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테마 기행/서상현) 아프리카 이야기

니제르

africa club 2003. 2. 3. 12:52

국가상징

1. 국기(國旗)
니제르의 국기는 수평으로 3등분화 되어진 등(橙),  백, 녹의 3색기(중앙부에 환인<丸印>)로 등은 사하라 사막, 백은  사헬지역, 녹은 니제르천유역을 상징하며 국기의 중앙부에 있는 등색의 환인은 태양을 의미한다.

2. 국장(國章)
국장은 방패와 방패의 양측에 있는 국기로부터  구성되어져 있어 방패의 가운데에는 금색의 광선을 발하는 태양이 그려져  태양의 왼쪽 상단에는 2개의 검과 창이, 또 오른쪽 상단에는 속(粟)의 수선(穗先) 3개가 각각 그려져 있다. 또 태양 하단에는 물소의 머리가 그려져 있다. 방패의 양측에는 니제르의 국가가 2기(旗)씩 장식되어 있다.  또한 검과 창은 역사와 문화를, 속의 수선은 농업을, 물소의  머리는 목축을 의미한다.

3. 국명
니제르 공화국(Republic of Niger)

4. 수도
니아메(Niamey )로 인구는 약 40만 명이다


인구/인종/민족

1. 인구
1994년 총인구는 약 890만 명이며 1㎢ 당  평균 인구밀도는 6.8명이다. 인구증가율은 유아사망률이 높음에도 불과하고 약 2.8%(80∼84)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인구구성은 연령별로 피라미드형으로 20세 이하가 국민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니제르 북부는 기복(起伏)이 많은 사막지대(사하라 사막)에 있어서 전인구의 90% 가까이가 남부  일대에 집중해서 살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북부지방에는 유목민이  살고, 또 남부지역에는 정착 농민과 풀족 등의 반농반목민이 많이 살고 있다.

2. 인종 및 종족
인구의 50.4%를  하우사족, 제르마  및  송가이족 23.0%,  투아레그족 10.6%, 풀라니 족 2.6%을 차지하고 있다. 하우사족, 제르마족 등은 주로 남부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풀라니 족, 투아  레족은  유목 또는 목축민족으로 북부에 주로 거주한다.

Haoussa족은 전인구의 반수 가까이를 포함하는, 이  나라에서 최고 유력한 종족이며 니제르의 중앙부에서  남부에 걸쳐 많이 살고  있다. 이 종족에 부속하는 부족은 대부분 7개  정도 있지만 많으나 적으나 흑인과 베르베르, 풀, 또는  아랍 족과의 혼혈이다. 또 이  나라의 상인에는 이 종족 출신자가 많다. Songhai-Djerma족은 그 수가  약 100만 명으로 추정 되고 니제르의 서부에 많이 산다. 그들의 선조는 그 옛날 2회에 걸쳐 번영을 자랑한 선가이 왕국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하우사족도 같은 정주(定住) 농경민이다.

Peul족은 서아프리카에서 상당히 광범위 한 지역에  걸쳐서 살고 있는 종족으로 니제르에는 약 60만인이 살고 있다고  추정된다. 정착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도 있지만 그들 다수는 남부 사헬지방에 살고 유목민으로 소를 재산의 상징으로 여겨 소를 절대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Touareg족은 그 수 약 50만인으로 북부지방에 많이 살며 옛날에는 용맹한 전사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Kanury족은 남동부에서  차드호에 걸쳐 많이 살고 있는  농경민이며, 그 수는  약 33만인이라  추정되고 있다. Toubou족은 차드국경을 따라, 또한 북부에 살고 있는 유목민이다.


니제르의 하우자(Hausa)족

인구 : 3,781,870명 (1991년) -니제르의 가장 큰 종족집단 이다.
언어 : 하우자 어를 주로 사용한다. 하우자 어는 사하라 남부지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이다. 이 하우자아에는 소코노와 카노의 두 가지 방언이 있다.  
위치 :  하우자족은 니제르의  남부지방에 두루 분포한다.  이곳은 나이제리아와의 접경 지대이다. 단, 극서(極西)지방에는 분포하지 않는다.
경제 : 이들의  전통적인 직업은 농업이고  현재도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상업, 노동, 가축 도살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의 농업생산물은 땅콩, 면, 쌀, 기장, 동부  등이다. 이들은 주변의 모든 종족뿐만  아니라 북부와 서부 아프리카의 많은 종족들을 주요 교역 대상으로 삼고 있다.
종교: 하우자족의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이슬람은 16세기에 이 종족에 들어왔는데 19세기 초에  이미 대부분의 하우자인이 무슬림으로  개종하였다. 무슬림 외에는 전통적인 애니미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소수 있다.

