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은 노예무역으로 인해 아프리카 사회가 후진성을 띠게 되었고 세계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고 믿는다. 이러한 약점과 의존성은 식민 시대에도 계속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분명히 지속되고 있다. 다른 역사학자들은 노예무역에 크게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환경이나 기술, 사회 조직, 종교적 신념, 개인적 시도와 같은 식민지 이전 시대의 아프리카 사회를 형성한 요인들을 강조한다.
노예무역의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인위적인 인구손실로 아프리카가 발전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노예무역의 성장은 아프리카 사회의 불안정을 야기하였다. 17세기-19세기에 이루어진 노예무역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붕괴시켰다.
신세계로 이송된 사람들의 숫자를 추정하는 데에는 기록이 부정확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최근의 계산에 의하면, 15세기와 16세기에 잡혀간 사람들까지 합쳐 모두 1,000만 명에서 1,300만 명의 사람들이 노예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이들 중 절반은 서부 아프리카에서, 나머지 절반은 중앙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사람들이다. 노예를 수송하는 과정에서 약 5배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의 인구손실은 약 1억명을 상회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8세기에는 약 1,000만 명 이상이 노예무역으로 인해 죽거나 유출되어 가장 심각했으며, 19세기에는 약 400만 명 이상이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에 미친 광범위한 부정적 이미지와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지금까지 고착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아프리카 사회가 저발전의 단계에 머물게 하였으며 생산적이지 못한 무역체계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의 불리한 위치 놓이게 되었다.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인해 서구사회는 아프리카의 희생을 발판으로 부유해졌고, 그러므로 아프리카가 현재 처해 있는 경제적 후진성에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중심주의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의 영광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아프리카의 문명은 오히려 대서양 노예무역의 영향으로 변형되고 야만화 되었다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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