아져서 언덕지대(해발 1,800∼2,100m)가 나타나며  서쪽으로 더 들어가면 비옥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저지대(해발 1,500∼1,800m)로 칼레돈 강을 따라 좁고(너비 40km) 긴 회랑지대를 이룬다. 중부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있는 말로티 산맥은  동쪽으로 흐르는 투겔라 강과 서쪽으로 흐르는 오렌지 강의 발원지인데, 이 두 강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큰 강으로 손꼽힌다.

대부분 온화한 아열대기후로 여름 평균기온 25℃, 겨울 평균기온 15℃이나 북동부 고지대는 기온차가 매우 크고 기온이 자주 영하로 내려간다. 한꺼번에 억수 같은 뇌우(雷雨)가 쏟아질 때가 많으며, 연평균강우량은 약 711㎜인데 동부가 가장 많아 1,016㎜이고 서쪽으로  가면서 줄어들어 762㎜ 정도에 이른다. 말로티 산맥은  겨울에 대개 산정이 하얗게 눈으로  덮인다. 기후조건이 목초지에 매우 적합하며 산비탈의 아열대 목초지는 소와 양을 방목하기에  최적지이다. 양은 레소토의 주요축산물인 양모와 모헤어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올리브·마늘·버드나무·덤불나무·알로에뿐이며, 동물도 작은 영양, 산토끼, 몇몇 파충류 등으로 제한되어 있다. 레소토의 가장 중요한 천연 광물자원은  다이아몬드로 그 광산이 대부분 북동부에 있다. 철광석·석고·석영 등도 있으나 매장량이 극히 적다. 레소토의 급류  하천들은 수력발전 개발 가능성이 있으며, 고지 하천 개발계획  및 옥스보우 계획이 완공되면 국내의 전력문제를 거의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국민

1970년대말에 레소토의 인구증가율은 2.1∼2.4%로, 이는  당시 인구 1,000명당 출생  36∼37명, 사망 13∼14명을 반영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넘어가고 있어 출생률이 낮아지고 있다.  평균 인구밀도는 약 48명/㎢으로 고지대는 1/3 가량 더 낮고, 저지대는 그보다 3배 높다. 1970년 통계로는 인구의 절반 정도가 국토의 1/4에 살고 있는데 도시 인구는 전체의  4%밖에 안 된다. 레소토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마세루는 1970년대 중반 인구가 5만 2,127명으로 집계되었다.

언어에 따른 인종 구성을 보면 반투어를 쓰는 소토족이 대부분이다(85%). 소토족 가운데 최대 집단은 퀘나족이며 퀘나족 내에는 몰리벨리족·모나헹족·흘라콰나족·크사크사족·포켕족 등이 있다. 나머지 15%는  나탈(북쪽)응구니족·말라페족·케이프(남쪽)응구니(템부)족으로 이루어진다. 백인(보어인과  영국인)·아시아인·유색인종은 극소수이다.  남부 소토어와 영어가 2대 공용어이며, 아프리칸스어·줄루어·코사어·프랑스어 등도 쓰인다. 로마 가톨릭교도가 인구의 38.7%로 가장 많고 그밖에 레소토  복음파 교도 24.3%, 영국 성공회파 교도 10.4%, 그밖에 그리스도교도 8.4%, 부족신앙이 18.2%를 차지한다.

경제

레소토의 경제는 공기업과 사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개발도상의  혼합경제형태이다. 농업과 다이아몬드 생산 및 수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송금, 그밖에 유럽  경제공동체(EEC) 회원국들과 미국을 비롯해 여러  국제단체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1980년 국민총생산(GNP)은 5억 2,000만  달러였으며, 1인당 GNP는  390달러로 인구증가보다 빠른 성장률을 보였다.

농업이 GNP의 거의 1/3을 차지하며, 전체 노동인구의 4/5 가량이 이에  종사한다. 명목상으로는 왕이 전국민의 위탁을 받아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족장들이 왕을 대신하여  개인이나 가구별로 경작지를 분배하도록 되어 있으나, 1979년 '토지보유법' 제정으로 농민들은 왕으로부터 99년 동안 토지를 빌릴 수 있게 되었다.  농업생산성이 낮아 주산물인 옥수수·수수·밀 등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수입해야  할 실정이다. 수출품으로는 양모와  모헤어 등이 있다.

다이아몬드 생산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테베르스통합광산회사가 장악하고 있으며, 이 회사는 수출할 때 10%의 세금을 레소토 정부에 지불한다.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남아프리카의 광산 및 공장에 가서 일하고 있으며, 레소토 개발공사가 국내 제조업을 부추기고 있지만 제조업은 여전히 GNP의 1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레소토의 대외무역은 거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독점하고 있다. 레소토는 남아프리카 관세동맹에 속해 있으며, 1975년과 1979년의 로메 협정에 의해 EEC와 관련을 맺고 있다.