니제르의 마오리(Maouri)족
인구 : 350,000명 (1992년 ; 니제르의 다수종족으로서 전체 인구의 약50%을 차지한다.
언어 : 하우자어를 사용한다.
위치 : 이들은 니제르의 남서부 지방에 주로 거주한다.
경제 : 농업이 이들의 주업으로 기장을 주로 재배하고 동부도 많이 경작한다. 여성들은 밤바라 땅콩을 재배한다. 건기 동안에는 소규모의 상업활동으로 부수적인 수입을 얻는다. 다른 지방으로 이주한 사람이나 도시 노동자가 된 사람들은 푸주간의 도살자로 일한다.
종교 : 무슬림이 95% 이상을 차지한다. 그 외 혼합주의 적인 보리(Bori)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기독교인구는 0.2% 정도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이슬람의 절기들을 지키고 있다. 때로 이들은 보리(Bori)축제를 열기도 한다.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은 이 종족을 더 폭 넓게 이슬람화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 하고 있다.

니제르의 송하이(Songhay)족
인구 : 1,506,580명 (1990년)
언어 : 동부 송하이어(자르마 어)를 사용한다.
위치 : 이들은 서부 니제르에 거주하는데 주로 니제르강을 따라 살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소규모의 도시나 마을들에 살고 있다.
경제 : 전통적으로 송하이 인들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해 왔고 현재는 상인과 정치인으로서도 많이 일하고 있다. 이들의 주요 농업 생산품은 기장이며 주요 교역대상은 주변 종족인 하우자, 풀라니, 투아레그족이다.
종교 : 이슬람과 애니미즘이 이들의 주요 종교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무슬림 절기를 지키며 애니미즘의 영향을 받은 축제들도 행한다.

니제르의 제르마(Zerma)족
인구 : 2,000,000명
언어 : 제르마어를 사용한다.
위치 : 이들은 니제르 남서부의 건조한 지역에 살고 있다. 이곳은 니제르강과 그 지류에 의한 퇴적층을 따라 형성된 곳으로 니제르의 수도인 니아미를 중심으로 티라 베리, 도소 등의 소도시와 여러 마을이 속하여 있다. 이들은 북쪽으로 송하이족과 접해있고 남쪽으로는 덴디족과 접해있다.
경제 : 이들은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 니제르강의 수자원을 끌어다 농사에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소, 염소, 양을 기르기도 한다. 그중의 일부는 뛰어난 장인들로서 주변 도시와 마을에 알려져 있다.
종교 : 이들의 75%가 수니  파 무슬림으로서 종족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애니미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25%에 이른다. 제르마족은아프리카 서부의 다른 종족들에 비해 이슬람의 영향을 덜 받는 편이다. 명목상의 무슬림들은 여러 가지의 전통적인 무슬림 전통을 따르지만 전통적 애니미즘의 영향을 받은 마술이나 심령술 등의 일들도 곧잘 행하고 있다.


역사

2-1. 이슬람 왕국과 니제르
녹색 숲이 우거지고, 그 녹색을 비취는 물이  있었다고 하는 사하라가 사막화를 시작한 것은 기원전 2,500년경부터라고   전해지고 있지만 그리스인의 역사가 헤로토토스의 기록에는 이미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막화로 생활의 장을 잃어버린 농업과 어업을 경영하던  주민은 그 때부 터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것에 따라  목축업자들도 남쪽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인기가 없어진 사하라는 유목민의 세계가 되었다. 서 사하라에서는 몰인이, 중앙의 대지에는 파랑 포(布)로  얼굴을 감싼 투아렉족이 남겨졌다.
건조의 기후에 강한 투아렉족이 낙타를 교통기관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그리스 기원후의   이지만 그들은 낙타를 이집트에서  옮겨 받아 들였다. 낙타에 의한 교통기관은 4세기에 성대해져 돈과 소금과의 교역이 지중해 세계와의 관계를 강하게 하고, 그 교류에서  7세기 이슬람의 발생에 따라 사하라 주변 민족의 이슬람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손가이왕국과 말리 제국이라는 대국가가 형성되어졌다.
이슬람 왕국의 최성기(最盛期)는 16세기의 손가이왕국에서  그 전설적인 왕 에스키아 무하맷드의 시대에는  차드 호반(湖畔)의 볼느왕국과의 사이에서 현재의 니제르는 이등분 되었다. 18세기가 되면서 현재의 나이지리 아에 포함되는 소유트를 수도로 하는 풀 왕국이  영화를 누렸다. 그 때부터 유럽을 확대하는 세력은  문고 파크와 크랏파트  등의 탐험가를 첨병(尖兵)으로 해서 영토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멀지 않아 평정작전이 전개되어 소유트의 함락을 최후로  아프리카인의 왕국은 자취를 감췄다. 식민지화 시대의 개막이었다. 니제르도  프랑스세력의 진입으로 식민지화 되었다.

