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서상현) 아프리카 이야기

마다가스카르

africa club 2003. 1. 30. 17:59
아프리카 대륙 남동 해안 앞바다에 있는 인도양 남서부의 섬나라.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마다가스카르 섬과 주변의 작은 섬들을 모두 포함하며, 남위 12∼26°, 동경 43∼51°에 위치하므로 대부분 열대지역에 속한다(남서쪽 끝에서 북동쪽 끝까지의 길이는 1,570km이고 동서의 최대너비는 571km임). 수도는 안타나나리보이다. 마다가스카르 섬과 아프리카 해안 사이에 너비 800km의 모잠비크 해협이 있으며, 이 섬의 해안선길이는 3,990km이다. 면적 587,041㎢, 인구 14,062,000(1997).

자연환경
마다가스카르는 지형학상 남북으로 평행하는 중앙고원지대, 동쪽의 좁은 해안지대, 서쪽의 낮은 고원과 평야지대의 세 지대로 대별된다. 해발 800∼1,400m의 중앙고원은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하며, 좁고 길게 펼쳐진 동해안에서 갑자기 높아졌다가, 서해안의 넓은 평원을 향해 서서히 낮아진다.
중앙고원은 북에서 남으로 화산봉(2,876m)이 있는 이 섬의 최고봉인 차라타나나 산괴, 안카라트라 산괴, 안드링기트라 산괴 등 3대 산괴(山塊)가 이어져 이루어진다.
이 고원의 가파른 동쪽 사면은 짧은 급류 하천(만드라레·마나나라)으로 물을 흘려보내며, 경사가 보다 완만한 서쪽 사면은 더 길고 큰 강(오닐라히·망고키)이 가로지르면서 풍부하게 쌓인 침전물을 광활한 평원지대로 흘려보내므로 이곳에서는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장 집약적인 농경이 이루어진다.
동해안은 거의 일직선이며, 산호해안 뒤로 거의 끊이지 않고 줄줄이 이어진 초호(礁湖)들이 판갈라네스 운하에 의해 연결되어 내륙 수로로 이용된다. 서부 지역은 모잠비크 해협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구릉들이 잇달아 나타난다. 기후는 열대(동해안)에서 온대(중앙고원), 매우 건조한 기후(남부)에서 덥고 습한 기후(서해안)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해안(평균기온 21∼27℃)이 고원지대(13∼19℃)보다 더 덥고 습하다.
연간강우량은 북서부 2,100㎜에서 서부 940㎜, 남서부 355㎜이며, 인도양 남서부의 사이클론(열대성 저기압)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폭우와 홍수가 찾아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간다. 원래 상록·낙엽수림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나무를 베어내 태우는 농경법으로 숲이 많이 파괴되어 현재는 섬 대부분이 사바나-스텝 식생을 보이며, 낙엽·상록수의 작은 숲 몇 군데와 해안에 맹그로브 습지가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섬이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약 40종의 여우원숭이가 살아남아 독특한 형태로 진화해가고 있다.
채산성이 있는 니켈·보크사이트·석탄 광산이 내륙 수송망의 미비로 인해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다. 탄화수소가 서부의 카루계(系) 퇴적물에 상당량 함유되어 있고, 남부 파라도파이 근처에 우라늄과 토륨도 매장되어 있다.

국민
< 마다가스카르의 인구는 거의 전적으로 말레이인도네시아계의 18∼20개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메리나·베츠미사라카·베칠레오의 3개 종족이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1960년 독립과 함께 프랑스인이 떠나고 1970년대에 코모로인도 본국으로 돌아가자 1980년대에는 외국인이라고는 인도인과 중국인만이 일부 남게 되었다. 주민의 절반 가량이 전통적으로 애니미즘을 숭상하며, 나머지 반은 그리스도교(구교와 신교가 거의 같음)를 믿지만 이슬람교를 따르는 사람도 있다.
모든 종족이 마다가스카르에 속하는 여러 방언을 사용하는데 그중 공식 방언은 메리나어이고, 프랑스어 또한 공용어로 쓰인다.
정부는 비교적 높은 인구증가율이 당분간은 경제에 압박을 가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가임 여성인구의 출산율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15세 이하가 인구의 2/5를 넘는다. 인구의 거의 4/5가 농촌지역에 살고 있다. 전체 인구밀도는 ㎢당 18명으로 비교적 낮지만 국토의 5∼13%만 경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농촌 인구밀도는 그보다 더 높다. 인구이동은 주로 농촌간에 이루어지는데 특히 인구가 조밀한 고원지대에서 희박한 서부 해안지대로 이동한다. 1974년초 정부는 인구과밀지역의 인구부담을 덜기 위해 '포콜로나'(fokolona)라는 촌락 공동체 단위로 인구를 재분산시키기 시작했다.

