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North Africa)
지중해와 접해있는 다섯국가 즉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아, 리비아, 이집트 등의 국가와 서사하라 그리고 수단공화국이 포함되는데 수단의 경우 인종이나 문화적으로 북아프리카 보다는 흑아프리카에 가까우나 북수단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있다.
이 지역의 동질적인 특성은 아랍어로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역사적으로 중동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지중해의 남부해안은 2천여년이 넘게 서구의 영향을 받아왔다. 모로코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지중해 해안지역은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사하라 이북 북아프리카 지역을 살펴보면 코피 아난(Kofi Annan)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 자격으로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전 미국무장관이 활발한 중재 활동을 벌여온 서부사하라 문제는 1997년 9월에 베이커 중재안(Baker Settlement Plan)이 타결되어 서부사하라 유엔평화유지단(U.N. Mission for Referendum in Western Sahara : MINURSO) 임무가 연장되고 주민투표자 식별 및 등록작업이 재개되었다.
리비아는 유엔의 1, 2차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국·영국의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 팬암기 폭파 사건 혐의자 인도 요구를 계속 거부함으로써 경제제재가 장기화되었었다. 한편, 동 혐의자의 제 3국 재판 개최에 관한 리비아의 제안에 아랍, 아프리카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제 3세계의 지지폭이 확대되어 가고, 특히 1997년 10월 만델라(Nelson Mandela) 전 남아공 대통령의 리비아 방문 및 리비아의 제 3국 재판 개최안 지지를 통해 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제고됨으로써 리비아에게 유리한 국제적 분위기 조성에 진전이 있었다. 그 결과 폭파 사건 혐의자들이 제 3국인 네들란드에서 재판을 받고 있으며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도 철회되었다. 또한 리비아 국가원수인 가다피는 아프리카단결기구(OAU)의 의장으로 선출되어 아프리카의 통합 문제 등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한편 1992년 1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알제리 사태는 그간 군부측과 반정부 이슬람회교주의 세력간의 대화 시도 등 타협 노력에도 불구, 양측간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알제리 정부는 한편으로는 회교 테러 집단 배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또 한편으로는 정부주도의 민주화 일정을 추진하여 왔다. 1995년 11월 알제리 최초의 직선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리아미네 제로울(Liamine Zeroual) 대통령은 1996년 11월 회교원리를 정강으로 채택하는 정당의 결성금지 및 강력한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회부, 통과시켰다. 1997년 6월 5일 신헌법하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세력이 승리하였으며, 이어 1997년 10월 실시된 주의회 선거에서도 집권세력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알제리 국민들은 과격 회교원리집단에 대한 환멸을 보이고 일단 현 집권세력에게 사태 수습을 기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구국전선(Islamic Salvation Front : ISF)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구국군(Islamic Salvation Army : ISA), ISA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슬람무장단체(Armed Islamic Group : AIG)은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계속 테러를 행하고 있다. 알제리 정부와 회교원리주의 세력간의 공방이 시작된 이래 학살은 알제리내 일상사가 되고 있으며, 1992년 이래 알제리 사태로 인한 총 사망자 수는 약 7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제리에서 1991년 11월 최초로 실시된 다당제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회교원리주의 정당(FIS)을 군부가 해산하면서 시작된 알제리 테러 사태는 정부의 진압정책으로 1998년을 고비로 점차 감소 추세에 있다. 1999년 4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군부의 후원하에 당선된 현 보테플리카(Bouteflika) 대통령은 회교원리주의 무장 단체 해산시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면 등 화합정책을 실시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내정세도 더욱 안정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튀니지는 1987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벤 알리(Ben Ali) 현 대통령이 회교 원리주의 단체의 침투를 저지하면서 강력한 통치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벤 알리 대통령은 제한적이나마 민주제도를 일부 도입하고 안정된 경제성장을 주도하면서 99.10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성공, 향후 5년간 튀니지를 통치할 예정이다.