2-2. 프랑스의 식민지
1911년 프랑스는 니제르를 프랑스 영서아프리카 총독의 통치하에 두었다. 프랑스는 단기간의 군정 후 민정에 옮겨 21년에  새로운 니제르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22년 프랑스령 식민지가 되었으며 26년에 진델이 최초의 수도가 되고, 다음으로 니아메로 옮겨졌다.  이 사이에 니제르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의해  프랑스군의 약체화를 틈타 아일지구의 투아렉족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17년 진압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1946년 니제르에  최초의 지역의회가 설립되었다. 프랑스의 해외영토로서의   위가 확정된 니제르에서는 프랑스 국회에 2명의 대의사를 선출했다. 또 프랑스 연합의회  및 프랑스 영서아프리카 대평의회에도 니제르는 각각 2명의 대표를 보냈다. 56년에는 프랑스 해외 영토에 대한 기본법이 제정되어 프랑스의 해외영토는 광범위자치권을 얻었다. 니제르에도 다른 해외영토와 같이  12명의 각료로부터 이루어진 자치정부가  조직되어 직접선거에  의한 지역의회가  성립했다.  58년 12월 18일, 프랑스 공동체의 틀 속에 있어서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여 하마니 디오리가 임시 정부수석에 선임되었다.

2-3. 프랑스에서의 독립
1960년 프랑스 공동체 구성국의 지위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공동체 구성국은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니제르는 프랑스 공동체에서 떨어져 60년 8월 3일 완전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디오리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디오리  대통령은 65년 재선,  70년에 3선 되어 장기정권을 유지했으나 74년 4월 15일 참모총장  쿤채 중좌의 쿠데타에 의해 쓰러져 14년간의 치정(治政)에 종지부를 찍었다.

2-4. 쿤체 의장의 정치
쿤체는 쿠데타 후 전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최고군사평의회를 설립하여 스스로 의장으로 취임했다. 동시에 헌법의 정지, 의회  및 정당의 해산을 강행하여 잠정군사정부를 발족시켰다. 농업국가인  니제르는 한발에 의한 피해를 받기 쉬우며 식량문제, 그리고  부수(付隨)한 민족적 감정이 정치적 문제로 발전하기  쉬우므로 국가원수가 된  쿤체는 군사력을 키우는 한편, 국민경제를 다시  세우기 위해 ① 식량을  중심으로 하는 기초적 생활물자의 가격통제, ② 최저임금 베이스  개정의 조치를 하는 것과 동시에 군을 이용한 한발지역 구조활동을 강화했다. 그 후로 쿠데타 미수 등이 계속되었지만 우란 개발의 진전에  따른 경제성장의 지원을 받아 쿤체 정권은 기반을 강화했다.

1980년 3월에는 발전사회확립위원회를 설치하여 전 사회계층의 효과적 참가를 재촉하기 위해 최고군사평의회를 정점으로 한 촌락 레벨에 이르기까지 조직화를 계획했다. 니제르는 군사정권이기는  하나, 다른 아프리카제국의 군사정권과는 성격이 다르며 쿤체  정권에 있어서 입법의회의 부활이 최대의 지향점이었다. 1983년에는 개발국민 평의회(CND)가 발족하여 국가헌장 책정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84년의 한발에 의해 식량 농업대책이 최우선시되어 입헌의회 부활 움직임은 일시 중단되었다.