경제
마다가스카르는 개발도상국으로 오랫동안 지켜온 시장경제에 대해 최근 중앙계획경제를 실시하고 있다. 농업이 주요산업이며 주요상품으로는 주곡작물인 쌀과 카사바, 그리고 여러 가지 환금 수출용 작물이 있는데, 특히 커피·정향나무·바닐라가 중요하다.
그러나 농산물 생산고가 인구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주요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980년대 중반부터 점차 줄어들어 현재 세계 최하위권에 속한다.
1차산업 부문(농업·임업·수렵·어업)이 GNP의 약 2/5를 차지한다. 주곡작물인 쌀이 국내 농산물 총액의 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지만, 여전히 상업농보다 자급농에 의존하고 있다.
전체 노동인구의 3/4이 농업에 종사하는데, 농민들이 정부의 집단농경정책에 반발하고 있어 전국 농업생산 계획이 점차 실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커피를 주로 수출하며, 바닐라와 정향나무의 최대 생산국으로 알려져 있다. 정향나무와 바닐라 생산량은 해마다 큰 폭으로 변한다. 가장 중요한 가축은 소이며, 염소·돼지·양도 사육한다. 정부는 동물을 종교제물로 신성시하는 관습 때문에 축산현대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토의 거의 1/4이 삼림지대이며 정부에서 조림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한편 어업은 1973년에 영해가 200해리로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광업은 GNP에서 아주 미미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주요 외화 수입원이며, 주요광물은 크롬 철광과 흑연으로 1970년대말에 들어 그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또한 이 지역은 세계에서 유일한 금운모(金雲母) 생산국이기도 하다.
제조업은 저개발 단계로 GNP의 1/10에 불과하다. 가공식품 및 직물 생산이 주종을 이루며, 목재·비료·가죽 등을 생산하여 국내시장에 내다 판다. 국내 전력은 수입 연료와 수력발전으로 절반씩 생산해낸다.
정부에서 경제의 약 2/3를 통제한다. 1978년 채택된 '사회주의 기업헌장'에서는 국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회사 경영에 노동자가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노동조합은 원래 프랑스 연맹들의 지부 조직이었으며 지금은 대부분 국제 노동조합들과 연결되어 있다.
소득세와 수익세만으로 정부적자를 감소시킬 수 없어 이를 메우기 위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경제공동체(EEC) 회원국으로부터 많은 차관을 들여오고 있다. 정부 지출은 주로 교육·국방·보건 부문에 할당된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프랑스이며, 무역수지는 1980년대초 내내 적자를 기록했다.

정치·사회
마다가스카르는 '혁명수호를 위한 국민전선'(National Front for the Defense of the Revolution/FNDR)이 통치하는 일당제(一黨制) 사회주의공화국이다. 1975년 헌법은 임기 7년의 대통령제를 채택했으며, 대통령이 최고정책결정기구인 '최고혁명위원회'의 위원장인 동시에 그 위원들의 지명권을 갖는다.
또한 대통령이 임명한 수상이 내각을 이끌며, 입법권은 5년 임기로 국민이 직접 선출한 137명으로 구성되는 '국가인민회의'에 있다. 정부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되어 있으며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데 헌법고등법원과 대법원이 사법부를 지휘·총괄한다.
보건·위생 상태는 50세라는 낮은 평균 기대수명과 높은 유아사망률에서 알 수 있듯이 형편없다. 보건 시설이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국민 9,800명당 의사 1명꼴로 의료진이 매우 부족하다.
말라리아가 섬 전역에 퍼져 있으며, 대표적 질병은 나병·결핵이고 기생충증이나 성병에 걸린 사람도 많다. 주택 보급은 적절한 수준이었으나 농촌 및 도시 지역 모두 갈수록 과밀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문자 해독률이 비교적 낮아 전체적으로 33% 수준이며 여성의 경우에는 훨씬 더 낮다. 의무교육인 6년과정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해당 아동의 90% 이상이지만 중등학교 진학률은 12%에 불과하다. 국내 유일의 대학인 마다가스카르대학교는 6개 지역에 분교를 두고 있다.
정부에서는 통신매체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마다가스카르어와 프랑스어로 발행되는 신문들을 검열한다.