◎ 마그레브(bladlreb) : 마그레브는 아랍어로 '서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로코, 알제리, 뒤니지아를 포함하는 북서부 아프리카지역을 말한다. 마그레브지역은 로마제국시기에는 곡창지대로 곡식 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올리브, 포도 등을 공급해 주었다. 17세기 마그레브는 이슬람 아프리카로 진출하는 서구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아랍이 진출하여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그레브의 국민들은 통합으로의 꿈인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그 지역은 11세기 짧은 기간동안 통합의 경험이 있었다. 결국 세 지역은 각각 분리되어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에는 통합을 바라는 汎마그레브 정신이 남아있다. 이와는 반대로 민족주의가 통합을 반대하고 있는데 오늘날 모로코와 알제리는 폴리사리오운동으로 적대관계에 있다.
◎ 사헬(Sahel) . 모리타니아에서 이디오피아에 이르는 사하라 사막과 수단벨트 사이에 있는 좁고 가느다른 지역을 말한다. 사헬은 아랍어로 '가장자리, 경계선 혹은 해안'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의 의미는 사막의 가장자리로 언급된다. 약 193킬로미터 내지 290킬러미터에 이르는 이 좁은 지역은 강우량이 적으며 작은 관목과 초목들이 자라고 있다.
이 지역은 강우량 관계로 우기한계선을 기준으로 목축과 농업이 이루어
지고 있다.
사헬지역은 유목민들족의 인구 희박지역이다. 그러나 정착 목축업과 농업이 이루어 지는 곳에는 약간의 인구증가가 있었다. 금세기에는 빈번한 한발로 이 지역에서의 생존이 어렵게 되었다. 1969년 모리타니아를 시발로 1972년 에티오피아로 가뭄지역이 확대되어 5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과 동물들이 죽었다(1972년과 1975년에 에티오피아에서 10만명 이상이 가뭄으로 또는 그와 연관되어 사망하였다). 1975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사헬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사헬클럽(Sahel Club)을 만들었다. 그 기구는 관개를 위해 우물을 파며 재정착계획 그리고 토양보존 등의 계획에 착수하였다. 1981년까지 필요한 자금원들이 증액되었으나 그 지역의 정치적 불안으로 위기를 구하는데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했었다.
지중해와 접해있는 다섯국가 즉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아, 리비아, 이집트 등의 국가와 서사하라 그리고 수단공화국이 포함되는데 수단의 경우 인종이나 문화적으로 북아프리카 보다는 흑아프리카에 가까우나 북수단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있다.
이 지역의 동질적인 특성은 아랍어로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역사적으로 중동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지중해의 남부해안은 2천여년이 넘게 서구의 영향을 받아왔다. 모로코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지중해 해안지역은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사하라 이북 북아프리카 지역을 살펴보면 코피 아난(Kofi Annan)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 자격으로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전 미국무장관이 활발한 중재 활동을 벌여온 서부사하라 문제는 1997년 9월에 베이커 중재안(Baker Settlement Plan)이 타결되어 서부사하라 유엔평화유지단(U.N. Mission for Referendum in Western Sahara : MINURSO) 임무가 연장되고 주민투표자 식별 및 등록작업이 재개되었다.