2-5. 민정이관(民政移管)
이러한 상황에서 1987년 11월 쿤체 의장은 병사하고 국군 참모장 알리 세이브가 최고군사위원회에 의해 동의장, 국가원수에 임명되었다. 세이브는 니제르 최초의 여성 각료등용(登用) 등  대폭적인 내각개편, 조직편성을 실시하는 한편 정치범을 사면했다. 또  촌(村), 구(區), 현(縣)에서의 의회선거실시, 헌법제정위원회의  설치를 제안하는  한편, 헌법 복귀후도 문 군에 의한 조각(組閣)을 표명했다. 89년 9월 신헌법 국민투표 결과 신헌법이 제정되어 입헌군주제가   고 같은  해 12월에 최초의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99.6%의 지지율로 세이브가 대통령에 취임, 민정이관이 완료되었다.

2-6. 최근의 정세
세이브는 90년 복수정당제를 도입하고 10여개의 정당을 합법화하였다. 92년 12월 헌법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됨으로써  독립이래 최초의 복수정당제 선거실시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1993년  2월 총선에서는 6개 정당연합체인 변화세력동맹(AFC)이 집권세력으로 부상하고 집권당이던 사회개발국민 운동(MNSD)은 야당으로 천락하였으며 3월 대통령선거에서는 야당인 사회민주당의 우스마네가 당선되었다.

1994년 12월 실시된 총선에서 야당연합이 우스마네 대통령이 주도하는 집권연합세력에 승리하여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이 계속  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96년 1월 군부의 쿠데타로 대통령을 축출하고 집권한 이브라 힘 바레  마이나사라 중령은 과도민간내각을 구성하게 되었다. 마이나사라는 같은 해 7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으며 1996년 총선에서도  마이나사라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혁신민족독립동맹(UNIRD)과 친 여정당의 승리로 의회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국토와 지리

1. 위치
니제르 북쪽은 알제리 및 리비아, 동쪽은 차드, 남쪽은 나이지리아 및 베냉과 각각 국경을 접하는 내륙국이다. 동경 0도에서 16도, 북위 11.5도에서 23.5도 사이에 위치하여 서단(西端)은  북회귀선이 둘러쌓고 있다.

2. 면적
면적은 126만 7,000㎢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 또는 반사막지대이다. 거의 중심부에 아일 산지(山地)가 있어(최고봉 Greboun산은 2,000m 이상) 이것에 대치하여 북동부에는 자드 대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 아일 산지에서 자드 대지에 걸쳐진 북동부 지역일대와  아일 산지의 서부지역은 사하라 사막의 일부를 제외하고 기복(起伏)이 많은 황량한 사구지대(砂丘地帶)가 계속된다. 또 동부지대는 스텝지대로  유목민과 가축의 무리가 산재(散在)한다. 남부지역   사바나 지대로 남동부의 차드호에서 니아메에 걸쳐 비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나라의 곡창 지대라 불리어 주민의 다수는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이 나라의 남서부를 흐르고 있는 니제르강은  아프리카 중에서도 나일강, 사일 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을 있어 말리에서  남쪽의 베냉 국경을 따라 나이지리아로 흘러 들어간다. 덧붙여서 말하면 이 나라의 국명은 남쪽의 인접 국 나이지리아와 같이, 이  니제르강에 의해 붙여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3. 기후
기후는 지역적으로 두개로 구별할 수 있다. 즉,  차드 국경의 Nguighi에서 Tanout, Tahoua를 통해  말리 국경에 달하는 선을  국경으로 하여 그 이북(以北)과 이남(以南)의 사헬기후로 구분할 수가 있다. 북부지역은 연간 강우량이 상당히 적으며 100㎜에도 달하지 않는 건조한 기후이다.

연평균 온도는 장소에 따라서도 약간 틀리지만 최저  18℃, 최고 36℃ 정도이다. 이것을 월별로 보면 1월∼2월 최고기온이 낮으며 7∼8℃까지 내려가는 일도 있지만 5월∼6월경이 되면 기온도 높아져 45℃까지 달한다. 또 일반적으로 이  나라 기후의 특색으로서 낮과  밤과의 기온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들 수가 있다. 남부의 사헬기후가 되면 우량(雨量)도 많아지며(연간 강우량 300㎜∼800㎜) 습도도 비교적 높다. 계절적으로 보면 10월에   6월까지가  건기에 들어가고 7월에서  9월은 우기로, 특히 8월은 우량이 최고 많다. 또 11월에서 2월, 3월에  걸쳐서 1년 중 최고로 지내기 편한 계절로 일중 온도가 30℃ 전후,  밤은 15℃ 가까이까지 내려간다. 이 시기는 또 사하라 사막 방면에서 몰려오는 하마탄이라는 사진(砂塵)을 포함한 계절풍이  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4월∼5월은 기온도 올라가고 일음(日陰)에서도 가끔  40℃ 이상이 된다.



