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서상현) 아프리카 이야기

남부 아프리카 (Southern Africa)

africa club 2003. 1. 30. 17:56
남부아프리카(Southern Africa)

이 지역은 앙골라,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나미비아, 보츠와나, 스와질랜드, 레소토, 그리고 남아공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몇몇 학자들은 인도양 지역 국가들을 포함하기도 한다. 앙골라와 모잠비크(이상 포르투갈), 나미비아(남아공)를 제외하고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90년대 초까지 이 지역에서의 가장 큰 두가지 문제는 소수 백인통치문제와 인종차별의 문제였다. 현재 이 문제에 있어서 나미비아가 1990년에 독립하였고 인종차별도 1994년 남아공에서의 다인종선거로 철폐되었다. 한편, 남부아프리카는 풍부한 지하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특히, 크롬, 구리,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등이 풍부하며 세계 경제의 중요한 지역이다.
남아공의 흑인 정부는 그간 6년간의 집권결과를 바탕으로 금후에도 급격한 정책보다는 온건한 개혁노선을 추구하면서 화합과 국가재건 정책을 펴나갔다. 한편 1980년대 후반 이래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던 남아공 경제는 1994년 5월 평화적 선거에 의한 남아공 최초의 흑인다수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안정하에 경제회복 국면에 진입하면서 지난 3년간 연평균 3%의 실질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현재 남아공 경제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건설, 설비투자 및 농업생산이 호조를 보이고 있어 향후 2-3년간 견실한 성장이 예상된다. 대외적으로 남아공은 비동맹 의장국으로서 1998년 8월 비동맹 정상회의를 남아공에서 개최하였으며, OAU 및 남부아프리카 개발공동체(Southern African Development Community : SADC)등 지역 협력기구에서의 주도적 역할로 역내정치안정과 경제성장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 1997년 12월 음베키(Thabo Mbeki) 남아공 부통령이 만델라 대통령 후임으로 집권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의 의장으로 피선되었다. 1999년 6월 두 번째 전인종선거에서 ANC의 타보 음베키가 두 번째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짐바브웨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남아공 다음으로 산업화의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는 국가로, 인구 약 1,200만명, 96년도 GDP 약 73억미불, 1인당 GDP 약 610미불이며, 전체인구의 약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연간 대외교역규모는 96년기준 수출 25.2억미불, 수입 22.3억미불이다. 짐바브웨는 90년대 냉전종식이후 경제통제를 완화하고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개혁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으며, 토착흑인의 경제력 향상과 민간부문의 개발촉진 및 경제사회 변혁을 위한 정부구조개편을 골자로 하는 2020년까지의 원대한 장기국가개발계획 (Vision 2020)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재향군인들에 대한 3억5천만달러 상당의 위로금을 통화발행을 통해 지급하고, 백인 상업농장에 대한 강제수용계획을 발표(97.11)함으로써 짐바브웨 경제에 대한 대외신인도가 저하되고, 이로 인한 짐바브웨달러화의 30%이상 평가절하 및 연 30%대의 고 인플레가 짐바브웨 경제에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2002년 3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는 무가베대통령의 4선 연임으로 끝났으나 이 선거가 부정과 폭력으로 얼룩졌다 하여 미국과 영연방 등 서방 국가들이 짐바브웨에 대한 경제제재조치와 영연방 자격의 1년간 정지 등으로 인해 짐바브웨 경제는 더욱 침체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앙골라는 1975년 11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후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과 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합(UNITA)이 미․소의 대리전 성격의 내전을 시작하였으며, 동·서 냉전종식 이후에도 국내 정치세력간 권력쟁탈 양상으로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1994년 앙골라 정부와 UNITA간 루사카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연합정부 구성 등 평화협정 이행이 어느 정도 진척되어 가는 듯 했으나, 최근 UNITA측의 평화협정 이행 비협조 및 지연전술로 교착상태에 봉착하였다. 1998년 8월 앙골라 정부는 루사카 평화협정 불이행을 이유로 연합정부내의 UNITA 세력을 축출하고, UNITA에 대한 강경대응을 천명하였으며, 1998년 12월 앙골라 정부군과 UNITA 반군간에 중동부지역 전략요충지인 Kuito 및 Huambo지역(Bie지방소재)에서 전투가 재개되어 10만 여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에 유엔안보리는 루사카 협정상의 의무를 계속 불이행 해온 UNITA에 현 평화과정 이행 교착상태의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고 즉각적인 전투중단을 촉구하였다.
앙골라에서는 1975년 독립 이후, 쿠바, 구소련 등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남아공,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미국의 지원을 받는 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합(Uniao Nacional para a Independencia de Angola : UNITA) 반군간에 내전이 계속되어 왔으나, 지난 1994년 유엔 중재하에 정부군과 반군간에 루사카 평화협정(Lusaka Protocol)이 체결되었고, 1997년 4월에는 양측간 통합정부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UNITA 반군측은 병력동원 해제 및 평화협정을 이행치 않고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다가, 국제사회의 압력에 따라 1998년 3월 6일 병력동원 해제를 선언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앙골라 정부도 UNITA에 합법정당 지위를 부여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평화과정에 실질적인 진전을 보이는 것 처럼 보였으나 현재 UNITA 반군들은 다시 정부군을 상대로 내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2002년 2월 19일 UNITA 반군의 지도자였던 사빔비가 정부군과의 교전 중에 사망함으로써 앙골라에 내전 종식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앙골라 대통령 에두아르도 산토스의 반군과의 즉각적인 휴전과 사면 선거 그리고 루사카 협정의 재개 등을 발표하였다.
2002년 3월 13일 산토스 대통령은 정전을 위한 15개 항을 발표하였다. 앙골라 정부는 13일 국영 라디오방송을 통해 "앙골라군 총사령관에게 오늘 자정을 기해 반군에 대한 모든 공격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잠비아는 1996년말 실시된 대선에서 칠루바(Frederik Chiluba) 대통령이 73%의 지지를 획득하여 무난히 재선되었다. 2001년 12월 2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칠루바 전임 대통령에의해 여당 후보로 전격 발탁되었던 음와나와사(L. Mwanawasa) 후보가 야당의 후보난립(10명의 야당 후보)에 힘입어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50개 지역구에서 여당이 69석을 확보, 대통령이 임명하는 8석을 추가해도 77석으로 과반수 의석에 2석이 부족하게 됨에 따라 향후 국정운영에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신정부는 앞으로 칠루바 전정부의 경제개혁 정책을 보완, 승계할 것을 천명하는 한편, 전 정부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던 부정부패의 척결과 만성적 식량난 해결을 위한 농업 생산력 제고에 국정운영의 중점을 둘 것으로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