정치·사회

레소토는 입헌군주국이다. 1970년에 헌법이 일시 중지되고  의회가 해산되었으나 1973년 임시 국민의회를 결성하여 새로이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 세습군주는 국가원수이지만 정치실권은 없으며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행정권 및 사법권을  행사한다. 93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임시 국민의회가 국정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최고 사법기관은 상소법원(上訴法院)으로, 이는 제한적으로 그 상소심 관할권을 행사한다. 레소토에는 군대가 없지만, 경찰과 비정규군을 갖추고 있다.

보건위생 상태가 나빠 평균수명이 50세  정도이고 유아사망률은 1,000명당 100명이  넘는다. 보건시설은 도시지역에만 집중되어 있고  의료진이 매우 부족하며,  공중위생시설도 모자라 국민 대다수가 식수(食水)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말라리아·주혈흡충병(住血吸蟲病)을 비롯한 아프리카 다른 지역에서는 흔한 여러  가지 풍토병에 시달리지 않는 반면, 결핵·호흡기질환·성병·만성류머티즘·위장병 등의 발병률이 높다. 1인당  하루 약 2,100cal의 열량 섭취로 영양실조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남자 80%, 여자 60%가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며, 이것은 아프리카에서 최고 수준이다.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7년 과정의 초등교육은 무료이다. 학령 아동 대부분이 초등학교에 취학하지만 중등학교에 들어가는 수는 1/10뿐이다. 직업 및 기술 교육도 받을 수 있으며 로마에 레소토대학교가 있다.

문화

교육제도의 확대로 문학활동이 크게 활기를 띠고 있으며 구전되거나 글로 남겨진 문헌을 토대로 민속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벽장식·목공예·도자기·직물·바구니 등과 같은 소박한 공예품 등이 발달했으며 합창단 또한 눈길을 끈다.

역사

산족(부시먼)이 이 지역에 처음 들어와 살았으나 18세기에 응구니족(줄루어를 쓰는 부족)이 이들을 쫓아내고 들어왔다. 18세기말 소토어를 쓰는 여러 부족이  이 지역에 자리잡고 19세기초까지 응구니족과 평화롭게 살았으나, 그무렵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쪽에 제국을 갖고 있던 줄루족 왕 샤카가 오늘날 레소토  영토에 살던 주민을 공격하자 젊은 왕 음쉐쉐(모셰셰·모셰시라고도 함) 1세가 부족을 결속하여 줄루족을 물리쳤다.

그후 음쉐쉐는 죽을 때(1870)까지 바수토(소토족)의 절대적 지도자였다. 그는 바수토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보어족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자 1843년 영국에 보호를 요청했고 1868년 레소토는 영국 영토가 되었다. 그가 죽자 레소토는 케이프 식민지로 합병되었는데(1871), 케이프 식민지 행정이 바수토의 여러 전통을 무시하고 1880년 정부가 바수토의 무장해제를 시도하자 이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1884년 레소토는 케이프 식민지에서 떨어져나와 영국 직할식민지가 되었으며, 바수토 족장들은 전통과 관습에 따라 부족을 다스릴 수 있었다. 영국의 지배 아래 자치정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초기 상임판무관들과 최고 족장 레로톨리의 힘이 컸다. 1905년 레로톨리가 죽자, 국가위원회는 영국의 동의를 얻어 그의 아들 레치에를 최고 족장으로 뽑았다.

1909년 남아프리카의 4개 식민지가 남아프리카 연방으로 합해졌지만 레소토는 계속  영국이 다스렸다. 남아프리카는 레소토가 결국 합병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1965년 선거에서 레아부아 조너선 족장이 이끄는 레소토  국민당이 승리한 뒤 1966년 10월 4일  레소토는 영연방 내의 독립왕국이 되었다. 초대 국가원수(국왕)는 최고  족장 모틀로텔리(모셰셰 2세)이며 조너선 족장이 초대 총리가 되었다. 모셰셰는 헌법이 정한 것 이상의 권한을 요구했으며 그 때문에 체포되었다가 곧 권한의 한계를 받아들여  풀려났다. 선거에서 바수톨란드 의회당(BCP)이 바수톨란드 국민당에 이기자 1970년 조너선은 곧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헌법시행을 중지시켰으며 모셰셰를 체포했다. 모셰셰는 조너선과 화해한 뒤 국가원수직을 다시 맡게 되었고 1973년 비상사태령이 해제되었다. 1975년 BCP의 몇몇 의원들은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하여 반역죄로 재판을 받았다.

1970년대 레소토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관계와 아프리카 통일기구의 정치적 압력 사이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었으며, 1980년대초 BCP 지하조직인  레소토 해방군의 테러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군대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한국과의 관계

1966년 12월 외교관계가 수립되었으나 1983년 6월 조너선 총리의 평양방문 직후 관계가 정지되었다. 북한과의 수교는 1980년 7월에 이루어졌고 1983년 8월 현지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레소토는 1986년 2월 남한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시켰으며 같은 해 9월 북한 외교관 3명이 외교관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대사관을 폐쇄시켰다. 한국정부는 수교 이후 1978년까지 40만 달러의 현금원조와 20만 달러에 달하는 물자원조를 제공한 바 있다. 1991년 현재의 대한수출은 8만 달러, 수입은 40만 달러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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