경제

1. 개요
니제르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로 1인당 국민소득이 매우 낮다. 또한 국민총생산의 절반  이상이 농업생산으로 충당되며 목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1994년 국내총생산은 46억 달러이고 1인당 국내총생산은 550  달러였다. 1995년 강우량부족과  메뚜기떼, 기타 육식동물의 습격으로 곡물이 부족해져 인구의 1/4인 최소 200만 명이 기아에 직면해 있다. 농업은 쌀,  솔감 등의 생산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형태이며 목축은 유목형태로 역시 기상조건에 좌우되기 쉬운 상황이다. UN 및 식량농업기구(FAO)는 1990년 12월 식량위기에  있다고 해서 각국에 원조를 호소했다. 우라늄은 매장량은  20만 톤, 관련산업 종사자까지 포함한 노동력의 20%가  종사하고 있는 니제르의  경제성장 견인차적인 역할을 해왔다. 1965년에 발견돼 71년부터 생산에  들어갔으나 최근 국제적인 우라늄가격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세계은행, IMF의 지원을 받아 섹터조정을 포함한 구조조정계획(1989∼ 91년)을 실시하여 공무원 급여동결, 공기업의 정리,  보조금 삭감 등의 노력을 계속하는 것과 동시에 이에 이어 1990∼92년 제 2차 구조조정 계획정책을 입안하여 공기업의 재건, 관세제도의  개혁, 무역수속의 합리화, 수입의 자유화, 은행제도의 강화, 징세기능의  강화 등을 추진하였다.

2. 재정
정부의 재정은 중앙정부의 재정, 사회보장기금(CNSS),  석유가격 안정기금(CSPPN), 지방재정, 공기업 등에서 성립하고  있다. 1988년의 중앙정부의 재정규모는 세입이  677억 4,900만 CFA프랑,  증여(贈與) 284억 CFA프랑, 세출 1,351억 CFA 프랑으로 차감 389억 5,100만 CFA프랑의 적자로 되어 있다. 세입은 세수(세입의 77.8%), 세외수입(세입의 18.5%), 그 밖의 수입(세입   3.7%)에서 성립하고 있다.  증여의 구성은 무상자금(증여의 96.5%)으로 그 밖의 증여(증여 3.5%)이다. 증여는 주로 투자예산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반면 세출은 경상지출(세출의 59.1%), 투자지출(세출의 39.8%), 그 밖의 지출(세출의 1.1%)에서 성립하고 있다.

3. 통화 및 환율
통화단위는 CFA프랑(1 CFA 파랑 = 100 Centimes)이며, 환율로는 CFA프랑은 프랑스 프랑과는 1 CFA프랑 = 0.02 F 프랑으로  고정되어 있다. 1달러당 515 CFA프랑 (96년 6월)이다.

산업

1. 농업
우라늄개발를 중심으로 한 광업부문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농업은 니제르 경제에 있어서 또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민의 90%가 농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만성적인  식량부족국가로 근래 95년에는 강우량이 부족하고  메뚜기 육식동물 등의  습격으로 곡물이 부족해져 인구의 1/4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쌀은 약 90%가 관개경지에 의해 생산되고 있으며 남부 사바나 지역에서  자급용 잡곡과 수출용 땅콩, 목화 등이 재배되고 있다.

2. 목축업
니제르는 국토의 약 60%가 휴경지, 목장이며  낙농은 옛날부터 우라늄에 이은 외화확보원으로 니제르 중요 산업의  하나이다. 목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북부 사막지대에서 유목을 통해 사육된다.

3. 광업
니제르의 광업은 우라늄이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외에 철광석, 텅스텐 등이 생산되고 있다. 광업부문은 1988년에서  GDP의 6.7%, 수출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우라늄은  70년대부터 생산 및  수출에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세계 5위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우라늄 생산은 니제르 정부와 프랑스의 합작회사에 의해 개발되고 있으며 관련산업을 합하면 노동력의 20%을 차지하지만 최근 국제적인 우라늄가격의 하락으로 주춤하고 있다.