리비아는 유엔의 1, 2차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국·영국의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 팬암기 폭파 사건 혐의자 인도 요구를 계속 거부함으로써 경제제재가 장기화되었었다. 한편, 동 혐의자의 제 3국 재판 개최에 관한 리비아의 제안에 아랍, 아프리카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제 3세계의 지지폭이 확대되어 가고, 특히 1997년 10월 만델라(Nelson Mandela) 전 남아공 대통령의 리비아 방문 및 리비아의 제 3국 재판 개최안 지지를 통해 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제고됨으로써 리비아에게 유리한 국제적 분위기 조성에 진전이 있었다. 그 결과 폭파 사건 혐의자들이 제 3국인 네들란드에서 재판을 받고 있으며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도 철회되었다. 또한 리비아 국가원수인 가다피는 아프리카단결기구(OAU)의 의장으로 선출되어 아프리카의 통합 문제 등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한편 1992년 1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알제리 사태는 그간 군부측과 반정부 이슬람회교주의 세력간의 대화 시도 등 타협 노력에도 불구, 양측간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알제리 정부는 한편으로는 회교 테러 집단 배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또 한편으로는 정부주도의 민주화 일정을 추진하여 왔다. 1995년 11월 알제리 최초의 직선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리아미네 제로울(Liamine Zeroual) 대통령은 1996년 11월 회교원리를 정강으로 채택하는 정당의 결성금지 및 강력한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회부, 통과시켰다. 1997년 6월 5일 신헌법하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세력이 승리하였으며, 이어 1997년 10월 실시된 주의회 선거에서도 집권세력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알제리 국민들은 과격 회교원리집단에 대한 환멸을 보이고 일단 현 집권세력에게 사태 수습을 기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구국전선(Islamic Salvation Front : ISF)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구국군(Islamic Salvation Army : ISA), ISA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슬람무장단체(Armed Islamic Group : AIG)은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계속 테러를 행하고 있다. 알제리 정부와 회교원리주의 세력간의 공방이 시작된 이래 학살은 알제리내 일상사가 되고 있으며, 1992년 이래 알제리 사태로 인한 총 사망자 수는 약 7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제리에서 1991년 11월 최초로 실시된 다당제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회교원리주의 정당(FIS)을 군부가 해산하면서 시작된 알제리 테러 사태는 정부의 진압정책으로 1998년을 고비로 점차 감소 추세에 있다. 1999년 4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군부의 후원하에 당선된 현 보테플리카(Bouteflika) 대통령은 회교원리주의 무장 단체 해산시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면 등 화합정책을 실시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내정세도 더욱 안정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튀니지는 1987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벤 알리(Ben Ali) 현 대통령이 회교 원리주의 단체의 침투를 저지하면서 강력한 통치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벤 알리 대통령은 제한적이나마 민주제도를 일부 도입하고 안정된 경제성장을 주도하면서 99.10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성공, 향후 5년간 튀니지를 통치할 예정이다.
◎ 마그레브(bladlreb) : 마그레브는 아랍어로 '서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로코, 알제리, 뒤니지아를 포함하는 북서부 아프리카지역을 말한다. 마그레브지역은 로마제국시기에는 곡창지대로 곡식 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올리브, 포도 등을 공급해 주었다. 17세기 마그레브는 이슬람 아프리카로 진출하는 서구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아랍이 진출하여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그레브의 국민들은 통합으로의 꿈인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그 지역은 11세기 짧은 기간동안 통합의 경험이 있었다. 결국 세 지역은 각각 분리되어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에는 통합을 바라는 汎마그레브 정신이 남아있다. 이와는 반대로 민족주의가 통합을 반대하고 있는데 오늘날 모로코와 알제리는 폴리사리오운동으로 적대관계에 있다.
◎ 사헬(Sahel) . 모리타니아에서 이디오피아에 이르는 사하라 사막과 수단벨트 사이에 있는 좁고 가느다른 지역을 말한다. 사헬은 아랍어로 '가장자리, 경계선 혹은 해안'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의 의미는 사막의 가장자리로 언급된다. 약 193킬로미터 내지 290킬러미터에 이르는 이 좁은 지역은 강우량이 적으며 작은 관목과 초목들이 자라고 있다.
이 지역은 강우량 관계로 우기한계선을 기준으로 목축과 농업이 이루어
지고 있다.
사헬지역은 유목민들족의 인구 희박지역이다. 그러나 정착 목축업과 농업이 이루어 지는 곳에는 약간의 인구증가가 있었다. 금세기에는 빈번한 한발로 이 지역에서의 생존이 어렵게 되었다. 1969년 모리타니아를 시발로 1972년 에티오피아로 가뭄지역이 확대되어 5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과 동물들이 죽었다(1972년과 1975년에 에티오피아에서 10만명 이상이 가뭄으로 또는 그와 연관되어 사망하였다). 1975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사헬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사헬클럽(Sahel Club)을 만들었다. 그 기구는 관개를 위해 우물을 파며 재정착계획 그리고 토양보존 등의 계획에 착수하였다. 1981년까지 필요한 자금원들이 증액되었으나 그 지역의 정치적 불안으로 위기를 구하는데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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