문화
문화는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아랍과 이슬람의 영향도 다소 받았다. 많은 전통공예와 마다가스카르 특유의 음악 및 춤을 포함한 민속예술이 발달했다. 마다가스카르어에는 속담이 매우 풍부하며, 오늘날에는 현대논문에서 시·전설·역사·학술서에 이르기까지 이 언어로 씌어진 문학작품이 매우 많다.

역사
마다가스카르인은 말레이인도네시아인과 아프리카아랍인의 혼혈 인종으로, 인도네시아 사람이 기원후 1,000년의 기간 동안 아프리카 해안을 거쳐 이곳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1500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디오고 디아스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섬을 찾아왔으며, 17세기말과 18세기초에는 이곳에 해적이 많이 들끓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여러 왕국은 무기와 노예를 거래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비록 좁은 지역들에 국한되긴 했으나 17세기초까지 안테모로족·안테사카족·베칠레오족·메리나족이 세운 나라들이 주요왕국으로 활동했다. 안드리아남포이니메리나 대왕(1787∼1810)이 메리나족을 통합하여 막강한 왕국으로 만들었다.
그의 아들인 라다마 1세(1810∼28)는 모리셔스에서 영국군의 도움을 받아 마다가스카르의 상당 부분을 통치하게 되었다. 1860년대초 메리나족을 다스리던 라다마 2세는 유럽인들에게 왕국을 개방하고 프랑스 무역회사에 큰 권한을 주는 특허 계약을 맺었다. 1868년 메리나 왕국과 프랑스 사이에 맺은 조약으로 프랑스에서 북서부 해안을 통치하게 되었다.
1890년 영국이 마다가스카르를 프랑스 보호령으로 인정했지만 프랑스군이 메리나 왕국 군대를 패배시키고 실제 통치권을 얻은 것은 이보다 뒤인 1895년의 일이었다. J. S. 갈리에니 장군은 마다가스카르 최초의 총독으로 노예제를 없앴으며, 1897년 메리나족 여왕을 추방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 의회에 대의원을 보내는 프랑스 공화국의 해외영토가 되었다. 1958년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의 자치를 허용, 그해 10월 14일 말라가시 자치공화국이 태어났다
. 필리베르트 치라나나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1960년 말라가시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1970년대에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프랑스와 교류를 끊고 경제의 상당 부분을 국유화했다.
안정기반을 가진 메리나족 중산계층은 이런 정책에 반대했지만 좌익 정당인 '혁명수호를 위한 국민전선'은 1977년 정부 통제권을 손에 넣었다. 그뒤 정치상황은 안정을 되찾았으나 계속되는 사회불안과 심각한 경제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는 1962년 6월에 마다가스카르와 외교관계수립에 합의하고, 그해 8월 주 프랑스 대사가 마다가스카르 대사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 나라에 친공성향의 군정이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와 관계가 멀어지는 대신 북한과 가까워졌으며, 1972년 11월 외교관계수립에 합의하고 1976년 8월에는 이곳에 북한의 상주공관이 개설되었다. 그후 마다가스카르는 1976,
1978년에 라치라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등 지금까지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1974년과 1978년에 각각 물자원조와 군사원조를 제공한 바 있으며, 1980년대에 들어서는 군사 및 미곡생산 전문기술인력을 파견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과 마다가스카르의 교역은 그리 활발하지 않아 1991년 양국간 교역량은 대한수입 282만 달러, 대한수출 31만 달러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