4. 제조업
대부분의 서부아프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제조업은  GDP의 5%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미미한  실정에 있다. 땅콩가공을  비롯하여 국내수요에 충당하기 위한 음료, 야채, 농기구 제조업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수송비 절감을 위한 수입대체 산업육성에 치중하고 있다.

5. 에너지
니제르는 전력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지만 발전량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80년대 초반까지 국내수요 전력의  약 50%를 나이지리아에서 수입하였으나 1983년 12월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쿠데타 이후 안정적 전기공급에 위협을 받자 니제르는 Goudel에 약 86억 규모의 화력발전소 건설에 착수했다. 한편 IDA는 니제르의 에너지 개발을 위해 790만 달러를 원조한 바 있으나 생산성이 낮아 중단된  상태이며 니제르의 원유생산은 현재 전무한 상태이다. 또한 유류(油類)  소비량의 대부분도 나이지리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정치

1. 국가원수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임기 5년의 대통령이 국가원수 이다. 현재의 대통령은  이브라 힘  바레 마이나사라(Ibrahim   Bare Mainasara)로 1996년 7월에 당선되었다. 마이나사라는 96년 1월  쿠데타를 일으켜 우스마네 대통령을 축출하고 과도민간내각을 구성하였는데, 7월 대통령선거에서 석방된 우스마네와의 대결에서 당선되었다.

2. 입법부
의회는 83석의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의회의원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3. 정당
1996년 11월 총선에서 마이나사라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혁신민족동맹(UNIRD)과 친여 정당들이 다수당으로 의회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 이밖에 사회발전국민운동(MNSD)와 반혁세력동맹(AFC)  등이 주요정당이다.

4. 최근의 정세
세이브는 90년 복수정당제를 도입하고 10여 개의  정당을 합법화하였다. 92년 12월 헌법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됨으로써  독립이래 최초의 복수정당제 선거실시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1993년  2월 총선에서는 6 정당연합체인 변화세력동맹(AFC)이 집권세력으로 부상하고 집권당이던 사회개발국민 운동(MNSD)은 야당으로 천락하였으며 3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인 사회민주당의 우스마네가 당선되었다.  1994년 12월 실시된 총선에서 야당연합이 우스마   대통령이 주도하는 집권연합세력에 승리하여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96년 1월 군부의 쿠데타로 대통령을 축출하고 집권한 이브라힘 바레  마이나사라 중령은 과도민간내각을 구성하게 되었다. 마이나사라는 같은 해 7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으며 1996년  총선에서도 마이나사라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혁신민족독립동맹(UNIRD)과  친여정당의 승리로  의회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외교

1. 외교정책
비동맹 중립외교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구 종주국(舊宗主國)인 프랑스와는 경제, 군사 등 전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쪽의 리비아, 차드 침공에  항의하여 1981년에 단교했으나  1983년 복교, 1990년 12월에는 치안사법협정에 조인(調印)했다. 남쪽의 나이지리아와는 1991년 2월에 최초의 합동각료회의를 열어 국경관리문제와 경제협력을 이야기했으며 이슬람제국회의기구(OIC)에 참가하고 있다.  1996년 1월 군사쿠데타로 프랑스와 캐나다 및 독일은 니제르에 대한 원조중단을 선언하였다. 92년 6월에는 대만고립화를 위해  접근한 중국과 수교하자 대만이 그 보복으로 단교하였다. 니제르는 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방제국과의 관계긴밀화에도 노력하고, 또  아프리카  일기구(OAU),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CEAO), 서아프리카제국 경제공동체(ECOWAS), 서아프리카 통화동맹(UMOA), 니제르강 개발기구(CFN), 사헬 제국 한발대책위원회(CILSS)  등의 지역기구에 참가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2. 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문제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등거리외교노선을  표방하면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으며 1986년 9월  쿤체 대통령의 방북 이후 한때 친북입장으로 전환했으나  1988년 외상방한과 서울올림픽 참가 이후   거리외교로 복귀했다. 1989년 공관철수조치 이후 일시적으로 소원한 태도를 표시한 바 있으나 한국의  노력으로 태도를 완화하였다. 1993년 4월에 집권한 Ousmane 대통령은 산적한 경제난 해소를 위한 실용주의노선 추구로 서방의 원조를 모색중이며  한국에도 무상원조 등 경제협력을 희망하고 친한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3. 북한과의 관계
북한은 1974년 9월에 니제르와 수교한 이래  1983년 2월   상주공관을 설치하고 1986년에는 쿤체 대통령의 방북 등을 통해 친북노선을 추구했다. 1990년 이래의 민주화 및 북한의  공관철수(91.3)로 관계가 급격히 소원해졌으며 양국간의 협력관계가 전무한 실정에 있다.

4. 국별 외교관계
4-1. 미국 및 서방측과의 관계
구 종주국인 프랑스와는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니제르는 지나친 대불의 의존도에서 탈피하기 위해 다변화 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며 미국, 서독, 벨기에, 일본, 캐나다 등의 원조를 통한 경제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는 1984년 3월에 COOK 미 국방차관보 및 1985년 3월의 Bush 부통령의 니제르 방문 이후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1996년 1월 군사쿠데타로 프랑스와 캐나다, 독일은 니제르에 대한 원조중단을 선언했으나 정권안정화 이후 해제되었다.

4-2. 대공산권 관계
니제르는 비동맹 중립 등거리외교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소련, 쿠바, 중국 등과도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92년 6월에 대만과의 수교로 중국은 7월 단교했으나 1996년  6월 대만고립화를 위해  접근한 중국과 수교하자 대만이 그 보복으로 8월에  단교하였다. 실질적인 협력관계가 쟁쟁한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과는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만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4-3. 대아프리카 관계
니제르는 나미비아의 독립과 남아 공화국의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하고 OAU를 비롯 아프리카의 역내기구, 특히 Conseilde l'Entente CEAO 등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OAU의 단결노력   적극적으로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이티오피아∼소말리아 분쟁과 챠드내전 등에서  중립정책을 고수(固守)하였으며 선린관계(善隣關係)의 유지를 기본정책으로 삼고 있다. 북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리비아에 대해서는 사하라 이남의 세력 확장을 우려하여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으며 서부 사하라 문제와 관련하여 1986년 제 41차  유엔 총회에서도 계속해서  알제리측의 입장을 지지해 오고 있다. 세이브 대통령은 집권 후 1988년 초 코트디부아르, 토고, 베냉, 부르  나파소, 나이지리아 등 인접한  우방국을 순방하고 기존의 우호협력관계를 증진시켰다.

5. 국제기구 가맹
UN, 아프리카통일기구, OCAM 협상회의 가맹국이고  유럽공동체의 로메 협정국이다.

생활
  
1. 의료
니제르의 의료수준은 매우 낮다. 의사와 간호사도 매우 부족하고 병원도 도시에 한정되어 있다. UN의 원조로 전염병과   토병  등에 대한 대책이 이루어지고 있다. 니아메에는 다음 두 곳의 병원밖에 없다.□ H pital National de Niamey (국립종합병원) :  침대 수 700대(단 대부분이 만원) 정도이며 의사 수는 30명이다.(니제르인,  한국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등)

□ Clinique de Gamkale : 민간의원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협력으로 운영하고 있다. 의사 수는 2명, 조산부 1명이며 침대 수는 22개, 내과, 외과, 산부인과가 있다. 이들 병원은 어느쪽이든 설비가 불완전하며 간단한  수술도 하지 못하므로 중병, 중상의 환자는 파리 등의 병원에 수송하게 되어 있다. 니아메 체류 외국인은 위 두 곳의 병원 중에서  청결한 점으로는 Clinique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또 현지에서 출산하는 외국인은 적다.

2. 니제르에 있어서 교통수단으로는 도로교통이 대부분이다. 나이저강의 국내 수로를 이용하기도 하나 10∼3월 사이에만 운행이 가능하다. 항공교통은 비교적 잘 발달된 편이어서 니아메∼아가데스∼아리트 사이의 로(空路)가 개설되어 있고 국제공항 및 지방공항이 많은 편이다. 니제르에서 철도는 없다.

'아프리카 테마 기행 > 서상현) 아프리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나  (0) 2003.02.03
베넹  (0) 2003.02.03
이집트  (0) 2003.02.03
리비아  (0) 2003.02.03
나이지리아  (0) 200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